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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6. 27. (토)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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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iSRdz_kLeHM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23)] 다윗의 아들 솔로몬(01) 그는 메시야에 대한 어떤 예표자인가?(01)(삼하7:8~1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iSRdz_kLeHM

 

 
1. 들어가며

 

  다윗을 오래 살핀 이유는 단순히 한 위대한 왕의 일대기를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표본이며, 장차 메시아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 인물이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고, 메시아의 고난과 승리를 시편으로 예언한 자였으며, 영적 전쟁에서 원수를 이기는 왕의 길을 보여 준 자였다. 그러므로 다윗을 공부한다는 것은 천국에서 왕 노릇할 성도가 이 땅에서 어떤 믿음과 회개와 전쟁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는 일이다.

  그러나 성경은 메시아를 단지 “다윗”으로만 증언하지 않는다. 성경은 예수님을 “다윗의 아들(자손)”로도 증언한다. 역사적으로 다윗의 아들은 '솔로몬'이다. 그러나 구속사적으로 볼 때 다윗의 아들(자손)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다윗을 살핀 사람은 반드시 솔로몬도 살펴야 한다. 솔로몬 안에는 장차 오실 메시아의 또 다른 측면, 곧 지혜로운 심판자, 평강의 왕, 성전을 건축하는 왕의 예표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다윗 언약의 핵심도 여기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그의 몸에서 날 씨를 세우시고, 그 나라의 왕위를 견고하게 하며, 그가 하나님의 집을 건축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삼하7:12~13).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 솔로몬에게 성취되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다.

삼하7:12~13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솔로몬은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그는 지혜로 재판했고, 평강의 시대를 누렸으며,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심판권을 맡기신 아들이시며, 죄와 사망과 마귀를 이기신 참 평강의 왕이시고, 자기 몸과 성령을 통해 교회를 세우신 참 성전의 주인이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어떻게 지혜로운 심판자와 평강의 왕과 성전 건축자로서 메시아 예수님을 예표하며, 천국에서 왕 노릇할 이기는 자의 길을 보여 주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왜 다윗을 공부한 뒤 솔로몬을 살펴야 하는가?

 

  다윗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역사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역사서인 사무엘상·하와 역대상은 다윗의 사건을 보여 주지만, 시편은 다윗의 속마음과 영적 세계와 메시아 예언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다윗은 전쟁의 현장에서 왕의 길을 걸었고, 시편 안에서 메시아의 고난과 승리와 왕권을 노래했다. 그러므로 다윗 연구는 자연스럽게 시편 연구로 이어진다.

  솔로몬도 마찬가지다. 솔로몬을 단순히 열왕기상과 역대하의 역사 속 인물로만 보면 절반밖에 보지 못한다. 시편에 나오는 솔로몬의 시와 솔로몬이 쓴 3권의 성경책 곧 잠언, 전도서, 아가서를 함께 보아야 한다. 그중에서 시편 72편과 127편은 솔로몬의 저작이라고 나와 있다. 특히 시편 72편은 왕의 판단력과 공의로운 재판을 구하는 기도로 시작한다. 이것은 솔로몬 왕의 지혜를 말하는 동시에, 장차 공의로 심판하실 메시아의 왕권을 미리 보여 주는 것이다(시72:1~2).

시72:1~2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그가 주의 백성을 공의로 재판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정의로 재판하리니

  여기서 중요한 표현은 “왕”과 “왕의 아들”이다. '다윗'이 왕이라면 '솔로몬'은 왕의 아들이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님을 “다윗의 아들”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역사적으로 다윗의 아들이며, 예수님은 구속사적으로 다윗의 아들이시다. 솔로몬을 살피면 예수님의 왕권 가운데 다윗만으로는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 영역이 열린다.

  다윗은 전쟁에 능한 왕의 예표다. 그는 골리앗과 싸웠고, 블레셋과 아말렉과 에돔과 모압과 암몬과 소바와 아람을 굴복시켰다. 그는 악한 영과 원수를 제압하는 영적 왕직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러나 솔로몬은 전쟁 후에 오는 왕의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그는 다윗이 정복한 터 위에서 평강을 누렸고,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했으며, 백성의 송사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윗과 솔로몬은 서로 떨어진 두 인물이 아니라, 메시아의 왕권을 양면으로 보여 주는 부자 관계의 예표다.

  아브라함과 이삭도 그러하다. 아브라함은 아버지의 예표이고, 이삭은 모리아산에서 바쳐질 아들의 예표다. 다윗과 솔로몬도 그러하다. 다윗은 원수를 무찌르는 왕의 예표이고, 솔로몬은 평강 가운데 성전을 세우는 왕의 예표다. 이 둘을 함께 볼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아브라함의 아들이며 다윗의 아들로 오셨는지가 분명해진다.

