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강해(25)] 죄인을 사랑하시고 새로운 경건방식을 알려주신 예수님(마9:9~17)_2025-04-23(수)

by 갈렙 posted Apr 2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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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rOkVRfVXXl0
날짜 2025-04-23
본문말씀 마태복음 9:9~17(신약 13면)
설교자 정보배목사

2025-04-23(수) 수요기도회

제목: [마태복음강해(25)] 죄인을 사랑하시고 새로운 경건방식을 알려주신 예수님(마9:9~1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rOkVRfVXXl0

 

1. 들어가며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자 하나님의 아들이시며(마16:16), 주 하나님이시다(요20:28). 그럼, 예수께서는 왜 이 땅에 오셨는가? 그것은 3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인류의 속죄를 위함이요(막10:45), 또 하나는 인류에게 생명을 분배해주기 위함이다(요10:10).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마귀의 일을 멸하러 오셨다(요일3:8). 그럼 왜 예수께서는 인류의 속죄를 위해 오셨는가? 그것은 인류의 시조인 아담이 범죄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모든 인간은 죄 가운데에 태어난다. 그러므로 모든 인류가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려면 죄사함을 받아야 하고 생명을 분배받아야 한다. 그럼 누가 죄사함을 받고 생명을 얻을 수 있는가? 그것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시인하여 예수님만이 인류의 구원자가 되심을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지금도 찾으시는 사람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사실을 아는 자다. 그런데 마태복음 9장에 보면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자가 나온다. 그래서 그는 절대적인 영적 의사인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었다. 그는 대체 누구인가? 그리고 세례 요한과 바리새인들이 추구하고 있던 경건방식으로서 금식에 대해 예수께서는 어떤 태도를 취하셨으며, 새 포도주로 오신 예수께서는 무엇이 당신을 담을 수 있는 새 가죽부대라고 말씀하셨는가?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이 두 가지 주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예수님은 과연 어떤 사람에게 필요한 존재인가?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3가지 목적 가운데 하나는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러한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대속제물로 오셨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예수님의 도움을 받기를 원한다면 그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해야 한다. 자신이 죄인으로서 그 죄값이 사망이라는 것을 아는 자는 죄사함을 주시고 생명을 주러 오신 예수님을 붙잡게 된다. 그러나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자는 예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신이 죄인이 아닌데 왜 예수님을 붙들겠는가? 그러므로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자신이 지금 어떤 상태에 놓여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인간은 아담의 범죄이후 사망 가운데 놓여있다. 그러므로 죽어서 형무소에 들어가기 전에 인간은 빨리 자신의 죄값을 청산해야 한다. 그런데 인간이 청산할 죄값을 죽음이다. 그러면 인간은 영원히 하나님과 떨어져서 영원한 불못에서 살아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어 직접 인간의 죄값을 대신 받으시려고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후손들 중에 아브라함을 선택하셨고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시어 이렇나 사실을 계속해서 알려주셨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예수님이 누구시며 왜 이 땅에 오셨는지를 듣고 그분을 자신의 구주로 모셔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은 다음에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3. 세리 마태는 어떠한 사람이었으며 어떻게 되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었는가?

  그런데 사람으로서 태어나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철저히 깨달은 한 사람이 성경에 나온다. 그는 바로 세리 마태였다. 그의 유대식의 본명은 '레위'였다(막2:14, 눅5:27). 그리고 그는 알패오의 아들이었다(막2:14). 그는 예수께서 3년반 동안 공생애를 사셨던 집이 있던 도시인 갈릴리의 가버나움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그곳에서 세리(세금징수자)의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예수께서 지나가시더니 그를 향하여 "너는 나를 따라오너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는 즉시 세관에서 앉아 세금을 징수하던 일을 과감히 버리고 즉시 일어나서 주님을 따라갔다.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의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과연 어떻게 되어 세리 마태는 가버나움의 세관의 일을 버리고 즉시 일어나 주님을 따라갈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그후에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대답하신 말씀을 통하여 어느 정도 짐작할 수가 있는데, 그것은 그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으며,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영적인 의사인 예수님을 간절히 필요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아프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은 결코 의사를 찾아가지 않는다.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바로 그러한 자들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을 의인이라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눅18:9~14). 그러므로 그들은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신 예수님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리 마태만은 달랐다. 그는 마음이 병들고 아픈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외로운 사람이었고 긍휼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비록 자신이 세리가 되어서 부자로 살고 있기는 하지만, 그는 그것이 유대인으로 할 짓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가 하는 일은 동족의 피를 빨아먹는 일이요 또한 매국하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더이상 세리의 직무를 맡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여러 세리들과 함께 세관에 앉아 있었는데 지나가시던 예수께서 그들 중에서 자신을 제자로 부르신 것이다. 그러자 그는 기꺼이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라가기로 결단하게 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청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4. 예수님은 과연 누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신 분이신가?

