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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FtNAyx9TeVs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고린도후서강해(15)] 누가 진정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인가?(고후5:11~1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FtNAyx9TeVs

 

1. 들어가며

  어떤 사람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라는 말씀을 인용하여, 자신은 예수님을 믿게 되면서부터 모든 저주가 떠나갔고 또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에 더이상 자기에게 귀신이 들어올 수 없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게 사실인가? 예수님을 믿은 자는 더이상 저주를 받지 아니하는가? 그리고 자기 안에 성령이 들어오셨기에 더이상 귀신은 자기 속에 들어올 수가 없는가? 우리도 흔히 신년예배 때나 죄사함의 선언으로서 고후5:17의 말씀을 듣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대체 무엇인가?

 

2. 바울이 대적자들의 중상과 모략이 있었어도 사도로서 직분을 계속해서 수행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대체 무엇이었는가?

  사도 바울은 대적자들이 자신을 중상하고 모략할지라도 낙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계속해서 자신의 사도의 직분을 수행하였다. 그럼,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대체 어디에서 왔는가? 그것은 그가 그리스도로부터 강권적인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고후5:14). 그리스도께서 죄인의 우두머리인 자기까지 사랑하여 자신을 찾아오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을 주와 복음을 전하기 위한 그릇으로 삼아 주신 것에 대해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일평생 주와 그리스도를 위해 살 것을 결단한다. 왜냐하면 사탄의 앞잡이로 살았던 자신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용서와 자비를 베풀어주시고 자신에게 귀한 직임을 맡겨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울이 편지를 보낼 당시는 어떠했는가? 그는 여전히 대적자들로부터 중상 모략을 당하고 있었다. 그러한 이유에는 추천서도 없이 와서 복음을 전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온 거짓 사도들은 자신의 외적인 모습을 자랑했다. 자기들은 베드로와 같은 어린양의 12사도들로부터 추천서를 받고 와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처럼 외적인 어떤 것으로 자기들이 사도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3. 바울이 감명받은 그리스도의 강권적인 사랑이란 어떤 것이었는가?

  그럼, 바울이 감명받은 그리스도의 강권적인 사랑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께서 자신의 가장 소중한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그것도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이 되어 오심으로 모든 사람들 위하여 대속물로 내어주신 것을 가리킨다(고후5:14). 그러니까 예수께서 자기의 목숨을 모든 사람의 죄값을 대신하여 치러 죽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은 그분이 죄가 있어서 죽은 것이 아니었다. 예수께서는 비록 자신은 죄가 없었으나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대신 죽으신 것이다(고후5:14~15). 그러므로 그분의 사랑은 한 마디로 이타적인 사랑이라고할 수 있다. 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시키는 사랑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은 모든 사람의 영적인 유익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특별히 죄악 가운데 빠져있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분이 대신 희생을 치른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비로소 예수께서 자신에게 어떠한 사랑을 베풀어주셨는지를 깨닫게 되었을 때에, 자신의 인생을 주님께 바치게 된다. 그러므로 바울의 복음전파는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것도 아니었으며, 자기를 자랑하기 위함도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의 성공욕을 채우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자신이 받았던 예수님의 넓은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주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4. 그리스도로부터 무한한 사랑을 받아서 자신의 죄값이 이미 치러졌다는 것을 믿는 자는 그 다음부터 어떻게 살아가는가?

  대부분의 사람은 처음에는 하나님이 치르신 값진 희생을 잘 모른다. 그러나 나중에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어떠한 희생을 치르셨는지를 알게 되면 그도 역시 바울처럼 그 사랑에 감복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것도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직접 육신을 입고 아들로 오셔서 대신 죽으셨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랑을 받아 구원받게 된 사람은 다음과 같이 2가지를 행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후5:15). 

  첫째, 다시는 자기자신을 위해 살지 않게 되는 것이다(소극적인 측면에서). 왜냐하면 자기를 구원해주신 예수께서 그렇게 살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둘째, 자시는 자기자신을 위해 살지 않을 뿐더러 나를 위해 목숨 바쳐 죄값을 치러주신 그분 곧 예수님을 위하여 살게 되는 것이다(적극적인 측면에서). 그러므로 참된 성도들은 이전에는 자기중심적이요 자기이기적이었던 삶을 살게 되었지만 진정 그리스도께서 치르신의 희생을 알면 그때부터는 이타중심적이요 이타이기적인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5. 누가 과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는가?

