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Extra Form
유투브 주소 https://youtu.be/9M_mXxNHbVc
날짜 2020-05-10
본문말씀 누가복음 15:25~32(신약 122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어버이주일,하나님아버지,돌아온탕자의비유,잃은아들의비유,첫째아들도탕자,공의의하나님,사랑의하나님,심판의하나님,용서의하나님,믿음과회개,천국과회개

오늘은 어버이주일로 돌아온 탕자와 그 이후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구약적인(율법적인) 방식에 따르면 누가 효자인가? 아마도 첫째 아들이 효자인 것 같다. 하지만 신약적인 방식에 따르면 오히려 둘째 아들이 더 효자인 것 같다. 그럼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은 어떻게 하여야 효자라 불릴 수 있는가?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대하시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으며, 두번째 방식에 따라 주님이 바라시는 효자상을 찾아낼 수 있다.

 

1. 들어가며

  오늘은 어버이주일이다. 이 세상의 어버이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자식을 낳고 기르면서 '희생'이라는 것을 기꺼이 감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버이날을 맞아 우리의 영적인 부모이신 저 유일하신 하나님께, 과연 구약시대에는 어떻게 당신의 백성들을 대하셨으며, 신약시대에는 과연 어떻게 당신의 자녀들을 대하고 계시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하여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대하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그래서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고 있는 지금 우리가 영적인 부모이신 하나님께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한 효도인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2. 잃은 아들의 비유는 누구에게 하는 비유인가?

  어느날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께 말씀을 들으려고 나아오자, 외식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그것을 보며 비난하면서 말하기를, 예수께서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고 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을 향해 어떤 비유로서, 누가 과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사람들인지를 말씀하신 것이 오늘의 말씀이다. 이때 예수께서는 잃었다가 되찾은 것에 대한 3가지 비유를 연거푸 말씀하셨다. 하나는 어떤 목자가 양 백마리 중 하나를 잃어버렸는데 다시 되찾아 기뻐한다는 비유다. 그리고 또 하나는 어떤 여인이 열 드라크마에서 하나를 잃어버렸는데 다시 되찾아 기뻐한다는 비유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어떤 아버지가 두 아들 중에 둘째 아들을 잃어버렸는데 그가 다시 돌아와 기뻐한다는 비유다. 그런데 세번째 비유는 잃어버렸는데 다시 돌아온 둘째 아들의 비유만으로 끝나지 않았고, 첫째 아들의 상태까지 이야기해주고 있다. 이는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첫째 아들과 같으니 듣고 회개하라는 뜻이다. 대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어떤 상태에 있었길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첫째 아들의 상태를 비유로 말씀하고 있는가?

 

3. 첫째 아들은 왜 아버지에게 화를 내었는가?

  첫째 아들은 그날도 밭에서 일하다가 늦게 집에 막 도착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풍류소리와 춤추는 소리가 들려왔다. 살펴보니 자기 아버지의 집이 아닌가? 종을 불러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집나간 동생이 건강하게 돌아오게 됨으로 인하여 아버지께서 소를 잡고 잔치를 벌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첫째 아들은 매우 불쾌하게 생각한 나머지 집에 들어가지를 않았다. 이에 아버지가 밖에까지 나와 아들더러 들어가자고 타일렀지만 아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맏아들은 아버지께 불평의 말을 토해 낸다. 자신이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위해 종처럼 열심히 섬겨왔고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적이 없었는데, 아버지는 염소새끼 한 마리라도 자신에게는 친구들과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해준 일이 없는데, 어째서 아버지의 재산을 허랑방탕하게 써버린 둘째를 위해서는 소를 잡고 잔치를 벌이느냐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첫째 아들의 이러한 불평은 부당한 것인가 아니면 합당한 것인가? 어찌 보면 합당하다고 여길만하기도 하다.

 

4. 첫째 아들은 왜 그토록 힘들게 아버지를 섬기고 있었던 것인가?

