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기도회] 자신의 영권을 끌어올리기 위해 꼭 필요한 5가지 요소는 무엇인가?(롬8:17~18)
이 설교는 성도가 자신의 영적 권세(영권)를 높이고 악한 영을 대적하는 강력한 영적 전사로 거듭나기 위해 반드시 실천해야 할 다섯 가지 핵심 요소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회개와 예수님의 피를 통해 몸 안의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고 스스로를 정결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둘째, 단순한 구원을 넘어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이자 왕노릇할 자가 되겠다는 하나님의 뜻과 경륜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셋째,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영과의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넷째, 끊임없는 전투 방언 기도를 통해 영을 살리고 영력을 강화시켜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사역의 과정에서 찾아오는 고난과 시련을 기꺼이 견뎌내는 인내를 갖출 때, 비로소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참된 일꾼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
1왜 귀신을 쫓아 주는 혜택을 받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쫓는 자가 되어야 하는가?본문 →2영적 계급이란 무엇이며, 부르심이 없는 성도는 어떻게 그 길을 따라가는가?본문 →3영권의 첫째 요소로 왜 자기 몸부터 정결하게 해야 하는가?본문 →4하나님의 경륜은 왜 속죄를 넘어 상속자와 왕 노릇에까지 이르는가?본문 →5귀신과의 싸움을 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가?본문 →6영을 강화한다는 것은 무엇이며, 왜 전투 방언 기도가 필요한가?본문 →7고난을 견디는 인내가 왜 영권을 끌어올리는 마지막 핵심인가?본문 →1. 들어가며
이 땅의 인생살이에서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구원을 받아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 사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우리 인간들을 죄짓게 만들고 저주를 주는 귀신을 잘 쫓아내는 일이다. 영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귀신을 잘 쫓는 데로 모아진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귀신을 무서워한다. 그러므로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영권(靈權, spiritual authority), 곧 영적 권세를 끌어올려야 한다.
왜 그래야 하는가? 귀신은 내가 죽는다고 해서 사라질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죽으면 그 영이 내 자식에게, 내 손자에게 그대로 내려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윗대에서 이혼한 집은 계속 이혼하고, 윗대에서 자살로 죽은 사람이 있는 집에서는 계속 자살하는 사람이 나온다. 윗대에서 억울한 일을 당한 집은 계속 억울한 일을 당하고, 윗대에서 사고가 많았던 집은 더 사고가 많이 난다. 남자가 바람을 피웠던 집은 대를 이어 계속해서 바람을 피운다. 윗대에서 폐암으로 죽은 사람이 있으면 또한 계속해서 폐암으로 죽은 사람이 나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이제는 내 후손에게 이러한 저주를 계속 물려줄 수는 없다"고 하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렇다면 귀신은 어떻게 사람 속에 들어오는가? 요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요일 3:8).
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다. 고로 귀신은 죄를 통로로 하여 합법적으로 들어온다. 그것들이 합법적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우리도 그것들을 합법적으로 내보내야 한다. 그러나 그동안 많은 성도가 그 길을 몰라서 귀신과 싸워 보지도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맨날 축사를 받는 자리에서 벗어나, 스스로 귀신을 쫓아내는 자리로 나아가기 위하여, 특히 자신의 영권을 끌어올리는 데 필요한 다섯 가지 요소가 무엇인지 성경 전반과 영절 실제를 통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2. 왜 귀신을 쫓아 주는 혜택을 받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쫓는 자가 되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사람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세 가지 정도로 압축될 수 있다.
첫째로, 무서워서 못 쫓아내는 것이다. 귀신이라는 말만 들어도 두려우니 싸울 엄두를 내지 못한다.
둘째로, 귀신의 실제를 잘 몰라서 못 쫓기 때문이다. 영의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모르면,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는 소경과 같다. 만약 영의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만 정확히 알았더라면 귀신이 떠나가도록 준비를 하고 그리고 축사(逐邪, deliverance)를 했을 것이다.
셋째로, 없다고 여겨서 못 쫓아내는 것이다. 귀신은 대부분 숨어 지낸다. 그래서 사람들은 귀신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막 16:17)라고 하셨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통 처음에는 성경에 나온 바대로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아, 나가라!" 하고 명령한다(막 16:17-18, 행 16:18). 그런데 나가지 않았다. 필자는 '아, 내가 믿음이 없었던 모양이다. 금식을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고 믿음을 가지려고 성경도 공부하고 금식도 해 보기도 한다. 예수님께서도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 9:29)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믿음은 하루 이틀 만에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두 번째 방법으로 영권 있는 목사님을 찾아가 "쫓아내 주십시오" 하고 부탁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하면 쫓겨난 듯했다. 하지만 며칠 동안 잠잠할 뿐이다. 그러나 조금 지나자 마찬가지였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내 속에 귀신이 한 마리만 들어온 것이 아니라 수억 마리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한 마리 나갔다고 끝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나중에 알게 된 것이 있다. 회개만 하면 예수의 피가 들어가서 내 몸과 귀신 사이가 헐렁헐렁해지고, 떠날 준비를 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영안이 열린 사람들이 그것을 본다. 고로 우리 속의 영들이 떨어져 나가게 하려면 어찌하든지 예수님의 피가 우리 몸 안에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영원하신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셨다. 그런데 부활하실 때 그분은 자신의 뼈와 살은 가지고 가셨지만,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와 물은 이 땅에 남겨 두고 가셨다(요 19:34, 요일 5:6). 그러므로 우리는 그 피를 사용해야 한다. 요한계시록은 형제들이 무엇으로 참소하던 자를 이겼는지를 이렇게 알려준다(계 12:10-11).
