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성경적인 바른 구원론_제3과 회개란 무엇이며 왜 회개해야 하는가?
3. 회개란 무엇이며, 왜 회개해야 하는가?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회개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의 성패가 회개에 달려 있다고 성경이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 오던 자라도 회개생활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면 그는 지옥형벌을 면키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회개해야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이 믿어질 때 그때부터 회개하지 시작한다. 죄를 짓는 자는 다 마귀에게 속한 것이라고 성경이 증거하고 있지 아니한가?(요일3:8). 그러므로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아니하면 마귀가 들어가는 곳에 그도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절대적인 진리는 예수님을 믿는 자이건 믿지 않는 자이건 다 동일하게 적용된다.
한 번 생각해보라. 예수께서는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오셨는가? 그분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결코 아니다.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려고 오셨음을 분명하게 말씀하셨다(눅5:32). 그분은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기 위해서 온 것이며, 또한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메시야이신 자기를 믿는 자를 천국에 데려가시기 위해 오신 것이다. 그렇다. 그러므로 자신이 죄인인 것을 모르는 것이 제일 큰 일이다. 왜냐하면 그는 회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이 죄인인지 모르는 자는 예수님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범죄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어찌 예수님이 필요하겠는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전능자가 오셔서 피를 흘리셨어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무 쓸 데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을 마치는 그날까지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분 앞에 자신의 죄를 낱낱이 고백하는 회개를 해야 한다. 회개할 때에라야 자신의 죄가 정결함을 입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개할 때에라야 이 세상임금인 마귀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결국에 이 거대한 우주의 감옥에서 벗어나 천국으로 들어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자, 이제부터는 ‘회개’라는 것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며, 어떻게 회개하는 것이 바른 회개인지에 좀 더 살펴보도록 하자.
1)회개(悔改)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고 있는 회개란 무엇인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회개에 대한 일반적인 뜻부터 살펴보자. 회개(悔改)란 무엇인가? 회개에 대한 기본적이고 사전적인 뜻은 “잘못을 뉘우치고 바로잡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성경에 등장하고 있는 ‘회개’라는 단어의 의미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먼저, ‘회개’에 대한 히브리어 단어는 ‘슈브(shub)’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헬라어는 ‘메타노이아(metanoia)’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쓰였다. 그런데 이 두 단어는 의미상 대동소이(大同小異)한 뜻을 지녔다. 둘 다 ‘돌아감’ 혹은 ‘돌이킴’이라는 뜻을 중요개념으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먼저,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회개(‘슈브’)의 의미는 무엇인지 좀 더 살펴보자. 구약시대에는 회개란 대체로 죄를 지은 것을 깨닫고 애통해하되, 의지적으로 주님께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했다(슥1:3~4, 욜2:12~13, 사55:7, 삼삼7:3).
슥1:3-4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4 너희 조상들을 본받지 말라 옛적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외쳐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악한 길, 악한 행위를 떠나서 돌아오라 하셨다 하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내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욜2:12-13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사55: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삼상7:3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그렇다면, 신약성경에서 회개는 어떤 의미였을까? ‘회개’에 대한 헬라어 단어는 ‘메타노이아(metanoia)’라는 명사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딱 22번만 사용되었는데, 그 의미는 “마음의 변화” 즉 돌이킴 내지는 회심을 의미했다. 그렇다면 ‘메타노이아’라는 단어는 어떤 단어에서 온 것일까? 이 단어는 동사 ‘메타노에오(metanoeo)’에서 왔다. ‘메타노에오’라는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딱 32번 사용된 단어인데, 이 단어의 의미도 “마음을 바꾸다. 회개하다. 회심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회개란 ‘어디로부터 돌이켜서 새로운 인식을 갖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한편 ‘메타노에오’라는 단어를 분석해서 보면, 이 단어는 ‘메타(meta, 뒤에 혹은 후에)’라는 전치사에다가 ‘노에오(noeo)’라는 동사가 합쳐진 단어다. 이때 ‘노에오’라는 단어는 ‘노이에오(noieo)’라는 동사에서 나왔는데, ‘노이에오’는 ‘누스(noos)’ 즉 ‘이성, 마음, 이해력’라는 단어에서 나왔다. 