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랴는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서 기적을 체험했던 사람들 가운데 몇 안되는 한 사람이었다. 그는 무자했고 늙었지만 아들을 보게 된다. 그런데 그 아들이 바로 세례요한이다. 세례요한은 사가랴가 했던 놀라운 기도 덕분에 태어난 기적의 아이였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기도를 드린 것일까? 어떤 기도를 드렸길래 그에게서부터 기적이 일어나게 되었는가? 그 핵심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기도를 드렸다는 데에 있었다. 사가랴는 제사장이었기에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늘 자식을 구해왔다. 하지만 B.C.6년경 제사장으로 쓰임받았을 때에는 달랐다. 왜냐하면 그는 1,000명 가운데 한 사람만 될 수 있는 분향하는 제사장으로 뽑혔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기도중에 그는 기적을 체험하게 된다. 하지만 그에게는 다른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믿음이 부족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그것에 대한 댓가로 벙어리로 9개월을 지내야 했다. 하지만 똑같이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처지에 있었던 한 처녀가 같이 있었다. 그녀는 갈릴리 나사렛동네에 살고 있는 마리아였다. 그런데 그 마리아는 자손만대로 복있는 여인이라고 불리게 된다.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그래서 오늘은 사가랴의 한계를 살펴보고 그것을 뛰어넘은 묘책은 없는지 그것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1. 들어가며
사람에게 기적이란 어떤 것인가? 기적은 우리에게꼭 필요한 것인가? 정말 사람에게 유익하고 바람직한 기적이란 대체 어떤 것인가? 세례요한을 낳았던 사가랴가 체험한 기적은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사가랴가 왜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고, 아울러 사가랴가 기적을 체험하고도 9달동안 벙어리로 살 수밖에 없었던 그 한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서 진정 기적과 더불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요소는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사가랴는 어떻게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는가?
사가랴는 B.C.6년경 유대땅 헤브론에 살고 있던 아론의 자손으로서 제사장 중에 한 사람이었다. 그는 제사장의 딸인 엘리사벳과 결혼했지만 자녀를 얻지 못해 무자했다. 하지만 그는 아론자손 중에서 8번째 반열인 아비야반열의 제사장으로서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예루살렘에 올라갔고, 거기서 어떤 직무를 감당할 것인지를 놓고 제비를 뽑았는데, 놀랍게도 분향하는 제사장의 직무에 뽑혔다. 그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당시에 예루살렘에 올라와 직무를 감당하던 당시 제사장이 1,000여명 정도 되었다고 하니, 분향을 담당하는 제사장이 된다는 것은 일평생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일주일간 성소에 들어가서, 저녁이 되면 일곱금촛대에 불을 밝히고 향단에 가서 향을 살랐으며, 아침이 되면 다시 성소에 들어가서 일곱금촛대의 불을 끄고는 향단에서 향을 살랐다. 그리고 그는 향이 타는 시간에 향단 앞에서 기도를 드렸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기도가 나왔다. 그전에는 늘 이러한 기도를 했다. "하나님, 제게 아들을 주십시오. 제사장의 가문이 끊기지 않도록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냥 그 자리에 우연히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 저에게 만약 아들을 주신다면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는 사람으로 기꺼이 내어드리겠나이다."
그런데 사가랴의 그 기도는 하나님의 뜻과 일치했다. 하나님에게는 메시야가 오실 길을 예비해 줄 구약의 엘리야와 같은 사람이 필요했었는데, 적합한 사람이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가랴가 자기의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즉시 가브리엘천사를 그에게 보내어, 그가 드린 기도를 들었다고 말씀하시면서, 그의 기도에 따라 아들을 주겠노라고 약속하신다.
그렇다. 누가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가?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기도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기도를 할 때다. 그러면 사가랴처럼 기적과 같은 일이라 할지라도 즉시 응답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모든 기도를 다 듣고 계신다. 그러나 언제 응답해주시는가? 그것은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할 때다. 그때에 응답해주시되 그것이 혹 인간의 능력으로 불가능한 일이라 할지라도 주님께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면 되는 것이다. 사가랴는 그때 그러한 기도를 드린 것이다. 그러자 즉시 응답되었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주었기 때문이다.
3. 사가랴의 한계는 무엇인가?
그리하여 사가랴는 기도를 드린 후 생전 처음으로 하나님의 최측근인 가브리엘 천사장을 만나게 된다. 그때 그는 매우 놀랐다. 그러한 일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성소에서 이처럼 신비한 일을 체험하게 된다. 하지만 사가랴는 자기에게 그러한 일이 발생할 것이라는 것에 대해 믿음이 부족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붙들지 않고, 자기의 환경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도 늙은 상태에 있었고, 자기의 아내도 불임의 여자임이 틀림없었기에 어떻게 자기의 아내 엘리사벳에 아들을 낳아줄 지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그는 천사에 이렇게 말해버렸다. "내가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왜냐하면 나는 늙었고 내 아내도 나이가 많기 때문이니이다(눅1:18)." 그는 자기가 진짜 아들을 보게 될른지에 대해 믿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께 표적을 구한 것이다. 그러자 천사장 가브리엘은 그로 하여금 벙어리가 되게 하였다. 그래서 그는 태어난 자식을 볼 때까지 말못하는 자로 지내야 했다.
