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과연 여호와 하나님인가?(마3:1~12)_2018-11-18

by 갈렙 posted Nov 1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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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3ANEmhoQyHI
날짜 2018-11-18
본문말씀 마태복음 3:1~12(신약 3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삼위일체,한분하나님,여호와와예수님,예수님이여호와이신가,예수님이하나님이신증거,예수님이구약의여호와인증거,처음이요마지막이신하나님,보좌에계신예수님

  예수님이 하나님이신가? 그렇다. 이것에 대해 부정하는 성도는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여기서 "거의"라는 말은, 끝까지 예수님을 오직 하나님의 아들로만 믿으려는 분들도 더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이 여호와이신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에, 그렇다고 대답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후자의 사람들 중에 여호와증인이 있고, 지금의 유대인들이 있다. 이들은 오직 여호와만 홀로 유일한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알아야 하며,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한다(요17:3). 그러므로 구약시대에는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분이 앞으로 보내주실 메시야(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여서 구원을 받았다. 그런데 오늘날 삼위일체론자들 중에는 "예수가 여호와이시다"라는 말을 믿지 않고 동의하지 않는 분들이 더러 있다. 그들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계신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들은 아버지는 아들이 아니고, 아들은 아버지가 아니며, 아버지는 성령이 아니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예수가 여호와이시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정의가 성경적인 정의라고 할 수 있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예수님이 과연 여호와이신가"를 성경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우리가 믿어야 할 한 분 하나님이 누군지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보고자 한다.

 

1. 들어가며

  예수님이 과연 여호와이신가? 삼위일체신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분들이 있다. 왜냐하면 여호와는 아버지 하나님이며, 예수님은 아들 하나님이신데, 두 분은 하나님으로서는 같지만 인격으로는 서로 구별된 존재이기에, 여호와는 예수님이 아니며, 거꾸로 예수님은 여호와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은 어떠한 분인가? 성경에서는 구약에도 아들 하나님이 있었다고 증거하고 있는가? 그리고 지금 천국에 올라가면 천국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3개가 있어서, 그것들 중 가운데에는 성부 하나님이 앉아 계시며, 오른쪽에는 아들 하나님이 앉아 계시고, 왼쪽에는 성령 하나님이 앉아 계시는 것인가? 만약 혹 우리가 이러한 신관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중세론적 삼신론 신관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천국에서 하나님은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천국에 올라가서 우리는 세 분 하나님을 경험하지 않는다. 단지 한 분 하나님만 경험한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실 때에는 여호와로도 계시하셨고, 아들로도 계시하셨으며, 영으로도 계시하셨다. 그리고 신약시대에는 하늘에는 아버지가 계시고 땅에는 예수님이 계셨으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예수님 위에 내려오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동시존재가 가능하신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떤 피조물도 흉내낼 수 없는 하나님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속성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그동안 논란이 되었던 삼신론과 삼위일체론 그리고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성경적인 견해를 예수께서 여호와이신가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만약 삼위일체 하나님을 잘못 이해하게 되면 삼신론 이단에 빠질 위험성이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하나님을 과정론적으로 이해했다가는 양태론이단에 빠질 위험성이 있기에 주의하면서 공부해야 한다.

 

2. 삼신론과 삼위일체론 그리고 양태론 이단이란 어떤 것인가?

  삼신론이란 하나님을 세 분으로 믿는 신관을 가리킨다. 하나님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삼위일체론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 삼위일체론은 하나님을 한 분이지만 세 위격으로 존재한다고 믿는 신관이다. 즉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존재하시는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하나님으로서는 같아도 그들간에 인격적인 구별이 있어서 다르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이것에서 조금 잘못 나가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하나님으로서는 같지만, 성부는 성자가 아니며, 성자는 성령이 아니며, 성령은 성부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신관을 믿고 있는 자는 예수님은 하나님이지만 여호와는 아니라고 말하게 된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신관은 성경과 완전히 일치하는 신관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삼위일체 신관을 가지고 있는 분들의 가장 큰 실수가 있다면, 그것은 사람이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분들에게는 구약시대에는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지 물어봐야 한다. 구약의 사람들 곧 아담이나 노아,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 모세와 다윗과 다니엘과 같이 인물들은 과연 삼위일체 신관을 믿고 구원받았는가를 말이다. 구약시대에 살았던 어떤 신앙의 위인들도 삼위일체 신관을 가진 자가 없었다. 그들은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을 믿었으며, 오실 메시야를 믿고 회개하여 구원을 받았다. 그들은 누구도 하나님에게는 아버지가 계시고 또한 아들이 있으며, 그리고 성령님이 계시는데, 이러한 세 분은 하나님으로서는 같지만 서로 다른 인격을 갖춘 구별된 하나님이라고 믿지 않았다. 구약성경 중에서 몇몇 구절만 살펴보자.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은 오직 유일한(one) 여호와이시니(신6:4)"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유일하신(alone)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사37:1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사44:6)"

