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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mXI11-1aMOQ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신론(神論)(08)] 하나님은 한 분인가 세 분인가(창1:26~27) - 한 분 하나님과 삼위일체 하나님(01) - 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mXI11-1aMOQ

 

1. 들어가며

  하나님은 한 분인가 세 분인가? 하나님께서 한 분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에서 뿐만 신약성경에서도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계속해서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세 분인가? 그것은 아니라고 답해야 한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예수님도 하나님이시고 성령님도 하나님이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어쩌면 세 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면 안 된다. 만약 세 분이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큰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세 분으로 나타나서 일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을 세 분이라고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과 성령님이 각각 하나님이신 것은 맞지만 이들을 셋으로 보아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나를 본 자를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 하였고(요14:9)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요10:30). 그리고 예수께서 보혜사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보내주신다고 했는데 사실 그것은 예수님의 또 다른 오심이었기 때문이다(요14:18~19). 그ㄹ애서 이러한 하나님을 가리켜 신학자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하나가 어떻게 셋이며, 셋은 또 어떻게 하나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래서 오늘부터 몇 번에 걸쳐 우리는 한 분이신 하나님고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이번의 말씀이 모든 성도들로 하여금 한 분이지만 세 분으로 일하시고 계시는 하나님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2. 하나님은 한 분인가 세 분인가?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한 분이라고 하는 사실은 신구약성경이 공히 증거하는 바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일을 하실 때에, 아버지로서도 일하시고 아들로도 일하신다. 그리고 영으로도 일하신다. 하나님께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사역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세 분이라고 해야 하는가? 그럴 수는 없다. 우리가 믿어야할 하나님은 세 분의 신이 한데 어울어져 있는 그러한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 분의 하나님은 위격에 있어서나 능력에 있어서나 본질에 있어서나 동일하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에 이러한 하나님을 믿는 문제는 하나님을 유일하신 분으로 믿는다고 하는 자들에게도 문제가 있고 삼위일체 방식으로 믿는다고 하는 이들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먼저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믿는다는 분들을 보자. 그들은 구약의 여호와가 곧 예수님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틀린 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구약의 여호와는 육신을 입지 않았던 하나님이지만 신약의 예수님은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구약의 하나님은 신성만 갖고 있는 하나님이시지만 신약의 하나님은 인성도 갖고 있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렇듯 하나님을 한 분으로 보려고 하다가 이단이 된 자들이 더러 있다. 예를 들어, 시벨리우스 양태론이 그렇다. 이들은 구약의 성부 하나님께서 신약의 성자 하나님으로 오셨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성부가 고난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틀린 것이다. 왜냐하면 한 분 하나님께서 구약에는 자신을 여호와로 계시하신 것이고, 신약시대에는 아들로 계시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시고 죽으신 분은 아버지 하나님이 아니라 아들이신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사실 육체를 입지 않았던 구약의 하나님 곧 여호와는 육체를 입지 않고 신성만 가지고 있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성부가 내려오셔서 아들이 되시어 고난받았다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을 가리켜, 성부고난설이라고 부리고, 양태론 이단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반대도 있다. 하나님을 셋으로 믿는 것도 문제가 있다.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이 있고 아들 하나님이 성령 하나님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아들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라는 말이 우선 나오지 않는다. 오직 '아버지 하나님' 혹은 '하나님 아버지'라는 말만 나온다. 그러므로 하나님에는 아버지가 있고 아들이 있으며 영이 있다고 하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셋인가? 그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다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분이라고 증언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에는 아버지 하나님이 있고 , 아들 하나님이 있고 성령 하나님이 있다고 주장하면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믿으려 하는 자들이 범하는 우는 천국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가 세 개가 있을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삼위일체를 믿었던 중세시대의 사람들은 천국에 계신 하나님께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계시며 뿐만 아니라 그분의 보좌들도 셋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중세시대에 그려놓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그림은 보좌가 셋이 있다. 그러면 삼신이 되는 것이다. 삼신은 서로 같지 않는 신들이기 때문에 서로 싸울 수도 있고 의견을 달리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문제가 된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한 번도 성부와 성자가 싸우거나 다툰 일이 없다. 그리고 성자와 성령도 한 번도 서우 싸우거나 다툰 일이 없다. 자신의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실 뿐이다. 