계 12:10-11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어린 양의 피와 증언하는 말씀, 그리고 죽을 각오가 참소하는 자 곧 귀신과 같은 더러운 존재를 이긴다. 지금 필자의 손에서는 실제로 예수의 피가 나온다. 위장이 아프다고 하는 성도에게 손을 대면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듯이 피가 쏟아져 나온다. 영안이 열린 사람들에게 보라고 하면 그 물줄기의 크기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보게 된다. 한 방울씩 똑똑 떨어지는 이가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손가락 끝에서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콸콸 쏟아진다. 필자가 보니, 예수님의 피가 많이 나오는 사람은 손가락 맨 끝마디가 빨간 경우가 있다. 100% 일치하지는 않지만, 영안이 열려 있지 않아 보이지 않으니 그렇게라도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안수로 눈에 예수님의 피를 넣으면 받는 사람의 눈이 빨간색을 보게 된다. 그렇게 경험을 시켜 준다. 이것이 영이 세계의 실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역 현장에서는 귀신을 쫓아 주기는 베풀지만, 귀신을 쫓을 사람 자체를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필자는 이 세상 모든 성도들을 모두 귀신을 쫓는 사람으로 세우고자 하는 바람이 있다. 그래서 성도들이 축사자가 된다면, 꿈속에서부터 축사가 시작되는데, 그때에는 귀신들이 우리가 무서워서 "갈래, 갈래" 하며 떠나가기 때문이다.
3. 영적 계급이란 무엇이며, 부르심이 없는 성도는 어떻게 그 길을 따라가는가?
필자가 6년 전인 2020년 6월에 처음으로 회개 기도를 시작했을 때, 필자에게는 영적 계급이 없었다. 그런데 영적 훈련을 마치자 주님께서 장교 계급을 달아 주셨다. 밥풀때기 하나 곧 소위였다. 그래서 교회에 와서 우리 성도들은 어떤 계급을 달고 있을까 살펴보았다. 이마에 계급이 있기는 있었다. 일반 평신도는 대부분 일병이었는데, 일병이면 그나마 조금 괜찮은 편이었다. 이등병을 단 성도도 있었다. 어쩌다 한 번씩 상병이 나왔고, 병장은 정말 드물었다. 그래서 '아, 성도들의 계급은 역시 사병이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영적 계급은 영적 훈련을 받고 영적 세계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천국의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공부해야 달린다. 그래서 소위, 중위, 대위, 그리고 소령, 중령, 대령, 그다음에는 별 하나, 별 둘, 별 셋, 별 넷까지 계속 올라간다. 영적 계급이 높아야 귀신도 잘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영적 세계에 눈이 열린 사람에게는 이마에 계급장이 반짝반짝 보인다. 무당들도 마찬가지다. 상대 무당 속에 있는 영이 자기 속에 있는 영보다 세면 "아이고, 형님 어서 오십시오" 하듯이 그냥 알아본다. 고로 이등병, 일병의 계급으로 귀신을 쫓으려고 하면 그리 쉽지 않다.
그렇다면 누구나 귀신을 쫓는 성도들을 훈련시키는 지도자가 될 수 있는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시기 때문이다. 바울은 자신의 부르심을 이렇게 증언하였다(갈 1:15-16).
갈 1:15-16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영이 엄마의 태중에 있는 아이에게 들어갈 때에 사역자가 될 사람은 하나님께서 성숙한 영을 집어 넣어 주신다. 그러므로 태어나서도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역자로서 남을 이끌어 가는 지도자가 되려면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어야 하고, 그에게 사명을 맡겨 주심이 있어야 한다. 필자도 2018년에 한 훌륭한 목사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말씀과 성령을 둘 다 주신다는 말씀을 받았다. 그리고 2020년에 가서야 비로소 훈련을 받게 되었다.
그러면 평신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좋은 지도자를 따라가면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파송하신 당신의 14만 4천 명의 종들을 가지고 계신다. 그들 중 상당수가 지금 활동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러한 하나님의 종들을 따라가면서 배우고 실천하면 된다. 천국에서 14만 4천은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계 14:4)들인 것처럼, 일반 성도들도 영적인 일을 감당하는 것을 사모해야 한다. "나도 영적 전사가 되리라. 나도 혜택만 받는 사람이 아니라 남이 어려움을 당할 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되리라." 그래서 바울은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전 12:31)고 하였다. 사명이 없어도 사모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그 영혼을 만족하게 하신다. 또한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다(마 11:12).
마 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침노해야 한다. "주님, 저도 남을 돕는 자가 되겠습니다. 평생 남의 것만 받아먹지 아니하고 주는 자가 되겠습니다. 저도 제 가정을 지키고, 제 구역 식구를 돕겠습니다." 이런 마음을 품어야 한다. 필자의 스승 밑에서도 많은 사람이 훈련을 받았지만, 모두가 그런 은사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저도 처음 은사자를 갔을 때 필자는 아무런 은사도 없었고 능력도 없었고, 영적 무기도 없었다. 손에서 피가 나오는 것도, 불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이 훌륭한 목사님의 대를 이어갈 사역자가 누가 될 것인가?"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 순간, 필자는 "그래요,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하고, 죽기 살기로 달려들었다. 그랬더니 그분의 제자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사역자가 되었다.
