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특별새벽집회 주제:“갈멜산 제단 위에 불로써 응답하신 하나님(왕상18:36~38)” | ||
| [제목] 기도, 그 무한한 능력 | [찬송] 찬361장 기도하는 이 시간 |
| [말씀] 누가복음 11:9~13(신약 111면) | 2014.3.2(일) |
하나님의 자녀인 믿는 자들에게는 장자권이 있습니다(약1:18). 이 장자권은 크게 축복권과 명령선포권으로 나뉘어집니다. 이러한 축복권과 명령선포권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 이름을 통하여 행사할 수 있는 권리들입니다. 다시 말해 이것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죄용서받고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다음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행할 수 있는 권리인 것입니다. 특히 이러한 권리 중에서 ‘축복권’은 자신의 영육간의 자녀와 동물 및 나무와 채소 등을 축복하는 일에 사용하는 것이라 한다면, ‘명령선포권’은 대부분 마귀 사탄과 귀신들 즉 생명을 파괴하고 질병을 가져다 주며, 온갖 저주와 가난을 몰고 오는 영적 세력을 향해 사용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마17장에 나오는 변화산 아래에 있었던 9명의 제자들처럼 믿음이 약할 경우에 귀신들은 믿는 자들의 말에 복종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마17:16). 그때 주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이유를 말씀해 주셨는데, 마태복음에서는 그들이 믿음이 약해서라고 말씀하셨고(마17:20), 마가복음에서는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그런 종류가 나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막9:29). 이는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장자권을 제대로 사용하려면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져야 하며, 그것을 갖기 위해서는 ‘기도’가 필수적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자녀된 권세를 힘있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매일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져야 하며, 날마다 기도의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한편, 우리가 기도생활을 하지 않고 마귀를 대적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요? 그때에도 물론 귀신들은 쫓겨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쫓겨나는 것은 그들이 우리의 능력을 보고서 쫓겨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이름의 권세 때문에 쫓겨나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쫓겨나가면서 그들은 이렇게 이를 악물며 다짐할 것입니다. “좋다. 지금은 네가 말하는 예수 이름 때문에 떠나가지만, 앞으로 나한테 걸려들기만 해 봐라.” 귀신들이 그때부터 다음 기회를 벼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다가 만약 우리가 범죄라도 하는 날에는 귀신들은 가만히 있지를 않을 것입니다. 그것을 빌미로 즉시 치고 들어오게 됩니다. 처음에는 예수 이름 때문에 나갔던 그들이라도, 우리들이 죄를 짓는 순간 즉시 더 악한 귀신들을 데리고 들어와서 우리를 더 힘들게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마12:43~45). 왜냐하면 죄를 짓는 자는 다 마귀에게 속하기 때문입니다(요일3:8).
그래서 하나님의 장자권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가 영적 생활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도생활’과 아울러 ‘회개생활’과 ‘말씀생활’을 병행해 나가야 합니다. 기도생활을 하지 않게 되면 성령의 능력을 받을 수도 없을 뿐더러(눅11:13, 눅24:49, 행1:8), 죄를 짓고도 회개를 하지 않게 되면 귀신들의 공격을 막아낼 재간이 없으며(행2:38, 약4:7), 말씀이 아니고서는 사탄마귀를 대적할 무기를 가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엡6:17).
특히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서 기도생활은 성령을 충만히 받는 유일한 통로가 되며, 더불어서 성령께서 공급해주시는 능력을 받아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통로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결단코 기도생활을 게을리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자, 여기 주님의 모범된 기도생활과 그 능력을 보십시오.
눅5:16-17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17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오늘날 우리가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에 있어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사실 아무 것도 업습니다. 단지 예수께서 행하신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때 우리는 무엇을 얻게 될까요?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칭의)’를 얻게 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때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義)’를 가졌다 할지라도 그것이 응당 우리를 천국에까지 이끌어주는 에스컬레이터가 될 수는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은 ‘행위로 말미암는 의(義)’를 수반하고 있는 것이라야 하기 때문입니다(약1:22,2:14,21-26).
약1: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약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약2:21~22,26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다시 말해 믿음을 갖게 된 자는 지금 막 구원의 여정을 시작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는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믿음으로 유월절 예식을 지켜 자기 집의 문설주와 좌우인방에 어린양의 피를 발라 장자죽음의 재앙을 면하고 애굽에서 탈출했다 하더라도, 광야로 나왔던 그들 대부분이 약속에 땅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에 원망불평하다가 가나안땅에 못 들어갔던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광야에 나왔던 출애굽 1세대들은 단 한 사람도 구원을 받지 못했다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유1:5, 히3:18~4:1).
유1:5 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이처럼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비록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는 얻었지만 그것을 끝까지 간직하지 못했습니다. 행함이 없는 온전치 못한 믿음만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끝까지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가 받은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하겠습니다(빌2:12).
한편, 이러한 구원의 여정과는 달리 기도생활은 믿는 자들의 시간과 땀과 믿음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영역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대신 해주는 것도 아니요, 우리를 돕는 천사들이 대신해 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렘33:2~3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오늘 말씀에 보더라도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찾는 자로 하여금 찾도록 도와주시겠다고 말씀하셨으며,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 열어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우리가 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때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에게 뭔가를 주실 수가 없으며, 찾도록 도와주실 수도 없으며, 문 또한 열어주실 수도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엄연한 영계의 법칙입니다.
그럼, 우리가 기도하면 주님은 과연 무엇을 주십니까? 주님께서는 분명 ‘좋은 것’(마7:11)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기도의 복음서인 누가복음에서는 ‘좋은 것’을 ‘성령’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눅11:13).
눅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누가복음의 저자는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반드시 ‘성령’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성령’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그 성령은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강림하셨던 성령 즉 인격을 지니신 성령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령’이란 단어에 정관사가 붙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말은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모든 것들 즉 능력이나 병고침 그리고 하늘의 지혜나 건강이나 예수님의 성품 같은 것들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저 하늘창고에서 가져다 주실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좋은 것들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행2:38). 그것이 어떤 자에게는 방언이 될 수도 있고, 성령충만이 될 수도 있으며, 병든 자를 고칠 수 있는 능력이 될 수도 있으며, 어떤 강한 귀신이라도 단 번에 쫓아낼 수 있는 능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장자권을 사용해 마귀사탄과 귀신들에게 선포하고 명령하면서도 반드시 기도로서 성령의 능력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그들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기도하면서 장자권을 사용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기도할 때에는 생각나는 모든 죄들을 회개하면서 장자권을 발동시켜야 합니다. 이번 특별새벽집회에서는 기도를 통해 이 장자권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능력을 받는 특별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특별새벽집회에서는 구약과 신약에 나오는 성경등장인물들은 과연 어떻게 기도하였고, 어떻게 성령의 능력을 받아서 사역하였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입니다. 우리가 알 것은 비록 성경에 등장하고 있는 인물이라 할지라도 다 우리와 성정이 똑같은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그들도 약한 면과 부족한 면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은 모든 것을 기도로 뚫은 사람들입니다. 그랬더니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을 받아서 힘입게 사역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것은 누가 대신해 주지 않습니다. 남에게 맡길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새벽을 깨웁시다. 기도하여 능력을 받읍시다. 그래서 장자권을 사용하자마자 장자권이 즉시 발동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14년 3월 특별새벽집회 주제: “갈멜산 제단 위에 불로써 응답하신 하나님(왕상18:36~38)” | ||
| [제목]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 기도 | [찬송] 찬399장 어린양들아 두려워말아라 |
| [말씀] 열왕기상 18:30~40(구약 548면) | 2014.3.3(월) |
갈멜산에 전운이 감돕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이야기 가운데 갈멜산의 전투처럼 확실히 우상을 섬기는 어떤 집단과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양대 진영으로 나뉘어져 첨예하게 대립하여 싸우는 경우는 흔치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양대 진영이 사용하는 무기는 칼이 아닙니다. 이들은 지금 기도로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사실 영계 싸움의 축소판입니다. 한 쪽 편에서는 바알신에게 기도를 드리고 있고, 한 쪽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에게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한 쪽에서는 한 나라의 국왕과 450명의 사람들이 똘똘 뭉쳐 있고, 다른 한 쪽에서는 혈혈단신 한 사람이 그들과 맞서고 있습니다. 과연 이 전투는 과연 어떻게 끝이 날까요?