 

3. 구약시대에도 하나님께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계시면서 일하셨는가?

  한 분 하나님과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해하는데 가장 큰 난제는 구약시대의 경우에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셨는가 하는 것이다. 구약시대에도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와 같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같이 일하셨는가 아니면 성부만 일하셨는가? 그러나 이러한 질문은 질문 자체가 틀린 것이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는 한 분 하나님께서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신 시대이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영은 이미 천지창조 때부터 이 땅에 보내심을 받아 일하고 계셨다(창1:2). 왜냐하면 성령님은 한 분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약시대에도 아들 하나님이 나타나 어떤 일을 하셨는가? 그렇다고 보는 것이 현재 삼위일체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구약시대에 천지창조나 인간창조 때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모여 회의를 하여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한 번 더 생각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는 아들은 이미 시간 이전부터 존재하고 계셨으나 아직 밖으로 나타나지는 않은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부와 성자가 회의하여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거나 인간을 지었다고 말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이는 오직 한 분이신 여호와 곧 홀로 하나이신 여호와께서 홀로 창조하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라 일컬어지는 '우리'가 창조한 것이 아니라 나 여호와이신 한 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사44:24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사42:5 하늘[들]을 창조하여 [그것들을] 펴시고 땅과 그 소산[들]을 내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루하흐)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사45:5~7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6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7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사45:12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내 손으로 하늘[들]을 펴고 하늘[들]의 모든 군대(차바)에게 명령하였노라 
사45:18 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들]을 창조하신 이 그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그것을 지으셨으니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사48:12~13 야곱아 내가 부른 이스라엘아 내게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라 13 과연 내 손이 땅의 기초를 정하였고 내 오른손이 하늘[들]을 폈나니 내가 그들을 부르면 그것들이 일제히 서느니라 

출20: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들]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4.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우리'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우리'는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가?

  성경에 보면,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종종 자신을 지칭하면서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하실 때가 있다.  적어도 네 번 나온다(창1:26, 3:22, 11:7, 사6:8). 그런데 '우리'라는 대명사는 하나님 자신을 포함한 또 다른 누구를 함께 지칭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칭하면서 '우리'라는 대명사를 사용하실 때에 '우리'는 과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지칭하는 것인가?

  그렇다고 대답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들은 대부분 삼위일체 하나님을 주장하는 분들이다. 하나님을 한 분으로 믿는 분들은 절대 그렇게 해석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삼위일체를 주장하시는 분들은 '우리'라는 표현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들의 생각에 하나님은 만세전부터 이미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계셨다고 생각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분들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혹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응당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협의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해석은 옳다고 할 수 있는가?

  이제 그러한 대표적인 예를 들어보자. 맨 처음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칭하실 때에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하신 것은 창1:26에 나온다. 그런데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분들은 여기에 나오는 '우리'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경륜적으로 구약시대에는 아직 아들이 출현하지 않은 시기였다. 그러므로 '우리'라는 1인칭 복수에 '성자'를 넣을 수가 없는 것이다.

창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그렇다면 하나님(엘로힘)께서 인간을 창조하기 위해 회의하실 때에 참여했던 '우리'는 대체 누구인가? 그것이 한 마디로 천상회의 참여하고 있는 천사들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하늘들을 창조하신 후에 천사들을 창조하셨고 그리고 지구를 창조하셨다고 나오기 때문이다(창2:1 히브리어 원문 참조). 그 렇다. 하나님께서 아주 중요한 일을 수행할 때에는 고위급 천사들을 그 회의에 참여시켰던 것이다. 그러한 예는 성경에 여러 차례 나온다. 

  첫째, 미가야 선지자가 보았던 천상회의에 나온다(왕상 22:19~23). 이때 여호와께서 홀로 그분의 보좌에 앉아계셨다. 그때 여호와께서 하늘의 만군(차바)은 그의 좌우편에 서 잇었다. 그때 천상회의를 주재하신다. 회의 주제는 누가 아합왕을 꾀어 길르앗 라못에서 죽게 할 것인가였다. 그러자 한 영(사탄마귀로 추정됨)이 여호와 앞에 서서 자기가 나가 그를 꾀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자 그는 자신이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아합왕의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있어서 아합을 꾀어내게 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렇다. 여호와의 천상회의에 거짓말하는 영으로 참여하는 사탄이 함께 했던 것이다.

