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편 천국에 들어가려면 율법을 꼭 지켜야 하는가?

by 갈렙 posted Aug 1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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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복음 제4]

천국에 들어가려면 율법을 꼭 지켜야 하는가

율법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일까?”

예수께서는 율법을 폐지하러 오셨는가?”

사람은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는가 아니면 은혜로 구원을 얻는가?”

구원받은 사람은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가?”

구원을 무효화시키는 죄들은 무엇일까?”

 

 

 

목 차

1. 율법이란 무엇인가?

2. 하나님이 주신 율법에서 빗나가고 있던 유대교

3. 예수님은 율법을 폐지하러 오셨는가?

4.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가?

5.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6. 그리스도인들이여, 구원을 무효화키지 말라!

 

 

 

 

445-160 화성시 동탄반석로 120, 제일프라자 807(031)613-2001

(남광장 마인츠돔, 우리은행동탄중앙지점 8)

1. 율법이란 무엇인가?

 

1)율법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율법(히브리어, 토라 Torah)이란 무엇인가? 율법이란 여호와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출하신 다음,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명령들이다. 다시 말해, 율법이란 자기들을 구원해내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어떻게 경배를 받으시기 원하시며, 자신의 백성들이 이웃과 더불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명령하신 말씀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을 통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그분을 어떻게 섬기며, 이웃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신약성경을 읽어보면, 율법의 의미는 때로는 넓게 해석되기도 하고 좁게 해석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어떤 경우에 율법은 구약성경 전체를 의미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구약성경 가운데 모세오경이라 일컫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말씀만을 의미할 때도 있다. 보다 정확히는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들려준 말씀만을 율법이라고 불러야 한다. 하지만 이 율법말씀은 십계명 안에 다 포함시킬 수 있기 때문에, 좁게는 십계명만을 율법이라고 부를 때가 있다. 여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를 통해 들려주신 모든 계명들을 율법이라고 정의하기로 한다.

그렇다. 율법이란 애굽에서 광야로 1차적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거룩하게 사는 것인지를 가르쳐주는 귀한 말씀들이다(19:5~6). 그러므로 이 법은 머리로 알고만 있으면 안 된다. 그것을 지켜 순종하여야 한다(19:7~8). 그래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누리라는 것이다(28:1~14).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 이방신들을 섬기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들의 자손 3~4대까지 그 죄값을 물으실 것이라고 하셨다(20:5). 그러므로 율법이란 자신을 구원해 내신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잘못된 옛날의 방식으로 되돌아가지 않도록 가르쳐주신 명령들이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통해서 이 율법말씀을 받기 전까지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우상을 숭배하지 아니하고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시고 복을 주신 그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고 사는지 전혀 몰랐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탈출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우상숭배하던 옛날의 상태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오직 그들을 시내산까지 인도해내신 하나님만을 섬기며,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마고 약속하신 땅,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대로 살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들을 그 땅에서 오래 살게 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가나안땅에 들어가서도 주의해야 할 일을 말씀해주셨다. 그것은 그 땅의 백성들에게 자신의 자녀들을 시집 보내지도 말고, 며느리로 데려오지도 말라고 했다. 만약 그렇게 되면 틀림없이 가나안 이방 족속들이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참 신이신 하나님을 버리게 하고 그들의 이방신들을 섬기게 할 것이라고 했다(7:1~5).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종살이에서 빠져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방신들을 섬기지 말고 하나님만을 섬김으로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고 살라고 율법말씀을 주신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율법말씀대로 살았을까? 아니다. 광야에 나왔던 출애굽 1세대들을 보라. 그들은 자기들이 빠져 나왔던 애굽을 잊어버렸는가? 아니다. 그들은 조금만 힘들어도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그것은 다시 옛날로 돌아가 종노릇하려는 길이요, 우상숭배하는 길이요, 저주의 길이건만 그들은 송아지와 같은 신들을 잊어버리지 않고 있다고 마침내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 말았다. 사실 애굽백성이나 가나안땅에 사는 이방인 백성들이 숭배하는 모든 신들은 하나님을 흉내내는 가짜 신으로서 귀신들을 가리키며, 그들이 섬기기 위해 직접 손으로 만든 가공품이건만 그들은 그것들을 신으로 숭배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율법말씀을 들려주신 직후 곧바로 성막법을 가르쳐 주셨다(25~40).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말씀들을 그대로 다 준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율법말씀을 어긴 이스라엘 백성들을 곧바로 처벌할 수는 없지 않은가? 타락한 천사들은 한 번 죄를 범함으로 영원한 멸망으로 들어가도록 되어 있지만, 사람에게는 회개하여 용서받을 기회를 주고 싶으셨다. 그래서 준 법이 바로 성막법인 것이다.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지키지 못해서 받게 될 온갖 저주와 재앙에서 죄사함 받으라고 성막법을 주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세워진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었을 때 제사를 드리는 구별된 장소로 쓰여졌다. 하지만 이러한 성막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보여준 대로 지었으니, 하늘에 있는 성막의 모양을 따라 그대로 시내산 아래에 성막을 지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율법이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명령들과 더불어 성막법까지 포함하는 하나님의 명령들이라고 정리하면 좋을 것이다.

 

2) 율법은 어떻게 나눌 수 있는가?

율법말씀은 사실은 출애굽기 20장부터 신명기까지의 말씀을 가리킨다. 하지만 우리는 창세기까지 포함하여 율법말씀으로 본다.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 기록된 율법말씀은 사실 그 내용이 방대하다 아니 말할 수 없다. 율법말씀은 그것을 분류하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누겠지만 크게 보면 2가지요, 작게 보면 6가지. 크게 보면, 도덕법성막법이라 할 수 있고, 작게 되면 도덕법’, ‘의식법’, ‘절기법’, ‘재판법’, ‘음식법’, ‘정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6가지로 분류해 보기로 한다.