필자는 고등학교 때까지 예수를 믿지 않아서 아무것도 몰랐다. 디두모가 '쌍둥이'라는 뜻으로서 예수님의 12제자들 가운데 하나인 도마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도(요 11:16), 심지어 베드로가 누군지도 몰랐다. 엘리야와 갈멜 산(왕상 18:19)의 혈투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그러나 비록 교회에 늦게 나왔지만 정말 말씀을 사모했다. 성경을 요약하고 풀이한 책들을 사 모아 모조리 읽었다. 그래서 필자의 설교는 대부분 조직신학적인 설교다. 지금 목사가 된 지 28년째이고 내후년이면 30년이 된다. 필자는 비록 늦게 시작했지만 성경을 보니,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내가 비록 늦게 시작했지만 주님의 말씀을 믿고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서 나중된 자가 먼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경험해 보자" 라고 생각했다. 예수님께서 직접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말씀하시고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마 20:16)고 일러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앞장선 일꾼을 따라가면 그 혜택을 누리게 된다. 필자가 네댓 살 때다. 겨울에 눈이 푹푹 쌓이면 어머니는 물동이를 이고 물을 길으러 가셨다. 그때 눈에 발이 푹푹 빠졌는데, 어머니의 발자국만 따라 디디니 눈이 신발 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미 길이 나 있었기 때문이다. 고로 앞서 간 지도자를 잘 따라가면 9부 능선(九部稜線)까지는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성경 전체를 조사해 보니 전쟁에 능한 자가 이기는 자이고, 이기는 자가 왕 노릇을 하는 자였다. 전쟁에 가장 능했던 사람은 순서상 먼저는 여호수아이고, 최종적으로는 다윗 왕이다. 모세의 수종자였던 여호수아는(수 1:1) 가나안 온 땅을 점령하여 이스라엘 9지파 반에게 기업으로 나누어 주었다(수 11:23). 다윗은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던(삼하 8:14) 전쟁에 능한 왕으로서,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자의 가장 큰 표상이 되어 있다. 구약 시대에는 아직 큰 귀신이 많지 않고 뱀만 많았던 시대였기에,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를 하게 하는 영에 이끌린 우상숭배자들을 치라고 하셨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사람을 죽이라는 말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전부 귀신과 싸워 처단하라는 말만 나온다(엡 6:12).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내 속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을 내보내야 한다. 필자는 평소에는 부드러운 사람이지만, 악한 영과 싸울 때는 "니가 죽느냐 내가 죽느냐. 어디 죽기까지 싸워보자" 하는 각오로 싸운다.
4. 영권의 첫째 요소로 왜 자기 몸부터 정결하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그런 영적 전사가 되기 위해 자신의 영권을 끌어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기에는 5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 회개와 예수님의 피를 통해 몸 안의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고 스스로를 정결하게 해야 한다. 둘째, 단순한 구원을 넘어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이자 왕 노릇할 자가 되겠다는 하나님의 뜻과 경륜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셋째,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영과의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넷째, 끊임없는 전투 방언 기도를 통해 영을 살리고 영력을 강화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역의 과정에서 찾아오는 고난과 시련을 기꺼이 견뎌내는 인내를 갖출 때, 비로소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는 참된 일꾼이 될 수 있다. 그럼 이제 하나하나 그 요소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요소는 회개하여 예수의 피를 우리 속에 넣고 자기 몸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예수의 피가 우리 몸 안에 들어오면 뱀들이 아파하기 때문이다. 고문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니 바짝 우리 몸에 달라붙어 있던 뱀들이 우리 몸에서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것에 대해 요한 사도는 이렇게 말했다(요일 1:9).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그렇다면 무엇이 과연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가? 그것은 7절에 보니 "그[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부터]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라고 한다. 우리를 사실 더럽다고 하는 것은 내 속에 더러운 영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마 15:11)이라고 하셨다.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에서부터 나오며, 그것이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이다(마 15:18-19). 필자는 그렇게 속에서부터 사람을 더럽히는 뿌리에 사람 속에 들어온 더러운 귀신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성경은 귀신을 '더러운 귀신'(마 10:1)이라고 부른다. 주님께서 보실 때는 영의 세계를 보시므로, 그 사람 속에 귀신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를 보신다.
필자는 나중에 나를 가르쳐 준 스승님께 "목사님, 사람 속에 귀신이 몇 퍼센트나 들어 있습니까?" 하고 여쭤본 적이 있다. 그때 스승은 "나이에다가 퍼센트를 붙이시오"라고 하셨다. 74세이면 74%가 귀신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가득 차서 내 속에 영이 100%가 되면 사망의 영이 와서 죽는다. 그래서 80세, 90세가 되면 거의 차 있으니 이기기가 쉽지 않다. 나이가 너무 들면 회개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고로 하루라도 젊을 때, 좀 덜 찼을 때 회개하여 꺼내야 한다. 다 찼을 때 꺼내려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런데 젊은이들은 잘 오지 않는다. 귀신의 비율이 작으니 자기 힘을 믿고 육체대로 살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낙심할 것은 없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 이미 먹은 나이를 거꾸로 돌릴 수는 없으니, 최선을 다해 보아야 한다.
많은 사람이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고, 저주에서 놓임을 받으려면 축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안다. 예를 들어 보자. 귀신이 우리 몸 안에 들어오면, 특히 무당의 영이 들어오면 기본적으로 우울증과 불면증과 자살 충동이 일어난다. 거기에 이혼 같은 것들이 뒤따라온다. 우리나라에는 우울증과 불면증 환자가 엄청나게 많다. 그런데 불면증은 회개를 하고 와서 한 번만 사역을 받아도 그다음 날 깊이 잠잘 수 있다. 그렇게 쉽게 보낼 수 있다. 그런데 회개를 하고 왔는데도 악한 영이 나가지 않으려고 하면, 필자는 그것을 잘라내고 태워서 꺼내어 처리한다. 왜 귀신은 쉽게 나가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는 일평생 그 사람의 주인 노릇을 해 왔기 때문이다. 누군가 놀고 있는 내 땅에 슬그머니 와서 밭을 일구면 나중에는 그 땅을 다 차지하고 주인이 오며, "당신은 누구요?" 하듯이, 귀신이 우리 몸속으로 들어와서 오래되면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권을 높이려면 자기 속의 영부터 제거해야 한다. 자기 속에 영을 둔 채로 축사를 하면, 상대 속에 있던 큰 영이 자석에 끌리듯 내 속으로 쏙 들어와 버리기 때문이다. 특히 접촉은 직접적으로 들어오는 통로다. 그러면서 사역자가 피사역자에게 안수하면 할수록 더 들어온다. 그래서 사역자라도 자신을 깨끗하게 청소하지 않은 채 사역자가 되면, 사역할 때마다 귀신들이 내 몸속에 꾸역꾸역 쌓여, 자기 몸속에 있는 귀신의 집의 각각의 방들을 꽉꽉 채운다. 그러면 필요할 때마다 각각의 방에 비치된 영들을 꺼내서 예언사역에도 치유사역에도 축사사역에도 써먹는 것이다. 이것이 가짜 사역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필자의 속에는 귀신의 집도 귀신도 없어졌고 예수의 피로 가득하게 되었다. 그러니 귀신이 들어오려다가도 들어가 봤자 자기만 아프다 보니 들어오지 않으려 한다. 한동안은 그놈들이 쫓겨나서 기분이 나쁘니 한번 물고나 가자며 팔목과 다리를 많이 물었다. 그러나 내 속에 생명이 차 있으니 물어도 효과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지금은 내 몸을 물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아는지 잘 물지도 않는다. 고로 자꾸 회개하여 예수의 피로 내 몸을 가득 채우면 귀신은 더 이상 들어오려는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구별해야 할 것이 있다. 속에 있는 악한 영을 내보내는 것은 속죄(贖罪, atonement)를 통해서가 아니라 정결(淨潔, purification)을 통해서라는 것이다. 속죄는 예수님을 믿을 때 주님께서 강권적으로 베풀어 주시는 은혜이다. 그러면 칭의(稱義, justification)가 뒤따라 오고 거듭남(重生, regeneration)이 뒤따라 온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다 예수님께서 해 주시는 일이고, 우리는 그것을 믿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정결은 다르다. 그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주님께 해 달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생각에 찌들어 있는 분들은 이러한 구별을 잘못한다. 우리가 회개하는 것은 물론 처음에는 구원받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만 그 다음부터는 정결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요한 사도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해야 할 일을 이렇게 말했다(요일 3:2-3).
