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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cV92MY4BqSc
날짜 2022-07-17
본문말씀 마태복음 22:1~10(신약 36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하나님이기뻐하시는교회,천국혼인잔치참여,구원의최종완성,바른구원론,한번구원영원한구원,유대인의혼인잔치,천국혼인잔치,혼인잔치참여조건,칼빈,성도의견인,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2022-07-17(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이 시대에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려면(마22:1~10)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cV92MY4BqSc  [혹은 https://tv.naver.com/v/28025134 ]

1. 들어가며

  이 시대에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는 과연 어떤 교회일까? 그것은 뭐니뭐니해도 천국의 혼인 잔치에 더 많이 참여하는 사람들로 준비시켜 주는 교회가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 아무리 즐겁고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결국 천국의 혼인 잔치에 성도들이 들어가지 못하는 교회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러한 교회는 주님이 기뻐하는 교회가 아니라 인간이 기뻐하는 교회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말씀은 주님께서 직접적으로 가르쳐 준 말씀에 나온다(눅14:15). 그러므로 천국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신부들을 많이 산출하는 교회가 진짜 교회인 것을 잊지 말라. 그렇다면 과연 누가 천국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될까? 그건 만세 전부터 예정된 자들이 들어가게 되는가? 아니면 누구든지 그 잔치 소식을 들었을 때에 그것을 믿고 받아들여 그 초청에 응하는 자가 들어가게 되는가? 만약 천국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것이 만세 전에 있었던 예정을 따라 되는 것이라면 그중에 한 사람도 탈락되는 사람은 없는 것일까? 혹시 그 잔치 안으로 초청을 받았으나 그만 세상일이 좋아서 또한 천국 잔치가 싫어서 거부한 자라도 그 사람이 예정된 채 있는 자라면 다 들어가게 되는가? 과연 천국 혼인 잔치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속한 영역이어서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시는가 아니면 인간의 자유 의지가 어느 정도 개입되는 성질의 것인가? 

 

2. 마태복음 22장 1~14절의 비유 말씀은 어떤 말씀인가?

  마태복음 22장 1~14절의 말씀은 천국의 혼인 잔치에 초청함을 받은 자는 많지만 실제로 거기에 참여하는 자는 소수 뿐일 것이라는 교훈에 관한 비유 말씀이다. 이 말씀은 2가지 비유이다. 앞의 비유(1~10절)는 혼인 잔치에 이미 초청을 받은 자가 실제 당일에는 초청을 거부하여 참여하지 못하게 되지만 오히려 원래 초청의 대상에는 없었으나 이방인이 오히려 천국의 혼인 잔치의 들어가게 되므로 잔치 자리가 가득하게 되었다는 비유 말씀이다. 그리고 뒤의 비유(11~14절)는 천국 혼인 잔치에 참여한 자들 중에 예복을 입지 않고 있는 한 사람이 주인에게 발각되어 수족이 결박된 채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게 된다는 비유 말씀이다. 

  그런데 사실 혼인 잔치에 관한 비유 말씀들(1~14절)은 앞에서부터 시작된 비유 말씀들의 세 번째 부분에 해당한다. 주님께서는 이미 유대인들 특히 유대 종교지도자들과의 논쟁 가운데서 2개의 비유를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중 첫 번째 비유는 "두 아들의 비유"(마21:28~32)로서,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때 아버지가 아들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들아,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그러자 첫째 아들은 간다고 해놓고서는 가지 않았지만, 둘째 아들은 가기 싫다고 해놓고서는 뉘우치고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러자 주님께서 그들에게 묻는다. "누가 과연 아버지의 뜻대로 행했느냐?" 그러자 그들이 말한다. "둘째 아들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세리와 창녀들이 그들들(유대 종교지도자들=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과 바리새인들)보다 먼저 하나님의 왕국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그 이유는 바로 세례 요한이 회개를 외쳤을 때에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반응하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 비유는 "포도원 농부들의 비유"(마21:33~41)말씀이다. 어느 날 집주인이 포도원을 만든 후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떠난 후에, 소출을 받을 날이 가까이 다가오자 자기의 종들을 보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받은 농부들이 주인의 종들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치고 만다. 그러자 주인은 더 많은 종들을 보내게 되지만 똑같이 대우하는 것을 보고는, 자기의 아들은 존대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 아들을 보내게 된다. 그러자 농부들은 그는 상속자라면서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고 하고서는 포도원 밖에 내쫓아 그를 살해하고 만다. 그러자 주인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 것이라고 했다는 말씀이 두 번째 비유이다. 이 말씀은 결국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왕국을 빼앗기게 될 것이고 오히려 열매를 백성인 이방인들이 받게 될 것이라는 비유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어서 세 번째 비유로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혼인 잔치의 비유"(마22:1~14)를 들려주신다. 

