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로마서강해(37)] 로마서 9~11장은 개인구원예정을 다루고 있는가 민족구원예정을 다루고 있는가?(롬9:1~13)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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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로마서는 어떤 책인가? 로마서는 바울이 서바나(스페인)로 선교여행을 계획하고 있을 때에 후원 교회를 찾는 중, 전 세계교회를 아우를 수 있는 로마 교회를 교두보로 삼아 선교하기 위해 쓴 책이다. 그런데 당시 로마 교회는 사도가 세운 교회가 아니었기에 이들에게 구원의 바른 진리를 전해줄 필요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로마교회의 방문에 앞서 일종의 구원론에 관한 교리적인 서신을 먼저 써서 보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로마서를 통하여 개인이 어떻게 구원을 얻게 되는지를 보다 더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때 바울은 밤낮으로 걱정이 되는 자기 민족의 구원에 관해서도 썼다. 그것이 바로 로마서 9~11장의 말씀이다. 하지만 오늘날 로마서 9장은 칼빈의 후예들에 의해 개인 구원 예정론을 증언해주는 필수 성경구절로 쓰이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무엇이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로마서 9~11장이 과연 개인 구원 예정을 위해 쓰여진 글인지, 아니면 민족 구원 예정을 위해 쓰여진 글인지를 살펴보고, 만세전 개인 구원 예정론자들의 실수가 무엇이었는까지 들여다보고자 한다.
2. 로마서에서 9~11장의 위치는 어떠한가?
로마서는 크게 도입부(1:1~17)과 본론부(1:18~15:13)과 종결부(15:14~16:27)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서 본론부는 다시 전반부인 교리(신앙)(1:18~11:36)와 후반부인 생활(삶)(12:1~15:13)으로 구분된다. 그중에 전반부는 다시 2개로 나뉘는데, 앞부분(1:18~8:39)에서는 개인 구원의 여정을 다루고 있고, 뒷부분(9:1~11:36)은 민족 구원에 관해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다루게 될 로마서 9:1~11:36의 말씀은 바로 민족 구원에 관한 말씀인 것이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로마서 9~11장의 말씀은 선택과 유기의 오묘한 섭리 및 누구도 시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관한 본문으로 사용한다. 왜냐하면 이 본문을 가지고 존 칼빈(깔뱅)이 자신의 기독교강요 제4판 제3권 21~24장에서 이중예정의 구원론을 펼쳤고, 그것을 종교개혁자의 후손들인 지금의 개신교가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로마서 9~11장은 정말 개인의 선택과 유기에 관한 이중예정론에 관한 말씀인가? 그리고 개인의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의 말씀인가?
3. 바울은 왜 로마서 9~11장을 써야 했는가?
우리는 먼저 바울이 로마서 1~8장에서 개인 구원의 여정을 먼저 밝히고, 그 다음에 이어서 로마서 9~11장을 썼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것은 바울이 모든 사람들이 죄인으로서 그것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방인)이나 상관없다고 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율법에서 난 의를 추구했지만 의를 얻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믿음으로 난 의를 추구함으로 의로움을 얻게 되었다고 하면서, 이는 율법 이전에 계시된 믿음의 법 때문이라고 밝혔다. 다시 말해 누구든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믿으면 의롭게 되는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상관없이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칭함받는다(칭의를 얻는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칭의를 받은 자는 속죄와 중생의 은혜를 입게 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구원의 여정을 시작하게 되는데, 먼저는 성화의 단계(여김의 법칙, 드림의 법칙, 생명의 성령의 법의 작동의 법칙)를 거치고 이어서 영화를 위한 3가지 단계(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를 받음, 주와 복음을 위해 고난을 겪음, 보이지 않는 천국에서의 지위와 신분, 상급을 위해 인내하고 기다림)를 거쳐서,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의 공동상속자로 준비되며,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된다고 했다. 그러니까 사람이 칭의와 속죄와 중생을 얻고 이어서 성화와 영화의 단계를 거치는 것은 혈통적인 조건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그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상관없이 믿음으로 시작하여, 구원의 여정을 밟아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바울에게는 심히 큰 슬픔이 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의를 얻으려고 했던 자기의 민족은 오히려 구원에서 탈락되고 오히려 믿음을 따라간 이방인들이 칭의를 얻어 구원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유대인의 구원은 물건너 간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이제 유대인을 버린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집중하여 기도함으로 유대인의 구원의 문제를 기록하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로마교회에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도 같이 있었기 때문이다.
