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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5. 25. (월)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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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_Y-0B3nPzV4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02)]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08) 그는 예수께서 왕이자 제사장이라는 것을 예언하였다(01)(시110:1~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_Y-0B3nPzV4

 

 

1. 들어가며

다윗은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으로만 기억될 사람이 아니다. 성경 안에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대표적인 예표이며, 장차 오실 메시아의 왕직과 제사장직을 미리 본 사람이다. 그는 단지 시를 잘 쓰고 찬양을 사랑한 왕이 아니었다. 그는 하늘의 비밀을 보았고,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으로 오실지를 성령의 감동 가운데 예언한 사람이었다.
다윗이 이러한 비밀을 알 수 있었던 것은 인간적인 재능 때문만이 아니었다. 사람에게는 부모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자연적 재능이 있다. 노래를 잘하는 재능, 가르치는 재능, 섬기는 기질, 부드러운 성품, 사람을 환대하는 태도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반 은사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하늘의 비밀은 일반 은사만으로 열리지 않는다. 하나님의 나라와 메시아의 직분과 하늘 보좌의 비밀은 성령께서 열어 주셔야 알 수 있다.
다윗은 바로 그 은혜를 입은 사람이었다. 그는 평범한 종교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미리 준비된 왕적 증인이었다. 하나님은 그를 왕직의 사명으로 이 땅에 보내셨고, 그의 마음을 하나님 마음에 합하게 하셨으며,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강하게 임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다윗은 구약 시대의 왕이면서도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놀라운 예언을 할 수 있었다. 그 예언의 절정이 바로 시편 110편이다.
시편 110편은 짧지만 깊다. 여기에는 메시아께서 여호와의 오른편에 앉으시는 왕이심이 나온다. 또한 그분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심도 나온다. 곧 시편 110편은 예수님을 왕과 제사장으로 동시에 증언한다. 이것은 구약 율법의 제도만으로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 하늘의 비밀이다.
성도에게 이 계시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다. 예수께서 왕이자 제사장이시라는 사실은 그분을 믿는 성도도 장차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되어야 함을 알려 준다. 믿음은 시작이고, 회개와 순종과 충성은 그 신분에 합당하게 준비되는 길이다. 또한 이 계시는 성도가 무엇을 사모해야 하는지를 바꾸어 놓는다. 세상에서 잠시 높아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왕이자 제사장이신 주님 가까이에서 그분을 섬기고 그분과 함께 왕 노릇하는 것이 성도의 참된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다윗이 어떻게 하늘의 비밀을 알고 시편 110편에서 예수님을 왕과 제사장으로 예언하였으며, 성도는 그 계시 앞에서 어떻게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다윗은 어떻게 하늘의 비밀을 알았는가?

다윗은 하늘의 비밀을 알았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 비밀은 책을 많이 읽고, 인간적 연구를 많이 해서 얻은 지식만은 아니었다. 물론 말씀을 사랑하고 묵상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깊은 경륜은 성령의 감동 없이는 열리지 않는다. 하나님이 보여 주시지 않으면 볼 수 없고, 하나님이 들려주시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영역이 있다.
다윗에게는 먼저 사명이 있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왕직을 맡기기 위해 보내신 사람이었다. 사울은 백성의 요구 속에서 세워진 왕이었지만, 다윗은 하나님께서 마음에 두시고 준비하신 왕이었다. 그러므로 다윗은 왕직을 쟁취하려 하지 않았다. 기름부음을 받고도 사울을 자기 손으로 제거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와 때를 기다릴 줄 알았다.
또한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마음이 있었다. 하나님은 그를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이것은 다윗이 감정적으로 하나님을 좋아했다는 정도가 아니다. 그는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고, 무엇을 미워하시며, 어떤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는지를 알아 가는 사람이었다. 하늘의 비밀은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는 자에게 맡겨지지 않는다.
그리고 다윗에게는 여호와의 영이 임했다.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을 때,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크게 감동되었다. 히브리어로 “크게 감동되었다”는 표현은 단순히 조용히 머문다는 뜻이 아니라, 강하게 임하고 돌진하듯 역사하는 뜻을 가진다. 다윗은 여호와의 영이 위에 임하여 은사와 능력을 주시던 구약 시대의 사람이었지만, 그에게 임한 영의 역사는 매우 강했다.
이와 관련하여 성경은 디모데에게도 자연적 믿음의 유산과 안수를 통해 받은 은사가 함께 있었음을 보여 준다. 디모데는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를 통해 거짓 없는 믿음을 이어받았고, 또한 바울의 안수와 장로회의 예언을 통해 은사를 받았다(딤후 1:5-6, 딤전 4:14).