  둘째, 예레미야가 본 천상회의에도 나온다(렘23:18,22). 만군(모든 천사들)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천상에서 진행되는 천상회의를 언급하시면서 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여 그분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겠으며, 누가 귀를 기울여서 그분의 말을 듣겠느냐고 말씀한다(렘23:18). 그리고 그 회의는 성부와 성자와 성자가 집례하는 회의가 아니라 모든 천사들의 하나님이 되시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주재하시는 그분의 회의라고 말씀하신다(렘23:22). 즉 이 말씀은 하늘의 천상회의는 아무나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 회의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주재하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셋째, 이사야가 본 천상회의는 직접적으로 '우리'는 용어가 등장하고 있다(사6:8). 이사야의 소명장으로 알려진 이사야 6장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께서 홀로 높이 들린 보좌 위에 앉아서 회의를 주재하는 모습이 나온다(사6:1~8). 그때 각기 세 쌍의 날개를 가진 스랍천사들이 하나님을 지근거리에서 찬양하고 있었다. 그때 이사야는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주의 음성을 듣는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러자 이사야가 즉시 대답한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여기서 '우리'라는 대명사는 누구를 지칭하는가? 천상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고위급 천사를 가리킨다. 여기서 성자나 성령께서 계시지 않는다. 

  넷째, 마지막으로 욥기서에도 천상회의가 나온다(욥1장과 2장). 이때 여호와께서 혼자 천상회의를 주재하시는데 거기에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려지는 천사들도 왔다. 그들 중에는 사탄도 들어있었다. 사탄이 비록 하나님께 반역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어도 아직 쫓겨나지 않은 상태인지라 미가야가 보았던 천상회의에 거짓말하는 영이 왔던 것처럼 욥을 시험하기 위한 천상회의에 사탄 역시 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천상회의에는 필수적으로 사탄마귀가 참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창1장의 인간창조의 천상회의에도 사탄이 역시 들어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천상회의 가운데 말씀하신 '우리'라는 용어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고위급 천사들과 함께 앞으로 하실 일을 의논하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5. 하나님께서는 한 분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렇다면 예나 지금이나 영원토록 하나님은 꼭 한 분이라는 사실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이사야서의 말씀과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비교해 봄으로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이사야서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소개하셨는데(사41:4, 44:6, 48:12),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님께서도 역시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이라고 세 번씩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계1:17, 21:6, 22:13). 그렇다면 만약에 신약의 예수님이 한 분 하나님이 아니라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인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는 말은 거짓말이 된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홀로 한 분이신 나 여호와께서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고 이사야서에서 먼저 3번씩이나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사41:4, 44:6., 48:12). 그러므로 우리는 한 분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 자신을 드러내신 것이 여호와인 것을 알 수 있으며,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신약싣에 자신을 계시하신 것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이나 신약이나 하나님은 한 분이신 것이다. 그러나 구약의 여호와께서 아들 예수님으로 오셨다고 표현하는 것은 양태론 이단으로 빠질 수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구약의 여호와께서 아들 예수님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6. 나오며

  그렇다면 다시 질문을 던져본다. 하나님은 과연 한 분인간 세 분인가? 이 질문의 대답은 이렇다. '하나님은 과거나 지금이나 앞으로 한 분이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모든 우주의 역사는 한 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한 한 분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는 자신을 여호와라고 계시하신 것이고, 신약시대에는 자신을 아들이라고 계시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 말씀하실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라고도 말씀하실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시기 때문에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고 선언하실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항상 한 분이시다. 다만 그분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경륜을 거치면서 아버지와 아들로 동시에 일하시기도 하셨으며, 아들과 성령으로 동시에 일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순전히 인류구원을 위한 부득이한 조치였다. 왜냐하면 신성만 가지신 하나님 혹은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심으로 자신을 아버지라고 말씀하신 분은 인성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죽으실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죽으실 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출현하셨으니 그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또다른 표현인 것이다. 한 분 하나님께서 아버지로도 일하시고 아들로도 일하시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들로 출현하신 이상 그분은 자신을 아들이라고 칭했고, 아버지께 기도하신 것이다. 둘로서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다른 분이지만 서로 하나이신 것이다. 한 분 하나님께서 동시에 다른 사역을 진행하고 계시는 것이다. 

