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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VMwGFcNqilw
날짜 2018-03-04
본문말씀 요한복음 14:1~11(신약 172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삼위일체하나님,양태론이단,아버지와아들,아버지하나님,아들하나님,아들의시작과끝,아버지와아들의관계,성경대로믿는신앙

예수님은 왜 자신을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을까? 예수님은 원래 하나님이시지 않으셨던가? 그런데 왜 자신을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을까? 아들이라는 의미가 무엇을 의미하기에, 예수께서는 자신에게 굳이 그러한 표현을 사용하셨을까? 그렇다면 아버지와 예수님은 어떤 관계라고 할 수 있는가? 삼위일체 하나님이기에 제2위에 해당하는 분이라는 뜻인가? 구약시대에는 과연 아버지가 계셨는가? 그리고 아들이라는 존재가 실제로 나타났던 적이 있었는가? 만세전부터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존재하셨다는데 그것이 성경에 나와 있는가? 성경은 하나님께서 아들의 신분으로 오셨다고 하는데, 왜 그랬어야 했는가?(사9:6) 그리고  그분이 아들이 되셔야 했던 이유는 진정 무엇이었는가?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또한 무엇인가? 오늘은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의 관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그러면 우리는 아들로 오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1.들어가며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요5:44, 8:41). 이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구약이 그렇게 단언하여 증거하고 있고 신약도 그렇게 증거하고 있다. 하지만 예수님이 하나님이신가 하는 문제를 두고 한 때 많이 고민했던 시대가 있었다(4세기경). 그래서 그때부터 예수님의 하나님되심에 관한 정의가 내려지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나중에는 신조가 되었다. 그러다보니 나중에는 성령님에 대한 정의도 내려져야 했다. 그런데 한 번 정해진 신조는 좀처럼 바꾸기가 어렵다는 것을 아는가?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전통이 되고 그것이 정통이라는 말로 위장되어 사람들을 그 기준으로 판단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에 내려진 정의들이 성경적이지 않는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참 고민이 아니 될 수가 없다. 그 부분에 대해 제대로 말을 하자니 이단 삼단하는 분들에게 매도당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렇다고 진리의 말씀을 전해야 할 책임을 가진 목회자가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참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래도 우리는 성경에 나와있는대로 전해야 하고 그대로 믿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을 알아가야 한다. 아니 힘써서 알아가야 한다. 그렇다. 하나님은 힘써 알아갈 존재이지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그냥 알려지는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6:3)"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힘써 알지 못한 상태에서 하나님을 섬기다가는 하나님이 아닌 우상이나 귀신들을 하나님으로 알고 섬길 수도 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아버지와 아들로 표현되고 있는지,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어떤 것인지를 살펴봄으로서 아들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2. 예수님은 시간이 생기기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다가 동정녀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는가?

  예수님이 누구시며, 그분이 아버지와는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알아보려면 성경을 찾아보면 알 수 있다. 신약성경 중에서도 특히 사복음서에서 요한복음의 말씀과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찾아보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알 수 있다. 거기에 성부와 성자에 관한 말씀이 집중적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을 읽기가 쉽지 않거나 부담스러워하는 분들은 성경을 요약해주는 그런 교리집이나 요약집들이 있었으면 한다. 그래서 신학자들의 모여서 그러한 작업을 하였는데, 그것을 일컬어 "교리"라고 부르며, 그것이 교회 가운데 신앙으로 고백되어지면 "신조"라고 부르게 된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계에 여러가지 신조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중에서 제일 첫번째로 나온 신조가 바로 "니케아신조"(A.D.325년)다. 그런데 훗날 니케아신조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정의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골격이 된다. 그리고 이 신조를 보완한 것이 "콘스탄티노플신조"(A.D.381)라는 것인데, 이것부터가 큰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이 신조에 보면 성경에 없는 말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징적인 표현인데도 그것을 직접적으로 표현함으로서 이것을 고백하는 성도들이 하나님을 두 분이나 세 분 하나님으로 잘못 이해하게 되어버린다.