요일 3:2-3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자기를 깨끗하게 하지 않은 채 은사자로 10년쯤 사역하면, 대부분 악한 여들이 사역자의 몸 속에 들어가 병이 든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영들이 엄청나게 많으므로 중풍으로 쓰러지거나 심장마비로 죽는다. 그러므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하였다(딤후 2:20-21).
딤후 2:20-21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그렇다. 그러므로 먼저 쓰임받으려 하지 말고 깨끗하게 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깨끗하지 않은 채 쓰임받다가는 틀림없이 나중에 타락하든지 죽든지 한다. 자기 속에 영을 제거하지 않은 채 사역하면, 돈을 요구한다. 그리고 자기가 능력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여 위세를 부린다. 왜 그럴까? 속에 있는 교만의 영, 곧 사탄 마귀의 영이 그를 꼬드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끝까지 겸손하게 쓰임받으려면 자기 속에 있는 영들을 제거해야 한다. 쓰임받다가도 버림받지 않고, 계속해서 쓰임받으려면 깨끗해야 한다.
5. 하나님의 경륜은 왜 속죄를 넘어 상속자와 왕 노릇에까지 이르는가?
두 번째 요소는 하나님의 뜻과 경륜(經綸, divine economy)을 아는 것이다.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어떻게 디자인되어 있는지를 공부해야 한다. 그런데 그동안 보통 그리스도인들이 배운 것은 구속사(救贖史, redemptive history)적인 성경 공부뿐이었다. 우리가 지은 죄를 예수의 피로 용서받는다는 것만 계속 배운 것이다. 그러나 창세기 2장까지는 구속사적인 방법이 필요하지 않은 때였다. 3장에 가서 사람이 죄를 지었기에 비로소 구속 사역이 끼어들어온 것이다. 그 전에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천하 만물을 다스리며 왕 노릇 할 자로 세워 놓으셨다.
고로 하나님의 원래 경륜은 우리가 죄 사함만 받고 간신히 천국에 턱걸이하여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천국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물려받는 상속자(相續者, heir)가 되고, 더 나아가 왕 노릇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기시고 아버지 보좌에 앉으신 것처럼, 우리도 보좌에 앉혀 왕 노릇하고 심판하는 권세까지 주시려고 계획하셨다(계 3:21). 그런데 기존 교회에서는 구속사까지만 이야기한다. "예수의 피로 칭의를 얻었다." 사골도 여러 번 우려내면 더 이상 국물이 나오지 않는다. 주 예수를 믿으면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덮어 주시고(속죄), 그래서 칭의가 나오며, 그때 하나님께서 생명을 넣어 주셔서 거듭난다. 이것은 신앙생활의 기본이다. 그다음에는 우리 스스로가 깨끗하게 하여 점차 하나님께서 쓰실 그릇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우리를 어떤 그릇으로 예정하셨는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고, 상속자가 되게 하고, 왕 노릇 하는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했다(롬 8:15-17).
롬 8:15-17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아빠'는 아람어로 아버지를 부르는 말이며,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에서 "아빠 아버지여"(막 14:36)라고 부르셨다. 고로 하나님의 만세 전의 예정은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중에 어떤 이는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자동으로 상속자가 되는 줄 안다. 그러나 에스컬레이터처럼 발만 딱 올려놓으면 가만히 있어도 올라가는 것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그 뒤에 조건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그런 대가를 지불해야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다. 그냥 거저 '왕 같은 제사장'(벧전 2:9)이 다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천국에 들어가면 비로소 천국 성도의 신분이 똑같지 않다는 것을 금방 눈치챌 것이다.
필자도 과거엔 착각한 채 살아왔다.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이제 "나는 왕 같은 제사장이다"라는 말을 십 년 동안 세뇌당하듯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 왕 같은 제사장인 줄 알았다. 그런데 택도 없는 이야기였다. 이등병도 안 된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서 무슨 왕의 신분을 얻겠는가! 영적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 자기가 지금 어떻게 준비되어 있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살아왔던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이면 상속자가 되어야 하고, 상속자가 되면 왕 노릇을 하는 자리로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그렇게 나온다(계 20:6; 22:5). 속죄는 하나님께서 해 주시지만, 상속자가 되고 왕 노릇하는 자가 되는 것은 자기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와서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마 20:21) 하고 구한 적이 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마 20:23)고 대답하셨다. 그 자리는 예수님께서 임의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예비하신 자들이 얻는다. 필자는 그 자리의 주인이 미리 굳어진 것이 아니라, 대가를 지불하며 끝까지 달려간 자가 있으면 그가 얻는다고 본다. 그래서 혹 어떤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했더라도 더 열심히 달려간 사람이 있으면 그는 밀려날 수 있다. 이 말씀 때문에 필자는 '늦게 믿었지만 지금의 자리보다 한 단계 더 앞서 가리라' 하는 용기를 가지고 지금도 달려가고 있다.
