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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2)] 노아의 홍수 심판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는 무엇이었는가?(창6:13~22)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u7kQJ9tC9bs

 

 

1. 들어가며: AI 시대의 번영, 그것은 축복인가 심판의 전조인가?

  지금 전 세계는 인공지능(AI) 열풍에 휩싸여 있다. 얼마 전 전기자동차로 유명한 미국의 일론 머스크는 다보스 포럼에서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앞으로 올 해 연말 안에 인간보다 뛰어난 AI가 나올 것이며, 점차로 AI가 인간을 대신하여 일을 할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노동은 더이상 필요 없는 세상이 올 것이다." AI로봇이 24시간 쉬지 않고 생산하면, 물가는 하락할 것이고, 국가는 일하지 않는 국민에게 돈을 주는 세상, 바야흐로 '노동 해방'의 유토피아 세상이 온다는 것이다. 2025년말 SK 하이닉스가 반도체 호황으로 직원들에게 엄청난 보너스를 지급했다는 소식은 이런 변화가 먼 미래가 아님을 실감케 한다.

  그러나 성경은 이 풍요와 편안함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예수님은 마지막 때를 '노아의 때'와 같다고 하셨다(마 24:37). 당시 홍수가 나서 멸망하기 직전까지 그때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마 24:38). 그들은 사람의 육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하느라 바빴던 것이다. 일상적인 삶, 풍요로운 삶을 누리느라 영적인 감각이 마비되어 있었다.

  그런데 AI가 가져다줄 세상은 겉보기엔 천국 같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심판 직전의 고요함일 수 있다. 세상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멸망이 홀연히 닥칠 것이기 때문이다(살전 5:3).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가장 화려하지만 가장 위험한 시대를 살고 있다. 이때 우리가 진정 붙잡아야 할 유일한 구명줄은 무엇인가? 노아 시대에는 방주가 있었듯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노아 홍수 사건 속에 숨겨진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파헤치며, 다가올 심판을 이길 지혜를 찾고자 한다.

 

2. 노아의 홍수 때,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예표는 '노아'인가 '방주'인가?

  많은 사람들은 노아를 예수님의 예표라고 생각한다. 물론 노아는 당대의 의인이요 완전한 자로서(창 6:9), 멸망할 세상에 의를 전파하고 가족을 구원해 냄으로 선지자적 역할을 잘 감당했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의 그림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노아는 불완전했다. 홍수 이후 그는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은 채 잠이 들었고, 그로 인해 둘째 아들 함이 저주를 받는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허물이 있었던 노아가 죄 없으신 예수님의 온전한 예표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아 홍수 때에 진짜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방주(Ark)'다. 당시 방주는 스스로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오직 그 안에 탄 생명체들을 살리기 위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방주는 거센 폭풍우와 심판으로서 홍수 물결을 온몸으로 막아내야 했다. 그러므로 밖에서는 죽음의 비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방주 안은 안전했다. 이것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그림이 아니겠는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당신의 몸으로 다 받아내시고, 그 안에 있는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고로 방주는 나무 상자로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를 품에 안으시어 구원하고 보호하시는 예수님의 품이었다.

 

3. 방주의 재료인 '고페르 나무'와 '역청'에는 어떤 구속사적 비밀이 있는가?

  하나님은 방주를 만들 때 아주 구체적으로 무슨 재료를 사용하실 것인지를 지정하셨다. 창세기 6장 14절을 보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당대의 의인이었던 노아에게, "너는 고페르 나무(Gopher wood)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Pitch=Kopher))을 그 안팎에 칠하라." 그런데 이 말씀 속에 기독론의 핵심이 다 들어 있다.

  첫째, '고페르 나무'는 예수님의 '인성(Humanity)'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 나무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과거에는 '잣나무'로 번역했으나, 최근에는 원어 그대로 '고페르 나무'라고 번역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베어낸 나무'라는 점이다. 살아있는 나무가 찍히고, 잘리고, 다듬어져야 방주가 된다. 예수님은 영광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찢기셨다. 그분의 육체가 깨어짐으로 우리가 들어갈 방주가 완성된 것이다. 성막의 재료인 아카시아 나무(조각목)가 예수님의 인성을 상징하듯, 고페르 나무 역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을 보여준다.