B.C.931년 통일왕국이었던 이스라엘 나라는 두 동강이가 납니다. 하나의 나라였던 이스라엘이 통일왕국 3대만에 르호보함왕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하여 10개의 지파가 떨어져 나가더니, 북이스라엘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남겨진 2지파 즉 유다지파와 베냐민지파는 땅덩어리로 봐서는 비록 북쪽보다는 작았지만 거기에는 하나님의 성전이 위치하고 있었기에 정통성은 남유다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북이스라엘은 비록 땅덩어리도 크고 백성과 군사들의 숫자도 단연 우세했지만 북이스라엘에는 제사드릴 예배처소가 없었기에 늘 혼돈스러웠습니다. 그러자 북이스라엘의 초대왕이었던 여로보암은 북쪽의 위쪽와 아래쪽 즉 단과 벧엘 2개 지역에 큰 제단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송아지의 형상을 세워두었습니다(왕상12:29~32). 그리고 북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남유다로 내려가지 말고, 그 형상을 하나님으로 섬기라고 강요했습니다. 하지만 일찍이 십계명을 통해 우상은 만들지도 말아야 하고 그것을 절하거나 섬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북이스라엘의 경건한 사람들은 단과 벧엘에 가서 제사하지 않았고, 북이스라엘에 위치한 높은 산에 돌로 제단을 쌓고 거기에서 알게 모르게 제사를 드리곤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나라가 두 동강이 난 지 57년째 되던 해에에 북쪽 10지파에도 엄청난 폭풍이 몰려왔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제7대왕으로 등극한 아합이 북방민족인 아람왕 벤하닷의 공격을 막아볼 속셈으로 시돈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시돈’이라는 나라는 당시 바알신을 주신(主神)으로 섬기고 있었기에 아합왕은 왕비를 위해 북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에 바알신전을 세워주었고, 그 신전 앞에 바알의 제단까지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러니 이세벨 왕비는 북이스라엘의 공식 신으로서 바알신을 선포하기에 이르렀고, 각 도시와 지방마다 바알선지자와 그리고 바알의 아내격인 아세라신을 섬기는 선지자들을 두어 그 우상을 섬기게 했습니다. 그리고 높은 산에서 암암리에 제사드리던 여호와를 위한 제단들을 다 헐어버렸습니다. 그때, 샤론평야가 내려다보이는 갈멜산에 있던 하나님의 제단도 그만 허물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때 그 제단과 함께 주님의 마음도 같이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믿음이란 주님의 마음을 읽는 것입니다.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북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바알신을 섬기는 나라가 되는 아주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에 커다란 기근을 내립니다. 무려 3년반 동안이나 이슬 한 방울이 내리지 않는 징계를 내렸습니다. 이렇듯 우상숭배와 같은 죄들은 반드시 징계를 불러옵니다. 혹시 우리의 삶에 어떤 기근이 있습니까? 우리로부터 죄를 찾아내서 그것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러자 아합왕은 북이스라엘에 불어닥친 기근의 원인을 엘리야 선지자에게 돌렸습니다. 엘리야 선지자 때문에 바알신이 노여워하여 비를 주시지 않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방방곡곡에 방을 붙여 엘리야 선지자를 잡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를 꼭꼭 숨겨주시어 발각되지 않게 했습니다. 이제 3년이 지나던 어느 날, 아합왕은 물의 근원을 얻기 위해 자신의 충성스런 신하 오바댜와 더불어 나라를 나누어 물을 찾아보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물근원을 찾으러가던 오바댜가 가다가 그만 엘리야 선지자와 마주치게 됩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아합왕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결국 오바댜는 아합왕에 이 사실을 고하였고 아합왕과 엘리야가 드디어 외나무 다리에서 마주치게 됩니다. 그러자 아합왕이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로다” 그러자 엘리야가 대답합니다.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집안이 이스라엘로 기근이 들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고 바알신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을 보내어, 과연 누가 섬기는 신이 참 신이며, 어느 신이 단비를 주실 수 있는 참 신인지를 가려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가서 바알선지자 450명과 아세라선지자 400명을 데리고 갈멜산으로 오십시오.”
겉으로 보기에 이 영적 전투는 보나나마 바알신과 아세라신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알선지자 450명에게는 그들의 든든한 후원자 이세벨 왕비가 있었고 그의 남편 아합왕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며, 숫자적으로도 많기에 엄청난 분량의 기도를 드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온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모든 악한 천사들까지 지배하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양 진영의 기도의 결과는 정반대로 끝이 났습니다. 바알선지자들은 아침부터 송아지를 잡아 제단 위에 올려놓고 기도를 드렸지만 그들이 믿는 바알신은 응답하지 못했습니다. 그 신은 처음부터 없던 신이었고, 악령들이 미혹하여 흉내내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직접 그 전투에 개입하셨기 때문입니다. 점심을 지나 한참이 되었어도 아무런 반응이 없게 되자, 바알선지자들은 자신의 몸을 칼로 베어서 피를 흘려가면서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기도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진짜입니다.
이제 저녁소제 제자드릴 무렵이 되자, 엘리야 선지자가 일어나 말합니다. “백성들이여, 이리로 오십시오.” 가까이 가서 보니 거기에는 이세벨왕비가 무너뜨린 여호와의 제단이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그것을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보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의미하는 12개의 돌을 취하여 제단을 다시 쌓았습니다. 드디어 눈물로 수축한 제단 위에 드디어 제물이 올려졌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곡식 종자 15리터들이 항아리 4개에 물을 담아다가 제물과 나무에 부으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말입니다. 그러자 물이 도랑에 넘쳐 흐릅니다. 그때, 엘리야는 아주 짧지만 아주 강력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왕상18:36-37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그러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맨 처음 아론이 제사장으로 기름부음을 받아 첫제사를 드렸던 때처럼 즉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과 나무와 도랑의 물까지 다 핥아버렸습니다. 결국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섬겨야 할 참신은 바알신이 아니라 여호와인 것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입니다. 이에 거기에 참여했던 450명의 바알선지자는 잡혀가 기손강가에서 다 죽임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날 큰 먹구름이 일어나더니 장대와 같은 비가 북이스라엘 땅에 적셨습니다. 이처럼 죄가 사라지면 징계도 같이 사라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의 기도를 들으실까요? 그리고 어떻게 기도를 드려야 채 5분도 되기 전에 응답해주실까요? 오늘 본문 말씀에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영적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 하나님은 어떤 사람의 기도를 들으실까요?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진 자의 기도를 들으십니다(약1:5~8). 만약 엘리야에게 이런 믿음이 없었다면 어찌 혼자서 450명의 바알선지자들과 겨룰 수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어찌 철철 넘치도록 제단과 제물에 물을 부으라고 했겠습니까? 또한 하나님은 믿는 대상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믿음을 가진 사람의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열심으로만 따진다면 바알선지자가 더 낫습니다. 그들은 아침부터 저녁소제드릴 때까지 무려 9시간이나 기도에 전념했으며, 무려 450명이 뛰면서 합심하여 기도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많은 시간과 많은 사람이 함께 드리는 기도를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유일한 주권자이심을 절대적으로 믿는 자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어떤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살아계심과 영광을 드러내는 기도에 응답해주십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의 응답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던 것을 버리고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는 일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십니다. 갈멜산에는 허물어진 제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단이 다시 세워지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산들 중에서 왜 하나님께서는 굳이 갈멜산으로 사람들을 모으라고 했을까요? 이렇듯 하나님은 주의 뜻을 알고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해 드리는 기도에 주의를 기울이십니다. 사실 기도란 내 뜻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요청하는 것이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응답받는 기도란 그 기도가 하나님을 드러내는 기도여야 합니다.