  따라서 솔로몬을 공부하는 것은 단순히 지혜로운 왕의 이야기를 읽는 일이 아니다. 솔로몬을 통해 하나님께서 장차 아들로 오셔서 어떤 왕권을 행사하실 것인지, 어떤 심판을 하실 것인지, 어떤 평강을 이루실 것인지, 어떤 성전을 세우실 것인지를 보는 일이다. 이것이 다윗 이후에 솔로몬을 반드시 살펴야 하는 이유다.

  성경을 통전적으로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윗은 시편 안에서 자기의 고난과 원수와 전쟁을 노래했지만, 그 고백은 자기 개인의 감정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그 안에는 메시아가 받을 고난과 메시아가 얻을 승리가 들어 있었다. 솔로몬의 시편도 마찬가지다. 시편 72편은 솔로몬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 내용은 솔로몬 한 사람에게 다 담기지 않는다. 땅끝까지 미치는 통치, 모든 왕들이 엎드리는 권세, 가난한 자를 건지는 정의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 안에서 완성된다.

  그러므로 다윗과 솔로몬은 한 세대의 왕조 이야기가 아니다. 다윗은 싸우는 왕을 보여 주고, 솔로몬은 싸움 이후에 세워지는 나라를 보여 준다. 다윗은 원수를 발아래 두는 왕의 예표이고, 솔로몬은 그 정복 위에 성전과 평강을 세우는 왕의 예표다. 이 두 예표를 함께 보아야 예수님이 왜 먼저 십자가에서 싸우시고 부활로 승리하신 뒤, 성령을 보내어 교회를 세우셨는지가 보인다.

 

 

3. 솔로몬은 어떻게 지혜로운 심판자를 예표하는가?

 

  솔로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지혜다. 그러나 성경에서 솔로몬의 지혜는 단순한 지식이나 재능이 아니다. 그의 지혜는 왕의 지혜이며, 왕의 지혜는 백성을 공의로 판단하는 지혜다. 솔로몬의 지혜는 두 여인의 아이 재판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다(왕상3장). 그는 겉으로 드러난 말만 듣지 않고, 모성의 진실을 드러내어 참 어머니를 밝혀냈다. 이것은 장차 사람의 말과 외모가 아니라 마음과 행위를 판단하실 그리스도의 심판을 예표한다.

  시편 72편이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라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왕은 단순한 통치자가 아니다. 왕은 심판자다. 백성들 사이의 억울함을 풀고, 악을 끊고, 의를 세우는 자가 왕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왕이란 재치 있는 왕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따라 판단할 줄 아는 왕이다.

  신약에 오면 이 심판권이 예수님에게 맡겨졌음이 분명히 드러난다.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다(요5:22). 또한 예수님께서 인자, 곧 사람의 아들로 오셨기 때문에 심판하는 권한을 받으셨음을 증언하고 있다(요5:27).

요5: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요5:27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여기서 우리는 한 분 하나님의 경륜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홀로 한 분이시다. 구약에서 여호와께서는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다”고 말씀하셨다(사 44:6, 45:5, 45:18, 21, 46:9, 47:8, 47:10). 그런데 그 한 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로 오셨다. 아들은 아버지와 다른 또 하나의 하나님이라는 뜻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육신을 입고 사람 가운데 오신 구속의 방식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인자되심으로 심판권을 받으셨고, 하나님은 아들 안에서 사람을 심판하신다.

사44: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사45:18 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그것을 지으셨으니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솔로몬의 재판은 이 심판권의 그림자다. 솔로몬은 백성 사이에서 억울함을 판단했지만, 예수님은 온 인류의 행위와 마음과 믿음과 회개 여부를 판단하신다. 솔로몬은 한 아이를 두고 다투는 두 여인을 판단했지만, 예수님은 생명책과 행위책을 열고 모든 사람을 판단하신다. 그러므로 솔로몬의 지혜는 예수님의 백보좌 심판을 향해 열려 있는 예표다.

  왕 노릇한다는 것은 단순히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이 아니다. 왕 노릇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판단 기준을 가지고 선과 악을 분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왕 노릇할 자도 이 땅에서부터 말씀으로 판단력을 길러야 한다. 귀신을 분별해야 하고, 죄를 분별해야 하며, 사람과 그 사람 속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을 구분해야 한다. 솔로몬의 지혜는 성도에게 이 분별의 왕직을 미리 보여 준다.

