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7월 07일(수) 수요기도회설교(성령강림후여섯째주일)
[제  목] 고린도전서강해(15) 예배 중 여자가 머리에 쓰는 것과 무분별한 성만찬을 주의해야 할 이유(고전11:2~34)
[찬  송] 찬 520장 듣는 사람마다 복음 전하여, 찬 524장 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찬 502장 빛의 사자들이여
[말  씀] 고전 11:2~34(신약 276면)
[키워드] 여자가머리에쓰는것,여자의긴머리,남자의머리,여자의머리,그리스도의머리,하나님의창조질서,사회적관습,본성,성만찬의제정,주의만찬,주님의살과피,주의몸,애찬과성찬식,잘못된주의만찬,주님께징계받음

 

 

1. 서론

. 고린도전서의 기본 이해

본 서신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여러 통의 서신 중 신약 성경에 보존된 두 편의 서신 가운데 제1서신으로서, 헬라어 원전의 제목은 프로스 코린디우스 알파이다. 이에 따라 한글 개역성경에서도 고린도전서로 명명되었다. 본 서신의 저자는 사도 바울(1:1,16:21)이다. 고린도전·후서의 기록 시기에 관한 학자들의 견해는 대체로 일치하는 바, 고린도전서는 바울의 제3차 전도 여행 기간(A, D, 53-58) 중 에베소에 머물던 시기인 A.D. 55년 봄 무렵(16:5-8; 20:31)에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본 서신의 수신자는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때 개척한 곳이며, 로마의 속주(屬州) 중 아가야 지방의 수도인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다. 그리고 본 서신의 내용은 고린도 교회의 영적, 도덕적 무질서에 대한 책망과 권면 교회 생활과 관련한 제반 질문 사항에 대한 목회적 답변을 기록하고 있다.

 

 

. 고린도전서의 배경 이해

고린도전서는 교회의 영적 · 도덕적 무질서에 대한 책망과 권면 및 신앙생활 현안들에 대한 목회적 답변의 서신서라고 할 수 있다. 신약 성경의 모든 서신서들은 일차적으로 각 서신서의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각 서신이 어떤 수신자에게,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주어졌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그 서신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 작업이다.

먼저 수신자 문제와 관련하여, 본 서신은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A.D.49-52) 약 일년 반 동안 사역하며 개척한(18:11)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일차적 수신 대상으로 하고 있다. 당시 고린도(Corinth)는 로마의 속주(屬州) 중 아가야 지방의 수도로서, 여러 가지 면에서 헬라의 가장 중요한 도시였다.

우선 고린도는 헬라의 상업 중심 도시였다. 헬라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잇는 좁은 지협(地峽)의 남쪽 2km 지점에 위치한 고린도는 수많은 여행자와 상인들의 필수적 통행로였다. 고린도는 좁은 지협 양쪽으로 동쪽으로는 겐그레아(Cenchrea) 항구를, 서쪽으로는 레게움(Lechaeum)이라고 하는 항구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두 항구를 통해 이탈리아, 스페인, 소아시아, 페니키아, 이집트 등지로부터 온 많은 양의 상품들이 유통되었다.

또한 고린도는 문화적으로 보면 비록 아테네와 같은 교육과 문화의 도시는 아니었으나 아테네와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헬라 문화의 특징적 요소들을 지니고 있었다. 헬라 철학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으며, 그 영향으로 지혜를 높이 평가하였다. 종교적으로도 치유의 신() 아스클레피우스(Asclepius), 태양의 신 아폴로(Apollo), ()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 등을 숭배하는 12개의 신전이 위치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거대 상업 도시들이 으레 그렇듯이 고린도 역시 다양한 외부 문화에 개방적이었으며 어떤 부도덕한 풍습에 대해서도 통제를 가하지 않았다. 특히 성() 문제는 그 사회의 도덕적 척도라 할 수 있는데, 고린도는 성적으로 문란하기로 유명한 도시였다. 한 예로 고린도의 가장 높은 곳인 아크로 고린도에 세워진 아프로디테 신전에는 1,000여 명의 신전 여사제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종교의 이름으로 매춘을 자행하는 종교적 창녀들이었다. 고린도가 성적으로 얼마나 문란하였는지 고린도화하다 (Corinthianize)’ 라는 말은 곧 성적 부정을 행하다라는 뜻으로 통용될 정도였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고린도 교회가 많은 도덕적인 문제에 직면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신약 성경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바울은 본 서신 이전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는 내용이 포함된 서신을 보낸 바 있었다(5:9). 즉 바울이 본 서신을 기록하기 이전에도 고린도 교회에는 음행을 비롯한 윤리적 문제가 심각하게 표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본서를 기록할 당시 바울은 제3차 전도 여행을 이미 시작하여 에베소에서의 사역을 마무리할 즈음에 있었는데(16:8,9), 거기서 바울은 여러 경로를 통해 고린도 교회의 상황을 전해 들었다(1:11:16:17). 바울에게 들려온 고린도 교회의 상황은 이전에 비해 좋아졌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빠졌다는 것이었다. 고린도 교회에서는 음행 문제 뿐 아니라 심각한 분쟁까지 발생하였으며, 그 분쟁의 양상 또한 복잡하였다. 특정 사역자들의 인맥(人脈)을 중심으로 분파(分派)가 생기는가 하면, 또한 우상 제물을 먹는 문제 등에 대한 입장의 차이로 또 패가 갈라져 다투었다. 뿐만 아니라 각종 영적 은사를 받은 자들이 저마다 자기의 은사를 내세우며 자랑하였고 주의 만찬은 오용(誤用)되고 있었으며, 예배는 무질서하였다. 또한 교리적으로도 기독교 복음의 핵심인 부활을 부인하는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이 마치 독소처럼 교회를 오염시키고 있었다.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하여, 당시 고린도 교회의 형편과 특징을 두 문장으로 요약하여 제시할 수 있다. 즉 고린도 교회는 분명 지식이 풍족하며 영적 은사에 부족함이 없는 교회였다(1:5-7).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린아이와 같이 미성숙하고(immature) 신령하지 못한 (unspiritual) 교회였다(3:1-4).

바울이 본 서신을 기록한 목적은 이처럼 은사는 풍족하나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여전히 미숙하고 육신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는 고린도 교회의 오류들을 바로잡기 위해서이다. 바울은 교회의 분쟁, 성적 부도덕, 세상 법정에서의 소송, 결혼 및 이혼, 우상 제물의 식사, 주의 만찬, 영적 은사의 사용, 예배의 질서, 부활의 교리 등 고린도 교회가 당면한 제반 문제들에 대해 목회적 관점(pastoral view)’에서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즉 고린도 교회 내에서 성도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여러 목회적 상황에 대해, 목회자의 심정(a pastor’s heart)을 가지고 진심 어린 책망과 권면 및 바른 진리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본 서신은 특정 상황(occasion)과 문화적 맥락(cultural context) 속에서 복음의 원리가 교회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바울은 1세기의 고린도 교회가 처한 제반 문제들에 대해 복음에 입각하여 그 해결 지침과 원리들을 제시한다. 바울이 본 서신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 중 일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교회의 중요한 관심사들을 반영하고 있으며, 또 일부 문제는 당시의 문화적 상황 속에만 적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우상 제물의 취식 문제여성의 예배포 착용 문제오늘의 문화적 상황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 있어서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영적, 도적적, 교리적 문제에 대해 적용하고 있는 복음의 원리는 시대와 문화의 변화에 관계없이 중요하다.

