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로마서강해(23)] 성화의 첫번째 원리로서 여김과 드림의 법칙이란 무엇인가?(롬6:1~23)_2025-05-2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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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사람이 칭의를 받은 후 거룩함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떤 분은 주 예수님을 믿고 있으면 이미 구원받은 것이기에 거룩함에 이르는 인 그리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래도 되는가? 칭의만 얻고 거룩함에 이르는 길은 무시해도 정말 자신의 구원에 지장이 없을까?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우리는 그동안 롬3:21~5:11에의 말씀을 통해서, 한 번 얻은 칭의가 죽는 날에 가서도 효력있게 하려면 반드시 자백하는 회개가 동반되어야 함을 배웠다. 그리고 사람이 외적으로 칭의를 얻었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의 내적인 성분까지 의롭게 되려면 다른 무엇인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성화의 3대 방법이다. 그중에서 이번 시간에는 사람이 성화(거룩함에 이름)에 이르는 첫 번째 원리로써 여김의 법칙과 드림의 법칙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이러한 여김과 드림의 법칙을 통하여 내적인 성분의 변화를 이루는데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2. 칭의를 얻은 사람이 성화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엇을 받아야 하는가?
사람은 회심으로서의 회개와 믿음을 통하여 칭의를 얻는다. 이때 칭의는 주 예수님의 구속에 대한 은총을 내 것으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때 사람은 자기 속에 죄된 본성이 남아있을지라도 예수님의 피로 자신의 죄가 덮여진 상태에 놓이게 됨으로, 이때 믿는 사람은 다 죄가 없는 것처럼 되어진다. 이것을 가리켜 '칭의'라고 한다. 실제로는 의롭지 않지만 그를 의롭다고 불러주는 것이다. 그리고 칭의를 받은 이 사람에게 생명주는 영인 성령께서 들어가시면 그때 그는 거듭나게 된다. 이때 사실은 주 예수께서 생명주는 영이 되시어 생명을 가지고 사람 속으로 들어오시는 것이다. 이때 그 생명을 가리켜 헬라어로 '조에'라고 부른다. 이는 사람의 영 속에 들어온 하나님의 생명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첫 사람이신 아담으로서부터 육체의 생명을 이어받은 사람은, 이제 둘째 아담이자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주 예수님에 의해 자신의 영에게 생명을 공급받게 된다. 이 생명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생명으로서, 아버지의 생명 그 자체이다. 그리고 이 생명은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이면서 동시에 부활 생명인 것이다. 그리하여 이 생명을 받은 자는 그때부터 하나님의 자식들(아들들과 딸들)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비로소 하늘에 있는 생명책에 그의 이름이 기록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거룩함에 이르기 위해서 칭의에 이어서 만드시 수반되어야 할 일은 거룩한 영이신 성령으로부터 생명을 받는 것이다. 성령이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본성인 생명을 받아야 나도 역시 거룩함에 이르는 기반을 닦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거룩함에 이르는 성화의 시작은 생명의 분배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3. 칭의를 받고 이어서 생명을 분배받은 성도가 성화의 단계 안으로 들어가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그렇다면 이제 칭의를 받고 생명을 분배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그는 그때부터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사실 칭의는 사람을 외적으로 변화시켜주면서 또한 객관적으로 변화시켜준다. 왜냐하면 칭의를 받으면 예수님의 의의 옷이 덧입혀지기 때문이요, 그의 신분이 법적으로 볼 때 죄인에서 의인으로 바뀌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속성분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다만 겉만 달라진 것 뿐이요 객관적으로 달라진 것 뿐이다. 왜냐하면 그의 신분이 죄인에서 의인이라고 불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가 되려면, 칭의를 받은 이후부터 속의 것들을 거룩하게 만들어 가야 한다. 이는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그로 하여금 고귀한 신분을 가진 자가 되게 해주며, 천국에서 예배드릴 때에 보다 더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에 가서 예배드리게 해준다. 그러므로 사람이 칭의를 받고 거듭났으면 이제는 자신의 내면을 깨끗하게 만들고 거룩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우리는 '성화'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칭의가 우리의 외적인 변화이자 객관적인 변화라고 한다면, 성화는 내적인 변화이자 주관적인 변화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칭의를 받은 성도가 내적이요 주관적인 변화를 겪어 거룩함에 이르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럴려면 적어도 3가지가 요청된다. 첫째는 자기의 영 속에 생명을 가지고 들어온 성령의 인도를 꾸준히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자신의 육체 속에 들어있던 죄된 본성을 따라가던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박아 날마다 죽음에 넘겨야 한다. 자기자신 곧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는 이제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 지었던 죄들과 조상들이 지은 죄들로 인하여 내 몸 속에 들어있는 악한 영들 곧 귀신들과 뱀들까지 우리 몸에서부터 제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자백하는 회개가 필요하다(요일1:9). 그러면 예수님의 피가 우리 몸 속으로 들어와서 그 영들을 밖으로 몰아내게 된다. 다시 말해, 사람이 거룩함에 이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영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하고, 혼는 죽음에 넘겨져야 하며, 육체는 회개를 통해 귀신들과 뱀들을 제거해야 한다. 그런데 안까갑게도 로마서는 첫 번째 방법과 두 번째 방법만 소개하고 있을 뿐 세 번째 방법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4. 성도로 하여금 거룩함에 이르도록 사도 바울이 권면한 것은 무엇인가?