그렇다면 그 자리를 얻게 될 사람은 누구인가? 귀신과 싸울 준비가 되어 있고, 오늘보다 내일을 위하여 더 도전하며, 천국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얻겠다는 각오를 가진 사람이다. 고로 하나님의 뜻과 경륜은 속죄와 칭의와 거듭남에서 끝나지 않는다. 깨끗함과 거룩함을 통하여 하늘에서의 지위가 상속자로, 그다음에 왕 노릇하는 자로 올라가는 것이다.
6. 귀신과의 싸움을 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가?
세 번째 요소는 귀신과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귀신이 흰 소복을 입고 피를 흘리며 머리를 풀어헤친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꼭 그러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귀신은 자신의 몸을 얼마든지 딴 모양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자기의 모습을 사람이나 짐승의 모습으로 바꿀 수가 있다. 어떤 분들은 귀신을 뱀으로 보기도 하고, 검은 연기나 실루엣처럼 보기도 한다. 그래서 영안이 열린 사람이 아침에 문을 여는데 귀신이 문 앞에 딱 서 있거나, 밤에 잠을 자고 일어나려 하는데, 침대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으면 얼마나 무섭겠는가! 그런데 필자는 감사하게도 귀신이 보이지 않는다. 주님께서는 필자에게 "언젠가는 영을 볼 수 있는 눈을 강력하게 주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왜 늦게 주시고 있는가? 보이지 않아야 간이 배 밖에 나온 사람처럼 그것들과 담대하게 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용이 이빨을 드러내어 물려고 하는데, 그곳에 누가 손을 대겠는가?
필자는 원래 담이 큰 사람이 아니었지만, 100m 높이까지 올라가서 실제로 번지점프를 하고 뛰어내릴 만큼 담대한 사람으로 변모하였다. 초창기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사람의 손을 댔다가 그 몸에 붙어 있는 뱀들이 내 손가락을 물어서 얼마나 아팠는지 모른다. 그래도 다시 달려들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배짱이 두둑히 생겼다.
여호수아도 그랬다. 그의 스승 모세에 비하면 여호수아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고, 또한 앞일을 매우 두려워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강하고 담대하라"(수 1:6)고 거듭 말씀하시고 이렇게 약속하셨다(수 1:9).
수 1: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필자는 이 9절을 믿는다. 그래서 필자의 첫 번째 은사가 믿음의 은사다. 강한 귀신과도 그냥 싸워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가 죽는 꼴을 보고만 계시겠는가? 필자도 한 번 크게 당하여 응급실에 실려 간 적이 있다. 그래도 전혀 변함없이 또다시 달려들었다. 그러자 '저 사람은 끝까지 할 사람이구나' 하고 은사를 주셨다. 귀신이 무서워서 "우리는 이제 말씀 사역만 하는 교회입니다" 하고 물러섰다면 은사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강함과 담대함은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내 속에는 주님이 계신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 5:18)고 하였다. 그러므로 귀신이 공격하면 "너는 왜 나를 만지느냐? 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라고 말하면서 그놈들을 대적해야 한다. 또 사도 요한은 우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요일 4:4)고 하였다. 고로 귀신이 공격하면 이렇게 말해야 한다. "네가 나를 죽이려면 내 속에 계신 예수님부터 죽여야 한다." 우리는 성경을 믿어야지 현상을 믿어서는 안 된다.
지난주 중에 어릴 때 상처를 많이 받은 분이 왔다. 우리 부목사가 영안으로 보니 그의 가슴에 화살이 팍팍 박혀 있었다. 그래서 손만 대어도 엄청 아파했다. 그러므로 화살이 움직일 때마다 가슴이 아픈 것이다. 필자는 손끝에 칼이 있지만 그것으로 그 자리를 찌르면 더 아플 것이었다. 또한 화살을 그냥 빼면 얼마나 아플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래서 "주님, 성령의 기름을 좀 부어 주십시오. 윤활유처럼 미끄러워서 쏙쏙 잘 빠지도록 기름을 부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그러자 부목사가 보니 기름이 흥건하게 들어가더니 화살이 쑥쑥 잘 뽑혀 나왔다. 기름이 어디 있는지 필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영안이 열린 사람에게는 제가 말을 하면 그것이 실제로 눈앞에 펼쳐진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 11:1)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축사 사역자가 되려면 죽을 각오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 몇 번을 응급실에 갈 각오를 해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응급실에 두 번 갔다 왔다. 그런데 우리 교회 부목사는 다섯 번 갔다 왔다고 한다. 그러다가 영안이 열렸다. 어느 날 저녁에는 부목사님으로부터 "목사님, 숨이 넘어갈 것 같습니다." 하였다. 그래서 예수의 이름으로 그 악한 영들을 성령의 불로 지글지글 태우라고 했더니 "휴, 살겠습니다." 하며 살아났다. 귀신과 싸우다 죽으면 어떤 죽음인가? 최소한 그러한 자는 천국에 들어간다. 왜냐하면 귀신은 주님의 원수이기 때문이다. 그 원수와 싸웠는데 주님께서 설마 우리를 성 밖으로 보내시겠는가?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시자마자 성령에게 이끌리어 광야로 가셔서 귀신의 대장인 사탄 마귀와 맞붙으셨다(마 4:1-11). 그리고 3대 0, 판정승을 거두셨다. 그다음부터는 귀신을 쫓아내셨고,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에도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축사와 치유 사역이라고 하셨다. 제자 파송 장인 마태복음 10장을 보면, 이렇게 시작한다(마 10:1).