시대에 따라 교회를 분열시키고 오염시키는 문제들의 양상과 원인은 다양하다. 그러나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제시하였던 복음의 원리들, 예를 들어 교회의 유일한 기초로서의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령의 전으로서의 성도의 몸, 회의 성결을 유지하기 위한 권징(勸懲)의 시행, 지식에 앞선 사랑의 중요성, 다양한 영적 은사들을 사용하는 목적과 원리, 부활의 교리 등은 어떤 문화적 맥락 속에서도 일관되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본 서신은 불변하는(unchanging) 복음의 진리가, 변화하는(changing) 시대와 상황 속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에 대해 중요한 목회적 통찰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 고린도전서 내용분해(목차)

1) 인사말(1:1-3)

2) 고린도 교인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1:4-9)

3) 고린도 교회의 파당과 분열(1:10-4:21)

A. 고린도 교회의 파당에 대한 보고(1:10-17)

B. 십자가의 미련한 지혜(1:18-25)

C. 하나님이 미련한 자들을 선택하심(1:26-31)

D. 인간의 지혜 대 하나님의 영과 능력(2:1-5)

E. 하나님의 지혜에 대한 성령의 계시(2:6-16)

F. 하나님의 종들의 사역을 평가함(3:1-17)

G. 자기 자신을 평가하는 법과 타인을 평가하는 법(3:18-4:5)

H. 십자가의 지혜의 모델로서의 사도들(4:6-13)

I. 그들의 아버지 바울을 본받으라는 호소(4:14-21)

4) 근친상간, 소송, 매춘(5:1-6:20)

A. 근친상간의 사례(5:1-8)

B. 교회 안에서 죄를 관용한 것에 대해 새롭게 경고함(5:9-13)

C. 소송들에 반대하는 권고(6:1-11)

D. 창녀를 찾아가지 말라는 권고(6:12-20)

5) 성관계, 이혼, 혼인에 대한 가르침(7:1-40)

A. 혼인 안에서의 성관계(7:1-5)

B. 미혼자들과 과부들의 독신 생활 및 혼인(7:6-9)

C. 그리스도인과 혼인한 사람들 및 비그리스도인과 혼인한 사람들에게 주는 이혼에 대한 가르침(7:10-16)

D. 논의의 기저에 있는 지도 원리: 현재 상태로 있으라(7:17-24)

E. 약혼자들과 과부들의 혼인의 적절성(7:25-40)

6) 우상에 바쳐진 음식에 대한 논쟁(8:1-11:1)

A. 우상에 바쳐진 음식 문제의 소개(8:1-6)

B.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미치는 위험으로 인해 그들의 행위를 논박함(8:7-13)

C. 그의 권면을 뒷받침하는 바울 자신의 예(9:1-27)

D.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역사에 나타난 부정적 예를 통해 고린도 교인들의 행위를 논박함(10:1-13)

E. 주의 만찬의 예를 통해 고린도 교인들의 행위를 논박함(10:14-22)

F. 이교도적 환경에서 우상의 음식 문제를 다루기 위한 실천적 충고(10:23-11:1)

7) 공적 예배에서 머리에 무언가를 쓰는 것(11:2-16)

8) 주의 만찬에서의 분열(11:17-34)

9) 공적 예배에서의 영적 은사의 사용(12:1-14:40)

A. 영적 은사의 소개(12:1-3)

B. 영적 은사의 다양성과 통일성(12:4-11)

C. 몸의 지체들의 다양성과 상호 의존성(12:12-31)

D. 사랑: 가장 좋은 길(13:1-13)

E. 방언과 예언의 대조(14:1-19)

F. 예언을 선호함(14:20-25)

G. 예배를 위한 규정과 영적 은사에 대한 결론적 가르침(14:26-40)

10) 부활(15:1-58)

A. 서론: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선포와 믿음(15:1-11)

B. 죽은 자들의 부활이 만일 사실이 아닐 경우의 결과(15:12-19)

C. 죽은 자들의 부활이 사실이므로 생겨나는 결과(15:20-28)

D. 죽은 자들의 부활이 만일 사실이 아닐 경우의 결과(15:29-34)

E. 부활의 육체적 성격(15:35-49)

F. 모두가 변화될 것임(15:50-58)

11) 연보에 대한 가르침과 여행 일정(16:1-12)

12) 끝인사(16:13-24)

 

 

. 고린도전서의 내용

고린도전서의 내용은 1:1-9의 도입부, 1:10-15:58의 본론부, 그리고 16장의 종결부로 구분할 수 있다.

 

1)도입부(1:1~9)

도입부에서는 당시의 일반적인 서신 형식을 따라 칭찬과 감사 등 통상적 인사를 담고 있으며, 종결부에서는 본론부에서 다 언급하지 못한 몇 가지 사항에 대한 간략한 언급 및 마지막 당부와 문안 인사를 담고 있다.

 

2)본론부(1:10~15:58)

그리고 본론부 1:10-15:58은 내용에 따라 다시 1:10-6:20까지의 전반부7-15장까지의 후반부로 크게 양분할 수 있다. 먼저 전반부 1:10-6:20 주로 고린도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 고린도 교회 내의 분쟁 및 도덕적 무질서에 대한 책망과 권면을 다루고 있으며, 후반부 제7-15고린도 교회가 바울에게 서신을 통해 질문한 신앙 현안들에 대해 바울이 목회적 관점에서 답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A. 전반부(1:10~6:20)

·후반부 두 부분으로 크게 양분한 본론부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1:10-6:201:10-4:21과 제5, 6장으로 다시 세분할 수 있는데, 이중 1:10-4:21은 고린도 교회의 분열과 분쟁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먼저 바울은 글로에의 집편으로부터 고린도 교회의 분열 소식을 전해들은 것을 밝히며,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전했던 자신의 고린도 전도사역을 회상시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지혜이자 능력으로서 성도에게는 오직 예수만이 자랑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나서 고린도 교인들이 사도들의 인맥(人脈)을 따라 분파를 지어 다투는 문제가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를 지적하며 책망한다. 더 나아가 교회의 유일한 기초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성도 공동체는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며 우주적 연합체라는 것을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분파를 지어 서로 다투는 것은 결국 그들의 교만 때문임을 지적하며 부성애(父性愛)에 기초하여 분쟁을 종식할 것을 권면한다.

이어 5, 6고린도 교회의 윤리 문제, 도덕적 무질서의 문제에 대한 책망과 권면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세 가지 문제, 근친상간의 죄, 도간의 문제를 세상 법정에 송사하는 문제, 그리고 음행 죄의 본질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심지어 근친상간의 죄를 범한 자까지도 용납하고 있는 것에 대해 지적하며, 그 죄를 범한 자에 대한 단죄를 선언함과 동시에 교회가 누룩 없는 떡이 되기 위해서, 성결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권징을 시행해야 함을 촉구한다. 그리고 성도간의 문제는 교회 내에서 판단할 것이지 결코 세상 법정에서 불신자들의 판단에 맡기지 말라는 방향을 제시한다. 음행 죄와 관련하여서는, 성도들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 및 성령이 거하는 성령의 전이라는 관점에서 음행 죄는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성전을 더럽히는 심각한 죄임을 경고하고 있다.

