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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youtu.be/GDdE5DOFuvE
날짜 2013-07-17
본문말씀 갈라디아서 1:1~6:18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갈라디아서강해, 이신칭의, 복음과 다른 복음,율법과복음의 상관관계,몽학선생,하늘에있는예루살렘과땅에있는예루살렘의비교,리브가가하갈의예표,성령의소욕과육체의소욕

갈라디아서 강해(1강~7강) 시리즈입니다(2013.07.17~2013.09.11)

갈라디아서강해(01) 바울이 전한 진짜 복음(갈1:1-17)

갈라디아서강해(02) 이방인의 사도로 인증받은 바울(갈1:18-2:14)

갈라디아서강해(03) 이신득의의 원리와 아브라함의 예(갈2;15-3;14)

갈라디아서강해(04) 율법과 그리스도와의 관계(갈3:15-4:11)

갈라디아서강해(05) 종의 자녀와 자유인의 자녀(갈4:12-5:1)

갈라디아서강해(06)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성령의 열매들(갈5:2-26)

갈라디아서강해(07) 그리스도의 법과 자랑할 주의 십자가(갈6:1-18)

 

 

 
  날      짜 : 2013-07-17
  제      목 : 갈라디아서강해(01) 바울이 전한 진짜 복음(갈1;1-17)
     
 
   
▒ 본문말씀 ▒
  :: 갈1:1-17(신약 302면) ::

 

  '작은 로마서' 내지는 '기독교자유의 헌장'이라 불리는 갈라디아서, 우리는 이번주부터 갈라디아서를 통해 이신칭의 믿음을 통한 구원 그리고 율법의 목적과 그 한계 그리고 성령의 열매와 성령의 인도함받는 삶 등을 배우게 될 것이다.
  갈라디아서는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가 아니라 갈라디아 성의 여러 교회들에게 보낸 일종의 회람용 편지이다. 로마의 한 성인 갈라디아 성에는 더베, 루스드라, 이고니온, 비시디아안디옥과 같은 도시들이 위치해 있다. 바울의 1차전도여행으로 인해 그곳에 세워진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가 갈라디아서인 것이다.
  이 편지는 바울의 3차 전도여행 중에 갈라디아의 잘못된 상황을 듣고 바울이 보낸 일종의 변증편지이면서 경고편지이다. 왜냐하면 순수한 복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갈라디아 성도들이 미혹을 받아 갑자기 다른 복음으로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교회들을 미혹했던 자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그들은 유대교적 그리스도인들이었다. 다시 말해 혈통적으로는 유대인이면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예수만 믿는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할례도 받고 모세의 율법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이방인들이 구원받은 것에 무슨 할례가 필요하며 모세의 율법이 필요한가? 오직 예수님이면 족한 것이다. 이방인들이라 할지라도 예수님만 믿으면 율법이 규정해 놓고 있는 모든 저주에서 자유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할례를 행하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얼핏 듣고 있노라면 그것이 맞는 것이 같다. 하지만 이것은 복음을 변질시키는 아주 잘못된 누룩과 같은 것이다. 이것에 미혹되는 자는 과거의 저주 가운데로 회귀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무엇이 자신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적으로 구원관이 흔들린다. 당신의 구원은 확실한 것인가?

  뿐만 아니라 바울의 대적자들은 바울이 그 교회들을 잠시 빈 틈을 이용해서 바울을 끌어내리려고 안간힘 쓰고 있었다. 그 방법은 사도권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었다. 베드로나 요한과 같은 12제자들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 의해 직접적으로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므로 사도권이 확실하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육신을 입은 그리스도로부터 그러한 권한을 위임받지는 않았다. 그것을 문제삼은 것이다.
  그러자 사도바울은 구원관에서 흔들리고 있는 갈라디아 성도들을 바로잡고, 또한 자신이 받은 복음이 성육하신 그리스도가 아닌 부활하신 그리스도로부터 직접적으로 받은 것이라고 하는 것을 변증하기 위해 이 편지를 쓴 것이다. 바울의 사도권이 무너진다면 그가 전한 복음도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갈라디아교회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에서 속히 떠나 율법주의로 회귀한데 대해 이신득의의 진정성을 강조하면서, 사도성을 변증하기 위해 이 편지를 보낸 것이다. 그러므로 상당히 엄중한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사도바울이 전한 복음은 무엇일까? 그것은 갈1:4에 나와 있다. 그는 발신자와 수신자를 기록하면서 곧바로 그리스도에 대한 송영을 올린다.
"이는 그가 전한 복음의 핵심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계획의 성취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구해내기 위해)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몸)을 주셨으니(갈1:4)"