  그런데 이때 예수께서는 세리 마태의 청으로 그분의 제자들과 함께 마태의 집으로 초대를 받는다. 그래서 그의 집에 간다. 그런데  그때에 많은 세리들과 죄인들이 마태의 집에 와서 함께 식사자리에 앉는다. 그러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직접 말하기 곤란하니까 그의 제자들을 꾸짖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찌하여 당신들의 선생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러자 예수께서는 자신이 왜 이 땅에 오셨는지를 말씀하신다. 그것은 이와같은 말씀이었다. 

마9:12~13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필요)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필요가) 있느니라 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왜냐하면]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기 때문이]노라 하시니라 

  그렇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영적으로 볼 때 병들고 아프다고 하는 자들을 고쳐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 사람들 중에 자신은 건강하고 튼튼하다고 여기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더 이상 필요하지가 않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 자신은 의인이라고 생각한 사람에게는 예수님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서 죄인이라고 시인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기 위해 오셨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께서는 모든 인류의 죄값을 대신하여 죽으려고 이 세상에 들어오셨지만 그분은 그분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만 대속의 효력이 발휘될 뿐이다. 그런데 이때 세리 마태는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고, 바리새인들은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왜냐하면 세리 마태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철저히 깨닫고 있었던 사람이었지만, 바리새인들은 자신을 의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5. 예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이 왜 금식하지 않는지에 대해 어떻게 대답하셨는가?

  위와 같은 일이 있고 난 후에,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온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렇게 따지듯이 질문을 던진다.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을 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아니하나이까?"(마9:14) 이는 예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 새로운 유대교 종파를 일으키려면 적어도 자기들처럼 금식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예수님의 경건생활을 문제삼고 질문한 것이다. 그러자 그때 예수께서는 왜 자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는지를 대답하신다. 그리고 2가지 비유로서 예수님의 경건생활 방식은 옛 생활방식으로서는 담기가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신다. 그것이 바로 생베조각은 새 옷에 덧대야 하고,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된다는 유명한 대답이다.

  먼저, 예수께서는 왜 당신의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는지에 대해 어떻게 대답하셨는가? 그때 예수께서는 바로 이렇게 대답하셨다. 

마9:1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의] 손님들(아들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올 것인데),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그렇다. 예수께서는 혼인집 아들들인 제자들에게는 신랑과 같은 존재였다. 왜냐하면 장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그분은 신랑으로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몸된 교회는 다 그분의 신부가 된다. 그런데 그분의 신부가 될 제자들은 장차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혼인집의 아들들은 하나님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을 뜻하지만, 예수님에게는 신부가 되는 것이다(요3:29).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교회가 신랑이신 예수님의 신부가 될 것을 이렇게 말했다. 

요3: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신랑으로 오셨으니, 아직 잔치 기간 중에 제자들은 잔치의 즐거움을 누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장차 제자들도 자신의 신랑이신 예수님을 빼앗길 날이 올텐데 그러면 그때는 제자들도 금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9:15). 그런데 지금은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예수께서 금식을 싫어하신다거나 부정한 것이 아니다. 

 

6. 예수께서는 2가지 비유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 시대의 경건생활방식이란 어떤 것이라고 말씀하셨는가?

  예수께서는 자기들의 경건생활 방식을 취하지 않는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제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의 경건생활 방식이란 관연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말씀해주신다. 그것은 생베조각을 가져다가 헌 옷에 덧대어 기워서는 아니 된다는 말이었고,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고 교훈하셨다.

마9:16-17 생베 조각을 낡은 [겉]옷 [위]에 붙이이(덧대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채운) 것이 그 [겉]옷을 당기어 해어짐(찢어짐)이 더하게(심하게) 됨이요 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들 안]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들]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그러면]

 부대[들]도 버리게(망치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들 안]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그렇다면, 이러한 비유들은 대체 어떤 뜻인가? 이것은 구약시대의 경건생활 방식을 따르는 바리새인과 신약시대의 경건생활 방식을 따르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경건생활 방식을 수용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은 생베조각이나 새 포도주처럼 팽창력과 신축성을 가지고 있는데, 바리새인들의 옛 경건생활 방식이나 세례 요한의 새 경건생활 방식은 그것을 수용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약시대부터 쭉 이어져 내려온 바리새인들의 옛 경건생활 방식은 어떠한 것이었는가? 그것은 금식하는 것이다. 금식은 이스라엘의 3대 경건생활방식으로서 구제와 금식과 기도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마6:2~18). 그리고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실천하고 있던 새 경건방식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이었다(마3:11, 요1:33, 막1:4~5). 그렇다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오순절 성령 강림 시대 이후의 새 경건방식은 무엇인가? 그것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는 것이었다(마3:11). 그러므로 예수님이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바로 성령세례를 받고 불세례를 받아야 비로소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었다. 예수님이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일종의 생베조각이며 새 포도주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구약의 바리새인의 경건방식으로 다 담을 수 없으며, 신약의 세례 요한의 경건방식으로도 다 담을 수 없는 것이다. 오직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의 새로운 경건방식으로만 담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회개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마4:17). 그러므로 금식이나 물세례를 가지고는 회개하여 천국에 들어가는데에 온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성령세례를 받고 불세례를 받을 때에라야 비로소 온전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후에 2가지를 제자들에게 부탁하셨다. 하나는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눅24:46). 그리고 이어서 또 하나는 회개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눅24:47~48). 그런데 교회는 이것들 가운데 하나를 잃어버렸다. 그것은 회개의 증인 사역이다.