첫째로 율법에는 도덕법이 있다. 도덕법은 모든 율법의 가장 근간이 되며 제일 처음으로 주어진 명령들이다. 하지만 십계명 가운데는 절기법도 한 가지 들어있다. 그것은 4째 계명인 안식일 계명다. 4번째 계명만을 제외한 나머지 9가지 명령들이 곧 도덕법인 것이다(20:1~7,12~17). 왜냐하면 이 9가지 조항들이 곧 하나님에 대한 윤리와 인간에 관한 대표적인 윤리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안식일법도 하나님께 대한 윤리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보겠지만 절기법에 해당하는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에 예수님이 완성하시므로 필요가 없게 된다(4:9~11, 2:16~17, 11:28~30, 10:9). 그러므로 안식일법은 도덕법으로 보기보다는 절기법의 범주 안에서 보아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의식법이 있다. 의식법이란 주로 레위기에 기록되어 있는 제사와 관련된 법으로서, 성막의 제도에 관한 성막법(25~27, 30) 그리고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로 구분되어있는 제사법 제사에 사용되는 제물과 제단에 관한 법(1~7, 20:22~26)과 제사를 드리는 봉사자 즉 제사장 및 대제사장에 관한 법(8, 28~29)을 가리킨다.

이어 세 번째로 절기법이라는 것이 있다. 절기법이란 십계명 중에서 4계명에 해당하는 안식일법(20:8~11, 31:12~17)월삭(10:10) 그리고 여러 절기들 즉 유월절과 무교절, 초실절, 칠칠절(오순절), 나팔절, 속죄일, 장막절(수장절, 초막절)(23, 16)과 아울러 안식년(23:10~13, 25:1~7)희년(25:8~17)에 관한 법 등을 가리킨다.

그리고 넷째로 재판법이 있다. 이 법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21:24)”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인간사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배상할 것인가를 정의하고 있는 법들로서 종에 관한 법(21:1~11), 폭행 및 배상에 관한 법(21:12~22:15), 재판에 관한 법(23:1~9)을 가리킨다.

이어 음식에 관한 법과 정결에 관한 법이 있다. 다섯째로 음식법이란 레위기 11장에 나오는 음식규례에 관한 말씀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먹어서는 아니 될 음식에 관해 하나님께서 정해준 법을 가리킨다. 마지막으로 정결법이란 시체를 만졌거나 피를 흘려서 부정하게 된 사람의 몸을 정결케하는 법으로서, 시체를 만진 자와 설정한 자의 정결례(6:6~11, 9:6~10, 19:11~18, 21:10~12, 22:1~9), 아이를 낳은 여인의 정결례(12), 나병환자의 정결례(13~14), 유출병에 관한 정결례(15)을 가리킨다.

 

오늘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말씀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기도 한다. 그들은 율법을 하라는 수행조항과 하지 말라는 금지조항으로 나누었는데, 세어보니 수행조항이 248가지, 금지조항이 365가지라고 말한다. 놀랍게도 248가지는 인체의 뼈의 개수와 일치하고, 365가지는 일년의 날짜와 일치한다. 다시 말해, 유대인들은 613가지의 조항을 율법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말하는 율법은 613가지 조항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것을 모법(母法)으로 하여 자법(子法)을 만들었으니, 구체적인 시행령이 바로 자법인 것이다. 특히 그들은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모법에다가 구체적인 시행명령을 만들어 나갔는데, 그것이 무려 39가지나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613가지의 율법말씀은 너무나 방대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수많은 시행령까지 공부하여 판별해주는 직책까지 탄생하게 되었으니 그러한 일들을 하는 사람이 바로 율법사 즉 서기관들이었던 것이다.

 

 

2. 하나님이 주신 율법에서 빗나가고 있던 유대교

율법은 어떠한가? 율법은 본래 선하고 의롭고 거룩한 것이다(7:12). 이것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율법은 예수님이 오실 때쯤에는 원래의 취지에서 한참이나 벗어나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이 주어진지 1,500년이 지나고 있었다. 그때에 그들에게 율법을 주셨던 바로 그 여호와 하나님께서 율법을 성취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다. 그분이 누구인가?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9:6, 1:14, 5:39). 그래서 예수님은 유대인으로서 지금으로부터 약 2천년 전에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유대인으로서 지켜야 할 모든 율법조항들을 하나씩 하나씩 지키면서 사셨다. 만약 예수께서 그 율법조항들을 하나라도 지키지 못했다고 한다면 그분은 모든 인류를 위한 흠없는 대속제물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예수, 그분은 태어날 때부터 율법을 지키셨으니, 난 지 8일만에 할례를 받으셨으며, 그후 40일이 지나자 해산 후 여인의 정결법에 따라 어머니에 의해 초대생에 관한 정결의식을 받으셨다(2:22~22). 즉 초태생으로 태어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여 예수님도 은5세겔로 대속받았으며(18:15~16, 13:2,10, 12:8), 워낙 집이 가난했기에 정결예식에 사용된 제물로는 산비둘기 두 마리가 드려졌다. 또한 해마다 유월절과 같은 이스라엘의 절기가 찾아오면, 예수님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절기를 지키시기도 하셨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유대인으로서 유다지파의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으며, 지구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구별된 백성에게 주신 율법 아래에 태어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유대인으로 지켜야할 모든 율법을 다 지키셨던 것이다.

하지만 아론의 후손들이 제사장으로 쓰임받을 나이였던 30세에 이르자, 이제 예수님은 그분의 사적인 생애를 끝내시고, 그분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요단강으로 가셨다. 그리고 세례요한으로부터 죄사함을 얻게 하는 물세례를 받으셨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공식적으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셨고 속죄양으로의 사역을 시작하신 것이다.

