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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히브리서강해(20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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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gv8RFfXWaGA
날짜 2024-06-12
본문말씀 히브리서 10:1~31
설교자 정보배목사

2024-06-05(수) 수요기도회

제목: [히브리서강해(10)] 영원한 제사와 구원탈락에 관한 네번째 경고(히10:1~31)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gv8RFfXWaGA

 

1. 들어가며

 

  구약시다에는 날마다 제사를 드렸다. 아침마다 상번제를 드렸다. 그리고 안식일과 절기가 되면 더 많은 제사를 드렸다. 그러므로 성막(성전)은 온통 피비린내가 날 지경이었다. 왜냐하면 양과 염소의 피가 실제로 사람의 죄를 없애주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참 제사에 대한 모형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것을 히브리서 기자가 정확히 간파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히브리서 10장에 기록해 두었다. 그래서 우리도 이제 히브리서 10장의 말씀을 통하여, 불완전한 옛 언약의 그림자를 넘어선, 완전한 새 언약의 진리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구약의 제사장과 제사는 어떤 것이었는가? 그것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와 그분이 이루실 구원을 예표하는 모형이었다. 그것도 불완전한 모형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되었어도 여전히 구약의 불완전한 그림자에 갇혀 완전한 실체를 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 새 언약의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고의적으로 죄를 짓고 회개를 거부함으로써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과 심판을 벌고 있는 성도들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히브리서 기자가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들을 따라가면서, 완전한 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리신 영원한 속죄 제사가 무엇이며, 그 제사를 통해 우리가 얻는 담대함과 자유, 그리고 고의적인 죄를 짓는 자에게 임할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깨닫기를 바란다. 

 

2. 히브리서 9장과 10장의 핵심 내용은 무엇이며, 이 두 장은 어떤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9장과 10장에 어떤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가? 그는 구약제사 곧 옛 언약의 불완전한 제사가 무엇인지를 드러내고, 새 언약의 중보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리신 단번에 영원한 속죄 제사가 얼마나 완전하고 그 효력이 강력한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9장과 10장은 마치 한 몸처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먼저, 히브리서 9장은 옛 언약 아래에서 드려진 제사, 곧 땅 위에 세워진 성막과 그 안에서 드려지던 짐승의 피 제사가 가진 한계와 불완전함이 무엇인지를 먼저 설명한다. 왜냐하면 구약에 드려진 짐승의 피는 죄를 일시적으로 덮을 뿐 양심을 깨끗하게 하지 못하는 것이었고, 제사는 매년 반복되어야 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모든 제사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그림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0장은 바로 이러한 9장의 내용을 이어받아, 그리스도의 제사가 왜 율법의 제사보다 훨씬 더 우월하고 완전한지를 본격적으로 논증하기 시작한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짐승의 피가 아닌 자신의 몸을 단번에 제물로 드려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기에, 더 이상 죄를 위한 다른 제사가 필요 없게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한편 히브리서 10장의 후반부에는 이 완전한 제사를 통해 구원받은 자들이 고의적인 죄를 지을 경우 그 사람에게 임할 심판에 대한 엄중한 경고를 들려준다. 그리고 구원의 여정은 처음 믿었을 때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적인 믿음과 책임있는 순종을 통하여 지속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따라서 히브리서 9장이 ‘왜 옛 제사가 불완전한가’를 설명하고 있다면, 10장은 ‘그리스도의 제사가 왜 완전한지 그리고  그 완전한 제사를 믿음으로 받아들인 우리가 장차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하는 것이다.

 

3. 율법의 제사와 그리스도의 제사는 어떠한 근본적인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가?

  율법의 제사와 그리스도의 제사는 사실 ‘단번에 드리느냐, 반복하여 드리느냐’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다. 먼저, 율법 하에 드렸던 제사는 그 한계 때문에 매년 반복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히 10: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히 10:3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왜냐하면 율법의 제사는 장차 올 좋은 일, 곧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사를 보여주는 ‘그림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고로 구약시대에 드려진 짐승의 피는 죄를 온전히 없이 하지 못했기에, 제사를 드릴 때마다 백성들 또한 자신의 죄를 다시 기억해야만 했다. 반면, 그리스도의 제사는 죄를 영원히 없애는 ‘참 형상’, 즉 실체 그 자체의 제사였다.

