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고린도후서강해(01)] 왜 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또 다시 편지를 써보내야만 했는가?(고후1:1~2)_2025-03-11(화)
https://youtu.be/6sWgObpNVUE

1. 들어가며
고린도후서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게 고린도전서를 보낸 후 약 6개월 정도 지나서 다시 보낸 편지다. 왜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다시 보내야 했던 것일까? 이것은 고린도후서를 읽을 때에 항상 유념해야 할 사항이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편지를 써 보낼 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보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린도후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린도전서에 대해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어서 이 편지를 다시 써 보내야 했던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고린도후서 강해를 시작하면서 고린도후서를 써 보내야 했던 당시 복잡한 배경을 살펴봄으로서 고린도후서를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2. 바울은 왜 고린도후서를 써 보내야 했는가?
바울이 고린도후서를 다시 써서 고린도교회에 보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고린도후서의 편지 내용이 된 것이다. 고린도후서라는 편지를 써 보내야 했던 배경이 바로 고린도후서의 내용을 만든 요인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이 고린도후서를 써 보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고린도후서에 잘 나와 있다. 그것은 고린도전서를 써 보낸 후에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복잡해지자, 바울은 직접 고린도교회를 방문하여 이 문제들을 수습하고자 한다(A.D.55년경). 그러나 알 수 없는 이유 때문에 고린도 교회의 온전한 회개와 개혁의 결과를 미처 보지 못한 채 다시 에베소로 돌아온 바울은 강도 높으면서도 애절한 하나의 편지를 다시 써서 보낸다(A.D.55년경). 이것을 가리켜 '눈물의 편지'라고 부른다(고후2:4). 그러나 이 편지는 현재 남아있지 않다.
이 '눈물의 편지'는 디도가 전달하였다. 그리고 바울은 드로아에서 그를 만나기로 약속하였다. 하지만 정한 기한이 지나도 오지 않자 바울은 에게 해를 건너서 마게도냐 지역으로 간다(고후2:12~13). 그래서 비로소 거기서 디도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때 디도로부터 들은 소식은 그를 기쁘게 한 것도 있었지만 또한 걱정케 하는 소식도 있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눈물의 편지를 받고 음행한 죄와 그것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죄를 회개하였으나, 일부 성도들이 여전히 거짓 사도들의 선동을 받고 바울 사도의 사도권 자체를 부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러한 소식을 들은 바울이 다시 붓을 잡고, 마게도냐에서 고린도교회에게 새로 써서 보낸 편지가 바로 고린도후서인 것이다(A.D.56년경). 이 편지는 눈물의 편지를 전달했던 디도가 다시 전달한다(고후8:16~17). 고로 고린도후서는 회개한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게 위로를 하면서도 바울의 사도권을 문제삼을 자들에게 자신의 전도계획의 변경에 대한 해명과 아울러 자신이 사도권을 변호하기 위해 쓴 것이다.
3. 고린도교회는 어떤 교회이며 왜 바울은 고린도전서와 눈물의 편지를 써 보내야 했는가?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2차전도여행(A.D.49~52)중에 A.D.51년경 바울이 직접 개척했던 교회였다. 바울이 전도여행을 통해 개척했던 교회들이 상당히 많지만 그중에서도 바울이 가장 관심과 애정을 기울인 교회가 있다고 한다면 그러한 교회는 아마도 고린도교회와 에베소교회일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이 체류한 교회들 가운데 가장 오래 체류한 교회가, 3차전도여행 때 개척했던 에베소교회였고 그 다음이 2차전도여행 때에 개척했던 고린도교회였기 때문이다. 당시 바울은 에베소교회는 약 3년(정확히는 2년 6개월)간 머물렀었고, 고린도교회는 약 1년 6개월을 머물렀었다.
