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강해(61) 죄는 함이 지었는데 왜 가나안이 저주를 받았나(창9:18~29)_2021-04-07(수)

by 갈렙 posted Apr 0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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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창세기강해(61) 죄는 함이 지었는데 왜 가나안이 저주를 받았나(창9:18~29)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FMZhInubCc

 

1. 홍수 후 노아가 무슨 실수를 했나요?

  홍수 후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어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자신의 장막 안에서 하체를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당시 새 인류의 조상이었고, 가문을 대표하는 위치에 있었으며,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하는 존재였는데, 그만 술에 취하여 절제력을 상실했고 경건성을 상실하여 자식들 앞에 추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모습을 둘째아들 함이 보았고 또 그것을 다른 형제들에게 누설하고 말았습니다. 

 

2. 술취함은 지도자들만 주의해야 할 일인가요?

  아닙니다. 술취함은 모든 사람에게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에 보면 잠언기자는 술취함으로 인하여 재앙과 근심과 분쟁과 상처가 나온다고 말하고 있으며, 그것을 보지도 말라고 권면하였습니다(잠23:29~31). 그리고 신약성경에서는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하게 하는 죄가 되기 때문에(고전6:9~10), 강력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을 받으라(엡5:18)"고 했습니다. 참고로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말은 결국에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불과 유황불 못에 던져진다는 말과 같다고 이해해야 합니다(고전6:9~10, 계21:8).

 

3. 함이 잘못한 것은 무엇인가요?

  함의 잘못은 결국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결과가 저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함과 그의 후손들은 결국 신앙의 상속자가 되지 못했으며, 다른 형제들의 종으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함은 대체 어떤 잘못을 저지른 것인가요? 함의 잘못을 보면 크게 4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그에게서 부모공경의 태도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십계명의 5번째 계명을 어겼습니다(출20:12, 엡6:1~2). 그는 부모의 부끄러움을 가리거나 숨겨주기보다는 드러애놓고 욕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둘째, 부모의 부끄러운 수치를 전파(설명, 누설)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주지 아니하고 악의적으로 그것을 다른 사름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떠벌려서 고발하고 누설한 것이죠. 그런데 잠17:9의 말씀을 보니, 허물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사람을 이간질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셋째, 아버지의 인격과 권위를 조롱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마음과 명예에 깊은 상처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노아는 가문의 대표자였고 하나님의 권위를 대신하는 자였는데, 부모의 수치를 드러냄으로 그 권위를 땅바닦에 내동댕이친 것입니다. 넷째, 함 자신은 이러한 행동을 안 한다는 식으로 자신의 교만함을 드러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는 아무런 허물이 없다면서 자신은 자랑하지만 아버지는 끌어내린 격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어찌하여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마7:1~3).

 

4. 죄는 함이 지었는데 왜 함의 아들인 가나안이 저주를 받게 되었을까요?

  얼핏 보기에 함이 죄를 짓고 가나안은 아무런 죄를 짓지 않았는데, 죄는 함이 짓고 저주는 그의 아들이 받은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원문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이 익히 들어왔던 것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있고, 히브리어성경원문대로 성경을 해석한 것을 들어보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겠습니다. 우선 함이 저주받지 않고 가나안이 저주받은 이유를 보겠습니다. 첫째, 그것을 함에게서 찾아본다면, 홍수 때까지 함은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였습니다. 또한 결혼했으나 아버지의 말에 순종을 했든지 아니면 자신이 부모를의 모습을 보고 결단했든지 그는 부모처럼 결혼후 동침하지 않았던 자입니다. 경건을 유지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도와 방주만드는 일에 수십년을 전심전력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조금 실수를 한 것을 두고 아버지는 차마 아들을 저주할 수는 없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둘째, 그 원인은 가나안에게서 찾아보는 것입니다. 사실은 이것이 더 큽니다. 우선 성경을 근거로 하여 가능성을 말해보겠습니다. 처음 이 사건을 소개하기 전부터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창9:18). 이는 노아의 술취함 사건 이전에 이미 함이 결혼하여 자식을 낳았으며, 그중에 가나안은 그의 막내아들이었으니(창10:6), 막내아들이 처음부터 이 사건에 연루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식에게 행한 일을 보고 가나안을 저주하게 되었다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작은 아들(벤)"이라는 용어는 히브리어보면 "어린 손자"라고도 얼마든지 번역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함은 적어도 100살 이상 먹은 상태였으니 어린 아들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고로 여기에 나오는 "어린 아들(벤)"은 함의 어린 막내아들인 가나안일 수 있습니다. 참고로, 히브리어서 "벤"이라는 단어는 아들, 손자, 후손(자손)이라고 얼마든지 번역될 수는 있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가나안이 받은 저주에도 가나안이 범죄에 가담했거나 먼저 할아버지를 수치를 보았을 가능성이 매우 있어 보이는 문구가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첫째, 그가 할아버지 노아로부터 받은 저주의 첫번째가 "가나안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그는 그의 형제들의 종들의 종이 될 것이다(창9:25)" 고 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종들의 종"이란 가장 천한 종이라는 히브리어법적인 표현으로서, 그가 자신의 형제들의 가장 천한 종이 된다고 했으니, 가나안은 자신의 형들 곧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에게 가장 천한 종으로 쓰임받는 것이 됩니다. 이는 가나안이 자신의 할아버지의 수치를 보고 자신의 형들에게 먼저 이야기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형들은 그것을 감추고 무마시키려 했지만 가나안은 그것을 자신의 아버지 함에게 고해바친 것 같아 보입니다. 아닌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날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노아는 가나안을 셈과 야벳의 종이 될 것이라고 저주했습니다(창9:26~27). 그러니 가나안은 자신의 형제들의 종이 되는 것과 아울러, 자신의 큰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의 종이 되는 저주까지 같이 받은 것이 됩니다. 고로 이 사건으로 인하여 함이 저주를 받지 아니하고 가나안이 받게 된 것은 이 사건의 첫 출발이 함이 아니라 가나안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그것을 나중에 노아 도 알게 되었기에(창9:24), 함이 아니라 가나안을 노아가 저주한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5. 가나안은 그 뒤에 어떻게 되었나요?

  하나님을 대신하는 위치에 있었던 노아에 의하여, 가나안은 결국 부모의 수치를 떠벌리고 누설한 죄요 더 크게는 부모를 공경하지 않은 죄에 인하여 저주를 받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1,000년이 지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십계명을 보면, 인간 계명의 첫번째의 계명이 바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는 계명이 되었다고 생각됩니다(출20:12). 어찌되었든 이 저주로 인하여 가나안은 나중에 가나안 일곱족속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자신의 형제들은 대제국을 건설하였지만 가나안은 그런 일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자신의 형제들인 구스(이디오피아, 미스라임(이집트), 붓(리디아)의 종이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은 셈의 후예였던 히브리인들에게 밀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내주어야 했으며, 야벳(유럽)의 후손들 밑에 들어가서 수천년동안 노예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부모를 공경하는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부모나 지도자의 허물이 보이더라도 그것을 덮어주고 누설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주를 일부러 불러오는 일을 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건투를 빕니다. 

 

2021년 04월 07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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