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경을 보는 눈(39)] 만국백성으로서 성(城)의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으로 쫓겨날 사람은 누구인가?(마25:14~30)_2024-10-17(목)
https://youtu.be/2eif6C1yRbk
1. 들어가며
그리스도의 부활승천이후 그리스도의 재림시까지 하늘에서 펼쳐질 천년왕국이나 백보좌 심판 이후 펼쳐질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누가 과연 새 예루살렘 성밖에 가서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행한대로 갚아주시는 분이시요, 심는데로 거두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은 이미 예수님을 믿고 있으니 자신의 구원에는 절대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믿었던 그날 죽는다면 그날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고 난 후 수 년에서 수 십 년을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이때 우리가 구원받은 자 답게 살지 않았을 때에는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갈 수 없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7:21). 그럼 어디로 가는가? 성도들의 대부분은 성밖으로 간다. 왜냐하면 자기 안에 성령을 모신 자 답데 살지 못했기에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안에 성령을 모시고 있다고 해서 다 천국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나의 신앙생활을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그래서 우리가 죽은 다음에는 반드시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우리가 죽은 후에 성밖에 가지 아니하고 특별히 성밖의 구역들 중에서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으로 가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성도들 중에 죽어서 누가 성밖 가며 성밖의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으로 가는가?
자기가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그 신분이 영원이 지속되는 것일까? 그랬으면 좋으려면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라도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은 자는 생명책에서 그 이름을 지워버리기 때문이다(계22:14, 3:5). 그러므로 한 번 구원은 영원히 구원이 아닐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언제든지 구원은 탈락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도들 중에 과연 누가 성밖으로 가며, 또한 성밖의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으로 가는가?
첫째, 성밖으로 가는 성도들(성밖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 포함)은 대체 누구인가? 첫째로, 이들이 누군지에 대해서는 요한계시록 22:15에 잘 나와 있다. 우리 주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에 나온다. 하나는 비유적인 표현으로서 '개들'이 간다고 되어 있다. 이는 이사야56:9~11에 의하면, 교회의 영적인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그를 지도자로 세우셨으나 그 직분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은 자들이 성밖으로 가는 것이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이들은 성벽 가까운 성밖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이들은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십계명을 어긴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은 자들이 간다. 왜냐하면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자들이 성밖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계22:15). 그런데 이 세상 사람치고 죄를 전혀 짓지 않고 살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성밖으로 가는 것은 십계명을 어겨서 성밖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아서 성밖으로 가는 것이다(계22:14). 다시 말해 성밖으로 가는 자들은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은 성도들이 가는 장소인 것이다.
그런데 둘째로, 천국복음이 들어있는 마태복음에 의하면, 성밖으로 가는 자들과 성밖의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으로 가는 자들이 구별되어 있다. 먼저 단지 성밖으로 가는 자들이 누군지가 나오는데, 그것은 열처녀의 비유 가운데 미련한 다섯 처녀들이다(마25;1~13). 왜냐하면 이들은 신랑이 신부로 선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혼인잔치에 들어가지 못한 채 신랑집의 문밖에 버려지고 만다. 왜 그런가? 이는 그들이 처음부터 어리석었고 계속해서 어리석어서, 등('성령'을 상징함)을 갖기는 가졌으나 여분의 기름을 따로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름은 댓가를 지불하여 사야 하는 것이므로 기름은 성령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기름은 신부가 신랑을 맞이할 때 자신에게 부족함이 없기 위해서 준비한 것이다. 그것은 회개의 기름이자, 수고의 기름일 것이다. 그리고 성밖의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으로 가는 자들이 나온다. 그들은 열달란트 받은 자들 중에 악하고 게을렀던 한 달란트 받은 종이다.