2014년 3월 특별새벽집회 주제: “갈멜산 제단 위에 불로써 응답하신 하나님(왕상18:36~38)” | ||
| [제목] 그는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다 | [찬송] 407장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
| [말씀] 사무엘상 16:6~13(구약 434면) | 2014.3.4(화) |
어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그분의 뜻을 이뤄드리기 위해 기도했던 엘리야의 기도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기도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첫째는 지금 내 앞에 있는 문제의 결과만을 놓고 그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떼쓰며 기도할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당면한 문제의 원인이 과연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둘째, 지금 내가 가진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하나님은 과연 의 어디에 그 마음을 두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무조건 기도부터 시작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과연 그동안 얼마나 기도하려고 시도해보았습니까? 하지만 그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하지만 엘리야는 북이스라엘의 기근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살펴보았고, 그시간 하나님은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신앙을 떠나 바알신앙으로 변질되는 것에 대해 얼마나 마음 아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도 비록 짧은 시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기도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엘리야가 드린 기도 가운데 그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갈멜산 제단을 불로써 태워버린 그 놀라운 응답이 어떤 것에서 기인한 것인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열왕들의 역사를 읽어보면 참으로 놀라운 말씀들을 만나게 됩니다. 특히 남유다의 13대왕 히스기야 왕 때에 일어난 커다란 2가지 사건들 속에서, 하나님께서 그 히스기야왕의 기도를 들으시고 초자연적으로 응답해주신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살펴봅시다.
왕하19:34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였더라
왕하20: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위의 2가지 사건은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해주신 이유에 대해 통일왕국의 2대왕이었던 다윗왕을 위하여 예루살렘성을 대제국 앗수르로부터 건져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왕하19:34). 또한 그가 죽을 병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다윗과 함께 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히스기야의 생명을 15년동안이나 연장해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왕하20:5). 대체 다윗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기도를 드렸길래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성을 보호해 주시고, 하나님은 자신에 대해 소개하기를 나는 “너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엘리야의 기도와 거의 흡사합니다.
신약성경에 다윗에 대해서 소개하는 말씀을 보면 ‘그는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행13:22). 그는 신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참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도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계실 때에 당신에 대한 호칭으로서 ‘다윗의 자손’이라는 호칭을 기뻐하셨고 또 그렇게 불렀던 모든 사람들의 문제를 다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하나님께 아뢰기 전에 우리는 나 자신이 과연 어떤 사람인지부터 살펴야 합니다. 당신은 과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입니까? 히스기야 당시 다윗이 죽은지 약 270년이란 세월이 흘러갔지만 하나님의 마음에는 다윗이 지워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청을 거의 다 들어주셨습니다. 때로는 그가 실수하고 잘못을 저질러 징계를 하셨을지라도 하나님은 다윗을 기뻐하시고 다윗을 위해 하늘의 창고를 열고 그에게 복을 주셨던 것입니다. 사실 신구약에 등장하는 시대 가운데 다윗시대처럼 태평성대를 이룬 시대는 없었기에 지금의 이스라엘나라도 다윗의 왕국을 꿈꾸고 있을 정도입니다.
다윗이 처음으로 등장했던 순간을 보면, 참으로 그가 어떤 사람이었으며, 그가 평소에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를 우리에게 잘 말해줍니다. 그의 이야기는 삼상16장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다윗은 그때 그의 아버지 이새의 8번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그는 그의 집안에서 완전히 소외되어 있는 존재였습니다. 왜냐하면 사울왕을 버리시기로 작정하신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보내 차기 왕을 간택하는 자리에 다윗은 끼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사무엘이 말했습니다. “이새여, 여기, 7명의 아들들 말고 또 다른 아들은 없소이까?” 그러자 이새가 말합니다.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는 자일뿐입니다.”(삼상16:11). 그는 흔적조차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의 정말 이새의 아들로서 합당한 위치에 있었다면 그 중요한 순간에 왜 자기 아들을 불러들이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몇몇 성경학자들은 다윗을 서자출신이 아니었나하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다윗을 없는 사람 취급해 버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선을 보는 그 순간에도 들에서 양떼나 쳐야했던 존재감 없던 다윗, 그가 장차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사람이 될 줄이야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중에 혹시 여러분이 속한 공동체에서 다윗과 같이 존재감이 없습니까? 용기를 가지십시오.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의 모든 것을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외모와 신장으로 평가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그럼, 아버지의 생각 속에 자식의 명단에도 들지 못했던 다윗을 왜 하나님께서는 그리도 기뻐하시며 그를 왕으로 세우시고, 수 천 년이 흐르도록 그의 이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리고 그의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고 그의 기도에 응답해주신 것입니까? 오늘 본문말씀에 의하면 그는 다음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첫째, 그는 누가 보나 안 보나 무슨 일에든지 충성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그날도 양떼를 지켰습니다. 장성한 형들은 결코 행하지 않는 궂은 일들을, 힘에 겨운 일이었지만, 그는 그가 하는 일에 불평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날마다 그 일을 성실히 수행했던 것입니다.
둘째, 그는 어디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삼상16:18~19,23). 그는 외톨이처럼 집에서 멀리 떠나왔지만 들판마저 하나님의 예배처소로 바꾸어버렸습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만든 악기를 연주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가 목동 일을 하면서 불렀던 대표적인 찬송을 혹시 아십니까? 바로 시편23편입니다.
셋째, 그는 하나님만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삼상17:26,36,45). 그러므로 그에게는 하나님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린 나이였지만 큰 이빨로 양떼를 물어가는 사자나 곰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키가 290cm인 블레셋의 전사 골리앗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구요? 그는 엘리야 선지자처럼 살아계신 하나님만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하나님은 명목상의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살아계셔서 지금도 일하시는 분임을 철저히 믿었던 것입니다.
삼상17:36-37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37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누구의 기도는 그리도 잘 들어주시면서 내 기도에는 왜 이리도 인색하십니까?”라고 말하기 전에, 우리는 우리의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과연 나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인가? 맨날 사기꾼처럼 살던 사람이 느닷없이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받는다면, 그 사람은 그것을 이용하여 또 다른 사람에게 사기를 칠 것이 뻔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먹 칠을 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기도하기 전에 우리도 “내가 과연 지금 하나님 앞에 어떤 사람인가?”를 살펴보십시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내 자신이 어떠한 사람이었는지를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깨닫게 해주시는 것이 있다면 목놓아 회개하십시오. 내가 이렇게 나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또한 내가 이렇게 부정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솔직히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내가 이렇게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이었음을 말씀드리십시오. 내가 평소에 하나님을 얼마나 무시하며 살았는지도 고백하십시오. 내가 평소에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살았는지를 회개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심령은 조각조각난 상한 심령이라고 말했습니다(시51:17). 하나님은 결단코 여러분의 가증한 입술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결단코 여러분의 얄팍한 속임수로 주님을 이용하려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회개하십시오. 여기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 심령을 향해 외치시는 주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들어보십시오.
