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날 주님께서 드린 중보기도(눅22:31~34) [일시] 2018년 3월 25일 주일낮예배설교안 [찬송] 찬12장 다 함께 주를 경배하세, 찬254장 내 주의 보혈은, 찬229장 아무 흠도 없고 PW: 지도자, MIW: 중보기도 T.S: 지도자는 제자들을 위해 중보기도하는 자다. |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우리는 지지난 주에 예수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밤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면서, 주님께서 주와 선생이 되어 그들의 발을 씻겼다면 제자들도 서로 발을 씻겨주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씀을 통하여, 이미 목욕 즉 회심을 통해 죄사함을 받은 자는 자범죄만을 회개하면 되고, 지체들끼리는 서로 섬겨주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에는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의 집에 있었을 때 한 여인이 자신의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씻겨드리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그 발에 향유를 부어드린 사건이 그녀가 자신의 죄를 사함받기 위해 행한 행위가 아니라, 이미 죄사함을 받았기에 자발적인 감사의 표현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인간의 어떠한 선행이나 공로라고 그것이 결코 죄사함을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오늘은 오늘이 종려주일인 만큼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 저녁, 세족식 이후에 있었던 예수님의 개인적인 중보기도에 대해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누가 과연 지도자라고 불리울 수 있는가를 알게 될 것이고, 지금도 하늘에 오르신 예수께서는 거기에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께서 세족식 후 따로 기도하시고 나서 제자들과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셨다고 말씀하시면서 베드로가 장차 지도자로서 형제들을 굳건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셨다는 내용입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잡혀가시어 모든 고초를 당하실 것을 아셨던 예수께서는 자신을 위해서 기도할 시간도 부족할텐데, 왜 제자들 특히 베드로를 위해 중보기도를 하신 것인가요?
2)청중적 접근
오늘 내가 지도자의 위치에 서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자신을 위해서도 해야 할 일도 많을 것인데, 동시에 지도자는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위해서 중보기도해야 한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30년경 예수께서 공생애를 마치기 하루 전날 밤, 마가의 다락방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날 밤 예수께서는 저녁식사를 하신 후에 성만찬을 제정하셨으며, 그리고 나서 제자들의 발을 하나씩 하나씩 씻겨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따로 가셔서 혼자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제자들은 자기들 중에 누가 더 큰 자인지 다투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오사 그들의 다투는 소리를 들으시고는 하늘에서는 섬기는 자가 큰 자가 될 것이라고 일러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시험을 이기는 자들은 천국에서 큰 자가 되어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도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시몬 베드로를 따로 불러 그에게 들려주신 말씀이 오늘의 말씀입니다.
4)문제발생원인
이때 예수께서는 장차 다른 제자들과 예루살렘교회를 이끌어가야 할 시몬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22:31-32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밀처럼 체질하려고) [너희의] 양도를 요구하였으나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쇠하지) 않기를 기도(간구)하였노니, 너는 [단번에]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확실히] 굳게(굳건하게) 하라
5)문제 심리묘사
지도자가 어떤 자인지를 모르면, 결정적인 순간이 올 때에 자신의 책임을 회피해 버립니다.
지도자가 어떤 자인지를 모르면, 자기를 위해서만 열심을 낼 뿐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는 소홀합니다.
지도자가 어떤 자인지를 모르면, 자기의 제자들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지도자가 어떤 자인지를 모르면, 장차 지도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배울 수가 없습니다.
지도자가 어떤 자인지를 모르면, 자기 제자를 위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중보기도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과 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그러나 우리 주 예수께서는 12제자들의 지도자로서 모범된 삶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위기의 상황에 처했을 때에 지도자는 어떻게 처신해야 옳은지를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시간이 없더라도 지도자가 과연 제자들을 위해서는 어떤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제자였던 베드로의 가슴 속에 오랫동안 남아있었으며, 그것으로 인하여 베드로는 일평생을 기쁘게 사역할 수 있었습니다.
가. 지도자란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가?
오늘 본문의 말씀은 여러 사람들을 이끌고 있는 지도자란 과연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그리고 지도자는 자신과 제자가들에게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에 과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귀한 말씀입니다.
저는 한 동안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둘려주신 말씀의 의미를 잘 알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한글성경만으로 31절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 그렇다면, 31절의 말씀을 여러가지 한글성경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눅22:31[개역한글]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눅22:31[개역개정]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눅22:31[표준새번역] "시몬아, 시몬아, 들어라 ! 사탄이 밀처럼 d) 체질하려고 너희를 요구하였다. (d, 또는 너희를 체질할 허락을 이미 받았다.)
눅22:31[공동번역] "시몬아, 시몬아, 들어라. 사탄이 이제는 키로 밀을 까부르듯이 너희를 제멋대로 다루게 되었다.(오역)
눅22:31[한글KJV] 또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를 밀처럼 키질하려고 찾았느니라.