  먼저, 니케아신조를 보자. 여기에는 "우리는 한 분 하나님, 아버지, 전능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만드신 자를 믿습니다... 또 한 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 이는 아버지로부터 특유하게 나셨고 즉 아버지의 본질로부터 나신, 하나님으로부터의 하나님이시요...또한 성신을 믿는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신조만을 그대로 읽게 되면, 신앙고백자는 하나님을 세 분으로 알게 될 위험성을 가지게 된다. 한 분 하나님이 있는데 거기에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있다고 말하지 않고, 한 분 하나님 아버지와 한 분 아들과 한 분 성령이 있다고 언급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예수님에 관한 신조가 이상하게 변질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즉 니케아신조를 보완한 "콘스탄티노플신조(A.D.381)"가 바로 그 예이다. 거기에 보면 예수께서 언제 아버지로부터 나오셨는지에 대해 정의하고 있는데, 그때는 "모든 세대 이전에 아버지로부터 나셨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크게 잘못된 정의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동정녀마리아의 출생을 통해서 비로소 이 세상에 나타나셨기(계시되었기) 때문이다(요1:14,18). 물론 하나님의 품 속에는 이미 독생하신 하나님께서 만세전부터 계셨다(요1:18). 즉 하나님의 생각 속에는 이미 아들도 있었던 것이다(요17:5). 하지만 구약시대만 해도 아직 아들은 출현하기 이전의 상태다. 그러므로 콘스탄티노플신조에 나오는 "모든 세대 이전에 아버지로부터 나셨다"는 문구는 잘못된 것이다. 더욱이 콘스탄티노플신조(A.D.381)에 더 보면, 기존의 사도신조에 한 가지 조항을 더 추가하였는데, 그것은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 가운데, "하늘에 오르사" 다음에 "하나님 우편에 계시다가"라는 조항이다. 하지만 이 말씀의 의미는 예수께서 진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이 아니라, 승천하시어 하늘에서 승리자로서 계신다는 것, 즉 영광스런 자리에 오르시어 통치가 되셨다는 것을 상징하는 표현인데, 사람들은 하나님 우편에 또 다른 예수님의 보좌가 있어서, 거기에 승천하신 예수께서 앉으셨다고 착각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적어도 A.D.325년에 나온 니케아신조에는 이러한 문구가 없었다. 그리고 예수께서 언제 아버지로부터 나오셨는지에 관한 규정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콘스탄티노플신조 때부터 성경에 없던 말이 추가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나서 "아타나시우스 신조"(A.S.450)에 보면, 이제는 예수께서 "시간이 시작되기 이전에 출생하였다"고 아예 못박고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만 홀로 계실 때에, 시간이 아직 탄생하기 전에 아들이신 예수께서 아버지로부터 출생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뒤에 나온 신학자들은 성자 예수님은 이미 시간 이전에, 만세전부터 아버지로부터 나오시어 존재하고 있다가, 동정녀마리아의 몸을 빌어 태어나셨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른다. 그리고 아타나시우스는 누구든지 구원받기를 원하는 자는 삼위일체를 믿어야 한다고 규정함으로서, 이 삼위일체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구원받을 수 없는 이단에 속한다고 말해버렸다. 그러므로 그 뒤에 <칼케돈신조(A.D.451)>에서 이는 더욱 고착화되었고, 모든 믿는 이들은 만세전 즉 시간이전부터 아들이 계셨으며, 이 아들이 동정녀마리아의 몸을 빌어서 태어나셨다는 신앙고백을 아무런 분별없이 그대로 고백하게 되었다(성경에는 그러한 말이 없는데도 말이다).

 

3. 예수님은 언제부터 계셨는가?

  그렇다면 성경은 아들에 관하여 어떻게 말씀하고 있을까? 성경의 기록은 간단하다. 예수께서 동정녀마리아의 몸에서 탄생하실 때에 아버지로부터 나오신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기 때문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죽으시기 하루 전날밤에 그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서 세상에(안으로)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를 향하여) 가노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날 초저녁의 상황을 말씀하고 있는 사도요한은 그 순간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셨다가 하나님께로(을 향하여)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요13:3)" 그렇다. 예수께서 지금으로부터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실 때에, 아버지께로부터 혹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이 세상 안으로 들어오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콘스탄티노플신조나 아타나시우스신조는 이 부분에 있이서 잘못된 신앙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은 시간이 생기기도 전에 아버지로부터 아들이 나오시고 성령이 또한 발출하셨으며, 그러다가 천지창조사역이 이루어졌다고 믿고 있는데 이는 성경적이 아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구약이전부터 아들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구약성경을 다 뒤져보라. 거기에 아들이 나타나 있었다고 언급하는 대목은 나오는가? 나오지 않는다. 만약 있다고 하는 비슷한 문구가 있다면, 그것은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그의 천사들과 나눈 대화들일 뿐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1:27)" 천지창조전에 이미 창조되어 있는 천사들과 하나님께서 나눈 대화인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는 홀로 즉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창1:28)"던 것이다. 또한 이사야선지자는 천지창조사역에 오직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만 일하셨다고 증언하고 있다(사44:24).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사44:24)" 그러므로 구약시대만 하더라도 아들이란 하나님의 생각속이나 계획 속에 있었던 것이지, 아직 밖으로 표현되지 아니한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아버지로부터 아들이 동정녀마리아의 태에 잉태되셨고 곧 아들로 탄생하신 것이다. 아들이 천국의 어딘가에 서성이며 있다가 오신 것이 결코 아니다.