둘째, 성밖의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은 누가 가는가? 그것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비유에 나오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 간다(마25:14~30). 이들은 그냥 단순한 성도들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맡기셨던 종들이다. 즉 하나님의 종들인 것이다. 이들은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보내어졌다. 그러므로 이들은 자기의 사명에 충실해야 한다. 그러면 천국에서 더 많은 좋은 것들이 맡겨질 것이다. 그것은 천국에서 지위와 신분이 올라가는 것이며, 면류관 쓰고 좋은 천국집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 달란트를 받았던 종은 아주 악했다. 또한 게을렀다. 그가 악했다는 것은 주인의 뜻을 헤아리지 않으려 했고, 오히려 주인을 악덕고리대금업자쯤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기의 노동력을 사용하여 돈벌이를 하는 주인으로 잘못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또한 그는 게을렀다. 엄청난 은사와 달란트가 자신에게 주어졌는데도 그것을 가지고 이 땅에 보내어진 목적대로 살지 않은 것이다. 사람을 회개시켜 천국에 들여보내는 일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듯 은사와 달란트가 주어진 채 이 땅에 보내어진 자들이 이러한 사명을 감당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가? 첫째는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질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성밖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셋째는 성밖의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으로 던져지게 될 것이다.
3. 성밖의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과 성밖 바로 가까운 곳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새 예루살렘 성 바깥쪽의 어두운 곳과 성밖 바로 가까운 곳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우선 똑같은 장소가 아니라는 것이다. 똑같은 장소였다면 우리 주님께서 '열처녀의 비유'(마25:1~13)와 달란트의 비유''(마25:14~30)를 각각 따로 말씀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달란트의 비유'는 새 예루살렘 성의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으로 누가 가는지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고, '열처녀의 비유'는 단지 성의 바깥쪽에 남겨진 자들이 누군지에 관한 말씀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성밖도 다 똑같은 장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성밖은 크게 단순히 성밖이 있고 성밖의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이 있는 것이다.
이것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보면 이렇다. 성밖은 새 예루살렘 성 바로 바깥쪽을 의미하는데, 이곳은 첫째로, 약간의 빛고 있고 물도 좀 있는 장소다. 왜냐하면 새 예루살렘 성 안을 둘러 비추는 빛이 바깥쪽에도 약간 비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도 있다. 왜냐하면 성 안에서 흐르는 생명수가 조금은 성 바깥으로 새어나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바깥쪽으로 갈수록 빛이 비추지 않아 더 어둡고, 더 바깥쪽으로 갈수록 물이 없어 마른 광야가 펼쳐진다. 그러므로 성 바깥쪽에 사는 자들은 비가 와야 살 수 있다. 그러나 성 안은 다르다. 새 예루살렘 성 안에는 해나 달이 필요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햇빛과 등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 안에는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생수가 흘러나오기 때문에 물이 가득한 곳이다.
그렇다면 불과 유황이 타는 불못 곧 지옥은 어떤 곳인가? 그것은 첫째로 빛이 전혀 없는 곳이다. 다만 불이 타면서 그 불빛으로 인하여 사람의 얼굴이 보일 뿐이다. 둘째로 물이 전혀 없는 곳이다. 물 한 방울 구할 수 없어 목마른 곳이 바로 그곳이며, 유황이 타는 장소이므로 메쾌한 냄새로 인하여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곳이다. 그러므로 성의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은 더 바깥쪽으로 갈수록 지옥을 방불하게 하는 장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둘째로, 성의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에 떨어진 자들은 성밖의 가까운 곳에 사는 자들과 달리 형벌을 받으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들이 받게 될 형벌 중 한 가지는 이들이 그곳에서 엄히 맞게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은 몸을 톱으로 잘라버린다는 뜻이며, 엄히 채찍질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땅의 왕들이 철장으로 다스리는 장소가 성의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그들이 이 땅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에 합당한 형벌을 받게 되는 장소가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이다. 고로 단지 성밖 가까이에 가는 미련한 다섯 처녀는 믿는 자였으나 회개를 하지 못하고 천국을 위해 준비한 것이 없는 경우라면, 성의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에 가는 자는 주의 종들 중에 악하고 게으른 종이 가는 것이다. 그들은 단지 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고 살라고 보내어진 자들이 아니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었다. 오히려 자신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나쁜 주인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그게 아닌데 말이다. 천국에 들어가게 되면 더 좋은 것과 더 많은 것으로 맡겨주기 위해 이 땅에서 일하라고 보낸 것인데, 이것을 나쁘게 생각한 것이다. 우리 주님을 어찌 악덕 노동 착취꾼으로 매도하려 하는가? 하나님은 일한대로 갚아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좀 더 일을 더 해서 천국을 더 장만하라고 보낸 것인데, 그들은 그 일에 충실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곳에서 매를 맞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곳에서 손과 발이 묶인 채 형벌을 받을 자도 있을 것이다. 더 바깥쪽의 어둔 곳으로 갈수록 감옥과 같은 장소가 되는 것이다. 형벌받는 장소가 되는 것이다.
