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천국에서 누릴 영광의 크기와 내가 이 지상에서 누릴 축복의 크기는 어떻게 결정되는가? 예수께서는 어느 날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먼저 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제자들의 필요를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는 어떻게 할 때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는가? 가만히 있어도 은혜로 주어지는 것인가? 하나님께 달라고 기도하는 자가 얻게 되는 것인가? 그러나 이 둘도 아니다. 그럼 무엇이란 말인가?
1. 들어가며
왜 우리는 회개하고 있는가? 아니 왜 우리는 회개를 해야만 하는 것인가? 우리가 회개하는 목적을 정리한다면 그것은 2가지다. 하나는 회개를 함으로 지은 죄들을 사함받아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마4:17, 눅24:47). 그런데 회개의 목적은 이것만이 아니다. 또 하나가 더 있다. 그것은 회개를 함으로 저주로부터 벗어나고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누리는 것이다. 성경 요한일서 1:9 말씀에 따르면, 사람이 회개하면 2가지 결과가 나타난다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는 지은 죄들을 용서받을 수 있으며, 또 하나는 우리가 모든 불의함으로부터 깨끗하게 된다고 하셨다. 그런데 전자는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후자는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전자는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우리 눈으로 확인하기란 매우 어렵다. 자신의 영이 천국에 들어가서 하나님 보좌 앞에 있는 행위책을 떠들어 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자는 조금 가능하다. 왜냐하면 불의함으로부터 깨끗하게 된다는 것은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더러운 영인 악한 영들이 내쫓겨남으로 우리가 깨끗해지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악한 영들이 우리 안과 밖에 있었을 때에 나타나는 증상이 떠났을 때, 우리는 우리의 죄가 하늘에서 용서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악한 영들이 떠나가는 회개를 한다는 것은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악한 영들이 잘 떠나가는 회개를 해야 한다. 즉 하늘에서 내 죄를 용서받는 회개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어떻게 하면 악한 영들이 잘 떠나가는 회개를 할 수 있는지 그리고 회개할 때에도 악한 영들이 떠나가는 회개의 방법을 알고 회개한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그리고 회개하는 자에게는 어떤 축복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왜 조상들의 죄를 대신 회개하면 그의 후손들이 온갖 저주로부터 벗어나게 되는가?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는데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인가? 그건 아닐 수 있다.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려면 예수께서 누구시며 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는지 그리고 왜 그분이 십자가에 죽으셨는지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예수님을 알지 못한 채 배척해 왔음과 그동안 죄를 지어왔던 죄들을 회개하면 그는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지 않았다고 해서 지옥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우리 조상들이 지은 우상 숭배의 죄를 회개해야 하는가? 그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건 첫째로, 우리 조상들이 지은 죄를 그 누구도 회개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죄는 그냥 놔두면 안 되는 것이다. 왜 그런가? 둘째로, 우리가 회개하지 않은 채 우상 숭배의 죄들을 그대로 그냥 놔두면, 그냥 그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죄값을 후손 3~4대가 치르게 되기 때문이다(출20:5). 그럴 때면 우리의 후손들에게 악한 영들로 인하여 온갖 종류의 저주와 질병, 사건 사고들이 일어나게 되고, 자녀들에게 망하는 일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 회개하는 우상 숭배의 죄 회개는 천국가기 위한 회개가 아니라, 자손들이 저주의 늪에서 빠져나오고 그리고 또한 위로부터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를 받기 위한 회개인 것이다.
3.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는 '구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찾아야' 하는 것일까?
우리말 성경으로 마태복음 6:33의 말씀을 보면 이렇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구하라'는 단어다. 왜냐하면 이 단어를 한글로 보면 그 의미가 '요청하라'는 뜻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이 단어는 '요구하다, 요청하다'라는 뜻의 '아이테오'라는 단어가 아니다. 그것은 '찾다'라는 뜻의 '제테오'라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는 우리가 하나님께 요청하고 요구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말로 '구하다'라는 단어는 사실 '요청하다'는 뜻도 가지고 있고, 더불어 '찾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말 성경의 번역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헬라어는 '요청하다'라는 단어와 '찾다'라는 단어가 전혀 다른 단어로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본문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7:7에 보면,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는 말씀이 나온다. 여기에서 '구하라'는 단어는 정확히 '아이테오'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고, '찾으라'는 단어는 '제테오'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말로서 '구하다'는 단어가 나오면, 그 단어가 '요구하라'는 뜻인지, '찾으라'는 뜻인지를 구별해야 한다. 그럼, 마태복음 6:33에 나오는 '구하다'라는 단어는 어떤 단어인가? 그것은 '제테오(찾으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본문을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찾으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특히 이 단어는 현재 명령형으로 쓰였기 때문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하나님의) 나라(왕국)과 그의 의를 [계속해서] 찾고 있어라"는 뜻인 것을 알 수 있다.
4.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요]구하라'고 말씀하지 않고, '찾으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어떤 의미인가?