 

4. 아들이란 어떤 존재이며, 아버지와는 어떤 관계인가?

  그렇다면, 아들이란 어떤 존재를 가리키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들어오심으로 붙여진 명칭이다. 다시 말해, 아들은 나타난 하나님이시다. 이것은 그분이 그때 창조되신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며, 이전부터 하나님의 생각 속에 존재하시고 있던 하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것을 가리킨다. 그렇지만 그분의 존재는 동정녀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심으로 비로소 나타나신(출현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아들이란 인성을 취하신 하나님에 대한 별칭이다. 하지만 그분은 이전부터 계신 하나님이시기에, 예수님은 사람이 되신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100% 신성이 있고, 또한 100% 인성으로 조성되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아들이라는 표현이 사용될 때에는 반드시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가리킬 때만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인성이란 그분이 탄생하시고 고난받으시고 죽으실 수 있는 존재가 되셨다는 것을 말해준다. 왜 그러셨는가? 그것은 우리 죄많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부득이하게 취하신 선택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피흘릴 수 없고 고난받을 수 없으며, 또한 죽으실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흘림 없은즉 죄사함이 없으니(히9:22, 레17:11), 하나님께서 피흘려 죽으시기 위해 사람이 되신 것이다. 고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아들의 신분으로 오신 하나님이요, 사람이 되신 하나님인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알아둘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아들이라고 한 표현은 언젠가는 사라질 표현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류구원을 위해 부득불 취하신 신분이 아들이라는 신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에 보면, 아들이라는 신분으로서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더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였던 원수마귀와 귀신들 및 사망을 처리하는 일이다(고전15:23~26). 이것도 아들의 신분으로 하실 일이다. 사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그분은 "다 이루었다"고 하셨다(요19:30). 이는 인류속죄를 위해 아들로서의 일을 다 완성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때에 동시에 이 세상임금인 마귀도 심판을 받았다(요12:31~32). 그래서 그는 그는 이 세상에서 쫓겨나 지하음부에 갇히게 되었다(물론 그는 자신의 영을 보내어 지금도 일하고 있고, 자신의 부하들인 귀신들을 음부의 문들로 보내어 여전히 사탄마귀로서의 일을 열심히 행하고 있다). 하지만 예수께서 재림하시면, 하나님께서는 마귀에게 완전한 심판을 내리실 것이다. 그것이 바로 두번째로 "다 이루셨다"는 말씀이다(계21:6). 그때 아들께서는 그들을 불못에 다 멸하실 것이다(계20:10). 그러므로 그때까지 예수께서는 아들이라는 신분을 쓰실 것이다. 그리고 오늘도 하늘에서 우리의 기도에 대하여 대제사장(히4:14~16)과 중보자(요일2:1~2, 히7:25)로서의 일도 수행하고 계신다. 