 

3. 혼인 잔치의 비유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누구누구를 뜻하는가?

  오늘 본문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최소 여덟 종류의 등장 인물이 나온다. 왕(하나님), 왕의 아들(예수님), 왕의 종들(주님이 보낸 종들), 왕의 군대(하나님이 보낸 심판자들), 미리 초청받은 이들(유대인들), 나중에 초대받은 이들(이방인들), 손님들(혼인 잔치 자리에 참여한 사람들), 사환들(천사들)이 그들이다. 이중에서 첫째로, 왕은 '하나님'을 지칭한다. 왕은 자기의 아들을 위해 혼인 잔치를 준비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왕은 자기 아들의 아버지이면서 동시에 그 나라의 왕이다. 그리고 둘째로, 아들은 이야기 전개 속에서만 나오는데, 이날 결혼식의 주인공으로서 신랑되신 '예수님'을 가리킨다. 그리고 셋째로, 왕의 종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두 종류의 사람들이다. 하나는 이미 초청 대상으로 선정된 자들에게 먼저 보낸 종들로서, 이때 초청받은 자들은 혼인 잔치에 참여하기를 거부했다. 이내 보낸 종들은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을 가리키는 것 같아 보인다. 그리고 또 하나는 초청받은 자가 오기를 거부하자 다시 보낸 다른 종들이다. 그러자 이미 초청받은 자들 중에서 두 부류는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그 외에 남은 자들은 종들에게 모욕을 주고 그만 그 종들을 살해하고 만다. 여기서 '다른 종들'이라는 표현에서 '다른'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는 '같은 종류의 다른'이라는 뜻을 가진 '알로스'라는 단어이다. 고로 이들은 예수님의 사도들이나 그 뒤에 보낸 전도자들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중에 다시 초청받은 원래 초청함을 받은 자들은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가? 그것은 세 종류의 사람들로서, 하나는 밭을 샀다고 하고서 오지 않은 자요, 또 하나는 상업하러 가야 한다 하면서 참여하지 않은 자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나머지 사람들로서 주인이 보낸 종들을 모욕하고 죽였던 자들이다. 앞의 두 초청 대상자들은 '소유'와 '돈'에 집착하여 천국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자들을 가리키며, 뒤의 초청 대상자들은 평행 본문인 누가복음 14장에 보면, 장가들어서 아내를 기쁘게 하려는 자로서 세상의 '쾌락'을 천국의 혼인 잔치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자들이라고 하겠다. 넷째로, 왕의 군대들이 나온다. 이때 왕은 자신의 군대들을 보내 그들의 도시를 불태워 버린다. 이는 A.D.70년에 실제로 일어난다.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불태워졌고, 거기에 있던 120만 명의 유대인들이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섯째로, 나중에 초청받은 자들은 종들이 나가서 사거리(큰 길)의 출입구(길목)에서 발견했던 자들로서, 그들은 선한 자들도 있었고 악한 자들도 있었다. 이는 원래 초청 대상은 아니었지만 나중에 초청을 받아 천국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되는 '이방인들'을 지칭한다고 하겠다. 그리고 다음 시간에 배우겠지만 여섯째로, 손님들이 있는데, 이들은 그때 초청받아 피로연에 참석하고 있는 자들이다. 왜냐하면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그들은 손님들이 아니라, '식탁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있는 자들'이라고 나오기 때문이다. 일곱째로, 예복을 입지 않고 들어온 사람이 있다. 이는 수족을 결박당한 채 바깥 어두운 곳으로 내던져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여덟째 마지막으로, '사환들'이 나오는데, 이들은 '천사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4. 믿음이 없어 천국의 혼인 잔치의 중요성을 잘 모르면 천국 혼인 잔치에 초청했을 때에 어떻게 반응하게 되는가?