  둘째, '역청'은 예수님의 '대속(Atonement)'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에 나무들 틈새로 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빙법은 방주에 역청을 바르는 것이었다. 히브리어로 역청이란 '코페르(Kopher)'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단어는 '속전(Ransom)', '몸값'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 단어는 '속죄하다'는 뜻의 동사 '카파르(Kaphar)'에서 유래했다. 하나님은 의도적인 언어유희(Wordplay)를 이때에 사용하신 것이다. "나무로 배를 만들고, 그 안팎을 '몸값(속전)'으로 칠하라."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핏값(몸값)으로 우리를 덮으셨다는 뜻이다. 역청이 발라져야 물이 침투하지 못하듯, 예수님의 피(속전)가 발라져야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가 우리를 침범하지 못한다. 방주는 단순한 배가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 안팎이 코팅된 '거대한 구원선'이었다. 마태복음 20장 28절에서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Ransom)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다. 방주의 역청은 바로 이 대속물을 미리 보여준 것이다.

 

4. 방주의 구조(문, 3층)는 구원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방주의 구조를 보면 이것 역시 예수님을 정확하게 가리킴을 알 수 있다. 

  첫째, 방주에는 오직 '하나의 문'만 가지고 있었다. 방주의 문은 옆으로 달아낸 문 하나였다(창 6:16). 그러므로 노아의 8식구도, 코끼리도, 사자도, 토끼도 다 그 문으로만 들어가고 나와야 했다. 다른 개구멍은 없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 9절에서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라고 하셨다.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행 4:12). 석가모니도, 공자도, 마호메트도 구원의 문이 될 수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유일한 문을 통과해야만 방주(구원)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둘째, 방주는 '상, 중, 하 3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왜 3층일까? 많은 짐승을 태우기 위해서다. 하나님은 최대한 많은 생명을 살리기를 원하셨다. 어떤 신학자는 이것을 삼위일체 하나님(성부, 성자, 성령)의 구원 사역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우리의 영, 혼, 육의 구원으로 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다. 하나님은 심판 중에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고, 넉넉한 공간을 예비하셨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요 14:2). 예수님은 지금도 한 영혼이라도 더 태우기 위해 방주의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신다. 우리가 전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빈자리가 채워져야 문이 닫힌다.

  

5. 역사 속 교회들은 방주를 어떻게 해석해 왔는가? (십자가 vs 교회 vs 그리스도)

  흥미로운 점은 교회사 속에서 이 노아의 방주가 시대마다 조금씩 다르게 해석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초대 교회 교부들은 주로 **'알레고리(Allegory, 풍유)'**적으로 해석했다. 저스틴 마터나 오리겐 같은 이들은 방주의 나무를 **'십자가'**로 보았다. 물론 나무가 십자가를 상징한다는 것은 타당하지만, 방주 전체를 십자가로만 보는 것은 다소 좁은 해석이다.

  중세 가톨릭 교회로 넘어오면서 해석은 급격히 변질된다. 그들은 방주를 **'교회(Church)'**로 보았다. 그리고 그 방주의 선장을 **'교황(Pope)'**이라고 주장했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는 교리가 여기서 나왔다. 노아의 방주에 타야 살듯이, 가톨릭 교회라는 제도권 안에 들어와야만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구원의 주체를 예수님이 아닌 교황과 조직으로 바꿔치기한 심각한 오류였다.

  종교개혁자들은 이 해석을 바로잡았다. 그들은 방주가 교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자신임을 천명했다. 교회는 구원의 방주인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곳이지, 그 자체가 구원을 주는 기관은 아니다. 칼빈은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참된 방주요 피난처"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이 종교개혁의 유산 위에 서 있다. 우리가 믿는 것은 건물이 아니다. 교파가 아니다. 오직 우리를 위해 고페르 나무(육체)가 되시고 역청(피)을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우리의 유일한 방주이시다.