 

2024년 11월 06일(수)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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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탄명성교회 2024.11.07 10:39

    1. 들어가며

      하나님은 한 분인가 세 분인가? 하나님께서 한 분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에서 뿐만 아니라 신약성경에서도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계속해서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세 분인가? 그것은 아니라고 답해야 한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예수님도 하나님이시고 성령님도 하나님이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어쩌면 세 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면 안 된다. 만약 세 분이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큰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세 분으로 나타나서 일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을 세 분이라고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과 성령님이 각각 하나님이신 것은 맞지만 이들을 셋으로 보아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나를 본 자를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 하였고(요14:9)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요10:30). 그리고 예수께서 보혜사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보내 주신다고 했는데 사실 그것은 예수님의 또 다른 오심이었기 때문이다(요14:18~19). 그서 이러한 하나님을 가리켜 신학자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하나가 어떻게 셋이며, 셋은 또 어떻게 하나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래서 오늘부터 몇 번에 걸쳐 우리는 한 분이신 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이번의 말씀이 모든 성도들로 하여금 한 분이지만 세 분으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2. 하나님은 한 분인가 세 분인가?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한 분이라고 하는 사실은 신구약성경이 공히 증거하는 바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일을 하실 때에, 아버지로서도 일하시고 아들로도 일하신다. 그리고 영으로도 일하신다. 하나님께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사역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세 분이라고 해야 하는가? 그럴 수는 없다. 우리가 믿어야 할 하나님은 세 분의 신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그러한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 분의 하나님은 위격에 있어서나 능력에 있어서나 본질에 있어서나 동일하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에 이러한 하나님을 믿는 문제는 하나님을 유일하신 분으로 믿는다고 하는 자들에게도 문제가 있고 삼위일체 방식으로 믿는다고 하는 이들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먼저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믿는다는 분들을 보자. 그들은 구약의 여호와가 곧 예수님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틀린 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구약의 여호와는 육신을 입지 않았던 하나님이지만 신약의 예수님은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구약의 하나님은 신성만 갖고 있는 하나님이시지만 신약의 하나님은 인성도 갖고 있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렇듯 하나님을 한 분으로 보려고 하다가 이단이 된 자들이 더러 있다. 예를 들어, 시벨리우스 양태론이 그렇다. 이들은 구약의 성부 하나님께서 신약의 성자 하나님으로 오셨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성부가 고난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틀린 것이다. 왜냐하면 한 분 하나님께서 구약에는 자신을 여호와로 계시하신 것이고, 신약시대에는 아들로 계시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시고 죽으신 분은 아버지 하나님이 아니라 아들이신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사실 육체를 입지 않았던 구약의 하나님 곧 여호와는 육체를 입지 않고 신성만 가지고 있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성부가 내려오셔서 아들이 되시어 고난받았다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을 가리켜, 성부 고난설이라고 부리고, 양태론 이단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반대도 있다. 하나님을 셋으로 믿는 것도 문제가 있다.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이 있고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아들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라는 말이 우선 나오지 않는다. 오직 '아버지 하나님' 혹은 '하나님 아버지'라는 말만 나온다. 그러므로 하나님에는 아버지가 있고 아들이 있으며 영이 있다고 하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셋인가? 그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다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분이라고 증언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에는 아버지 하나님이 있고 , 아들 하나님이 있고 성령 하나님이 있다고 주장하면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믿으려 하는 자들이 범하는 우는 천국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가 세 개가 있을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삼위일체를 믿었던 중세시대의 사람들은 천국에 계신 하나님께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계시며 뿐만 아니라 그분의 보좌들도 셋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중세시대에 그려 놓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그림은 보좌가 셋이 있다. 그러면 삼신이 되는 것이다. 삼신은 서로 같지 않는 신들이기 때문에 서로 싸울 수도 있고 의견을 달리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문제가 된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한 번도 성부와 성자가 싸우거나 다툰 일이 없다. 그리고 성자와 성령도 한 번도 서 싸우거나 다툰 일이 없다. 자신의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실 뿐이다. 

     

    3. 구약시대에도 하나님께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계시면서 일하셨는가?