우리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는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그것은 찾아야 할 대상으로 말씀하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 요청해야 할 대상으로 말씀하신 것인가? 그것은 전자다. 이것은 과연 무엇을 말해 주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얻기 위해서는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사실 우리가 주님께 무엇인가를 요청하는 것은 우리가 주님께 기도하여 주님으로부터 받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다 말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는 오직 그것을 찾고자 하는 자만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예수님을 믿고 있으면서 짓고 있는 죄를 회개하고 있다면 그는 아마도 천국에는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천국이 어떤 것인지를 그것을 찾아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분의 의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가? 그것은 우리가 천국과 그분의 의는 찾고 구하고 두드리지 않으면 안 열리기 때문이다. 한편 '찾으라'는 말씀은 말이 아니다. 행동이다. 예수께서는 누가복음 11장에서 빵을 구하는 친구의 비유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A라는 친구에게 어느 날 한밤중에 친구B가 찾아왔다. 그러자 A는 그 순간 어떤 결정을 해야 했다. B라는 친구를 그냥 굶길 것인가 아니면 좀 민폐를 끼치더라도 이웃 친구를 찾아가서 빵을 구해올 것인가를 말이다. 그때 A라는 친구는 이웃 친구들에게 가서 빵을 구해 오기로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빵을 찾아 나선다. 그렇지만 어느 집에서 얼마만큼의 빵을 구할 수 있을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분명하다. 만약 그날 그가 빵을 구하러 찾아 나서지 않았다면 그는 빵을 구해올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마침 C라는 이웃 친구가 있었다. 그에게는 여분의 빵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귀찮아서 A라는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도 강청을 하기 때문에, C라는 친구는 A가 자기의 친구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않으려 했지만, 하도 강청을 하니 들어주겠노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발견하는 것도 다 이와 같다는 것이다. 그것을 찾아 나서는 자가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인 것이다. 고로 예수님을 믿는 자라도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지 않는 자는 결코 그것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5. 성도가 이 세상에 있을 때 반드시 찾고 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성도가 이 세상에 있을 때에 가장 힘써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장차 우리가 들어가서 살게 될 천국을 여기서 잘 준비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방인들 곧 하나님이 없이 사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의 육신을 위해 아주 열심히 살아간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위해 오늘도 분주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오늘도 그것을 얻기 위해 그것을 지금도 부지런히 찾고 또 찾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발견하면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투자한다. 그러다가 망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이들과는 달리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는 우리도 그러한 필요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신다고 하셨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 찾고 구해야 할 것은 그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과 그분의 의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우리가 장차 들어가야 할 다음 세상은 어떤 곳인가? 우리 주님께서는 그것을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곳에 가서 살기 위해서는 그분의 의로운 기준이 무엇인지를 발견하여 그대로 살아야 한다고도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들은 어떻게 할 때 천국을 발견할 수 있고, 어떻게 할 때 그분의 의로운 요구를 충족시켜 드릴 수가 있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우리 모두가 천국을 사모하는 온전한 믿음이 있어야 하고,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주님의 의로운 요구를 충족시켜 주는 회개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이라는 말만 듣고 그것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천국이란 어떤 곳인지, 또한 과연 그곳에는 누가 들어가게 되는지, 그곳에서 갖는 신분은 대체 어떤 것이며, 누가 어떤 종류의 면류관을 얻게 되는지,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가 영원히 살 집은 어떻게 생겼으며 어떻게 이 땅에서 그것을 장만할 수 있는 것인지를 찾고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얻도록 노력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가만히 있으면 결코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분의 의로운 요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의롭게 될 수 있는 것인지, 죄많은 우리들이 어떻게 하면 깨끗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 특히 우리가 어떻게 할 때 우리에게 역사하고 있는 더러운 영들을 떠나보낼 수 있는지를 우리는 찾고 구해야 한다. 그래야 어떻게 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과연 천국의 비밀을 얼마나 발견한 채 있으며, 그분의 의로운 요구에 얼마나 합당한 생활을 하고 있는가?