그럼, 헬라어에서 직역해보겠습니다.
눅22:31[직역]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밀처럼 너희를 [단번에] 체질하려고(까부르려고) [자기를 위하여] [너희의] 양도를 요구하였다.
여기에 “까부른다”는 뜻은 ‘키로 까부른다’는 말인데, 헬라어를 보면, ‘시니아죠’라는 단어로서 눅22:31에 딱 한 번 나오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체로 치다. 체질하다” 혹은 “키질하다”는 뜻으로서, 사탄이 사람을 시험해보려고 시도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요구하였다”는 단어는 ‘에크사이토에오마이’라는 중간태 동사입니다. 그 단어는 “에크(~로부터 안에서 밖으로)”라는 접두사에 “아이테오(구하다. 요구하다. 요청하다)”라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그래서 그 뜻은 “청구하다. ~양도를 요구하다”입니다.
그러므로 이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살려서 해석해본다면 이런 뜻입니다. 사탄은 그때 예수님에게 그의 제자들을 자기에게 넘겨주어 자기가 그들을 시험해볼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을 자기에게 양도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탄이 예수님에게 그렇게 요청하고 있습니까? 이제 예수께서는 내일이면 대제사장들의 손에 붙잡혀서가 온갖 조롱과 모진 고문과 형벌을 다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셔야 할 때입니다. 그러므로 그 시간은 주님께서도 주님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이 많은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예수님에게 “이제는 네가 앞으로 감당해야 할 일이 너무 큰 것 같은데, 그것을 위해서나 기도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 네 제자들은 나에게 넘겨주게나. 내가 그들을 시험해 볼 수 있도록 말이야, 하하하”
그런데 저는 조금 더 생각해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에스겔서 28장을 보면, 하늘에서 천사장으로 있을 때에 무역이 풍성한 자였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늘에서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고 있는 천사장으로 있었으나., 그가 이 세상에 내려와서는 하나님의 일만 수행하지 않고 다른 일들을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권력을 가진 자들과 일종의 거래를 한 것입니다. 그들에게 정보를 미리 알려주고 권세와 능력을 주어 왕노릇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대신에, 자신을 신으로 섬기도록 제안한 것입니다. 그러자 세상의 수많은 이방왕들이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거래가 성사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 보면, 이방인치고 신을 섬기지 않았던 이방인들이 없었습니다. 두로와 시돈사람들은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으며, 블레셋사람들은 물고기인 “다곤”신을 섬겼으며, 모압사람들은 “그모스”신을 섬겼고, 암몬사람들은 “몰렉”신을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편 이집트인들도 신을 섬기고 있었으니 그들은 태양신 “레”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은 사탄이나 다른 천사들이 이 세상 왕들과 모종의 거래를 통해서 신으로 섬김을 받았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당시 예수님에게도 이런 비슷한 제안을 했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네 제자들만 나에게 넘겨준다면, 네 목숨은 죽지 않도록 잘 처리해 줄 테니까, 어떻게 나하고 거래를 한 번 해 볼까?”
그러나 주님께서는 결코 달콤한 사탄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안일이나 안전을 위해 자시의 하속들의 안전과 목숨을 내 팽개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죽기 위해 사람이 되어오신 이상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내어놓아야지, 그것을 피하여 다른 것을 모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죽는 길이야말로 결국 모든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길이었기에 주님께서는 자신의 길을 가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나. 지도자의 덕목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지도자란 무엇입니까? 여기서 우리는 지도자의 첫 번째 덕목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지도자란 자신의 안일이나 안전을 위해 자기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의 안전이나 목숨을 내팽개쳐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목숨을 내어놓고 자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의 안전과 목숨을 지켜내는 자여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지금 자기에게 급하고 어려운 일이 발생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코 제자들을 사탄에게 내 줄 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인류의 대속제물로 내놓기로 결정하셨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예수님은 그 뒤에 제자들에게 일어날 일들도 아셨습니다. 예수님이 사탄에게 제자들을 내어주지 않고 예수님 자신이 직접 자신을 대속제물로 죽는다고 하더라도, 사탄은 결코 제자들을 넘어뜨리기 위한 공작을 멈추지 않을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32절의 말씀이 필요한 것입니다.