그때 예수님은 당시 유대종교지도자들이 유대교라는 종교를 통해 당신의 백성들을 압제하고 있음을 보셨다. 당시 유대인들은 애시당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율법과는 거리가 먼 종교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모세의 율법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장로들의 유전에 따라 살고 있었던 것이다(15:1~3). 또한 예수께서는 유대교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얼마나 빗나가 있는지를 보셨다. 그래서 더럽혀진 성전부터 정화하시기 시작하셨다. 거룩해야 할 하나님 성전이자 만인의 기도의 장소인 예루살렘 성전이 타락한 대제사장들에 의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것을 아셨다.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가 이제는 강도의 굴혈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성전 안에 있는 환전상과 매매하는 자들과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자들을 모두 내어 쫓아버리셨다. 그리하여 성전을 청결케 하신 것이다.

그리고는 유대교로 더럽혀진 예루살렘을 떠나 갈릴리의 촌동네에 가셔서 사셨는데, 그때부터 당신이 해야 할 사역들을 감당하기 시작하셨다. 더불어 장차 당신의 사역을 이어받아 수행할 제자들도 하나둘씩 세우셨다. 그리고 안식일이 되면 가버나움 회당에 들어가셔서 율법말씀을 가르치셨으며, 가는 곳마다 어둠에 속한 사람들 즉 질병과 귀신들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을 치료해주셨다. 그러니 모든 사람들은 병이 고치기 위해서라도, 귀신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기 위해서라도 예수님께 모여들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에게서 육신의 문제를 해결해 줌과 동시에 당신이 이 세상에 왜 보냄을 받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도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그것은 곧 천국의 도래에 관한 말씀이었다. 회개하고 천국에 함께 들어가자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여 그들을 천국으로 데려가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고 증언하신 것이다.

이때 예수께서 당시 유대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배웠던 가르침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 있는지를 말씀하실수록 율법을 연구하고 직업으로 삼고 있는 바리새인과 율법사인 서기관들에게는 큰 도전이 되기에 충분했다. 백성들이 재판을 받으려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가지 아니하고 도리어 예수님께 찾아갔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율법말씀에 대한 해석은 명쾌하고 단순했다. 그리고 그 말씀들을 주신 근본 목적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원래 여호와이셨던 예수께서 율법말씀을 제정하셨으니 예수님보다 더 그 말씀을 잘 이해하고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또 어디에 있을까? 육신을 입고 아들이라는 신분으로 오신 여호와께서는 당시에 당신 앞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이 얼마나 잘못되게 가르쳐지고 있는지를 정확히 말해주었다. 또한 그러한 가르침을 따라가서는 그들이 전부 지옥형벌을 면치 못할 것임도 가르쳐 주셨다.

당시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은 율법을 주신 근본 목적으로서 율법을 통해서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달았어야 했다(3:20). 그래서 죄용서받기 위해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율법의 잣대를 가지고 남을 정죄하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더욱이 자신은 하나도 범죄하지 않은 것처럼 행세하고 있었다. 율법은 일종의 진단서이기에, 자신이 얼마나 중한 병에 걸려 있는지를 확인해보라고 주신 것이었지만, 그들은 율법을 가지고 남을 정죄하는 데에만 바빴으니 그들은 어느새 율법을 가지고 사람들을 휘어잡는 재판자가 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보자. 당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도덕법 중에서 5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20:12, 5:16)”,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21:17, 20:9)”는 율법말씀을 대놓고 어기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자신이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이것을 고르반이라고 부른다) 하여 그들의 전통으로 율법말씀을 드러내놓고 어기고 있었기 때문이다(15:4~6). 그들은 한 마디로 외식하는 자들이었다. 율법말씀을 아전인수격으로, 그들이 편리한 대로 해석하고 적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지켜 본 예수님께서는 이사야의 예언처럼,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한다 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떠나 있도다. 그래서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29:13)” 하시며 안타까워 하셨다.

더욱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가장 심각하게 빗나간 것은 십계명의 4계명에 해당하는 안식일 계명이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B.C. 1,500년경 이스라엘 백성에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날은 아무 일도 하지 말라(20:8~10)”고 율법을 주셨다. 하지만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이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안식일을 제정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키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잘못 해석하고 잘못 적용하고 있었다. 안식일이라 할지라도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다가 물을 먹이고, 또한 양 한 마리라 할지라도 구덩이에 빠졌으면 안식일이라도 끌어내면서도, 정작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든 자를 고쳐주는 것을 보고는 그가 안식일을 하지 못할 일을 행한다면서 안식일을 어기는 죄인이라고 몰아 붙였던 것이다(13:15~16, 12:11~12). 당시 율법사들의 눈에는 사람의 목숨보다는 자신이 기르던 짐승의 목숨이 더 귀했던 것이다. 또한 그들도 안식일에는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일을 한다 해도 안식을 범하는 죄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는데(12:5), 하물며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셔서 제사장처럼 인간의 죄를 사해주고 병을 고쳐주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서 안식일을 어기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었으니 어찌 가당치 않은 판단이란 말인가!

또한 십계명 중에서 인간계명들을 살펴보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6계명인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20:13, 5:17)”는 계명을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살인이라는 것을 오직 사람의 목숨을 죽이는 것에만 적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율법을 잘 지키고 있노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형제에 대해 화내는 것만으로도 심판을 받게 될 것이며, 형제에 대하여 라가머리가 텅 빈 놈이라 말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될 것이며, ‘미련한 놈이라고 말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될 것이리라고 하셨다(5:22). 비록 육신의 목숨을 빼앗지는 아니했어도 사람의 희망을 꺾어버리는 언어까지도 다 살인의 범주에 속한다고 가르치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왜 여호와 하나님께서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는지에 근본 의도였던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7계명으로써 간음하지 말라(20:14, 5:18)”라는 명령에 대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오직 육체적으로 간음한 것만을 간음이라고 판단하고 있었으니, 자신은 남들보다 거룩한 사람이라고 자처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비록 사람이 남의 여인의 육체를 범하지 아니했어도 그 마음이 이미 음욕의 마음을 품고 여인을 보았다면 그의 마음이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해석하셨다. 그러니 아담의 타락 이후 어느 누구도 간음죄에서 피해갈 사람이 있을 것인가?

