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특별새벽집회 주제: “하나님의 때를 사모하자” | ||
| [제목]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 주어지는가? | [찬송]찬327장 주님 주실 화평 |
| [말씀] 시편40:13~17(구약831면) | 2010.3.1(월) |
1. 서론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은 사실을 알고 보면 우리가 기대하는 시간에 맞춰 어떤 일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맞춰 모든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바로 시간과 역사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시간을 만드셨고 그분이 오늘날까지 그 시간을 붙잡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경험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때’를 붙들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때’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그것은 일반적으로 흘러가는 시간(헬, 크로노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역사하실 특별한 그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꿈을 이루어주실 시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어 주실 바로 그 시간(헬, 카이로스)을 가리킵니다.
전3:1 범사에 기한(헬, 카이로스)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헬, 카이로스)가 있나니
이제 정확히 하나님의 때에 나타나시어,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신 예수님의 길을 한 번 생각해보십시다. 예수님은 우연히 혹은 마음 내키는 대로 그의 사역을 감당하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분은 오직 구약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선지자들이 예언한 대로 그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마8:16-17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이처럼 복음서의 기록들을 보면,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하심이니라”는 표현이 수도 없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때를 맞아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약속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당신은 과연 하나님의 약속을 받으셨습니까?
2. 하나님의 언약은 언제 주어졌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약속들은 과연 어떤 상황 속에서 주어졌을까요? 과연 그것을 받아 누릴만큼 그들의 형편은 좋은 상태였을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약속을 받기에는 너무나 부끄럽고 죄스럽거나 삶에 너무 힘겨워 지쳐 있을 때였을까요?
첫째로, 아브라함의 경우를 한 번 살펴보십시다(창12:1~3).
하나님만을 섬겨야 할 셈의 후손인 아브라함은 갈대아우르에서 자기 아버지 데라와 함께 우상을 섬기다가 주님의 부르심과 약속을 받았습니다. 당시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축복의 약속을 받을만한 합당한 상태에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삶을 살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나타나사 그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게 해 주겠고, 그의 이름을 창대하게 해 주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들도 복을 받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둘째로, 야곱의 경우를 보십시다(창28:10~22).
야곱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이 주어질 때에 야곱은 도망자의 신세였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장자의 축복이 주어질 것임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그것을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자기의 욕심으로 쌍둥이 형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형은 그를 죽이려 했고, 어쩔 수 없이 야곱은 형 에서의 낮을 피해 도망쳐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외삼촌 라반의 집을 향해 정처없이 길을 떠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주님께서 그를 만나 주셨습니다. 그때 야곱은 주님을 찾지도 아니했습니다. 아니 자기를 지켜달라고 감히 기도할 염치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언제 다시 부모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될지 전혀 기약할 수 없던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꿈 속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다시 고향땅으로 돌아올 때까지 그를 지켜줄 것이고, 보호해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또한 다시 돌아온 다음에는 그가 그때 돌베게로 잠을 자던 그 가나안 땅을 그와 그의 자손에게 기업으로 줄 것이며, 그의 자손도 땅의 티끌처럼 많게 해 줄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세 번째로, 요셉의 경우를 봅시다(창37:1~11).
요셉이 꿈을 꾸게 될 때는 그의 나이 17살로, 그가 소년이었을 때입니다. 요셉의 아버지 야곱은 76세 때에 형 에서의 낯을 피해 외삼촌집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7년이 지난 다음 즉 83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결혼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기가 그처럼 사랑하던 라헬은 자기에게 자식을 안겨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렵게 얻은 자식이 ‘요셉’이었는데, 그 때 야곱의 나이는 무려 90세나 되었습니다. 그러니, 야곱은 그 어떤 다른 자녀보다 요셉을 더 아끼고 사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자식들에게는 해주지 않은 채색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그랬더니,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자기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알고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의 형들은 한 번도 요셉을 동생다운 동생으로 대해 주지 않았고, 그에게 말조차 평안하게 해 주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양떼를 치러갈 때에도 요셉은 따로 떼어놓고 자기들만 가곤 했습니다. 다시 말해 요셉이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받던 그 때에는 형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있었던 외로운 시기였습니다. 그러니 어느 누구도 요셉의 꿈을 꾼 것처럼,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왕으로 섬기며 경배할 것이라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요셉에게 나타나사 놀라운 일들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네 번째로, 여호수아를 살펴 보십시다(수1:1~9).
여호수아는 그의 나이 약 45세정도가 되었을 때부터 모세를 줄기차게 따라다니며 그를 수종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 모세는 아버지와 같은 분이요, 하나님 다음으로 믿고 따랐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60만명이나되는 어마어마한 이스라엘 백성을 자신에게 맡긴채, 모세는 그만 그의 곁을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때 여호수아는 얼마나 두렵고 떨렸겠습니까? 그런데 그때 주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수1:1-6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 5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그렇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중요한 인물들이 하나님으로 축복의 언약들을 받은 것은 그들이 결코 하나님 앞에 잘해서, 아니 그러한 축복을 받을만한 합당한 상태여서가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그러한 축복들을 받기에는 너무나 부끄러운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만나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힘겨워할 때, 괴로워 할 때, 그들에게 나타나사 소망의 말씀들을 주셨습니다.