고로 명사 ‘메타노이아(metanoia)’라는 단어는 “뒤에 먹은 마음, 나중에 알게 새로운 인식, 나중에 갖게 된 생각, 차후에 교정된 것”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별히 이 단어는 대부분 마음의 변화를 강조할 때 사용하는 단어다. 그래서 성경에서 회개하라는 말씀은 지적인 깨달음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감정과 의지와 생각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상의 단어적인 의미를 통해서 성경이 말하는 ‘회개(회심)’라는 단어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그것은 “이전에 잘못했던 행동을 깨닫고 마음을 확실히 바꾸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에는 의지적으로 주께로 돌이킴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주님께로 가서 용서를 받은 후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것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좀 더 세분해 보면 이렇다. 회개란 첫째, 자신의 잘못을 지적으로 깨달아 아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감정적으로 마음을 찢어가며 애통해 하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 의지적으로 주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넷째, 주님의 처우를 받아들이되 주님이 베푸시는 용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섯째, 그후로는 다시는 죄에게 자신을 주지 않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자신이 회개를 했다고 하더라도 주님의 처우 곧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는 회개한 것이 아니다. 결국 회개는 주님의 처우 곧 주님의 용서까지 받아들이는 것을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회개와 후회는 어떻게 다른가?
성경에 보면 ‘회개’라는 단어와 비슷한 또 하나의 단어가 있다. 그것은 ‘후회’라는 단어다. 그렇다면 회개와 후회(뉘우침)는 어떻게 다른가? 국어사전을 보면, ‘회개’란 ‘자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바로잡는 것’이라고 나와 있다. 하지만 ‘후회’라는 단어는 이것과는 달리 ‘이전을 잘못을 깨우치고 뉘우치는 것’이라고 나온다. 다시 말해, 두 단어는 약간의 의미상 차이가 있는 것이다. 사실 이 두 단어에 대한 헬라어 단어를 보더라도 약간 다르다. 헬라어로 ‘회개하다’라는 단어는 ‘메타노에오(metanoeo)’다. 반면, ‘후회하다’는 단어는 ‘메타멜로마이(metamelomai)’다. 그렇다. 이 두 단어는 잘못을 뉘우친다는 면에서는 동일한 뜻을 지니고 있지만, 그 다음의 행위가 각각 다르다. 우리는 여기서 성경에서 말하는 회개와 후회의 차이를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회개는 후회하는 것으로 끝마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주님의 용서를 받아들이고 의지적으로 죄를 끊는 것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뉘우칠 때 후회만 해서는 아니 된다. 회개까지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여기, 하나의 예를 보자. 어떤 사람이 회개한 자인지 아니면 후회로 끝나버린 자인지 구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것은 베드로의 회개와 가룟 유다의 후회다. 베드로는 회개한 자다. 하지만 가룟 유다는 후회로 끝나버렸다. 그래서 베드로는 다시 회복되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지만, 가룟 유다는 후회로 자신의 인생을 마침으로서 지옥형벌을 면치 못한 자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먼저 가룟 유다의 후회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마27:3-5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4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여기에 등장하는 ‘뉘우쳐’라는 단어가 무슨 단어인지 아는가? 이 단어가 바로 ‘메타멜로마이(metamelomai)’라는 동사다. 가룟 유다도 분명히 자기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알았고 또한 뉘우쳤다.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머리로서 분명히 알았다. 그리고 감정적으로 후회도 했다. 즉 그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고 마음 아파했다. 그런데 그는 그것으로 끝내버렸다. 후회에서 회개로 넘어가야 하는데, 후회에서 끝나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행위를 비관하다가 그만 자살로서 인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잘못을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비참한 최후로 자신의 인생을 마친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는 분명하게 뉘우치기는 했지만, 자신이 범한 죄에 대해 하나님께로 나아가 용서를 구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께로 돌아가 그분의 처우를 기다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냥 자신이 잘못했다고 자책하는 것으로만 끝내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그만 사탄의 속삭임에 속아서 자기의 목숨을 끊음으로 돌이킬 수 없는 죄를 범해버렸다. 사실 그가 지옥에 떨어지게 된 것은 그가 무죄했던 예수님을 판 죄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자신이 지은 죄를 가지고 하나님께로 나아가 용서를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개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서 그분의 처우를 의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후회나 반성은 하나님 앞에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 앞에서의 행위로 끝마치는 것을 가리킨다. 가룟 유다는 후회는 했지만 회개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살로 자신의 죗값을 치렀다.
