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교회 이야기(7)
2007년 9월 19일(수)
제목 : “야고보와 초대교회”
지금으로부터 5년전인 2002년 10월경 예루살렘에서 “야고보, 요셉의 아들, 예수의 형제”라는 이름이 새겨진 석회석 유골함이 발견되었다. 그러자 전 세계 기독교인은 물론 고고학자, 신학자, 일반인들의 지대한 관심이 불러일으켜졌었다. 하지만 그 이듬해인 2003년 6월, 이스라엘 문화제청은 유골함이 당시의 것이지만 글씨는 위조된 것이라고 판시하고 만다.
야고보. 예수의 친동생이자,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수장이었던 그는 A.D.62년 순교하기까지 초대교회의 기둥같은 인물이었다(갈2:9). 초대교회가 세워질 때, 왜 예수의 동생의 이름이 성경에 중요하게 언급되고 있는 것일까?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말한다. 교회가 세워질 때 가족의 도움은 필요할망정 그들에 대해 경계해야 된다고 말이다. 왜냐하면 가족들이란 처음에는 교회개척에 도움이 되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방해가 되기 일쑤라고 한다. 과연 교회를 개척하게 될 때, 가족들은 교회개척에 꼭 필요한 존재인가 아니면 멀리 할 존재인가?
1. 개척교회에서 ‘가족’이란 의미
요 몇 주 전 나는 인천검단지구에 위치한 어느 개척교회 창립예배에 참석했었다. 그 날은 토요일이었다. 실평수 60평의 널따란 흰색 예배당은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확 트이는 느낌에, 뭔가 새로움을 물씬 풍기기까지 했다. 개척교회 창립예배라 그런지 동안 그 목사님이 섬기거나 관계한 여러 교회에서 창립예배를 축하하러 그곳에 와 있었다. 심지어 어떤 교회에서는 대형차까지 몰고 저 먼 지방에서 검단까지 와서인지 성전은 여러 성도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 이튿날이 되자 그 전날의 상황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생겼다고 한다. 주일이 되자, 모두 돌아간 예배당은 텅 빈 공간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인천 근교에 살고 있는 가족들은 그곳에 남아 예배를 드리고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얼마나 허전했을까?
예배당에 사람이 없이 드리는 예배,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것만 같다. 그 기분을 그 목사님도 경험했으리라... 특히 그 목사님은 예배당을 마련하자마자 창립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교회 등록식구 하나 없이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동탄명성교회의 경우는 어떠한가? 예배당을 마련할 길이 없어, 아파트 거실을 빌어 예배를 드리게 되었으니, 창립예배라는 절차 하나 없이 그저 가족이 모여 예배를 드렸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난 후, 실평수 43평 상가를 얻어 예배당을 완공한 후, 우리 교회는 우리 성오들의 힘으로 창립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안내와 봉사인원 전부를 우리 교회 성도들이 담당했다. 성도는 많지는 않았어도 우리 교인이 어깨띠를 두르고 밖에 나가 안내하고 창립예배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얼마나 가슴이 뿌듯하던지... 혹 교회를 개척할 후배 교역자가 있다고 한다면, 되도록 어느 정도 성도가 등록한 후, 창립예배를 드리라고 권면하고 싶다.
사실 창립예배일이 아닌, 평소 때 드리는 개척교회 주일예배는 어느 교회이든지 참으로 한산하기만 할 것이다. 아니 그 도를 넘어 싸늘하기까지 할 것이다. 거실에서 예배드리던 지난날의 동탄명성교회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저의 누님가족이 그날 오시지 않았다고 한다면 틀림없이 우리 가족만 예배드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당시도 누님가족더러 우리 교회에 나와 함께 예배드리자고 말씀드리지는 않았었다. 단지 교회 상황을 알고 찾아왔었다. 억지로 나오라 하지 않았기에, 지금도 누님 가족은 자발적으로 나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회개척의 핵심인물들이 되어 섬기고 있다. 그렇지만 3일뒤 가졌던 수요기도회는 더욱 허전했다. 개척초기라 그러한지 수요기도회가 있는 저녁시간, 약 한 달 동안 아무리 기다려도 성도가 나오지를 않는 것이 아닌가? 개척교회는 이런거구나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저의 집사람과 두 아이들 즉 아들과 딸을 앉혀 놓고 예배를 드렸다. 한 달이 지나도록 한 사람도 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그들이 안 온 것은 그들 손해지, 내 손해는 아니야.”라고 말이다. 그래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예배는 그만큼 힘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가족만 있는 거실에서 나는 늘 용기내어 더 큰 목소리로 말씀을 전했다.