눅22: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쇠하여지지, 없어지지) 않기를 기도(간구)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확실히] 굳게(굳건하게) 하라
여기서 “떨어지다”라는 단어는 “에클레이포”라는 단어로서, “잊어버리다. 쇠하여지다. 없어지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돌이키다”는 단어는 “에피스트레포”라는 단어로서, 강조를 나타내는 “에피”라는 접두사에, “스트레포(돌아서다, 돌아가다. 돌이키다, 바꾸다)”가 합쳐진 단어로서, “확실히 돌이키다”는 의미로서, 신약성경에서 회개를 가리키는 또 다른 단어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께서는 여러 제자들에게 베드로가 회개한 후에 지도자로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문장은 크게 2가지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는 주님께서 베드로의 믿음이 쇠하여지지 않도록 중보기도하셨다는 말씀이고, 또 하나는 베드로가 회개한 후에는 다른 제자들과 믿는 형제들을 확실하게 굳건히 해야 한다는 명령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도자의 두 번째 덕목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지도자란 자기를 위해서도 최선을 다하지만, 자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의 안전과 사역과 생명을 위해 중보기도해 주는 자여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베드로는 이후에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돌이킬(회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예수님의 중보기도의 덕분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갈릴리에 먼저 가서 기다리게 된 것은 예수님께서 거기에서 만나자고 하셨기에, 베드로는 나머지 제자들 7명을 데리고 갈릴리 바닷가로 갔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오셨다는 말씀을 듣고는 즉시 고깃배에서 내려 헤엄을 쳐서 주님께로 갔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다정하게 베드로에게 사명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다른 형제들의 지도자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어린양을 먹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 마자, 베드로는 과연 어떻게 맹세했습니까? 33~34절의 말씀입니다.
눅22:33-34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34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 모두가 주님을 버린다고 할지라도 자신은 절대로 주님을 버리지 않겠노라고 말했고(마26:33), 또한 주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노라고 말했던 사람이었습니다(마26:34).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씩이나 자신은 이미 주님을 알아온 채 있다는 것을 모르는 척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두 번째 부인할 때에는 맹세하고 부인했으며(마26:72), 세 번째 부인할 때에는 저주하고 맹세하면서 부인했습니다(마26:74). 그러자 정말 닭이 울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다른 형제들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예수님의 중보기도 덕분입니다. 사실 예수님과 거래를 하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하게 되었을 때, 사탄은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그러니 예수님의 제자들의 목숨마저도 노렸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끝내 사탄의 밥이 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와중에도 기도하셨던 예수님의 중보기도의 덕분입니다.
그런데 지도자의 덕목이 여기에 덧붙혀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것은 주님이 천국에 들어가신 후에도 중자로서 중보보기도를 놓지 않고 계속 기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모름지기 지도자란 사람의 목숨이 끊어지기 전이라면 끝까지 그를 위해 중보기도해주는 자라야 합니다.
이와같은 사실은 사도요한과 히브리서기자도 동시에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요일2:1-2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아버지를 향하여) 우리에게 대언자가(우리가 보혜사를 가지고)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2 그(그분 자신)는 우리[의] 죄[들]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의 것들]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들]를 위하심이라
히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통하여) 하나님께 [계[속해서]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계속해서]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지금도 하늘에 계시며,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시지만 아직도 그분은 아들로서 그래서 중보자로서 우리를 죄들의 용서를 위해서 중보기도하고 계시며, 우리의 안전과 사역과 목숨을 위하여 중보기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목숨이 끊어지지 아니했다면 그분은 결코 중보기도를 놓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끝까지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중보기도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을 수 있도록, 그리고 이 세상에서 보호를 받아 자신에게 주어진 사역과 사명을 잘 감당하고 천국에 들어올 때까지 주님께서는 중보기도해주실 것입니다.
다. 무엇을 위해 중보기도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그날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무엇을 위해 중보기도하셨을까요? 그것은 제자들이 잘못 행하여 어떤 범죄를 저지른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어떠한 어려움과 역경과 고난을 만난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믿음이 쇠하여지지 않기를 기도하셨습니다.
눅22: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쇠하여지지, 없어지지) 않기를 기도(간구)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확실히] 굳게(굳건하게) 하라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유독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더 기도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베드로가 예수님의 뒤를 이어 다른 형제들을 이끌어가야 할 차기의 지도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지도자는 언제나 자신의 뒤를 이어갈 또 다른 지도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베드로가 믿음이 떨어지느냐 견고해지느냐 하는 것은 장차 이 지상에 세워질 교회의 존폐의 문제가 달려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특히 차기 지도자가 될 베드로를 위해 예수님은 더 강력하게 기도를 하지 않으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2)청중의 문제와 해결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4. 영적 법칙
그러므로 지도자란 어떤 사람을 가리킵니까?
첫째로, 지도자는 자신의 안일과 생명도 중요하지만 자기를 따르는 이들을 지키고 보호해야 할 책임을 가진 것입니다.
둘째로, 지도자는 자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의 믿음과 사역을 위해 중보기도해야 할 책임을 가진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지도자는 자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이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기까지는 결코 쉬지 않고 끝까지 중보기도할 책임을 가진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복
가. 헌신자가 받는 복
예수님의 중보기도 때문에 베드로와 제자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첫째, 사탄은 결코 예수님의 제자들 모두를 다 자기의 사람으로 만드는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둘째, 실패한 후에도 제자들의 믿음이 쇠하여지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이 비록 주님을 모른다고 하는 죄를 짓기는 했지만 그들은 결코 주님을 떠나가지 않았습니다.