히 10: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이때 그리스도께서는 짐승의 피가 아닌 자신의 몸을 단번에 제물로 드려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사실 그분은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은 죽음과 부활을 통해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가지셨다. 따라서 인류에게네는 더 이상 죄를 위한 다른 제사나 반복적인 제사가 필요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율법의 제사는 죄를 덮을 뿐이었으나, 그리스도의 제사는 죄를 완전히 용서하시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모든 막힌 담을 허무셨기 때문이다.

 

4. 예수께서는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려 오셨다고 했는데(마 5:17), 이것이 율법의 제사(의식법)와 십계명(도덕법)에 어떻게 다르게 적용되는가?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5장 17절에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무슨 뜻인가? 그분은 율법을 폐지하신 것인가 아니면 완성하신 것인가? 이 말씀은 사실 율법의 두 가지 큰 줄기인 ‘의식법’과 ‘도덕법(십계명)’에 따라, 하나는 완성하심으로 폐지하신 것이며, 또 하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믿는 우리들에 의해 완성해 나가야 할 것들이다. 

  첫째, 예수께서는 그날 의식법(제사법, 할례법, 안식일법, 절기법, 음식법, 정결법 등)을 완성하심으로 폐지하셨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실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어떤 일을 성취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모형에 불과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실체이신 예수께서 오셔서 율법의 모든 제사 규정과 할례, 그리고 안식일준수와 절기법 그리고 음식법과 정결법 등의 모든 ‘의식법’들은 친히 그 모든 의미를 성취하심으로 폐지하셨다. 왜냐하면 의식법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이루실 구원을 예표하는 그림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월절 어린양의 피 제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 본체가 오셨기에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게 되었다(고전 5:7). 안식일도 예수님께서 참된 안식의 주인이 되심으로, 예수님 안에서 그 안식을 누리면 된다(마 11:28).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 성도들은 명태나 오징어와 같은 부정한 음식을 먹어도 죄가 되지 않으며, 토요일 안식일을 지키지 않아도 죄가 되지 아니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의식법을 폐지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완성하여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게 하시기 위해 오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율법 중에 의식법들의 멍에에서 이미 벗어난 상태에 있다.

  그러나 둘째, 예수께서는 도덕법(십계명)은 한층 강화하셨다. 그렇다. 예수께서 오셨지만 ‘도덕법’의 계명으로서 십계명은 결코 폐지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통해 더욱 강화되었을 뿐이다.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가지고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될 것”(마 5:21-22)이라고 한층더 강화하셨고,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넘어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이미 마음에 간음하였느니라”(마 5:27-28)고 가르치심으로 도덕법을 더 강화시키셨다. 이는 십계명이 단순히 외적인 행위만을 규율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의 영역까지 확장되어야 함을 보여주신 것이다.

  사실 구약의 율법들은 그것을 지키지 못하는 인생들에게는 자신이 지은 죄를 깨닫게 하는 기능만 발휘한다. 하지만 죄 된 본성을 이겨서 율법을 지킬 수 있는 힘까지는 주지 못했다(롬 7:7-25). 그렇지만 예수께서는 성령을 통해 우리가 율법의 의로운 요구를 이룰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다. 로마서 8장 3-4절을 보라.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는 율법의 요구를 절대 충족시킬 수 없지만 그 영이신 성령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얼마든지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바울은 말한다. “육신을 따르지 아니하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이다. 즉, 내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성령의 인도를 따르며, 회개를 통해 내 육체 속에 있는 귀신을 뽑아낸다면, 우리는 비로소 십계명을 온전히 지키며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5.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성도가 고의적으로 죄를 범하고 회개하지 않을 때, 어떠한 심판이 임하는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성도가 만약 고의적으로 죄를 범하고 회개하지 않을 때에는 어떻게 되는가? 그때에는 이미 믿었던 믿음 때문에 그의 죄가 용서받게 되는가?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그에게 훗날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임할 뿐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이를 믿는 자들에게 대한 배교의 ‘네 번째 경고’를 통하여, 구원에서 탈락할 가능성에 대해 매우 강한 어조로 경고한다. 