딤후 1:5-6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딤전 4: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다윗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왕으로서의 자연적 기질만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성령의 특별한 감동을 통해 영분별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 지혜의 말씀의 은사, 예언의 은사와 같은 신령한 은사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으로 보아야 한다. 그는 사울에게 붙은 악한 영을 수금 연주로 물러가게 했고, 시편 속에서 메시아의 고난과 부활과 승천과 통치까지 예언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은사를 자랑으로 삼지 않는 것이다. 은사는 사람을 높이기 위해 주어지는 장식품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성도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며, 마지막에는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갈 백성을 준비시키기 위해 주어진다. 그러므로 하늘의 비밀을 받은 자일수록 더 낮아져야 하고, 더 많이 회개해야 하며, 더 조심스럽게 말씀 앞에 서야 한다. 다윗이 큰 은사를 받았음에도 자기 죄 앞에서는 상한 심령으로 엎드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도 바울도 이러한 환상과 계시의 세계를 경험했다. 바울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갔고, 사람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고 고백한다. 이것은 성경의 깊은 비밀이 단지 인간 학문으로만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후 12:1-4).

고후 12:1-4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그러므로 다윗이 시편 110편의 비밀을 알았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 여호와의 영이 강하게 임한 사람에게 하늘의 비밀이 열린 것이다. 하늘의 비밀은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성도들을 새 예루살렘 성으로 인도하며,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시키기 위해 주어지는 계시다.

 

 

3. 시편 110편은 왜 메시아 계시의 절정인가?

시편에는 다윗의 신앙과 고난과 회개와 예언이 담겨 있다. 다윗을 알려면 사무엘상하만 보아서는 부족하다. 사도 바울을 알려면 사도행전뿐 아니라 바울서신을 함께 읽어야 하듯, 다윗을 알려면 그의 생애를 기록한 역사서뿐 아니라 그가 남긴 시편을 함께 읽어야 한다. 시편 속에는 다윗이 하나님을 어떻게 보았고, 메시아를 어떻게 예언했는지가 들어 있다.
그중에서도 시편 110편은 메시아 계시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편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두 가지 직분으로 압축한다. 첫째, 그분은 왕이시다. 둘째, 그분은 제사장이시다. 이 두 직분이 한 분에게 함께 주어진다는 사실이 놀라운 비밀이다.
시편 110편 1절은 왕의 등극을 말한다. 여호와께서 다윗의 주에게 말씀하신다.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편에 앉아 있으라.” 이것은 단순히 지상의 왕이 왕좌에 앉는 장면이 아니다. 하늘 보좌의 오른편에 앉으시는 메시아의 승리와 통치를 말한다(시 110:1).

시 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또한 시편 110편 4절은 제사장직을 말한다.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고 변하지 아니하신다.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여기서 메시아는 왕일 뿐 아니라 영원한 제사장으로 계시된다(시 110:4).