한편, 자살이란 대체 어떤 죄인지에 대해 잠깐 살펴보자. 자살은 100% 지옥에 떨어지는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자살하면 자기가 자기를 살인한 것에 대해 회개할 기회를 다시 가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죽은 다음에 자기의 죄를 회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자살하면 자신의 영혼이 이미 육체를 빠져 나온 다음이므로, 자신의 영혼이 육체 안으로 다시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회개할 기회가 그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살하면 절대 안 된다. 그런 자는 100% 지옥에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자기를 살인한 죄를 용서받을 길이 없음을 알라. 그랬다. 가룟 유다는 자신이 잘못을 분명히 알았다. 그리고 뉘우쳤다. 후회까지 것이다. 하지만 의지적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회개하지 못한 것이다. 그에게 가장 큰 잘못은 자기 자신이 지은 죄를 가지고 하나님께로 가서 그분의 처우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어떠했던가? 예수께서 잡히기 전날 밤, 성만찬을 마치고 겟세마네동안으로 가실 때였다. 그날 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모두가 다 당신 자신을 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베드로는 “다른 사람은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주님을 버리지 않겠나이다(마26:33)”고 호언장담했다. 그때였다. 주님께서는 “오늘밤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마26:34)”고 알려주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또 말했다. “비록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마26:35)” 하지만 그날밤 베드로는 죽는 것이 두려워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말았다. 특히 두 번째에 가서는 맹세하고 모른다고 부인했으며, 세 번째에는 저주하고 맹세하면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었다(마26:69~74). 그는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거짓맹세까지 했다. 십계명 중에서 아홉 번째 계명을 어긴 것이다. 이러한 죄들은 사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불못 곧 지옥에 떨어지는 범죄해위다(계21:8).
그렇다면, 거짓말하고 거짓으로 맹세했던 베드로는 그 뒤 어떻게 했을까? 베드로는 첫째로, 자신이 지은 죄를 깨달았고, 가슴이 치며 통곡하며 애통해했다(마26:75). 그때 예수님의 예언처럼 그때 닭이 울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대로 그냥 끝내버렸을까? 아니다. 베드로는 그렇게 끝내지 않았다. 그는 둘째로,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예수님의 처우를 겸손히 기다렸다. 그렇다. 베드로도 분명 죄를 지었다. 계명을 어겼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지은 죄의 댓가를 가룟 유다처럼 자신이 처리하지 않았다. 그는 겸손히 주님의 처우를 기다렸다. 그러자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고, 갈릴리에서 그를 보자고 하셨다. 이것은 예수께서 처음으로 베드로를 만난 곳에서 다시 베드로와 함께 시작하실 것을 제안하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때 갈릴리에 있는 베드로를 찾아오셨다. 그리고 둘은 따로 둘만이 가지는 만남을 가졌다. 그때 주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직도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만일 나를 아직도 사랑한다면 내 어린 양을 먹이도록 해라”고 하셨다. 그때 주님은 베드로의 죄를 묻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십자가상에서 예수께서 다 담당해버리셨기 때문이다. 다만 주님께서는 자신의 죄를 용서받은 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말씀하셨다. 그러자 베드로는 주님의 처우에 순복하기로 했다. 그는 그렇게 하는 것이 주님께서 자신의 죄를 처리해주신 것에 삶인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그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했다. 주님께서 그에게 맡겨주신 양떼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기꺼이 내놓았던 것이다.
그렇다. 회개는 후회하고는 다르다. 회개란 돌이킨 후에 의지적으로 주님께로 가서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주님께 용서를 구하고 주님의 처우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은 주님께서 대신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사명을 끝까지 준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후회만 했다. 하지만 베드로는 후회를 지나서 회개까지 했다. 그래서 새 사람이 되어 주님을 위해 살다가 주님나라고 갔다. 하지만 가룟 유다는 자신의 죗값을 자신이 처리해버렸다. 만약 그것이 어떤 형벌이었다면 좋았을 것을 그는 그 죗값을 자살로 처리해버렸다. 그러니 자살죄를 용서받을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의 용서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용서받은 자로서 일평생을 주님 위해 살다가 주님 나라에 들어갔다.