율법이란 무엇인가? 율법이란 그것을 통해서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고, 그리스도에게 나와서 용서받으라고 주신 법이다(3:19~20, 3:24). 하지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자신이 속으로는 죄인인 것을 숨긴 채 겉으로 깨끗한 사람처럼 꾸미고 있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화 있으라.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너희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차 있구나(23:27)”하시며 탄식하셨다. 그들이 겉으로는 사람들에게는 옳게 보이고 있지만, 사실 속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사제도의 타락은 더 심각했다. 자기들이 죄를 지었고 죄인인 것을 알게 되었으면 자신의 죄를 통회자복하고 속죄제나 속건제를 드려 죄사함 받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드러나지 않은 죄는 감추고 있었고, 더욱이 죄를 지었어도 다윗처럼 통회자복하는 마음은 없이 오로지 형식적으로 제물만을 가져다가 바치고 있었기 때문이다(23:23~28). 심지어 제사장들 중에도 하나님께 드릴 예물을 가져오되 훔친 것과 눈 먼 것 그리고 저는 것과 병든 것까지 가져다가 바치는 일도 서슴치 않고 있었다(1:6~8, 12~13).

그리고 그러한 가르침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날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정죄 때문에 도무지 숨 쉴 틈이 보이지 않았다. 율법에 더해진 장로들의 유전의 힘든 멍에 때문에 날마다 괴로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에게 안식을 줄 메시야를 너무나도 기다리고 있었다.

 

 

3. 예수님은 율법을 폐지하러 오셨는가?

예수님은 율법을 폐지하러 오셨을까? 그 말은 어떤 측면에서는 맞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전적으로는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율법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려고 오셨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5;17). 그렇다면 예수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러 오셨다는 말씀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그 말씀의 의미는 이렇다. 첫째로 예수께서는 율법의 본 뜻에서 와전된 것들을 바로잡으시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율법말씀에 담겨있는 숨은 뜻과 의도를 밝히 드러내시겠다는 뜻이며, 셋째는 율법말씀을 한층 더 강화시켜 자신이 더욱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하시겠다는 뜻이고, 넷째는 율법 가운데 어떤 것들은 그대로 살아내시어 완성하시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율법을 통해 죄를 발견한 자들에게는 그리스도를 믿고 죄사함받게 하시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는 말은 한 쪽에서 보면, 율법에 기록된 메시야에 관한 예언을 완성하여 율법을 끝내시겠다는 뜻이요, 또 다른 쪽에서 보면, 율법을 한층 더 강화시켜 죄인으로 하여금 더 죄인되게 하여 그들을 메시야에게 인계하여 구원받게 하시겠다는 뜻이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지하신 부분도 있고 완성하는 부분도 있으며, 보충하는 부분도 있고 수정하는 부분도 있으며, 한층 더 강화시킨 부분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서 율법은 폐지되었다고 말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굳이 말하여야 한다면, 예수께서는 율법을 완전케 하러 오셨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율법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안식일과 월삭과 여러 절기들과 안식년과 희년과 같은 절기법은 예수께서 메시야로서 오셔 그대로 살아내셨기에 완성되었으며(, 절기법 중에서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 등은 아직 성취되지 않았다), 아울러 둘째로, 제사법인 의식법과 할례를 포함하는 정결법또한 예수께서 대제사장이 되시어 골고다 언덕에서 피흘려 속죄제물로 죽으셨으니, 이것도 이미 완성된 것이다. 그리고 셋째, “이는 이는 눈은 눈으로 갚으라라는 배상에 관한 재판법의 경우는 한층 더 강화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동해보복법 대신에 오히려 자리비와 원수사랑의 법을 주셨기 때문이다. 즉 누가 나의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편 뺨도 돌려대며,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면 십리를 동행하며, 속옷을 달라하면 겉옷까지 벗어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5:38~42). 뿐만 아니라 원수라도 그를 미워하지 말고 그를 더 사랑하고 자신을 핍박하는 자를 위해 선대하여 기도해 주라고 말씀하셨기에(5:43~48), 예수께서는 재판법을 한층 더 강화시킨 것으로 이해함이 좋을 것이다. 또한 마지막으로 재판법의 경우처럼 도덕법도 한층 강화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구약의 경우보다 더 세밀해졌고, 행동뿐만 아니라 마음과 말까지도 죄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십계명 중에서 하나님에 관한 계명에 관한 것부터 살펴보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고, 우상을 만들어 섬기지 말며,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고 하셨다. 하지만 신약의 말씀은 우상의 제물까지도 절대 먹지 말라고 규정하고 있으며(15:20,28~29, 고전10:19~21), 탐심 자체가 바로 우상숭배의 행위에 해당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3:5). 그리고 예수 이외에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이 주신 일이 없기에(4:12), 예수님을 믿지 않고 선한 행위로 인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천주교는 금방 이단사설이 되고 마는 것이다. 더욱이 인간이 지켜야 할 6가지 계명들 중에서 간음금지명령과 살인금지명령을 보면, 예수께서는 살인이나 간음 행동 뿐만 아니라 마음먹은 것과 말로 행한 것까지도 죄라고 말씀하시고 있다(5:21~32). 그리고 마지막으로 음식법은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는 행10장의 베드로와 환상을 통하여 폐지시켜 버리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10:9~16). 그러므로 이제 모든 성도는 말씀과 기도로서 어떤 음식이라도 다 먹을 수가 있는 것이다(딤전4:3~5). 감사함으로 먹으면 되는 것이다. 물론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은 절대 먹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오신 이후로 율법이 폐해졌다고 말해서는 아니 된다. 물론 절기법이나 제사법 그리고 정결법 같은 경우는 예수께서 그대로 살아내심으로 완성되었고 음식법 같은 경우는 폐해졌지만, 도덕법이나 재판법은 한층 더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도덕법과 재판법을 우리의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지키도록 힘써야 한다. 지키려하다가 실패하기라도 하면 하나님 앞에 다시 회개하고 성령을 힘입어 지켜야 하는 것이다. 사실 한층 더 강화된 도덕법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죄인인 것을 지금도 깨닫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4.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가?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사도바울의 이신칭의의 복음에 집중하다보니 믿는 자들에게는 율법말씀을 폐지되었고 율법말씀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아니다. 그것은 큰 오해다. 율법 중에는 지금도 여전히 지켜야 할 조항들이 있다(22:37~40). 하지만 예수께서 율법에 제시된 그대로 살아내심으로 완성하신 것도 있으며, 어떤 것은 아예 폐지시키어 없애버리신 것도 있다.