4. 왜 우리는 성밖이나 성의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으로 가지 않아야 하는가?
왜 우리 성도들은 성밖이나 성의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으로 가서는 아니 되는가? 첫째로, 그곳은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그곳에 오지 않는다. 다만 그곳에는 땅의 왕들이 가서 통치하는 곳이다. 그곳은 땅의 왕들이 가서 통치하는 곳일 뿐 그곳에 하나님께서 직접 가지 않으신다. 둘째로, 그곳은 바깥쪽으로 갈수록 점점 빛도 없고 물(생수)도 없기 때문이다. 살기 척박한 장소이다. 셋째로, 그곳은 바깥쪽으로 갈수록 형벌을 더 받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일을 할 수 있도록 엄청난 은사와 달란트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주의 나라와 복음전파를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노는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일하기 싫어서 주인을 나쁜 주인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넷째로, 더 안타까운 것은 그곳은 일시적으로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세세무궁토록 그렇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세세토록 채찍질을 당하면서 철장에 맞으면서 살아야 한다. 세세토록 어둠 가운데 손발이 묶여서 칠흙같은 어둠 가운데서 살아야 하는 곳이 그곳이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가 생각나지 아니하는가? 그는 불못이 될 음부에 들어갔는데, 물 한 방울이 없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누워있는 나사로에게 부탁하지 않았던가? 제발 나사로의 손끝에 물 한 방물만 젹셔서 자기의 혀를 서늘하게 해 달라고 말이다. 얼마나 뜨거웠으면, 얼마나 목이 말랐으면 그렇게 부탁했겠는가? 그런데 성의 더 바깥쪽의 더 어두운 곳은 그것과 방불한 장소일 것이다. 어찌 그곳에서 영원토록 살아가야 한다는 말인가?
5. 나오며
이 세상에서 구원받은 성도들 중에는 영적인 말씀을 갈급해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분들은 영적인 말씀에는 귀를 닫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영적인 말씀에 귀를 닫고 살아가는 이들은 주로 한 번 구원받았으면 영원히 구원받았다고 믿으려는 사람들이다. 한 번 믿어서 구원받고 저주를 해결받았으니 더이상 회개 안해도 상관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러나 아니다. 구원은 두렵고 떨림으로 이뤄가는 것이지, 한 번 받은 구원이 영원히 그의 구원을 보장해주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한 번 구원을 받았으면 영원히 구원받도록 구원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사탄마귀가 어찌 우리를 영원히 구원받도록 그냥 놔 두겠는가? 사탄마귀와 귀신들은 자기들은 천국에 못들어가고 감옥에 갇혀서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서 형벌을 받아야 하는데, 자기보다 못하게 보이는 인간들 곧 육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자기가 못 들어가니 들어가는 사람들을 막으려 하는 것이 사탄마귀와 귀신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믿을 때에 완성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순간부터 우리는 사실상 구원의 경주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끝까지 믿음의 경우를 해야 한다. 좌우로 치우쳤다면 빨리 회개하고 트랙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그리고 모든 무거운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끝까지 해야 한다. 그들 중에 어떤 자는 주의 종으로 이 땅에 보내어진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 땅에 살고 있으나 지옥으로 향해 가고 있는 사람들을 주께로 이끌어서 천국으로 인도해야 할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 일을 하지 않고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는 일에 취해 있으면 그는 죽어 성의 더 바깥쪽으로 어두운 곳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래서 거기서 영원토록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2024년 10월 17일(목)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이후 그리스도의 재림시까지 하늘에서 펼쳐질 천년왕국이나 백보좌 심판 이후 펼쳐질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누가 과연 새 예루살렘 성밖에 가서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행한대로 갚아 주시는 분이시요, 심는대로 거두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은 이미 예수님을 믿고 있으니 자신의 구원에는 절대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믿었던 그날 죽는다면 그날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고 난 후 수 년에서 수십 년을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이때 우리가 구원받은 자 답게 살지 않았을 때에는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갈 수 없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7:21). 그럼 어디로 가는가? 성도들의 대부분은 성밖으로 간다. 왜냐하면 자기 안에 성령을 모신 자 답게 살지 못했기에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안에 성령을 모시고 있다고 해서 다 천국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나의 신앙생활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죽은 다음에 반드시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우리가 죽은 후에 성밖에 가지 아니하고 특별히 성밖의 구역들 중에서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으로 가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성도들 중에 죽어서 누가 성밖으로 가며 성밖의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으로 가는가?
