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바른 구원(44)] 삭개오의 회개가 들려주는 진정한 회개의 또 다른 모습은?(눅19:1~10)_2024-07-12(금)
https://youtu.be/iCwWsA4n2LY
1. 들어가며
모든 사람은 결코 똑같지 않다. 장단점이 있고, 잘 한 것이 있는가 하면 못하는 것도 있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잉태될 때부터 부모의 유전자가 다를 뿐만 아니라 물려받은 일반은사와 악한 영들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음악은 잘 할 수 있으나, 그림은 잘 그리지 못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은 운동은 잘 하지만 말하는 것은 잘 못할 수고 있다. 그러므로 회개에 있어서 어떤 사람은 감정적으로 통회 자복하는 진정한 회개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반대로 어떤 사람은 의지적인 결단과 실천한 삶으로 회개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회개의 사례들 중에 하나로서 의지적인 회개를 실천했던 한 사람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는 바로 여리고의 세리장 삭개오라는 인물이다. 그는 대체 왜 회개하게 되었으며 어떻게 회개를 실천하고 있었는지를 통하여 과연 나를 회개를 제대로 한 사람인지를 살펴보고 부족한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 기도하여 진정한 회개자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2. 왜 누가복음을 가리켜 회개복음서라고 말할 수 있는가?
신구약성경에는 회개와 관련하여 여러가지 말씀을 찾아볼 수 있다. 그중에서 신약성경의 말씀은 진정 회개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여러가지 본문들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말씀 가운데서도 누가복음의 말씀을 단연 압권이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누가복음에는 회개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말씀으로 시작으로 하여,마지막에 가서는 부활하신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증인이 될 것까지 당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가복음은 회개에 관한 다양한 사례들과 비유들을 많이 제공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누가복음에서는 회개에 관한 메시지가 가득 담겨있는데, 먼저 누가복음의 서두와 끝에서 회개의 중요성에 관해 언급한다는 것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누가복음은 마가복음서 기록 이후 기록된 것으로서 마가복음서의 기록으로 시작하는데, 그 앞에서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말씀을 추가하였다. 특히 모계쪽의 탄생이야기를 포함시켰다. 그런데 마태복음은 부계쪽의 예수님의 탄생이야기를 추가하였다. 그러니까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의 탄생이야기를 빼낸다면 세례요한의 선포로부터 누가복음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복음 시작의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것은 세례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다는 것이다(눅3:3) .
눅3:3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그리고 누가복음의 맨 마지막 장에 가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당부하는 하는 말씀이 나오는데, 그것은 예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게하는 회개를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하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사실이다(눅24:47~48).
눅24:47-48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3. 삭개오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삭개오는 대체 누구인가? 삭개오는 여리고의 세리장이었다(눅19:1). 당시 이스라엘의 무역거래는 북쪽에서는 가버나움에서, 남쪽에는 여리고에서 이뤄졌다. 그러므로 가버나움과 여리고는 무역의 도시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여리고에는 세관에 종사하는 자가 있었다. 그가 바로 삭개오였던 것이다. 그것도 그는 여리고의 세관의 우두머리였다. 왜냐하면 여리고의 세리장이었기 때문이다. 특별히 그는 요단강 동편으로부터 유대 땅으로 들어오는 물품에 대한 통관세를 받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부자였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이는 당시 유대인들이 식민생활로 인하여 가난한 생활을 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의 재산이 아주 많았음을 알려준다. 그런데 이는 우리로 하여금 그가 부정한 방법을 통하여 부를 축적하였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그를 이러한 사람이 되리라고 예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삭개오라는 이름을 통해 우리는 그의 부모의 신앙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의 부모가 그의 이름을 '삭개오'라고 지었기 때문이다. 이는 그 이름이 헬라어로 '작카이오스'로서, 히브리어로 본다면 히브리어 '작카이'에서 단어에서 온 이름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어로 '작카이'는 '의로운, 순결한, 깨끗한'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삭개오는 부모의 기대에 맞춰서 살지 못했다. 그는 성공을 위해서 돈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므로 주변 사람들은 그를 죄인으로 취급하였으며, 상종 못할 인간으로 여기고 있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 그를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동족의 피를 빨아먹는 로마수탈의 하수인으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리장 삭개오는 공공연하게 반역자 내지는 변절자로 취급받고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의 집으로 들어갔을 때에 사람들은 말하기를 예수께서 죄인으로 집에 머물러 들어갔다고 했다.
4. 삭개오는 무엇을 회개한 것인가?