  이것을 믿으면 구원받는 것이다. 그가 이방인이건 유대인이건 상관없다. 모든 저주는 그리스도에 의해 끝나고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도 율법의 어떤 행위를 가지고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는 유대교적 그리스도인들의 가짜 복음은 설 곳이 없다. 그러나 복음의 기초를 정립하지 못했던 갈라디아의 여러교회들은 흔들리고 말았다.
  이제 우리가 알 것은 갈라디아서와 야고보서의 차이를 알아서 혼돈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가 이제 갓믿은 이방인 신자로 하여금 구원에 관한 바른 진리를 얻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진 것이라면, 야고보서는 이리 오랫동안 율법 안에서 살아오던 유대인들이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쓰여진 것이기 때문이다. 시작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면 족하다. 하지만 오랜 신앙생활을 해 온 자에게 성령이 그 사람과 함께한 열매들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고, 믿음에 따른 순종이 없는 자는 그가 진정 구원받은 자인지를 한 번 되돌아보아야 한다. 이것이 야고보서의 말씀이다. 행함으로 나타나지 아니하는 믿음을 믿음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당신은 갓 믿은 신자인가? 아니면 오래동안 신앙생활을 해 온 자인가? 그러면 갈라디아서를 통해 당신의 믿음의 기초를 확립하고, 야고보서를 통해 당신의 믿음을 견고케 하기를 빈다.

 

 

 
  날      짜 : 2013-07-24
  제      목 : 갈라디아서강해(02) 이방인의 사도로 인증받은 바울(갈1:18-2:14)
     
 
   
▒ 본문말씀 ▒
  :: 갈라디아서1:18-2:14(신약 303면) ::

 