자기가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그 신분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일까? 그랬으면 좋으려면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라도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은 자는 생명책에서 그 이름을 지워버리기 때문이다(계22:14, 3:5). 그러므로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 아닐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언제든지 구원에서 탈락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도들 중에 과연 누가 성밖으로 가며, 또한 성밖의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으로 가는가?
첫째, 성밖으로 가는 성도들(성밖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 포함)은 대체 누구인가? 첫째로, 이들이 누군지에 대해서는 요한계시록 22:15에 잘 나와 있다. 우리 주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에 나온다. 하나는 비유적인 표현으로서 '개들'이 간다고 되어 있다. 이는 이사야 56:9~11에 의하면, 교회의 영적인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그를 지도자로 세우셨으나 그 직분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은 자들이 성밖으로 가는 것이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이들은 성벽 가까운 성밖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이들은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십계명을 어긴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은 자들이 간다. 왜냐하면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자들이 성밖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계22:15). 그런데 이 세상 사람치고 죄를 전혀 짓지 않고 살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성밖으로 가는 것은 십계명을 어겨서 성밖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아서 성밖으로 가는 것이다(계22:14). 다시 말해 성밖으로 가는 자들은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은 성도들이 가는 장소인 것이다.
그런데 둘째로, 천국복음이 들어 있는 마태복음에 의하면, 성밖으로 가는 자들과 성밖의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으로 가는 자들이 구별되어 있다. 먼저 단지 성밖으로 가는 자들이 누군지가 나오는데, 그것은 열 처녀의 비유 가운데 미련한 다섯 처녀들이다(마25:1~13). 왜냐하면 이들은 신랑이 신부로 선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혼인잔치에 들어가지 못한 채 신랑집의 문밖에 버려지고 만다. 왜 그런가? 이는 그들이 처음부터 어리석었고 계속해서 어리석어서, 등('성령'을 상징함)을 갖기는 가졌으나 여분의 기름을 따로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름은 댓가를 지불하여 사야 하는 것이므로 기름은 성령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기름은 신부가 신랑을 맞이할 때 자신에게 부족함이 없기 위해서 준비한 것이다. 그것은 회개의 기름이자, 수고의 기름일 것이다. 그리고 성밖의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으로 가는 자들이 나온다. 그들은 열 달란트 받은 자들 중에 악하고 게을렀던 한 달란트 받은 종이다.