첫 주일예배를 우리 식구와 누님 가족과 함께 드리고 나니, 예배공간이 너무 퀭해 보였다. 방석을 놓아둔 거실처소는 아직 예배당으로서 아직 제 모습을 갖추지 못했다. 예배를 시작한 지 둘째주에 있었던 일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어떤 한 가정에서 아들 한 명, 이렇게 셋이 예배에 참석했다. 그런데 그분들이 예배시간 내내 거실 바닦에 양반자세로 앉아서 예배를 드리다보니, 헌금순서 시간에 일어서는 순간, 그만 남편되시는 분이 뒤로 넘어지고 만 것이다. “쿵”. 모두들 놀랐다. 얼마나 죄송스럽고 미안하든지... 하는 수 없이 저의 집사님과 나는 인터넷을 뒤져 예배당에 놓을 의자를 찾아 보았다. 예배당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이동하기도 편리하고 또한 한 곳에 쌓아둘 수 있도록,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강의식 의자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거실에 비치해 보았더니, 그제야 좀 예배당 같이 보였다. “그래, 뭐니뭐니해도 예배당은 의자가 있어야해. 허리도 안 아프고 넘어지는 사람도 없고, 공간도 많이 활용되어 그냥 방석에 앉아서 예배드리기보다는 훨씬 더 낫구나.”
이렇게 해서 또 다시 한 주가 흘러갔다. 그 뒤 한 주에 한 두 가정 정도 거실예배당까지 찾아왔지만, 그들은 좀처럼 등록하지 않았다. 왜 그런가 싶었다. 생각해보니, 예배당이라고 찾아왔지만 오직 우리 식구와 누님 가족 달랑 몇 명이 앉아 예배드리고 있으니, 얼마나 뻘죽했을까?
예배를 시작한 지 셋째주가 되자, 우리 교회를 찾아온 방문객들이 모두 다 떠나고, 우리 식구와 누님 가족이 함께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때 누님은 식사를 마치자마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족이란 의미가 무엇이지? 지금 이 개척시기에 와서 도와주지 않는다면, 정말 나중에 섭섭하다 하지 않을까? 내가 지금 전화해서라도 다음 주부터는 우리 가족들만이라도 앉아 있어서 어느 정도 이 자리를 메꾸어야지, 이렇게 쾡한 공간에서 누가 등록하겠어?”라고 하지 않은가!
그 다음 주일에는 부천에 살고 있는, 저의 동생네 가족 4식구가 주일낮예배에 참여하기 위해 동탄을 찾아왔다. 그러자 그 다음주부터 결과는 놀랍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등록 신자가 생긴 것이다. 물론 등록신자가 생긴 것은 여러 가지 다른 이유도 있었겠지만, 작지만 거실예배당에 사람이 어느 정도 들어차게 있음에 다소 안정이 된 듯 보여서가 아닐까 싶었다.
“역시, 가족이란 이런거구나!” 어려울 때 힘이 되어 주는 사람들, 이것이 가족이었다.
예전에 어떤 유명한 전도왕 집사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전도를 하다가도 작정한 사람 수를 채우지 못하게 되면, 양로원에 가서라도 할머니 할아버지를 돈주고 꾸워 왔다고 말이다. 예배당의 인원수와 분위기가 이처럼 초기교회에 영향을 미칠 줄은 나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누님 가족을 통해 가족이란 의미를 생각하게 해주었고, 그 뒤 여러 등록 신자가 계속 생기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 후 약 4달동안 예배를 돕던 저의 동생네 가족은 다시 본교회로 돌아갔고, 그 뒤 강남에 살고 계시는 저의 형님께서 약 한 달 동안 예배공간을 채워주셨다. “모두모두 감사드립니다.” “동생아, 고맙다. 그리고 작은 형님, 고맙습니다.” 동생네 가족과 작은 형님 가족은 다시 본교회로 돌아가면서 개척헌금을 하고 가셨다. 이제 우리교회는 등록 신자가 안내를 보고, 등록신자가 헌금위원으로 봉사하고 있는 교회가 되었다.