  사도 바울은 과연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선언하고 있는가? 그것은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았던 자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이타적인 삶으로 바뀌었을 때를 말하는 것이다. 그저 예수님을 믿었다고 해서 그를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선언한 것이 아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어서 자기 안에 성령을 모신 사람은 이전과는 다른 측면을 가지고 있다. 자기 안에 아버지의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이타적인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자기 안에 생명을 가지게 되는 것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밑바탕이다. 거기에다가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삶처럼 그리고 그 뒤를 사도 바울이 걸어갔던 것처럼 그 길을 자신도 걸어갈 때 비로소 그도 질적으로 새로운(카이노스)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었다고 해서 그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예수님을 믿었다면 예수께서 내 안에 들어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내가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놀라운 희생적인 사랑을 깨달을 때다. 그때에 가면 자신의 삶을 송두리채 주님께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6. 나오며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을 수 있다면 그는 이 세상을 예전 방식대로 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를 이타적인 삶으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개와 천국복음의 관점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덧붙여 말씀드리고 싶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생명주는 영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셨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몸 속에는 이미 예수믿기 전에 지은 죄와 조상들의 죄 때문에 온갖 종류의 뱀들과 귀신들이 꽉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뱀들과 귀신들이 우리 몸 속에 들어와 있으면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로서 살아가기가 정말 어렵다. 그놈들이 우리를 자꾸 죄짓는 데로 끌고가기 때문이며,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하려는 것을 계속해서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위해서 가장 선행되어야 할 것은 바로 회개하는 일이다. 사도 바울은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믿는 민족의 후손으로 태어났기에, 악한 영들의 피해를 덜 보고 자란 세대이지만 우리 이방인들은 다르다. 특히 한국민족은 5처년의 역사 가운데 무당을 신으로 숭배해왔으며, 1천년동안 부처와 불상을 섬겼으며, 5백년동안 죽은 조상을 신으로 숭배하였다. 그러니 거기에 따른 뱀들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그러므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전에 우리 이방인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회개하는 일이다. 회개를 하여 악한 영들이 자기의 몸에서 떠나갈 때에라야 비로소 우리의 헌신도 온전해질 수가 있는 것이다. 

 

 

2025년 04월 01일(화)

정보배 목사

 

  • ?
    almond 2025.04.11 18:04

    1. 들어가며

      어떤 사람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라는 말씀을 인용하여, 자신은 예수님을 믿게 되면서부터 모든 저주가 떠나갔고 또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에 더이상 자기에게 귀신이 들어올 수 없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게 사실인가? 예수님을 믿은 자는 더이상 저주를 받지 아니하는가? 그리고 자기 안에 성령이 들어오셨기에 더이상 귀신은 자기 속에 들어올 수가 없는가? 우리도 흔히 신년예배 때나 죄사함의 선언으로서 고후5:17의 말씀을 듣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대체 무엇인가?

     

    2. 바울이 대적자들의 중상과 모략이 있었어도 사도로서 직분을 계속해서 수행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대체 무엇이었는가?

      사도 바울은 대적자들이 자신을 중상하고 모략할지라도 낙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계속해서 자신의 사도의 직분을 수행하였다. 그럼,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대체 어디에서 왔는가? 그것은 그가 그리스도로부터 강권적인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고후5:14). 그리스도께서 죄인의 우두머리인 자기까지 사랑하여 자신을 찾아오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을 주와 복음을 전하기 위한 그릇으로 삼아 주신 것에 대해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일평생 주와 그리스도를 위해 살 것을 결단한다. 왜냐하면 사탄의 앞잡이로 살았던 자신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용서와 자비를 베풀어주시고 자신에게 귀한 직임을 맡겨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울이 편지를 보낼 당시는 어떠했는가? 그는 여전히 대적자들로부터 중상 모략을 당하고 있었다. 그러한 이유에는 추천서도 없이 와서 복음을 전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온 거짓 사도들은 자신의 외적인 모습을 자랑했다. 자기들은 베드로와 같은 어린양의 12사도들로부터 추천서를 받고 와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처럼 외적인 어떤 것으로 자기들이 사도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3. 바울이 감명받은 그리스도의 강권적인 사랑이란 어떤 것이었는가?