둘째, 성밖의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은 누가 가는가? 그것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에 나오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 간다(마25:14~30). 이들은 그냥 단순한 성도들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맡기셨던 종들이다. 즉 하나님의 종들인 것이다. 이들은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보내어졌다. 그러므로 이들은 자기의 사명에 충실해야 한다. 그러면 천국에서 더 많은 좋은 것들이 맡겨질 것이다. 그것은 천국에서 지위와 신분이 올라가는 것이며, 면류관 쓰고 좋은 천국집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 달란트를 받았던 종은 아주 악했다. 또한 게을렀다. 그가 악했다는 것은 주인의 뜻을 헤아리지 않으려 했고, 오히려 주인을 악덕 고리대금업자쯤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기의 노동력을 사용하여 돈벌이를 하는 주인으로 잘못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또한 그는 게을렀다. 엄청난 은사와 달란트가 자신에게 주어졌는데도 그것을 가지고 이 땅에 보내어진 목적대로 살지 않은 것이다. 사람을 회개시켜 천국에 들여보내는 일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듯 은사와 달란트가 주어진 채 이 땅에 보내어진 자들이 이러한 사명을 감당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가? 첫째는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질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성밖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셋째는 성밖의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으로 던져지게 될 것이다.
3. 성밖의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과 성밖 바로 가까운 곳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새 예루살렘 성 바깥쪽의 어두운 곳과 성밖 바로 가까운 곳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우선 똑같은 장소가 아니라는 것이다. 똑같은 장소였다면 우리 주님께서 '열 처녀의 비유'(마25:1~13)와 달란트의 비유'(마25:14~30)를 각각 따로 말씀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달란트의 비유'는 새 예루살렘 성의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으로 누가 가는지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고, '열 처녀의 비유'는 단지 성의 바깥쪽에 남겨진 자들이 누군지에 관한 말씀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성밖도 다 똑같은 장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성밖은 크게 단순히 성밖이 있고 성밖의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이 있는 것이다.
이것을 좀더 자세히 설명해 보면 이렇다. 성밖은 새 예루살렘 성 바로 바깥쪽을 의미하는데, 이곳은 첫째로, 약간의 빛고 있고 물도 좀 있는 장소다. 왜냐하면 새 예루살렘 성 안을 둘러 비추는 빛이 바깥쪽에도 약간 비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도 있다. 왜냐하면 성안에서 흐르는 생명수가 조금은 성 바깥으로 새어 나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바깥쪽으로 갈수록 빛이 비추지 않아 더 어둡고, 더 바깥쪽으로 갈수록 물이 없어 마른 광야가 펼쳐진다. 그러므로 성 바깥쪽에 사는 자들은 비가 와야 살 수 있다. 그러나 성 안은 다르다. 새 예루살렘 성 안에는 해나 달이 필요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햇빛과 등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 안에는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생수가 흘러나오기 때문에 물이 가득한 곳이다.
그렇다면 불과 유황이 타는 불못 곧 지옥은 어떤 곳인가? 그것은 첫째로 빛이 전혀 없는 곳이다. 다만 불이 타면서 그 불빛으로 인하여 사람의 얼굴이 보일 뿐이다. 둘째로 물이 전혀 없는 곳이다. 물 한 방울 구할 수 없어 목마른 곳이 바로 그곳이며, 유황이 타는 장소이므로 메캐한 냄새로 인하여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곳이다. 그러므로 성의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은 더 바깥쪽으로 갈수록 지옥을 방불하게 하는 장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둘째로, 성의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에 떨어진 자들은 성밖의 가까운 곳에 사는 자들과 달리 형벌을 받으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들이 받게 될 형벌 중 한 가지는 이들이 그곳에서 엄히 맞게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은 몸을 톱으로 잘라버린다는 뜻이며, 엄히 채찍질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땅의 왕들이 철장으로 다스리는 장소가 성의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그들이 이 땅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에 합당한 형벌을 받게 되는 장소가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이다. 고로 단지 성밖 가까이에 가는 미련한 다섯 처녀는 믿는 자였으나 회개를 하지 못하고 천국을 위해 준비한 것이 없는 경우라면, 성의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에 가는 자는 주의 종들 중에 악하고 게으른 종이 가는 것이다. 그들은 단지 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며 살라고 보내어진 자들이 아니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었다. 오히려 자신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나쁜 주인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그게 아닌데 말이다. 천국에 들어가게 되면 더 좋은 것과 더 많은 것으로 맡겨 주기 위해 이 땅에서 일하라고 보낸 것인데, 이것을 나쁘게 생각한 것이다. 우리 주님을 어찌 악덕 노동 착취꾼으로 매도하려 하는가? 하나님은 일한대로 갚아 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좀더 일을 더 해서 천국을 더 장만하라고 보낸 것인데, 그들은 그 일에 충실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곳에서 매를 맞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곳에서 손과 발이 묶인 채 형벌을 받을 자도 있을 것이다. 더 바깥쪽의 어둔 곳으로 갈수록 감옥과 같은 장소가 되는 것이다. 형벌받는 장소가 되는 것이다.