  초대교회의 역사의 흐름에는 크게 양대 축이 있다. 그것은 유대인 그리스도인으로 구성된 예루살렘 교회의 복음전파사역과 이방인 그리스도인으로 구성된 안디옥 교회의 복음전파 사역이 그것이다. 그런데 예루살렘교회는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으로부터 사도로 파송을 받은 베드로 중심의 사역이었으며, 안디옥교회는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사도로 파송을 받은 바울 중심의 사역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울은 자신이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 자신이 해야 할 사역과 복음전파를 감당하는데, 오직 예수님의 계시에 따라 움직일 뿐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으로부터 파송을 받은 베드로로부터 어떤 재가나 인가를 받으려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주님으로부터 직접 파송을 받아 이방인과 임금들과 유대인들(중심은 이방인)에게 파송을 받은 사역자다. 그는 그때부터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서 전파했다. 그리고 그는 율법에서 그리스도에 대해서 무어라 기록되어있는지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다. 유대교 안에 갇혀 있을 때만해도 그는 그리스도에 대해 소경이었다. 눈을 뜨고 성경을 보았지만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가려져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목격한 이후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그가 생명처럼 귀중히 여기며 전했던 할례와 율법준수가 사실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그리고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필요한 것이었는데 그것을 몰랐던 것이다. 율법은 모든 사람을 죄인이라는 신분으로 하나되게 하여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인 줄을 그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던 바울은 이제는 모든 사역의 방향과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오직 예수님이 주되신 것과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해서 수년동안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교회는 각자 따로 복음을 전파했다. 바울은 자신이 회심한 후 3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예루살렘에 갔고 거기서 바나바의 중재로 인하여 베드로와 주의 동생 야고보를 만나보지만 그들로부터 자신의 사역에 대한 재가 내지는 허락을 받지는 않았다. 그리고 14년후에 바울은 또다시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되는데, 그때는 안디옥교회에서 보낸 부조금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기 위해 바나바와 이방인디도와 함께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한다.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과 이방인의 선교결과 등을 베드로와 요한과 주의 동생 야고보에 전한다. 그리고 양쪽에서 자기에게 맡겨진 복음전파사역에 대해 교류를 한다. 하지만 그 어떠한 유력한 자들도 바울이 복음에서 빗나갔다느니, 할례와 안식일준수와 율법준수를 경홀히 여기고 있다느니 하는 말을 듣지 않았다. 심지어 예루살렘교회에 데리고 간 이방인 디도에게도 할례를 받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와같은 사실은 복음전파사역의 대상은 다르지만 사역의 내용은 똑같았음을 말해주는 것이며, 바울도 예수님으로부터 파송받은 사역자인 것을 인증받았음을 의미한다.
  한데 문제가 발생했다. 주의 동생 야고보가 시키지도 아니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유대인 그리스도인(대부분 바리새파인으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이방인교회에 돌아다니며,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는 구원받지 못하며, 구원을 받는 조건은 예수님을 믿어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의 표징으로서 할례를 받고 안식일을 지키고 율법을 지키라고 하였던 것이다. 이와같은 사실은 안디옥교회와 같은 이방인교회의 교인들을 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으로는 구원받지 못하고 더불어 율법도 준수해야 한다는 논지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주장은 일파만파로 퍼저갔다.
  그러자 바울은 오직 죄인은 그가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상관없이 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 3차에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행15장에 기록된 예루살렘공의회다. 하지만 여기서 베드로와 주의 동생 야고보는 구원관에 있어서 바울과 다른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 회의는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교리를 확정하기에 이른다.
  그후 베드로가 그의 일행을 데리고 안디옥교회를 심방을 가게 된다. 이방인교회가 어떠한 상태에 있는가를 보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루살렘로부터 즉 주의 동생 야고보로부터 보냄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베드로가 이방인과 식탁교제에 참여한 것을 확인하러 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슬그머리 그 자리를 뜨게 된다. 이는 이방인 그리스도인이었던 안디옥교회에 큰 상처를 안겨 주었다. 정말 유대인들은 믿는 자라 할지라도 이방인들을 개취급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갖게 했기 때문이다. 그쯤에 이르자, 사도바울은 베드로를 불러 공개석상에서 책망을 한다. 그가 유대인이지만 이방인과 그동안 친교하여 왔는데, 어찌 이번에는 이방인으로 하여금 유대인처럼 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조심해야 한다. 복음의 본질을 바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열심히 일을 해 놓고도 책망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복음의 본질을 흐트러뜨리는 행동을 삼가야 하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어떠한가? 책망받을 자인가 아니면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자인가?

 

 

 
  날      짜 : 2013-08-07
  제      목 : 갈라디아서강해(03) 이신득의의 원리와 아브라함의 예(갈2;15-3;14)
     
 
   
▒ 본문말씀 ▒
  :: 갈2:15-3:14(신약 304면) ::

 

