2022-12-14(수) 수요기도회
제목: 요한복음강해(22) 진리와 거짓 그리고 아브라함과 예수님의 관계(요8:31~59)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6W9UPu2_XfE [혹은 https://tv.naver.com/v/31818185 ]
1. 들어가며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긴 강화가 유난히도 많이 나오는 특별한 복음서이다. 우리는 그때 당시에 살지는 않았지만 요한복음의 기록을 통하여 그때 무리들에게 들려주신 말씀을 다시 들을 수가 있다. 왜냐하면 성령의 감동으로 사도 요한이 그때 했던 말씀을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겨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에서 우리는 두 번 다시 들을 수 없는 예수님의 위대하고도 생생한 말씀을 들을 수가 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예수께서 공생애를 마치기 6개월 전 초막절 때에 일어난 사건에 맞물려 주님께서 유대인들과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말씀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때 예수께서는 진리란 무엇이며 진리가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지를 말씀해 주신다. 그리고 진리의 말씀을 들을 줄 모르는 유대인들의 실체가 어떠한 것인지를 적나라하게 말씀하신다. 그리고 2천 년 전에 살았던 아브라함은 그때 예수님에게 행하듯 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는 아브라함이 나기 훨씬 이전부터 계셨던 것이다. 고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아브라함과 여호와의 관계가 어떠했으며, 또한 아들로 오신 예수님과 아브라함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파악할 수가 있다.
2. 예수님의 초막절 설교의 핵심은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3년 반이라는 공생애를 사셨다. 그중에서 오늘 설교는 예수께서 공생애 3년 차 되던 해 초막절 때에 행하신 말씀이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과 유대인의 긴장 관계를 보면 손에 땀을 쥐게 된다. 왜냐하면 이때에 이미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모든 방도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예수께서는 이러한 유대인들이 훗날이라도 진리를 알고 자유와 해방을 누릴 수 있도록 자세하게 그들의 상태를 진단하시고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신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공생애 3년 차에 들려주신 초막절 설교의 핵심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2가지다. 하나는 '생수의 강'에 관한 설교다(요7:37~38). 이것은 당시 초막절에 제사장들이 실로암에 가서 황금 주전자에 물을 담아 성전의 서쪽 굴뚝에 붓는 행사를 보시면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세상의 빛'에 관한 설교다(요8:12). 예수께서 자신을 가리켜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시며,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생명의 빛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초막절 때에 밤이 되면 여인의 뜰에 있는 네 개의 등에 등불을 환히 밝히는 것을 보시고서 하신 말씀이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당시 풍습과 현장들을 보시면서 거기에 합당한 진리의 말씀을 쏟아내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이 두 편의 설교를 통해 예수께서는 생명의 공급자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으며, 예수께서 이 세상에 빛을 비춰 사람들을 생명 가운데로 인도하시기 위해 오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3. 진리란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진리에 관하여 말씀하신다. 그들이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그 말씀 안에 거한다면 그들은 주님의 제자가 될 것이고, 장차 진리를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진리가 그들을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하셨다(요8:31~32). 그것은 한 마디로 그들이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요8:32). 그러자 유대인들은 따지듯 말한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결코 남에게 종이 된 일이 없는데,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어야 합니까?"하면서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때 예수께서는 그들은 이때까지 죄의 종으로 살아왔으며 아직도 죄의 종으로 살고 있는데, 그들이 죄의 종으로부터 자유롭게 되기 위해서는 아들의 사역이 필요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하여 아들이 비로소 그들을 자유롭게 해 줄 때에라야 그들이 참으로 자유롭게 될 수 있다고 하신다. 그러나 그들에게 주님의 말씀이 거할 곳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진리'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죄의 속박 가운데 있는 인간을 자유롭게 해 주는 어떤 것을 가리킨다. 고로 우리는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께서 언급하고 있는 진리를 알 수가 있는데, 그것은 적어도 3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 아들이신 예수님 자신이 진리 자체인 것을 말씀하셨다는 것이다(요8:36).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아들이라는 신분으로 오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야말로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여전히 죄 가운데서 죽게 될 것이라고 했다(요8:24).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사람이 되신 사건은 변하지 않는 영원한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조금 후에 단도직입적으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다(요14:6). 그리고 둘째,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이 진리라는 것이다. 진리는 궁극적으로 인류를 죄 가운데에서 해방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다. 즉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류를 죄로부터 놓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그것을 아는 이는 없었다. 그러므로 그때 당시의 사람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이후에야 비로소 진리가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요8:28). 셋째,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말씀이 진리라는 것이다(요8:45~46). 왜냐하면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을 입으신 분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들려주신 말씀은 아버지께서 그의 속에서 말씀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님은 진리만을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말씀을 그대로 인류에게 전달하시고 있었기 때문이다(요8:28). 고로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들려주신 말씀을 그대로 전해 주셨다. 예수께서는 결코 스스로 말씀을 만들어 말씀하지 않으신 것이다.
