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그리스도인의 율법관(62) 최종회] 예수님은 율법을 어떻게 보셨고 어떻게 재해석하셨는가?(마5:17~26)_2024-04-26(금)
https://youtu.be/c8G0NcIbEJM
1. 들어가며
'율법'이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말씀으로서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윤리와 법도로 주어진 말씀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스라엘 백성으로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율법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예수님을 믿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이란 대체 어떤 것이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니 더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인가? 아니면 오늘날 안식교인들처럼 철저히 안식일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그동안 약 61번의 말씀을 통하여 이러한 방면의 말씀을 함께 나누었다. 이번 시간은 그리스도의 율법관에 대한 마지막 번째 시간으로서, 예수께서는 과연 율법을 어떻게 보셨으며 또한 어떻게 재해석하셨는지를 살펴봄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율법관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정리하고자 한다.
2. 올바른 율법관이란 어떤 것을 가리키는가?
올바른 율법관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말한다. 바울이 갈라디아서에 언급한 바 대로, 율법은 약속하신 자손 곧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고 했으니(갈3:19), 그리스도께서 이미 오셔서 율법을 완성하셨기에 더이상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은 필요없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이제는 더이상 율법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존재가 되었으니, 율법의 정죄에 눌려서 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가르침은 과연 온당하다고 할 수 있는가? 정말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만 필요했고 그 후에는 필요없다는 뜻이었는가?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그것은 맞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틀린 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율법을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즉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입고 오실 때까지만 존재한다고 하는 율법은 율법 가운데 의식법만을 가리키는 것이고, 율법 중에서 도덕법인 십계명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해서 필요한 법이기 때문이다(마5:18~19). 그러므로 율법이라는 말씀을 천편일률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올바른 해석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3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율법의 역할 곧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초등학문)의 역할이라는 것은 율법 가운데 의식법들이 그러한 역할을 한다는 뜻이었지, 율법은 이미 폐지된 채 있으니 율법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더이상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었다.
3. 율법은 무엇이며 어떤 종류가 있는가?
그러므로 신약성경을 읽을 때에 신약성경을 어떻게 읽고 해석해야 하는지를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율법은 3가지 다른 유형의 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창세기와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나오는 율법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그것은 3가지로 분류할 수있다.
첫째는 도덕법으로서 십계명 법이 있다. 이것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꼭 필요한 법이다. 이 법은 훗날 심판받을 때에 심판의 기준으로 사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이 법이 폐지되었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으시고, 이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지도 않으셨다. 오히려 십계명 중에서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작은 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5:19).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보면, 자기는 예수님을 믿어서 믿음의 법 아래에 들어왔으니 이제 더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는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져서 성밖으로 쫓겨나게 될 것이다(계22:15). 아니면 더 심할 경우 불못 곧 지옥에 던져져서 영원히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계21:8). 이 말씀은 보좌에 앉아계신 우리 주 예수님께서 직접 사도요한에게 직접 들려주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예수님을 믿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구원을 받는다든지, 구원에서 탈락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말라. 예수님을 믿고도 자기의 더럽혀진 행실을 회개하지 않는 자는 결코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없으니 말이다(계22:14).
둘째, 의식법으로서 여러 가지 법들이 있다. 여기서 '의식법'이란 어떤 의식이나 절차를 진행하면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복을 누리게 해주는 법을 가리킨다. 이러한 법에는 가장 먼저 '할례법'이 있다. 할례를 행하면 아브라함처럼 약속의 자손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서 안식일법, 절기법, 성막법, 제사법, 제사장법, 정결법, 음식법 등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식법들은 장차 인류의 구원자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누구시며 어떤 일을 수행하실 것인지를 알려주는 모형과 그림자들에 속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구약 성경이 "내게 대하여 쓴 것"이자 "내게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5:39, 눅24:44), 이는 다 율법 중에서 의식법들을 지칭하는 것들이다.
셋째, 민법과 형법의 복합체로서 재판법이 있다. 재판법은 사람들 간에 분쟁이 생겼을 때에 공의대로 재판하라는 법을 가리킨다. 이러한 재판법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판결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재판장으로 세워진 이들은 자신을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입장에서 의롭게 재판하되, 어느 편을 들어서는 아니 되며, 불의하게 해서도 아니되며, 굽게 해서도 아니 된다고 말씀하셨다.