  그렇다. 구약의 성도들 중에 단 한 사람도 삼위일체 신관을 가진 자가 없었다. 모두다 한 분 하나님을 믿고 회개하여 천국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여호와인가는 질문을 던졌을 때,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심각하게 자신의 신앙을 고민해봐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삼위일체신관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게 대답하는 것이라고 말은 하겠지만 사실은 삼신을 믿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태론이라는 이단도 있다. 하나님은 한 분인데 그 모습을 달리한다는 신관이다. 이는 하나님을 한 분인 것을 강조하다보니, 신약시대에 아버지도 계시고 아들도 동시에 존재하며 인격적으로 구별되어 존재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구약시대에는 여호와이셨지만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이라고 주장한다. 여기까지는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이제부터 달라진다. 그러니까 여호와께서 예수님이 되셨으니, 예수께서 아버지께 기도한 것은 예수님이 자기에게 기도한 것이며,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받고 죽으신 것은 여호와께서 고난받고 죽으신 것이라고 생각해 버린다. 이것을 일컬어 신학자들은 "성부고난설"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어떤 분은 예수님의 피가 곧 하나님의 피이니, 하나님이 피를 흘리셨다고 말하는데, 하나님은 피를 가진 육체적인 존재가 아니니,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셨다고 말해야 한다. 고로 십자가상에서 고난받으시고 피를 흘리신 분은 아들 예수님이지, 아버지가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구약시대까지만해도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인성을 가진 적이 없으셨던 것이 사실이다. 구약시대까지 하나님은 오직 신성만을 가지고 계셨던 것이다. 그런데 그분의 마음 속에는 이미 독생하신 하나님 곧 아들이 있었다(요1:18). 그러다가 그분의 마음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이 세상에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내신 것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러니까 굳이 표현하자면, 구약시대에 예수님은 여호와로 존재하고 있던 하나님이셨고, 신약시대에 비로소 육신을 입고 하나님이 아들이 되어 오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항상 하늘에도 계시고 이 땅에도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고난받으신 분은 분명 아들인 것이지 아버지는 아니다. 물론 예수 안에 아버지가 계셨으니 그 마음은 오죽했으랴마는 실제적으로 고난받으신 분은 아들이시다. 이는 신성만을 가진 하나님은 고난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직 인성을 가진 사람만이 고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오직 인성을 가진 자만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고난받고 죽으시기 위해서 사람이 되어오신 것이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사람이 되신 하나님인 것이다. 그렇다면 구약에는 예수님이 안 계셨는가? 인성을 가지신 예수님은 아직 안 계셨시지만 구약시대에 예수님은 여호와라고 불리운 분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까 말이다.

 

3. 예수님이 과연 여호와이신가?

  그런데 오늘날에 예수께서 여호와가 절대 아니라고 하는 이단이 있다. 그들은 바로 "여호와증인"이라는 이단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 이나한다. 그들은 예수님을 단지 피조물로 본다. 그리고 가장 위대한 예언자로 보거나 미가엘 천사장 정도로 본다. 하지만 단언컨데 이들은 절대 천국에 못 들어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메시야이자 하나님의 아들(또는 하나님)으로 믿지 않는 자가 천국에 올라갈 리가 없기 때문이다. 천국에 가보라. 하나님의 보좌에 누가 앉아계시는가? 그 보좌에는 33년반의 생애를 살다가 승천하신 예수께서 앉아 계신다(계22:13,16, 21:5~6). 그렇다면 구약시대에 육신을 입으신 예수께서는 아직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분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분은 구약시대까지만해도 예수님은 신성을 가진 하나님으로만 존재하시고 있었다.