사1:3~4 나귀나 소 같은 짐승도 제 주인을 알아보는데, 자기를 보살피는 주인에게 고마워하는데, 이스라엘은 그것도 모르는구나. 내가 무슨 일을 해주어도 내 백성은 아랑곳하지 않는구나. 4 오 범죄한 백성이여, 아 서글프구나. 죄짐에 눌리어 허리를 굽히고 걸어 다니는 족속이여 ! 너희 조상들도 하는 짓마다 죄악뿐이더니 너희도 하는 짓마다 그뿐이로구나. 그저 주님에게 등돌리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우습게만 아는구나(현대어성경).
회개합시다. 뭔가 달라고 기도하기 전에 우리의 삐뚫어진 마음부터 돌이킵시다. 주님말씀에 충성하지 못했던 것, 원망불평으로 살아왔던 것,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못했던 것을 회개합시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내가 회개하나이다. 내가 회개합니다.” 아멘.
2014년 3월 특별새벽집회 주제: “갈멜산 제단 위에 불로써 응답하신 하나님(왕상18:36~38)” | ||
| [제목] 그분의 이름과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구하라 | [찬송] 찬70장 피난처 있으니 |
| [말씀] 이사야 45:20~25(구약 1024면) | 2014.3.5(수) |
하나님은 어떤 기도에 응답하실까요?
첫째는, 엘리야의 기도처럼, 왜 지금 자신에게 문제가 발생했는지 그 이유를 파악한 다음, 거기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찾아 하나님의 마음을 만지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한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즉시 응답하십니다. 엘리야는 3년 기근이 북이스라엘의 우상숭배의 죄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알았기에, 북이스라엘에서 바알신을 없애고 우상숭배자를 없애는 것만이 북이스라엘을 기근에서 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북이스라엘도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어 복을 받고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갈멜산의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면서 알았습니다. 이러한 종류의 기도는 또한 엘가나의 아내였던 한나의 기도에서도 발견하게 됩니다(삼상1:5~6, 27~28). 한나는 둘째부인이었던 브닌나에 비해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매년 절기 때마다 남편을 따라 여호와의 성소에 올라가서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자식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하나님의 눈물과 하나님의 마음을 만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해버린 엘리제사장 가문 때문에 마음 아파하시고 당신의 뜻을 이뤄 줄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만약 자기에게 아들을 주신다면 그 자식을 먼저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곧 그녀는 임신하였고 자식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가 바로 ‘사무엘’이라는 선지자이며,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았기에 하나님은 그녀에게 그 뒤로도 3남2녀의 자식을 더 주셨습니다.
둘째, 다윗이나 히스기왕처럼 평상시에도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삶을 살다가 중요한 순간에 하나님에게 간구할 때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충성된 자였습니다. 다윗은 무슨 일이든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는 자였습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이 전능자이심을 굳게 믿었습니다. 히스기야왕도 그랬습니다. 히스기야왕은 오직 여호와만이 참된 신이라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다윗의 길로 행하였습니다. 그 나라에서 돌로 만든 것이든, 나무로 만든 것이든, 부어서 만든 것이든 모든 우상을 다 제거해 버렸고 여호와만 의지했습니다(왕하18:3-7).
왕하18:3-7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4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5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6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7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하지만 우리들의 삶은 어떠합니까? 주님의 보시기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는 최소한 자신의 허물을 솔직히 고백하여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기도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은 기도가 곧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줍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즉각적인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친밀하게 가지는 것이 더 급선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기 전까지는 아예 주님께 간구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무릎 꿇으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회개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도 오늘 이 자리에 나온 줄로 믿습니다.
이제 우리가 세 번째로 살펴볼 것은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비는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의 영광을 위해 일하시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기도의 원본이요 기도의 교본이라고 불려지는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마6:9-10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당신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의 관심은 언제나 저 하늘에서처럼 이 땅에서도 당신의 이름이 존중히 여김을 받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과 영광을 우상에게 결코 주지 않으십니다(사48:12). 그래서인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왕국이 이 세상에 펼쳐지는 것을 매우 기뻐하십니다. 사탄마귀의 통치가 끝나고 하나님의 통치가 이 세상에서도 이루어지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는 일입니다.
사실 이 세상 나라는 아담의 타락직후 사탄마귀에 의해 접수되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항상 사탄이 지배하고 있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자들이 사탄마귀의 정체를 모르고 그를 따라가는 것을 안타까이 여기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따라가서는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하십니다. 하지만 사탄마귀는 연약한 인간들 위에 군림하면서 자기가 신(神)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사탄마귀와 귀신들의 권세가 무너지고 하나님의 통치가 이 세상에 임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사탄마귀와 귀신들은 다 타락한 천사들에 불과한 존재요, 그들은 결단코 신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는 일에 관심 갖고 계십니다. 그래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된 신으로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가 되시며, 당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는 아름답고 영원한 하늘의 처소를 예비하고 있음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당신의 이름이 세계 위에 알려져서, 그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세상 사람들이 구원받고 천국가는 것을 매우 매우 기뻐하십니다. 그래서인지 하나님께서는 항상 당신의 이름이 모욕을 받는 것에 대해서 결단코 좌시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율법의 가장 핵심말씀인 십계명에도 그것을 아예 계명 중 하나로 명시해 두셨습니다. 그렇게 살면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출20:7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이처럼, 우리가 기도를 드렸는데 100% 응답이 있는 경우는 다 하나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되고 모든 피조물 위에 하나님의 이름이 뛰어난 이름으로 알려지며, 하나님만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신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하는 기도입니다. 그것은 엘리야의 기도에서도 여실히 증명됩니다.
왕상18:36-39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39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또한 다윗의 기도와 외침 속에도 하나님의 이름과 그분의 영광은 계속해서 나타납니다.
삼상17:45-47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이 선언과 기도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골리앗은 다윗이 던진 돌멩이 하나에 그만 이마가 뚫려서 앞으로 엎드려지고 말았습니다. 골리앗은 몰랐습니다. 자기가 알고 있던 블레셋의 신이 최고의 신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온 우주만물을 지으신 전능한 창조주이심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가 믿고 있는 신들은 다 타락한 천사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흉내를 내고 있는 가짜 신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가 그것을 섬기는 것은 곧 우상숭배의 죄요, 그것은 곧 저주를 불러오고, 죽어서는 지옥에 들어가는 형벌을 받게 한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려다가, 오히려 다윗이 던진 작은 돌멩이 하나에 이마가 깨져서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당신의 이름이 온 세상 가운데 유일한 주로 선포되기를 기뻐하십니다. 당신만이 온 우주 가운데 참된 신이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시는 전능자이심을 드러내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이때까지 우리의 기도는 어떠했습니까? 하나님만이 참된 신이요, 하나님만이 살아 역사하시는 전능하신 분임을 드러내기 위한 기도였습니까? 아니면 자기를 자랑하기 위한 기도였습니까? 이제는 하나님의 이름이 존중히 여김받도록 말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이 존중받으시도록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그러한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그러한 기도에 초자연적으로 개입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고 있는데도 침묵하는 자는 하나님을 믿는 자녀가 아닙니다. 그들에게 담대히 말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라고 말씀하십시오. 당신의 기도는 이제부터 능력의 기도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2014년 3월 특별새벽집회 주제: “갈멜산 제단 위에 불로써 응답하신 하나님(왕상18:36~38)” | ||
| [제목] 네 안을 먼저 깨끗이 하라 | [찬송] 찬274장 나 행한 것 죄 뿐이니 |
| [말씀] 마태복음 23:25~28(신약 40면) | 2014.3.6(목) |
하나님은 어떤 기도를 기뻐하실까요?