 

B. 후반부(7~15)

다음으로 고린도 교회가 바울에게 제기한 질문에 대한 목회적 답변 형식을 띠고 있는 7-15장은 결혼과 이혼, 우상 제물의 취식, 공적 예배시의 질서, 부활 당시 고린도 교회에서 제기되던 신앙 생활 현안 중 중요한 네 가지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먼저 제7장은 결혼과 관련된 문제를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다. 미혼자의 결혼 문제 뿐 아니라, 부부 생활, 이혼 문제, 불신 배우자와 결혼했을 경우의 처신, 과부의 재혼 등 혼인 문제와 관련하여 발생할 수 있는 각각의 경우들에 대해 구체적인 지침과 더불어 포괄적인 원리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어 8:1-11:1 우상 제물의 취식 문제를 다루고 있다.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어도 되는가 하는 문제는 당시 고린도 교회에서 첨예한 의견 대립의 요소가 되었던 바,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해 지식적으로 옳고 그름의 차원에서가 아닌 사랑과 자유 절제의 차원에서 접근하여 답변을 제시한다. 즉 원칙적으로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며, 따라서 성도는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것에도 자유하지만, 믿음이 약한 자를 위해서 그 자유를 절제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바울은 직접 자신을 권리와 자유를 절제한 모범으로 제시하여 고린도 성도들로 하여금 자신을 본받을 것을 촉구하고, 또한 이스라엘의 자유를 남용한 부정적인 본보기를 제시하여 성도는 자유를 절제할 것과 또한 먹고 마시는 문제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영광과 타인의 유익을 위하라고 권면한다.

이어 11:2-14:40 공적 예배에 관한 교훈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공적 예배의 질서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여성의 예배포 착용 문제, 성찬 문제, 영적 은사의 사용 등 세 가지 문제에 상당 분량을 할애하여 교훈을 주고 있다. 먼저 바울은 여성의 예배포 착용 문제와 관련해서는 영적 질서와 창조 원리 및 당시의 문화적 규례에 따라 여성은 순종의 표시로서 예배포를 착용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성찬의 문제에 있어서는, 성찬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 거룩한 의식임을 일깨움으로써 고린도 교인들의 오류를 바로잡고 성찬 참여자의 바른 자세를 교훈한다.

특히 영적 은사에 관한 바울의 교훈은 특기할 만한데, 바울은 영적 은사의 다양성과 통일성을 조화롭게 교훈한다. 즉 교회에 나타나는 은사는 다양하지만 그 은사들은 모두 한 분 성령께 기원을 두고 있으며, 또한 각 은사들의 목적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것임을 심도있게 제시하고 있다. 영적 은사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문맥 속에 사랑을 주제로 노래한 유명한 제13장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곧 모든 영적 은사들의 사용의 원리가 곧 사랑이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은사에 대한 결론적 권면에서 모든 은사를 질서있게 사용하고 또한 덕을 세우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라고 권면한다. 바울이 방언에 비해 예언의 은사를 높이 평가하고 예언하기를 사모하라고 권하는 것은 바로 교회의 덕을 세우는 차원에서 예언이 방언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익하기 때문이다.

이어 제15장은 독교 복음의 핵심인 부활에 대해 다루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성, 기독교 신앙의 근거이자 성도들의 부활의 보증이 되는 그리스도 부활의 의의, 부활 이후의 몸의 상태, 부활 신앙과 성도들의 삶의 실질적 관계 등을 심도있게 제시함으로써 당시 고린도 교회에 퍼져 있던 부활에 대한 회의적인 관점에 대해 효과적으로 반박하고 있다.

 

3)종결부(16)

마지막으로 본 서신의 종결부인 16장은 본론부에서 다루지 않은 몇 가지 문제에 대한 간략한 언급 및 마지막 권면과 인사로 구성되어 있다. 아마도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에게 질문하였을 것으로 보이는 예루살렘 성도를 위한 연보의 문제에 대해 바울은 그 연보 수집 및 전달 방법에 대한 지침을 제시한다. 그리고 바울 자신의 고린도 교회 방문 계획 디모데와 아볼로에 대해 간략히 언급한 후, 교회 내 충성스러운 일꾼들에 대해 존경과 복종을 보이라는 마지막 권면과 인사로써 본 서신을 마무리하고 있다.

 

 

. 고린도전서 메시지 요약

 

1) 타락한 세속 문화 속에서의 교회의 위상 정립

본 서신에 언급되고 있는 고린도 교회의 윤리적 문제들 중 상당 부분은 당시 고린도의 혼탁한 도덕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특히 교회 내 근친 상간자를 용납할 정도로 심각했던 음행의 문제고린도의 부도덕한 분위기에 교회가 그대로 물들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본 서신의 행간(行間)에는 불신 세계의 사람들과 별로 다를 바 없는 고린도 교회의 위상에 대한 바울의 깊은 탄식이 서려 있다. 세속 문화에 대해서 각 지교회가 어떤 위상을 정립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본 서신 전반에 걸친 행간의 메시지이다.

 

2) 분쟁하는 교회를 향한 메시지

고린도 교회는 분쟁으로 갈라져 있는 교회였으며 분쟁의 양상도 복잡하였다. 특정 사역자를 따라 패를 갈라 다투고, 특정 사안에 대한 입장의 차이에 따라 또한 서로 반목하였다. 교회의 분쟁이 어디 고린도 교회에만 해당되는 문제이겠는가? 오히려 분쟁과 반목이 없는 교회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현실이 아닌가? 바울 사도는 분쟁하는 고린도 교회를 향해 부성애적(父性愛的) 책망과 권면 및 분쟁의 원인과 해결 방안에 대한 심도 깊은 교훈을 본 서신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비록 분쟁의 양상과 종류는 다르다 할지라도, 분열과 반목에 빠져 있는 모든 시대의 교회들은 바울의 책망과 교훈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3) 윤리 실천과 신앙 성숙의 관계

고린도 교회는 지식과 영적 은사들이 풍성한 교회였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성숙한 성도들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린아이의 유치성을 벗어나지 못한 자들로 간주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분파를 형성하여 서로 다투고, 교만하고, 세상 법정에 소송하고, 남의 유익보다 자신의 유익만 중시하는 등 윤리적으로도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앙 성숙의 기준은 얼마나 많은 은사를 가지고 능력을 행하는가에만 달려 있지 않다. 성숙한 신앙은 윤리적인 면에서도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본 서신 전반에 흐르는 교훈의 맥락이다.

 

4) 성도의 몸은 곧 성전

바울은 음행 (sexual immorality)의 문제를 다루는 부분에서 성도가 음행 죄를 피해야 할 보다 본질적 이유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성도의 몸은 곧 성전(holytemple)이라는 것이다. 구약의 성전이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상징적 처소였다면, 신약 성도들의 몸은 하나님의 성령이 내주(內住)하시는 실제적 임재의 처소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음행의 죄를 비롯하여 몸으로써 짓는 죄를 멀리해야 할 본질적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5) 지식에 앞선 사랑의 중요성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중요 현안으로 떠올랐던 우상 제물의 식사 문제에 대해 가부(可否)의 차원에서 해결을 시도하지 않는다. 사실 우상 제물을 먹느냐 먹지 않느냐 하는 문제는 그 자체로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정작 문제가 된 것은 그 문제를 둘러싼 고린도 교인들의 태도였다. 즉 그것을 지식의 차원에서만 해결하려고 하고, 교회의 덕과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로 대두된 것이다. 바울은 이 문제를 지식에 앞서 사랑으로 해결하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즉 옳고 그름을 따지는 지식의 차원을 떠나, 자기보다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자세로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복음의 본질적 문제가 아니라면, 교회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대부분은 지식에 앞선 사랑이 문제 해결의 중요한 원리이다.