  그렇다면, 첫째 아들은 왜 그렇게 힘들게 아버지를 종처럼 섬기고 있었던 것인가? 정말 아버지를 위해서 그렇게 하고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인가? 그것은 아버지의 대답을 통해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그때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었다.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눅15:31)" 그렇다. 아버지의 마음 속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맏아들에게 주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것은 몇 년 전에 두 아들들에게 자신을 나눠주기는 했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아버지의 재산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또한 그 집에 종들이 몇 명인가? 이미 재산의 일부가 첫째 아들에게 넘어간 상태이지만, 아직까지 그 집의 모든 경영권은 아버지에게 있었다. 결국 우리는 여기서 첫째 아들이 그토록 열심히 일을 해야 했던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랬다. 아직 넘겨받지 못한 재산과 종들 그리고 경영권을 넘겨받기 위해 맏아들은 그날도 열심히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행여나 아버지의 마음에서 벗어나, 아버지로부터 그것을 넘겨받지 못할까봐 그날도 힘들게 밭에 나가 일을 하고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꾹 참고 열심히 일을 하고 있던 그에게 인내의 한계를 폭발케 하는 일이 발생해 버렸다. 동생이 돌아온 것 때문이었다. 동생의 돌아옴은 앞으로 자신이 받게 될 재산을 축내는 일이 되는 것이었고, 자신이 넘겨받을 재산을 못받을 수도 있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기에 맏아들은 그렇게 화를 참지 못하고 폭발해버렸던 것이다.

 

5. 아버지의 마음은 항상 어디에 있었으며, 누가 과연 진정한 효자인가?

  그렇지만 당시 아버지의 마음은 항상 둘째 아들에게 가 있었다.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둘째 아들이 몇 년전에 자신의 분깃을 달라고 하더니 그것을 팔아 돈을 바꾼 다음 먼 나라로 곧 아버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첫째 아들의 관심은 언제나 아버지의 재산과 경영권에만 있었다. 그러니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그것을 넘겨줄 때까지 조금만 참고기다리자면서 자신에게 훈계하고 또 훈계하며 종처럼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집으로 다시 돌아온 둘째 아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두 아들이 다 자기 집에서 사는 것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특히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둘째 아들은 아버지에게 큰 짐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과연 효자이고 누가 과연 불효자인가? 먼저 둘째 아들은 확실히 불효자였던 자였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자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살아서 그것도 건강한 몸으로 집으로 돌아와주었기 때문이다. 그간 집을 나가서 고생을 하다보니 자신이 무엇을 잘못 했는지 둘째아들은 잘 알고 있었고, 자기에 나아와 죄를 용서해달라고 빌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첫째 아들도 실제로는 불효자였다. 집을 떠나가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그리도 모르고 있었고, 오직 자기의 이익(실속)을 챙기기 위해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것일 뿐 결코 아버지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일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버지를 집밖에까지 나오게하는 불효를 저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6. 이 비유는 인간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에 어떤 변화를 말해주는 것인가?