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 그만 믿음이 없어 천국의 혼인 잔치의 중요성을 잘 모르게 된다면 초청 대상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첫째로, 천국 혼인 잔치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소유(밭)와 돈(장사)을 따라가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둘째로, 천국 혼인 잔치의 중요성을 잘 모르면 세상이 주는 쾌락(장가듦)을 천국의 혼인 잔치보다 더더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다. 셋째로, 이들 중에 이미 초청을 받은 채 있었던 자라 할지라도 막상 천국 혼인 잔치에 들어오라고 하면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될 것이다. 넷째로, 이렇게 되면 천국 혼인 잔치의 당일날이 찾아왔다고 할지라도 세상에 푹 빠져 영적인 일에는 도무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다섯째로, 천국의 혼인 잔치에 초청을 받는다고 하여도 실제로는 거절하고 말 것이다. 여섯째로, 천국의 혼인 잔치로 초대하는 자들을 오히려 잡아서 모욕을 주고 심지어 핍박하고 죽이는 일도 서슴없이 행할 것이다. 일곱째로, 이미 천국 잔치에 참여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고 할지라도 결국 그 잔치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들이 나올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믿음으로 어찌하든지 천국의 혼인 잔치에 관심을 기울여 그 말씀을 들었을 때에는 모든 세상 관심사를 우선 내려놓고 천국 혼인 잔치의 초청을 받아들여 천국 혼인 잔치의 신부가 되고 피로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5. 오늘 비유의 핵심은 무엇이며, 유대인들의 혼인 잔치와 천국의 혼인 잔치는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사실 오늘 비유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1~2절에 나와 있다. 이 말씀에 따르면, 이 비유의 핵심은 주인의 마음이다. 자기의 아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하객들이 축하하러 올 것인지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만약 왕의 아들의 혼인 잔치의 피로연인데 그 자리에 참여하는 자가 없다면 그 잔치는 잔치가 아니라 슬픔의 장소가 되어 버릴 것이다. 그런데 헬라어 원문을 보니, 이 잔치를 주관하는 왕은 '사람인 왕'이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2가지 뜻을 내포하는데, 하나는 하늘에서 진행될 천국 혼인 잔치가 이 세상의 결혼 잔치와 매우 닮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 잔치를 배설하는 분이 '사람인 왕'으로 표현됨으로서, 한 분 하나님께서 잔치 자리의 배설자이자 아들로서 거기에 참석해 있는 자들의 신랑도 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의 혼인 잔치와 실제 천국의 혼인 잔치는 어떤 것은 같고 어떤 것은 다를까? 오늘날 세대주의자들은 이 두 잔치가 똑같은 것으로 해석하여, 7년 공중 혼인 잔치라는 교리를 만들어 내었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둘은 같은 것도 있지만 다른 것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 '같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둘 다 결혼식이 먼저 있고 나중에 피로연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둘은 서로 '다른 점'도 있다. 첫째는 유대인들의 혼인 잔치와는 달리 하늘의 혼인 잔치에서 신부들은 한 명이 아니라 단체적인 신부들이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둘째는 유대인들의 혼인 잔치에서 피로연의 예복은 주인이 조끼처럼 만든 것을 그냥 나눠 주지만, 천국에서 진행되는 혼인 잔치의 예복은 먼저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만 결국에는 자신이 직접 준비해야 하는 예복이라는 점이다. 그것도 회개와 순종 그리고 충성으로 말이다. 이 뒷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더 자세하게 다루게 될 것이다. 

 

6. 누가 과연 결국 구원을 얻게 되는가?