 

6) 영적 은사의 다양성과 통일성(diversity and unity)

고린도 교회는 영적 은사가 풍성하였으나 저마다 자기 은사를 자랑할 뿐 그 은사들을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세우는 데 잘 활용하지 못했다. 바울은 제12장에서 각각의 성도들은 다양한 은사를 받았는데, 그 은사들을 주신 분은 동일한 성령이시며, 성령께서 은사를 주신 것은 교회의 유익이라고 하는 공통의 목적을 위해서임을 깨우쳐주고 있다. 달리 말하면 영적 은사의 다양성과 통일성에 대한 교훈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은사의 다양성과 통일성에 대한 이해가 있을 때, 교회는 각 사람이 가진 은사의 다양성을 인정하게 되고, 또한 다양한 은사들을 교회의 유익을 위해 활용할 수 있게 된다.

 

7) 사랑과 건덕

은사 사용의 대원칙. 바울은 제12-14장의 긴 지면을 할애하여 영적 은사에 관한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사랑과 건덕(love and edification)을 은사 사용의 대원칙으로 제시하고 있다. 즉 은사의 바른 활용은 사랑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며, 은사 활용의 목적은 오직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과 건덕의 원칙 위에 은사들이 활용될 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더욱 조화와 질서 속에서 아름답게 성장해 갈 것이다.

 

8) 공적 예배의 바른 시행

고린도 교회는 여성의 예배포 착용 문제, 찬의 잘못된 시행, 은사의 남용 및 오용 등의 원인으로 인해 공적 예배의 질서가 무너졌다. 공적 예배의 질서가 확립되지 못했다는 것은, 곧 그 교회 성도 신앙 생활 전반이 무질서하고 체계가 잡히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배가 지나치게 경직되고 율법적이 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반대로 아무 원칙도 질서도 없는 것이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무질서한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은 혼란과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모든 공적 예배는 반드시 조화와 질서 속에 드려져야 한다.

 

9) 부활 신앙과 성도의 삶

교리의 문제는 성도의 실제적 삶과 직결된다. 즉 성도들의 신앙과 사상과 삶의 태도는 그들이 믿고 있는 특정 교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특히 부활은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자 기독교 신앙의 토대로서, 부활에 대해 불신한다면 모든 것은 무너지고 만다. 바울은 소위 부활장이라 불리는 제15장에서 기독교 신앙이 허공 위에 세워지지 않은 것임을 보여준다. 기독교 신앙은 그리스도의 부활이라고 하는 확고한 역사적 사실의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이며,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의 부활과 최후의 승리를 보증한다는 것을 제시한 후, 성도들이 부활 신앙에 굳게 서서 주의 일에 수고하는 자들이 되기를 권면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부활이야말로 성도의 최대, 최고의 소망이며, 주 안에서 인내하고 수고하는 모든 삶에 확실한 보상이 될 것이다.

 

 

2. 남녀간의 영적 질서 및 여성의 예배포 착용 문제에 관한 교훈(고전11:2~16)

1)본문내용(고전11:23~16)

첫째,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이 가르친 전통들을 잘 지키고 있음을 칭찬함(2)

둘째, 영적 질서 차원에서 여성의 예배포 착용에 대해 교훈함(3-6)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며,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며,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는 영적 질서의 체계를 먼저 밝힌다(3). 남자는 머리에 쓰고서 기도나 예언을 하는 것이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며 반대로 여자는 쓰지 않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것이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4-5a).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것은 마치 머리를 민 것과 같아 수치가 되므로 수치가 되지 않기 위해 쓰라고 권면한다(5b-6)

셋째, 창조 원리의 차원에서 여성의 예배포 착용에 대해 교훈함(7-10)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을, 여자는 남자의 영광을 반영하도록 지음 받았다(7). 창조 질서상 남자가 여자보다 우선한다(8). 창조 목적상 여자가 남자를 조력하도록 지음을 받았다(9). 이러한 창조의 원리에 따라, 또한 천사들이 보고 있으므로 권세를 인정하는 표시로서 여자는 예배포를 착용하라고 한다(10)

넷째, 남녀의 본질적인 평등과 상호 의존의 관계에 대해 교훈함(11-12)

주 안에서 여자나 남자나 상대방 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못한다(11). 여자는 남자로부터 지음받았으며 남자는 여자로 말미암아 태어나며 또한 근본적으로는 한 분 하나님에게서 난 자들이다(12)

다섯째. 당시의 문화적 규례를 따라서도, 여성은 예배포를 쓰라고 명함(13-16)

여자의 예배포 착용 문제에 대해 고린도 교인들의 판단에 호소한다(13). 본능적으로도 남자의 긴 머리는 스스로에게 수치되는 것이라고 한다(14). 반대로 여자에게는 긴 머리가 스스로에게 영광으로서 긴 머리는 쓰는 것을 대용하여 주어진 것이라고 한다(15). 일부의 반론이 있을지도 모르나 당시 모든 교회가 여성의 예배포 착용을 규례로 정해 놓고 있음을 지적한다(16)

 

 

2)영적 교훈

고린도전서는 1:1-9의 도입부, 1:10-15:58의 본론부, 16장의 종결부로 구분된다. 그리고, 본론부는 내용에 따라 다시 전반부 1:10-6:20후반부 제7-15으로 양분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전반부인 1:10-6:20고린도 교회의 분쟁과 도덕적 무질서에 대한 책망과 훈계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에 반해 후반부인 제7-15은 고린도 교회가 안고 있는 신앙 생활의 중요한 현안들에 관해 바울이 제시하는 목회적 답변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특별히 후반부 제7-15에서 바울은 결혼, 우상 제물의 취식, 공적 예배, 부활 등의 문제를 차례로 다루고 있는데, 11:2-14:40은 그 중 세번째 문제인 공적 예배(public worship)와 관련된 문제를 다루고 있다.