히 10: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히 10: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여기서 “짐짓 죄를 범한즉”이라는 말은 실수로 죄가 지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고 예수님을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죄 가운데 머물며 회개를 거부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고범죄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우상숭배의 죄가 있다. 조상 제사, 부처, 무당, 미신 잡신을 섬기는 행위는 하나님을 질투하시게 하는 심각한 죄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성령 훼방죄가 있다. 성령의 역사를 의지적으로 부인하고 거부하는 죄는 용서받기가 어렵다. 셋째는 배도의 죄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지만 나중에 그분을 의지적으로 버리고 교회를 떠나 세상으로 돌아가는 죄를 지으면 용서받기가 사실상 어렵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렇듯 고의적인 죄를 범하게 된다면, 그에게 속죄하는 제사가 다시 없게 된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는 회개하는 자에게만 계속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죄를 짓고도 회개를 거부하는 것은 예수님의 보혈을 짓밟고 성령을 모독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에(히 10:29) 잘 용서가 아니 된다. 왜냐하면 모세의 율법을 범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했는데(히 10:28),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받을 형벌은 어떠하겠는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중할 처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고범죄를 저지른 자들에게는 오직 심판을 기다리는 무서운 마음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6. 구원의 여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은 성도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며, 어떻게 구원을 이루어가야 하는가?

  구원의 여정이 믿는 순간에 끝난 것이 아니다. 이제 시작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 순간 이미 구원을 받은 것이기는 하지만, 그 상태가 영원히 안전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얼마든지 신앙을 부인한다든지 죄를 짓고도 죄를 회개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이미 믿음과 회개를 통해 구원을 받았다고 해도 끝까지 방심해서는 아니 된다. 인내와 소망으로 구원을 성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롬 8:24-25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음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란다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사도 바울은 말한다. 우리는 구원을 받기는 받았지만 “소망으로 얻은 자”라고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이렇게 해서 받은 구원이 최종적으로 완성될 때까지 두렵고 떨림으로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가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빌 2:12). 이는 우리가 마지막에 죽는 그 순간까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의 지조를 지켜야 하며, 맡겨주신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인내하고, 보이지 않는 영원한 천국의 상급을 소망하며 나아간다면, 우리는 언젠가는 비로소 구원의 여정을 성공적으로 마칠 날이 오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나도 어느샌가 영광스러운 기업을 상속받는 ‘이기는 자’가 되어있을 것이다. 구원은 믿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은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되는 여정이었던 것이다. 

 

7. 나오며

  이번 시간에 우리는 히브리서 10장 말씀을 통해, 불완전한 옛 언약과 제사를 뛰어넘는 완전하고 영원한 새 언약의 진리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죄인 된 우리를 위해 흠 없는 자신을 단번에 제물로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놀라운 은혜를 값없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고의적으로 죄를 범하고 회개를 거부한다면,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우리는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하다”는 잘못된 가르침에 빠져 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경고한다. 구원의 여정은 믿음으로 시작하지만, 마지막까지 순종과 회개, 인내로 이루어가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므로 믿음을 존속시킬 의무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 의무 그리고 지은 죄를 회개해야 책임과 어떠한 고난과 핍박도 이겨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피로 얻은 영원한 속죄를 또 붙잡고, 또 붙잡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날마다 내 삶을 돌아보며 죄를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말씀에 순종함으로 구원의 여정을 끝까지 성취해야 한다. 그래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만을 따르고,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의 지조를 끝까지 지켜야 한다. 그리하여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에 영광스러운 ‘이기는 자’로 설 수 있도록 그래서 하늘에서 기업을 풍성히 상속받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설교요약] 본 설교는 히브리서 10장을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 제사와 구원 탈락에 관한 네 번째 경고를 다룬다. 첫째, 히브리서 9장과 10장은 옛 언약의 불완전성과 그리스도의 단번의 속죄 제사(히 10:12)의 완전성을 대조한다. 둘째, 예수님은 율법의 의식법(제사, 할례, 안식일 등)을 완성하여 폐지하셨지만, 십계명(도덕법)은 강화하셨다(마 5:17-18). 율법의 의로운 요구는 성령의 인도와 회개를 통한 귀신 축출로 이루어진다(롬 8:3-4). 셋째,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라도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고의적으로) 죄를 범하면'(히 10:26)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무서운 심판과 맹렬한 불만 기다린다(히 10:27). 이는 우상숭배, 성령 훼방, 배도 등 의지적인 죄와 회개 거부를 포함한다. 넷째, 구원의 여정은 믿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시듯(히 10:30) 마지막까지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가야 하는 책임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얻은 구원을 붙잡고 회개와 순종으로 인내하며 믿음의 지조를 끝까지 지켜야 한다(롬 8:24-25, 계 14:12).

 

 

2024년 06월 05일(수)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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