  우리같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을 안 지켜야 되는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안 지켜도 된다고 말하기도 그렇고 지켜야 한다고 말하기도 그렇다. 왜냐하면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면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을 사람이 없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요, 지키지 말라고 한다면 실제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율법 중에서 도덕법과 같은 경우에는 율법보다 더 강화된 산상수훈의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여기서 혼돈하지 말아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니, 현재 우상숭배를 하거나, 음행을 저질러도 용서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것은 틀린 생각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과거의 지은 모든 죄들을 용서받지만,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는 자백함으로 용서를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요일1:9). 그러므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해서 지금 짓고 있는 죄나 앞으로 지을 죄를 용서받았다고 믿는 것은 참된 믿음이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현재 구원받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칼빈이 잘못 가르쳐준 '성도의 견인' 교리 때문에 오늘날 대부분의 장로교인들은 자신이 지금도 죄를 짓고 있으면서 도 장차 자신이 구원받을 것임에는 변함없다고 믿고 있다. 만약 그가 그 순간 어떤 교통사고라도 생겨서 즉사하게 된다면 그는 과연 구원받을 수 있을까? 죄를 가지고 천국에 갈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말이다. 하지만 칼빈의 '성도의 견인 교리' 때문에 예수 믿은 자들은 현재도 죄를 짓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천국갈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우리는 사도바울이 말한 이신득의의 원리로서 믿음과 우리가 구원받을 자로서의 삶과 율법의 행위에 대해서 이제는 어느정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인간은 그가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상관없이 다 죄인임에 분명하며 그러한 자의 영혼은 지옥에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는 자는 죄의 댓가를 자신이 받지 않아도 된다. 다시 말해 죄인이지만 죄인이라 칭함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 이외의 다른 방법은 결코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문제는 갈라디아교회의 교인들처럼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지만 그러한 믿음만으로는 구원을 이루는데 뭔가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그 전에 자신들이 지켜왔던 율법의 행위들 즉 할례를 행하는 것, 안식일을 지키는 것, 음식을 가려먹는 것 등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무효화시키기 때문에 아주 위험한 생각이다. 그리스도인은 결단코 다시 유대교인으로 돌아가서는 아니 된다. 그런 사람은 구원에서 떨어질 것이다. 그리스도 이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이방인인 그리스도인의 더 큰 문제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과거의 죄를 사함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있지 않는 자가 많다는 것이다. 갈2:20을 보라. 그가 율법의 행위와 상관없이 오직 그리스도만을 믿어 구원받은 자라면 자기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고 계심을 아는 자다. 그리고 그 후로는 더 이상 육체를 따르지 않고 성령을 따르는 자다. 하지만 자기 안에 예수께서 살고 계신지 아니 계신지조차 알지 못하고, 육체의 방종한 삶을 계속 살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예수님을 믿고 있으니 천국에 들어갈 것이락고 믿는 자가 있다면 그는 당장 회개하여 자신의 죄를 고백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자기 인생의 주님으로 섬겨야 한다. 그것이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뤄가야하는 이방인 성도의 올바른 자세다. 

 

 

 
  날      짜 : 2013-08-14
  제      목 : 갈라디아서강해(04) 율법과 그리스도와의 관계(갈3;15-4;11)
     
 
   
▒ 본문말씀 ▒
  :: 갈라디아서 3:15-4:11(신약 305면) ::

 