시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이 본문이 중요한 이유는, 구약 율법의 제도 안에서 왕과 제사장은 보통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왕은 주로 유다 지파와 다윗 왕조의 계열에서 나오고, 제사장은 레위 지파와 아론의 계열에서 나온다. 그런데 시편 110편은 메시아가 왕이면서 동시에 제사장이 될 것을 말한다. 이것은 레위 제사장 제도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더 높은 질서다.
예수님 당시에도 시편 110편은 메시아 논쟁의 중심 본문이었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면 어찌하여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그를 주라고 불렀느냐고 물으셨다. 이 질문은 메시아가 단순한 다윗의 후손을 넘어 다윗의 주가 되시는 분임을 드러낸다(마 22:43-45).

마 22:43-45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시편 110편 전체의 흐름도 이 사실을 뚜렷하게 보여 준다. 이 시는 단순한 왕실 축복시가 아니라, 하늘 보좌에서 이루어질 메시아의 등극과 제사장적 사역을 한눈에 보여 주는 예언적 찬송이다. 1절은 메시아께서 오른편 보좌에 앉으시는 왕의 등극을 말한다. 2절과 3절은 시온에서 권능의 규가 나오고,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는 장면을 보여 준다. 4절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제사장직을 말한다. 5절부터 7절은 주께서 대적들을 심판하시고 승리하시는 장면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시편은 왕권과 제사장직과 전쟁과 승리를 한 흐름 안에 담고 있다.
그러므로 시편 110편은 다윗의 시 한 편으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 이 시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과 사역을 여는 열쇠다.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지만, 다윗의 주이시다. 그는 왕으로 통치하시지만, 제사장으로 속죄하신다. 그는 원수를 발등상 되게 하시지만, 동시에 자신의 피로 은혜의 보좌를 여신다. 이것이 시편 110편이 메시아 계시의 절정인 이유다.

 

 

4. “내 주”는 한 분 하나님의 경륜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

시편 110편 1절에서 가장 깊은 표현은 “내 주”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셨다”고 고백한다. 여기서 여호와는 이스라엘이 섬기는 한 분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다윗은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는 장면을 본다. 이것은 다윗이 장차 오실 메시아의 신비를 미리 본 것이다.
이 말씀을 하나님이 두 분이라는 뜻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성경의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다만 그 한 분 하나님께서 자신의 경륜 가운데 아들로 오실 메시아를 계시하신 것이다. 구약 시대에는 아직 성육신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다윗은 성령의 감동 가운데 장차 육신을 입고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을 미리 본 것이다.
“주”라는 히브리어 표현은 문맥에 따라 주인, 통치자, 존귀한 분을 가리킨다. 다윗에게 메시아는 단순히 자기 후손이 아니다. 육신으로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지만, 본질과 권세로는 다윗의 주가 되신다. 이것이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던지신 질문의 핵심이다. 메시아가 단순한 정치적 후손이라면 다윗이 그를 주라고 부를 수 없다.
한 분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로 오셨다는 것은 성육신의 신비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보이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예수님은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지만, 그분은 단지 다윗의 후손에 머물지 않는다. 그분은 다윗이 주라고 부른 바로 그 메시아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면서 다윗의 주가 되신다.
성경은 예수님을 마지막 아담이요 살려 주는 영이라고 말한다. 이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도 안에 생명으로 역사하시는 분임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성도 안에 오신 성령의 역사는 한 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 주는 영으로 역사하시는 경륜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전 15:45).

고전 15: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이 관점에서 시편 110편을 읽으면,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라는 말씀은 삼신론적 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 분 하나님께서 자신의 구원 경륜 안에서 메시아의 왕권을 계시하신 말씀이다. 다윗은 그 비밀을 천 년 전에 보았다. 그는 장차 오실 예수님이 자기 후손이지만 자기보다 크신 주님이심을 성령 안에서 알았다.
성도가 이 비밀을 알면 흔들리지 않는다. 예수님은 단순한 선지자나 도덕 교사가 아니다. 그분은 다윗이 주라고 부른 메시아이며, 왕의 보좌에 앉으시는 분이며, 자신의 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여시는 영원한 제사장이시다. 다윗은 이 주님을 알았기에 그의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시선을 잃지 않았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고백과 사모함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이것은 단지 호적 명령이라는 역사적 사건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과 다윗의 언약과 다윗의 시온 사모함을 메시아의 탄생 안에서 이어 가셨다는 표지다. 예수님은 다윗의 뿌리요 자손으로 오셨고, 다윗이 바라본 주님으로 오셨다.