마 10: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그리고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 10:7-8). 예수께서는 12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고 하면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게 하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다른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니, 전하는 사람이 불량품이 되어서 교회를 나와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성도들이 계속 나온다. 예수님께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능력)을 받고"(행 1:8)라고 하셨다. 그런데 권능을 받지 않고 복음을 전하니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고 다른 일만 하는 것이다. 그러니 복음을 전하는 순간에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을 경험하지 못한다. 그런 경험이 또한 일평생 없으니 교회 문 앞에서 오늘도 '들어갈까, 말까' 하며 마지못해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7. 영을 강화한다는 것은 무엇이며, 왜 전투 방언 기도가 필요한가?
네 번째 요소는 영을 강화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싸움은 영의 싸움, 곧 내 영과 귀신의 영의 싸움이기 때문이다(엡 6:12). 그러므로 어찌하든지 영권을 끌어올리려면 내 영이 강화시켜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육의 상태가 아니라 영의 상태다. 먼저 영의 문제를 보자(엡 2:1).
엡 2: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허물과 죄로 무엇이 죽었는가? 바울은 무엇이라고 대답했는가? 이때 바울이 말한 것은 육체가 죽은 것을 말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혼이 죽은 것도 아니다. 혼은 생각과 감정과 의지이므로 계속 발달하고 성장한다. 그렇다면 영이 죽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영이 죽었다는 것은 영이 있으나 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공장에 기계는 있는데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면 공장이 돌아가지 못한다. 그것을 공장이 죽었다고 하듯이, 우리의 영도 하나님께서 태어날 때 넣어 주셨지만 기능을 하지 못하면 죽은 것이다. 바울은 이어서 하나님께서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고 한다(엡 2:5).
영은 평균 10년에 한 살씩 자란다. 필자가 2년 동안 조사해 보니, 이 땅에 보내진 평신도의 영의 나이는 낮으면 세 살이고, 대개 네 살부터 일곱 살, 많으면 여덟 살이었다. 그런데 주의 종의 직무를 수행하려면 최소한 아홉 살은 되어야 하고, 열 살이 넘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사역자가 아주 많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영의 나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자란다. 그런데 세상 영화와 신문 이야기가 섞인 말씀만 먹고 있으니 영의 양식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권사가 되어서도 설교가 자기를 찌른다며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고 땡깡을 부리고, 그러면 목사는 또 맨발로 달려가서 사고하고 달래 주어야 한다. 언제까지 그렇게 할 것인가? 이는 영의 나이가 어린 사람을 열심히 충성한 것만 보고는 그만 권사로 세워 놓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을 강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두 단계가 필요하다.
첫째로, 영을 살려야 한다. 영이 살아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영을 살려야 하는데 기본은 방언(方言, tongues)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방언을 못하는 사람은 귀신을 쫓기가 쉽지 않고 다른 은사도 잘 오지 않는다. 방언은 성령을 받은 사람에게 최초로 나타난 은사이기 때문이다. 오순절의 기록을 보자(행 2:2-4).
행 2:2-4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여기서 '다른'은 헬라어 헤테로스(ἕτερος)다. 같은 종류 안에서 다른 것('알로스')이 아니라 종류 자체가 다른 것, 영어로 하면 '디퍼런트'다. 콩 가운데 강낭콩과 완두콩은 같은 종류 안에서 다른 것이지만, 콩과 팥은 아예 다르다. 오순절에 모인 각 나라 사람들은 그 말을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행 2:6) 알아들었다. 그러나 그 말은 제자들이 배워서 한 말이 아니라 성령께서 말하게 하신 전혀 다른 말이었다. 그리고 바울은 방언을 말하는 자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고전 14:2)고 하였다. 고로 방언은 내 영이 살아났다는 표시다.
아기는 태어나면 울어야 한다. 울지 않으면 간호사가 엉덩이를 찰싹 때린다. 울어야 기도가 열려 코로 숨을 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도는 열렸으나 말을 하지 못하면 반드시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 보아야 한다. 영도 마찬가지다. 영이 살아나면 말을 한다. 그것이 방언이다.
둘째로, 영이 강하고 단단해지도록 전투 방언 기도, 곧 대적 방언 기도를 해야 한다. 여기서 전투방언기도라고 함은 방언으로 귀신을 쫓는 기도를 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렇듯 우리가 방언을 해도 대적 방언 기도를 계속하면 영권이 계속해서 올라가게 되어 있다. 이것은 참으로 비밀이다. 그러므로 방언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특히 방언 중에서 전투 방언 기도는 악한 영이 내 앞에 있다고 가정하고 싸우는 기도다. 그 기도를 할 때 보면 다른 사람이 볼 때에[ 내가 마치 미친 사람처럼 보이지만, 절대 정신이 나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신이 온전해진다.
그렇다면 왜 방언으로 싸워야 하는가? 귀신은 이 세상의 모든 언어를 다 알아듣지만 방언은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이다(고전 14:2). 그래서 우리가 방언으로 기도하면 귀신은 늘 '저게 무슨 기도를 하고 있지?' 한다. 그런데 일반적인 방언 기도를 통역해 보면 대부분 "나의 영혼을 불쌍히 여겨 주세요", "나의 어머니를 구원해 주세요." 같은 내용이 대부분이다. 필자가 수십 년, 길게는 40년 동안 방언을 해 온 분들을 통해서 조사해 보았는데, 방언 통역에 "귀신을 쫓아낼 능력을 주세요" 같은 기도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귀신을 앞에 놓고 방언으로 기도하면 그 영이 "주님, 이것을 오늘 처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저 놈을 죽일 수 있도록 저에게 힘을 주십시오." 하고 방언으로 기도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그래, 네가 싸움꾼이 되려고 하는구나' 하신다. 성경은 우리에게 싸움꾼이 되라고 한다. 영적 전사가 되라고 하신다(민 1:3).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무기도 들려 주시고, 영의 나이도 높여 주시고, 점차 강한 전신갑주로 나를 무장시켜 주신다.