  갈라디아성도들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믿기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러다보니 예수님을 믿고도 뭔가를 행해야 하지 않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 주변에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으로 결코 구원받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듣고보니 어찌 믿음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하고 의심하게 되었고 그들은 결국 예수님을 믿고도 할례도 행하고 안식일을 지키고 율법도 지키는 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갈라디아 성도들이 구원받은 이유, 그들이 성령받은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오직 듣고 믿음으로서였다. 하지만 그들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유혹으로 과거로 돌아가고 있었다. 바울은 안타까웠다. 율법의 규정을 지켜서 구원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왜 갈라디아성도들은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으려 하는 것일까? 그래서 바울은 유대교로 되돌아가고 있는 갈라디아서 교인들에게 편지를 썼다. 그것이 바로 갈라디아서이다.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율법을 지키는 것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차이를 분명하게 제시한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은 무엇일까? 그것은 모든 사람들을 죄아래에 가두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율법이 있기 전에도 사람들은 죄를 지었고 그 죄로 말미암아 지옥에 떨어질 운명에 처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운명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인류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신 것이다. 사람들은 율법을 통해서 자신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파악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결론은 절망적이었다.
  그렇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해주는 법이요, 사람이 범죄한 것 때문에 더해진 것이요, 모든 사람들을 죄아래 가두어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초등교사의 역할로 주어진 것이다. 율법은 이처럼 한시적으로 주어진 임시법이다. 그러므로 율법은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율법으로는 생명을 얻을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율법은 사람에게 생명을 줄 수 없다. 오히려 모든 인간을 죄인되게 만드는 법이요 사람을 죽이는 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착각했다. 율법을 지켜 자신이 구원받을 것처럼 생각했기 때문이다. 겉으로 그들은 율법말씀을 지키는 사람처럼 행세했으나 실은 회칠한 무덤이었다. 그들은 속으로는 온갖 죄를 짓고도 그들은 율법의 규정대로 했다고 거룩한 사람인체 살았던 것다. 주님은 그들의 가증스러운 모습에 신물이 나셨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주신 율법의 목적을 잘못 사용하고 있는 유대인들을 책망하고 그 어떤 인간도 율법말씀을 지켜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 그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예수께서 율법에서 말하는 모든 저주와 형벌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도록 하셨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말았다. 그래서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이방인에게로 옮겨가게 되었고 20세기초에 우리 한국땅에도 그 복음이 증거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을 초등교사 내지는 후견인과 청지기이 줄 알고 율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율법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지 못했을 것이다. 율법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이 흉악한 범법한 자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율법은 폐기해야 할 법이 아니라 늘 곁에 두고 참고해야 할 법이다.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오셨으니 율법을 통해 죄인됨을 깨닫고 예수님께 회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예수께서 보내주신 성령을 힘입어 죄와 싸워 이겨야 한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우리 스스로는 절대 죄를 이길 수가 없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5-6장에 가면 성령으로 그 바톤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날      짜 : 2013-08-21
  제      목 : 갈라디아서강해(05) 종의 자녀와 자유인의 자녀(갈4;12-5;1)
     
 
   
▒ 본문말씀 ▒
  :: 갈라디아서 4:12-5:1(신약 306면) ::

 

  갈라디아 성도들은 참으로 순수했던 것 같다. 율법주의적인 그리스도인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들은 자기들에게 복음을 전해준 바울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말라리아와같은 풍토병에 걸려서 치유하기 위해 요양하러 자기들의 도시에 온 바울을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환영했기 때문이요, 할 수만 있으면 자기들의 눈이라도 빼어주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변질되고 말았다. 사람이 구원받으려면 예수만 믿어서는 안된다는 가르침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거기에서 할례를 받고 안식일을 지키며 율법을 준수해야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율법주의적인 그리스도인들을 따라갔기 때문이다. 그냥 믿음으로서만 구원받는다는 것보다는 뭔가를 행하는 것 즉 자신의 육체에 할례를 행하고 율법규정같은 것을 지켜야 구원받는다는 것이 훨씬 더 그럴듯해 보였기 때문이리라. 더욱이 율법주의적인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을 중상모략했다. 바울을 근본도 없는 복음전도자라 매도했으며,, 그가 전한 복음은 잘못된 것이라고 떠들어댔기 때문이다. 그러자 갈라디아 교인들은 순식간에 율법주의적 그리스도인들에게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여러분이 바울이라면 그때 어떤 생각이 들었겠는가? 배신감이 느껴지지 아니했겠는가? 하지만 바울은 그들을 감정적으로 대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평정심을 유지한채 차분하게 그들을 대한다. 특히 바울은 아브라함의 두 처와 두 아들을 비유로 들어 율법아래에 있고자 하는 그리스도인과 복음 안에 있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의 차이점을 극명하게 설명한다(갈4:21-5:1). 율법 아래에 갇혀 있다가 저주와 심판을 받을 뻔 했는데,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니, 그후로는 복음 안에 거해야지 율법 아래로 다시 들어가서는 아니된다는 것이다.
  바울은 그것을 이런 비유를 들어 그 차이점을 설명했다. 아브라함에게 두 처가 있었다. 하나는 사라의 몸종이었지만 본처인 사라가 아들을 낳지 못하자 아브라함의 첩으로 들어간 하갈이다. 또 하나는 아브라함의 본처인 사라다.
  하지만 그 두 명의 처가 낳은 아들들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여종 하갈은 13년이나 먼저 아들을 낳았다. 그럼에에도 불구하고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장자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의 엄마와 더불어 그 집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결국 이스마엘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아라비아 사막의 주인이 되었을 뿐이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의 유업으로 약속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은 차자인 이삭의 유업이 되고 만다. 이스마엘와 이삭의 차이점은 그들의 어머니가 다르다는 것이다. 여기서 하갈은 율법을 대표하고, 사라는 약속에 근거한 복음을 대표한다. 그러므로 이스마엘은 비록 장자로 태어났긴 했으나 육체를 따라 났기 때문에 버림받게 되고, 이삭은 13년 뒤에 태어났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났기 때문에 그가 진정 장자가 된 것이다.