삶이 힘드십니까? 하나님께서 언젠가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오실 것입니다. 곧 여러분을 심방해 주실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때가 여러분에게도 주어질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그렇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의 약속을 받은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약속을 받은 다음부터였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진심으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들에게 하나님의 약속들은 그대로 성취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기에는 합당하지 않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과거를 보지 않으십니다. 앞으로 살 길이 막막하십니까? 염려마십시오. 아브라함과 야곱과 요셉과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오늘 이 시간, 주님 앞에 두 손 들고 나온 여러분들을 맞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믿음입니다. 우리에게는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우리도 그러한 믿음만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언제라도 아브라함처럼, 야곱과 요셉처럼, 여호수아처럼 대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새벽기도회에 여러분이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여러분은 특별한 사람입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동탄명성교회(613-2001)
2010년 3월 특별새벽집회 주제: “하나님의 때를 사모하자” | ||
| [제목] 성경의 약속은 곧 나를 향한 말씀이다 | [찬송]찬546장 주님 약속하신 말씀 |
| [말씀] 롬15:4-6(신약259면) | 2010.3.2(화) |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십니다. 즉 우리 하나님은 무턱대고 어떤 일을 수행하시는 분이 아니라 먼저 약속하시고 약속하신 다음에는 반드시 그 약속하신 것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바로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우리는 ‘하나님의 때’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민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마다 주의해야 할 것은 성경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과연 어떤 약속들을 해 주셨으며, 그 약속들은 오늘날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약속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한 개인만을 위해 주신 약속의 말씀이 있고, 또 하나는 공동체 즉 민족이나 국가를 위해 주신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 개인만을 위해 주신 약속들 중에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창22:11-12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들 중에는 온 민족을 위한 말씀들도 있었는데, 사실 아브라함에게 주신 말씀의 대부분은 바로 그러한 약속들이었습니다.
창13:14-17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이상과 같은 말씀들은 사실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주신 말씀이지만, 다음과 같은 약속의 말씀들은 이스라엘 민족을 넘어 온 인류를 위해 주신 약속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창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창22:17-18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2. 성경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곧 나의 이야기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약속의 말씀들은 어느 개인에게 주어진 약속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일개인만을 위한 약속의 말씀이 아니라, 일개인을 넘어 온 민족과 온 세계를 위한 말씀도 된다는 것을 우리를 명심해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말씀을 받았다고 합시다. 그것은 나 자신만을 위한 말씀이 아니라 나를 통하여 다른 사람까지 복을 받게 하는 말씀도 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 개인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이라도 그것이 성취될 때에는 그것이 우리의 주변과 우리의 후손에게 엄청나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약속을 받는 것에 대해, 우리는 한 치의 소홀함도 없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가 성경에서 어느 개인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성취되었는가를 주의해서 본다면, 오늘날 나도 하나님의 약속을 어떻게 받아 그것이 성취될 것인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곧 나의 이야기도 되는 것입니다.
갈3:26-29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롬4: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아브라함 당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그와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기업으로 주리라고 약속해 주셨지만, 어느 누가 그것이 실제로 실현될 것이라고 믿었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약속하신 그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었기에, 그 약속은 폐기되지 않았으며, 결국 모세와 여호수아 시대에 하늘의 별들과 바닷가의 모래와 같은 큰 민족이 되어 그 말씀 그대로 성취되었으며, 2천년 뒤에는 유대나라의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메시야가 탄생함으로서, 온 세계의 천하 민족이 다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은 자세와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3. 성경의 약속의 말씀은 곧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의 때가 자신에게 아주 멀리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는, 아예 하나님의 때를 기대하지도 않는 이들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에게는 하나님이 어떠한 약속도 주시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그것이 내 마음 속에 부딪혀 오는 순간, 그 말씀은 곧 나의 말씀이 되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 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말씀을 일컬어 ‘레마’라고 부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는 두 종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는 ‘로고스’라는 말씀이고, 또 하나는 ‘레마’라는 말씀입니다. ‘로고스’가 영원한 말씀으로서, 객관적이며 일반적인 말씀이라면, ‘레마’는 로고스보다 더 주관적인 것으로서 그 시(時)에 내게 주시는 체험적인 말씀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내게 주시는 말씀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말씀을 들어야 할까요?
첫째, 말씀을 들을 때, 선입관을 갖고 듣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어떤 말씀을 듣든지 “주여, 말씀하소서. 종이 듣겠나이다.”는 라는 겸손한 자세로 들어야 합니다. 즉 어떤 말씀을 듣든지 ‘아멘’이라는 마음자세로 들어야 합니다.