그럴 때에 나의 영적인 무장 역시 갈수록 더 강해진다. 방패도 처음에는 30cm, 그다음에 50cm, 나중에는 자기 키만큼 커진다. 칼도 처음에는 30cm로 작지만, 60cm로 점점 길어진다. 필자가 측량해 보고 확인한 것이다. 바울이 말한 "믿음의 방패"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엡 6:16-17)이 실제로 그렇게 커지는 것이다. 고로 영을 강화하는 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전쟁에 능한 자가 결국 기업을 차지한다. 여호수아가 그랬고, 다윗이 그랬다. 다윗은 최고의 전사였기에 하나님께서 왕 노릇하는 자의 표상으로 인정해 주셨다.
8. 고난을 견디는 인내가 왜 영권을 끌어올리는 마지막 핵심인가?
다섯 번째 요소가 이번 시간의 핵심이다. 주님 앞에 쓰임받을 수 있기까지 겪어야 할 고난을 "주님, 저는 반드시 이 일을 하면서 겪는 모든 고난을 극복하겠습니다" 하는 강력한 자세, 곧 고난을 견뎌내는 인내다. 그러므로 축사 사역자가 되려고 하는데, 귀신을 쫓아내는데, 그리고 주님을 위해서 겪는 아픔을 견딜 수 없다고 하면 전투하는 영적 전사가 되지 못한다.
지난주에 어떤 권사님이 사역을 받으러 찾아오셨다. 안찰로 병을 고치는 일로 널리 알려진 기도원에서 오래 일하신 분이었다. 이미 500번, 800번 정도 회개 기도를 많이 하고 왔는데, 사역은 처음 받는 것이라고 했다. 처음 받으니 얼마나 그 속에 영이 많았겠는가? 처음 안수를 할 때는 영이 너무 많아서 머리에 불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불로 머리에 구멍을 뚫었다. 그러자 조금 있으니 불이 들어가 뜨거워지면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눕혀서 사역을 했더니 손가락이 닿는 곳마다 안 아픈 데가 없었다. 그러니 손이 바르르 떨렸다. 그러자 깔고 있는 매트를 손으로 꼭 붙드는 것이 아닌가!
보통 사람은 그쯤 되면 "그만, 그만!" 하고 말하든지, 아니면 제 손을 치우려고 시도한다. 그런데 이러한 축사 사역자를 한 번 만나기 쉽지 않으니 받기는 받아야겠다고 했는지, 그것을 참아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너무 아프면 '이분도 이제 더 못 참고 벌떡 일어나든지 내 손을 뿌리치든지 하지 않겠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분은 끝까지 버텼다. 회개를 했는데도 나가지 않은 강력한 영들이 있는데, 그것을 필자가 내보내려고 강력하게 고문을 하니,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그분에게 찾아온 것이다. 그래도 그분을 그것을 참아 내었다. 그분이 말했다. "목사님을 언제 또 만나겠습니까? 오늘 이것을 다 뿌리 뽑고 내 자식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 고통을 참아내겠습니다. 목사님 말씀을 100% 믿고 있으니, 염려 말고 다 뽑아 주십시오." 그리고 매트를 붙잡고 견디었다.
그러자 주님께서 사역자를 통해서 "등 뒤를 보라" 하셨다. 그래서 등을 살펴보니 그의 등에 귀신의 집이 있었다. 그 귀신의 집을 쇠망치로 깨뜨리고, 특수 드릴 같은 것을 사용해 갈아 버리고 다 쓸어 담아 덤프트럭으로 실어 보낸 뒤 물로 청소하였더니, 그 자리에 장미꽃과 개나리꽃과 여러 꽃들이 활짝 피었다. 그 속에 얼마나 영이 많았던지 수천 마리의 영들을 다 끌어다가 음부에 처넣었다. 그래서 그날 하나님께서 그 권사님의 다섯 개 귀신의 집 가운데 등에 있는 것을 갈기갈기 파괴해서 없애 버리신 것이다. 필자는 '아, 그것이었구나!' 하고 깨달았다. 주님을 위해서 기꺼이 고난을 감당하는 것, 이것이 결국 그 사람의 능력이 되는 것이다.
필자가 능력을 받게 된 것도 그런 측면이 있었다. 필자는 2022년에 귀신의 공격을 받아 6개월 정도 엄청나게 힘든 상태에 있다가 스승을 찾아가 사역을 받았다. 필자 속에는 실로 어마어마한 영들이 있었다. 대사급이 한 방에 수천 명이 들어 있었다. 그러니 그것을 쫓아낼 때에 내 몸은 얼마나 아팠겠는가! 눈도 아프고, 머리도 막히고, 가슴도 아팠다. 손과 발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고통으로 가득했다. 가슴을 누르면 멍이 들어 점이 생기기도 했다. 그런데도 한 번도 스승의 손을 치우지 않았다. 보통 사람은 몇 번이면 되는데, 필자는 이 일을 밤을 새워 가면서 무려 45번이나 받았다. 그리고 그날 귀신의 집이 전부 파괴되었다.
그렇게 해서 필자 속에 있는 영들을 다 뽑아내자 이제 그만할 줄 알았다. 그런데 더 뽑아낼 것이 없자, 이번에는 교회의 영을 내 머리와 손에 다 불러들였다. 교회에 있던 호랑이도, 코끼리도, 지하의 장군 같은 것들도 필자의 몸속으로 들어왔다. 그것을 뽑는 데는 더 아팠다. 그래도 참았다. 왜냐하면 내 교회에 귀신이 있다면 우리 성도들을 해칠 것이니, 목사가 되어서 그 고통은 내가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금 있으니 이제는 가족의 것들, 어머니의 것, 아들의 것, 딸의 것들과 심지어 상담한 성도들의 영들까지 불러들였다. 가족의 것과 교회의 성도들의 것까지 다 집어넣었다가 또 빼니 얼마나 아팠겠는지 상상해 보라. 그래도 견뎌냈다.