 

 

5. 오른편 보좌에 앉으신  왕은 어떤 분인가?

시편 110편은 메시아께서 여호와의 오른편에 앉으신다고 말한다. 성경에서 오른편은 단순한 위치가 아니다. 그것은 권세와 승리와 통치를 상징한다. 여호와의 오른편에 앉는다는 것은 메시아께서 원수를 이기고 왕으로 등극하신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본래부터 영광의 주이시지만,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분은 우리와 같은 육체를 입으셨고, 배고픔과 피곤함과 고난을 겪으셨다. 그러나 그분은 죄가 없으셨다. 그분은 육체에 계실 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하셨고,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셨으며, 온전하게 되셨다. 그래서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히 5:7-9).

히 5:7-9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예수님의 왕권은 고난과 순종을 통과한 왕권이다. 세상의 왕은 권력을 얻기 위해 싸우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 주심으로 승리하셨다. 세상의 왕은 사람을 밟고 올라가지만, 예수님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낮아지셨다. 그러므로 그분의 오른편 보좌는 세상적 권력의 보좌가 아니라, 순종과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얻은 승리의 보좌다.
이 왕권은 철장 권세와도 연결된다. 시편 2편은 하나님의 아들이 열방을 유업으로 받고,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릴 것이라고 말한다. 요한계시록은 이 말씀을 이기는 자에게도 적용한다. 예수께서 아버지께 받은 것처럼, 이기는 자에게도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다고 하신다(계 2:26-27).

계 2:26-27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여기서 “다스린다”는 헬라어 표현은 단순히 억압적으로 지배한다는 뜻에만 머물지 않는다. 포이마이노라는 말은 목양하다, 양을 치다, 다스리다라는 뜻을 가진다. 그러므로 철장 권세는 무자비한 폭력이 아니다. 악한 세력과 거역하는 질서를 꺾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바르게 다스리는 왕적 목양의 권세다.
왕이신 예수님은 원수를 발등상 되게 하신다. 사탄과 귀신의 역사를 깨뜨리시고, 죄와 사망의 권세를 정복하신다. 그러나 동시에 그분은 양들을 목양하시는 왕이시다. 주님의 왕권은 심판과 목양을 함께 가진다. 그러므로 성도도 왕 노릇을 사모한다면 먼저 예수님의 왕권이 어떤 것인지 배워야 한다. 그것은 군림의 권세가 아니라, 원수를 꺾고 양을 살리는 권세다.

 

 

6.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은 누구인가?

시편 110편이 놀라운 이유는 메시아를 왕으로만 말하지 않고 제사장으로도 말하기 때문이다.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는 말씀은 구약의 제사장 제도를 넘어서는 계시다. 예수님은 유다 지파에서 나셨다. 율법상 제사장은 레위 지파, 그중에서도 아론의 계열에서 나와야 한다. 그렇다면 유다 지파에서 나신 예수께서 어떻게 제사장이 되실 수 있는가? 그 답이 멜기세덱이다.
멜기세덱은 창세기 14장에 등장한다. 그는 살렘 왕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다.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돌아올 때,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아브라함을 축복했다. 아브라함은 그에게 십분의 일을 드렸다(창 14:18-20).

창 14:18-20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멜기세덱이라는 이름은 “의의 왕”이라는 뜻을 가진다. 또한 그는 살렘 왕이므로 “평강의 왕”의 의미도 가진다. 히브리서는 이 멜기세덱을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을 설명하는 중요한 예표로 사용한다. 예수님의 제사장직은 레위 계열의 육체적 혈통에 따른 임시 직분이 아니다. 그것은 죽지 아니하는 생명의 능력을 따라 세워진 영원한 제사장직이다(히 7:1-3, 16-17).

