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과연 회개를 외쳤을까? 구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로서 회개에 대해 바울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가 현장에서 복음을 전파할 때 그는 어떤 말을 전했던 것일까? 우리에게 남겨진 그의 복음전파의 상황은 사도행전에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여러교회들과 지도자들에게 보낸 편지(13권) 속에도 남아있다. 그래서 오늘은 이런 자료들에 근거하여 바울의 회개관은 어떠했는지를 종합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들어가며
바울의 회개관은 어떠했는가? 우리는 바울의 이신칭의론에 대해서는 들어봤어도 바울의 회개관에 대해서 잘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에게 있어서 "율법의 행위"와 대응되는 "믿음"이 강조되다보니, 정작 복음의 핵심내용인 믿음과 회개의 2가지 요소 가운데, 회개가 그만큼 소홀히 취급받고 있었기 때문다. 하지만 바울이 실제로 복음을 전파하고 있을 때에는 "오직 믿음"만 강조한 것이 아니라, "회개"도 동시에 강조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가 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바울이 복음을 전파할 때에 과연 구원을 말할 때 오직 믿음만을 말했는지 아니면 동시에 회개의 중요성도 같이 언급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회개생활과 더불어 꼭 알아 두어야 할 "성령의 인도함받는 것"이 무엇인지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그중에서 오늘은 사도바울의 회개관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서 그의 회개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으며, 사도들이 언급했던 회개관은 어떤 것인지를 종합적으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2. 바울은 회개관은 어떻게 요약될 수 있는가?
바울이 외쳤던 회개에 관하여 우리는 성경의 모든 기록을 오늘 전부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은 그가 남긴 13권의 서신들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가 복음을 전파한 장소에 함께 있었던 의사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도 살펴볼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 복음을 전파할 때 현장에서 무엇을 전파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는 왜 서신서에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강조했으면서도 상대적으로 회개는 덜 강조했는지에 관해서도 살펴보고자 한다. 그렇다면, 바울의 13개의 서신들과 사도행전의 기록은 바울의 회개관에 대해서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결론적으로 바울의 회개은 크게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바울은 복음을 전파할 때 꼭 믿음과 더불어 동시에 회개를 같이 강조했다는 것이다. 둘째, 그는 회개를 구원의 필수적인 요소로 여겼으며, 회개없는 구원은 없으며, 믿는 자라도 회개없이는 심판날에 진노를 받게 될 것임을 경고했다는 것이다. 셋째, 그가 구원받은 자의 합당한 삶으로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것을 강조했지만,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것 속에는 성령의 책망에 따른 회개가 항상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3. 바울의 회개관의 첫번째 특징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바울의 첫번째 회개관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복음을 전파할 때마다, 그가 "무엇을 믿을 것인지"에 대해 전파했으며, 더불어 "모든 사람은 다 회개해야 한다"는 것을 동시에 전파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의 복음전파 행적을 기록하고 있는 사도행전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이제 바울이 1차전도여행과 2차와 3차 그리고 로마전도여행 전에 있었던 복음전파 과정에서 무엇을 외쳤는지를 살펴보자.