  그렇다면 "아버지"란 누구며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아버지는 상대적인 표현이다. 아들이 있기에 아버지라고 표현되기 때문이다. 아들이 없는 자는 아버지라고 불리워지지 않듯이, 동시존재가 가능하신 하나님께서 아들이라는 신분으로 오심으로 말미암아, 드디어 하늘에 계신 분 곧 신성만을 가지신 하나님은 아버지라고 불리우게 된 것이다. 고로 아버지는 신성만을 가지신 하나님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반대로 아들이란 인성을 취하신 하나님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그러므로 만세전부터 홀로 한 분으로 존재하셨던 하나님께서 아들의 신분으로 이 세상에 들어오심으로 하나님은 두 분처럼 표현되셨다. 하늘에는 아버지가 계시고, 이 땅에는 아들이 동시에 존재하게 된 것이다. 고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아들의 신분으로 오셨음에 대한 부득이한 표현인 것이다. 사실은 그분의 본질은 하나님이기 때문이다(빌2:6, 히1:3). 하지만 사람이 되셨으니(인성을 취하셨으니), 그분을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는 없기에 아들 혹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한편, 공생애기간 중에 예수께서는 자신을 "인자"라고도 표현하셨는데, 이는 예수님의 사람되심을 강조하신 표현임과 동시에 자신을 스스로 호칭하는 표현인 것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아들이라는 신분은 하나님께서 인성을 취하신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스스로 어떤 제한 안으로 들어가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그러셨는가? 그래야만 속죄제물이 되어 죽으실 수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마귀가 예수님을 얕잡아보고 달려들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면, 어찌 마귀가 예수님을 죽이려고 시도했겠는가? 그도 사실은 몰랐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니, 하나님 같기도 하고 사람같기도 했기에, 사람이면 죽일 수 있다고 덤벼든 것이다. 하지만 죄없는 예수님을 죽이고 말았으니, 마귀는 그 범죄행위 때문에 사망권세를 빼앗기고 말았다(계1:18). 그리고 그때에 이 세상으로부터 음부(땅속)로 쫓겨나게 되었던 것이다(계20:1~3). 하지만 이러한 예수님의 약해지심으로 인하여 그도 예수님을 죽으실 수 있었으니(고후13:4), 그것으로 인하여 우리 인류의 죄가 속량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예수님께서 인성을 취하심으로 스스로 자신을 제한하신 것 때문에 예수께서는 때로는 다른 표현들을 말씀하시기도 하셨다. "그러나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24:36)",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요13:16)",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요14:28)" 그렇다. 신성만을 가지신 아버지는 제한이 없으시다. 하지만 고난받고 죽으시기 위해 모든 것(능력, 권세, 신성, 전지전능...)을 제한하신 예수께서는 재림하실 그날에 대해서는 아버지의 권한에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행1:7). 사실 재림은 예수님의 재림이기는 하지만 구약성경에 보면 여호와의 재림이라고 말씀하고 있다(슥14:3~5). 그렇지만 이러한 문구들로 인하여, 여호와증인과 같은 이단은 예수님을 피조물이라고 말한다. 만약 이들이 이러한 신앙고백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반드시 지옥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전능한 창조주께서 우리 죄를 속량하기 위해 사람이 되어오신 것을 두고, 예수님을 피조물로까지 낮춘 그들의 죄는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물론 회개하면 이같은 죄라도 다 용서받을 수 있다.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아니할 수 없다).

 

5. 나오며

   예수님은 누구신가? 그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사람되신 하나님이요 인성을 취하신 하나님이며 나타나신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아무도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타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그때 당시 하나님을 볼 수 있었고 만져볼 수도 있었다(요일1:1). 하지만 육체를 입으셨던 시기까지 제자들은 예수님을 자신의 형님이요 선생님 정도로 알았다가, 예수께서 부활하시자, 그들은 완전히 뒤집어지고 말았다. 예수께서 그들 앞에 무소부재한 상태로 출현하시는 것을 보았을 때, 그들은 그분 앞에 완전히 엎드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제자들은 예수님을 "주 하나님"으로 고백하게 된다(요20:28). 심지어 예수님의 친동생들이었던 야고보와 요한도 예수님을 주와 하나님으로 고백하게 된다. 그렇다. 우리를 위해 사람이 되신 하나님을 피조물로 격하시키지 말라. 그리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서 하나님보다 못한 존재로 말하지 말라. 우리 죄를 없애기 위해 부득이하게 취하신 그분의 낮아지심을 두고, 그분을 피조물이라고 운운하는 것은 신성모독죄에 해당할 것이다.

  또한 콘스탄티노플신조처럼 예수님의 나오심에 관하여 잘못 정의하는 것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구약시대에는 아들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탄생하심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는 아들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들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만큼은 사실이다.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 속에 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록 예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아버지도 계시고 아들도 계셨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 분 하나님이라고 말해서는 아니 된다. 하나님은 언제나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것은 변함없는 진리다. 단지 우리 인간의 구속을 위해 무소부재하시고 동시존재가 가능하신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것 뿐이다. 우리를 위해 친히 사람이 되시고, 종의 형체를 가지사 피흘리고 죽음 안으로 친히 걸어가신 우리 주 하나님, 우리 주 예수님을 찬양하자. 그리고 그분만을 나의 주 하나님으로 모시고 섬기자.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마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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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마리아는 정녕 은혜를 입은 것인가?(눅1:326~38)_2017-12-10