셋째, 말씀을 들을 때, 그것이 분명 나와 상관이 있는 말씀으로 귀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넷째, 그 시간 성령께서 개인적으로 들려주시는 세미한 음성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오늘날 왜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해도 축복된 신앙생활을 기대하지도 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통로를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를 위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꼭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말씀해야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 말씀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 시대는 특별히 개인적인 것이 아닌 이상, 오히려 기록된 성경말씀을 통해 더욱 더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롬15: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고전10:11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우리에게 지금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는다면,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때는 속히 올 것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는 기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여러 경로를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외면한다면, 여러분에게서 하나님의 때는 보다 더 멀리 멀리 뒤로 연기될 것입니다.
2010년 3월 특별새벽집회 주제: “하나님의 때를 사모하자” | ||
| [제목]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안 사람 | [찬송]찬486장 이 세상에 근심된 |
| [말씀] 갈6:7~9(신약 309면) | 2010.3.3(수) |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축복받기를 원한다면 꼭 명심해야 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약속의 말씀을 꼭 받기를 사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번 약속하시면 그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산 신앙생활이란 어떤 것입니까? 어찌하든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받아서 하나님의 때에 그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다가 받든지, 주의 종을 통해 받든지, 성령의 세미한 음성으로 받든지, 아니면 다른 그 누구를 통해서라도 우리는 오늘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어찌 되었든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받았다고 합시다. 그럼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첫째, 절대 조급한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자기의 힘이나 생각을 하나님의 능력과 계획보다 앞세워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분명 땅과 자손에 대한 축복의 약속을 동시에 받은 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 인간적인 계산과 노력을 다 해 봅니다. 첫째는, 양자를 삼아서 그것을 이루려 했으며, 둘째는, 첩을 통해 자식을 얻어서 그것을 이루려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둘 다를 인정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다 아브라함의 조급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물어보지 않고 결정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약속합니다.
애3: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합2: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1. 약속을 받은 사람은 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까?
세상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만사가 서두른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은 후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최소 25년이 흘러야 했으며, 야곱도 20년, 요셉도 21년이 흘러야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은 무려 4천년이 흘러서야 성취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의 때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일까요?
성경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축복을 받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그들에게는 하나같이 공통된 특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그 축복을 받기까지 하나님이 주실 축복을 받을만한 그릇이 준비되는 기간이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탈출시킬 때, 하나님은 처음부터 그들을 광야에서 뺑뺑이 돌리기로 작정하시고 그들을 불러내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출애굽후 2년만에 가데스 바네아에서 곧장 약속의 땅으로 그들을 인도할 참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과연 그들이 그 땅을 차지할 만한 준비가 되어있는지 확인해 보기를 원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땅을 차지할 만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언제 또다시 그 땅을 빼앗겨버릴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 중 믿음 좋은 12명의 족장들을 불러내어, 그들이 곧 있으면 들어가게 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을 정탐하고 돌아오게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돌아와서는 어떻게 보고했습니까? 그리고 그때 이스라엘 온 회중은 또한 어떻게 그들의 보고를 받았습니까? 여호수아와 갈렙 족장을 제외하고는, 다 부정적인 보고를 했던 10명의 정탐꾼들의 편을 들어, 하나님을 원망하며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외쳐대지 않았습니까? 사실 그들은 그때까지 아직 그 땅을 차지할 그릇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실 축복이 어디 거저 주어지는 것입니까? 그것을 받기에 합당한 준비와 훈련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38년동안 광야에서 유리방황하게 하였고, 부정적인 보고를 한 자들 중 단 한 명도 약속의 땅을 밟지 못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준비한 다윗
하나님은 언제라도 복을 주시려고 준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들은 그 복을 받을 준비기간 이 필요합니다. 만약 축복의 그릇을 준비할 기간도 없이 우리에게 축복이 주어진다면, 우리 모두는 다 그 축복을 받아 누릴 수가 없이, 다 흘려버리고 말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왜 내게 하나님의 응답이 이렇게 늦게 오는 것이냐고 원망하지 마십시오. 다 우리를 위해서 그 기간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응답이 늦게 오면 올수록 감사하십시오. 응답이 늦게 오면 늦게 올수록 그 응답은 확실히 내 것이 될 확률이 그만큼 높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은 그의 나이 15세쯤 되었을 때에, 선지자 사무엘로부터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 나갔습니다. 먼저는 왕이 되어서 가장 힘써야 할 일 곧 나라를 지켜내는 일을 배웠습니다. 용맹스러웠던 다윗은 군대의 최고 사령관이 되기까지 전쟁수행능력을 점차 익혀나갔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하나님의 때는 쉽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가장 신뢰해야 할 왕이 자기를 시기질투하더니, 어느 날부터는 자기를 죽이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결국에는 수 천의 군사를 동원하여 자기를 잡기 위해 쫓아다니곤 했습니다.
그때 다윗은 아무 이유도 없이 자기를 죽이려 드는 사울왕을 어떻게 대했습니까?
