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26(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고린도후서강해(10)] 누가 과연 새 언약의 일꾼이며 그 직분의 영광은 무엇인가?(고후3:1~18)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zvCKcDhdGSE

1. 들어가며
사도 바울은 과연 고린도 교회에서 몇 통의 편지를 써서 보낸 것인가?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를 통하여 그 정황을 살펴 보면, 고린도전서를 보내기 전에 한 통의 편지를 써 보낸 것이 분명하다(고전5:9). 그 편지는 일명 '고린도전전서'라고 불린다. 그리고 나서 고린도전서를 써 보냈다. 그리고 지금은 전해지지 않은 '눈물의 편지'를 또 다시 써서 보냈다(고후2:4~5).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린도후서를 써 보낸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이렇게 많은 편지를 고린도 교회에 써 보내야 했는가? 사실 바울이 개척한 교회치고 이렇게 많은 편지를 써서 보낸 교회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고린도 교회를 그만큼 아끼고 사랑했다는 표시일 것이다. 그리고 다른 교회는 몰라도 고린도 교회가 자신의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그것을 변호하기 위함일 것이다. 특히 고린도후서는 바울이 자신의 사도권을 해명하고 변호하기 위해 작정하고 써 보낸 편지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린도후서를 읽을 때에 바울이 얼마나 사도권 때문에 고민을 했고 가슴 아파 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 편지를 더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바울이 이 편지에서 왜 자신을 새 언약의 일꾼이라고 말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고, 새 언약의 일꾼이 받게 될 축복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바울이 사도라는 것은 과연 무엇이 증명해주는가?
바울은 과연 사도였을까? 사도라는 말은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이는 주 예수님으로부터 복음을 전파하라고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그런데 베드로를 비롯한 11사도들은 육신을 입으셨던 주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 중에 파송한 사도들이다. 그렇지만 바울은 달랐다. 바울은 승천하신 예수께서 친히 찾아오셔서 그를 사도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에 대해 흠집을 내려는 자들은 늘 바울의 사도권에 대해서 문제를 삼았다. 왜냐하면 육신을 입고 오셨던 주 예수님으로부터 사도로 파송을 받지 않고 부활하신 주 예수님으로부터 파송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증명해줄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떠난 고린도 교회에 찾아온 거짓 사도들은 바울에게 사도권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사도로서 추천서를 가지고 왔으니 자신들이 합당한 사도들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자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예루살렘에서 온 거짓 사도의 말을 듣고는 바울의 사도직을 의심한 것이다.
그러자 바울이 이에 대해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바로잡아야 할 필요성을 가지고 고린도후서를 쓰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후서를 통하여 자신에게 사도권이 있음을 변호하게 되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무엇이 진정 바울의 사도직을 인정해주는 추천서이냐 하는 것이었다. 바울은 거짓 사도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받아왔다는 추천서가 그의 사도됨을 인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복음전파의 열매로서 회심하여 구원받은 고린도 교회 성도 자체가 그의 사도됨을 인정하는 진정한 추천서라고 말한 것이다(고전3:1~2). 다시 말해 바울이 고린도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여 그들을 예수님을 믿게 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한 것이 곧 바울이 사도라는 것을 증명해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 자체가 자신의 사도됨을 인정해주는 추천서일 뿐만 아니라 고린도 교회 성도 자차게 바울의 편지라고 말했다. 그러나 바울이 전한 것은 그리스도였기 때문에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하였다(고후3:3). 이는 추천서를 쓸 때 사용했던 잉크로 쓴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 곧 성령으로 쓴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돌에 써준 돌판이 아니라 그들의 육의 마음에 쓴 것이라고 했다(고후3:3). 그러므로 바울에게 있어서 사도권은 고린도교회 성도의 존재자체에 있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은 어떤 사람의 추천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라고 말했다(고후3:4~5).
3. 바울은 어떤 사역의 일꾼이었는가?
이어서 바울은 이제 자신이 성령을 통한 새 언약의 일꾼이 된 것에 대해 감사한다. 왜냐하면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도록 보냄을 받은 사도가 된 것은 예루살렘에서 받아온 종이추천서 때문이 아니라 이제 영으로 오신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종이 추천서와 같은 것은 사람을 구원하고 살리는 것이 아니라 구약의 율법조문처럼 사람을 정죄하고 죽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은 율법의 조문의 직분을 받지 아니하고 영의 직분을 받았으므로 더 영광스러운 직분을 가진 것이라고 말한다.