사도 바울은 칭의를 받은 성도들이라도 거룩함에 이르기 위해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영과 육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고후7:1). 그런데 사람의 영은 결코 더렵혀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의 영 속에는 거룩한 하나님만 들어갈 수 있을 뿐 귀신들이나 뱀들은 결코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것은 영을 둘러싸고 있는 혼을 죽음에 넘겨서 영의 바깥 부분을 정결하게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영을 깨끗하게 하는 소극적인 방법에 해당한다. 실제로 영을 깨끗하게 하는 적극적인 방법은 자신의 영 속에 생명을 가지고 들어오신 생명의 영이신 성령의 인도를 꾸준히 따라가야 한다.
그리고 둘째는 여김의 법칙과 드림의 법칙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롬6:11,19). 이는 이미 육체와 결탁하여 죄짓는 것을 따라가고 있는 혼을 죽음에 넘기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몸이자 지체들을 죄에게 내주지 말고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성취되는 것이다.
5. 혼(souls)의 성화란 무엇을 두고 한 말인가?
사람의 혼은 사실 영의 바깥면을 둘러싸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혼은 안타깝게도 아담의 범죄 이후 육체의 지배하에 놓여있는 채 있다. 그런데 사실 창조 당시만 해도 아담의 혼은 중립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사람이 혼은 영을 따라갈 수 있었고 육체를 따라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담이 범죄함에 따라 사람의 육체 안에 뱀들이 들어오게 된다(창3:14).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한 후에는 귀신들도 사람의 몸 속에 들어오도록 허락된다(출20:5). 그리하여 오늘날 사람의 육체 속에는 뱀들과 귀신들로 꽉 들어차 있는 것이다.
그런데 뱀들과 귀신들이 사람 속에 들어오고 거주하는 방식이 약간은 다르다. 먼저 뱀들은 자체가 큰 뱀으로서 들어오는 것도 있지만 작은 뱀들이 들어온 후 서로 뭉쳐서 큰 뱀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귀신은 이와는 좀 다르다. 왜냐하면 귀신이 사람의 몸 속에 들어올 때에는 집을 짓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귀신의 집'이라 하는 것이다(마12:43~45). 즉 귀신이 사람의 몸 속에 들어오면 그냥 있지 않고, 집을 짓고 그 집안에 여러 종류의 방을 마련한다. 그 다음에는 그 방안에 다양한 종류의 귀신들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그런데 귀신의 집 안에 있는 방들 중에는 뱀들이 들어있는 방들도 더러 있다. 그러니까 귀신의 집에는 귀신들이 주로 들어있기는 하지만 뱀들도 들어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육체는 이미 아담 이후 뱀들과 귀신의 소굴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육체는 이미 귀신들과 뱀들의 놀이터가 되어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있어서 중립적인 육체란 결코 없다. 여기서 중립적인 육체라는 뜻은 후손을 낳기 위해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을 가리키며,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일하는 도구로서 자신의 지체를 사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미 육체 속에는 모태로부터 악한 영들이 가득찬 상태이므로 사람은 결코 중립적일 수 없는 것이다. 귀신들과 뱀들이 주는 욕망에 육체가 노예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의 육체 속에 들어있는 욕망들은 지금도 인간을 과도하게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욕망에는 식욕도 있고 성욕도 있고 소유욕도 있다. 그러므로 만약 인간의 육체를 가만히 내버려 둔다면, 인간은 육체 속에 들어있는 악한 영들의 욕망대로 행하고자 할 것이다. 이때 인간은 뱀들과 귀신들의 꼬드김을 받아 육체를 따라 온갖 종류의 죄를 범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타락한 사람에게 있어서 식욕과 성욕과 소유욕은 결코 먹고 번성하고 갖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해치고 죽여서라고 빼앗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육체 속에는 죄된 본성이 남아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죄된 본성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인간의 혼은 반드시 죽음에 넘겨져야 한다. 다시 말해 사람은 누구나 혼을 십자가에 못박아 더 이상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상태로서 혼을 그대로 놔둔다면 혼은 반드시 부패한 본성을 가진 육체를 따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사람이 거룩해지려면 반드시 자신의 혼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고 했다(갈2:20). 그래야 자신의 몸을 의의 도구로서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고 했다(롬6:16,19). 그러므로 거룩함에 이르기 위해서 정말 거듭난 사람이라도 힘써야 할 일은 자신의 혼을 죽음에 넘기는 일이다.
6. 어떻게 할 때 혼을 죽음에 넘길 수 있는가?