첫째, 그는 피했습니다. 도망쳤습니다. 얼마나 많은 세월동안 그는 사울왕을 피해 다녔는지 모릅니다. 이처럼 맞딱뜨려서 안 되는 일은 우리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둘째는,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상황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절대 하나님의 기름부음받은 왕을 죽이지 아니했을 뿐더러 또한 그 누구도 그를 죽이지 못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죽이려드는 원수를 사랑하고 보듬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맨 처음 사울왕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차기왕권이 다윗에게로 가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셋째로, 그리고 기다렸습니다. 결코 자기 손으로 왕을 해하지 않았으며, 자연스럽게 왕권이 자기에게 오기를 참고 기다렸습니다.
삼상26:9-10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하고 10 다윗이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
사람을 심판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임을 다윗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때를 참고 기다렸습니다. 그랬더니, 마지막에 가서는 사울왕도 자신이 행한 일이 잘못된 것임을 사과하기에 이르렀고, 나중에는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사울왕은 그만 자신의 아들들과 함께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헤브론에 있는 유대인들이 모여서 그에게 기름부어 유대왕으로 삼았습니다.
사실 다윗은 세 번에 걸쳐 기름부음을 받고 왕이 된 것입니다. 첫 번째는 베들레헴에서 사무엘 선지자가 기름을 부은 것이었고(삼상16:13), 두 번째는 그의 나이 30세 때에 헤브론에 사는 유대인들이 기름을 부어 왕이 되게 했으며(삼하2:1~4),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7년 6개월이 지난 다음에, 북이스라엘 10지파까지 가세하여 그를 이스라엘의 통일왕국의 왕으로 기름을 부었던 것입니다(삼하5:1~5).
만약 다윗이 자신이 사무엘선지자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으니 얼마든지 사울왕을 제거해도 좋다고 생각하고 사울을 없애버렸다고 한다면, 북이스라엘의 10개 지파는 결코 다윗을 왕으로 추대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다윗도 피흘림 없이 이스라엘의 통일왕국의 왕이 되기가 무척 어려웠을 것입니다.
3. 결론
다윗은 차분하게 하나님의 때가 오기를 기다린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15세에 기름이 부어졌지만 그것이 성취되기까지 그는 무려 작게는 15년, 많게는 22년 반을 잠잠히 기다렸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심으면 거두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윗이 먼저 왕이 되겠다고 서둘러 일을 진행했다고 한다면,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 가슴 속에 영원히 간직된 다윗왕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는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늦게 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다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준비기간임을 알고, 그날까지 잘 참고 기다리는 성도가 되어, 축복의 주인공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10년 3월 특별새벽집회 주제: “하나님의 때를 사모하자” | ||
| [제목] 하나님의 때가 늦춰지는 이유 | [찬송]찬373장 고요한 바다로 |
| [말씀] 시편50:22~23(구약 839면) | 2010.3.4(목) |
알고 보면 하나님의 때는 늘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항상 현재에 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요8:58).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신 분이 되시는 분입니다(계1:8,17). 다시 말해 하나님은 시간을 만드신 분으로서, 그분은 결코 시간 안에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시간 안에 가두어 두어 우리를 힘들게 괴롭히거나 골탕 먹이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때는 항상 현재 바로 우리 곁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시되, 영원히 오래 지속될 참된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다만 하나님의 때가 내게 늦게 오는 것은 아직 내가 준비가 덜 되었음을 알려주는 신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도래할 하나님의 때는 나의 준비상태에 따라 늦게 올 수도 있으며 혹은 오히려 빨리 찾아올 수도 있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그러므로 우리에게 찾아오는 갖가지 시험들은 오히려 내가 얼마만큼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우리 스스로 알게 해 주는 척도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1. 우리에게 불어닥친 문제들은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요?
이 세상에 문제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항상 문제는 우리 곁에 있습니다. 만약 문제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면 빨리 이 세상을 떠나서 주님 곁으로 가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문제를 바라볼 때, 그 문제를 극복하려면 문제만을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문제속에 푹 빠져서 허우적거리기만 할 뿐입니다. 그럴수록 그것에 대한 넓은 시야를 확보하십시오. 오히려 문제를 통해서 축복의 그릇을 크게 만들어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조상들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요셉의 경우를 살펴 보십시오. 그들도 다 문제 속에서 생활하였지만, 그들은 결국 그 어려움들을 극복해 내고 믿음의 조상의 반열에 들지 않았습니까?
이제 우리에게 닥친 문제들에 직면하여, 하나님의 때가 늦춰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와 행동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첫째, 무조건 그것을 피하려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 문제 앞에 정면으로 맞서십시오. 그리고 오히려 그 문제를 이길 수 있는 힘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시51:15).
시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 닥치는 어려움은 무조건 피하고 보자는 식의 태도를 취하기도 합니다. 고난을 견디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과연 이 사람의 태도는 옳은 것일까요?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를 단련하기 위해 우리에게 허락하신 광야학교를 피해 도망친다면,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차지할 수 있을까요?
유다 베들레헴에 사는 엘리멜렉과 나오미에게 어느 날 흉년이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대대로 약속의 땅에 살고 있었던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그 기근을 피해서, 가지 말아야 할 이방 땅으로 이사를 떠나게 됩니다(룻1:1~2).