  그렇다. 유대인들은 비록 육체적, 혈통적으로 볼 때에는 분명 장자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계속해서 율법 아래 갇혀 있으려 한다면 그들은 결코 하나님의 나라에서 장자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다음에 즉시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지 않고 오히려 계속해서 율법에 머무르려 했다. 심지어 예수님을 믿은 자들도 율법을 계속 붙들고 있으려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도바울을 통하여 이미 지나간 율법을 붙들고 있는 것이 얼마나 그들에게 손해가 되는지 분명하게 말씀해주셨다.
  율법을 통해 자신이 죄인인 것을 발견했으면 그후부터는 빨리 율법의 온갖 저주를 없애줄 그리스도 예수를 붙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율법을 붙들고 있다가는 오히려 하나님의 계시와 뜻에 역행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율법으로 구원받을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며, 혹시 그들 가운데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해도 그들은 하늘나라에서 물려받은 기업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이여, 빨리 율법적 신앙에서 벗어나라. 아니 그리로 되돌아가려는 미혹된 가르침을 따르지 말라. 오직 그리스도만을 붙잡으라. 

 

 

 
  날      짜 : 2013-08-28
  제      목 : 갈라디아서강해(06)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성령의 열매들(갈5;2-26)
     
 
   
▒ 본문말씀 ▒
  :: 갈5:2-26(신약 307면) ::

 

  여러분은 혹시 이 성경구절을 들어보았는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2:8-9)" 그런데 이 구절 다음의 말씀이 무엇인지 아는가? 표준새번역본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왜냐하면)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면서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엡2:10)"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구원받은 목적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이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큰 일이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오직 믿음과 오직 은혜로 구원받은 것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이방인 그리스도인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다음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고 있음을 지적한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자라면 그후로는 율법과 죄로부터 빠져나온 자기 자신을 육체의 기회 즉 죄짓는 데에 사용하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해야 한다고 권면한다(갈5:13).
  아직도 많은 그리스도인들 중에는(나도 과거에 그랬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지을 미래의 죄까지도 용서해주셨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틀렸다. 예수의 피흘림은 우리가 앞으로 지을 미래의 죄까지도 용서해 줄만한 충분한 능력이 들어 있는 것만큼은 확실하다(히9:14). 하지만 만약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죄를 짓고도 그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 죄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모든 죄는 회개와 자백을 통해 용서가 되기 때문이다(요일1:9-10). 그러므로 우리의 과거의 죄는 오직 회개하고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용서받은 것처럼 우리의 미래의 죄도 여전히 회개해야 용서를 받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는 죄는 계속해서 남아 있으며 그 죄는 결국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이신득의의 복음을 들어 구원을 받은 자라면 이제는 당신의 옛사람이 지었던 죄를 다시 짓지 말아야 한다. 구원받은 자라면 죄를 끊어버려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죄와 멀리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엡2:10). 사랑으로 서로 섬기며 살아야 한다(갈5:13). 그러므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자유는 죄를 마음대로 지을 수 있는 자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사는 자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갈5:1,13).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서 죄짓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리하여 진정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선한 삶 즉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그 대답은 너무나 단순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연합된 영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죄짓지 않고 살려면 우리가 구원받을 때에 우리의 영과 하나가 된 엽합된 영을 따라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갈5:16-18). 그리고 날마다 매순간 연합된 영의 인도를 받아 살아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육체의 소욕을 이길 수가 있으며 율법 안에 다시 갇히지 않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승리하는 삶의 비밀인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연합된 성령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그분의 인도를 얼마나 받고 있는가? 이제 자신을 점검해볼 차례다.