바울은 공적 예배와 관련된 문제를 다루는 이 부분에서 여성의 예배포 착용(고전11:2~16), 성찬(고전11:17~34), 영적 은사(고전12~14) 등 세 가지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는 이 세 가지 문제가 당시 고린도 교회의 공적 예배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대표적인 문제로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여성의 예배포 착용 문제는 교회 내 남녀간의 평등 및 질서 문제와 연관되어 논란이 되었으며, 성찬빈부간의 위화감을 조성하며 성찬으로서의 본질적 의의를 잃어버릴 정도였다. 또한 영적 은사 문제에 있어서 고린도 교인들은 은사가 풍성하였으나 그 은사들을 조화와 질서 속에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공적 예배의 질서가 확립되지 못했다는 것은, 곧 그 교회 성도의 신앙 생활 전반이 무질서하고 체계가 잡히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고린도 교인들의 신앙 생활의 주요 현안이 된 공적 예배와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바울은 목회자적 관점에서 적절한 처방과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11:2-16여성의 예배포(head covering) 착용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문제는 당시의 사회적·문화적 배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당시 헬라 사회에서는 여인들이 외출하거나 공적인 모임에 참석할 경우 반드시 머리에 수건을 썼다. 이는 여자가 남자의 권위 아래 있다는 표시였다. 물론 이는 당시 남성 우월주의 사상의 반영이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에서는 일단의 여성도들이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근거로 하여 더 이상 사회적 관습에 속박당하지 않겠다며 교회에 출석하면서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에 보면 전혀 문제될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문화적 배경에서는 매우 중대한 문제가 될 수 있었다. 당시 사회에서는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는 여자란 곧 창기(娼妓)를 의미했다. 따라서 여성도들이 교회에서 수건을 쓰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모르는 불신자들로 하여금 교회를 마치 부도덕한 자들의 집합소로 오인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바울은 당시의 남성 우월 사상을 지지하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3-10)인간의 자연적 본성(13-15)에 근거해 볼 때 여성의 예배포 착용이 합당하므로 예배포를 착용할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을 근거로 성경이나 바울이 남성 우월론을 주장한다고 보아서는 안된다. 바울은 분명 남성과 여성 모두가 하나님께 속한 존재이며, 상호간에 의존적이고 보완적일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였다(11,12). 물론 바울은 분명 여성에 대한 남성의 권위를 인정하였다. 바울은 이를 머리됨이라는 말로써 표현하였고 여자는 남자의 조력자로 지음받았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는 남녀 사이에 인격적인 면에서나 권리면에서 어떤 차이가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인간을 평등하게 창조하셨다. 다만 바울은 남녀, 특히 부부간에 있어서 대표권이 남자에게 있음을 강조한 것뿐이다. 그러므로 본문을 근거로 하여 남녀간에 차이가 있다거나 하는 그릇된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남녀의 무조건적 평등을 내세우며 남자의 대표권마저 무너뜨리려는 시도 또한 창조의 원리를 무시하는 중대한 오류를 범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어 11:17-34성찬 곧 주의 만찬(the Lord's Supper)에 관한 교훈이다. 한마디로 당시고린도 교회에서 시행한 성찬은 주의 만찬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였다(20). 고린도 교인들은 주의 만찬을 함부로 훼손시키고 있었는데, 즉 주의 몸에 참여하는 거룩한 의식이 되어야 할 주의 만찬이 부자와 가난한 자를 구별하고 그리하여 가난한 자를 부끄럽게 하는 일그러진 잔치로 변질되어 버렸던 것이다. 이에 바울은 주의 만찬의 의의를 상기시키며 만찬 참여자의 바른 자세에 대해 교훈한다.

 

첫째, 남자는 공적 예배시 예배포를 사용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3). 왜냐하면 남자는 그리스도를 예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자가 공적 예배시 머리에 무엇인가를 쓰고 기도하는 옳지 않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부끄럽게 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남자나 머리에 무엇인가를 쓴다면 그는 자신 스스로를 여자나 노예로 여기게 되는 오해를 낳게 된다. 이는 또한 불신자로부터 그들의 속한 공동체가 남녀 사이의 구별이 없는 무질서한 집단 혹은 동성연애자의 단체, 노예로 이루어진 단체로 오해받을 수 있다. 이처럼 남자의 예배포 사용은 남자의 머리가 그리스도라는 영적 질서의 체계를 무너뜨리는 일일 뿐만 아니라 교회를 무질서한 집단이나 부도덕한 집단으로 오해받게 할 여지가 있다(4).

둘째,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형상을 부여받아 창조된 하나님의 자녀로서 본질적으로 동등하다. 하지만 그 존재론적 서열에 순서에 남자는 여자보다 앞선다(8). 이는 하나님께서 먼저 남자를 창조하시고 그후에 남자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셨기 때문이다(2:21~22). 이는 창조순서에 있어서 남자에게 우선성이 주어지 있음으로 창조질서유지를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8). 또한 사역적인 측면에서도 여자는 남자를 돕는 배필로 창조되었기에 남자는 여자의 머리가 된다(9). 이는 성별에 따라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남자는 본질적으로 여자보다 우월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남자가 여자에게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할 수는 없다. 즉 영적 질서에 있어서 남자가 여자보다 앞선다는 것이다.

셋째, 여자가 공적 예배시에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것은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5). 머리에 무엇인가를 쓴다는 것은 자기보다 더 우월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존재의 권위에 순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족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는 것은 남편의 권위를 무시하고 남자에 대한 순복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되므로, 그 머리된 남자를 욕되게 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넷째, 여자가 공적 예배시에 머리에 쓰지 않는 것은 창조원리상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았음에도 이것을 거부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을 구별하는 당시 관습과도 정ㅂ면으로 위배된다. 고로 여자가 예배포를 써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창조원리를 근거로 하여 교회의 질서유지와 선교적 목적에 따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는 것은 여자가 자신을 창녀로 간주해도 좋다는 것이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주장하며, 특히 남자와 동등한 은사의 소유자임을 내세워 남자들과 동일한 권리를 가졌음을 주장하는 하나의 방편이 오히려 교회의 안팎으로 불신자들로부터 창녀로 오인받게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고로 여자가 머리에 무엇인가를 쓰지 않으려면 깍든지 긴 머리를 해야 한다(5).

넷째, 여자는 천사들로 인하여 권세 아래에 있다는 것을 그 머리에 두어야 한다(10).

이 말은 여자는 천사들처럼 자신은 돕는 짝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수도 있고, 악한 천사인 사탄마귀와 귀신들의 말을 들어서 타락했던 과거가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천사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자신의 머리인 남자의 말에 순종하겠다는 의미로 머리에 예배포를 써야 하는 것이다. 이는 굴종이 아니라, 여자가 스스로 선택할 자유와 권리를 가지고 있는데, 여성이 스스로의 선택권에 의하여 예배포를 쓰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이것은 억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여성 스스로가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권위를 행사하는데 능동적으로 예배포를 쓰는 것이 합당하다는 뜻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여성도들이 모든 것이 다 허락되기는 했으나 교회의 건덕을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속한 자유를 제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섯째, 남자와 여자는 본질적으로 평등하므로 상호의존적이다(11).

여자는 남자에게서 창조되었을 뿐만 아니라 남자를 위해 창조되었다고 할지라도 주 안에서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을 수 없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을 수 없음으로 상호의존적인 존재인 것이다.

여섯째, 여자가 긴 머리를 갖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에 따른 것이다(14).

만약 여자가 머리를 짧게 한다면 그녀는 자신이 창녀임을 나타나는 것 같이, 남자도 머리를 길게 한다면, 그는 자신이 호색한이든지, 동성연애자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을 역행하는 것이다. 그렇다. 여자가 머리를 짧게 자르는 것은 확실히 자신을 수치스럽게 하는 일이며, 이와 반대로 여자가 긴 머리를 하는 것은 여성다움을 보여주는 영광이 된다.

일곱째, 성도에게는 누구에게나 신앙의 취약점이 있을 수 있다(2). 성도는 완전을 추구하는 존재인 것이지 완전한 존재는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단점이 있고 연약한 부분이 있다. 그러므로 겸손해야 한다.

여덟째, 남편과 아내 사이에도 질서가 있어야 한다(3). 남자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은 남자가 그리스도에게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자가 남자에게 복종하는 것은 존재론적인 순서와 역할의 차이일 뿐 동일한 존재들이다. 남녀는 창조의 원리 차원에서 질서와 위계가 있는 것이다.

아홉째, 남자와 여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본질적으로 동등한 존재들이다(3~10).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는 본질적으로 동등한 인격으로 창조하셨다. 남편은 평등한 인격적 존재들인 것이다.