그렇다면 그들이 모압지방으로 이사하여 얻은 결과는 과연 어떤 것이었나요? 첫째, 가장 먼저 남편 엘리멜렉이 죽게 되므로, 나오미는 과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나오미는 두 아들을 거기에 있는 이방여인들과 결혼시켰습니다. 둘째, 그런데 얼마 후 두 아들마저 홀어머니를 남겨두고 거기서 죽고 말았습니다. 후손을 낳아 메시야의 오실 길을 예비해야 할 유다지파의 가문이 그만 문을 닫게 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남겨진 나오미에게 들려오는 소식은 하나님께서 유다 땅에 내린 기근을 거두어 가시어 다시 그곳에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때 나오미는 생각했습니다. “그때, 그곳을 떠나지 말고 기다려야 했었는데, 왜 그새를 참지 못하고, 이곳 이방 땅으로 이사를 왔던고...”
우리에게도 이러한 고난이 찾아올 것입니다. 하지만 고난이 자기에게 찾아온다고, 무조건 피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어려움은 오히려 내게 약이 되고 살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엘리멜렉과 나오미처럼 어려움이 찾아올 때 무조건 도망치지 마십시오. 만약 우리도 도망친다면, 우리 또한 더욱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고난이 찾아온다 하도, 그 고난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 앞에 닥치는 문제들을 회피하여 다른 데로 가지 마십시오. 우리가 만약 약속의 자손이라면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꼭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하나님의 때가 찾아올 것입니다. 그 조금의 기간을 참지 못해 주님 곁을 떠나버린다면,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빈 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현재의 고난은 언젠가 내가 맞딱뜨려야 할 중요한 시험대입니다. 통과해야 할 통과절차의 하나인 것입니다. 사실 이것 없이 그냥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보십시오. 고난을 보고 무조건 무서워 도망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때를 늦춰버리는 결과만을 가져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광야에 머무르십시오. 고난의 현장을 떠나지 마십시오. 그때는 더욱 더 주님을 찾으십시오. 주님께 그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런 때일수록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때가 뒤로 가지 않습니다.
시126:5~6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둘째, 결국 그것은 내 축복의 그릇을 넓혀주기 위한 도구임을 믿고, 오히려 그 문제를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살전5:16-18).
살전5:16-18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아브라함이 과연 언제 하나님으로부터 온전한 축복을 받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그가 갈대아 우르에서 부름받던 순간이 아닙니다. 자기의 독자 이삭을 번제물로 바친 직후였습니다(창22:12,16~18).
창22:12~18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16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혹 아브라함에게 훈련의 25년의 시간이 없었다고 칩시다. 과연 아브라함은 아무런 주저함 없이 자신의 독자 이삭을 번제물로 바칠 수 있었을까요? 또한 다윗의 경우를 봅시다. 그에게 있어서 사울왕에게 쫓겨다니던 광야의 도피생활이 없었다고 한다면, 과연 다윗은 억울하고 힘없고 약한 사람들까지도 보듬어 껴앉을 수 있는 위대한 성군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러므로 현재의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은 우리에게 장차 큰 축복을 받게 해 주는 귀한 도구가 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때가 찾아오면 오히려 감사하십시오. 주님께서 이제 내게 역사하실 때가 가까이 왔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성경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시50:23).
시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2. 오늘 나에게 찾아온 어려움은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위해 내미시는 하나님의 손길이다.
성도 여러분, 오늘 나에게 불어닥친 많은 어려움들은 나에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오히려 변장하고 찾아온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일을 통해 나하고 더 친밀한 교제를 나누길 원하신다는 하나님의 싸인(신호)인 것입니다(욥23:10).
욥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고난은 겪어야 할 것이지 결코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고난과 어려움은 오히려 우리를 축복의 큰 그릇으로 빚어줄 귀한 도구입니다. 우리 모두 고난을 이겨내셔서 하나님의 때를 앞당기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2010년 3월 특별새벽집회 주제: “하나님의 때를 사모하자” | ||
| [제목] 하나님의 때를 앞당기려면 | [찬송]찬543장 어려운 일 당할 때 |
| [말씀] 요2:1~11(신약 144면) | 2010.3.5(금) |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면 그분의 뜻을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뜻이 실행될 때에,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가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 그 상태를 보신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축복을 받을만한 상태가 되었는지 우리를 시험해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일들 중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태를 달아보시는 시험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분의 저울에 달렸을 때, 부족함을 보인다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때는 한층 뒤로 물러갈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하나님의 때가 왜 늦어지는가 그 이유들에 대해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정리해보자면, 첫째, 말씀을 들어도 하나님으로부터 내게 주시는 말씀 즉 하나님의 약속을 받지 못했을 때 하나님의 때는 늦추어집니다. 둘째, 하나님의 때가 주어졌어도 그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히 일을 추진할 때 하나님의 때는 뒤로 미뤄집니다. 셋째,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않고 오히려 인간적인 계산과 방법을 사용할 때 하나님의 때는 늦어집니다. 넷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려고 허락하신 문제들을 만났을 때, 무조건 피하려 든다면 하나님의 때는 훨씬 더 뒤로 늦춰집니다. 다섯째, 내 앞을 가로막는 문제들이 내 축복의 그릇을 넓혀주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임을 깨닫지 못한 채, 원망과 불평으로 일관할 때 하나님의 때는 또한 늦춰집니다.