  사실 이 비유는 신구약시대에 사람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에 커다란 변화가 있음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 아버지가 두 아들들을 대하는 방식을 달라졌다는 것을 은연 중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전까지 아버지는 구약시대 곧 율법시대의 방식으로 자신의 자식들을 대해왔었다. 즉 잘못한 자에게는 벌(징계와 형벌)을 주고 잘한 자에게는 상(칭찬과 보상)을 주는 방식을 취해 왔던 것이다. 그것은 곧 구약시대의 방식이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율법의 규정을 주고 그것에 순종하는 자에는 축복을,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저주를 주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방식이 결국 인간을 바꾸어놓지는 못했다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율법말씀을 듣고도 자신의 삶을 고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뭔가를 잘못했을 때에 책망하고 징계하고 고난을 허락하신 구약의 방법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적용했을 때,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그것은 2가지 반응이었다. 하나는, 율법조항에 걸리지만 않게금 행동하는 아주 가증스러운 방식을 취했다는 것이다. 율법조항에만 걸리지 않도록 행동했으니 겉으로 보기에는 율법을 잘 준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많이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속으로는 많은 죄를 짓고 있었다. 주님은 그것을 외식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당시의 첫째 아들의 모습일테고, 또한 종교지도자들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모습이 아니었던가! 또 하나는, 자신이 잘못해서 징계를 받는다고 할지라도 겉으로 회개하는 시늉만 할 뿐 결코 회개에 합당한 행동을 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율법말씀에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징계로서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을 내려보냈지만 그것을 겪으면서도 이스라엘은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대하시는 방법을 전환하기로 하신 것이다. 그것은 징계와 채찍의 방법이 아닌, 사랑과 용서의 방법이었다. 인간이 잘못하여 죄를 범하더라도 그 죄값을 하나님께서 대신 받으시고 주님께서는 인류에게 "너는 내가 너를 위해 행하는 속죄의 사건에 감사하면서 회개하기만 하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율법의 방식은 사람을 외식하는 자로 만들 뿐이지 진정 변화된 사람으로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제는 인간에게 더이상 죄값을 묻지 않겠다고 하신 것이다. 또한 이번 변화된 새로운 방식으로 대하는 하나님을 잠시 잠깐 이용해먹으려고 애쓰지 말고 언제까지 주님만 믿고 따라오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그리고 혹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면 회개하고 주님께 나오기만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죄를 용서해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첫째 아들은 당시 위태위태한 상태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몇 년을 참아왔지만 그날 분노를 폭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둘째 아들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고 있었다. 왜냐하면 자신의 죄를 인정할 줄 알았고 아버지에게 죄용서를 빌려고 아버지의 집으로 되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세리와 죄인들은 용납하고 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기뻐했지만,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7. 나오며 - 오늘날은 무엇이 진정 효도인가?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영적인 부모인 하나님에게 어떻게 해 드리는 것이 진정한 효도인가? 그것은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나가지 않는 것이 효도요, 떨어져나갔더라도 회개하고 돌아와 아버지의 집에 함께 있는 것이 효도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효도인 것이다. 주께서는 왜 이 비유말씀을 하셨는가? 그것은 현재 아버지의 집에 있으나 결국에는 떨어져나갈 수밖에 없는 첫째 아들의 상태를 보고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비록 아버지의 곁을 떠나 허랑방탕한 삶을 살았지만 돌이켜 회개하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온 탕자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죄값은 당신이 피조물이 되심으로 담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무슨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가는 것이 진정한 효도인 것이다. 아버지의 집에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이 진정한 효도인 것이다. 그렇다. 이 세상에 살 때에 부패한 본성을 가진 우리 인간이 어찌 죄짓지 않고 살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죄지었다고 하나님을 떠나가게 되면 그것이 불효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다시 돌이켜 회개하고 돌아와 아버지의 품에 안기는 것이 효도인 것이다. 왜냐하면 맨처음에 하나님의 나라를 인간에게 물려주려고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이고,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찌하든지 우리가 회개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내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 그것이 가장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효도라는 것을 명심하자.

 

2020년 05월 10일(주일)

정병진목사

 

 

 

 

 

 


  1. 하나님 우리 아버지(하나님은 대체 어떤 자의 아버지인가?)(눅15:25~32)_2020-05-10(주일)

    오늘은 어버이주일로 돌아온 탕자와 그 이후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구약적인(율법적인) 방식에 따르면 누가 효자인가? 아마도 첫째 아들이 효자인 것 같다. 하지만 신약적인 방식에 따르면 오히려 둘째 아들이 더 효자인 것 같다. 그럼 오늘날 예수 ...
    Date2020.05.10 By갈렙 Views364
    Read More
  2. 과연 우리 자녀들에게 어떤 나라를 물려줄 것인가?(갈5:1)_2020-05-03(주일)