히 7:1-3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히 7:16-17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제사장의 핵심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서는 것이다. 히브리어로 제사장은 코헨이라 하며,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백성을 위해 중보하는 직무를 가진다. 그런데 예수님은 동물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신 분이 아니다. 그분은 자기 자신을 제물로 드리셨고, 자신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단지 제사장 중 하나가 아니라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다.
다윗이 이 사실을 시편 110편에서 예언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는 레위 지파 제사장 제도 안에서만 생각하지 않았다. 성령의 감동으로 더 높은 제사장 질서를 보았다. 그것은 멜기세덱의 반차다. 왕이면서 제사장인 멜기세덱의 모습은 장차 왕이자 제사장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였다.
레위 계열의 제사장은 죽음 때문에 계속 바뀌어야 했다. 한 사람이 영원히 제사장 직분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분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제사장직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지 않는다. 그분은 한 번 제사를 드리셨으나 그 효력은 영원하고, 지금도 살아 계셔서 자기에게 나아오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신다. 이것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직의 깊은 의미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왕으로서 원수를 깨뜨리시고, 제사장으로서 죄인을 하나님께로 이끄신다. 왕권만 있으면 심판은 있으나 속죄가 없고, 제사장직만 있으면 중보는 있으나 원수 정복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는 두 직분이 함께 있다. 그분은 원수를 굴복시키는 왕이시며, 피로 우리를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시는 제사장이시다.

 

 

7. 심판의 보좌는 어떻게 은혜의 보좌가 되었는가?

구약에서 하나님의 보좌는 두려운 보좌로 나타난다. 시편 97편은 구름과 흑암이 하나님을 둘렀고, 의와 공평이 그 보좌의 기초이며, 불이 그 앞에서 나와 대적들을 사른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보좌는 거룩하고 공의로운 심판의 보좌다. 죄인은 그 앞에 설 수 없다. 더러운 자는 그 앞에 가까이 갈 수 없다.
그러나 시편 110편이 보여 주는 메시아는 왕이면서 제사장이다. 이 사실 때문에 보좌의 의미가 달라진다. 왕이신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신다. 그러나 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죄인을 정결케 하시고,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여신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성도가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히 4:15-16).

히 4:15-16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심판의 보좌가 은혜의 보좌가 되었다는 말은 하나님의 공의가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다. 공의가 충족되었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죄값을 담당하셨고, 부활과 승천 후 하늘 성소에 들어가셨기 때문이다. 히브리서는 하늘에 있는 것들이 더 좋은 제물로 정결케 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그리스도께서 참 하늘에 들어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셨다고 증언한다(히 9:23-24).

히 9:23-24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이것이 예수님의 제사장직의 영광이다. 예수님은 사람의 연약함을 아신다. 그분은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는 없으시다. 그래서 그분은 죄인에게 긍휼을 베푸실 수 있고, 동시에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흠 없는 대제사장으로 서실 수 있다.
또한 이 보좌의 변화는 회개와 축사의 길과도 연결된다. 죄는 악한 영에게 근거를 제공한다. 회개는 그 죄의 근거를 제거하고, 예수님의 피로 정결케 되는 길이다. 왕이신 예수님은 원수를 발등상 되게 하시고, 제사장이신 예수님은 피로 우리를 씻으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여 회개해야 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악한 영의 역사를 끊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다. 하늘에서 더러움이 제거되고, 땅에서도 죄와 귀신의 역사가 끊어져야 한다. 예수님의 왕직은 원수의 세력을 꺾는 권세이고, 예수님의 제사장직은 죄인을 깨끗하게 하여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직분이다. 따라서 성도는 왕과 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믿는 데서 멈추지 말고, 그분의 피와 권세 안에서 실제로 정결해져야 한다.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자는 방종하지 않는다. 은혜를 안다는 것은 죄를 가볍게 여긴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피가 얼마나 귀한지를 알기에 더 깊이 회개한다. 심판의 보좌 앞에서 죽을 수밖에 없던 자가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게 되었으니, 성도는 그 은혜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
여기서 성도는 구원론의 균형을 붙들어야 한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지 지옥을 피하는 표를 얻었다는 뜻이 아니다. 그분의 피로 죄에서 해방되고, 그분의 생명 안으로 들어가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길로 부름받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한 번 믿었으니 끝났다”는 안일한 생각은 은혜의 보좌를 오해한 것이다. 은혜의 보좌는 회개하는 자에게 열린 보좌이며, 순종하는 자를 돕는 보좌이며, 이기는 자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우는 보좌다. 