  우리는 오늘 본문의 주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것은 결국 '구원론'에 관한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럼 구원의 완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천국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날 어떻게 될 것인지 혹시 들어보았는가? 그날 결혼식이 진행될 때에는 오늘날의 스타디움처럼 생긴 '영광의 광장'에 입성하게 될 것이다. 들어가는 순서가 있고 치장도 다르고 환영하는 수준도 다르다. 그럼 누가 들어가는가? 오늘 본문 말씀에 따르면, 먼저 그곳에 초청되었던 자들 중에는 한 명도 못 들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천국의 피로연 자리가 많이 비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주인은 사거리에 나가서 이방인들이라도 혼인 잔치 소식을 전해 주어 그들이라도 들어오게 하라고 말한다.

  그런데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을 주장하는 이들은 그렇지 않다고들 말한다. 이미 만세 전에 구원받기로(천국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는 자들만이 그곳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래서 그들이 주장하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것에 관해 어마어마한 분량의 책을 쓴 분들도 있다. 하지만 거기에 나온 수많은 성경 구절을 다 읽어 보았지만, 실제 만세 전에 이미 구원받기로 예정된 자만이 그 자리에 참석하게 된다는 말씀은 단 한 구절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근거로 대는 말씀 중에 요한복음 5:24이나 요10:28~29 혹은 엡2:8~9 등의 많은 말씀을 다 읽어 보아도, 거기에는 만세 전에 예정된 자만이 들어간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전부다 해석을 자기들이 이미 정해 놓고 거기에 갖다 붙이는 형식으로 말하고 있다. 예를 하나 들어 보자. 요10:28~29의 말씀도 그렇다. 그들은 이렇게 해석한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구원하기로 예정하신 자들에게 예수께서는 영생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스스로 영원히 멸망당하지 않는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예수님에게 붙여 주신 하나님은 너무나 크신 분이기 때문에, 아무도 아버지의 손에서부터 그들을 빼앗아 갈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한 번 구원 받으면 영원히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2가지 커다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그들의 가정 자체가 틀렸다는 것이다. 그들은 구원받을 이들을 가리켜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구원하기로 예정하신 자들"이라고 이미 정의를 내려놓고 설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그들은 헬라어 원문을 주의 깊게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29절을 헬라어 원문으로 읽어 보라. 개역 성경과 다르다. 하늘 아버지께서 그들(양들)을 예수님에게 주셨다는 말씀이 나오지 않는다. "나의 아버지께서 이미 나에게 주신 채 있는 것(중성,단수)은 모든 것들보다 크다"고 나와 있다. 즉 예수께서 영생을 주시려고 하는 자들은 주님께서 꼭 구원하실 수 있도록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무엇인가 주신다는 말씀이 있을 뿐이다. 그러한 것에는 하늘의 권세나 능력, 지혜 같은 것들일 것이다. 이런 것들이 이 세상에 있는 어떤 것들보다 더 크기 때문에 아무도 예수님으로부터 그들을 낚아채 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럼, 이때 양들은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가? 만세 전에 예정된 자들인가? 아니다. 그것은 27절에 나와 있다. 27절 말씀을 직역해 보자. "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듣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것들을 안다. 그리고 그것들은 나를 따르고 있다" 그렇다. 누가 결국 영생을 얻게 되고 멸망케 되지 아니하는가? 그것은 주님의 양들로서 지금도 주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 자요 주님에 의해서 아신 바 된 자요 주님을 따르고 있는 자다.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 표현하자면, 주님의 초청에 현재 응하고 있는 자가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만약 주님의 음성듣기를 거절하고 주님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가 주님을 만나게 된 자는 결국 영생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며 멸망을 보게 될 것이다. 결국 먼저 초청을 받아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할지라도 지금 당장 들어가야 할 천국의 혼인 잔치에 들어갈 합당한 준비를 하고 있지 않으면, 결국 천국의 혼인 잔치에 못 들어가는 것이다. 고로 우리는 날마다 매순간 천국 혼인 잔치에 들어갈 준비를 현재 하고 있어야 한다. 