뿐난 아아니라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의 직분이자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었는데, 하물며 영의 직분을 받은 자에게서는 얼마나 큰 영광이 있겠느냐라고 반문한다. 다시 말해 종이 추천서를 가지고 온 자들에 의한 복음전파의 직분도 영광스러울 수 있지만 바울이 성령으로부터 직접 받은 복음전파의 직분은 얼마나 더 영광스럽겠는지를 언급한 것이다. 그렇다. 바울의 사도직은 사실 사람의 추천을 받아서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주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새 언약의 직분도 어떤 종이 문서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을 통하여 주어진 것이었다. 특별히 구약의 율법 조문의 직분이 영광스럽기는 하지만 그리스도가 오시면 없어질 직분으로서 일시적인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자신이 맡은 직분은 영의 직분으로서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고후3:11).
4.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무엇을 보지 못하고 있는 영적 소경이었는가?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말한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누가 과연 영의 직분을 맡은 사도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것은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우와 똑같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40일을 금식하고 하나님을 만나 십계명을 받아가지고 내려올 때에 그의 얼굴이 빛나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 엎드렸다는 것이다. 그러자 모세도 자신의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것은 일시적인 것일 뿐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없어질 영광을 주목하지 못하도록 그의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게 된다. 그런데 그것은 나중에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데, 그것은 모세가 수건을 쓰고 있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도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었다. 모세는 없어질 율법의 영광을 가지고자 수건을 썼지만 백성들은 율법의 영광이 계속된다고 착각한 것이다.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영광이 오면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영광은 사라지기 마련인데, 사람에게 수건이 가려져 있으므로 사람들은 그것을 분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에 온 거짓 사도들은 자신의 손에는 예루살렘으로부터 받아온 추천서가 있기에 자신의 사도직은 확실한 것이며 또한 영원할 것이라고 말은 하지만 추천서 자체가 그의 사도직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는 사람이 써 준 추천서는 없지만 성령으로 쓴 추천서로서, 복음전파의 열매인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진정 무엇을 더 주목해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율법시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율법시대는 지나갔다는 것이다. 추천서 시대는 지나갔다는 것이다. 실제로 맺어진 열매가 진정한 추천서라는 것이며, 그 열매를 맺고 있는 사람이 진정 살리는 영의 직분을 가진 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무엇을 주목해야 하는지를 말한다. 이제는 사람이 준 추천서를 보지 말라는 것이다. 오히려 복음전파의 열매를 보라는 것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아직도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것처럼 착각하는데, 이제는 그 수건이 벗겨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시적인 율법의 시대가 끝나와 영원한 복음의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볼 것을 보아야 하는 진정한 영의 눈은 주님께로 갈 때에 비로소 열려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때 구약의 율법의 수건이 벗겨지기 때문이다. 그때 추천서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고 열매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게 되기 때문이다.
5. 어떻게 해야 진정 주의 형상을 닮은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진정 주의 형상을 닮은 변화된 사람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주의 영을 붙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주님은 영이 되셨기 때문이다(고후3:17). 율법조문이나 추천서에 목매지 말고 성령을 붙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나하면 율법조문이나 추천서는 자신의 시야를 좁게 만들어버리지만 성령은 모든 것을 밝게 보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의 영이 있으면 잘못된 시야에서 벗어나 진정 볼 것을 보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도 자신이 과거에는 율법의 거울을 가지고 모든 것을 바라보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자신을 과거에 매여 있게 하여 진정 보아야할 것을 보지 못하게 했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진정 변화된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추천서가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거기에서 머물러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이제는 과연 그가 성령의 사람인가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외적인 자격을 볼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것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진정 변화되어 주의 영광의 모습으로 변화되려면, 추천서를 갖고 있다는 사람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진정 주의 영을 의지하면서 주의 영을 따라서 복음을 전파하는 자를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모두가 다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주의 형상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보아야 할 것을 보게 되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은 보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6. 나오며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외모를 본다. 겉모습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외적으로 합당한 자격을 지녔다고 판단되면 그 사람을 믿고 그 사람을 추종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종이 추천서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가 하나님께서 진정 인정해주는 사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열매가 없는 사도를 가리켜 사도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추천서를 가지고 온 사람에 대해서는 사도라고 인정해주면서, 추천서가 없이 복음을 전해준 바울에 대해서는 사도로서 인정해주지 않으려했던 고린도 교회는 잘못된 것이다. 그러한 예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 마찬가지인 것 같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사람이거나, 아니면 큰 건물을 소유하고 있거나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목회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위대한 종이라고 인정해주면서 진정 자신의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 애쓰는 종에 대해서는 존경심을 표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오늘날 진정한 하나님의 사역자는 사람의 영혼을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게 해 주는 사역자이지 아니한가! 그리고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갔을 때, 그 성도가 누리게 될 영원한 지위와 신분을 잘 준비케 도와주고 하늘에서 받을 영원한 상을 잘 준비해 주는 사역자가 진정한 사역자가 아니겠는가! 바울은 종이 추천서라도 영광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영광은 성령을 통한 복음전파의 열매라고 말하였다. 그렇다. 내게도 성령을 통하여 맺혀진 열매들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도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사역자가 되는 것이다.
2025년 03월 23일(주일)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