 

 

8. 성도는 어떻게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되는가?

예수님이 왕이자 제사장이시라는 계시는 예수님에 대한 교리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성도가 어떤 신분으로 부름받았는지를 보여 준다. 요한계시록은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해방하시고,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말한다(계 1:5-6).

계 1:5-6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베드로도 성도를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모든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을 섬기며, 어두운 데서 불러내신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해야 할 존재라는 뜻이다(벧전 2:9).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나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말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자동으로 왕권을 누린다는 뜻이 아니다. 예수님은 이기는 자에게 보좌에 함께 앉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믿음은 출발이고, 이김은 과정이며, 보좌는 상급과 책임이다. 성도는 회개와 순종과 충성을 통해 그 신분에 합당하게 준비되어야 한다(계 3:21).

계 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 같이 하리라.
성도가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되려면 먼저 회개해야 한다. 죄를 품고는 제사장으로 설 수 없다. 더러운 손과 나뉜 마음으로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다. 회개는 죄의 기록을 지우고, 악한 영의 근거를 제거하며, 성도를 정결한 그릇으로 세우는 길이다.
둘째, 성도는 순종을 배워야 한다. 예수님도 육체에 계실 때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셨다. 그러므로 성도는 말씀을 듣고도 자기 뜻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하늘의 비밀을 안 자는 자기 욕망을 위해 살 수 없다. 왕 같은 제사장은 하나님의 뜻과 경륜을 위해 자신을 드리는 사람이다.
셋째, 성도는 충성해야 한다. 세상에서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이 최종 목적이 아니다. 재물과 권력과 명예는 죽음 앞에서 내려놓아야 한다. 참된 간증은 세상에서 성공했다는 이야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참된 간증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았고, 그분의 피와 보좌와 왕권과 제사장직을 깨달았다는 고백이다.
넷째, 성도는 새 예루살렘 성을 사모해야 한다. 다윗은 시온을 사모했고,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도성으로 바라보았다. 요한계시록은 어린양이 시온산에 서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선 장면을 보여 준다. 이것은 성도의 최종 목적지가 막연한 위로의 상태가 아니라, 어린양이 계신 하늘 시온과 새 예루살렘 성임을 말해 준다(계 14:1).

계 14: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다윗은 하늘의 비밀을 알았기 때문에 흔들림 없이 자기 길을 갈 수 있었다. 성도도 마찬가지다. 하늘의 비밀을 모르면 세상의 성공과 실패에 흔들린다. 그러나 예수님이 왕이자 제사장이심을 알고, 자신이 그분 안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받았음을 알면, 오늘의 회개와 순종과 충성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이 땅의 평가는 잠깐이지만, 하늘 보좌 앞에서의 평가는 영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다윗처럼 주님을 알기를 사모해야 한다. 주님의 마음에 시선을 맞추고,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살아야 한다. 왕 같은 제사장은 자기 영광을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왕이자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이다.
이 길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세상적 간증에만 머무르는 것이다. 사업이 잘되고, 지위가 높아지고,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만을 복으로 여긴다면 하늘의 비밀을 놓치게 된다. 성도의 참된 간증은 “내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았다”는 고백이어야 한다. 그분이 왕이시며 제사장이시고, 나를 피로 씻어 하나님 앞에 세우셨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가장 큰 은혜다. 그 은혜를 아는 자가 회개하고 순종하며 충성하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된다. 