      그럼, 바울이 감명받은 그리스도의 강권적인 사랑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께서 자신의 가장 소중한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그것도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이 되어 오심으로 모든 사람들 위하여 대속물로 내어주신 것을 가리킨다(고후5:14). 그러니까 예수께서 자기의 목숨을 모든 사람의 죄값을 대신하여 치러 죽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은 그분이 죄가 있어서 죽은 것이 아니었다. 예수께서는 비록 자신은 죄가 없었으나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대신 죽으신 것이다(고후5:14~15). 그러므로 그분의 사랑은 한 마디로 이타적인 사랑이라고할 수 있다. 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시키는 사랑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은 모든 사람의 영적인 유익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특별히 죄악 가운데 빠져있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분이 대신 희생을 치른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비로소 예수께서 자신에게 어떠한 사랑을 베풀어주셨는지를 깨닫게 되었을 때에, 자신의 인생을 주님께 바치게 된다. 그러므로 바울의 복음전파는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것도 아니었으며, 자기를 자랑하기 위함도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의 성공욕을 채우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자신이 받았던 예수님의 넓은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주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4. 그리스도로부터 무한한 사랑을 받아서 자신의 죄값이 이미 치러졌다는 것을 믿는 자는 그 다음부터 어떻게 살아가는가?

      대부분의 사람은 처음에는 하나님이 치르신 값진 희생을 잘 모른다. 그러나 나중에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어떠한 희생을 치르셨는지를 알게 되면 그도 역시 바울처럼 그 사랑에 감복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것도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직접 육신을 입고 아들로 오셔서 대신 죽으셨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랑을 받아 구원받게 된 사람은 다음과 같이 2가지를 행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후5:15). 

      첫째, 다시는 자기자신을 위해 살지 않게 되는 것이다(소극적인 측면에서). 왜냐하면 자기를 구원해주신 예수께서 그렇게 살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둘째, 다시는 자기자신을 위해 살지 않을 뿐더러 나를 위해 목숨 바쳐 죄값을 치러주신 그분 곧 예수님을 위하여 살게 되는 것이다(적극적인 측면에서). 그러므로 참된 성도들은 이전에는 자기중심적이요 자기이기적이었던 삶을 살게 되었지만 진정 그리스도께서 치르신의 희생을 알면 그때부터는 이타중심적이요 이타적인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5. 누가 과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는가?

      사도 바울은 과연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선언하고 있는가? 그것은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았던 자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이타적인 삶으로 바뀌었을 때를 말하는 것이다. 그저 예수님을 믿었다고 해서 그를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선언한 것이 아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어서 자기 안에 성령을 모신 사람은 이전과는 다른 측면을 가지고 있다. 자기 안에 아버지의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이타적인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자기 안에 생명을 가지게 되는 것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밑바탕이다. 거기에다가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삶처럼 그리고 그 뒤를 사도 바울이 걸어갔던 것처럼 그 길을 자신도 걸어갈 때 비로소 그도 질적으로 새로운(카이노스)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었다고 해서 그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예수님을 믿었다면 예수께서 내 안에 들어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내가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놀라운 희생적인 사랑을 깨달을 때다. 그때에 가면 자신의 삶을 송두리채 주님께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6. 나오며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을 수 있다면 그는 이 세상을 예전 방식대로 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를 이타적인 삶으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개와 천국복음의 관점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덧붙여 말씀드리고 싶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생명주는 영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셨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몸 속에는 이미 예수믿기 전에 지은 죄와 조상들의 죄 때문에 온갖 종류의 뱀들과 귀신들이 꽉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뱀들과 귀신들이 우리 몸 속에 들어와 있으면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로서 살아가기가 정말 어렵다. 그놈들이 우리를 자꾸 죄짓는 데로 끌고가기 때문이며,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하려는 것을 계속해서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위해서 가장 선행되어야 할 것은 바로 회개하는 일이다. 사도 바울은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믿는 민족의 후손으로 태어났기에, 악한 영들의 피해를 덜 보고 자란 세대이지만 우리 이방인들은 다르다. 특히 한국민족은 5천년의 역사 가운데 무당을 신으로 숭배해왔으며, 1천년동안 부처와 불상을 섬겼으며, 5백년동안 죽은 조상을 신으로 숭배하였다. 그러니 거기에 따른 뱀들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그러므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전에 우리 이방인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회개하는 일이다. 회개를 하여 악한 영들이 자기의 몸에서 떠나갈 때에라야 비로소 우리의 헌신도 온전해질 수가 있는 것이다. 

     

     

    2025년 04월 01일(화)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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