그렇다면 이와는 반대로 하나님의 때를 앞당길 수는 없을까요? 아닙니다. 앞당길 수 있습니다.
첫째, 어떤 환난이 닥쳐와도 감사하면서 그 문제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겸손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하나님의 때는 앞당겨집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요셉의 경우입니다. 요셉은 비교적 젊은 나이인 30세에 당시 전 세계를 주름잡았던 애굽의 국무총리가 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에게 불어닥친 어려운 시련 앞에서 그는 단 한 번도 원망과 불평을 하지 않으면서, 그 환난 중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뜻을 찾았고, 그 뜻 앞에 겸손히 순종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를 맨 처음 곤경에 빠뜨리게 했던 꿈은 훗날 오히려 그를 애굽의 국무총리로 만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은 그가 자기를 팔아버린 형제들을 만났을 때 한 이야기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습니다.
창45:5-8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6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둘째, 언제라도 주님이 역사하실 수 있도록 자기의 능력을 내려놓은 다음 주님의 능력을 믿고 신뢰할 때 하나님의 때는 앞당겨 집니다.
그 대표적인 이야기가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이 포도주로 바뀐 사건입니다. 어느날 갈릴리의 아셀지파의 땅인 갈릴리 가나에 혼인잔치가 열렸습니다. 그때 예수님과 초기의 제자들인 안드레와 베드로 그리고 요한과 빌립과 나다나엘 등이 예수님과 함께 그 잔치에 초대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손님으로 참여한 것이 아니라 그 잔치를 주관하는 어떤 위치에서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그 일은 아마도 잔치의 음식 내지는 포도주를 주관하는 일을 담당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찌나 손님들이 포도주를 잘 마셨든지 준비한 포도주가 그만 다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큰 일 났습니다. 그 사실은 즉시 예수님의 어머니에게 보고되었고, 그의 어머니는 그것에 상응하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였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께서는 손님으로 참여한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들에게 포도주가 떨어지고 없구나!” 마리아의 이러한 발언에 대해, 어떤 이들은 다음과 같이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포도주가 떨어진 것에 대해 각각 손님들을 만나 그들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 예수님의 어머니는 그때 그러한 조치를 부탁하셨을까요? 만약 예수님께서도 그 잔치에서 손님으로 참석한 것이 아니라 주관자의 위치에 있었더라면 그 말이 맞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때 손님으로 참여하고 있었기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에 대해 하등의 책임적인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어머니는 포도주가 떨어진 사실에 대해 예수님에게 그 사실을 기별한 것입니다. 그때 우리 주님은 무엇이라고 답변하셨을까요?
요2: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렇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것과 예수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것은 예수님에게 결례가 되었으면 되었지, 그것이 결코 예수님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분명 거기에 손님으로 참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그의 어머니를 부를 때에도, 개인적인 호칭으로서 ‘어머니’ 라고 부르지 않았고, 오히려 귀부인을 지칭하는 객관적인 표현으로서 ‘여자여’ 라고 불렀습니다. 또한 그때는 확실히 그분의 때가 이르지 아니한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내 때가 아직은 이르지 아니했습니다.”라고 대답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언급하셨던 그 때는 과연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를 가리킵니다. 그것은 요한복음 7장에 자세히 나오고 있습니다.
요7:1-8 그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2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3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4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5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함이라 8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나는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그러므로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 때”란 예수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실 시간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또한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부여하신 때를 생각하며 사셨음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는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을 자신의 때와 연관시켰을까요? 그것은 포도주가 곧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생애의 끝 무렵 예수님께서 행하신 성찬식을 보면, 그분은 제자들에게 포도주 잔을 주시면서 그것은 자신의 피로서,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마26:28).
다시 말해, 예수님의 어머니의 말씀은 어쩌면 예수님에게 “속죄제물의 피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대답을 들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그것과는 상관없이, 지금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실제적인 문제에 대해 예수님께서 개입하여 주실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어, 다 마셔버린 포도주를 다시 채워주실 때가 되었음을 예수님에게 말씀드린 것입니다.
즉 마리아는 속제제물의 피를 필요로 하는 문제는 예수님의 개인적인 문제로서 앞으로 다가올 문제이겠지만, 지금 당장 포도주가 떨어진 문제는 마리아 자신의 문제로서, 예수님께서 그 문제에 꼭 개입하셔서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을 바랬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인들에게 이렇게 믿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요2:5).”
이 한 마디의 믿음의 말은 결국 예수님더러 자신의 사역의 때도 잊어버리게 했으며, 마리아에게 포도주가 떨어진 것이 곧 예수님의 문제가 되도록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셨고, 이어서 “그것을 떠다가 연회장(잔치주관자)에게 갖다 주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연회장은 그 포도주를 맛보고는 신랑을 불러 크게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에게 그 때는 아직 이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리아의 믿음의 표현은 예수님더러 물을 포도주로 만들도록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녀의 믿음이 하나님의 때를 앞당기도록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오기를 지금껏 기다리고 계십니까? 주님께 믿음으로 말씀을 드리고, 믿음으로 반응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때는 그 순간 자기에게 즉시 찾아올 것입니다. 이 비밀을 깨달을지어다. 할렐루야!