하나님은 첫째, 자신에게 불어닥친 문제의 원인을 살피고 거기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드리는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둘째, 누가 보든지 아니 보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지 않고 거기에 기록된 대로 실천하며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하는 자의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셋째, 하나님은 이 온 우주 가운데 오직 하나님만이 살아계신 참 신이심과 그분의 영광과 이름을 드러내는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분노와 한(恨)이 있으며, 하나님에게도 간절한 소원이 있는데, 그것을 알고 그것을 이뤄드리는 기도를 우리가 드리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말이죠.
이제 네 번째로 살펴볼 것은 하나님께서는 저주와 재앙을 끊어버리기로 결단하는 자의 기도를 기뻐하시고 응답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도 하지 못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도 당신이 하신 말씀은 결단코 어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한 번 내뱉은 말은 반드시 실천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우주 가운데 하나님의 공의가 바로 설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악한 자를 벌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가장 안타까워하시는 것은 당신의 자녀라 할지라도 당신의 계명을 버리고 죄를 지어서 마귀의 밥이 되는 것입니다. 지은 죄로 인하여 온갖 저주와 질병과 가난에 떨어질 때 하나님께서는 피눈물을 흘리십니다. 이렇듯 이 우주 안에는 불변하는 영계의 법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만약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죄를 짓게 된다면 마귀가 그 사람에게 합법적으로 저주를 주고 재앙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어린 시절, 참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왕으로 등극하여 나라가 안정되고 모든 것들을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오르게 되자, 그만 그도 죄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충성스런 부하장수였던 우리야의 아내를 범하여 간음죄를 저질렀으며, 밧세바의 남편을 전쟁터의 최전선에 보내어 죽게 하는 살인교사죄를 범했습니다. 하지만 영의 세계에서 다윗의 죄는 결코 숨겨질 리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던 다윗에게 하나님께서는 나단선지자를 보냅니다. 그리고 사탄이 그에게 재앙을 내릴 빌미가 제공되었음을 알려줍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삼하12:11,14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14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 하고
그렇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여호와의 원수인 사탄마귀로 하여금 크게 비방할 거리를 만들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달라고 구하기 전에,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온갖 저주와 재앙을 끊어버리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내가 지금 죄를 그치지 않고 있는데, 우리가 비는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신들 그것이 과연 내 수중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겠습니까? 예를 들어, 우상숭배의 죄를 짓지 말아야 할 텐데, 은밀한 곳이나 자신의 마음 속에 몰래 우상을 세워놓고 그것을 경배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과연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수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단9:10-13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부탁하여 우리 앞에 세우신 율법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11 온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범하고 치우쳐 가서 주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저주가 우리에게 내렸으되 곧 하나님의 종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맹세대로 되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12 주께서 큰 재앙을 우리에게 내리사 우리와 및 우리를 재판하던 재판관을 쳐서 하신 말씀을 이루셨사오니 온 천하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 같은 것이 없나이다 13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 모든 재앙이 이미 우리에게 내렸사오나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떠나고 주의 진리를 깨달아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얼굴을 기쁘게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노여움은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자손에게 부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을 섬겨야 할 주의 백성이 남몰래 은밀한 곳에 올라 가서는 바알신에게 분향하고 있었으며, 하늘의 여신 세미라미스에게 전제를 드리고 있었고(렘32:27~30), 우상을 섬기고 있는 이방여인들을 자신의 아내로 맞아들였기 때문입니다(스10:1~3).
그럼, 구하기 전에 먼저 재앙을 불러 들이는 일들을 그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우리가 하나님의 노여움과 분노를 살만한 일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아니, 지금의 시대에는 내가 무슨 죄를 짓고 있는지 이미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말씀하고 있으니, 그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고백하십시오. 둘째, 그 죄로 말미암아 나 자신 뿐만 아니라 내 자식과 내 가족과 내 민족까지 저주가 임하고 있음에 용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셋째, 현재가 우리가 짓고 있는 죄를 과감히 끊어버리십시오. 그래야 일평생 받을 저주에서 우리가 빠져나올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야 그때부터 우리가 구하는 것들을 우리가 다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 하면서도 지금까지 끊지 못하는 죄가 당신에게도 있습니까? 혹시 도박과 게임이나 음주같은 것에 빠져 있습니까? 아니면 음란과 사치, 향락, 쇼핑같은 중독에 빠져 있습니까? 아니면 매사에 불평불만으로 일관하거나 이 세상을 삐뚫어지게 바라는 보는 잘못된 시각 속에 빠져 있습니까? 이런 것들은 결코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않습니다. 또한 알면서도 끝내 놓치 못하고 붙들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주일이 되었음에도, 하나님을 등지고 세상에 나가 세상을 즐기려는 마음이 듭니까? 주일인데도 주님께 예배하지 않고, 낚시하고 골프치고 등산 다니는 자를 부러워하십니까? 어쩌다가 주님 앞에 와서는 “왜 하나님은 내 인생을 이렇게도 구속시키려 하느냐?”고 불평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취미생활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지만, 하나님의 얼굴을 뵈어야 할 주일에 다른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곧 우상숭배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로 인하여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온갖 저주와 가난과 질병과 비극적인 죽음이 우리 자신과 우리의 집안에 끊어지지 않고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출20:5).
사랑하는 주의 자녀들이여, 이제는 저주를 불러들이는 일들을 단호하게 끊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서 계신 성령께서 금하는 일들이라면 과감히 그치십시오. 그 일을 끝까지 끊지 못하고 있다가, 기도응답을 받기는커녕 회개치 못하고 죽는다면 곧바로 지옥에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이러한 죄들로 인해 징계만 받지 않고 살아도, 우리는 참으로 복을 받고 살 수 있습니다. 사탄이 주는 온갖 재앙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적어도 주님 부르실 그날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고, 게으르지만 않는다면 의식주의 문제는 해결할 수 있으며, 지혜로운 자가 되어 세상에 영향력을 주는 자로 살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 후반부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기도들을 보십시오. 에스라의 기도(스9:1~15)나 예레미야의 기도(렘32:16~44)나 다니엘의 기도(단9:3~19)를 살펴보면, 이들의 기도는 거의 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민족이 저지른 죄악을 회개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스9:10,13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의 계명을 저버렸사오니 이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 13 우리의 악한 행실과 큰 죄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당하였사오니...
그렇습니다. 회개가 먼저입니다. 내가 주의 계명을 저버리고 살아왔음을 고백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리하여야 사탄이 우리를 치고 들어오는 통로가 제거됩니다. 그래야 기도가 하늘에 상달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응답해주십니다.