셋째, 그들은 예수님의 구속사역이 자신들의 죄를 용서해줄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마가다락방에서 성령을 기다리는 동안 10일간 간절히 회개하면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주님을 배반하고 멀리 떠난 자기들의 죄들까지도 다 용서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특히 베드로도 자신의 그 큰 죄들을 다 용서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넷째, 모두가 다 두 번 다시 주님을 부인하지 않고 각기 맡겨진 사명에 충실하다가 다 주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천국에 올라간 후에도 계속해서 제자들의 안전과 사역을 위해 중보기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나. 청중의 더 큰 복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누군가를 위해 중보기도하면 그도 이러한 복을 받게 됩니다.
첫째, 사탄의 시험을 받아도 그 시험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둘째, 죄를 지어도 믿음이 완전히 바닦에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셋째, 어떤 죄를 지었더라도 회개하여 자신이 지은 죄들을 다 고백하면 다 용서를 받습니다.
넷째, 끝까지 맡겨진 자신의 사명에 충성하다가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2)결단
가.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그러므로 우리도 결단해야 합니다. 아, 우리도 예수님처럼 지도자로서 자신이 감당해야 할 책임은 끝까지 감당하겠노라고 결단해야 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통해서 주님을 믿고 따라오는 들의 안전과 사역을 위해 끝까지 중보기도하겠노라고 결단하는 일입니다.
나. 결단의 축복
그러면, 우리들에게도 놀라운 축복이 주어질 것입니다. 첫째, 나의 중보를 통해서 나의 제자들이, 나를 통하여 주님을 믿고 따라오는 자들이 힘을 얻게 됩니다. 절망 중에도 소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떠한 어려운 일이 발생한다고 해도 결코 절망하지 않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중보기도하면, 기도한 대로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중보한 대로 되어진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후 베드로는 어떻게 되어졌습니까? 주님께서 중보기도한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주님을 모른다고 그렇게 맹세하며 부인했지만 죄들 용서를 다 받았고, 다시 사명을 얻아 사명을 따라 살다가 주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중보기도는 정말 필요합니다. 중보기도는 특히 믿음이 약한 자에게는 너무나 필요한 은총의 도구입니다. 중보기도는 아직 믿음이 부족한 자에게도 필요한 은총의 도구입니다. 중보기도는 범죄자를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더 이상 절망하지 않고 회개할 수 있는 용기를 주기 때문입니다. 다시 사명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중보기도가 사람을 살리고 사역을 살리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누가복음 22장 31~34절 직역]
(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밀처럼 [단번에] 까부르려고(체질하려고) [너희의] 양도를 자기를 위하여 청구하였다.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단번에] 쇠하여지지(없어지지) 않기를 중보(기도)하였다. 너는 [단번에] 돌이킨 후에 네 형제들을 [단번에] 굳게(굳건하게)하라.
(33) 그런데 그(베드로)가 그(예수님)에게 말했다. “주여! 내가 당신과 함께 옥 안으로도 죽음 안으로도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이 [현재] 준비되어 있나이다.”
(34) 그런데 그(예수님)가 말씀하셨다.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한다. 네가 세 번 나를 [이미] 알아온 채 있다는 것을 [장차] 부인할 때까지 오늘 닭이 울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지도자란 어떤 자여야 하는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제자들을 끝까지 책임지시려는 주님의 숭고한 결단에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주여, 지도자는 제자의 안전과 사역과 생명을 위해 중보기도하는 자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지도자는 자신의 제자들이 사명을 완수하고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는 기도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중보기도의 가장 큰 제목은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중보기도하기를 게을리 했나이다. 용서해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주어진 책임을 잘 감당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끝까지 책임지는 자가 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중보기도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끝까지 쉬지 않고 기도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책임을 떠넘기지 않겠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지도자로서의 할 일을 보지 못하게 막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와 거래하려는 사탄마귀야, 내게서 당장 떠나가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책임을 잘 감당할지어다. 중보기도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지도자란 모름지기 자기를 위해 기도해야 하지만, 자기를 따라오는 자들에 대한 안전과 사역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는구나.
2. 사탄은 거래를 통해서 사람을 넘어뜨리는 교활한 사기꾼이로구나.
3. 중보기도야말로 사탄의 시험을 이기게 해주는 강력한 도구로구나.
4. 아직 목숨이 끊어지지 않았다면 중보기도를 멈춰서는 아니 되는구나.
5. 지도자란 책임을 끝까지 감당하는 자로구나.
6. 죄를 지어도 중보기도가 있으면 믿음이 완전히 바닥에 떨어지지는 않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