4. 진리이신 아들은 대체 누구신가?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긴 강화의 말씀 중에 가장 중요한 말씀은 무엇인가? 8장에 나오는 모든 말씀이 중요하지 않는 말씀이 없지만, 그것들 중에서도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아는 것이다. 한 마디로 예수님은 스스로 계시는 한 분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을 모르면 누구든지 여전히 죄 가운데서 죄의 종으로 살다가 죄 가운데 죽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단지 '아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지만, 여기서 '아들'이라는 말은 아버지께서 만세 전에 그를 낳으셨기 때문이요, 또한 그가 아버지로부터 이 땅에 보내심을 받았기 때문에 붙여진 신분이다. 하지만 이 신분적인 칭호는 예수께서 아버지보다 못하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아버지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뜻에 훨씬 가깝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원히 볼 수가 없다. 그런데 그분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만물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표현하셨으니 그분이 곧 아들이라는 것이다. 고로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먼저 아들을 낳으셨다. 그리고 이 아들을 통하여, 이 아들 안에서, 이 아들을 위하여 만물을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아들은 아버지와 별개가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나온 아들이요, 아버지의 또 다른 표현인 것이다. 그렇지만 당시 유대인들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또 다른 표현으로서 아들이라는 신분으로 오실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특히 유대 종교지도자들일지라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그러한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당신 자신을 '아들'이라고 칭하자, 예수께서 신성 모독죄를 지은 것이라면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초막절 때에 비로소 당신이 누군지를 정확히 그들에게 알려 주셨으니 그것은 바로 "내가 그"라는 것이었다(요8:24,28,58). 그런데 이말은 한글 성경에서 그렇게 번역하고 있을 뿐 실제 헬라어로 보면 "에고 에이미"라는 문장이다. 이를 번역하면 "나는 ~이다." 혹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라는 뜻에 가깝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문장을 1인칭으로 해석하게 되면 그것은 '에흐예'가 되는 것이요, 3인칭으로 해석하면 '여호와(야훼)'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구약시대로 치자면 바로 여호와 같은 분이시다. 즉 예수님은 유일한 한 분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유일한 한 분 하나님이 아들이라는 신분으로 오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으로서 보이지도 않고 볼 수 없는 분이 아들로 오셔야 했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오직 한 가지 인류의 속죄를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 인류의 죄값은 오직 죽음으로 값을 치를 수 있는데, 그 죄값을 하나님이 직접 담당할 수는 없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류의 죄값을 대신 담당하기 위해 피조물인 사람, 피흘려 죽으실 수 있는 사람이 되신 것이다. 그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신 것이다.
5.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것인가?
그렇다면, 예수님 당시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유대인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었는가? 여기서 '유대인'이라 함은 당시 군중들이나 무리들을 가리키는 표현이 아니라,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들은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 그리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로 구성된 산헤드린 공회원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계속해서 예수님의 대적이 되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것일까? 그것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던 지배 권력을 예수님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그렇게 한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나타나시기 전까지,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은 성전을 이용하여 돈을 벌 수가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 일을 저지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나타나시기 전까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백성들로부터 율법 선생(랍비)이라고 칭함을 받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자 이제는 예수님을 선생님으로 알고 따라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 안에 있는 시기 질투심이 그들을 격동시킨 것이다. 그리하여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헤게모니(주도권)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그들은 예수님을 제거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런데 명목상으로는 다른 이유를 제시하였다. 그것은 첫째, 예수께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음으로 율법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둘째, 예수께서 자신을 아들이라고 함으로서 하나님의 신성한 이름을 모독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실은 그들의 기득권 수호와 시기와 질투심이 결국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던 것이다.
6. 유대인들은 자기들을 어떤 자들로 여겼으며, 이에 대해 예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그렇지만 유대인들은 자기들을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요8:33). 왜냐하면 자기들은 실제로 할례를 받은 아브라함의 육적 후손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남의 종이 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자기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굳이 자유함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들이 죄의 종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죄 용서를 받지 못한 상태에 있었기에 그들은 죄의 종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아들이신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그들을 죄로부터 놓아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죄의 종으로 살다가 죽어 영원히 아버지의 집 곧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고 하셨다. 고로 그들은 육적으로는 분명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이 맞지만, 실제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자기들은 결코 음란한 데에서 태어난 사생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했다(요8:41). 그러자 주님께서는 단도직입적으로 그들이 누군지를 알려 주시는데, 그것은 그들이 마귀의 욕심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마귀의 자식이라는 것이다(요8:44). 그래서 그들의 아버지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곧 마귀라는 것이다.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로서 진리가 자기 속에 있지 아니함으로 거짓을 말할 때마다 자기의 것으로 말하는 놈이다. 왜냐하면 마귀가 곧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요8:44). 그러므로 마귀에게 속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7. 예수님을 몰라 본 유대인들은 결국 예수님에 대해 어떻게 인신공격을 하였는가?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을 미친 사람 취급하려고 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말했으며, 또한 예수께서 '귀신이 들렸다'고 했다(요8:48). 그러자 주님께서는 당신 안에 귀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다만 자신의 아버지인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8:50).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아버지께서 판단해 주실 것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다만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할 뿐이라고 했다(요8:55). 그리고 예수께서는 만약 어느 누구라도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지킨다면 그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요8:51). 왜냐하면 예수께서 얼마 안 있으면 십자가에서 영원한 죄값을 대신 치러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말씀하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고는 그들은 말했다. 자신의 조상 아브라함도 죽었고 선지자들도 다 죽었는데,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물었다. "당신은 당신을 누구라고 여기느냐?"