이제 후회와 회개에 대해 정리해 보자. ‘후회’라는 것은 자신의 양심에 따라 자신이 지은 죄를 깨닫고 뉘우치는 것을 가리킨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러나 ‘회개’란 자신의 죄를 깨닫고 뉘우친 후에 의지적으로 하나님께로 나아가 그분의 처우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주님의 용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후부터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순종하는 것이다(고후7:10). 그리고 그것의 결국은 곧 구원이다.
고후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사실 예수님을 팔았던 가룟 유다도 회개의 한 귀퉁이까지는 도달하였다. 돈이 눈이 어두워 죄없는 자신의 스승을 은30냥에 팔았던 것을 후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룟 유다는 하나님의 처우를 바라지 않았다. 그리고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하고 사탄의 꾐에 따라 극단적인 선택을 함으로서 지옥에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베드로는 자신의 잘못을 철저히 뉘우쳤고 마음 아파했다. 그가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직후 새벽닭이 울자 그는 후회했다.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드로는 그 뒤 하나님의 처우를 기다렸다. 그리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주님의 용서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분이 바라는 것을 시행함으로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았다. 그렇게 그는 회개를 이루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자신의 일생을 새롭게 써나갈 수가 있었다. 그래서 위대한 사도로 쓰임 받다가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다.
3)사람들은 왜 회개하는가?
사람들은 왜 회개해야 하는 것일까? 성경에 보면, 사람들이 왜 회개를 해야 하는지에 그 이유들이 나온다. 특히 신약성경에서는 왜 회개해야 하는지에 대해 분명하게 나온다. 그것은 3가지다. 그래야 3가지를 얻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왜 회개하는지를 깨닫고 회개 후에 주님이 주시는 3가지 은혜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사람이 회개하는 이유에 대해 어떤 수식어가 붙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회개라는 단어에 붙어있는 수식어를 통해 왜 사람들이 회개하는지를 살펴보고, 그 혜택이 무엇인지도 함께 살펴보자. 우선, 왜 회개해야 하는지에 대한 3가지의 수식어를 살펴보자. 그것은 첫째, “죄 사함을 받게 하는”이며, 둘째는 “생명 얻는”이며, 마지막 셋째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이다. 결국 회개를 할 때 우리가 죄 사함을 받게 되며, 생명을 얻게 되며, 구원에 이르게 된다.
막1:4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행11:1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고후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그렇다. 막1:4과 행11:18과 고후7:10에 의하면, 사람들이 회개하는 3가지 이유가 나온다. 이 말씀들은 사람들이 회개하는 3가지 이유임과 동시에, 회개에 대한 혜택이요 그 결과이기도 하다. 자, 그렇다면 사람이 회개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째, 사람들이 회개하는 첫 번째 이유는 죄 사함을 얻기 위해서다(막1:4). 사람들이 회개하는 첫 번째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그렇게 함으로 죄 사함을 받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또 질문할 수 있다. 왜 죄 사함을 꼭 받아야 하는지 말이다. 성경은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자는 결국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언급한다(마4:17). 그렇다면 죄의 삯은 무엇인가? 그것은 죽음이다. 그런데 사람이 살아있을 때에 이 죄를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있을까? 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셨다. 그것은 자신이 지었던 회개하는 것이다. 그러면 2천 년 전에 예수께서 치르신 대속제사로 인해 자신이 죗값을 받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영생을 얻어 천국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렇다. 사람이 죄를 지어놓고도 죄 사함을 받지 못하면 죽음에 이르게 됨을 알아야 한다. 그것도 육체적인 죽음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혼이 지옥에 떨어지는 죽음까지도 맛보아야만 한다. 그렇다. 사람이 죽으면 1차적인 죽음 곧 육체적인 죽음만 겪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죄를 용서받지 못하고 죽으면 2차적인 죽음 곧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는 둘째사망가지 받고 불못에 떨어지게 되고 만다. 그러므로 사람이라면 반드시 회개를 통해 예수님의 피로 자신의 죄를 사함받아야 한다. 그렇다. 사람이 회개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죄 사함을 얻기 위해서다.
