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단계 증인된 삶] 제3과 아버지의 마음(눅15:20~24)_전도자의 자기정체성

by 갈렙 posted Nov 1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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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계 증인된 삶

3과 아버지의 마음

[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 ] 15:20~24(신약 121)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DMS훈련 제 1단계 행복한 삶을 통해 사람의 행복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사람의 행복은 일종의 장갑과 비슷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사실 빈 장갑에 불과합니다. 장갑이 아무리 아름답고 또한 비싼 소재로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그 장갑을 끼는 사람이 없다면 그 장갑은 사실 존재할 이유가 없는 셈입니다. 그러므로 결국에 그 장갑은 불쏘시개로 쓰이거나 쓰레기로 처리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못생긴 장갑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애용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장갑은 사랑받는 장갑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천지를 아름답게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는 그 존재만으로도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그 존재 자체에 빈 공간이 하나 더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진정 아름다워지려면 그 빈 공간에 들어맞는 어떤 내용물이 채워져야 합니다. 성경은 그 빈 공간을 사람의 영혼(靈魂)’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그 안에 하나님으로 채워질 때만이 사람은 행복하며 만족할 수 있다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빈 장갑과 같은 우리 육체에 아무리 화려한 보석을 박아놓는다 하여도 그 장갑 안에 하나님을 모시지 않았다면 그 장갑은 항상 허무함과 쓸쓸함을 느끼게 되는 법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눅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15:11~32), 과연 인간의 행복이란 것이 무엇이며 불행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적나라하게 표현해 줍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명의 아들을 둔 어느 아버지를 만나게 됩니다. 그 아버지는 무엇이든지 아들들에게 주고 또 주고 싶어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들들 중에서 둘째가 그만 아버지의 품을 떠나 버립니다. 그때부터 둘째 아들은 온갖 고생을 다 하게 되는데, 그러다 결국에는 아버지 품으로 되돌아옵니다. 이 이야기는 참으로 어디로부터 인생의 비극이 시작되는 것이며, 인생의 행복은 참으로 어디에 있는지를 너무나 우리에게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 이제 이 이야기를 통해 아버지란 과연 어떤 존재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고, 아들을 두신 아버지의 마음은 또한 과연 어떤 것인지를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있었지만 아버지의 존재의 의미를 잘 몰라 아버지를 떠나는 것만이 행복의 출발일 줄 알았던 둘째아들의 뼈아픈 인생교훈을 다시 들어봅시다.

 

 

 

1.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를 떠난 인생이 어떤 것인지를 한 번 말해 보세요.

본문에 등장하는 아버지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두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두 아들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채워주시는 훌륭한 아버지였습니다.

그런데 두 아들이 어느 정도 자라게 되었을 때, 두 아들들의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 아버지 밑에 있으니까 너무 불편한 것 같아. 오직 아버지께 물어보아야 하고, 아버지의 말씀대로 순종해야 되잖아. 왜 나는 다른 친구들처럼 내 맘대로 행동할 수 없는거야? 이젠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살아보고 싶어. 그동안 아버지 밑에서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몰라. 아버지의 속박(束縛)에서 벗어나고 싶단 말이야.”

그들은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아버지가 베풀어주신 사랑과 보살핌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직 아버지의 말을 듣고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주신 동산 즉 아무 부족함이 없는 그 에덴동산에서 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한 가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지 못하도록 하신 하나님의 금지 명령에 불만을 품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영토록 그 나무의 실과를 따먹지 못하도록 작정하셨던 것이 아니라, 어떤 뜻과 목적이 있어서 잠시 그렇게 하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그 때 첫째 아들은 아버지를 떠나 자기 맘대로 살고픈 마음을 가지고는 있었어도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받을 장남인지라 차마 그 마음을 아버지에게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은 달랐습니다. 조금 있으면 곧 결혼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어차피 아버지 집을 떠나 살아야 하기 때문에 기왕 아버지의 곁을 떠날거면 지금 당장 떠나서 홀가분하게 살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곧장 아버지에게 말씀드립니다. 아버지여, 이제 저도 어느 정도 자라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아버지의 재산 중에서 내게 물려 주실 내 재산, 내 몫을 이제 나에게 주십시오.”

아버지는 그가 아직은 자기 재산을 관리할 만한 상태가 이르지 아니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자기 스스로가 자기를 관리해 보고 한 번 살아보겠다고 굳게 결심한 아들의 의사를 따라, 자신의 재산 중에서 둘째아들에게 돌아갈 몫을 챙겨서 주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에 있어서 아버지의 유업은 맏아들에는 두 몫이 주어지고, 둘째에게는 한 몫이 주어지는 것이 율법의 관례(21:17)였지만, 아직 아버지가 살아 있으므로 자신의 재산 중에서 일부를 둘째 아들에게 떼어 준 것입니다.