그리고 보십시오. 이러한 간절한 회개와 돌이킴의 기도 후에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들이 비는 모든 기도에 다 응답해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회개기도는 기도의 심장부에 위치해 있습니다. 성전에 올라가 자신의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어느 세리의 기도처럼 우리는 먼저 우리의 잘못을 주님께 아뢰어야 합니다(눅18:9~14). 그래서 우리의 안을 먼저 깨끗이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용서받은 후에 기도해야 합니다. 그때에는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대로 구하십시오. 그러면 즉시 여러분의 모든 기도는 즉시 응답될 것입니다. 마음이 깨끗한 자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 성도들에게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2014년 3월 특별새벽집회 주제: “갈멜산 제단 위에 불로써 응답하신 하나님(왕상18:36~38)” | ||
| [제목] 하나님에게도 소원이 있다 | [찬송] 찬 505장 온 세상 위하여 |
| [말씀] 마가복음 16:14~20(신약 85면) | 2014.3.7.(금) |
하나님은 어떤 기도를 기뻐하실까요?
하나님은 첫째,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기도, 둘째,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가진 상태에서 드리는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셋째,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이름을 드러내는 기도를 기뻐하시며, 넷째, 회개를 통해 자기에게 붙어있는 저주와 재앙을 끊어내는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이제 다섯 번째로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응답해주시는 기도는 하나님의 소원을 이뤄드리는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모든 사람에게 소원이 있듯이 하나님에게도 소원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소원(뜻)에 대해 성경은 여러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도 있고(살전5:18), 자신의 영과 혼과 몸을 거룩하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살전4:3). 그러나 최종적인 하나님의 소원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은 인간이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지옥의 형벌을 면치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를 구원하러 아들의 모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사함을 받고, 성령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분배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죽은 다음에는 하나님이 셋째 하늘에 마련해두신 천국으로 들어가서 왕권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마18:14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요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사실 이 세상은 하나님을 반역하여 쫓아버린 사탄마귀와 귀신들을 가두는 감옥과도 같은 곳입니다(유1:6). 그러므로 주 예수님께서 재림하신 다음에 이 세상은 다 불에 태워 없애버리실 것입니다(벧후3:10~13). 그러면 이 우주는 거대한 불못으로 변할 것입니다(계21:8).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하든지 사탄이 가두어놓은 이 감옥에서 탈출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 이 세상을 탈출할 방법은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 세상에서 탈출할 방법이 있었다고 한다면, 저 우주 밖에 계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우리를 구출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실 리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까? 그것은 이 세상의 감옥에서 우리를 건져내어 출애굽시키려고 오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입니다(요6:38).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소원이 무엇인지 이 세상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상태가 어떠한 상태인지를 알려주고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려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은 죄값을 지불하기 위해 1차적으로 대속의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요19:30). 그리고 그후 하늘로 승천하사 죄사함을 받은 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써 2차적으로는 하나님 아버지의 생명을 믿는 자들에게 분배해 주셨습니다(요6:40). 그리고 우리가 이 육신의 생명을 마치는 날에는 우리에게 부활의 몸을 입게 하신 다음 하늘나라로 데려가십니다(요5:28~29). 우리는 하늘나라 곧 천국에 가서 이 땅에서 행한 대로 보상을 받게 되는데, 어떤 자는 별의 영광으로 어떤 자는 달의 영광으로, 어떤 자는 해의 영광으로서 하늘에서 왕노릇하게 될 것입니다(고전14:40~44, 계20:4~6).
그래서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을 이 세상에 먼저 보내셨습니다(요3:16).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자신의 뜻을 행한 것이 아니라 오직 아버지의 뜻만을 행하셨습니다(요5:30, 요6:38~39). 더불어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베이스캠프를 하나 마련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교회’라는 것입니다.
마16:18-19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그러므로 우리의 가장 큰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소원을 이뤄드리기를 원하는 기도여야 합니다. 반석 같은 믿음의 고백 위에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여기 그 소원을 이루어드리기 위해 비는 사도바울의 기도를 들어보십시오(엡1:17~19).
엡1:17-1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이렇듯 사도바울의 기도제목은 구약성도들의 기도제목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구약성도들은 하나님이 아닌 우상이나 가짜 신들을 하나님으로 알고 섬기는 죄에서 벗어나, 여호와 하나님만을 이 우주 가운데 참된 신으로 알고 그분을 섬기고 그분의 말씀에 따라 살게 해 달라는 기도요, 그렇게 살게 되므로 하나님께서 이 땅에 주시는 복을 누리게 해 달라는 기도였다고 한다면, 신약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미 하나님께서 열어서 공개해 놓으신 하나님의 소원을 나도 성취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사실 구약의 성도들은 이방인들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소원을 이뤄드릴 존재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비록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아브라함의 약속의 씨인 예수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그도 또한 성령을 받아 증인으로 쓰임받을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상관없이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순종하기만 한다면, 하나님의 약속에 참여한 바 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며, 함께 지체가 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엡3:6).
그리하여 사도바울은 우선은 자기 자신부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를 힘썼습니다. 그가 때로는 자기자신의 육체를 쳐 복종시키려 한다고 말했는데, 이는 남들에게는 복음을 전파해 주었지만 정작 자신은 구원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입니다(고전9:27). 그래서 그는 항상 겸손히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을 끝까지 걸어갔습니다(빌3:12~14). 결국 그는 관제를 붓는 날까지 믿음을 지켰고, 비로소 하늘에 하나님께서 준비해주신 면류관을 바라보면서 하늘나라에 들어갔습니다(딤후4:7~8).
빌3:12-14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딤후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또한 사도바울은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까지도 자신과 같이 이러한 기쁜 복음의 소식을 듣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여기, 그가 복음으로써 낳은 아들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 적힌 그의 기도를 들어보십시오.
딤후4:1-2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엡6:18-19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하지만 이것은 사도바울의 처음 부탁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마지막 부탁 즉 유언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께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사역을 완성한 다음 하늘로 승천하실 때에 지상에 남겨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께서는 복음전파 사역을 감당하는 자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부어주시려 하십니다.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한 권세를 부여해주시려 합니다. 그것이 당신의 소원이자 아버지의 소원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신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만약 그것이 우리 주 예수님의 소원이요, 하나님의 소원이라면 당신은 이 우주 가운데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우주 가운데 가장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에게 하늘의 은사를 아낌없이 부어 주십니다.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게 해 주십니다(막16:19~20). 당신도 그 대열에 함께 참여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2014년 3월 특별새벽집회 주제: “갈멜산 제단 위에 불로써 응답하신 하나님(왕상18:36~38)” | ||
| [제목] 치유기도는 하나님의 나라의 핵심사역이었다 | [찬송] 찬 471장 주여 나의 병든 몸을 |
| [말씀] 마태복음 8:1~17(신약 11면) | 2014.3.8.(토) |
우리는 지난 한 주간동안 기도에 관한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왜 기도해야 하는지부터 시작하여 기도하면 어떤 결과를 얻게 되는지 그리고 기도할 때에 주의해야 할 점들 무엇인지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최근 들어와서 우리 교회가 기도해야 할 아주 중요한 이유는 장자권의 사용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기도없이 악한 영들에게 장자권을 사용했다가는 오히려 그들로부터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장자권은 믿는 자에게만 주어진 놀라운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입니다. 하지만 이 장자권은 일종의 권세로서,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주어진 권세입니다. 하지만 기도없이 이 장자권을 계속 사용해서는 오히려 대적의 공격을 받을 수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기도로 무장해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가 기도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마7:11).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것이지만 기도는 우리의 땀과 노력과 믿음이 요구되는 영역입니다(마7:7~8). 사실 기도하기가 힘은 들지만 기도는 정말 해 볼만 하는 가치 있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되 또한 하늘에 있는 성령의 선물들을 아낌없이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눅11:13).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아 복음전도자로서 살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장자권을 보다 더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행1:8, 행10:38, 막16:16~19).