그러므로 자신이 애지중지하며 개척했던 교회가 여러문제들로 인하여 혼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써 보내기로 한다(고전5:9) 그런데 바울이 가장 먼저 보냈던 첫번째의 편지는 지금까지 우리에게 남아있지 않다. 그것은 그 교회의 음행에 관한 것이었다(고전5:9~10). 그런데 3차전도여행(A.D.53~58)중에 에베소에 머물러 있던 바울은 곧장 다시 편지를 써서 배편으로 보내는데, 그 편지가 바로 고린도전서이다(A.D.55년경). 그런데 바울이 이 편지를 배편으로 보내기 전에, 먼저 고린도교회의 상황을 알아보려고 디모데를 고린도교회로 파송하였었다(A.D.55년경)(행19:22, 고전4:17, 16:10~11). 그리고 고린도교회를 방문하여 상황을 알아보았던 디모데가 에베소에 있는 바울에게 전해준 소식은 고린도교회의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래서 바울이 직접 방문하였지만 별다른 결과를 맛보지 못했을 때에 에베소에 돌아와서 다시 쓴 책이 '눈물의 편지'였던 것이다. 바울은 이 편지를 써서 디도 편에 고린도교회에 보냈다.
4. 고린도교회에는 계속해서 무슨 문제가 있었는가?
그렇다면 고린도교회는 어떤 문제들로 인해 혼란을 겪고 있었는가? 그것을 정리해보면, 고린도전서의 말씀으로 볼 때는 적어도 3가지 분야의 문제들이었다. 하나는 교회 성도들의 생활의 문제였고 또 하나는 교리적인 문제였고 또 하나는 성령의 은사의 문제였다.
먼저, 첫째로, 교회 성도들의 생활로 어지러웠다. 먼저 교회의 성도들은 서로가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등으로 분열했다(고전1장), 그리고 성도가 아비의 후처와 살아도 아무렇지도 않게 대해주었다(고전5장). 셋째, 결혼과 이혼 그리고 재혼과 독신의 문제로 자녀를 잡아두었다. 넷째, 성도들끼리의 싸움을 사회법정에 가져가서 서로 송사하였다(고전6장), 다섯째, 이방신에게 제사를 드리고 우상의 제물을 먹기도 하였다(고전8장,10장).
둘째로, 교리적인 문제로 다투었다. 첫째, 제사드리고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고전8장,10장). 둘째, 남녀간의 권위 문제에 있어서 여자들이 교회에서 머리에 쓰는 문제를 제기했다(고전11장). 이 문제는 교회의 사역자인 사도 바울의 사도권까지 부정하려는 사태까지 발생하게 했다(고전9장). 셋째, 성만찬을 하는데 먼저 음식을 갖다가 먹는 문제로 가난한 형제를 힘들게 했다(고전11장). 넷째, 성도들에게 과연 부활이 있는지 그리고 그 시기는 언제이며 어떤 부활로 참여하게 되는지를 잘 몰랐다(고전15장). 다섯째,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연보를 드리는 문제 있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고전16장).
셋째로, 성령의 은사로 충돌했다. 첫째, 교회에 나타난 은사와 은사적인 직분의 문제에 있어서 제대로 된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았다(고전12장). 둘째, 방언의 은사의 남용문제로 시끄러웠다(고전12~14장). 셋째,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는 은사가 무엇인지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았다(고전13~14장).
이것은 글로에의 집편으로 들려온 고린도교회의 문제들을 바울이 정리해서 보낸 고린도전서의 내용이다. 그런데 이 편지로 인해 교회상황은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방문했지만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켰다. 그래서 에베소로 다시 돌아와 눈물의 편지를 보냈다. 그러자 드디어 교회가 안정을 이루게 되었다. 음행을 저지른 자가 회개하고 온 교회도 회개를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는 일은 계속되었다. 그러자 사도 바울은 교회가 회개한 것에 대해서는 위로하고, 또한 자신의 사도권에 대해 적극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한 편의 편지를 다시 쓰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린도후서라는 편지다.
5. 고린도후서는 어떤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가?