2. 우리 교회 알짜배기 개척멤버들
사실 개척초기에 등록한 등록성도라도 담임목회자가 차마 할 수 없는 말이 있다. 그것은 헌금과 봉사에 관한 이야기다. 돈이 없다고 헌금하라고 하거나, 일손이 없다고 봉사하라고 하면 그나마 등록한 교인까지도 다 떠날까봐서 차마 그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에서 가장 바쁘고 가장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은 따로 있게 된다. 다름 아닌 사모다. 7월 중순경 이곳 성전으로 이사오기 전까지는 아내는 가족식사를, 그리고 이사 와서는 매주일 전교인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준비하는 것이라곤 반찬 3가지와 국과 과일 정도다. 하지만 남자로서 그러한 일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실제는 안 그런 모양이다. 이제는 몇몇 가정에서 자발적으로 반찬과 과일과 빵까지 준비해오고 있지만, 아내는 그 일 때문에 여간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어디 그 뿐인가? 토요일이 되면 예배당 청소해야지, 수요일이 되면 알파코스 간식 준비 해야지, 금요구역예배가 되면 점심식사 준비해야지. 남편 식사 꼬박꼬박 챙겨 줘야지. 그래서인지 아내에게 늘 미안안 마음 금할 길이 없다. 더군다나 아내는 개척 첫 날부터 신디를 가지고 교회예배 반주를 하고 있다. 아내는 개척초기 당시 반주자가 없을 것을 대비하여, 어렸을 때 손을 놓았던 피아노를 다시 잡고, 약 3년간을 준비했었다.
그런데 진짜 알짜배기 개척멤버는 따로 있다. 그들은 다름 아닌 나의 아들과 딸이다. 정가람, 정예지. 초등학교 5학년 남자와 4학년 여자애이다. 늘 싸우고, 동생은 오빠한테 인터넷 그만 하라고 외치고, 오빠는 동생에게 TV좀 그만 보라도 싸우는 철부지 어린애들이지만, 우리 동탄명성교회에 있어서 이들은 정말 긴요한 개척멤버가 아닐 수 없다.
개척을 하기 전 나는 우리 애들이 개척교회에 중대한 역할을 감당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단지 이들 스스로가 자신의 앞가림 즉 때가 되면 부모 없이도 밥을 차려먹고, 집도 지키는 정도를 바랬을 뿐이다. 하지만 이들은 달랐다.
예배 때마다 한 번도 빠지지 않는 알짜배기 성도들이다. 나의 아내와 애들마저 없었다고 한다면, 나는 또 누구를 향해 말씀을 전할 수 있었을까! 고맙게도 나의 아내와 애들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예배시간을 늘 지켜주었다. 어디 그 뿐인가?