이를 테면, 율법 중에서 여전히 지켜야 할 것들로는 십계명과 같은 도덕법재판법이 있으며, 예수께서 그것을 완성하심으로 더 이상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들로는 의식법정결법절기법이 있으며, 아예 폐지된 것으로는 음식법이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은 완전히 폐지되었다고 말해서는 아니 된다. 여전이 주님 오실 때까지 지켜야 할 법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지켜야 할 십계명을 통해 우리가 죄인인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지옥에 떨어질 죄를 범하고 있나 그렇지 아니 하나를 확인해 볼 수 있다. 그러기에 율법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간단하게 예를 들어보자,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는 어떠한 삶을 살았는가? 유형의 우상이나 무형의 조상을 숭배하며 때로는 점을 쳐가면서 살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법에 저촉되지 않은 범주 안에서 늘 음행과 거짓과 탐심으로 얼룩진 인생을 살아왔을 것이다. 그러다가 그것이 죄라는 사실을 깨닫고 회개하고서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했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회개함으로 과거에 지었던 죄들을 용서받게 되었다. 하지만 돼지가 누웠던 곳에 도로 눕고, 개가 토하였던 것을 도로 먹듯이 옛날의 생활로 돌아가, 또다시 우상을 숭배하고, 음행과 탐욕을 부린다면 그 사람이 과연 구원받을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예수님을 믿고 있으면서도 점을 치러 다니거나 추도예배와 장례예배와 같은 우상숭배를 해도 그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비록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매주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있다 하더라도, 자신이 지은 죄들을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죄사함을 받지 못한 상태에 놓여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혹시 죽게 된다면 그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속죄제사같은 피의 희생제사를 더 이상 드리지 않아도 된다. 손을 씻지 않고서도 음식을 먹을 수 있으며, 돼지고기나 오징어 같은 고기도 먹을 수도 있다. 이것들은 메시야가 장차 와서 어떤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한 예표들로서, 메시야이신 예수께서 오셔서 이미 다 완성하셨던 것들이다(2:16~17).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할례를 행하되 육체에 행할 것이 아니라 마음에 해야 한다(2:29). 굳이 할례를 행하여 거룩하려고 애쓰다가 그리스도의 피공로를 격하시킬 수가 있다(5:2~4). 사람이 거룩해지는 것은 예수님의 피와 성령으로 거룩해지는 것이니 어떤 의식을 행함으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을 지켜서 안식을 얻으려 해서는 아니 된다. 오히려 안식을 주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자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믿고 영 안에서 그분 안으로 들어감으로 안식을 얻어야 한다(11:28~30, 12:8).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고 그리스도께서 죽음 가운데서 부활하신 안식후 첫날 곧 주일에 모여서 예배를 드린다. 그렇다. 또한 유대인들처럼 음식을 가려 먹음으로 깨끗해지려 해서도 아니 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함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요일1:7). 그래서 사도바울은 먹고 마시는 것으로 자신을 거룩하게 하려 하거나 안식일과 초하루나 절기들을 지키려 하지 말라고 하였다(2:16~17, 4:9~11), 이것들은 다 장래 일의 그림자요 실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체는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께서 오시면 이런 것들을 다 성취하시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것이다. 이처럼 할례나 안식일, 제사법이나 음식법들은 이미 예수님으로 그대로 살아내심으로 완성되어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지키지 않아도 된다. 다시 말해, 이러한 율법의 규정들 안 지킨다고 그리스도인들이 지옥에 떨어질 일은 절대 없는 것이다.