아담의 범죄 이후 이미 부패한 본성을 가진 육체을 따라 살고 있던 인간의 혼은 그냥 자연 상태로 둔다면 그는 반드시 죄를 지을 것이다. 죄된 욕망을 따라 과도한 식욕과 성욕과 소유욕이 자신을 지배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거기에서 각양 종류의 죄들이 터치고 나온다. 그러므로 자기자신이 예수님을 믿고 칭의를 얻은 자가 되었다면, 그는 즉시 자신의 혼을 죽음에 넘기는 훈련을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자기자신이 못박혀 죽었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것을 '여김의 법칙'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에 그의 몸인 교회도 역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아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미 2천년전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힐 때, 우리도 같이 죽은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효력있게 하려면 실제는 아니더라도 그렇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이미 칭의를 얻은 자가 되었다면, 우리 자신을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로 여겨야 하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로 여겨야 한다고 말이다(롬5:11). 여기서 '여기다'는 말은 헬라어로 보면 '로기조마이'라는 단어인데, 그 뜻은 "계산하다. 간주하다. ~라고 여기다. 그렇다고 결론짓다"의 뜻이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그렇다고 느껴지거나 믿어지지 않아도, 내 육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고 간주해야 한다. 그렇다고 계산해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렇게 여기면 여길수록 혼은 죽음에 넘어가게 될 것이고 그러면 우리도 육체의 본성을 따라가지 않게 되는 것이다.
7. 혼을 죽음에 넘기기 위한 실행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리스도와 함께 자기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하는 것을 어떻게 실행에 옮길 것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육체가 더이상 죄된 본성을 표출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고 여기는(간주하는, 계산하는) 것이다. 죽은 시체가 무슨 감정이 있겠으며 욕망이 있겠느냐고 스스로 여기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좋은 실행들이 있다.
그러한 것으로는 첫째는 혼이 살아나려고 할 때 침을 꼴딱 삼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순간 죄된 본성이 자신을 지배하고 있음을 느끼면서 자신의 자유의지로 그것을 거절하는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면 정말로 그 순간에 육체에 팔려버린 자신이 영으로 돌이키게 된다. 둘째는 심호흡을 하는 것이다. 한 세 번만 심호흡을 하면 그때에 육체의 본성이 가라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안 되면 물을 따라서 한 컵을 꿀꺽꿀꺽 마셔보는 것이다. 그러면 역시 육체의 본성이 가라앉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셋째는 죄된 본성이 표출되는 공간에 벗어나가는 것이다. 이것은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이 쓰는 방법이다. 죄를 짓고자 하는 욕망이 흘러나오는 장소를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면 확실히 죄된 욕망이 사라지는 것을 본다. 실제로 이렇게 한 번씩 실행해보라. 상당히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로 여기는 방법에 대해서는 성경이 말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러가지 방법을 실행에 옮겨보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8. 드림의 법칙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드림'의 법칙이란 무엇인가? 이전에 죄된 욕망에 사로잡혀 있던 혼을 죽음을 넘기게 되면 그때 혼이 정신을 차리고 죄를 범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 그대로 가만히 있을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대로 있으면 또다시 죄된 욕망이 올라와서 자신의 혼을 끌어가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혼을 죽음을 넘기는 일을 했다면 그 즉시 우리는 이제 자신의 몸을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자신의 몸을 거룩한 일들을 하는 데에 드리는 것이다. 주와 천국복음전파를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드리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시간 관계상 다음 시간에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9. 나오며
사람이 주 예수님을 믿어 의롭다함을 얻었다고 할지라도 거기에서 모든 구원의 여정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제 비로소 구원의 여정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때부터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을 거룩하고 깨끗한 자로 만드는 일이다. 칭의로 인하여 하늘에 있는 자신의 행위들이 기록된 책이 예수님의 피로 덮여진 채 있다면, 이제는 이미 범죄함으로 자기 몸 속에 들어온 채 있는 악한 영들로부터 자기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거룩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성화'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화에는 영이 할 일이 있고 혼이 할 일이 있고 육이 할 일이 각각 따로 있다. 먼저 사람의 영은 자기의 영 속에 들어온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야 한다. 사람의 혼은 이미 부패한 육체와 결탁되어 있기에 자신의 혼은 날마다 죽음에 넘겨야 한다. 그리고 사람의 육체는 자백하는 회개를 통해 육체 속에 들어있는 악한 영들을 내보내야 한다. 그중에서 이번 시간에는 자신의 혼을 죽음에 넘기는 방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그것의 핵심은 자신의 혼이 죽지 않았지만 이미 혼이 죽은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렇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그래서 혼이 자신이 육체의 본성을 따라가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늘 죄된 육체의 욕망이 올라올 때,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 그러므로 나는 더이상 죄를 지을 수 없다."라고 자신에게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실행에 옮겨보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 확실히 자신이 죄된 본성을 이기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어느정도 효과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성화를 위한 자신의 노력은 온전한 성화를 이루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그래도 성도는 더 완전한 성화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2025년 05월 26일(월)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