    마리아에게 전한 천사의 소식은 그녀를 당황하게 했다. 정혼을 하고 이제 결혼을 앞둔 그녀에게 임신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녀에게 매우 위험한 요소였다. 하지만 그것은 인류역사에 가장 중요한 결정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Date2017.12.10 By갈렙 Views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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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이 시대의 참된 두 증인은 누구인가?(계11:3~6)_2017-12-03

    만약 지금 내가 이 땅 위에 세워진 교회나 주의 종들 가운데 어떤 교회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나는 과연 어떤 교회와 어떤 주의 종을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 저마다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의 책으로 주어진 요한계시...
    Date2017.12.03 By갈렙 Views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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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주님의 양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가 아니면 주님의 양이 되어지는가?(요10:22~30)_2017-11-26

    주님의 양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될 자는 만세전에 이미 정해진 것인가 아니면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믿어서 그분의 양이 되는 것인가? 이것은 교단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있다. 그런데 장로교단에 따르면, 만세전에 구원받을 자는 하나님이 미리 정해놓으셨다...
    Date2017.11.26 By갈렙 Views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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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하나님께서는 왜 구약시대에는 엄격한 잣대를 사용하셨나?(신7:6~11)_2017-11-19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았다는 것은 좋은 일인가 아니면 걱정해야 할 일인가? 어떤 이는 이스라엘 민족을 부러워한다. 어떻게 수천년전에 하나님을 알고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는지, 그들이 참 부럽다고 한다. 그들이 일치감찌 선택을 받았기 때문이다. 오늘...
    Date2017.11.19 By갈렙 Views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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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정복할 것인가 아니면 섬길 것인가?(마20:28)_2017-11-12

    여러분은 혹시 천주교인들과 청도교인들에 의해 미대륙에서 저지른 잔인한 학살에 대해 알고 있는가? 그들은 약 400년간 약 1억명에 가까운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죽였다. 어떻게 되어서 기독교인들인데도 이들은 아메리카 인디언들 이렇게 무참히 난도질하였을...
    Date2017.11.12 By갈렙 Views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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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히브리서가 말하는 구원탈락에 관한 5가지 경고(히2:1~4)_2017-11-05

    히브리서는 누가 썼을까? 그리고 왜 썼을까? 이것만 알아도 히브리서가 어떤 책인지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히브리서는 서신서에 속하지만 일반서신으로 분류되고 있다. 대상이 분명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미 믿음으로 구원얻은 자가 다...
    Date2017.11.05 By갈렙 Views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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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요한복음6:35~40에 대한 바른 번역과 바른 해석(요6:35~40)

    눌라운 사실은 우리말 개역성경이 진리를 속이고 우리를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것에는 요10:29도 있고, 요6:37과 39절의 말씀도 있다. 그런에 오늘 이 시간에는 요6:37과 39절의 말씀이 얼마나 잘못 번역되어 있어서, 칼빈주의에 맞게금 틀어져 있는...
    Date2017.10.29 By갈렙 Views1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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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믿는 자는 영원히 멸망당하지 아니하는가?(요10:22~29)_2017-10-22

    1. 들어가며 믿는 자는 과연 영원히 멸망당하지 아니하는가? 아니면 중간에 미끄러질 수도 있는가? 그리고 사람이 믿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그를 구원하기로 예정해서 믿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구원의 초청을 듣고 자신이 믿어서 구원을 얻게 ...
    Date2017.10.22 By갈렙 Views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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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믿는 자들도 타락할 수 있는가?(히6:4~8)_2017-10-15

    믿는 자들도 과연 타락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절대 작정이나 만세전 예정론을 믿는 이들은 믿는 자들은 결코 스스로 믿은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만세전의 예정에 따라 믿게 된 것이기에, 절대 타락할 수도 없으며 구원의 노정에서 탈락될 수도 없다고 주장한...
    Date2017.10.15 By갈렙 Views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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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기독교를 무너뜨리는 동성애 법제화를 막으려면(갈3:28)_2017-10-08

    지금 한국교회가 위기다. 내적으로는 여러가지 부패에 휘말려 있고, 외적으로 동성애세력들에 의해 공격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2018년의 헌법개정이다. 헌법개정안 속에 동성애 독소조항을 집어넣으려고 시도하고 있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
    Date2017.10.08 By갈렙 Views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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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누가 무너뜨릴 수 있으랴(고후4;3~15)_2017-10-01

    하나님께서는 우리 믿는 자들을 어떻게 보호하시고 지켜주시는 것일까? 그리고 언제까지 우리를 지켜주시며, 어느 정도까지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시는 것일까? 그러나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때로 발생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때는 언제...
    Date2017.10.01 By갈렙 Views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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