      한 분 하나님과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해하는데 가장 큰 난제는 구약시대의 경우에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셨는가 하는 것이다. 구약시대에도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와 같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같이 일하셨는가 아니면 성부만 일하셨는가? 그러나 이러한 질문은 질문 자체가 틀린 것이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는 한 분 하나님께서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신 시대이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영은 이미 천지창조 때부터 이 땅에 보내심을 받아 일하고 계셨다(창1:2). 왜냐하면 성령님은 한 분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약시대에도 아들 하나님이 나타나 어떤 일을 하셨는가? 그렇다고 보는 것이 현재 삼위일체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구약시대에 천지창조나 인간 창조 때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모여 회의를 하여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한 번 더 생각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는 아들은 이미 시간 이전부터 존재하고 계셨으나 아직 밖으로 나타나지는 않은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부와 성자가 회의하여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다거나 인간을 지었다고 말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이는 오직 한 분이신 여호와 곧 홀로 하나이신 여호와께서 홀로 창조하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라 일컬어지는 '우리'가 창조한 것이 아니라 나 여호와이신 한 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사44:24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사42:5 하늘[들]을 창조하여 [그것들을] 펴시고 땅과 그 소산[들]을 내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루하흐)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사45:5~7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6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7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사45:12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내 손으로 하늘[들]을 펴고 하늘[들]의 모든 군대(차바)에게 명령하였노라 
    사45:18 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들]을 창조하신 이 그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그것을 지으셨으니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사48:12~13 야곱아 내가 부른 이스라엘아 내게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라 13 과연 내 손이 땅의 기초를 정하였고 내 오른손이 하늘[들]을 폈나니 내가 그들을 부르면 그것들이 일제히 서느니라 

    출20: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들]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4.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우리'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우리'는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가?

      성경에 보면,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종종 자신을 지칭하면서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하실 때가 있다. 적어도 네 번 나온다(창1:26, 3:22, 11:7, 사6:8). 그런데 '우리'라는 대명사는 하나님 자신을 포함한 또 다른 누구를 함께 지칭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칭하면서 '우리'라는 대명사를 사용하실 때에 '우리'는 과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지칭하는 것인가?

      그렇다고 대답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들은 대부분 삼위일체 하나님을 주장하는 분들이다. 하나님을 한 분으로 믿는 분들은 절대 그렇게 해석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삼위일체를 주장하시는 분들은 '우리'라는 표현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들의 생각에 하나님은 만세 전부터 이미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계셨다고 생각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분들은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 혹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응당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협의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해석 옳다고 할 수 있는가?

      이제 그러한 대표적인 예를 들어 보자. 맨 처음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칭하실 때에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하신 것은 창1:26에 나온다. 그런데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분들은 여기에 나오는 '우리'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경륜적으로 구약시대에는 아직 아들이 출현하지 않은 시기였다. 그러므로 '우리'라는 1인칭 복수에 '성자'를 넣을 수가 없는 것이다.

    창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그렇다면 하나님(엘로힘)께서 인간을 창조하기 위해 회의하실 때에 참여했던 '우리'는 대체 누구인가? 그것 한 마디로 천상회의 참여하고 있는 천사들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하늘들을 창조하신 후에 천사들을 창조하셨고 그리고 지구를 창조하셨다고 나오기 때문이다(창2:1 히브리어 원문 참조). 그렇다. 하나님께서 아주 중요한 일을 수행하실 때에는 고위급 천사들을 그 회의에 참여시켰던 것이다. 그러한 예는 성경에 여러 차례 나온다. 

      첫째, 미가야 선지자가 보았던 천상회의에 나온다(왕상 22:19~23). 이때 여호와께서 홀로 그분의 보좌에 앉아 계셨다. 그때 하늘의 만군(차바)은 그의 좌우편에 서 었다. 그때 여호와께서 천상회의를 주재하신다. 회의 주제는 누가 아합왕을 꾀어 길르앗 라못에서 죽게 할 것인가였다. 그러자 한 영(사탄 마귀로 추정됨)이 여호와 앞에 서서 자기가 나가 그를 꾀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자 그는 자신이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아합왕의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있어서 아합을 꾀어내게 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렇다. 여호와의 천상회의에 거짓말하는 영으로 참여하는 사탄이 함께 했던 것이다.