첫째, 1차전도여행 중 비시디아의 안디옥에 있을 때에 바울은 믿음과 더불어 회개 2가지를 모두 함께 전파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행13:23~39). 먼저 바울은 안디옥 사람들에게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던 구주 예수님에 대해서 언급했다. 왜냐하면 비시디아 안디옥에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헬라파 유대인들이 아주 많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님이야말로 구약성경에 약속된 메시야로 오신 분이었으며 그분은 결코 죽을 죄를 찾을 수 없었지만 유대인들에게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도로 그를 살리시어 육체가 썩음을 당치 않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을 힘입어 믿는 모든 자는 다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라고 전파했다. 그리고 둘째는 그분이 오기 전에 세례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으며 예수께서 오신 이후에는 회개하는 자마다 예수님을 통하여 죄사함을 받을 수 있음을 전파했던 것이다(행13:24,38)
둘째, 1차전도여행 때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파할 때에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을 것과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회개를 전파했던 것을 알 수 있다(행14:8~18). 왜냐하면 그곳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나면서 걷지 못하던 자를 걷게 한 일이 있었는데 그러자 제사장들이 나와서 바나바와 바울을 신으로 숭배하려고 했기에, 바울은 그들에게 자기들은 그들과 똑같이 성정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말하면서, 진짜 섬겨야 할 분은 오직 천지만물을 창조한 하나님이며, 그분 이외에 다른 것을 섬기는 것으로부터 돌이켜야 한다는 것을 전파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루스드라에서는 창조주 하나님 자체도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2차전도여행 때에도 바울은 믿음과 회개를 동시에 전파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는 대표적인 2개의 교회를 살펴볼 것인데, 먼저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파할 때에 바울은 먼저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한 바 있었는데, 그때 그가 전파하는 예수님이 곧 그리스도인 것을 전파했다. 그리고 바울은 그곳에서도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전파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것은 그가 그 교회에 써 보낸 편지인 데살로니가전를 통해서 확인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데살로니가전서에서 바울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계시고 참된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 지를 말하니"라고 언급하였기 때문다. 그리고 거의 불신자들로 가득찼던 아덴에 갔을 때에는 아덴 사람들을 향하여 "우주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 바로 천지만물의 주재이시며, 그분은 결코 손으로 만든 집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고 했던 것이다(행17:24~25a). 그리고 그분이야말로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친히 주시는 이시라고 했다(행17:25b). 그런데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께서도 이러한 것을 관대하게 보아주셨지만, 이제는 누구든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회개하라"고 명하셨다는 것을 말했다. 또한 천하인간을 심판하실 분으로 정하신 약속된 사람이 있으니 그분이 곧 예수라고 증거하였다(행17:30~31). 여기서도 역시 믿음과 회개를 같이 전파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넷째, 바울은 3차전도여행 때에는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불러다가 그들에게 회개와 믿음을 가르쳤음을 말했던 것을 알 수 있다(행20:17~21). 바울은 그때에 3년동안이나 눈물로 자신이 에베소 성도들을 훈계했던 사실을 언급하면서 두란노서원에서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했었노라고 말했다(행20:21). 그렇다. 이것들을 통하여 알 수 있는 사실은 바울이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파할 때에도 여전히 믿음과 회개를 동시에 가르쳤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섯째, 마지막으로 바울이 3차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갔을 때에는 왕 앞에서 믿음과 회개를 다 강조했음을 알 수 있다(행26:19~23). 바울이 3차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였다. 그때 그는 성난 유대인들에게 그만 붙들리고 말았다. 하지만 소요를 알아차린 천부장에 의해서 바울은 구출을 받는다. 그리고나서 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 심문을 받게 되는데, 바울은 그때 자신이 다메섹에 만났던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소상하게 증거함과 동시에, 다메섹을 시작으로 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과 유대 온 땅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이방인에게 이르기까지 사람들에게 회개할 것과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맺으라고 했다고 증언했다고 말했다(행26:20). 그리고 그가 사람들에게 "구약의 모세와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분이 그리스도이시며, 그가 고난을 받고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전파했음을 증언하였다(행26:22b~23). 이렇듯 바울은 어디서든지 복음을 전파할 때마다 꼭 믿음과 회개, 둘 다를 다 강조하면서 복음을 전파했던 것을 알 수 있다.
4. 바울의 회개관의 두번째 특징은 무엇인가?
바울의 회개관은 그가 썼던 서신서들에게서도 살펴볼 수 있는데, 바울이 고린도교회와 로마교회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사람이 구원을 얻는 데에 필수적인 요소가 회개라고 하였음을 알 수 있다(고후7:10). 그리고 만약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라고 할지라도, 고집을 피우며 회개하는 않는 자에게는 심판의 그날에 하나님으로부터 진노가 쏟아질 것이라고 경고하였음을 알 수 있다(롬2:5).