2010년 3월 특별새벽집회 주제: “하나님의 때를 사모하자” | ||
| [제목] 하나님의 때의 두 방면 | [찬송] 찬176장 주 어느 때 다시 오실른지 |
| [말씀] 벧후3:8-13(신약 387면) | 2010.3.6(토) |
‘종말’에는 크게 두 종류의 종말이 있습니다. 자기가 죽게 됨으로서 이 세상을 마감하는 개인적인 종말이 있으며, 또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역사를 마감하는 우주적인 종말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때’에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약속하신 것을 이루실 개인적인 때가 있으며,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 우주의 역사를 심판하실 우주적인 때가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때’에는 이 세상에서 개인적으로 경험하는 축복의 때가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동시에 경험하는 우주적인 심판의 때가 있는 것입니다(벧후3:11-12).
마찬가지로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때’에도 개인적인 때가 있었으며, 또한 우주적인 때가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시어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때를 이루시어 영광스런 모습으로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가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언젠가 다시 오시어 우주를 심판하심으로 거룩한 신부들과 함께 왕노릇하실 것입니다(요17:1, 계11:15).
요17: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계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그러므로 우리 인생이 성공적인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하나님의 때에도 복을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우주적인 하나님의 때에 가서도 복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실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큰 관심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때에 대한 것입니다. 하지만 더불어 하늘에서 받게 될 우주적인 때에도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때가 잠깐의 때라고 한다면, 하늘의 때는 영원무궁할 때이기 때문입니다.
1.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때에 축복받으려면
우리는 지금까지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살 때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때에 축복받는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배웠습니까?
첫째, 맨 처음 하나님으로부터 내게 주시는 말씀을 약속으로 받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둘째, 인내함으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마음이 조급해서는 안 됩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셋째, 내 앞에 둘러있는 수많은 문제들 속에서 주님의 뜻을 찾아서 그 문제들을 잘 이겨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야 내 축복의 그릇도 커지기 때문입니다. 즉 요셉처럼 무슨 문제이든 다 하나님께서 나의 유익을 위해서 배려하셨을 뿐만 아니라, 나의 축복의 그릇을 넓혀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허락한 시험들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2. 우주적인 하나님의 때를 기쁨으로 맞이하려면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 앞에 도래하게 될 우주적인 하나님의 때에 가서 축복받는 인생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아무리 현재를 바쁘게 살고 있다해도 그 날이 언제 어떻게 임할른지 늘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그 날이 임하기 전에 어떤 일들이 있을 것인가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해놓고 있는데, 오늘날에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보노라면, 그 날이 이전보다 훨씬 더 우리에게 가까이 와 있음을 느끼게 해 줍니다. 왜냐하면 주의 재림 전에 “전쟁과 큰 지진, 기근과 전염병 그리고 무서운 일들과 하늘의 큰 징조”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눅21:20-11). 한편, 예수님께서는 그날의 도래하기 전에 몇 가지 징조도 함께 나타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것은 첫째로, 무화과나무에 싹이 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마24:32). 이것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으로 1948년 5월 14일에 이미 성취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그리스도로 가장한 적그리스도의 출현 및 이스라엘의 평화조약과 성전제사의 회복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단9:27, 마24:15). 이때 등장할 적그리스도는 로마제국의 왕들 중의 한 사람으로 등장할 것인데(계17:8-14), 벌써 올 해 1월 1일에 로마제국의 후예들인 유럽연합의 대통령이 선출된 상태이므로, 곧 있으면 적그리스도의 출현이 있을 것으로 내다보입니다. 또한 성전제사에 대해서도 이스라엘 당국이 작년부터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상태에 있기 때문에, 곧 성전제사의 회복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그 날을 주의하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눅21:34-36).
2)그 날에 무슨 일이 있을 것인지 주의하면서 생활해야 하는데, 성경은 그 날에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롬14:10~12).
우주적인 종말의 날을 준비하지 못한 자는 그 날이 밤의 도적처럼 임할 것이며, 덫과 같이 임할 것입니다. 즉 우리가 그 날을 주의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그 날에 주님께로부터 큰 책망을 받을 뿐더러, 그 날에 임할 주의 영광에 거룩한 신부로 동참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눅21:34-36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35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또한 그 날은 ‘심판의 날’이 될 것이라고 성경은 경고합니다(롬14:10~12).
롬14:10-12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12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사실 우주적인 심판의 때는 인간의 한 순간을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한 인간이 태어나서 살아온 전 과정을 심판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모든 사람들은 주님 앞에 불려가서 자기가 살아온 지난 날들의 삶에 대해 주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심판의 날에, 어떤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받기도 하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날에 오히려 책망을 듣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도 그 우주적인 종말의 때도 함께 준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3. 우주적인 하나님의 때에 칭찬듣는 사람이 되려면?