  한편, 안타깝게도 한 분 하나님을 믿었던 유대인들(현재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직도 여호와만 유일한 하나님으로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셔서 구약의 모든 예언을 성취하시고 유월절양이 되시어 죽으시어 속죄제사를 완성했는데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구원받기란 여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되어서 "예수님이 여호와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은 적어도 다음과 같은 4가지 이유가 있다.

 

가. 신약성경의 구약인용구절에 등장하는 "주(퀴리오스)"라는 용어는 모두가 다 "여호와(혹은 애훼,야웨)"인데, 신약의 성도들은 "주"라는 호칭을 다 예수님에게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약의 여호와가 곧 예수님인 것이다.

  신약성경에는 구약성경을 인용하고 있는 인용구들이 종종 등장한다. 특히 선지자의 글괴 시편의 글이 많이 인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인용구절을 살펴보면, 구약성경에는 분명 "여호와"라고 나와있는 것을 신약성경에서는 단 한 번도 "여호와"로 인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왜 그럴까? 2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신약성경의 기록자들이 구약성경을 인용할 때에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성경(맛소사 사본)을 인용한 것이 아니라 이미 헬라어로 번역되어 있는 70인역성경(헬라어 구약성경)을 인용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히브리인들은 이미 B.C.200~300년경에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해놓은 성경(70인역=LXX)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70인역성경 번역에 참여했던 히브리 성서학자들은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이름(여호와 혹은 야훼였을 것이다)을 전부다 "주(아도나이)"이라는 용어로 바꾸어서 번역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않기 위해서다. 또 하나는 신약에 들어와서 한 분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미  예수님으로 오셨기에, 여호와를 주라고 번역한 것이다. 그리하여 현재 예수님이 바로 구약의 여호와인 것을 그대로 증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에는 여호와라는 명칭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 구약시대에 여호와라고 불리어졌던 한 분 하나님께서 이제 육신을 입고 아들의 신분으로 오셨기에, 예수님에게 "여호와"를 의미하는 "주"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특히 구약성경에서 "여호와"께서 행하실 것이라고 예언되어진 말씀을 신약의 예수님께서 오셔서 다 성취했기에 우리는 여호와가 예수님이라고 하는 데에 의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첫째, 사40:3에서는,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오실 길과 하나님의 대로를 준비하도록 당신의 사자를 먼저 보내시겠다고 예언하고 있는데, 마3:3에 보니, 세례요한이 먼저와서 주(여호와)의 오실 길을 예비하고 있다고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구약의 여호와가 예수님이신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말3:1에서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언약의 사자를 보내서 여호와의 앞 길을 예비케 한다고 되어있는데, 신약의 마3:3에 보면, 세례요한이 언약의 사자로서 먼저와서 주(여호와)의 앞 길을 예비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시118:24~25에 보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고 하는 찬양이 나오는데, 마21:9~10에 보니, 이 시편예언이 이제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있는 예수님에게 그대로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입성을 지켜보는 군중들이 찬양소리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고 했기 때문이다.

넷째, 슥11:4에 보면, 여호와의 값으로 은30이 책정되었다고 언급되어 있는데, 마26:14~16에 보면, 예수께서 은30에 팔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호와가 곧 예수님이신 것이다.

다섯째, 슥14장에 보면, 여호와께서 재림하시되(슥14:5) 감람산으로(슥14:4) 재림하신다고 예언되어 있지만, 요한계시록과 행1장에 보면, 재림하시는 분은 어린양되신 예수님(계19:11~16, 17:14)이시며, 그분이 감람산으로 오실 것(행1:11~12)이라고 천사가 말했기 때문이다.

