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29(수) 수요기도회
제목: 갈라디아서강해(01) 참된 복음과 바울의 사도직의 신적 기원(01)(갈1:1~24)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Yk_05pJyqCc
바울이 개척했던 "갈라디아 교회", 그러나 갈라디아교회가 사도행전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갈라디아교회는 어느 교회를 지칭하는 말인가? 그리고 바울은 왜 이 교회에게 편지를 써 보내야만 했는가? 이신칭의에 대한 "기독교의 참된 복음"과 "자유의 대헌장"이라고 불리는 갈라디아서는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들려주는가? 오늘은 그 첫째 시간으로서 갈라디아서의 배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것만 알아도 갈라디아서가 눈에 쏘옥 들어올 것이다.
1. 들어가며
갈라디아서는 누가 누구에게 어떤 목적을 가지고 기록한 서신인가?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그의 동료형제들과 함께 자신이 개척한 바 있는 갈라디아지역에 있는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다. 그런데 왜 바울은 이 편지를 써 보내야 했던 것일까? 그것만 제대로 파악하고 읽어도 갈라디아서가 한 눈에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갈라디아서는 오직 한 가지 목적을 위해서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갈라디아서 강해 첫 시간으로서 갈라디아서의 배경을 살펴볼 것인데, 갈라디아서의 발신자와 수신자과 저술목적 그리고 갈라디아서는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갈라디아서는 누가 누구에게 언제 보낸 편지인가?
갈라디아서는 사도바울이 쓴 서신서 중에 하나다. 사도바울이 함께 있는 형제들과 함께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들에게 이 편지를 써 보냈다. 그렇다면, 갈라디아교회들은 대체 어느 어느 교회를 지칭하는 것일까?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사도행전을 한 번쯤은 읽어 보았을 것이다. 거기에는 사도바울이 무려 3차에 걸쳐 전도여행을 했던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렇다면, 갈라디아교회들은 1차에서 2차, 3차 전도여행 가운데 그 이름이 등장해야 한다. 하지만 사도행전을 아무리 읽어보아도 거기에는 "갈라디아 교회"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갈라디아"라는 명칭이 로마의 행정구역상 상당히 큰 지역을 포함하는 명칭이었기 때문이다. 특별히 "갈라디아"라는 말은 고울 족들이 사는 지방들을 일컫는 명칭으로서, 오늘날 터키의 중부지역 가운데 북부와 남부에 걸쳐져 있는 상당히 큰 지역을 가리킨다(지도 참조). 그렇다면, 사도바울은 갈라디아 지역 중에서 주로 어디를 다녀간 것일까? 그것은 주로 남부에 위치해 있는 갈라디아지역들이다(행13:13~14:28).
다시 말해, 바울이 교회를 세웠던 남부 갈라디아는 밤빌리아 버가를 지나 위치해 있는 윗지방들로써, 거기에는 비시디아와 루가오니아와 부르기아 그리고 이사우리아가 위치해 있다. 이 지역에는 비시디아의 안디옥과 루스드라, 이고니온, 더베 같은 도시가 위치해 있다. 그렇다면, 바울이 편지를 써보낸 갈라디아 교회들은 바로 이 지역에 위치한 교회들을 가리키는 것일까? 그렇다. 바울은 1차전도여행 때에 남부 갈라디아의 도시들을 다니며 전도를 하였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서 바울은 갈4장에서 자신이 개척한 교회들이 갈라디아 교회들이었음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갈4:13~15). "내가 처음에(1차전도여행 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너희가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너희는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갈4:13~15)"
고로 이 편지는 적어도 바울이 1차전도 여행을 마친 후에 기록하였을 것이라고 추정되는데, 보통 학자들은 바울이 3차전도여행 중에 마케도냐에서 A.D.55~56년경에 기록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3. 갈라디아서는 무슨 목적으로 보낸 편지인가?