그렇다면 우주적인 하나님의 때에 칭찬듣고 상을 받는 거룩한 신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입술로만 “주여, 주여”라고 외칠 것이 아니라 언행일치의 신앙생활 즉 행함이 있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마7:24).
마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둘째, 돈보다는 주님을 내 삶의 최우선 순위에 두면서, 주님 때문에 고난받는 것까지 두려워하지 말고,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마6:24,행14:22).
마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행14: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셋째, 어찌하든지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라도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하며 날마다 증인된 삶을 계속 살고 있어야 합니다(마24:14).
마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달란트대로 충성하여, 자신에게 맡긴 직무에 충성봉사해야 합니다(마25:21).
마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이제 총 결론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때를 누리며 사는 축복된 삶을 살아야 할 뿐만 아니라 하늘의 우주적인 종말의 때에 가서도 복을 받을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이제부터라도 그 날을 향해 믿음으로 전진해 가는 성도가 됩시다.
< 축복기도와 축사 >
이제 제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축복기도와 축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관련사항을 이야기하면, 그 자리에서 일어서주십시오. 순종할 때 복이 임합니다.
1. 육체의 약함이 있는 분들 - 약한 부분에 성령이 함께하시는 자기의 손을 얹으십시오.
“하나님 우리 육체의 약한 부분에 손을 얹었습니다. 주의 손이 내 손이 되어 이 약한 부분을 고쳐주시옵소서.” “제가 이제 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모든 질병을 낫게 하기 위해 십자가의 모든 고통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1)두통, 치통, 생리통은 고쳐질지어다.
2)머리와 뇌와 목과 관련된 모든 질병은 깨끗이 고쳐질지어다.
3)각종 암덩어리는 쪼그라들고 없어질지어다. 기억상실증은 회복되고, 어눌함은 고쳐질지어다.
4)축농증은 사라지고, 아토피는 깨끗해질지어다.
5)허리 디스크는 재생되며 뼈는 제 위치로 돌아갈지어다.
6)여자의 자궁과 남자의 요도와 방광과 그리고 심장혈관계 질환은 고쳐질지어다.
7)고혈압은 내려가고 저혈압은 정상을 되찾을지어다.
8)피는 맑아지고 통증은 감소되며 심장박동은 정상이 될지어다.
9)무릎과 관절과 허리와 목뼈에 있는 물렁뼈는 재생되고, 통증은 사라질지어다.
10)육체의 질병을 일으키는 모든 귀신들아, 우리 성도들에게서 떠나갈지어다. 물러갈지어다.
11)정신적 육체적 심리적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모든 요인들은, 우리 성도들에게 떠나갈지어다.
12)시력은 좋아지고, 시신경이 회복되며, 눈은 밝아지며, 평행감각은 회복될지어다.
13)당뇨와 합병증은 치료되고, 신부전증은 고쳐질어다. 이제 병에서 완전히 놓여 건강할지어다.
2. 자녀와 가정에 문제가 있는 분
“오 하나님, 우리 자녀들과 가정을 위해 기도합니다. 내 손에 있을 때에는 내 맘대로 했으나 이제는 우리 자녀가 내 것이 아니오니, 주여, 우리 자녀들을 맡아주시옵서. 또한 상처로 얼룩진 우리 가정을 치료해 주시옵소서.”
“내가 나사렛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1)부모의 마음과 멀어진 자녀는 그 마음이 가정으로 돌아올지어다.
2)깨어진 가정은 하나되고, 불협화음은 제거되며, 시기와 미움은 사라질어다.
3)불화를 일으키고 불신을 조장하는 모든 악한 영들은 우리 성도들의 가정에서 떠나갈지어다.
4)자녀들은, 날마다 하늘의 지혜와 명철이 임할지어다.
5)자식들은,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해야할 도리를 깨닫고 주님께 헌신할지어다.
6)자녀들에게는 좋은 친구가 붙고, 훌륭한 선생님을 만날지어다.
7)결혼 못한 자녀는 배우자를 만나 결혼할지어다.
8)우리 교회 자녀 중에서 세계를 움직일 지도자가 배출될지어다.
3. 사업장이나 물질에 기도제목을 갖고 있으신 분
1)세상에 흩어진 모든 물질에게 내가 주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우리 성도들 사업장으로 몰려올지어다.
2)하늘의 천사들아, 물질을 모아 우리 성도들의 사업장에 쏟아부을지어다.
3)성도들에게 물질의 궁핍함은 사라지고, 재물의 풍성한 축복이 임할지어다.
4)거래처는 늘어나고 일감은 생겨지며, 지금의 십일조는 배로 늘어날지어다.
5)기업의 황충은 사라지고, 좀먹는 악령은 떠나가며, 날마다 돕는 손길은 붙을지어다.
“오, 주님 나의 육체적 약함을 고쳐주시니 감사드립니다. 가정에 화목을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사업장에 물질에 넉넉함에 허락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말씀대로 믿고 살겠사오니, 역사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