둘째, 사람들이 회개하는 두 번째 이유는 회개를 통해 생명을 얻기 위해서다(행11:18). 사람이 회개해야 이유는 죄 사함 때문만은 아니다. 죄 사함을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얻는 데에도 회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회개는 사람의 마음 안에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는 조건을 만들 준다. 그때 하나님의 영(靈)이신 보혜사(保惠師) 성령(聖靈)께서 그 사람의 마음 가운데로 들어오신다. 그때 성령께서 하나님의 생명 곧 영생을 가지고 들어오는 것이다(롬8:1~2). 그러므로 사람이 회개해야 할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생명을 얻기 위함이다. 그렇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죄 사함을 받은 자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다(요10;10).
요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5: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7:37-38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20:21-22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롬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렇다. 회개하지 못해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자는 결국 하나님의 성령이 그 사람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러면 그에게 하나님의 생명이 주어질 수도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영생을 얻으려면 회개해야 한다. 회개를 해서 죄 사함을 받고 그리고 성령을 통해서 생명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처음 자신의 죄를 회개해서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자는 일평생 또 다시 죄를 짓지 아니할까? 아니다. 사람은 또 다시 죄를 짓게 된다. 왜냐하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죄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 밖에서는 죄를 짓도록 유혹하는 귀신들이 우글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예수님을 믿었다고 하더라도 또 죄를 짓는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죄를 지은 즉시 회개해야 한다. 한 번 두 번 회개하지 않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면 회개하지 못한 채 죽을 수가 있다. 그러면 그 회개하지 못한 죄 때문에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자신이 지은 죄가 생각나거든 즉시 회개하라. 이때 성령께서 도와주실 것이다.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도와주실 것이다. 이러한 사역을 위해 부활하신 예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라. 그러므로 회개는 생명을 얻게 하는 도구임과 동시에 생명을 보존케 하는 능력인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창조된 인간에게 당신의 생명을 주시기를 기뻐하셨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생명을 취하기 쉽도록 과일의 형태로 제공하셨다. 그것은 에덴동산에 안에 생명을 얻게 하는 나무의 열매였다. 하지만 인간은 생명을 얻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기 전에 지식의 나무 곧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먼저 먹고 말았다. 물론 이때 인간 스스로가 단독적으로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다. 옛 뱀 곧 사탄이 꾀였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하여 죄가 이 세상 안으로 들어왔다. 죄가 들어옴에 따라 사망도 따라서 들어왔다(롬5:12). 인간은 육체를 지녔기에 육체의 사망이 먼저 왔고 이어서 영혼의 사망이 뒤따라 들어왔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죄를 가진 채 인간에게 영생을 주실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추방하셨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하셨다. 그리고 약속에 따라 인류의 속죄를 위해 그의 아들을 보내주셨다(나중에 그의 아들이 하나님 자신인 것을 계시하셨다). 그리하여 그의 피로 인류의 죗값을 치르게 하셨다. 그리고 이 사실을 믿고 받아들이며,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는 자에게 죄 사함을 허락하셨다. 그리고 당신의 생명을 얻게 하셨다. 그러므로 사람이 영생을 얻으려면 회개해야 한다.
셋째, 사람들이 회개하는 세 번째 이유는 구원을 얻기 위해서다(고후7:10). 사람이 회개해야만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죽어서 자신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함이다. 이것은 죄 사함과 영생을 얻은 자에게 주어지는 은혜에 속한다. 그렇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하면 누구나 자신의 지은 죄에 대해 근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가 없다. 그것 때문에 사람은 회개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렇다. 회개는 결국 자기 자신의 영혼을 구원에 이르도록 도와준다(고후7:10). 그러므로 믿음만 있으면 구원 얻는다고 생각하지 말라. 구원을 받고 천국에 들어가려면,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죄 사함을 얻어야 하고 영생을 얻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죄 사함과 영생의 은혜는 이 세상에서부터 받을 수 있는 것이지만, 천국에 들어가는 것만큼은 저 세상에서 받는 것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꼭 회개하여 꼭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