    오늘은 어린이주일이다. 맑고 밝게 자라야할 우리 어린이들에게 기성세대들은 무엇을 보여주고 물려주어야 할까? 한편으로는 기독교인으로서 할 일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국민으로서 할 일을 다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Date2020.05.03 By갈렙 Views374
    Read More
  3.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는 말의 진짜 의미는?(마5:13~16)[1부예배]_2020-04-26(주일)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그것은 성도가 세상에서 착한 행실의 모범을 보영여야 하고, 부패하고 더러운 세상을 깨끗하게 하는 사명을 맡은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말씀은 그런 뜻이 결...
    Date2020.04.26 By갈렙 Views592
    Read More
  4. 코로나는 과연 하나님의 징계였나?(히12:8~11)_2020-04-19(주일)

    중국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리나라를 통과하여 유럽과 미국 등 전세계를 휩쓸고 있다. 코로나 사태는 과연 전세계적인 전염병의 창궐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인가? 이것을 하나님의 징계라고 한다면 그 근거는 무엇이며, 이 징계가 ...
    Date2020.04.19 By갈렙 Views486
    Read More
  5. 부활에 대한 소망과 오해(고전15:19~20)_2020-04-12(주일)

    성도들에게 왜 부활신앙이 중요한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부활신앙은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야 할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알려준다. 그리고 인류의 죄가 어떻게 용서되었는지를 알려주고, 부활이후에 받...
    Date2020.04.12 By갈렙 Views388
    Read More
  6. 고의로 죄를 범하면 정말 맹렬한 불에 던져지는가?(히10:23~29)_2020-04-05(주일)

    우리에겐 성경 66권이 주어져 있다. 그러다보니 어떤 성경들은 서로 충동하는 듯한 모습도 보인다. 그래서 어떤 것은 받아들이는데 어떤 것은 자신의 관심밖에 두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는 읽는데, 히브리서와 야고보서는 잘 안 읽...
    Date2020.04.05 By갈렙 Views632
    Read More
  7. 구원탈락에 관한 히브리서의 세 번째 경고(히6:4~12)_2020-03-29(주일)

    과연 그리스도인들도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는가? 히브리서 6:4~6의 말씀을 가지고, 그것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고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의 주장을 따라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데, 그때에는 성경을 따라가기를 바란다. ...
    Date2020.03.29 By갈렙 Views533
    Read More
  8.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하늘의 대제사장이신 예수그리스도(히7:11~17)_2020-03-22(주일)

    1. 들어가며 우리는 지금 인류역사의 끝자락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성경에 기록된 말세의 징조들로서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신종바이러스와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19바이러스는 전염성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
    Date2020.03.22 By갈렙 Views575
    Read More
  9. 예수께서는 이 땅의 참 성막의 대제사장이셨다(히8:1~6)_2020-03-15(주일)

    예수께서는 누구신가? 히브리서는 예표론적성경해석방법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예수님은 아론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도 아니었다. 그리고 성전에서 죽으신 것도 아니었다. 그분은 단지 골고다언덕의 십자가에서 버려진 채 죽임을 당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
    Date2020.03.15 By갈렙 Views366
    Read More
  10. 모형론적(예표론적) 성경해석, 왜 필요한가?(고전15:42~49)_2020-03-08(주일)

    신천지와 하나님의교회(안상홍증인회)가 사용하는 성경해석방법은 사실 초기교부 오리겐이 썼던 알레고리성경해석법이었다. 이 해석방법은 실로 엄청났다. 헬라철학에 빠진 자들을 성경으로 돌아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방법으로 성경을 해석한 사...
    Date2020.03.08 By갈렙 Views534
    Read More
  11. 왜 사람들은 신천지의 성경해석에 쉽게 빠져버릴까?(마13:34~36)_2020-03-01(주일)

    왜 사람들은 신천지가 어느정도는 이단일 줄 알고 있었을텐데, 그만 거기에 빠져버리는 것인가? 대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길래 신천지에 들어가 한 6개월쯤에서 1년정도 공부하면 완전히 넋이 나간 사람처럼 되어버리는가? 그것은 그들이 사용하는 하나...
    Date2020.03.01 By갈렙 Views478
    Read More
  12. 기독교로 위장한 신천지의 미혹에 주의하라(막13:21~23)_2020-02-23(주일)