4. 로마서 9~11장의 핵심내용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로마서 9~11장의 핵심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유대인이었으나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은 사도 바울이 유대인의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먼저 자신에게 큰 슬픔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다는 것을 언급하는데, 그것은 곧 자신의 형제들 곧 육체에 따른 친족들에 대한 슬픔과 고통이라고 말했다(롬9:1~3). 그리고 그 문제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하는 것은 10장에 가서 언급한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에 원하는 바가 곧 하나님이 원하는 바와 같은 것으로서, 자신의 동족인 이스라엘의 구원에 관한 문제라고 밝힌다(롬10:1). 그리고 당시에 이방인이 더 주께 돌아와 구원받고 있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넘어짐(이탈)로 인하여 구원이 이방인(민족)에게 넘어간 것이라고 했다(롬11:11). 그렇게 하여 이방인의 충만한 숫자가 채워지면 이스라엘이 시기가 나서 다시 구원을 받게 될 것인데, 그리하여 온 하나님의 백성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롬11:25). 그러니까 바울은 로마서 9~11장에서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신비(비밀)을 밝혀놓았는데, 그것은 이방인의 충만한 숫자가 차기가지 이스라엘의 일부분이 완고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원감람나무인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의 중 얼마를 구원하여(롬11:14), 만세전에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작정하신 구원의 숫자를 채우신다는 것이다(롬11:1~5). 고로 앞으로 적그리스도에 의한 환난시대가 찾아오면, 이스라엘에서 두 증인이 일어날 것이며, 이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남겨둔 얼마의 숫자를 채우실 것이다(계11:3~6).
5. 만세전 개인 구원예정론자의 실수는 과연 무엇인가?
그렇다면 왜 칼빈과 그의 후예들은 로마서 9~11장을 가지고 이중예정론의 뼈대를 만든 것인가? 만세전 개인 구원예정론자의 실수는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로, 민족 구원에 관한 말씀을 개인 구원 예정론으로 잘못 풀었다는 것이다. 로마서 9~11장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구원에 관한 예정과 섭리를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사용된 예화들은 다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에 관한 것을 증명하려고 사용한 것들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에 관한 증거로서 사용된 것들은 민족 구원의 차원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성경말씀을 그만 개인 구원 예정론의 근거로 사용해 버린 것이다. 특히 에서와 야곱의 선택에 관한 부분에서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것은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기도 전에 다시 말해 그들이 아직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가 아니라 오직 부르시는 이를 통하여 된다는 것을 과장하고 확대하여, 단지 하나님께서는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기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야곱은 구원하기로 예정하고, 에서는 유기하기로 예정했다고 말해버린 것이다. 그 근거로서 하나님께서 야곱은 사랑하셨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는 말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것은 만세전에 세우신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었다. 나중에 그렇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 부분에 대하여서는 다음 시간에 더 자세히 다룰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개인 구원 예정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말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로마서 9~11장에 나오는 민족 구원 예정의 말씀을 개인 구원 예정으로 풀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바르게 교정되어야 한다.
둘째로, 로마서 9~11장의 말씀은 민족적인 구원의 순서를 말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개인 구원의 예정에 관한 말씀으로 풀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로마서 9~11장의 말씀은 민족적인 구원의 순서를 말씀하고 있을 뿐이다. 먼저는 유대인(이스라엘)이요 그 다음은 헬라인(이방인)이며, 그 다음은 다시 유대인의 남은 자들인 것이다.
그리고 셋째로, 만약 하나님께서 예정을 말씀하셨다면 그것은 개인의 사역적인 예정만 말씀한 것 뿐이요, 더 나아가서는 민족적인 구원의 순서에 관한 예정만 말씀하신 것을 만세전 개인 구원 예정론자들은 이것을 무시하고 이 말씀을 개인 구원 예정에 관한 말씀으로 풀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하시기 전에 반드시 미리 계획하시고 일을 시행하신다. 그분은 전능자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미 아담이 타락할 것을 아셨다. 그래서 플랜B를 준비해 놓으셨다. 그것은 당신이 아들로 와서 인류의 죄를 구속하여 죄인들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푸시겠다는 계획이었다. 그 계획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오늘날까지 구원받을 자를 부르고 계신다. 그런데 순서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민족적인 순서로서, 언약의 자손들로서 아브라함의 후손이자 이스라엘이며 유대인들이 먼저 구원을 받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방인도 구원하시되 충만한 숫자가 채워질 때까지 구원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메시야를 낳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마지막 때가 되면 그중의 얼마의 남은 자를 구원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 당신의 택한 자를 보내시고 있다. 그 일을 하라고 사명을 주어 보낸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 가운데에는 할례자의 사도인 베드로처럼, 그리고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처럼 하나님께서 보낸 사역자가 있다. 구원을 위한 사역자가 있는 것이다. 고로 구원에 있어서는 개인 사역 예정이 있을 뿐, 꼭 그 사람을 반드시 구원하시겠다고 하는 예정은 없는 것이다. 누가 지금 하나님의 사역자로 쓰임받고 있다고 할지가도 얼마든지 타락하여 중도에 떨어져나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6. 나오며
바울은 자신의 동족인 이스라엘 민족에 관한 구원의 섭리를 깨달았을 때에 놀라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미 다 계획하시고 당신의 섭리 가운데서 성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감탄하면서 노래했다.
롬11:32~36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그렇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이러한 뜻과 섭리를 어떻게 인간이 다 깨달을 수 있겠는가! 그건 불가능하다. 실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에 대하여 다만 감사하고 경배드릴 뿐이다.
2025년 06월 10일(화)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