4. 왜 우리는 성밖이나 성의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으로 가지 않아야 하는가?
왜 우리 성도들은 성밖이나 성의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으로 가서는 아니 되는가? 첫째로, 그곳은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그곳에 오지 않는다. 다만 그곳에는 땅의 왕들이 가서 통치하는 곳이다. 그곳은 땅의 왕들이 가서 통치하는 곳일 뿐 그곳에 하나님께서 직접 가지 않으신다. 둘째로, 그곳은 바깥쪽으로 갈수록 점점 빛도 없고 물(생수)도 없기 때문이다. 살기 척박한 장소이다. 셋째로, 그곳은 바깥쪽으로 갈수록 형벌을 더 받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일을 할 수 있도록 엄청난 은사와 달란트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주의 나라와 복음 전파를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노는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일하기 싫어서 주인을 나쁜 주인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넷째로, 더 안타까운 것은 그곳은 일시적으로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세세무궁토록 그렇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세세토록 채찍질을 당하고 철장에 맞으면서 살아야 한다. 세세토록 어둠 가운데 손발이 묶여서 칠흑 같은 어둠 가운데서 살아야 하는 곳이 그곳이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가 생각나지 아니하는가? 그는 불못이 될 음부에 들어갔는데, 물 한 방울이 없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누워 있는 나사로에게 부탁하지 않았던가? 제발 나사로의 손끝에 물 한 방물만 적셔서 자기의 혀를 서늘하게 해 달라고 말이다. 얼마나 뜨거웠으면, 얼마나 목이 말랐으면 그렇게 부탁했겠는가? 그런데 성의 더 바깥쪽의 더 어두운 곳은 그것과 방불한 장소일 것이다. 어찌 그곳에서 영원토록 살아가야 한다는 말인가?
5. 나오며
이 세상에서 구원받은 성도들 중에는 영적인 말씀을 갈급해 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분들은 영적인 말씀에는 귀를 닫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영적인 말씀에 귀를 닫고 살아가는 이들은 주로 한 번 구원받았으면 영원히 구원받았다고 믿으려는 사람들이다. 한 번 믿어서 구원받고 저주를 해결받았으니 더이상 회개 안해도 상관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러나 아니다. 구원은 두렵고 떨림으로 이뤄가는 것이지, 한 번 받은 구원이 영원히 그의 구원을 보장해 주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한 번 구원을 받았으면 영원히 구원받도록 구원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사탄 마귀가 어찌 우리를 영원히 구원받도록 그냥 놔 두겠는가? 사탄 마귀와 귀신들은 자기들은 천국에 못 들어가고 감옥에 갇혀서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서 형벌을 받아야 하는데, 자기보다 못하게 보이는 인간들 곧 육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자기가 못 들어가니 들어가는 사람들을 막으려 하는 것이 사탄 마귀와 귀신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믿을 때에 완성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순간부터 우리는 사실상 구원의 경주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한다. 좌우로 치우쳤다면 빨리 회개하고 트랙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그리고 모든 무거운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끝까지 해야 한다. 그들 중에 어떤 자는 주의 종으로 이 땅에 보내어진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 땅에 살고 있으나 지옥으로 향해 가고 있는 사람들을 주께로 이끌어서 천국으로 인도해야 할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 일을 하지 않고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는 일에 취해 있으면 그는 죽어 성의 더 바깥쪽으로 어두운 곳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래서 거기서 영원토록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2024년 10월 17일(목)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