그러므로 고린도후서의 편지는 아주 개인적인 편지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회개에 동참하고 있는 일부의 성도들에게는 위로를 해 주어야 했고, 또한 자신의 사도권에 대해 여전히 부정하고 있는 세력들에 대해서는 자신의 사역에 대해 해명하고 그리고 그들을 강경한 어조로 책망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전히 예루살렘 교회에게 보낸 연보에 대해서 다시 언급해야 했다. 그러므로 고린도후서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첫째,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는 세력에 대해서 바울은 먼저 자신의 사역을 해명해야 했는데, 이것이 고린도후서의 전반부다(고전1~7장).
둘째,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헌금을 촉구하는 부분이다. 이것은 고린도후서의 중반부를 차지한다(8~9장).
셋째, 자신의 사도권을 부정하는 세력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는 부분이다. 이것은 고린도후서의 후반부를 차지한다(10~13장).
6. 고린도교회를 개척했던 하나님의 종으로서 사도 바울의 고민은 대체 무엇이었는가?
고린도교회를 개척했던 하나님의 종으로서 사도 바울은 어떤 고민을 갖고 있었는가? 바울은 자신이 개척했던 교회에 발생한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 소식을 들었을 때, 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일종의 책임감이자 교회에 대한 애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붓을 들었다. 그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성령의 감동을 받아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교회는 원래 한 몸인데 교회가 분열되어 싸우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교회는 어찌하든지 성장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도달해야 하며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사역을 계속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킨 자들과 자신을 조롱하는 이들에 대해서 무엇인가 어떤 조치를 취해야 했다. 하지만 바울도 마음이 여렸다. 그래서 처음에는 잘 해결되기를 바라는 쪽으로 인도했다. 하지만 성도들은 그의 뜻을 헤아리지 못했고 오히려 상황을 더 나빠졌다. 그러자 바울은 그들에게 강경한 어조로 책망을 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눈물의 편지요, 고린도후서 편지인 것이다. 그러자 교회는 잠잠해졌다.
그렇다. 오늘날 교회에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볼 때, 보통 목회자들은 책망하지 않고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해보면 해볼수록 책망과 징계가 없는 조치는 항상 실패와 실패를 거듭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특히 자신과 연결된 문제들 앞에서 목회자는 침묵을 지킴으로 문제를 덮고자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보면, 없는 일까지 동원하여 목회자를 공격하고 음해하려 한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최종적으로 어떻게 했는가? 그가 처음에는 자신의 사도권에 대해서 좋은 말로 타이르듯 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그가 강경한 어조로 나갔다. 그러자 반대 세력들은 잠잠케 되었다. 그러므로 고린도후서는 고봉의 메시지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이것을 알아듣는 자는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들을 것이다.
7. 나오며
고린도교회의 상황을 살펴보면서, 오늘날 교회의 성도들이 주의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로, 교회가 시기질투심으로 서로 나뉘어지고 분열한다는 것을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 한 몸 안에 여러 지체들이 모여 자기의 역할을 감당할 때 교회는 성장하고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로, 성도라 할지라도 기본적인 교리와 은사들에 대해 공부하여 교회의 혼란을 가중시키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에 들어와서는 구원론과 삼위일체론 그리고 그리스도론 그리고 종말론에 대해 공부가 정말 필요한 실정이다. 그리고 은사와 능력에 대해서도 공부해야 한다. 이것 없이는 성도들을 죄짓게 만들고 저주로 끌어가고 지옥까지 끌어가는 악한 영들과 싸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셋째, 하나님께서 세우신 주의 종들을 주님처럼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 주의 종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말과 행동을 삼가해야 한다. 그럴수록 자신에게 피해가 더욱 더 안겨지기 때문이다. 넷째, 마지막으로 교회를 볼 때 거시안적으로 보아야 한다. 내 교회만을 생각하고 내 성도만을 생각하기보다는 온 교회가 주님의 몸된 지체임을 알고 다른 사람까지 도울 수 있도록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 좁은 생각을 가지고 주의 종을 자신의 손 안에 붙잡아 두려고 할 때, 교회는 시기질투심이 생기며 분열과 다툼에 휩싸일 것이기 때문이다.
2025년 03월 11일(화)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