    대구와 청도에서 발생한 코로나 바이러스 집단적인 발병으로 인해 나라가 뒤숭숭하다. 모두가 다 바이러스의 감염 때문에 밖에 출입하기도 어렵고 공공장소에 가기도 어려워지고 있다. 오늘 대구기독교연합회에서는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2주동안 공예배를 드리...
    Date2020.02.23 By갈렙 Views614
    Read More
  13. 기도하는 것이 불법이 되는 세상이 온다면?(단6:10)_2020-02-16(주일)

    1. 들어가며 성경에 등장하는 이야기들 가운데 믿을 수 없을 것 같은 기적적인 이야기들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구약성경에서는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잠금으로 문둥병에서 나았다는 나아만장군의 이야기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물고기 뱃...
    Date2020.02.16 By갈렙 Views401
    Read More
  14. 중국이 변화되기 위한 두번째 조건(단3:24~30)_2020-02-09(주일)

    우한폐렴, 이 전염병은 왜 지금 저 중국에서 발생해야 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해야 이 전염병은 수그러들 수 있을까? 방역하고 구금조치하고 폐쇄조치하면 확산일로에는 이 전염병을 과연 중단시킬 수 있는가? 중국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
    Date2020.02.09 By갈렙 Views421
    Read More
  15. 우한 폐렴 같은 전염병을 그치게 하려면?(렘34:17)_2020-02-02(주일)

    1. 들어가며 지난 2019년 12월 10일 중국에서 발생한 우한폐렴(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은 현재 전 세계를 전염병의 공포에 빠뜨리고 있다. 이제는 중국인들에 대한 입국 금지 조치를 실시한 나라가 12개국이나 되며, 아프리카에서만 발견되지 않았을 뿐,...
    Date2020.02.02 By갈렙 Views582
    Read More
  16. 그리스도인들에게 설날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신16:1~15)_2020-01-26(주일)

    1. 들어가며 우리나라에서는 정월 초하루를 부르는 특별한 낱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이름하여 "설날"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정월 초하루 날을 "설날"이라고 불러왔을까?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명절을 지키는 모습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명절을 지키는...
    Date2020.01.26 By갈렙 Views4639
    Read More
  17. 목회자와 성도는 어떻게 협력해야 하는가?(벧전2:5,9)_2020-01-19(주일)

    교회 안에는 목회자와 일반 성도들이 있다. 이중에서 목회자만이 제사장인가? 아니면 모든 성도가 다 제사장인가? 그런데 사도베드로는 모든 성도들은 다 제사장적인 직무를 수행하는 자인 것을 분명하게 언급했다(벧전2:5,9). 그런데 이 말은 과연 모든 성도...
    Date2020.01.19 By갈렙 Views421
    Read More
  18. 전 세계 성도를 대상으로 말씀을 전하는 주의 종과 교회(골4:12~17)_2020-01-12(주일)

    소아시아에 위치한 골로새교회는 바울이 개척한 교회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교회에서 지도자로 섬기고 있는 아킵보도 자신이 세운 목회자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바울은 그 교회와 지도자에게 편지를 보내 권면을 하고 명령을 하고 있다. 바울에게는 과연 그렇...
    Date2020.01.12 By갈렙 Views418
    Read More
  19. 누가 하나님의 동역자인가?(고전3:6~9)_2020-01-05(주일)

    누가 하나님의 동역자가 될 수 있는가? 점도 없고 티도 없는 자라야 하는 것인가? 그런데 사도바울은 동역자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썼다. 그것은 성품상, 기질상 온전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오늘도 분투하고 있는 사람...
    Date2020.01.05 By갈렙 Views1016
    Read More
  20. [송구영신예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협력(롬16:3)_2019-12-31(화)

    1. 들어가며 어떤 개인이나 단체 및 국가가 성장과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지만 단순화시킬 수 있다면 어쩌면 간단할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은 남들보다 더 잘하는 것을 월등히 잘하면 된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잘 하는 것이...
    Date2020.01.02 By갈렙 Views293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8 9 10 11 12 13 14 15 16 17 ... 30 Next
/ 30
방문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