2: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5:2-4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3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안식을 주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안식)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12: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요일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2:16-17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4:9-11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10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하지만 우리는 안식일계명을 제외한 9가지 계명들과 재판법 등의 말씀은 지켜야 한다. 예수께서도 이러한 말씀은 우리가 평생 가슴에 새기며 살아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어느 날 율법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던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그러자 예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22:36~40)”이라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할지라도 우리가 죽는 그 순간까지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하며 지켜야 할 계명이 있다면 그것은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이요, 아래로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이다. 이것은 사실 십계명을 요약한 것이요, 이웃을 사랑하라는 재판법의 확장판이다. 이 두 계명을 들여다 보라. 이 두 계명은 제사법도 아니며, 절기법도 음식법도 아니다. 또한 성막법도 아니며 의식법도 아니다. 할례나 안식일에 관한 조항이 없다. 그렇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더라도 끝까지 준수해야 할 계명은 안식일 계명을 제외한 십계명이요,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자선을 베풀라는 이웃사랑의 계명들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십계명과 원수사랑의 계명같은 율법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그러한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기 위함이 결코 아니다(2:8~9). 오직 값없이 예수님의 피공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거기에 합당한 삶을 살려고 하는 것 뿐이다(1:27). 행함으로 믿음의 굳건함을 지켜나가는 것이다(2:14). 행함으로 믿음을 온전하게 하기 위함이다(2:22). 죽은 믿음에서 산 믿음으로 가기 위함이다(2:26). 십계명과 같은 율법말씀을 모른다면 죄의 유혹에 노출된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옛생활로 되돌아가 죄를 짓다가 회개하지 못한다면 지옥에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율법말씀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우리가 비록 믿어 성령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육신이 끝나는 그날까지 우리는 죄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지 않은가? 어찌 도덕법과 재판법 같은 것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지킬 수 있겠는가? 물론 십계명과 원수사랑의 계명까지도 다 성령충만해서 지켜야 하겠지만 우리가 매순간 성령충만하며 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회개만이 살 길인 것이다. 그래서 율법말씀에 자신을 비춰보고 날마다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그러한 죄를 짓지 않도록 성령을 의지하며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아니 사탄마귀가 이용하는 우리 자신의 정과 욕심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박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죽음에 넘겨야 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우상을 숭배하지 않을 것이며, 원수까지로 사랑하며 기도해줄 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성도들이 이처럼 도덕법이나 재판법을 지키려 하는 것은 그것을 지켜서 구원을 받으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미 일차적으로 구원받은 우리가 율법을 지키는 과정을 통해서 날마다 우리에게 베푸신 예수님의 은혜를 헛되지 않게 하고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함이다. 곧 그리스도인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은 구원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성화를 위함인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기 위함인 것이다.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에 합당한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함인 것이다. 즉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 위함인 것이다. 혹시 죄를 짓다가도 그것이 죄인 줄 모르고 죄를 짓다가 지옥에 떨어지지 않기 위함인 것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우리의 선한 행실을 통하여 다른 영혼들 구원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5.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을 신약적인 측면에서 대답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구약적인 측면에서 말해 보려고 한다. 구약적 관점에서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구약에 예표된 율법말씀들 즉 절기법이나 제사법이나 정결법 등에 나타난 메시야가 예수님이신 것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안식을 얻고 깨끗함을 받고 죄사함을 받고 자유와 해방을 얻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안식일이나 희년이나, 유월절이나 초실절이나, 속죄제물이나 물두멍이 다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예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안식일의 경우를 보자. 이 세상에서 우리가 아무리 뛰어난 갑부라 할지라도 참된 평안과 안식을 자기 스스로 만들어 낼 수도 없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도 없다. 어찌 죄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데 그것이 무겁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으며, 그 짐을 남에게 맡겨버릴 수 있겠는가? 죄의 원흉인 사탄에게 종노릇 하는데서 해방받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오직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고 불러주시는 예수님에 의해서만내 짐을 그분에게 부릴 수 있고 안식을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분이 바로 안식의 주인이기 때문이다(12:8). 그분이 바로 안식일법을 만드셨던 창조주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안식일을 지킨다고 해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자 안식을 주시는 전능하신 그분 곧 예수님에게 나아가면 된다. 그분의 품에 그냥 안기면 되는 것이다.

그분은 또한 7년마다 땅을 쉬게하는 안식년이요(25:1~7), 50년마다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주시는 희년이시다(25:8~12). 이스라엘에 있어서 ‘7’은 완전수이니, 그분이야말로 우리의 인생을 노동의 수고에서 온전히 쉬게해 주시는 안식년이시다. 또한 희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안식년의 일곱 번 지나간 다음의 50년째 맞는 해를 가리킨다. 이는 자유와 해방을 가져오는 것이다(4:18~19). 종이 되었더라도 원래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는 해요, 가난해서 땅을 팔았더라도 그 기업을 되찾는 해인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그동안 마귀에게 주구장창 종노릇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예수께서 우리에게 희년이 되심으로 우리는 마귀로부터, 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시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망과 지옥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주셨다. 그러니 이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또한 절기를 통해 예수님의 메시야되심에 대해서도 잠깐 살펴보자. 유월절은 애굽의 바로왕의 압제에서 탈출하기 위해 지키던 절기이다(1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을 내어보내기 싫어하는 바로왕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이 탈출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애굽의 장자들을 치는 재앙을 내리신다. 죽음의 신이 사람의 장자로부터 가축의 첫 것까지 다 치게 하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죽음의 천사의 재앙을 받지 않도록 그 천사가 자기의 집을 뛰어넘어가도록 조치를 취하라고 하셨다. 그것은 자기 집의 죽어야할 장자 어린 양을 대신 죽이고 그 양의 피를 자기 집의 좌우인방과 문설주에 바르라고 했다. 결국 그날 밤 어린 양이 대신 죽고 이스라엘의 장자는 살았으며, 장자를 잃은 바로왕은 이스라엘 백성더러 빨리 나가라고 재촉하게 된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간의 종살이에서 해방받고 탈출하게 된다. 이것은 예표다. 예수께서 우리 대신 유월절 어린양이 되시어 피흘려 죽으심으로 우리가 살게 하시고, 사탄마귀를 대표하는 바로왕으로부터 구출받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유월절 양이신 예수님을 믿어 죽음과 사탄마귀로부터 해방을 받게 되는 것이다(고전5:7).