 

7. 칼빈의 이중예정론은 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존 칼빈(장 깔뱅)(A.D.1509~1564)은 석학으로서 매우 훌륭한 사람이다. 그는 기독교 역사상 최초로 성경주석들을 저술했으며, 기독교의 신앙의 근간이 될만한 [기독교강요]를 저술했다. 그는 스위스의 제네바 시를 신정국가를 만들기 위해 법을 제정하고 시도했으며, 그들을 가르치기 위해 요리문답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다. 그리고 세속적인 직업이라도 하늘의 부르심이라고 해석한 자가 바로 칼빈이다. 그런데 그가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기독교강요] 맨 마지막 판(제4판, 1559년)에 가서는 그만 예정론에 놀라운 손질을 가하게 된다. 그의 기독교강요 제4판 제3권 21장~24장을 읽어 보았는가? 거기를 읽어 보면 그의 예정론이 얼마나 잘못 빗나가고 있는지를 발견할 것이다. 그 부분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성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개인은 구원받도록(천국에 들어가도록) 예정하셨고, 어떤 개인은 멸망받도록(지옥에 떨어지도록) 예정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러한 예정은 불변적이며 불가항력적이며 무조건적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어떤 개인을 예정하시고 선택하신 데에는 사람의 행위를 보신 후에 결정하신 것이 아니라, 만세 전에 당신의 기쁘신 뜻대로 결정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은 성경과는 다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그를 구원받을(천국보낼) 자와 멸망받을(지옥보낼) 자로 정했다는 말씀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불변적이며 불가항력적이고 무조건적이라는 말도 틀린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구원과 멸망을 정해 놓고 우리 더러 그걸 받아들이라고 한다면 그분은 편애자이면서 동시에 폭군임에 틀림없다. 이미 정해 놓고 우리에게 그것을 강요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그것이 주님이 정한 것이라면 왜 우리를 훗날에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시는가? 우리에게 무엇인가 감당해야 할 어떤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미 천국과 지옥이 정해져 있고 불변하는 것이라면 왜 우리더러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시며, '누구든지 내게로 나아와 말씀을 들으라'. '회개하라'면서 우리에게 어떤 결단을 촉구하시겠는가? 이미 정해진 운명이라면 우리는 왜 매주일 교회에 나와서 설교를 들어야 하며, 나가서 전도해야 하는가? 그럴 필요가 없다. 고로, 칼빈의 [기독교강요] 제4판에 나오는 이중예정론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다만, 이러한 것은 있다.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도록 예정하여 보낸 자들 곧 사명적 예정자들은 있는 것이다. 이는 사역적인 예정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구원 예정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다만 누구를 구원으로 먼저 초청할 것인지도 주님은 예정하셨다. 그것은 예정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하나님의 약속으로서, 먼저는 유대인이요 그 다음은 이방인으로 순서를 정해 놓으셨다. 

  더욱이 그의 [기독교강요]에 나오는 예정론 교리는 시간이 흐르자 알미니안주의자들과의 논쟁을 통해 5대 교리(전적 타락, 무조건적인 선택, 제한 속죄, 불가항력적인 은혜, 성도의 견인)로 정착이 된다. 이것들 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성도의 견인'교리다. 그의 [기독교강요]의 성도의 견인교리는 나중에 "도르트 회의"(A.D.1618)를 거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A.D.1648)으로 정착이 되는데, 33개 조항의 칼빈주의적 장로교 신앙고백서로서, 제17조 1항은 이렇게 나와 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랑하는 독생자 안에서 용납해 주시고 그의 성령으로써 효력있게 부르시고 거룩하게 하신 자들은 은혜의 상태에서 전적으로 또는 최종적으로 타락할 수 없으며 마지막까지 그 상태에서 꾸준히 인내하여 머물러 있게 되며 또한 영원히 구원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더더욱 아니다. 한 번 구원받은 자는 영원히 구원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번 구원을 받은 자라도 많이 탈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칼빈은 만세 전에 구원받기로 예정된 자는 전적으로 혹은 최종적으로 타락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그것도 아니다. 얼마든지 타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12제자 중 가룟 유다를 보라.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선택을 받았지만 타락하여 자살했다. 또한 초대 교회의 성도였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를 보라. 그들도 십계명을 어겼다가 징계받아 즉시 죽었으며(행5장), 에베소교회의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는 믿음에서 파선하고 말았다(딤전1:19~20). 히브리서에는 구원 탈락에 관한 경고가 무려 5번이나 나오고 있으며, 유다서에도 나온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따르면, 이미 구원받아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자라도 이기지 못하는 자는 결국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 채 성밖으로 쫓겨나고 만다(계3:5, 21:27). 만약 한 번 구원이 영원하다면 예수님의 사역자로 직접 부름을 받아 쓰임을 받은 사도 바울일지라도, 왜 빌립보 성도들에게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말했겠으며(빌2:12),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는 자신은 이미 열심히 경주하고 있지만 자기가 자신의 몸을 쳐 복종하고 있는 것은 자기가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한다고 말했겠는가?(고전9:27). 그리고 자신이 죽기 전에 썼던 디모데후서에는 자신도 선한 [영적인] 싸움을 싸우고 자신의 달려갈 길을 다 마치기까지 믿음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노라고 왜 말하였던 것인가?(딤후4:7~8) 우리가 받은 구원은 확실한 구원인 것은 맞지만 그러나 구원의 안정성의 문제에 있어서는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역시 우리는 인간인지라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뤄 가야 하는 것이다. 