여섯째, 사68:18에 보면, 여호와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를 취하시고 선물을 주셨다고 되어있는데, 엡4:7~10에 보면, 예수께서 승천하시시어 사로잡은 자를 취하시고 선물을 주셨다고 보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곱째, 욜2:32에 보면,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되어있지만, 이것이 성취되고 있는 신약성경을 보면 "누구든지 주(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으리라(롬10:13)"고 인용함으로서, 신약시대에는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불러야 구원을 받는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많은 곳에서 구약의 여호와를 신약의 예수님에게 적용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나. 예수께서 직접 스스로 당신이 구약의 여호와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가 오늘날 육신을 입고 오셨던 예수께서 구약의 여호와인 것을 알 수 있는 증언들이 있는데, 예수께서도 직접 자신을 구약의 여호와라고 언급하셨다는 사실이다(요8:24,28,58). 그렇지만 구약시대 가운데 족장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그들에게 일러주지 않았다. 아담이나 노아, 아브라함이나 이삭과 야곱같은 족장들은 하나님을 단지 "전능하신 하나님(엘샤다이)"라고 알고 있었던 것이다(창17:1, 28:3, 35:11, 출6:3). 그런데 출애굽 때에 하나님께서 비로소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을 가르쳐주신다. 그 이름은 "여호와"였다(출3:14). 즉 그것은 "예흐예 아쉐르 예흐예("스스로 있는 자" 혹은 나는 ~라고 하는 자"라는 뜻)였다(출3:14,15).

  그런데 신약에 들어와 유대인들과의 논쟁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이 누군지를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일 너희가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가 여전히 죄들 가운데서 죽으리라(요8:24)" 그렇다. 그분은 자신을 "내가 그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말은 "예흐예 아쉐르 예흐예"라는 말과 동일한 표현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내가 여호와인 줄을 믿지 아니하면 너희가 여전히 죄들 가운데서 죽으리라는 말씀인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을 여호와로 인정하지 않는 여호와증인들은 이 본문을 아예 "내가 그 사람인 줄"이라고 오역해 놓았다. 또한 여호와증인들은 아기이자 아들로 오신 예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는 아버지라고 예언되어 있는 사9:6의 말씀을 가르치지  않으며 나와도 슬쩍 넘어간다.

 

다. 여호와의 특수한 명칭과 신약의 부활승천하신 예수님의 특수한 명칭이 서로 일치하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가 예수께서 구약시대에 여호와인 것을 알 수 있는 또다른 방법이 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칭호에 사용했던 독특한 표현을 부활승천하신 예수께서도 동일하게 사용하고 계시다는 것 때문이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전능자, 구원자, 구속자, 창조주, 자존자(홀로 계신 이), 홀로 한 분" 등으로 표현하셨다. 그런데 이러한 표현 말고 또다른 독특한 표현이 하나 더 있으니 그것은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하는 표현이다. 이것은 이사야서에 나온다(사41:4, 44:6, 48:12).

  그런데 놀랍게도 부활승천하신 예수께서 천국에서 자신에 대하여 이와 똑같은 표현을 사용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렇게 자신이 누군지를 선언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계22:13)"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계1:17~18)" 그렇다. 하늘에 계신 예수께서는 자신의 명칭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곧 자신이 구약시대에 여호와라고 자신을 계시하셨던 한 분 하나님이 곧 자기자신인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라. 천국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에 예수님이 앉아계시기 때문이다.

  더욱이 놀라운 사실은 부활승천하신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시다는 사실이다. 그분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어떻게 감히 하나님의 유일한 보좌에 그분이 앉아계실 수가 있다는 말인가? 예수께서는 분명 자신을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이요 마지막이며, 시작과 마침"이라고 하셨다(계22:12). 그런데 보좌에 앉아 계신 이가 또한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라(계21:5~6)"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보좌에 앉아 계신 이가 우리 주 예수님이신 것을 말해준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있는 보좌에 앉아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후 승천하여 하나님의 우편 혹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말은 다 상징적인 표현이다. 이것은 모든 신학자들이 동일하게 해석하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맨 마지막에 가서는 하나님의 보좌를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라고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계22:1,3). 이것은 보좌가 한 개뿐인데 이 보좌가 하나님의 보좌이면서 어린양의 보좌라는 표현이다. 그렇다. 천국에 하나님의 보좌는 단 한 개 뿐이다. 이 보좌에 예수님이 앉아계시는 것이다.