 

 

 
  날      짜 : 2013-09-11
  제      목 : 갈라디아서강해(07) 그리스도의 법과 자랑할 주의 십자가(갈6;1-18)
     
 
   
▒ 본문말씀 ▒
  :: 갈라디아서 6:1-18(신약 308면) ::

 

  갈라디아서 마지막 강해시간이다. 로마서의 축소판이라 일컬어지는 갈라디아서에서 우리는 복음의 진수를 맛보게 된다. 특히 죄인이 어떻게 의롭게 되며 어떻게 성령을 받게 되는지 분명한 답변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직 믿음으로서다.
  하지만 갈라디아서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가? 만약 당신이 거기서 끝냈다면 당신은 갈라디아서 5-6장을 보지 못한 것이다. 갈라디아서 5-6장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께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하고 그 은혜를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 당신은 정말 구원받았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구원받은 자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여기고 있는가? 만약 구원받은 자가 구원받은 자답게 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 당신은 아는가? 이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우리는 갈라디아서를 통해 발견하게 된다.

  오늘은 그 마지막번째 시간으로서 이신득의로 얻은 자유의 올바른 사용과 더불어 할례주의자들의 진짜 내면을 폭로하면서 진정 그리스도인들이 붙들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말씀하는 사도바울의 마지막 권면을 살펴볼 것이다.
  첫째,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것일까? 우선 우리는 그 자유가 우리의 육체를 위해 사용하라고 준 것이 아님을 알고 있을 것이다. 믿음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율법으로부터 해방받았고 죄와 죽음과 사망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었다.
 
하지만 그것은 죄짓기 위해 풀어준 자유가 아니다. 사랑으로 섬김을 통해 서로 종노릇하라고 주신 자유인 것이다.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처럼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주신 자유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자유로 죄를 짓거나 자기자신을 자랑하는 데에 결단코 쓸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형제의 짐을 져주는 데에 써야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영적인 양식을 공급해주신 목회자에 대한 감사의 공급을 위해서도 써야 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받은 후에 받은 축복을 가지고 육체를 위해 심고 있다. 그러나 성도들이여 그러면 안 된다. 지옥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육체를 위해서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둔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은 구원받았는가? 그러면 성령의 음성을 따라서 그분의 음성을 좇아 행하라. 성령을 위하여 심음으로 끝내는 영생을 취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선한 빛이 온 누리에 비춰질 수 있도록 이웃에게 선행을 적극적으로 행해야 한다. 특히 믿는 가정에는 더더욱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은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다. 단지 구원받은 자가 마땅히 해야할 수고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둘째,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외에 다른 것을 끌어들여오거나 다른 것을 자랑해서는 아니된다. 그런 자자들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갈라디아 교회에 침투해 들어온 거짓 교사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것 말고도 그들이 구원받기 위해서 붙들어야 하는 것들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할례를 위시로 한 율법이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율법을 준수하지 않았다. 그렇제만 그들은 순수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이방인들에게 할례시행을 전파했다.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근본적인 유대인들로부터 핍박을 모면해보기 위한 수단이었고 자신이 몇 명이나 할례를 받게했는지를 자랑하기 위한 것이었다.
  성도여, 그리스도 이외의 자랑할 자랑거리가 있는가?. 그럼, 당신도 할례주의자와 비슷한 사람일 수 있다. 그런 자들은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끊어질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하고 그것만 붙들어야 산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아는가! 그리스도인은 지금 성령으로 새롭게 빚어진 새 사람이 되었느냐가 중요하고, 지금도 현재 그렇게 살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임을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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