 

6. 구원은 단회적 사건인가, 지속적인 보존인가? (방주 안에 머무름)

  방주가 예수님이라면,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영적 원리를 깨달아야 한다. 구원은 단순히 방주에 '타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탔으면 '머물러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생명을 **보존(Preserve)**하게 하라"(창 6:19)고 명령하셨다. 구원은 건져냄(Salvation)과 동시에 보존(Preservation)이다. 방주에 탔다고 해서 마음대로 뛰어내리면 죽는다. 홍수가 끝날 때까지 그 안에 꼼짝 않고 붙어 있어야 산다.

  사도 바울은 이를 **"그리스도 안에(In Christ)"**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후 5:17).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순간 방주에 탄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안심해서는 안 된다. 내 믿음이, 내 삶이 예수님 안에 머물러 있는지 날마다 점검해야 한다. 세상의 풍조에 휩쓸려 방주 밖으로 발을 내디디면, 심판의 파도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마 24:13).

 

7. 우리 몸을 '작은 방주'로 만드는 비결은 무엇인가? (회개와 피)

  마지막으로, 이 방주의 원리를 우리 개인에게 적용해 보자. 우리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전이자 작은 방주다. 이 방주가 침몰하지 않고 안전하게 천국 항구까지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노아 방주의 핵심은 **'역청(코페르)'**이었다. 역청을 안팎에 칠해야 물이 새어 들어오지 않는다. 영적으로 말하면, 우리 안팎에 **'예수의 피'**를 칠해야 한다는 뜻이다.

  세상의 더러운 죄악의 물결, 우리를 죽이려는 악한 영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유일한 방수제는 예수의 보혈뿐이다. 어떻게 피를 바르는가? 바로 **'회개(Repentance)'**다. 우리가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으면, 우리 영혼의 방주에 구멍이 뚫린다. 그 틈으로 귀신(물)이 들어와 우리를 침몰시킨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예수의 피가 그 틈을 메우고 덮어버린다(요일 1:9). 이것이 속죄(카파르)다.

나는 매일 회개한다. 내 생각으로, 입술로, 행동으로 지은 죄를 낱낱이 씻어낸다. 이것은 죄책감 때문이 아니라, 내 영혼의 방주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방수 공사'다. 회개하는 성도는 안전하다. 예수의 피가 코팅된 심령에는 마귀가 틈타지 못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당신의 방주는 안전한가? 혹시 죄로 인해 뚫린 구멍은 없는가? 지금 즉시 회개의 역청을 바르라. 그것이 살길이다.

 

9. 나오며: 심판의 파도를 넘는 유일한 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노아의 방주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 세상은 지금 AI의 화려한 기술과 풍요로움에 취해 "평안하다, 안전하다"를 외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 화려함 뒤에 무서운 심판의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음을.

  이때 우리가 피할 곳은 오직 한 곳, **'예수 그리스도'**라는 방주뿐이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나무처럼 찍히셨고, 보혈의 역청을 흘려 우리를 덮어주셨다. 그분 안에만 생명이 있고, 그분 안에만 안식이 있다. 다른 구원의 문은 없다. 오직 예수라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그리고 세상이 아무리 요동쳐도 그분 안에서 나오지 말라.

  이제 우리는 가족과 이웃에게 이 방주를 소개해야 한다. "비가 온다! 심판이 온다! 어서 방주로 들어오라!" 노아가 100년 동안 외쳤던 그 절박한 심정으로 복음을 전하자. 예수의 피로 안팎을 칠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저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에 안착하는 그날까지, 믿음의 항해를 멈추지 않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한다.

 

 

2026년 1월 28일(목)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본 설교는 기독론의 관점에서 노아의 방주가 지닌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적 의미를 깊이 있게 분석합니다. 본 설교는 노아라는 인물보다 방주 자체에 주목하며,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인류를 건져내는 유일한 구원의 문이자 생명을 유지시키는 보존의 수단임을 강조합니다. 특히 방주의 재료인 고페르 나무는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의 인성을, 틈을 메우는 역청(코페르)은 죄를 속하기 위해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와 대속적 희생을 상징한다고 설명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신자가 단순히 구원의 방주에 올라타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심판의 때까지 그리스도 안에 머물며 믿음을 지키는 회개와 보존의 신앙을 가진다는 것을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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