고후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롬2:5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5. 바울의 회개관의 세번째 특징은 무엇인가?
그리고 바울이 기록으로 남겨놓은 그의 서신서들을 살펴보면, 회개보다는 훨씬 더 많이 "믿음"에 관해 많이 글을 남겼지만, 궁극적으로는 믿는 이들은 반드시 성령이 인도를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음을 살펴볼 수 있다(롬8장, 갈5장). 그러므로 바울의 서신서만을 가지고 연구하는 자들은 바울이 믿음에 비하여서 회개는 상대적으로 덜 강조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한 편으로 옳은 지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 것은 바울이 비록 회개에 관한 글을 많이 남기지는 않았지만, 그가 말했던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는 것 안에는 반드시 회개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즉 그가 이미 일차적으로 구원받은 자들에게 성령의 인도를 따라야 할 것을 강조했지만 더불어, 믿는 자들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은 곧 이미 구원받은 자들로 하여금 죄에 대해 회개할 것을 책망하시는 분이이시 때문에, 그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것을 강조했다는 것은 곧 그 안에 회개의 요소가 들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을 한 쪽으로 치우친 분으로만 이해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6. 나오며
우리는 "바울"하면 곧바로 "오직 믿음" 내지는 "믿음"에 의한 "이신칭의"를 떠올릴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은 예수님 한 분만으로는 부족하고 율법의 행위들도 있어야 칭의도 얻고 구원도 얻는다는 유대율법주의적인 성도들을 향하여, 크게 책망하면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부터가 아니라 오히려 "믿음"으로부터라는 을 강조했었다는 말씀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종교개혁자들의 모토가 되어버린 "오직 믿음"이라는 교리는 더욱더 믿는 성도들로 하여금 "믿음"지상주의를 낳는데 매우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말았다. 하지만 바울이 전파했던 복음전파의 실제현장을 살펴보면, 바울은 결코 "오직 믿음" 혹은 "이신칭의"만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믿음과 더불어 "회개"를 동시에 강조하면서 복음을 전파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가 있다. 참으로 놀랍기만하다. 이러한 놀라운 사실은 사도행전 13장부터 28장에 전반에 걸쳐 기록되어 있다. 특히 바울의 전도했던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보고서 객관적으로 기록해보려고 했던 의사 누가의 사도행전의 기록은 더욱 더 놀랍기만하다. 그렇다. 바울은 결코 "오직 믿음"만 외친 사도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믿음과 동시에 회개를 강조해서 전파했던 사도였던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회개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가 전파했다 복음전파현장에서는 항상 "회개하라"는 외침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특히 그가 보낸 편지들 13권을 살펴보면, 바울은 사람이 구원을 얻는 데에 필수적으로 "회개"가 들어간다는 것을 말했다는 사실은 알 수가 있다. 이는 그가 얼마나 회개를 중요시했는지를 가늠해볼 수가 있는 것이다. 더욱이 그가 그토록 강조했던 "성령의 인도하심"도 실은 성도들 속에 내주하시어서 사람을 회개케하고 책망케하는 성령의 역사가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고로 바울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강조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역시 동시에 회개도 강조했다는 의미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렇다. 바울의 오로지 믿음과 회개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성령의 사람이엇다. 그런데 그에게 있어서 "회개"는 구원의 필수적인 요소였다. 그것 없이는 사람이 결국 구원받을 수도 없으며, 이미 구원받은 자라도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어서, 구원자의 영역에서 탈락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잘 믿는 자라 할지라도 과연 자기가 회개생활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실로 오늘날에 들어와서 회개가 필요없는 것이며, 회개를 강조하지 않는 곳은 대부분 다 이단쪽에 가깝다. 이단치고 회개를 강조하시는 이단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에 따른 구원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회개가 없는 구원은 구원이 성립될 수도 없고, 이미 얻은 구원이라도 죽을 때에는 그 구원을 상실할 수 있다는 것을 더욱 더 마음 속에 새기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회개복음을 전파하는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2020년 08월 19일(주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