4. 율법을 바라보는 3가지 관점은 무엇인가?
그러므로 율법은 3가지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이 법이 도덕법이냐 의식법이냐 재판법이냐를 구별하여 보는 것이다.
고로 율법을 도덕법의 관점에서 본다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일지라도 그 율법을 끝까지 지켜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 되었으나 십계명을 전혀 지키지 않고 살았던 사람이 결코 천국에 들어갈 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믿고도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숭배하거나 무당을 찾아가서 점을 치거나, 형제의 죄를 용서해주지 않고 미워하여 살인 죄를 짓고 있으며, 속으로 음행을 저질러 음행의 죄를 짓고 있다면 그는 생명책에서 그의 이름이 지워지면서 성밖으로 떨어지거나 불못에 던져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율법을 의식법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구약의 율법을 부지런히 공부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의식법들은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실 것인지를 예표해주는 그림자요 모형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풍성하게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율법 중에서 의식법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것이다. 특히 의식법 가운데 성막법이나 절기법을 정말 잘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그리스도가 누군지를 알고 그가 행하신 일들로 인하여 우리가 받을 혜택들을 찾아내서 그것을 누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율법을 재판법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풍성하신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가를 가슴에 새길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은 죄값은 반드시 지옥의 형벌이어야 하는데,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값을 아들에게 담당케 하시고 우리는 구원하셨기 때문이다. 사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난 장소였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값을 대신 처리하시고, 인류를 원하시어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표현하셨기 때문이다.
5.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은 더 이상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다. 다시 되새겨 보아야 하고 또한 공부해야 하며 그것을 내 삶에 적용함으로써 그것을 누리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처럼 고마운 법은 사실상 없다. 만약 율법이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고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지 않았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만으로 만족하다가 그만 지옥에 떨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십계명 법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자신이 행하고 있는 일이 지옥에 떨어지게 할 죄들인지 알아차리지 못한 채 죄를 짓고 살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날마다 율법을 통하여 예수님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야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구약의 율법을 어떻게 성취하셨는지를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어놓으신 일들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그것을 내 삶에 적용시킬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율법을 통하여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의 아들을 희생시킬 만큼 우리는 사랑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 아들이 곧 하나님 자신이었음을 우리는 신약성경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희생은 곧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진정한 표현이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갚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그러한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요13:34). 사랑은 받은 자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는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아니할 수 없다.
6. 나오며
사실 예수님 당시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셨는지를 잘 몰랐다. 오히려 그것으로 법(장로들의 유전)을 만들어서 백성을 억압하고 그들 위에 군림하는데 사용했고, 자기들은 의인이라고 자랑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그러나 그건은 잘못된 것이었다. 율법은 자기를 들여다보는 거울과 같은 것으로써 자기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그 죄를 발견하라고 주신 법이기 때문이다. 또한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알게 해주어 그분이 이루어놓으신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여, 그분을 믿고 따르는 자들이 받을 수 있는 복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을 공부함으로 비로소 그리스도를 풍성하게 누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도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율법을 내팽개쳐버리고 있는지 모른다. 율법은 기능은 이제 끝났다고 말하는 것이다. 율법은 더이상 그리스도인들하고는 상관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니다. 천지는 없어진다고 하여도 율법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율법을 곡해하고 아전인수격으로 사용하는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을 책망하셨다. 오히려 그들이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알 수 있도록 율법을 더 강화시켰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는 행동으로 지어야 죄가 성립되는 것을 마음으로만 생각하고 있어도 그것이 죄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예로서 예수께서는 미움의 죄는 곧 살인 죄이며, 속으로 간음하는 생각만해도 간음죄를 지은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율법 중 도덕법은 한층 더 강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죄인으로 하여금 더 죄인되게 만드신 것이다. 하지만 율법이 곧 그분 자신에 관한 말씀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셨다. 율법의 의식법들이야말로 예수님에 대한 그림자요 모형으로 주어진 것일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게 해주는 약도요 설계도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식법으로 주어진 율법은 이미 완성되었다. 그러므로 실제로는 폐지된 채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의식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도덕법인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동시에 나타난 십자가의 사건을 믿지 못해서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율법말씀을 통하여 이 모든 것을 깨닫고 누리며 감사할 수가 있는 것이다.