21:17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

 

그렇다면 둘째가 아버지의 곁을 떠난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실 둘째는 아직 자신의 재산을 관리할만한 성숙한 상태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은 둘째는 신속히 그 재산을 가지고 아버지의 곁을 떠나갑니다. 그래, 이제부터는 내 인생, 내가 계획하고 내가 관리하고 내가 멋지게 만들어 보겠어. 아버지, 두고 보세요. 저는 잘 할 수 있어요. 한 번 보세요. 저는 아버지보다 더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꼭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는 이제 아버지의 통치권이 전혀 미치지 않는 지역으로 떠나갑니다. 아버지의 곁을 떠난다 해도 아버지 집에서 가까이 있으면 아무래도 아버지의 통제를 받을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충분히 품꾼을 기용하여 둘째아들을 살펴보라고 지시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둘째는 아버지가 절대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나갑니다. 그래서 먼 나라고 간 것입니다.

아직 혼자 살기에는 부족했던 둘째는 자신은 성숙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기왕 혼자 나온 상태이기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른처럼 보이기 위해 애를 씁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가 애숭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는 그의 재산에 탐을 낸 다른 사람들의 표적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둘째는 그를 유혹하는 여자들의 꾐에 점점 빠져들게 됩니다. 그도 처음에는 여자들의 유혹을 거절했지만 그것도 한 두 번이라야지, 결국 둘째는 창녀들의 기만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둘째를 유혹했던 창녀들은 과연 무엇 때문에 온갖 아양을 다 떨었을까요? 둘째 아들의 미래를 좋게 만들어주기 위해서였을까요? 결코 아닙니다. 그들의 눈에는 오직 그의 재산만이 보였습니다. 그 창녀들은 둘째의 영혼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그 돈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의 품을 떠난 둘째에게 들이닥친 것은 돈 냄새 맡고 찾아온 하이에나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떤 분입니까? 오직 자식의 돈에만 관심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의 영혼이 잘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의 장래가 잘 되길 바랍니다. 그게 바로 아버지와 창녀의 차이인 것입니다.

하지만 둘째는 그들의 속내를 잘 몰랐습니다. 자기를 최고의 사람으로 대우해주는 그들이 진짜 자기를 위해주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자기를 위해 온갖 교태를 부리는 그들이 싫지만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쾌락은 순간이었습니다. 돈은 둘째의 수중에서 점점 빠져나가게 되었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자 둘째의 수중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거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오직 자기만을 사랑한다고 말하던 창녀들은 온데간데 없어져버렸고, 둘째만 혼자 남게 된 것입니다.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터라 둘째는 어디 가서 돈을 빌어다 쓸 데도 없었습니다. 그를 믿고 돈을 빌려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엎친데 덮친 격으로 둘째가 기거하던 그 나라에 큰 흉년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징계하기 위해서 거기에 기근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사람의 인심들은 날로 흉흉해져 갔습니다. 어디를 가도, 그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 선뜻 내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결국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둘째는 남의 집에 들어가 더부살이로 붙혀 살게 됩니다. 주인은 그냥 밥을 줄 수 없다고 그를 들로 보내 돼지를 치게 했습니다. 오늘날로 치자면 남들이 잘 하기 싫어하는 3D 업종에 그를 맡긴 것입니다. 배가 고픈 나머지 어느 날은 돼지들이나 먹는 쥐엄나무 열매를 배를 채우게 되었는데, 그 열매를 먹으면서 둘째는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아버지를 떠난 인생, 곧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곧 배고픔이요, 천대받음이요 고통입니다. 결국 우리는 여기서 행복이 어디에 있으며, 불행이 어디서 시작되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행복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나의 피난처이자 보호자이신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분의 날개아래 있는 것입니다. 그에게 진정 행복은 아버지와 함께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외국에 나가 모든 것을 잃은 다음에야 그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2. 둘째가 자신의 소유를 다 잃은 가운데 깨달은 것은 무엇이었습니까?(17)

 

첫째, 자기 아버지의 집이야말로 풍성함의 원천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그가 재산을 다 잃고 돼지치며 쥐엄열매를 먹기 전까지 그는 아버지의 집이 얼마나 풍성하고 안전한 장소였는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17).