그렇다면, 바울은 왜 갈라디아에 위치한 교회들에게 이 편지를 써보내야 했던 것일까? 만약 우리가 그 이유와 목적을 먼저 파악하고 갈라디아서를 본다면, 갈라디아서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이유들이 갈라디아서 전반에 걸쳐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갈라디아서의 주제를 갈라디아서에 나오는 말로 요약해보면, 아마도 "다른 복음은 없다"라고 요약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 주장은 상당히 일리있는 주장이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쓴 것은 다른 복음에 미혹받아 흔들리고 있는 성도들을 위하여 이 편지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자들이 갈라디아교회를 소란하게 하고 미혹하여, 바울이 전한 복음으로부터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좇아가게 유도한 것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고, 예수님을 믿는 자라도 구원받으려면 할례도 받고 절기를 지키며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는 거짓 형제들 때문이었다(갈2:3~4). 이들은 예수님을 믿어 이미 자유를 누리고 있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갈라디아 성도들로부터 자유를 빼앗아서 자기들의 종으로 삼으려고 하는 자들이었다. 그러니 자기들은 예루살렘에 온 기독교의 원조라고 강조하면서, 바울의 사도직은 정통이 아니며 바울이 전한 복음도 온전한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믿었더라도 반드시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변질케하고 있는 이들을 일컬어 사도바울은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갈3:10)", 혹은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교으로 돌아가도록 종용하는 자들(갈4:9)"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무릇 육체에 모양을 내려하는 자들로서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갈5:11~12)이자,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갈4:10)이라고 했다. 한 마디로 이들은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얻었더라도 할례를 받아야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갈4:21)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되는 것이지 결코 율법을 지켜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하여 말하였다(갈2:16).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한다면 그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인 것을 알라고 하였으며(갈3:11~13),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라 맞다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신 것이라고까지 말하였다(갈2:21).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 편지를 통하여 사람을 의롭게 만들어주며, 율법의 저주에 벗어나게 하고, 성령을 받게 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상기시켜주려고 이 편지를 쓴 것이다.
4. 갈라디아서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갈라디아서 6장의 내용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우선 갈라디아서는 편지의 형식을 빌어 쓴 것이기에, 인삿말(1:1~5)과 끝맺는 말(6:11~18)이 앞 뒤에 배치되어 있고, 핵심내용은 그 중간(1:6~6:10)에 위치시켜 놓았다. 그리고 또 다시 핵심내용은 두 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전반부(1:6~4장)에 교리부분을 기록하고 있고, 후반부(5장~6:10)에 실천편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전반부(1:6~4장)은 다시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앞부분(1:6~2:21)에서는 바울의 사도직 변호를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고, 뒷부분(3~4장)은 이신득의의 원리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오늘 이 시간은 갈라디아서의 전반적인 이해를 위한 배경을 살펴보고 있으며, 맨 첫부분인 인삿말(1:1~5)을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5. 바울은 인삿말에서 무엇을 말했는가?
바울은 인삿말(1:1~5)에서 다른 서신들처럼 발신자와 수신자를 언급하였고 수신자에게 은혜와 평강을 기원하고 있다. 하지만 독특한 것이 앞 부분과 뒷부분에 붙어 있다. 먼저, 인삿말 앞부분에는 그가 어떻게 사도가 되었는지를 밝히고 있다(갈1:1). 한 마디로 그는 자신 사도직을 변호하는 말로 편지를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에서 온 율법주의적인 성도들이 바울의 사도직을 무너뜨리고 시도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어떻게 되어서 사도직이 되었는지를 갈라디아서 1장 1절에서 설명하면서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갈1:11~17에서는, 자신이 갈라디아 지역의 사람들에게 전했던 복음도 역시, 사도들로부터 전수받은 것도 아니며 배운 것도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마암이 받아서 전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그리고 바울은 인삿말 끝부분(갈1:4~5)에서 다시 그가 전했던 복음의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송영 부분을 집어넣는다. 그는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여 찬양한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5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갈1:4-5)"
6. 나오며
바울은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신 후 몇 년이 지나서 비로소 부름을 받았기에,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자라고 자신을 소개하였다(고전15:8). 또한 그는 교회를 잔혹하여 핍박하였기에 자신을 "죄인의 괴수"라고 소개하였다(딤전1:15). 하지만 우리는 그를 가장 늦은 자 내지는 못난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난 아주 특별한 주의 종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부활승천 이후 이 땅에 살았던 자들 중에 과연 몇 명이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을까? 거의 없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자신을 대신하여 파송한 보혜사 성령을 만나고 체험할 뿐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바울이 전했던 복음은 다른 사람들에게 들었거나 어린양의 12사도들에게 배운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예수님께서 직접 계시의 말씀을 듣고 복음을 전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이 전한 복음은 최종적인 형태를 띠고 있고 가장 완벽한 복음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제 오늘부터 갈라디아서 강해가 시작되었다. 앞으로 전개될 갈라디아서강해를 통해 복음의 진수와 그것으로 나오는 진정한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2020년 07월 29일(수)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