열째, 성도는 외모도 단정해야 한다(3~10). 영적 질서와 창조의 원리에 따라 여자들에게 예배시 머리에 수건을 쓰도록 권고하는데, 이는 당시 시대적이고 문화적인 배경에서도 합당한 것이다. 그러나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 자매들이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자유라고 하면서 교회에 올 때에 수건을 쓰지 않고 온 것이다. 이는 사회적 관습으로 볼 때에 자신들을 창기와 같은 부도덕한 여인으로 여기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교회 전체에도 좋지 않은 인상을 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사람의 외모가 마음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외모도 단정하게 해야 한다.

열한째, 사회적 관습이 복음에 배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것을 성실히 지킬 의무가 있다(3~16). 여자는 사회적 관습으로 볼 때에도 머리에 수건을 써야 한다. 왜냐하면 여자가 공적인 장소에서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았다면 그녀는 노예이든지 창녀이든지 했기 때문이다. 또한 여자가 머리에 쓰는 것은 남편의 권위에 순복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교회에서 자유라는 것으로 그것을 거부했을 때에는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를 좋지 않는 시선으로 보게 할 수 있다. 고로 어떤 것이 사회적인 관습과 굳이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성실히 지킬 의무가 있는 것이다.

열두째, 우리가 질서를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따르는 것이다(8) 남녀 사이에는 질서가 있다. 즉 여자는 남자의 권위를 인정하고 거기에 순복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남녀를 창조하실 때에 남자를 먼저 창조하시고 여자를 나중에 질서있게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질서야말로 가장 중요한 창조의 원리인 셈이다. 고로 모든 성도들은 사회생활 속에도 질서를 지켜야 한다. 질서는 하나님의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이다.

열셋째, 복음은 모든 인간적이 차별을 폐지한다(11). 복음 안에서 남녀는 인격적으로 동등하며 상호보완적인 존재다. 그러므로 복음 안에서는 어떠한 인간적인 차별도 없다. 복음을 차별을 철폐한다. 사실 복음 안에서 모든 사람은 형제 자매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신분적인 차별은 다 없어지는 것이다. 백정이 장로가 된 사례가 있다. 그는 승동교회의 박성춘 장로다. 그의 아들이 최초의 서양인 의사 7명의 한 명인 박서양이다. 복음은 이처럼 차별을 철폐한다.

열넷째, 남녀에게는 기능적인 차이만 있을 뿐, 서로 의존적이며 보완적인 관계에 놓여 있다(11). 남져는 기능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서로 돕고 협조해야 한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면을 메꾸어주어야 한다. 남녀는 이처럼 역할상의 차이를 지닌 동등한 존재다. 자신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할 때 사람다움이 나온다. 그러므로 남성우월주의나 여성해방론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남녀는 서로 보완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누가 누구에게 군림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남녀의 주인은 하나님 뿐이기 때문이다.

열다섯째, 결혼은 남녀가 합하여 완전한 인격체를 만들어가는 절차다(11).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게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남자의 고유영역이 있고, 여자의 고유영역이 있다. 모두 완전하지 못하다. 부족하다. 그래서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어야 한다.

열여섯째, 하나님께서 주신 본성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기본 장치다(14). 사람의 본성은 남편은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해야 한다. 또한 아내는 남편을 존경해야 한다.

 

 

3. 성찬예식에 관한 고린도교인들의 오류 챌망 및 수찬자의 바른 자세 교훈(고전11:17~34)(관련문단, 26:26~29, 14:22~25, 22:14~20)

1)본문내용(고전11:17~34)

첫째, 고린도 교회 안에 성찬 예식과 관련하여 문제가 있음을 지적함(17-19)

성찬 문제에 대해 책망조로 언급을 시작하며 성찬을 위한 모임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유익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해가 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다(17). 고린도 교회 안에 분파가 형성되어 있음을 들어 알고 있음을 밝힌다(18). 옳고 그름을 따지다 보면 분파가 생길 수밖에 없으며 편당의 형성을 통해 진실도 드러나는 일면의 타당성을 인정한다(19)

둘째, 고린도 교회의 성찬 예식의 오류의 핵심을 지적함(20~22)

그러나 현재 고린도 교인들이 성찬의 명목으로 모여 먹는 것은 결코 성찬이라고 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20). 그 이유는 부유한 자들이 자기가 가져온 음식을 먼저 갖다 먹어 나중에 오면서도 가난해 미처 음식을 준비 못한 이들은 시장하고 심지어 먼저 성찬을 먹은 자 중에는 취한 자들이 있기 때문이(21).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가난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는 것이라고 책망한다(22).

셋째, 주의 말씀을 상기시키며 성찬의 진정한 의의를 설명함(23-26)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전날 성찬의 바른 규례를 고린도 교회에 전했음을 상기시킨다(23a). 바울 자신이 전한 주님의 말씀은 떡을 떼어 나누는 것을 주님의 몸을 그렇게 하는 것으로 여겨 떡을 뗄 때마다 주님을 기념하라 하신 것이라고 한다(23b-24). 또한 잔을 마시는 것을 피로 세운 새 언약에 동참하는 것으로 여겨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을 기념하라 하신 것이라고 말한다(25). 따라서 성찬은 주님 오실 때까지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며 전파하는 것이라고 성찬의 의의를 설명한다(26).

넷째, 성찬에 임하는 자에게는 철저한 근신이 요구됨을 교훈함(27-32)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은 마음가짐으로 먹고 마시는 자는 주님의 몸과 피에 대해 죄를 범하는 것이다(27). 따라서 성찬에 참여하는 자는 먼저 자신을 살펴보아야 한다(28). 주의 몸에 참여하는 거룩한 의식임을 알지 못하고 성찬에 임하는 자는 자신의 죄를 먹고 마시는 셈이다(29). 실제로 망령되이 성찬에 참여한 결과 고린도 교인 중에 약한 자, 병든 자, 심지어 죽는 자도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30). 성찬 참여자가 자신을 살피지 않으면 주의 판단을 받아 징계를 받을 것인 바 이는 성도가 훗날 세상과 함께 정죄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31-32).

다섯째, 성찬 예식의 원활한 집행 지침을 제시함(33-34)

공동 식사시 서로 남을 기다려주어야 하며, 배고플 경우 미리 집에서 음식을 먹고 와야 성찬을 위한 모임이 판단받지 않게 된다고 말한다(33-34a). 성찬과 관련한 그 외의 세부 사항은 추후 가르칠 것임을 밝힌다(34b).

 

 

2)영적 교훈

12~16절의 앞단락에서 남녀간의 영적 질서 및 공예배시 여성의 예배포 착용 문제에 관한 교훈을 주었던 바울은 이제 본절부터 34절까지에서는 성찬 예식에 관한 고린도 교인들의 오류를 책망하고 수찬자의 바른 자세를 교훈하고 있다. 언뜻 보기에 이러한 두 단락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에 속한 일부 여자들이 공식 예배에서 예배포를 쓰지 않으려고 한 것이나 성찬의 본래 의도를 상실하여 만홀히 성찬 예식을 행하는 것은 일관되게 고린도 교회의 무질서와 관련이 있다. 즉 교회의 무질서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3-16절에서 제기된 공적 예배시 여성의 예배포 착용 문제와 본절 이하 34절에서 제기된 성찬 예식의 문제는 일맥 상통하는 것이다.