15: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아버지께서는 옷이 떨어지면 새 옷을 입혀주셨고, 신발이 닳게 되면 새 신발을 사 다 신겨 주셨으며, 끼니가 되면 진수성찬으로 자기를 먹여주셨습니다. 그때만해도 둘째는 그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모든 것이 아버지께서 땀흘려 수고한 댓가였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때만 해도 둘째는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베풀어준 은혜와 사랑을 전혀 의식하지도 못한 채 살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으며 얼마나 고마운 것이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자기가 직접 일해서 얻으려고 해 보았지만 그것을 얻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도 그때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집에 있을 때에 아버지의 풍성을 누리고 산 것이 얼마나 큰 희생의 댓가를 치러서 자기에게 주어진 결과였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그것을 아무런 조건없이 자신에게 기쁨으로 주셨다는 사실도 비로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사실 아버지의 품을 떠나 가기만 하면 더 행복하고 더 풍성한 삶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그가 막상 경험한 세상은 그로 하여금 노동의 혹독한 댓가가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 주었고,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값없이 주시는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크고 귀중한 것이었던가를 새삼 깨달은 것입니다.

 

둘째, 자기가 아버지의 곁을 자기 맘대로 떠나온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18~19).

15:18-19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아버지를 지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여러분은 혹시 아버지가 둘째를 보낼 때, 어떤 마음으로 보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아버지의 말씀 중에 그때 어떤 심정으로 둘째를 떠나보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24).

15: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둘째를 떠나 보낼 때에 아버지는 이미 그 둘째를 잃어버린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래서 그 둘째를 다시 볼 수 없을 것으로 여기고 떠나보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살아 돌아오기는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고 떠나 보냈던 것입니다. 아들이 하도 원했기에 아들의 청을 들어주긴 하지만 아버지의 마음은 그때 사실 천갈래 만갈래 찢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그때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아들아, 네가 가려는 길이 어떤 길인지 너는 진정 알고 있느냐? 너는 지금 사망의 골짜기로 들어가는 것이란다. 너를 잡아먹기 위해 사자가 득실대며 기다리는 곳으로 네가 가려는 거야. 너는 거기서 결코 그들을 이길 수 없어. 내가 너를 잘 알지. 너는 분명 그것들에게 잡아먹히고 말거야. 아들아, 너는 살아 돌아 올 수 없는 길을 가려고 하고 있어. 내가 너에게 바라는 오직 유일한 것은 네가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오는 것 뿐이란다. 제발, 거기서 죽지 말고 살아만 돌아와 다오.”

그렇습니다. 아버지를 떠났을 때 둘째는 이미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크디큰 사랑을 베풀어주었건만 그것을 사랑으로 알지 못하고 오히려 아버지를 떠나는 것이 자신의 행복이라고 눌루날라 휘바람을 불며 떠나는 아들을 지켜보았던 아버지의 심정은 과연 어떠했을까요?

결국 자신이 가진 것을 다 잃어버린 채, 배가 고파 돼지나 먹어야 할 거친 음식을 먹어가면서 둘째가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은 자기가 아버지의 곁을 떠났던 것이 그가 아버지에게 저지른 가장 큰 불효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아버지의 재산을 달라는 것 자체가 불효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아직 성숙하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더 큰 불효는 아버지로부터 자신과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버리기 위해 아버지가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난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아버지께서 더 이상 자기에게 사랑을 베풀 수 없도록 자신을 아버지로부터 완전히 잘라내 버린 것이 불효였던 것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주고도 더 주고 싶은 것입니다. 하지만 둘째는 그러한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버지의 곁을 멀리멀리 떠나고 말았습니다. 결국에 그가 먼 나라에서 배를 움켜쥐며 희미한 의식 상태에서 깨달은 것은 자신이 아무리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싫어했다 하더라도, 아버지의 곁을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비록 아버지를 속여 용돈을 타다가 딴 데 쓴다 하여도 아버지의 곁을 떠나지 말았어야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결정이 얼마나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했는지 나중에야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를 향해 말합니다.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제가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수 있단 말입니까? 천부당 만부당 하신 말씀입니다. 다만 저를 품꾼으로 하나로 받아주십시오. 저는 죄인입니다.”