6. 천국과 그분의 의는 어떻게 해야 찾을 수가 있고 또한 발견할 수가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천국의 비밀들과 그분의 의로운 요구들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는가? 그것은 아마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그것을 찾아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있으면 그것이 결코 발견되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그것을 내 것으로 얻기 위해서는 어떤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노력과 수고 혹은 댓가를 지불하지 않았는데도 그것이 얻어지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셋째, 그리고 그곳은 우리가 발견했다고 해서 그것이 다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댓가를 지불한 분량만큼 우리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해 우리 주님께서 다음과 같은 천국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 그것은 '좋은 진주 장수의 비유'다(마13:45~46). 주님은 천국은 누가 발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어떤 진주 장수를 말씀해 주셨다. 그는 좋은 진주들을 구하고(헬라어로는, '찾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마침내 그가 값비싼 좋은 진주 한 개를 발견한다. 그런데 그가 그날 발견한 진주는 천국에 관한 비밀 중에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찾아낸 그 진주를 얻기 위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처분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그 진주 하나를 산다. 그렇다면, 묻겠다. 왜 이 진주 장수는 그 비싼 진주를 사게 되었는가? 그것은 그가 그 진주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진주가 그만한 값을 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아낌없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팔아서 그것을 산 것이다. 천국은 바로 이런 자들의 것이다. 댓가를 지불하지도 않은 채 천국의 놀라운 영광스러운 자리와 지위는 결코 얻을 수가 없다. 또한 회개도 마찬가지다. 회개를 어떻게 해야 악한 영들이 잘 나가는지를 알려 주는 방법을 듣고도 그 가치를 모르는 자는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회개가 어렵고 힘들게 보이면 회개를 안 하고 스스로 포기해 버린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회개 없이는 저주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회개 없이는 깨끗한 그릇이 되지 못하는데, 그는 그 일에 도전하려고 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그를 쓰시려고 해도 깨끗하지 않은 자를 하나님은 결코 쓰실 수가 없으며, 그를 혹 쓴다고 해도 그를 계속해서 쓰실 수가 없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회개하는 시간을 들이지도 않았는데 어찌 악한 영이 떠나가겠는가? 악한 영들에게는 많이 바쳤으면서도 하나님께서는 회개 헌금 한 번 드리지 않는 자가 어찌 더 자신이 깨끗하기를 바라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듣고 있는 천국과 회개에 관한 영적인 비밀들을 정말 가슴 깊이 새기며 그것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7. 천국과 그의 의를 발견했으면 누구나 그것을 다 얻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천국과 그분의 의로운 요구가 무엇인지를 찾고 찾아서 발견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내가 발견한 천국과 그의 의는 그냥 내가 다 가질 수가 있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먼저는 그것이 귀하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다음 과정이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서 좋은 진주 하나를 발견했다고 할지라도, 내 재산이 너무나 아까워 그 진주를 사지 않는다면 그 진주는 내 것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국의 비밀과 회개의 비밀을 발견하는 것도 참으로 소중한 일이지만, 어떤 댓가를 치러서라도 그것을 사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결국 그런 자가 천국에서 누릴 영광이 클 것이며, 회개를 더 많이 하여 깨끗한 그릇이 된 자가 하나님께 더 크게 쓰임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과연 얼마만큼의 댓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인가? 그것은 이렇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믿음의 분량만큼 그 댓가를 지불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정말 가치있고 소중하게 생각되는 사람은 더 많은 것을 지불해서라도 그렇게 살 것이다. 하지만 믿음의 분량이 작은 사람은 작은 분량만큼만 살 것이다. 이때 그 사람의 믿음의 분량은 조상들이 물려준 것과 아울러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낼 때에 그에게 주신 그릇의 크기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그러므로 모두가 다 천국과 그분의 의를 다 똑같이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아 두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얻기 위해 자신의 것을 기꺼이 지불하는 자만이 그것을 살 수가 있는 것이다. 지금 이 말씀을 내가 듣고 있다면 그는 이미 천국의 많은 복이 예비되어 있을 것이며, 이 땅에서도 더 크게 쓰임받을 수 있을 것이다.
8. 나오며
열심히 찾지 않았는데 그가 천국의 비밀을 깨달을 리가 없으며, 열심히 찾지 않았는데도 회개의 비밀을 터득할 리가 없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발견했어도 어떤 댓가를 치르지도 않았는데 그가 천국의 풍성함을 누릴 수 없으며, 그것을 발견했다고 할지라도 자신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댓가를 지불하지도 않았는데도 그가 회개의 축복을 받을 수는 없다. 구원이라는 것은 사실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지만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릴 축복의 크기나 천국에서의 상급은 그냥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가치있게 여기고 소중하게 여겼느냐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가치 있게 여기는 자는 정말 어떤 댓가를 지불해서라도 그것을 얻으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별로 가치있다고 여기지 못한 자는 결코 그 진주를 사지 않을 것이다. 다른 싼 진주만을 찾아다닐 것이다. 우리는 과연 지금 어떠한 사람인가? 만약 지금 우리가 목사님의 말씀을 통하여 회개하는 방법을 들었지만 어찌 그 많은 시간을 낼 수 있겠느냐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더 깨끗한 그릇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리하면 주님으로부터 정말 귀한 그릇으로 쓰임받지도 못할 것이다. 주님은 참으로 공평하신 분이시다. 그런데 이 메시지를 듣는 성도들이라면 그는 기뻐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메시지를 듣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도전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주님께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가 천국과 그분의 의를 어떤 댓가를 지불해서라도 얻고자 하는 자에게 이방인들이 구하고 있는 모든 것들 곧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과 같은 이 생에서의 필요를 가득 채워 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마6:33). 놀라운 축복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할렐루야!
2022년 02월 20일(주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