 

첫째, 성도들에게 주어진 자유를 잘못 사용함으로 교회에게 무질서가 생기게 하는 것은 어디에서나 가능하다(17).

둘째, 교회가 하나됨을 해치는 주의 만찬을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20). 당시 고린도교회는 빈부와 신분의 격차가 심했다. 그러다보니 주의 만찬을 하는데 심각한 일들이 생겼다. 부자들은 자신이 가져온 음식을 먼저 먹고 마심으로 배부르게 되고 취하게 되었으나 가난한 자들은 배고파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가 2개로 나뉘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먼저 음식을 갖다 먹는 것은 주의 만찬을 사유화하는 것이며, 하나됨의 공동체 정신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21).

넷째, 먼저 음식을 갖다 먹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는 것이 되며,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다(22). 주의 만찬에서 가난한 자를 배려하기를 도외시한 부자들의 식사는 마땅히 책망받아야 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행위는 하나니의 교회를 업신여기는 행위가 되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부자들은 자신들의 이기심과 육신적 만족을 위해 가난한 자를 멸시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 되었다. 왜냐하면 가난한 자들이 저녁식사를 하려고 오면 그들은 가난한 노예들이었거나 노동자들이었으므로 늦게 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미 부자들이 이들을 배려하지 않고 욕심대로 행동함으로서 가난한 자를 수치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다섯째, 성찬예식은 모든 성도들이 한 몸 됨을 인식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23~26). 그런데 당시 성만찬은 분열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배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섯째, 성찬의 진정한 의미를 모른채 성만찬을 하면 주의 몸에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다(27).

일곱째, 주의 몸을 분별치 못하고 먹고 마시게 되면 심판을 마시게 되어, 약한 자들과 병든 자들과 죽는 자들이 발생하게 된다(29~30). 질병의 죽음은 교회의 하나됨을 해칠 때에 발생한다. 부자들은 성찬을 단순한 식사로 전락시키고 있었고, 성찬을 통하여 오히려 가난한 자들을 더 수치스럽게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는 것이다.

아홉째, 성도들이 교회에서 연약한 자들이 되고 병든 자가 되고 죽는 자가 되는 것은 교회의 하나됨을 해친 것에 대한 주님의 징계다(32).

열째, 성만찬을 제대로 집행하려면 인내와 기다림이 요청된다(33~34).

열한째, 처음에 교회에서 주의 만찬은 애찬식과 성찬식이 함께 진행되었다(17). 보통 주일저녁에 함께 식사하면서 주의 만찬은 시작되었는데, 먼저 애찬식을 하고 곧이어 성찬식이 진행되었다.

열두째, 성도들의 모임이라도 칭찬듣지 못하고 징계를 받는 모임이 될 수 있다(17). 왜나하면 성도들의 모임이 오히려 분열을 조장하고 분쟁의 불씨기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열셋째, 교회 안에도 얼마든지 분쟁이 있을 수 있다(19). 고로 교회는 자신을 살피고 남을 배려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즉시 회개해야 한다.

열넷째, 성도의 자기기만은 사탄마귀와 사망이 들어오도록 문을 열어주는 것이 된다(20).

열다섯째, 가난하고 약한 형제에 대한 무관심이 교회의 하나됨을 무너뜨린다(21~22). 애찬과 성찬은 부자와 가난한 자, 자유인과 노예, 유대인과 이방인, 남자와 여자가 함께 모이는 자리였다. 고로 주의 만찬 자리는 주님 안에서 하나됨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그때 거기에는 가난한 성도들이나 남의 집의 종살이하는 노예도 있었으니 그들을 배려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무관심이 교회를 해치고 있었다.

열여섯째, 교회는 자기만족과 자기유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21~22). 자기충족적이 아니라 이태성으로 똘똘 뭉쳐야 한다.

열일곱째, 성찬은 세상과 교회를 구별하게 하는 의식이다(23). 주님 안에 모든 백성이 다 같이 동등한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한 가족인 것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기 때문이다. 이곳이 천국잔치의 모형이다. 평화의 장이여, 화해의 장이요 사랑의 장이기 때문이다.

열여덟째, 성찬에 참여하는 성도는 철저히 자기희생을 결단하고 실천해야 한다(23~26).

열아홉째, 성찬은 주님의 몸과 피를 나누는 의식이다(24~25). 성찬식의 영적인 의미는 주님의 몸과 피를 나누는 것으로서 그분의 희생을 되새기는 일이다.

스무째, 성찬은 주님을 기념하는 의식이다(24). 주님의 살과 피를 회생하고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이다. 그거은 주님의 대속적인 죽음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스물한째, 성찬은 죄사함을 얻게 하는 새 언약의 증표다(25). 성찬은 새 언약의 증표다. 축제가 아니라 속죄함의 증표다.

스물둘째, 교회의 일치를 깨는 것은 주님의 몸과 피를 범하는 것이다(27). 주의 몸과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면 죄가 된다. 교회의 일치를 깨는 행위가 죄가 되는 것이다.

스물셋째, 성도는 신앙에 대한 안전불감증을 퇴치해야 한다(28).

스물넷째, 주님의 징계를 통해 성도는 빨리 회개하고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어야 한다(32).

 

 

 

< 고린도전서 11:2~34에 나오는 명령과 선포 >

1)감사와 회개

주여, 여자가 기도할 때나 예언할 때에는 왜 예배포(베일)를 써야 하는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여자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선교적인 관점을 따라서 그리고 사회문화적인 관습과 자연적인 본성을 따라서 머리에 예배포를 쓰든지 아니면 긴 머리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교회에는 여자의 머리가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며,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라는 영적인 질서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남자와 여자는 기능적인 차이만 있을 뿐 본질적으로 동등하며 상호의존적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이든지 예배포를 사용하는 문제이든지, 주의 만찬을 먹을 때에든지 성도는 항상 남을 배려하고 덕을 세우고자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주님의 만찬 때에 부자들이 먼저 음식을 갖다 먹어버리는 것은 교회를 업신여기는 것이자 빈궁한 자를 부끄럽게 하는 행위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주의 몸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게 되면 주의 몸과 피에 대한 책임이 있어 사람들 중에 약하게 되고 병들게 되고 심지어는 죽는 자들도 생긴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성도들이 주님께 징계를 받는 것은 주의 몸을 해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자유를 함부로 사용했나이다. 용서해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영적인 질서를 지키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창조의 질서를 지키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약한 형제를 배려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인내를 배우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교회의 하나됨을 깨뜨리지 않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영적인 질서와 창조의 질서를 무시하게 해온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교회의 하나됨을 해치도록 조장하는 악한 영들은 묶임을 받고 떠나가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영적인 질서와 창조의 질서를 지키고 약한 자들을 배려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교회 안에는 영적인 질서와 창조의 질서가 있구나.

2. 교회안의 남녀는 순서와 역할의 차이만 갖고 있을 뿐 동등하며 상호보완적인 존재로구나.

3. 교회의 하나됨을 해치는 모든 종류의 관행은 폐지되어야 하는구나.

4.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약하게 되고 병들게 되고 죽기도 하는구나.

5. 주께 징계를 받고 있을 때가 바로 회개할 그 때로구나.