 

 

 

3. 비록 둘째가 아버지의 곁을 떠나 거지처럼 버려진 인생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떻게 하려고 결단합니까?(18~20a)

15:18-20a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를 지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a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둘째가 잘한 것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그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아버지께로 다시 돌아가려 했다는 것입니다. 비록 아버지께서 자신을 친 아들로 받아주지 않는다 해도,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가 행한 가장 큰 죄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아버지의 뜻과는 상관없이 자기 뜻대로 아버지의 곁을 떠나 자기 독단적으로 행동한 것입니다. 그는 그날 자기가 아버지를 떠날 때가 되었는지 여쭈어 보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혹시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있나를 물어보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뜻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의견만을 주장하여 그것을 관철시키고야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얻은 것은 아버지의 재산이었지만 그것은 오히려 아버지로부터 풍성을 단절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아버지의 보호를 끊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가 얻은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배고픔과 굶주림이요, 사람들로부터 냉대와 천시를 받은 것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와중에도 그가 결단한 아름다운 것은 거기에서 자신의 인생을 포기해버린 것이 아니라 다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려고 결단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가 다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려 할 때에 둘째는 이제 자신을 아들로서가 아니라 죄인으로 심정으로 돌아가는 것이요, 품꾼으로서만 써 주어도 고맙겠다는 심정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4. 다시 돌아온 둘째를 아버지는 어떻게 대해 주셨습니까?(20~24)

15:20-24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그런데 놀라지 마십시오. 그러한 아들을 맞이하는 아버지의 심정은 둘째와는 전혀 달랐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둘째를 결코 버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둘째가 살아 돌아오기만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리셨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돌아오기만 기다리신 것입니다.

그러자 다시 돌아온 아들에게 아버지는 과거의 죄를 묻지도 아니하십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만나면 용서를 구해야 하겠다고 준비해갔던 문구를 다 말하기도 전에 아버지는 그가 전에 갖고 있었던 모든 지위를 전부다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먼저는 제일 좋은 옷을 입혀주셨습니다. 이는 둘째가 이전에 지니고 있었던 아들로서의 권위와 지위를 다시 회복시켜 준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 손에 가락지를 끼워주셨습니다. 이는 둘째도 아버지의 정당한 상속자임을 만천하에 다시 드러내신 것입니다. 셋째, 발에 신발을 신겨주셨습니다. 이는 그를 종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주인의 위치로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살진 송아지를 잡아 먹여 주셨습니다. 이는 집에 온 가장 귀한 손님을 위해 잔치를 배설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받아들임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아버지의 완전한 용서요, 아들의 지위에 대한 완전한 회복인 것입니다.

 

 

 

5. 이 비유를 통해 깨닫게 되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한 것입니까?

우리는 이 비유를 통해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에는 언제가 아들 뿐입니다. 아들 때문에 행복하고 아들이 있어서 아버지는 기쁜 것입니다. 아버지는 일을 해서 힘드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줄 수 있는 아들이 없을 때 힘이 드는 것입니다. 아들이 없어진 아버지는 더 이상 아버지가 아닙니다. 아들이 없어졌는데 무슨 아버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아버지는 오직 집을 떠난 둘째만을 기다립니다. 아들이 있어야 아버지가 일하는 것도 의미가 있기 때문이요, 힘들어도 그 일이 힘이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있어야 먹이고 입혀주는 재미가 있고 아들이 있어야 아들을 위해 뭔가를 해주는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주고도 또 주어도 더 주고 싶어서 안달이 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자기에게 잘 해주는 아들이 있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아버지의 필요성을 알고 아버지의 존재를 귀히 여기는 아들이 있으면 그것으로 행복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그 아버지는 과연 누구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 아버지는 바로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오직 우리가 비록 부족하고 죄를 짓는다 하여도 아버지와 함께 사는 것이 가장 귀한 것임을 아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그분은 아버지를 버리고 떠난 둘째아들과 같은 우리 죄인들을 위해 당신의 가장 큰 보물인 당신의 외아들까지 기꺼이 죄의 대속물(代贖物)로 내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이제는 우리도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립시다. 그분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아들은 우리의 부모도 될 수 있고 자식과 형제와 이웃과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그들에게 이 아버지의 사랑을 전합시다.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는 아들이 있어서 밤잠을 주무시지 않고 기다리시는 아버지를 전합시다. 이것이 아버지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모든 것을 회복하고 자신의 잘못을 용서받은 우리가 해야 할 가장 막중한 사명입니다.

 

 

<한 주간 주님과 함께 보내기>

첫째, 성경을 읽으십시오. 100, 15, 10

둘째, 성경을 암송해 오십시오. 읽은 성경구절 중에서 한 구절 이상.

셋째, 이 훈련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매일 20분 이상씩.

넷째, 다음 과를 미리 읽어보시고 빈 칸에 답을 달아 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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