2024년 04월 26일(금)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율법'이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말씀으로써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윤리와 법도로 주어진 말씀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스라엘 백성으로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율법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예수님을 믿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이란 대체 어떤 것이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니 더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인가? 아니면 오늘날 안식교인들처럼 철저히 안식일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그동안 약 61번의 말씀을 통하여 이러한 방면의 말씀을 함께 나누었다. 이번 시간은 그리스도의 율법관에 대한 마지막 번째 시간으로서, 예수께서는 과연 율법을 어떻게 보셨으며 또한 어떻게 재해석하셨는지를 살펴봄으로써 그리스도인의 율법관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정리하고자 한다.
2. 올바른 율법관이란 어떤 것을 가리키는가?
올바른 율법관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말한다. 바울이 갈라디아서에 언급한 바대로, 율법은 약속하신 자손 곧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고 했으니(갈3:19), 그리스도께서 이미 오셔서 율법을 완성하셨기에 더이상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은 필요 없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이제는 더이상 율법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존재가 되었으니, 율법의 정죄에 눌려서 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가르침은 과연 온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정말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만 필요했고 그 후에는 필요없다는 뜻이었는가?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그것은 맞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틀린 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율법을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즉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입고 오실 때까지만 존재한다고 하는 율법은 율법 가운데 의식법만을 가리키는 것이고, 율법 중에서 도덕법인 십계명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해서 필요한 법이기 때문이다(마5:18~19). 그러므로 율법이라는 말씀을 천편일률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올바른 해석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3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율법의 역할 곧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초등학문)의 역할이라는 것은 율법 가운데 의식법들이 그러한 역할을 한다는 뜻이었지, 율법은 이미 폐지된 채 있으니 율법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더이상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었다.
3. 율법은 무엇이며 어떤 종류가 있는가?
그러므로 신약성경을 읽을 때에 신약성경을 어떻게 읽고 해석해야 하는지를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율법은 3가지 다른 유형의 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창세기와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나오는 율법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그것은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도덕법으로서 십계명 법이 있다. 이것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꼭 필요한 법이다. 이 법은 훗날 심판받을 때에 심판의 기준으로 사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이 법이 폐지되었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으시고, 이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지도 않으셨다. 오히려 십계명 중에서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작은 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5:19).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보면, 자기는 예수님을 믿어서 믿음의 법 아래에 들어왔으니 이제 더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는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져서 성밖으로 쫓겨나게 될 것이다(계22:15). 아니면 더 심할 경우 불못 곧 지옥에 던져져서 영원히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계21:8). 이 말씀은 보좌에 앉아 계신 우리 주 예수님께서 직접 사도 요한에게 직접 들려주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예수님을 믿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구원을 받는다든지, 구원에서 탈락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말라. 예수님을 믿고도 자기의 더럽혀진 행실을 회개하지 않는 자는 결코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없으니 말이다(계22:14).
둘째, 의식법으로서 여러 가지 법들이 있다. 여기서 '의식법'이란 어떤 의식이나 절차를 진행하면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복을 누리게 해 주는 법을 가리킨다. 이러한 법에는 가장 먼저 '할례법'이 있다. 할례를 행하면 아브라함처럼 약속의 자손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서 안식일법, 절기법, 성막법, 제사법, 제사장법, 정결법, 음식법 등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식법들은 장차 인류의 구원자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누구시며 어떤 일을 수행하실 것인지를 알려 주는 모형과 그림자들에 속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구약성경이 "내게 대하여 쓴 것"이자 "내게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5:39, 눅24:44), 이는 다 율법 중에서 의식법들을 지칭하는 것들이다.
셋째, 민법과 형법의 복합체로서 재판법이 있다. 재판법은 사람들 간에 분쟁이 생겼을 때에 공의대로 재판하라는 법을 가리킨다. 이러한 재판법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판결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재판장으로 세워진 이들은 자신을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입장에서 의롭게 재판하되, 어느 편을 들어서도 아니 되며, 불의하게 해서도 아니되며, 굽게 해서도 아니 된다고 말씀하셨다.