5)훈련의 기본원칙 열 번 복창

단순, 반복, 지속, 강행

6)장자권의 발동, 명령과 선포 일곱 번 복창

있을지어다. 그대로 되니라, 좋았더라’ ‘복이 있을지어다.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 고린도전서 11장 헬라어 직역 ]

(01) 나도 역시 그리스도의 본받는 자로 있게 된 것 같이, 너희는 나의 본받는 자들로 있게 되고 있어라.

(02) 그런데 너희가 나의 모든 일들을 기억한 채 있으므로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넘겨주었던 것같이, 그 전통들을 너희가 굳게 붙잡고 있으므로, 내가 너희를 칭찬한다.

(03) 그런데 나는 너희가 알아차린 채 있기를 원한다. 모든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라는 것을, 그런데 여자의 머리는 남자라는 것을, 그런데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04) 모든 남자, 머리로부터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으면서 기도하고 있거나 혹은 예언을 하고 있는 자는 그의 머리를 부끄럽게 하고 있는 것이다.

(05) 그런데 모든 여자, 덮여 있지 않는 머리로 기도하고 있거나 혹은 예언하고 있는 자는 그녀의 머리를 부끄럽게 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그것도 [머리카락을] 밀어버린 채 있는 여자에게 하나로 있기 때문이다.

(06) 왜냐하면 만일 여자가 [머리를] 스스로 덮지 않고 있다면, 그녀는 역시 깎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요, 그런데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럽다면, 그녀는 스스로 가리고(덮고) 있어라.

(07) 왜냐하면 참으로 남자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있으면서, 그 머리를 마땅히 [계속] 덮는 것을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다.

(08) 왜냐하면 남자가 여자에게서부터 있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자가 남자에게서부터 [있기 때문이다.]

(09) 또한 왜냐하면 남자가 여자 때문에 창조되지 아니하였고, 오히려 여자가 남자 때문에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10) 이것 때문에 여자는 천사들 때문에 권세를 머리 위에 [계속] 가지고 있도록 해야 한다(빚지고 있다).

(11) 덧붙혀서 주님 안에는 남자와 별도로 여자가 [있지] 아니하고, 여자와 별도로 남자가 [있지] 아니하다.

(12) 왜냐하면 여자가 남자에게서부터 [있는] 것처럼, 역시 남자도 여자를 통하여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든 것들은 하나님에게서부터 [있다]

(13) 너희 자신들 안에서 너희는 판단하라. [머리를] 덮지 않은 여자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것이 어울리느냐?

(14) 참으로 만일 어떤 남자가 긴 머리털을 가지고 있으면 자기에게 수치라는 것을, 본성 자체가 너희를 가르치지 아니 하느냐?

(15) 그런데 만일 어떤 여자가 긴 머리털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그 여자에게 영광으로 있는 것이다. 긴 머리털을 가지고 있는 것은 [머리를] 덮는 것을 대신하여 그녀에게 주신 채 있기 때문이다.

(16) 그런데 만일 누구든지 논쟁을 좋아하는 이로 있는 것을 생각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관례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하나님의 교회들도 역시 [가지고 있지 않다.]

(17) 그런데 내가 이것을 명령하고 있는 것에 너희를 칭찬하지 않는다. 이는 더 유익한 것 안으로가 아니라 오히려 더 해로움 안으로 너희가 함께 모이고 있기 때문이다.

(18) 왜냐하면 참으로 먼저 너희가 교회 안에서 함께 모일 때에, 너희 가운데 분쟁이 [계속] 있다는 것을 내가 듣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어떤 부분은 [그렇다고] 믿고 있다.

(19) 왜냐하면 너희 가운데 파당들이 [계속] 있어야 옳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렇게] 인정된 이들이 너희 가운데 나타나게 되기 위함이다.

(20) 그러므로 너희가 모일 때에 바로 그 동일한 자리에서 만찬을 먹는 것이 주님께 속한 것이 아니다.

(21) 왜냐하면 먹기 위한 것 안에서 각자가 자기자신의 만찬을 미리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한편)은 참으로 굶주리고(시장하고), 그런데 어떤 사람(한편)[]취하고 있다.

(22) 왜냐하면 너희가 [계속] 먹기 위하여 그리고 [계속] 마시기 위하여 집들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니지 않느냐? 혹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멸시하고), 그리고 가지고 있지 않은 자들을 부끄럽게 하고 있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겠느냐? 내가 너희를 칭찬하겠느냐? 이것 안에서 나는 칭찬하지 않는다.

(23) 왜냐하면 나 자신이 주님으로부터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역시 너희에게 [그것을] 전수해주었다. 주 예수께서 [아직도] 넘겨지고 있었던 그 밤 안에, 그가 떡을 취하셨다는 것을

(24) 그리고 감사드린 후에, 그가 떼셨다는 것을. 그리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이것은 너희들을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다. 이것을 [계속해서] 행하고 있어라. 나를 기억하도록 하기 위하여.

(25) 저녁 식사를 한 후에 그리고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그가 말씀하신다. 이 잔은 내 피 안에서 [있는] [질적으로] 새로운 언약이니, 이것을 [계속] 행하고 있어라. 너희가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도록 하기 위하여.

(26) 왜냐하면 너희가 이 떡을 [계속] 먹을 때마다 그리고 이 잔을 [계속]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단번에] 오실 때까지 알리는(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7) 그 결과 합당하지 않게 그 떡을 [계속] 먹고 있다면 그리고 주님의 잔을 [계속] 마시고 있다면, 그이는 주님의 몸과 피에 대하여 [장차] 책임()이 있는 자로 있을 것이다.

(28) 그런데 사람이 자기 자신을 [계속] 검증하고(살피고) 있어라. 그리고 이과같이 그는 그 떡으로부터 먹고 있어라. 그리고 그는 그 잔으로부터 마시고 있어라.

(29) 왜냐하면 그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먹고 있고 마시고 있는 자는 자기 자신에게 심판(판단, 처벌)을 먹고 그리고 마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30) 이것 때문에 너희 가운데 허약한 자들과 병든 자들이 많다. 그리고 충분한 이들이 잠자고 있다.

(31) 그런데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아직도] 철저히 분별하고 있었다면, 우리는 혹시 판단(심판)을 받지 않고 있었을 것이다.

(32) 그런데 우리가 주님에 의하여 판단(심판)을 받고 있다면 우리는 징계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기 위함이다.

(33) 그런즉 내 형제들아, 너희가 먹는 것 안으로 함께 모일 때에, 너희는 서로들을 기다리고 있어라.

(34)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그는 집 안에서 먹고 있어라. 이는 너희가 판단(심판) 안으로 함께 모이지 않기 위함이다. 그런데 나머지의 일들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장차] 분명하게 처리할(바로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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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06월 09일(수) 수요기도회설교(성령강림후둘째주일) [제 목] 고린도전서강해(12)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어도 괜찮은가? [찬 송] 찬 257장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찬 259장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서, 찬 250장 구주의 십자...
    Date2021.06.23 By갈렙 Views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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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고린도전서강해(11) 그리스도인의 결혼 이혼 재혼 독신에 관한 질문에 답하다(고전7:1~40)_2021-06-02(수)

    2021년 06월 02일(수) 수요기도회설교(성령강림후첫째주일) [제 목] 고린도전서강해(11) 그리스도인의 결혼 이혼 재혼 독신에 관한 질문에 답하다 [찬 송] 찬 536장 죄짐에 눌린 사람은, 찬 540장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찬 421장 내가 예수 믿고서 [말 씀]...
    Date2021.06.23 By갈렙 Views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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