아울러 우리는 봄의 두 번째 절기인 무교절의 절기가 누룩이 없는 빵이신 예수께서 무덤에 묻히신 것을 상징하는 것이며(23:4~8), 초실절의 절기가 첫 열매로서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한다는 것을 안다(23:9~14, 고전15:20). 또한 칠칠절(오순절)의 절기가 예수께서 또 다른 자기 자신인 성령을 보내주심을 의미하며(2:1~4), 성령이 오심을 통해 두 덩이의 떡 곧 유대인과 이방인의 교회가 탄생하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된다(23:17, 2장과 11). 또한 예수께서는 하반기의 절기의 시작인 나팔절에 재림하시고(23:23~25, 24), 속죄일에 모든 죄를 다 청산하시며(23:26~32), 초막절(장막절)에 천국에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장막을 치시며 잔치를 즐긴다는 사실을 안다(23:33~43). 이처럼 곧 구약의 절기가 예수님을 예표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제사법 중에서 속죄제사의 예를 들어보자(4:1~5:13). 구약시대 때에 사람이 죄를 지으면 어떻게 했는가? 그 사람의 신분과 재산의 크고 작음에 따라 각기 다른 제물로 속죄제사를 드림으로 죄용서함을 받았다. 그때 드리는 속죄제물로는 소나 양이나 염소 그리고 가난한 자들은 비둘기가 드려졌다. 하지만 이러한 속죄제물은 흠없는 것이라야 했으며, 죄인이 그 제물에 안수하여 죄를 넘긴 다음, 죄인이 그 제물의 목을 칼로 찔러야 했다. 그러면 제사장이 제물의 피를 받아다가 번제단 뿔이나 향단 뿔에 바르고는 나머지는 제단 아래에 쏟았다. 대제사장이 속죄제사를 드릴 때에는 지성소의 법궤 위 속죄소에 그 피를 뿌려야 했다. 그러면 자신이 지은 죄가 용서함을 받았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신 속죄제물이시다(10:45, 5:2, 9:26).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피를 흘릴 수 없으므로(4:24), 피흘릴 수 있는 제물이 되고자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9:22). 그분은 누구신가?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러나 제물은 흠이 없어야 하기에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고 또한 태어나심으로 흠없는 제물이 되셨다. 30세가 되자 세례요한의 안수를 통해 인류의 죄를 전가받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 되신 예수님은 골고다 언덕에서 속죄제사를 드리셨다(3:13~15, 1:29). 그곳에서 피를 다 흘리시고 다 이루었다고 하시면서 숨을 거두셨다(19:30). 그분은 자신이 죄가 있어 죽은 것이 아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이다(1:4). 대속제물이자 화목제물로 서 대신 죽으신 것이다(요일2:2, 4:10). 믿음이란 무엇인가? 예수께서 속죄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속죄제사를 드렸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9:23~26). 예수님의 이러한 속죄제사야말로 나의 죄를 씻기 위한 속죄제사였음을 믿는 것이다. 그분이 나의 죄를 위한 흠없는 속죄양으로 죽으셨음을 믿는 것이다. 이 믿음을 통해 우리는 죄를 용서받게 된다. 그리고 모든 죄와 죽음과 같은 부정한 것들로부터 우리는 깨끗함을 얻고 해방과 자유를 얻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오직 예수께서 우리의 안식일이 되시며 절기가 되심을 믿어 구원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의 속죄의 제물이 되시고 대제사장이심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왜냐하면 오직 그분의 흠없는 피만이 인류의 죄를 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가 죄용서를 받고 사망으로부터 해방되고 사탄마귀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데에는 우리의 공로와 노력은 필요하지 않다. 오직 예수께서 하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이것을 우리는 은혜라고 부른다. 그렇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것들을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구약에 기록된 율법말씀 중에서 메시야에 대한 예표하는 말씀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믿는 것이다(5:17). 이로써 우리는 자유와 해방과 기쁨을 얻게 되고 평안과 안식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가까운 장래에 더 이상 슬픔과 고통과 아픔과 죽음이 없는 영원한 기쁨의 나라 곧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6. 그리스도인들이여, 구원을 무효화시키지 말라!

이처럼 예수께서 구약의 안식이 되시고, 절기가 되시고, 속죄제물이 되시고, 대제사장이 되심을 믿을 때에 모든 사람은 구원을 받는다. 그런데 우리가 믿음으로 받은 구원을 무효화시키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아는 그리스도인들은 많지 않다. 우리가 은혜로 받은 구원을 잃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일례를 들어보자. 내가 아무개 자매를 사랑해서 그녀와 결혼을 했다고 치자, 그런데 그녀가 얼마 후 집을 나가서는 며칠 들어오지 않는다. 걱정을 하고 있는데, 어느날 그 여자가 다른 남자와 살겠다고 남자를 집으로 데려왔다. 그럼, 어찌해야 하는가? 분명 그 자매와 결혼관계는 지속될 수 없을 것이다. 혹 아량이 넓은 사람이라면 몇 번쯤은 용서해주고 받아줄지 모르겠지만 계속 그러한 삶을 산다면, 결혼관계는 깨어지고 이혼을 하게 될 것이다.

구원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내가 구원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믿음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주님과 결혼한 것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이 바람이 나서 다른 신들의 품에 안겨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처럼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받은 구원을 무효화시키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7:9~10).

7:9-11 너희의 일상생활을 되돌아보아라. 도둑질과 살인, 간음과 거짓 맹세, 바알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너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이방의 다른 신들을 쫓아다니며 섬기는 아주 더러운 생활이 아니냐. 10 그러면서도 이제는 나의 성전으로 들어와 뻔뻔스럽게 내 앞에 나서서 '우리에게는 성전이 있고 이 성전에는 주님이 계셔서 우리는 언제나 안전합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주님이 계신데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수가 있겠습니까 ?' 하고 성전에서 나간 다음에는 여전히 내가 미워하고 싫어하는 온갖 짓을 저지르고 있다. 11 너희가 보기에는 나의 이 성전이 강도의 소굴같이 보이느냐 ? 그렇다면 나도 이제는 너희를 강도들의 무리로 여기겠다.' 여호와의 말씀이다(현대어성경)