 

 

9. 나오며

우리는 다윗이 시편 110편에서 예수님을 왕과 제사장으로 예언한 의미를 살펴보았다. 다윗은 하늘의 비밀을 알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인간적 재능만으로 그 비밀을 알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왕직의 사명으로 보내셨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게 하셨으며, 여호와의 영이 강하게 임하게 하셨기에 메시아의 왕직과 제사장직을 미리 볼 수 있었다.
시편 110편은 예수님을 왕으로 증언한다. 그분은 여호와의 오른편에 앉으시며, 원수들이 발등상 되기까지 다스리시는 분이다. 그러나 그 왕권은 세상 권력처럼 군림하는 왕권이 아니다. 예수님은 고난과 순종을 통과하신 왕이며, 철장으로 악을 꺾고 포이마이노의 통치로 자기 백성을 목양하시는 왕이시다.
시편 110편은 또한 예수님을 제사장으로 증언한다. 그분은 레위 계열의 임시 제사장이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시다. 그분은 동물의 피가 아니라 자기 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셨고, 심판의 보좌 앞에서 죽을 수밖에 없던 성도들에게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길을 열어 주셨다.
성도는 이 계시 앞에서 자신의 부르심을 다시 보아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그의 피로 죄에서 해방하시고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 그러므로 성도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이름을 자랑만 해서는 안 된다. 그 신분에 합당하게 회개해야 하고, 순종해야 하며, 충성해야 한다. 또한 악한 영의 근거를 제거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원수의 역사를 끊어 내며, 새 예루살렘 성을 향해 준비되어야 한다.
하늘의 비밀을 아는 자는 쉽게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세상의 성공과 실패가 영원한 결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왕과 제사장으로 아는 성도는 오늘의 고난도, 회개의 눈물도, 순종의 수고도 장차 보좌 앞에서 헛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다윗이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마음에 시선을 맞추었던 것처럼, 성도도 주님의 뜻과 경륜에 자신의 삶을 맞추어야 한다.
그리하여 다윗처럼 하늘의 비밀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5월 25일(월)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시편 110편을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왕이자 제사장이라는 영적 비밀을 미리 깨달은 다윗의 영성과 그 예언적 가치를 깊이 있게 조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다윗이 인간적 배움이 아닌 하나님이 부어주신 특별한 은사와 환상을 통해 신약의 구속사를 천년 전부터 내다보았으며, 이러한 지혜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서 철저한 회개와 순종을 거친 결과임을 강조합니다. 또한 사도 바울이 셋째 하늘의 계시를 통해 구약을 해석했듯, 오늘날의 신앙인들도 하늘의 비밀을 깨달아 예수님의 왕직과 제사장직을 본받는 성숙한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경 속에 감춰진 메시아의 신분과 사역을 설명하며, 성도들이 회개를 통해 영적 눈을 뜨고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잇는 이기는 자가 될 것을 촉구하는 목적을 지닙니다.

  

[설교요지]

다윗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왕직을 주어 보내신 자였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으며, 여호와의 영이 강하게 임한 자였다. 그러므로 그는 일반 지식으로 알 수 없는 하늘의 비밀, 곧 장차 오실 메시아께서 왕이자 제사장이 되실 것을 시편 110편에서 예언하였다. 시편 110편은 메시아께서 여호와의 오른편 보좌에 앉으시는 왕이시며,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심을 증언한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을 통해 심판의 보좌를 은혜의 보좌로 여셨고, 이기는 자들에게도 왕권과 제사장적 섬김에 참여할 길을 열어 주셨다. 그러므로 성도는 다윗처럼 하늘의 비밀을 알고, 회개와 순종과 충성으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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