 

8. 누가 결국에 천국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되는가?

  오늘 비유에 따르면 누가 과연 천국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되는지 나온다. 그것은 이미 초청함을 받은 채 있는 이들 곧 유대인들일지라도 막상 당일에 있는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것을 거절한다면 그곳에 참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전혀 생각하지 않은 시간에 혼인 잔치에 초청을 받아 그 자리에 참석하는 이들도 있다고 말한다. 이 비유에 따르면, 이들은 이방인들로서 천국의 혼인 잔치 자리에 들어가는 자들이다. 이들로 인해 잔치 자리는 사람들로 가득차게 된다. 그렇다. 자신은 당연히 들어갈 것이라고 믿고 있었지만 정작 혼인 잔치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오직 이 세상의 일들 곧 소유와 돈과 쾌락에 집착하고 있는 자는 결국 그 잔치에 못 들어갈 것이다. 그렇다. 천국 혼인 잔치에 들어갈 자로서 만세 전에 개인별로 예정이 확정된 자는 아무도 없다. 우리 모두는 지금 이 순간도 두렵고 떨림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이루어 구원을 완성해 가야 할 사람들이다. 천국에 들어갈 사람들의 숫자는 이미 정해져 있지만 그 자리에 필연적으로 그 사람이 들어가게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는 천국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서 믿음을 저버리지 말고, 회개하고 말씀에 순종하면서 충성을 다해야 할 것이다. 

 

9. 나오며

  사실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그것은 아마도 천국에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먼저 초청을 받은 자라도 세상일을 위하여 하늘의 혼인 잔치의 초청을 뒤로 미루거나 거절하거나 혹은 싫어한다면 그는 결국 천국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자신이 선택받은 자라고 생각하는 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천국의 혼인 잔치에 초대하려고 보낸 종들을 잡아서 그들을 모욕하거나 핍박을 하거나 죽인 자들도 있을 것이다. 아니 지금도 그러한 사람들이 있다. 무엇을 믿고 무엇을 받아들일지는 본인의 소관이겠지만 우리는 칼빈의 경우처럼 한 번 구원받기로 예정된 자는 반드시 천국에 들어가며 그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주장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그럼 지금 나는 어떠한 사람으로 준비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은 지금 이 순간 나의 인생의 최대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점검해 보라. 그리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지금 내가 시간과 물질과 달란트를 어디에 쓰고 있는지를 살펴보라. 이 세상에서의 현실 문제에만 집착해 있는 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힘들다. 이 세상의 소유와 돈과 쾌락을 위해 주일을 밥먹듯이 빼먹는 자가 과연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 있을지 더욱더 미지수다. 물론 회개하고 다시 시작하면 되겠지만... 결국 천국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되는 구원은 만세 전에 하나님에 의해 예정된 자들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혼인 잔치의 소식을 들었을 때에 그 초청에 응하는 자가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또한 여러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초청을 듣겠지만 실제로 선택을 받아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자는 소수가 될 것이다(마22:14). 그것은 혼인 잔치의 예복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것은 다음주에 계속해서 살펴볼 것이다.

 

2022년 07월 17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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