그런데 삭개오는 깊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세리장이 되어 돈은 많이 벌어 부자가 되었지만 그는 외로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돌이켜 새로운 출발을 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고, 그를 멀리했고 멸시했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의 신분이나 과거를 보지 않고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분이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분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그분을 마중 나간다. 그런데 키가 작아서 군중을 뚫고 그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것은 돌무화과 나무 위로 올라가서 그분을 뵙고 그분에게 자신의 사정을 아뢰기로 생각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오시더니 자기 앞에서 발길을 멈추시면서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리고 "내가 오늘 너의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닌가? 부리나케 나무에서 내려온 삭개오는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모시고 자기 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 옆에 서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눅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그런데 헬라어 원문을 보면, 삭개오가 주님께 말씀드리고 있는 것은 장차 그렇게 하겠다는 결단을 말씀드린 것이 아니다. 그가 지금 현재 그 일을 하고 있음을 보고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눅19:8의 말씀을 헬라어에서 직역해보면 다음과 같다.
눅19:8 그런데 삭개오가 세워진 후에 주님을 향하여 말씀드렸다. "보십시오.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의 절반들을 주여,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누구의 것을 거짓으로 고발하였다면 저는 지금 네 배를 갚아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삭개오는 대체 무엇을 회개한 것인가? 그것은 3가지다.
첫째로, 삭개오는 자신이 죄인이었다는 것을 회개하였다(눅19:8). 왜냐하면 그가 그동안 남의 것을 빼앗아왔음을 시인했기 때문이다.
둘째로, 자신의 우상숭배를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는 이때까지 자신이 돈을 우상처럼 여겨왔음을 시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우상처럼 여긴 돈의 절반을 풀어서 구제에 쓸 수 있도록 사회에 환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로, 그는 실천적인 삶으로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삭개오는 자신의 재산의 절반을 구제헌금으로 내놓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것을 강제로 빼앗은 일에 대해서는 그것을 4배까지 값고 있다고 말씀드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그가 남의 것을 부당하게 취하였다면 율법규정에 따라서 본물에 1/5만 더 보태어 배상하면 되었다(레6:5, 민5:7)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양을 훔쳤거나 팔아버렸을 경우에 배상하는 가장 엄한 배상규정(출22:1, 삼하12:6)을 따라 배상을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그가 스스로를 예수님과 사람들 앞에서 도둑이라고 고백하고 용서받기를 원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비록 눈물 콧물 흘리는 회개는 하지 않았지만 진정한 회개를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의지적인 회개'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누가복음 5장의 베드로의 회개가 '감정적인 회개'라고 한다면, 삭개오의 회개는 '의지적인 회개'요, 눅23장의 한 편 강도의 회개는 지적인 회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5. 삭개오가 진정으로 회개했다는 하는 증거는 무엇인가?
삭개오가 진정으로 회개했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삭개오의 변화된 삶을 통해서 일차로 확인이 된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인침은 예수님의 말씀에 들어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그를 가리켜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고 선언해 주셨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이제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이 되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선포하신 것으로서, 그가 구원받을 만한 참된 믿음의 소유자였음을 인정해주신 것이나 다름이 없다(롬4:11~12, 갈3:7). 사실 이전까지 그는 혈통적으로는 유대인으로 태어난 사람이지만 이방인보다 못한 취급을 받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누구도 그를 조롱할 수 없는 고귀한 사람으로 탈바꿈되어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선언하시는 주님의 선언은 곧 하나님의 선언이기 때문이다. 이로서 예수께서는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서 구원하러 오셨다는 것이 증명되었다(눅19:10).
6. 나오며
사람이 회개하는 모습은 사실 모두가 똑같을 수가 없다. 어떤 사람은 감정적인 회개를 잘 할 수 있는가하면 어떤 사람은 의지적인 회개를 잘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은 지적인 회개를 잘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서는 이러한 세 종류의 살람들을 소개해주고 있는데, 그중에서 감정적인 회개자로서 베드로의 회개를 수록하고 있으며(눅5장), 의지적인 회개자로서는 삭개오의 회개를(눅19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적인 회개자로서는 한 편 강도의 회개를 잘 소개해주고 있다(눅24장). 그중에 삭개오의 회개는 의지적인 결단과 실천적인 삶을 통한 진정한 회개자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잘 대변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삭개오는 비록 눈물로 회개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삶으로 회개를 실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실로 이전에 자신이 추구하던 삶에서 반대로 돌이킨 자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는 회개를 실천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 자에게 주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러한 말씀을 들려주실 것이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느니라(눅19:9). 그리고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로다" 할렐루야!
2024년 07월 12일(금)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