      둘째, 예레미야가 본 천상회의에도 나온다(렘23:18,22). 만군(모든 천사들)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천상에서 진행되는 천상회의를 언급하시면서 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여 그분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겠으며, 누가 귀를 기울여서 그분의 말을 듣겠느냐고 말씀한다(렘23:18). 그리고 그 회의는 성부와 성자와 성자가 집례하는 회의가 아니라 모든 천사들의 하나님이 되시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주재하시는 그분의 회의라고 말씀하신다(렘23:22). 즉 이 말씀은 하늘의 천상회의는 아무나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 회의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주재하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셋째, 이사야가 본 천상회의는 직접적으로 '우리'는 용어가 등장하고 있다(사6:8). 이사야의 소명장으로 알려진 이사야 6장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께서 홀로 높이 들린 보좌 위에 앉아서 회의를 주재하는 모습이 나온다(사6:1~8). 그때 각기 세 쌍의 날개를 가진 스랍천사들이 하나님을 지근거리에서 찬양하고 있었다. 그때 이사야는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주의 음성을 듣는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러자 이사야가 즉시 대답한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여기서 '우리'라는 대명사는 누구를 지칭하는가? 천상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고위급 천사를 가리킨다. 여기서 성자나 성령께서 계시지 않는다. 

      넷째, 마지막으로 욥기서에도 천상회의가 나온다(욥1장과 2장). 이때 여호와께서 혼자 천상회의를 주재하시는데 거기에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려지는 천사들도 왔다. 그들 중에는 사탄도 들어 있었다. 사탄이 비록 하나님께 반역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어도 아직 쫓겨나지 않은 상태인지라 미가야가 보았던 천상회의에 거짓말하는 영이 왔던 것처럼 욥을 시험하기 위한 천상회의에 사탄 역시 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천상회의에는 필수적으로 사탄 마귀가 참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창1장의 인간 창조의 천상회의에도 사탄이 역시 들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천상회의 가운데 말씀하신 '우리'라는 용어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고위급 천사들과 함께 앞으로 하실 일을 의논하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5. 하나님께한 분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렇다면 예나 지금이나 영원토록 하나님은 꼭 한 분이라는 사실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이사야서의 말씀과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비교해 봄으로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이사야서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소개 하셨는데(사41:4, 44:6, 48:12),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님께서도 역시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이라고 세 번씩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계1:17, 21:6, 22:13). 그렇다면 만약에 신약의 예수님이 한 분 하나님이 아니라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인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는 말은 거짓말이 된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홀로 한 분이신 나 여호와께서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고 이사야서에서 먼저 3번씩이나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사41:4, 44:6., 48:12). 그러므로 우리는 한 분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 자신을 드러내신 것이 여호와인 것을 알 수 있으며,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신약시대에 자신을 계시하신 것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이나 신약이나 하나님은 한 분이신 것이다. 그러나 구약의 여호와께서 아들 예수님으로 오셨다고 표현하는 것은 양태론 이단으로 빠질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구약의 여호와께서 아들 예수님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6. 나오며

      그렇다면 다시 질문을 던져 본다. 하나님은 과연 한 분인 세 분인가? 이 질문의 대답은 이렇다. '하나님은 과거나 지금이나 앞으로 한 분이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모든 우주의 역사는 한 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한 한 분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는 자신을 여호와라고 계시하신 것이고, 신약시대에는 자신을 아들이라고 계시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 말씀하실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도 말씀하실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시기 때문에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고 선언하실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항상 한 분이시다. 다만 그분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경륜을 거치면서 아버지와 아들로 동시에 일하기도 하셨으며, 아들과 성령으로 동시에 일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순전히 인류 구원을 위한 부득이한 조치였다. 왜냐하면 신성만 가지신 하나님 혹은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심으로 자신을 아버지라고 말씀하신 분은 인성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죽으실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죽으실 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출현하셨으니 그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인 것이다. 한 분 하나님께서 아버지로도 일하시고 아들로도 일하시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들로 출현하신 이상 그분은 자신을 아들이라고 칭했고, 아버지께 기도하신 것이다. 둘로서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다른 분이지만 서로 하나이신 것이다. 한 분 하나님께서 동시에 다른 사역을 진행하고 계시는 것이다. 

     

    2024년 11월 06일(수)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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