하지만 무작정 기도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초신자일 경우에는 우리가 무작정 기도한다해도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시지만, 신앙의 연수가 많아질수록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드리는 기도를 해야 주님이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혹시 하나님과 소원해진 관계를 갖고 있다면 여러분은 즉시 그것부터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뒤에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차곡차곡 쌓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만이 모든 신들 위에 뛰어난 참 하나님이시요 지금도 살아 역사하고 계시는 전능자임을 믿고 그분의 위엄과 그분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라도 주님 부르시면 천국에 갈 수 있도록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시는 모든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이어 사탄마귀를 대적하는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한을 풀어드려야 합니다. 그리고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바라는 기도 즉 하나님의 소원을 이뤄드리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 기도의 순서입니다.
이제 우리는 기도의 마지막 정거장(역)에 당도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드려야 할 마지막 단계의 기도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필요를 아뢰는 기도를 이때부터 드려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준 기도에 따르면, 하나님의 필요를 위해 기도하기를 마쳤으면, 이제는 우리의 필요를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마6:9~13).
마6: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모든 사람은 각자 자신의 영혼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육체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라도 육체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는 자신의 육체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구하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의의 병기로서 자신의 몸을 드리기 위해서, 자신의 육체의 건강을 비는 기도도 함께 드려야 합니다.
육체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일용할 양식이 필요합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을 다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너무 매달라지는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위해 비는 기도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언급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존을 위해 비는 기도를 들으십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일용할 양식이 없다고 불평했어도 하늘에서 일용할 양식을 내려 주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한편 우리가 오늘날 걱정하는 것은 일용할 양식이 너무 넘쳐는 것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지는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부자가 천국가기가 너무 어렵다 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육체의 건강을 위해서도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왜 우리는 육체의 건강을 위해 비는 기도를 드려야 할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천국이 보이지는 않지만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천국복음을 증거하실 때에 또 하나의 사역을 병행하셨습니다. 그것은 곧 병자를 치유하는 사역이었습니다. 우리가 건강하게 사는 것은 사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마8:2~3).
마8:2-3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천국복음을 전파하실 때에, 자신에게 나아온 약한 사람들을 다 치료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말씀하신 천국이 정말로 존재한다는 것을 그들은 병이 치료되는 것을 보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문둥병자를 보시면 곧바로 어루만져 치료해주셨고, 중풍으로 신음하는 백부장의 하인에게는 말씀을 보내 고쳐주셨으며,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는 치유하는 능력을 흘려보냄으로써 치료해 주셨습니다. 심지어 나면서도 소경된 자나 걷지 못하는 자, 귀로 듣지 못하는 장애인까지도 주님은 소외시키지 않으시고 치료해주셨으며, 심지어 죽은 자들까지도 살려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예수께서는 자기만 이러한 치유사역을 행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을 믿고 따르는 처음 제자들 즉 12명의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행하도록 명령하셨다는 사실입니다(눅9:1~2). 그리고는 12제자들 뒤에 등장하고 있는 70명의 제자들에게도(눅10:1,9), 심지어 믿고 따라오는 모든 사람들까지 다 이 치유사역을 행하도록 그들에게 명령하셨다(막16:17~18)는 사실입니다.
눅9:1~2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눅10:1,9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9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막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이처럼 병든 자를 치유하는 일은 단순한 병고침 사역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 몸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고 있음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치유사역을 단순히 가볍게만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과 그리고 그 뒤를 따랐던 제자들은 과연 어떻게 치유사역을 행하였을까요? 그것은 크게 3가지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첫째, 예수님은 당사자의 믿음이나 주변인의 믿음으로써 병든 자들과 약한 자들을 치유하셨습니다. 침상에 달아내린 중풍병자(마9:2~6)나 중풍병에 시달린 백부장의 하인의 경우는 주변인의 믿음으로 치유하신 예이고, 12년동안이나 혈루증을 앓고 있던 여인(마9:20~22)과 여리고의 맹인 거지 바디매오(막10:46~52)의 경우는 자신의 믿음으로 치유받은 예입니다. 둘째, 예수께서는 직접 환자의 몸에 손을 대시거나 환자의 머리에 안수하심으로 치유하셨습니다. 나병환자(마8:2~3)나 열병을 앓고 있던 베드로의 장모(마8:14~14)의 경우는 예수께서 손을 대심으로 치유한 사역의 예이며, 가버나움의 온갖 병자들의 경우(눅4:40~41)는 주님께서 안수하심으로 치유하신 예입니다. 셋째, 예수께서 직접 병을 향하여 꾸짖거나, 귀신을 꾸짖어 그 속에 있는 악한 영물을 밖으로 내어쫓으심으로 치유하셨습니다. 시몬의 장모의 경우(눅4:39)는 직접 병에게 꾸짖은 예이며, 간질병 걸린 아이의 경우(막9:25~27)는 귀신을 쫓아냄으로 치유한 예입니다.
우리가 병자를 치유할 때에는 위의 3가지 방식 중 어느 방식을 사용하든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자들을 치료해 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도 현재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이 복음전파를 위한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음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그리고 제자들처럼 병든 자를 치유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살아계심과 당신의 영광과 이름을 위해 지금도 병을 고쳐주십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아멘.
2014년 3월 특별새벽집회 주제: “갈멜산 제단 위에 불로써 응답하신 하나님(왕상18:36~38)” | ||
| [제목] 내 생명이 끝나는 그날까지 | [찬송] 찬 315장 내 주 되신 주를 |
| [말씀] 디모데후서 4:1~8(신약 346면) | 2014.3.9.(일) |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인생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자기 딴에는 정말 자신의 인생을 기분 좋고 재미지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임박한 죽음의 시점에 와서 자신을 되돌아보니 아무것도 남긴 것이 없음을 알고는 “인생, 내가 참 헛 살았구먼”하고 죽는다면 그 인생이 얼마나 불쌍하겠습니까? 그나마 죽을 때에 회개라고 하고 죽게 된다면 부끄러운 구원이라고 받을 수 있겠지만, 죽을 무렵까지 하나님을 등지고 살다가 죽는 순간 비로소 뭔가를 깨닫게 된다면 “아니, 이게 뭐지? 아니 이게 뭐야? 아니, 분명히 나는 방금 죽었는데 왜 내가 죽지 않고 살아있는 거야? 어? 지금 나는 어디로 가는 거지? 어, 어? 안 돼, 안 돼, 안 돼~~!” 하면서 지옥으로 푹 떨어진다면 그는 얼마나 비참한 인생이겠습니까?
사실 우리의 인생은 1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2막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고후5:1~4, 눅12:13~21). 사람은 육체를 가지고 있기에 반드시 한 번은 죽게 되어 있습니다(히9:27). 하지만 사람은 2가지의 생명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하나는 내가 원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받은 생명이 한 가지요, 또 하나는 내가 취할 수도 있지만 외면할 수도 있는 생명입니다. 앞의 생명을 우리는 ‘육체의 생명’이라고 부르고, 뒤의 생명을 ‘영혼의 생명’ 혹은 ‘영원한 생명’이라고 부릅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부모로부터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 한 가지의 생명을 받아 태어나는데, 그것이 바로 ‘육체의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또 하나의 생명을 더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셋째하늘에 마련해 두신 저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직 인간만이 육체 뿐만 아니라 영혼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창2:7). 그러므로 사람은 육체의 생명이 있을 때에 반드시 영혼의 생명을 취할 수 있어야 합니다(요6:40).