4. 율법을 바라보는 3가지 관점은 무엇인가?
그러므로 율법은 3가지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이 법이 도덕법이냐 의식법이냐 재판법이냐를 구별하여 보는 것이다.
고로 율법을 도덕법의 관점에서 본다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일지라도 그 율법을 끝까지 지켜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나 십계명을 전혀 지키지 않고 살았던 사람이 결코 천국에 들어갈 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믿고도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숭배하거나 무당을 찾아가서 점을 치거나, 형제의 죄를 용서해 주지 않고 미워하여 살인죄를 짓고 있으며, 속으로 음행을 저질러 음행의 죄를 짓고 있다면 그는 생명책에서 그의 이름이 지워지면서 성밖으로 떨어지거나 불못에 던져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율법을 의식법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구약의 율법을 부지런히 공부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의식법들은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실 것인지를 예표해 주는 그림자요 모형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풍성하게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율법 중에서 의식법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것이다. 특히 의식법 가운데 성막법이나 절기법을 정말 잘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그리스도가 누군지를 알고 그가 행하신 일들로 인하여 우리가 받을 혜택들을 찾아내서 그것을 누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율법을 재판법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풍성하신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가를 가슴에 새길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은 죄값은 반드시 지옥의 형벌이어야 하는데,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값을 아들에게 담당케 하시고 우리는 구원하셨기 때문이다. 사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난 장소였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값을 대신 처리하시고, 인류를 구원하시어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표현하셨기 때문이다.
5.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은 더이상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다. 되새겨보아야 하고 또한 공부해야 하며 그것을 내 삶에 적용함으로써 그것을 누리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처럼 고마운 법은 사실상 없다. 만약 율법이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고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만 만족하다가 그만 지옥에 떨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십계명 법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자신이 행하고 있는 일이 지옥에 떨어지게 할 죄들인지 알아차리지 못한 채 죄를 짓고 살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날마다 율법을 통하여 예수님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야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구약의 율법을 어떻게 성취하셨는지를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어 놓으신 일들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그것을 내 삶에 적용시킬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율법을 통하여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의 아들을 희생시킬 만큼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 아들이 곧 하나님 자신이었음을 우리는 신약성경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희생은 곧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진정한 표현이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갚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그러한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요13:34). 사랑은 받은 자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는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아니 할 수 없다.
6. 나오며
사실 예수님 당시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셨는지를 잘 몰랐다. 오히려 그것으로 법(장로들의 유전)을 만들어서 백성을 억압하고 그들 위에 군림하는데 사용했고, 자기들은 의인이라고 자랑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었다. 율법은 자기를 들여다보는 거울과 같은 것으로써 자기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그 죄를 발견하라고 주신 법이기 때문이다. 또한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알게 해 주어 그분이 이루어 놓으신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여, 그분을 믿고 따르는 자들이 받을 수 있는 복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준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을 공부함으로 비로소 그리스도를 풍성하게 누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도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율법을 내팽개쳐 버리고 있는지 모른다. 율법의 기능은 이제 끝났다고 말하는 것이다. 율법은 더이상 그리스도인들하고는 상관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니다. 천지는 없어진다고 하여도 율법은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율법을 곡해하고 아전인수격으로 사용하는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을 책망하셨다. 오히려 그들이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알 수 있도록 율법을 더 강화시켰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는 행동으로 지어야 죄가 성립되는 것을 마음으로 생각만 하고 있어도 그것이 죄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예로서 예수께서는 미움의 죄는 곧 살인 죄이며, 속으로 간음하는 생각만 해도 간음죄를 지은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율법 중 도덕법은 한층 더 강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죄인으로 하여금 더 죄인되게 만드신 것이다. 하지만 율법이 곧 그분 자신에 관한 말씀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셨다. 율법의 의식법들이야말로 예수님에 대한 그림자요 모형으로 주어진 것일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게 해 주는 약도요 설계도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식법으로 주어진 율법은 이미 완성되었다. 그러므로 실제로는 폐지된 채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의식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도덕법인 십계명은 지키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동시에 나타난 십자가의 사건을 믿지 못해서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율법 말씀을 통하여 이 모든 것을 깨닫고 누리며 감사할 수가 있는 것이다.
2024년 04월 26일(금)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