그러자 스승께서는 목사님은 사역자가 될 것이니 "지금부터는 십자가에 못 박기를 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십자가에 못 박기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여쭈니 "나만이 아는 방법입니다. 능력을 받게 하는 데 필수적인 과정입니다"라고 하셨다. 누우라고 하시더니 발가락을 탁 잡고 손가락으로 짓눌렀다. 천불이 나는 것 같았다. 스승은 손톱이 길고 손도 필자의 손보다 두 배 정도는 두꺼우셨다. 허리가 휘어 땅에서 들려 올라갈 만큼 아팠다. 그래도 참았다. 그런데 상상할 수 없는 고통도 계속 참으면 어느 정도 지나서는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때가 왔다. 그러면 스승께서는 그걸 아시고 다른 발가락을 또 누르셨다.
"왜 이렇게 하십니까?" 하고 여쭈었더니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예수님도 죄가 없으신데 그런 고통을 당하신 것처럼, 목사님도 성도를 위하여, 남을 위하여 고통을 당하셔야지요. 그래야 진짜 종이 되지 않겠습니까?" 맞는 말이었다. 함께 받던 사모들은 벌벌 떨었고, 어떤 사모는 사역을 받고 나면 얼굴의 핏줄이 터지기도 하였다. 사모들에게는 감당하기에 너무 큰 고통이었다. 그래서 이 훈련은 먼저 남자 사역자들에게 필요하다고 본다. 앞으로 "나는 주의 종의 길을 가고 싶습니다"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필자가 십자가 못 박기 훈련을 반드시 행할 것이다. 그 고통은 숨이 막히고 허리가 휠 만큼 크다. 그러나 필자는 그 고통을 참아낸 것이 필자에게 내게 능력으로 온 것 같다. 지난주에 그 권사님이 가시는 것을 보면서 그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필자는 왜 그런 상태까지 가면서도 참아냈을까? 필자가 확인해 보니 천국에 있는 필자의 집 1층 탁자 위에 세 개의 면류관이 놓여 있었다. 충성의 면류관, 승리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이다. 야고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약 1:12)이라고 하였고, 주님께서는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고 하셨다. 그리고 필자의 어머니가 2025년 12월 2일에 천국에 가셨는데, 천국에서 어머니를 만났을 때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힘을 잃지 말고 힘을 다해, 용기를 다해 끝까지 악한 마귀와 싸워 이기거라. 내가 예수님께 부탁하여 하늘에서 강한 천군 천사를 계속 보내 달라고 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계속 더 강해질 것이다. 이 시대에 영적 전사를 만들 사명이 필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오셔서 아마겟돈 전쟁(계 16:16)에 함께 참여할 자를 뽑으실 때, 귀신이 없는 전사를 뽑으신다. 요한계시록은 백마를 타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하늘의 군대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다(계 19:14). 필자는 이 땅의 영적 전사들이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서 어떻게 되는지를 다 보았다. 이것은 필자 한 사람이 아니라 이 대한민국 욕단 민족에게 허락하신 최고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어느 민족이 이 일을 하겠는가? 우리나라는 무당이 자기 버선을 벗고 작두 위에 올라가 날아다니듯 하는 나라다. 어떤 무당은 칼로 자기의 목을 썰기도 한다. 그런데 베이지 않는다. 왜 베이지 않는가? 그것은 뱀이 목에 착 달라붙어 있어서 그렇다. 그리고 작두 위에는 자기들의 몸을 엎드리고 있어서, 무당에게 상처가 나지 않도록 보호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령한 무당들은 작두 위를 그냥 달려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그처럼 징그러운 뱀들과 귀신들이 가득가득 찬 나라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이 나라에서 일하게 하시는 것이다. 바울도 디모데에게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 2:3)고 하였다. 그리고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고난과 영광을 이렇게 비교한다(롬 8:18).
롬 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고로 마지막에 영광을 얻기 위하여 고난도 달게 받아야 한다. 이처럼 주님을 위하여 고난을 받을 각오가 된 사람은 축사의 길을 갈 것이다. 그런 각오가 되지 않은 사람은 찬양을 열심히 하거나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치거나 음식을 잘 준비하거나 하는 등 다른 일로 섬기면 된다. 축사는 그만큼 강력한 고난을 통과해야 하는 길이다.
9. 나오며
필자는 날마다 말씀 준비도 해야 하고, 또한 일주일에 3일은 축사 사역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잔다. 축사 사역은 사실 말씀을 전하는 것보다 3~5배의 에너지가 사용된다. 그래서 힘들다. 그래도 필자는 너무나 기쁘다. 필자가 어려웠을 때 정말 도와준 분이 있어서 너무너무나 기뻤다. 그런데 예전에는 내가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괴로웠던 필자가 이제는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도와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오면, 필자가 살아 있는 날까지 그에게 귀신을 쫓아주고 귀신을 쫓아낼 능력자가 되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필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다 하시는 것이지만, 필자는 그런 각오로 이 싸움에 임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영권을 높이기를 원하는 분들은 이번 시간에 나눈 다섯 가지 요소를 꼭 기억하자. 정결한 몸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의 뜻과 경륜을 알아야 한다. 귀신과의 싸움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영을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고난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다섯 가지를 붙들면 누구든지 영적 전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일꾼, 곧 영적 전사가 되기 위하여 애쓰지만 그 단계에 도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어떠한 고난이 오더라도 '주님의 십자가 고난은 이보다 더하셨을 것이다' 하는 믿음으로 참아 내며 주님의 뒤를 따라가다 보면, 주님께서는 그런 자에게 능력과 은사를 주실 때가 온다. 앞서 간 발자국을 따라가면서 나도 9부 능선까지 올라가자. 그래서 우리 모두가 그런 능력과 은사를 받아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받는 영적 전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6년 10월 30일(금) · 정보배 목사
![이번 주 말씀 [금요기도회] 자신의 영권을 끌어올리기 위해 꼭 필요한 5가지 요소는 무엇인가?(롬8:17~18)](https://i.ytimg.com/vi/L9LAdqk0zcs/mqdefault.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