  그런데 회개는 필연코 귀신들과 영적 전쟁을 수반하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회개하면 뱀들과 귀신들이 우리 몸으로부터 떠나가야 하기 때문에, 그들이 긴장하게 된다. 그래서 선제공격을 퍼붓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하면 뱀들과 귀신들이 해코지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자는 이러한 악의 영들과 불보듯 전쟁을 치러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자는 필연코 성령으로 힘입어야 한다.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행24:49). 이것이 바로 성령으로 세례받는 것이다(행1:8, 마3:11). 그런데 예수께서는 성도들에게 이것 외에 또 다른 세례가 하나 더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그것은 바로 불세례다(눅12: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려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눅12:49) 그렇다.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있을 때에도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불세례를 주고 싶어하셨다. 하지만 불이 붙지 않았다. 아직 성령세례도 받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단지 12사도들과 70명의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는 권세와 능력을 임시로 주셨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님의 가르침 곧 사람들로 하여금회개하여 천국에 들어가게 하려면, 모든 성도들은 이제 성령세례를 받아 능력으로 무장해야 하고, 불세례를 받아 불로서 악한 영들을 태워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차 회개를 하여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사역을 감당하려면 금식으로도 약하고, 물세례로도 약하다는 말씀하신 것이다. 사람을 회개시켜 천국에 들어가게 하려면 성령세례를 받아서 능력으로 무장해야 하고, 불세례를 받아서 성령의 무기로 무장해야 하는 것이다. 

 

7. 오늘날에 교회는 왜 능력과 성령의 무기들을 받지 못한 채 살고 있는가? 

  오늘날에 들어와 교회는 왜 교회는 능력도 없고 성령의 무기들도 장착하지 못한 채 귀신들에게 당하고 사는가? 그것은 교회가 부활의 증인으로는 살았지만 회개의 증인으로는 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처음에 예루살렘 교회만이 이러한 회개를 조금 실천했을 뿐이다. 왜냐하면 오순절 성령강림 때에 방언을 듣고 몰려온 15개국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베드로가 회개를 강하게 선포했기 때문이다. 그때 베드로는 회개해야 성령의 선물인 능력을 받을 수 있고 유쾌하게 되는 날도 온다고 선포했기 때문이다(행2:38, 3:19). 

행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행3: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그러나 언제부턴가 교회는 더이상 회개를 선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회개하지 않으니 영적으로 공격을 받지도 않았다. 그러니 성령의 능력을 구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귀신들과 뱀들과 싸우려고 하지 않으니 성령의 무기들로서 성령의 불이나 성령의 칼이나 예수님의 피로 무장할 필요도 없어졌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령의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고 성령의 무기들도 장착하지 못한채 살아온 것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예수님을 믿었으나 무기력한 삶을 살아왔고, 뱀들과 귀신들에 의해 온갖 종류의 저주들을 달고 살아온 것이다. 그런데 뱀들과 귀신들을 쫓아내는데 과연 금식만으로 가능한 일인가? 과연 물세례를 받는 것으로 가능한가? 그것은 도무지 불가능하다. 뱀들과 귀신들과 싸우려면 성도는 반드시 성령세례를 받아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하고, 불세례를 받고 성령의 불로 무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일이 초대교회처럼 일어나고 있다.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말이다. 회개의 천국복음 전파로 인하여 말이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8. 나오며

  사람이 진짜 깨끗해지고 거룩해지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금식하면 되는가? 물세례를 받아 세례교인이 되면 되는가? 아니다. 금식은 구약시대에 사용한 회개 방식의 하나였다. 그리고 물세례는 신약시대에 세례 요한이 사용한 회개 방식의 하나였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부터는 또 다른 회개의 방식이 필요하다. 그것은 성령세례요, 불세례다. 왜냐하면 성령의 세례받아 성령의 능력을 받지 아니하고, 불세례를 받아 성령의 불로 무장하지 않으면 뱀들과 귀신들과 싸울 수 없기 때문이다. 회개하면 이러한 이들과 필연적으로 전투를 벌여야 하는데, 성령의 능력과 성령의 무기들이 없이 어찌 영적 전투를 치를 수 있으며, 그러한 영적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회개를 외치고 귀신축사를 외치면 이단시한다. 성령의 불과 성령의 칼과 예수님의 보혈을 사용하여 뱀들과 귀신을 고문하여 쫓아낸다고 하면 이단시한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뱀들과 귀신들과 싸워야 할 성도들에게는 이제 새로운 경건방식이 정말 필요한 때가 되었다. 그것은 성령세례를 받고 불세례를 받아서,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하고, 전신갑주로 무장하는 것이다. 

 

2025년 04월 23일(수)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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