그는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기도를 드려서 기적을 가져오는 자가 되기는 했지만 믿음에 있어서 많이 부족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는 그때에 자기자신을 바라보았고, 자기의 아내를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러니 자기 부부가 자식을 갖게 되리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그것은 불가능해보였다. 그러니, 그러한 일이 진짜 일어날 것이라고 하는 표징을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이러한 요청은 자기 부부가 정말 자식을 낳게 될른지 믿을 수 없으니 확증을 시켜달라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이처럼 그에게는 믿음이 없었거나 부족했던 것이다.
4. 사가랴와 비슷한 처지에 있던 마리아는 어떠한 사람이었는가?
그런데 자식을 낳을 수 없는 환경에 있었던 사가랴와 비슷한 처지에 있던 당시의 한 사람이 더 있었다. 그녀는 15살 정도 되어보이는 처녀였다. 그녀의 이름을 "마리아"였다. 그녀는 다윗의 후손인 요셉과 이미 정혼한 상태에 있었다. 그런데 그녀에게도 가브리엘 천사장이 나타났다. 천사장은 그녀에게 장차 그녀에게 일어날 일을 고지하였다.
그러자 그녀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그녀는 자신이 지금 처녀로서 남자를 알고 있지 않은 상황이므로, 어떻게 자신이 자식을 낳게 될 것인지 그 과정에 대해서 천사에게 물었다. 이것은 그녀가 자식을 낳을 수 없다는 불신앙 때문에 묻는 질문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처녀인 자기에게 어떻게 역사하심으로 그 일이 성취될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가랴는 어떠했는가? 하지만 마리아는 자신이 처녀로서 아들을 낳을 것을 믿을 수 없으니 표적을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가 어떻게 되어 아들을 낳게 될 것인지에 관해 물은 것이다. 득남에 관한 성취방법을 물은 것이다. 그것은 사가랴의 반응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다. 사실 사가랴나 마리아나 둘 다 그 일들로 인하여 기적을 체험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사가랴가 기적을 체험했던 방식과 마리아가 기적을 체험했던 방식은 달랐다. 사가랴는 자기로부터는 도무지 자식을 생길 수 없는 형편이었지만 그래도 자식이 생긴다고 하니까 그것이 진짜 일어날 것이라는 하는 표징을 구했다. 하지만 마리아는 천사가 한 말이 자신에게 이미 이뤄질 것이는 사실을 믿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성취될 것인지에 관한 물은 것이다. 그러자 천사는 "성령이 그녀 위에 내려오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능력이 그녀를 덮게 되면, 그러한 일이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눅1:35). 그러자 그녀는 "나는 주님의 여종이오니, 말씀(레마)대로 내게서 이뤄지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고백했다. 그랬다. 그것이 그녀의 믿음이었다. 그녀에게는 처음부터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사가랴는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는 드리긴 했지만, 정작 자기에게서 아들이 태어난다고 하니까 그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표적을 구한 것이다. 믿음이 부족했거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리아는 달랐다. 그녀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자 정말 그녀에게서도 아들이 태어났다.
하지만 이 두 사람로부터 태어난 아들의 쓰임이 매우 달랐다. 사가랴로부터 태어난 아들(세례요한)은 메시야를 오실 길을 준비하는 자로 쓰임을 받았지만, 마리아로부터 태어난 아들(예수님)은 새상 죄를 없이하는 하나님의 어린양 곧 메시야 자체로서 쓰임을 받았다. 사가랴의 아들인 세례요한은 메시야를 준비하기 위한 선구자로 쓰임을 받았지만, 마리아의 아들인 예수님은 메시야 그 자신으로서 쓰임을 받게 된 것이다. 결과론적으로 볼 때, 믿음의 분량에 따라 장차 그들에게 임하는 결과가 다르다는 것을 이러한 기적들은 말해준다.
5. 나오며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한 것인가? 사가랴처럼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자기자신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될 것이라고 하는 믿음 아래서 주님의 뜻이 자기에게서 이뤄지길 소원할 것인가? 전자의 방식은 사가랴의 방식이고, 후자는 마리아의 방식이다. 하지만 이 둘의 차이는 결국 이 둘로 말미암아 태어난 이들의 사역과 분량과 크기를 다르게 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기왕이면 우리들은 하나님의 뜻이 일치하는 기도를 드릴 것을 권면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뜻이 자기에게 이뤄질 것을 믿는 믿음으로 앞으로 나가게 될 것을 권면한다. 사가랴의 기도에다가 마리아의 믿음이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때에는 사가랴 혹은 마리아가 경험했던 기적들을 우리들도 체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자신 뿐만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한 위대한 기적에 참여하게 되어, 모든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기적으로 길이길이 남게 될 것이다.
2018년 11월 30일(금)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