이것을 구약의 율법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구약에 나오는 안식일과 여러 절기들과 제사법과 정결에 관한 모든 율법이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성도라 할지라도 자신이 받은 구원을 잃게 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도덕법과 재판법을 어기어 도로 죄를 범하는 것이다. 십계명을 어겨서 우상을 숭배하고 이웃과의 관계를 파괴한다면 우리가 얻은 구원도 잃게 되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을 수 없다(5:19~21, 5:5). 결국 회개하지 않으면 불못에 들어가는 것이다(21:8). 사실 재판법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십계명 중의 6가지 인간계명의 확장판이라고 볼 수 있으니, 그리스도인들이 메시야를 믿어 구원을 받은 후라 할지라도 하나님에 대해 지켜야 할 계명과 인간에 대해 지켜야할 계명을 어긴다면 구원은 무효화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받은 후에도 우리가 꼭 지켜야 할 계명은 1계명에서 3계명이 시작이다. 이 계명은 곧 다른 이방신들을 두지 말 것우상을 만들어 섬기지 말 것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 것이다. 이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을 결단코 자기 앞에 우상을 두지도 말고 경배하지도 말라는 것이다. 이러한 명령을 신약적으로 설명하자면, 예수 이외에 다른 신들을 절대 두어서는 아니 된다는 말이다. 이것이 너무도 중요한 계명이기에 예수님께서도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재물인 맘몬신을 섬긴다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셨다(6:24). 어느 것 하나를 중히 여기면 다른 것 하나는 경히 여길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리스도인들이여, 그러면 절대 안 된다. 오늘날 마귀는 구원받은 성도라 할지라도 할 수만 있으면 다시 그들을 타락시켜 구원을 잃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니 구원받은 성도라도 그로 하여금 예수님을 버리게만 할 수만 있다면, 마귀는 그에게 물질을 준다. 어디 그뿐인 줄 아는가? 그에게 명예와 인기와 지위까지도 준다. 이것들은 자신이 넘겨받은 것이므로 자기가 원하는 자들에게 줄 수 있다고 하였다(4:6). 그러므로 마귀에게 속지 말라. 마귀를 섬기지 말라. 마귀가 주는 물질과 명예와 인기와 지위를 붙잡으면 그것 또한 마귀를 섬기는 것이 된다. 그것이 곧 우상숭배가 되는 것이다. 마귀는 뿔달린 모습으로 사람에게 나타나지 않는다. 달콤하면서 부드러운 양의 가면을 쓰고 우리에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마귀가 주는 것에 현혹되지 말라. 예수님 이외에 다른 것들을 내 마음 중심에 신처럼 두지 말라. 그러면 구원은 다시 무효화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받은 구원을 무효화시키지 않기 위해서 두 번째로 지켜야 할 계명들은 5계명에서 10계명이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라는 계명들이다. 사실 이러한 계명들 중에서 인간이 가장 약한 것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대부분이 음행이나 탐내는 욕심을 고를 것이다. 그만큼 인간의 욕망 가운데 성욕과 물질욕이 차지하는 부분이 많고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계명들을 한 층 더 강화하시어 우리가 죄인인 것을 깨달으라고 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5장의 산상수훈을 읽어보라. “음욕을 가지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하였으니(5:28), 사실 이 계명에 안 걸릴 남자들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또한 남을 미워하거나 욕하는 것조차도 살인이라고 했으니, 인간계명을 통해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죄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그들 또한 죄인인 것을 깨닫도록 행동으로 옮긴 죄 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짓는 죄까지 죄를 지은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이 6가지 계명을 통해 우리가 비록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 하지만 사실은 심각한 죄인인 것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결국 신약성경에서는 1~3계명과 5~10계명을 지키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될 것이라고 선고하고 있는가? 우상숭배를 하거나 음행과 살인과 탐욕 등의 죄를 범하는 자는 심판을 받아 불못에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21:8). 그러므로 구원받은 후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은혜로 받은 구원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날마다 회개하며, 죄를 떨쳐버려야 할 것이다. 아니 죄는 그 모양이라도 버려야 할 것이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 이러한 죄를 멀리하기에는 역부족이다는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 우리의 육신의 소욕을 이길 수 있도록 우리 안에 장치를 허락하셨다. 그것은 곧 우리 안에 하나님자신을 영으로 넣어주신 것이다. 곧 성령님을 우리의 영 안에 보내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계명과 인간에 대한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영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자신의 육체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있음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영 안에 육체의 소욕마저도 이길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계시는 성령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늘 시인해야 한다. 그리고 그분과 협력해야 한다. 우리 자신을 그분이 인도하시도록 맡겨야 한다. 오늘도 육신의 소욕이 일어나는가? 그러면 즉시 영 안으로 들어가 성령으로 돌이키라. 그러면 우리는 죄를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도 십계명을 어기면 지옥에 간다는 것을 명심하라. 이미 얻은 구원을 무효화킨다는 것을 잊지 말라. 생각나는 죄가 있거든 즉시 회개하라. 그 죄를 자복하라. 그리고 부르짖어 눈물로 통회하라. 그리고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에 가서 예수의 피를 바르라. 회개는 우리의 무효화된 구원을 다시 원상복귀시키는 능력이 들어 있다. 회개란 은혜로 받은 구원을 무효화시켜 우리를 다시 지옥에 빠지게 하는 데서 우리를 건져내어 구원을 다시 유효화시키는 생명의 장치다. 그리스도인들을 천국보내는 마지막 장치다. 그러므로 날마다 회개하라. 그리고 또 회개하라. 그렇게 회개하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령을 의지하라. 그러면 언젠가는 죄가 끊어질 것이다. 그래도 안 되면 또 회개하라. 십계명을 지키려고 하는데 잘 안 된다고 너무 섣불리 판단하지 말라. 예수님의 자비에 다시 용기를 내라. 예수께서는 하루에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죄를 회개하는 자는 용서해주라고 하셨다(18:21~22). 주님이 그렇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 인간의 노력과 의지가 약하지만 우리는 회개를 통해 다시 회복할 수 있다. 언젠가는 우리도 피흘리기까지 죄와 싸워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건투를 빈다.

 

 

이 모든 글을 쓰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201487()

정병진목사(alletei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