그래서 어떤 사람은 사람이 2가지 생명을 가져야 사는 영적 존재임을 깨닫고, 육체의 생명을 가지고 있을 때에 영혼의 생명을 취하여 영생의 세계로 들어가는 자가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육체의 생명만이 자신의 모든 생명인 줄 알고 그 생명만을 위해 일평생 죽기 살기로 살다가 그만 죽는 순간 지옥 구덩이에 풍덩 하고 떨어지는 자도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간혹 이렇게 질문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끝인데 그 뒤에 무슨 세계가 있는지 어떻게 안답니까? 죽어봐야 알지요?” 그렇습니다. 그분은 죽어봐야 알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렇게도 말합니다. “만약 죽은 다음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면, 그때 가서 새로 시작하면 되는 거지, 그딴 것을 가지고 뭐 이래야 저래야 그러세요?”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죽어보면 아는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죽은 다음에는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던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 한 번 죽게 된다면 자신의 인생을 번복할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눅16:19~31). 한 번 육체로부터 자신의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은 그 후로 어떤 선택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때에 깨닫습니다. 여러분도 한 번 죽어보면 알 것입니다. 자기의 시체를 쳐다보고 있는 자기를 발견하게 될 때에 비로소 영혼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그때는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죽으면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또 다른 세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죽으면 죽는 순간 즉시 발견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시체 밖에서 자신의 시체를 바라보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때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하죠.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나는 방금 죽었는데, 죽으면 그대로 끝나야 되는 것 아니야? 그런데 왜 내가 이렇게 살아있는 거지?” 사람은 죽으면 그게 끝이 아닙니다. 이제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믿음을 가지고 죽은 자들은 ‘천국’에 들어가게 되며, 믿음 없는 죄를 가지고 죽은 자들은 ‘지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지옥이 얼마나 무서우면 그리고 거기 들어가서 겪어야할 고통이 얼마나 견디기가 힘들면, 주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셨겠습니까?
마18:8-9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살아 있을 때에 다음과 같은 3가지 것들을 꼭 해야 합니다.
첫째, 우리는 지금 영혼의 생명을 취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딤전6:12).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영생을 취할 수 있을까요? 이것을 얻는 방법은 오직 ‘믿음’뿐입니다. 이것은 돈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이미 값을 다 치렀습니다. 그 값은 창조주 하나님의 목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값이 너무나 비싸기에 하나님은 그저 선물로 우리에게 주십니다.
둘째, 한 번 가진 믿음을 끝까지 지킬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7절). 아니 한 번 취하여 얻은 영생을 절대 빼앗기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예전에는 한 번 믿은 믿음은 절대 빼앗기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믿음은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갖는 것보다 믿음은 지키는 것이 더 힘듭니다. 사탄은 우리의 일평생 그 믿음을 버리도록 강요할 것입니다. 유혹할 것입니다. 아니면 핍박을 해서라고 우리에게 겁을 주어 포기할 것을 종용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믿음을 포기해서는 아니 됩니다.
셋째, 자신이 가야만 하는 그 길을 끝까지 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7절). 사도바울은 자신이 가야만 하는 그 길을 ‘사명의 길’이라고 말합니다. 사도바울에게도 그러한 길이 있었습니다(행20:24).
행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것을 위해 우리도 때로는 심한 영적 전투를 벌여야 할 것입니다. 금식하며 기도해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손해를 볼 때도 있을 것입니다. 이미 손에 쥐고 있는 것이지만 그것을 내려놓아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길 끝에는 영생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길 끝에는 빛나는 영광스러운 면류관이 있습니다(딤후4:7~8). 하늘에서 우리가 영원토록 받아 누리게 될 어마어마한 상급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통치할 나라가 있습니다. 왕권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번 받은 그것은 영원토록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계20:4,6). 주님께서 우리의 것으로 영원히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딤후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그렇다면, 사도바울은 우리가 받아누릴 그 영광을 얻기 위해 모든 사람에게 무엇을 권면하고 있습니까?
첫째, 하나님을 말씀을 전파하라고 말씀합니다(2절). 우리는 생명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전할 때에는 4가지 방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힘쓰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며, 생명인 것을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그 복음을 거절하고 외면하는 자들에게는 꾸짖는 일까지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끝까지 그를 권면하는 것입니다.
둘째, 온전치 못한 가르침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3~4절). 말세가 되면 온전한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채울 스승만을 찾아다닐 것이라고 사도바울은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내 가려운 귀만 긁어줄 목자만을 찾아다니지 말고, 지금은 비록 아프더라도 올바른 길을 제시하며, 때로는 책망하는 주의 종을 가까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방심하지 말고 고난까지도 달게 받으려 전진하라 하였습니다(5절). 영혼의 느슨해지면 안 됩니다. 어떤 일을 성취했더라도 그것 때문에 방심해서는 결코 아니 됩니다. 날마다 허리 띠를 졸라매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향하여 날마다 달려가시기를 바랍니다(빌3:12).
빌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오직 우리의 인생과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지금 뿐입니다. 이 육체가 살아있을 때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육체가 살아있는 기간에 정말 선택을 잘 해야 합니다. 한 번 뿐인 인생 속히 지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한 번 뿐인 인생을 후회없이 살다가 천국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인생이 1막만 있는 것이 아니라 2막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육체의 생명만을 알고 있던 나에게 영혼의 생명이 있음도 알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사람은 죽으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가 있음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나로 하여금 복음을 듣고 믿어 영혼의 생명을 얻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믿음은 가지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오늘도 나에게 사명이 있음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명대로 살지 못했나이다. 용서해주소서.
주여, 이 세상 것에 취하다보니, 하늘에서 주님께서 주실 영광의 면류관을 바라보지 못했나이다. 용서해 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인생 2막을 위해 힘쓰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육체보다도 내 영혼이 복받는 일에 더욱 힘쓰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어떤 상황이 내게 찾아온다 할지라도 믿음은 끝까지 지키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어떤 고난이 내게 찾아온다 할지라도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을 걸어가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복음을 전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귀에 좋은 말이 아니라 내 영혼을 살리는 말씀을 귀하게 여기겠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우리로 하여금 영혼의 때가 있음을 보지 못하게 가로막는 사탄마귀는 떠나가라.
육체의 쾌락으로 인생을 헛살게 만드는 악한 마귀는 떠나가라.
지금도 온갖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유혹하고 넘어뜨리려 하는 사탄마귀는 떠나가라.
하늘의 영광의 면류관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이제는 온전한 가르침으로 나아가라. 방심하지 말라. 앞으로 전진하라. 그래서 너의 사명을 완수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인생은 2막이 성공해야 진짜 성공이구나.
2. 사람이 한 번 죽으면 절대 번복할 기회가 없구나.
3. 사람은 육체의 생명이 있음같이 영혼의 생명도 있구나.
4. 오직 하나님만이 영혼의 생명을 주시는 분이로구나.
5. 지옥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절대 가서는 안 되는 곳이로구나.
6.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성공은 영혼이 생명을 얻는 것이로구라.
7. 믿음은 갖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구나.
8. 누구에게나 자신만이 걸어가야 할 길이 있구나.
9. 믿음을 지키고 사명을 완수한 자에게는 하늘에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구나.
10. 한 번 받은 상급은 영원토록 누리게 되는구나.
11. 신앙생활은 끝까지 방심하지 않아야 하겠구나.
<이번 주 암송구절>
빌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딤후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행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