  그러나 이 표현이 사도신경에 들어옴으로 인하여 더욱 문제를 부추기고 말았다(적어도 하나님을 두 분으로 만든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실제의 사실만을 언급하고 있는 사도신경의 신앙고백 중에 예수님에 대한 항목에서,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라는 표현을 집어넣음으로(처음 사용되었던 사도신경에는 이 표현이 없었는데, A.D.381년 콘스탄티노플신조에 삽입되었다), 상징이 실제적인 것처럼 묘사되어버린 것이다. 더욱이 안타까운 것은 개역개정성경에 들어온 새 사도신경에는 아예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라고 번역해 놓음으로서, 예수께서 아버지 보좌의 우편에 앉아있는 것처럼 묘사해버리고 말았다. 아뿔싸. 지금 천국에 올라가면 예수께서 한 개뿐인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시는데, 적어도 두 개의 보좌가 있는 것처럼 만들어놓고, 거기에 두 분 하나님이 앉아 있는 것처럼 만들어버린 것이다. 아니다. 천국에 가보라.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그리고 보좌도 한 개 뿐이며, 거기에 예수님이 앉아계신다.

 

4.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신관은 어떤 것인가?

  그렇다면,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신관은 어떠한 것인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신관은 삼신론도 아니며, 삼위일체신관도 아니며, 양태론신관도 아니다. 이 3가지 신관 중에서 가장 잘못된 것은 삼신론이며, 중간정도가 삼위일체신관이여, 중간의 중간정도가 양태론신관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신관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에 대해 잘못된 부분들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신관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사실 간단하다. 이렇게 정의하면 될 것이다.

  첫째, 하나님은 홀로 한 분이시다. 그분은 창조주요 전능자이시다. 또한 그분은 구원자이면서 심판주이시다.  둘째, 그분이 구약시대에는 자신을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계시하셨다. 셋째, 만세전부터 하나님의 품(생각, 계획) 속에는 아들이 있었다. 넷째, 드디어 구약에 여호와라 불리셨던 바로 그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으로 들어오셨다.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이 보이게 나타나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구약의 여호와이시며 전능자요 창조주이시다. 그분은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다. 다섯째, 하나님께서는 비록 우리를 위하여 고난받고 죽을 수 있는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으나, 하늘에 하나님이 아니 계시는 것이 아니니, 하나님은 항상 어디에나 계신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에는 하늘에는 아버지가 계셨고 땅에는 아들이 동시에 계셨다. 이는 아버지가 아들이 되심으로 아버지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아버지도 계시며 동시에 아들도 계시는 것이다. 여섯째, 아들로 오신 하나님께서는 부활승천하시어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셨다. 그분이 장차 재림하실 것이다. 일곱째,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으로서, 이 땅에 보내어져 활동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그분도 하나님이시다.

 

5. 나오며

  하나님이 누군지를 성경을 통해서 배우지 않는 자는 자기가 배운 이론(교리)대로만 하나님을 정의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그것에 맞이 아니하면 이단삼단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항상 어딘가에 오류가 들어있다. 그러므로 자기들도 그것을 설명하기는 하지만 자기들도 잘 알아듣지 못한 채 이야기하고 만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꼭 하나님은 신비에 속하는 것이니, 다 알려고 하지 말라고 마무리해 버린다. 아니다. 알 수도 없는 분을 하나님께서는 믿으라고 강요하시는 분이 아니다. 얼마든지 우리의 이성적인 사고로도 이해할 수 있게 해 두셨다. 그래야 우리도 그분을 믿고 우상을 숭배하지 않고 구원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오늘날 삼위일체론은 너무나 삼신론적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또한 양태론은 하나님의 동시존재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도 위험하다. 둘 다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오직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우리 주님께서도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17:3)"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던가? 예수님은 결코 알 수도 없는 분을 알고 믿어야 영생을 얻는다고 강요하지 않으셨다.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 그분이 육신을 입고 아들로 오셨다. 그리고 하늘로 가셔서 지금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시며, 곧 다시 오실 것이다. 그분이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이요 실제 하나님이시다. 마라나타...

 

 

2018년 11월 18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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