나는 이전부터 오랫동안 영상편집에 관심을 가지고, 비디오촬영과 편집 그리고 인터넷설교방송을 담당해 왔었다. 그러기에 멀리서도 설교방송을 통해, 진정 하나님의 말씀에 갈급한 심령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5월경 홈페이지를 마련하여, 인터넷설교방송을 해왔다. 그러므로 설교 첫날부터 지금까지 주일낮예배 설교영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런데 문제는 누가 비디오촬영을 하게 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처음에는 매형더러 좀 도와달라고 했다. 하지만 매형은 얼마 안 있어, 주일낮예배 기도순서자가 되었기에 뒤로 왔다갔다 할 수 없는 형편이 되어 비디오촬영을 담당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어쩔 수 없이 아들을 불러서 그 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해 보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 때가 큰 일꾼을 발굴하는 시간이었다. 아들은 그 일을 매우 재미있어 했고, 지금까지 그 일을 사명감을 가지고 감당하고 있다. 또한 성전으로 이사해서는 방송실 일까지 도맡아 해오고 있으며, 딸은 주일낮1부예배에는 자신이 배운 바이올린으로 찬송가를 연주하고 있으며, 주일저녁예배시간에는 파워포인트 담당 사역자로 일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한 달 전 또 한 번 깜짝 놀랄 만한 일이 생겼다. 그 날은 주일저녁예배를 위해 저의 누님가족이 특순을 준비하던 날이었다. 그때 갑자기 드럼채를 잡고 있던 아들이 드럼 연주를 한 번 해보겠다는 것이다. 그 드럼은 지난 7월 중순경 성전입당기념 부흥성회 때 사용한 것으로서, 외부에서 도우러 온 어떤 형제가 드럼 연주를 했던 것이 전부였었다. 그런데 그 4일간의 부흥성회 때, 아들은 그 드럼을 연주하던 형제를 주목해 본 것이다. 그리고 한 번 해보겠다고 하는 것이다. 한 번 해보라고 시켜보자, 제법 연주를 하는 것이 아닌가? 이전까지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 아들은 음악에는 별로 흥미가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박자 감각이 상당히 뛰어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맨날 아빠 핸드폰으로 캐논변주곡을 연주하던 아들이 떠올랐다. “그래. 아들은 핸드폰에 있는 번호키를 사용하여 음악연주를 하곤 했었지...” 아들녀석은 초등학교 2학년 무렵, 피아노 기초교본인 바이엘의 얼마를 배우다가 그만 두었었다. 그래서 피아노와 음악에는 소질이 없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날 아들 드럼 연주 솜씨는 우리 가족 모두를 놀라게 했다. 또한 군데군데 애드립까지 넣고 있는 아들을 우리는 신기하게 쳐다 볼 뿐이었다.
그 다음주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서울대 음대에 재학중인 딸을 준 우리 교회 집사님께서 “그럼, 아들을 대형할인마트에 개설된, 문화센터 드럼교실에 한 번 보내 보세요.”라고 제안하시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알아보았더니 수 십 명이 단체로 배운다 하기에, 소수만을 가르치는 곳이 좋겠다 싶어 또 다시 다른 곳을 찾아보았다. 그러던 어느날, 이곳 동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개인레슨을 해주는 기독문화센터 교회가 있었다. 알아보니, 주일날 오후 3시부터 5시 사이에 개인레슨이 해 준다고 하였다.
주일낮2부예배를 마치고, 식사를 한 후 뒷정리를 하게 되면 개인적으로 몸은 피곤할 때가 일쑤지만, 나는 지금도 아들을 위해 기독문화센터를 운영하는 그 교회까지 차를 몰고 가고 있다. 아들이 너무나 대견하기 때문이다. 정말 아들은 개척멤버이다. 이제는 파워포인트와 빔프로젝트 간의 관계에 대해서, 오히려 나보다 더 잘 알아서 척척 준비해 준다. 참으로 고맙고 기특하기 그지 없다. 등록한 교인에게 봉사를 부탁하기에는 아직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는 시기에, 아들녀석 때문에 나는 지금 너무나 행복하다.
어디 그 뿐인가? 딸 예지는 또 어떠한가? 매주일 거의 2차례 이상 아빠의 손을 잡고 아파트 전도를 따라다니고 있다. 안 가는 날이면 가자고 졸라대기까지 한다. 전도하다 친구들을 만나면 부끄러울 수도 있을텐데... 하지만 우리 딸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전도하러 나를 따라나선다. 처음에는 아빠의 보폭 속도에 못 맞춰 힘들어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체력적인 면에서 이제는 나와 동등한 레벨을 유지하고 있다. “아빠, 이제는 다리가 안 아파요.” 그러므로 딸과 함께 아파트를 들어설 때면, 힘이 저절로 막 난다.
“가람아, 예지야, 정말 고맙구나. 너희들이 진정 우리 교회의 진짜 알짜배기 개척멤버인 걸 내가 몰랐었구나!”
“사랑하는 주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훌륭한 아들 딸을 주시어, 교회의 빈 자리를 채우게 하시고, 봉사의 빈 공간을 메우게 하시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들이 장차 들어갈 하늘나라에서는 풍성한 상급이 있게 하시고, 아름다운 면류관을 씌워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대한예수교장로회 동탄명성교회 정병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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