8. 예수님과 아브라함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그러자 예수께서는 아브라함과 예수님과의 관계를 비로소 그들에게 알려 주신다. 그것은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2천 년 전에 '나의 날을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다'고 말씀하신 것이다(요8:56). 이것은 대체 무엇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인가? 사실 2천 년 전에 여호와께서 두 명의 천사들과 함께 아브라함을 방문하신 일이 있으셨다. 그때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을 뵈옵고 그분과 두 명의 천사들을 보고는 극진히 대접한다. 그때 두 명의 천사는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시키려고 떠나갔고, 오직 아브라함 앞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있게 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신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명년 이맘 때에 다시 아브라함에게 되돌아올 것인데, 그때에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창18:10,14). 그런데 정말 1년쯤 뒤에 사라가 아들 이삭을 낳게 된다. 여호와께서 다시 아브라함을 방문하신 것이다. 그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볼 수는 없었지만 아들이 태어난 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다시 자기에게 오셨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니 아브라함은 태어난 아들 이삭을 보고 매우 기뻐하고 기뻐한다. 하나님께서 정말 다시 오셨구나 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것은 구약의 말씀이고, 이제 때가 찼을 때에, 여호와께서 아들로 오셨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렇지만 유대인들은 그분을 몰라보았다. 아들로 오신 여호와를 전혀 생각해 보지도 못한 것이다. 만약 그러한 사실을 그들이 알았다면, 그들은 아들이신 예수님을 보고 그분 앞에 엎드려 경배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러 방문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예수님이 누군지를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것으로서, 한 분 하나님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예수님이 하나님인 것을 몰랐던 그들은 예수님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나이가 아직 오십 세도 되지 않았는데 어찌 아브라함을 보았다고 말씀하신단 말이오?"(요8:56). 그러자 주님께서는 당신이야말로 홀로 한 분 하나님이라는 것을 다시금 말씀하신다. "진실로 진실로 여러분들에게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나는 ~이다입니다(요8:58)."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나기 전에 예수께서는 이미 스스로 계신 한 분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더이상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돌을 들어 예수님을 치려고 하였다. 왜냐하면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말씀하는 예수님의 말을 더이상 들어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의 생각에 분명 예수님은 신성 모독죄를 짓고 있는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때가 아직 되지 않았으므로, 숨어서 그들을 피해서 성전에서 나가셨다.
9. 나오며
우리는 유대인들의 시야를 가진 사람들인가, 아니면 그 옛날 아브라함이 가졌던 시야를 가진 사람들인가? 오늘날도 우리는 여전히 이 두 가지 시야로 주님을 바라보고 있다. 어떤 이는 끝까지 예수께서 하나님이신 것과 그분이 인류를 구원하러 사람으로 오셨다는 것을 부정해 버린다. 그러나 어떤 이는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행하신 놀라운 일을 듣고는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인다. 전자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기에 하나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 행하신 모든 혜택이 그들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여전히 죄의 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할 수가 없다. 천국에 못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후자의 사람들은 한 번만 들어도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알고 그분이 베푸신 은혜에 감사를 마지 않는다. 그런 자는 곧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 이것은 예수님 당시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는 일이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지금 그때 당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들려주셨던 말씀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듣고 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가진 성경 말씀을 듣고 읽을 때에 그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이 말씀을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정할 수 없다면, 그는 유대인처럼 자기의 죄 가운데서 살다가 영원한 멸망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말씀은 곧 나를 위해 하신 말씀으로서, 하나님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 아들로 오셨다는 것을 믿는 자는 결국 죄 용서를 받고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 그 옛날 여호와를 대접했던 아브라함이 될 것인가 아니면, 예수님을 냉대하고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는 유대인들처럼 살 것이냐 하는 것은 우리의 결정에 달려 있는 것이다. 아무쪼록 예수님을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시고 아들로 오신 분이라고 믿고, 그분의 십자가의 대속적인 죽음을 믿음으로, 죄사함을 얻고 영생도 같이 얻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2022년 12월 14일(수)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