  솔로몬이 구한 것은 장수나 부귀나 원수의 생명이 아니었다. 그는 백성을 재판할 지혜를 구했다. 이것은 왕직의 본질을 보여 준다. 왕은 자기 욕망을 채우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바른 길로 가도록 판단하고 세우는 자리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솔로몬의 구함을 기뻐하셨고, 그에게 지혜와 더불어 부귀와 영화도 주셨다. 그러나 그 지혜가 마지막까지 보존되려면 마음이 하나님께 붙들려 있어야 했다. 솔로몬의 후반부가 흔들린 것은 지혜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나뉘었기 때문이다.

  이 점은 오늘날 사역자와 성도에게 큰 경고가 된다. 은사와 지식과 판단력이 있어도 회개가 없고, 마음이 정결하지 않으면 결국 분별이 흐려진다. 심판자의 지혜는 단지 많이 아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말씀 앞에서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을 함께 붙드는 마음에서 나온다. 천국에서 왕 노릇할 자는 사람을 함부로 정죄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으로 악을 분별하되 영혼을 살리려는 목자의 마음을 가진 자여야 한다.

 

 

4. 다윗의 아들이라는 말은 왜 예수님을 가리키는가?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족보를 이렇게 시작한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한국어 성경은 “자손”이라고 번역하지만, 원문의 흐름에서 이 표현은 “아브라함의 아들, 다윗의 아들”이라는 의미를 가진다(마1:1). 헬라어 “휘오스”는 아들을 뜻하며, 히브리어 “벤”도 아들, 후손, 계승자의 의미로 쓰인다. 그러므로 “다윗의 아들”은 단순히 다윗에게서 태어난 직계 아들만을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윗의 왕권을 계승할 메시아를 가리키는 구속사적 호칭이다.

마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역사적으로 다윗의 아들은 솔로몬이다. 그러나 메시아적으로 다윗의 아들은 예수님이다. 이것이 솔로몬을 공부해야 하는 핵심 이유다. 솔로몬은 다윗의 아들로서 왕위를 계승했고, 예수님은 다윗의 아들로 오셔서 영원한 왕위를 계승하셨다. 솔로몬은 다윗의 왕국을 이어받았지만, 예수님은 다윗의 왕국을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완성하신다.

  성경에서 “아들”은 상속의 언어다.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생명을 받고, 이름을 받고, 기업을 받고, 사명을 받는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아들로서 약속의 씨였다. 그는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드려질 자리까지 갔다. 그 사건은 장차 아버지께서 아들을 내어 주실 십자가의 예표다. 그런데 모리아산은 훗날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장소와 연결된다(대하3:1).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다윗의 아들 솔로몬,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한 구속사의 선 위에 놓이는 것이다.

대하3:1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이 흐름을 놓치면 성경은 조각난다. 아브라함 이야기는 믿음 이야기로만 남고, 다윗 이야기는 왕 이야기로만 남고, 솔로몬 이야기는 지혜 이야기로만 남는다. 그러나 성경 전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한다(요 5:39). 예수님께서 친히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이 자신을 가리켜 기록되었다고 하셨다(눅 24:44). 그러므로 솔로몬도 그리스도 안에서 읽어야 한다.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눅 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다윗의 아들 예수님은 맹인들이 부르짖던 호칭이기도 하다. 그들은 “다윗의 자손(아들)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쳤다(마 9:27, 15:22, 20:30). 이것은 단순한 혈통 고백이 아니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다윗에게 약속된 왕, 곧 메시아이심을 부른 것이다. 그러므로 솔로몬의 왕권은 예수님의 메시아 왕권을 미리 보여 주며, 예수님의 오심은 솔로몬의 예표를 완성한다.

  사실 다윗에게는 여러 아들들이 있었다. 첫째 암논도 있었고, 셋째 압살롬도 있었고, 넷째 아도니야도 있었다. 그러나 왕위를 잇는 상속자는 열째 솔로몬이었다. 이것은 천국 왕직에도 중요한 영적 원리를 보여 준다. 하나님은 모두를 부르시지만, 왕위를 잇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워지는 자다. 혈통이나 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과 순종과 이김이 왕직의 길을 결정한다.

  아브라함 언약과 다윗 언약은 성경의 큰 두 기둥이다. 아브라함 언약은 씨와 복의 약속이며, 다윗 언약은 왕위와 나라(왕국)의 약속이다. 아브라함의 씨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시는 희생 제물이 되셨고, 다윗의 씨로 오신 예수님은 영원히 왕 노릇하시는 메시아가 되셨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족보를 아브라함과 다윗으로 시작한다(마 1;1). 이는 예수님 안에서 희생 제물과 왕권이 함께 성취되었음을 보여 주는 성경적 배열이다.

  솔로몬은 이 가운데 다윗 언약의 첫 역사적 성취다. 그는 다윗의 몸에서 난 씨였고, 다윗의 뒤를 이어 왕위에 앉았으며,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했다. 그러나 그의 왕위는 영원하지 않았다. 그는 예표였기 때문이다. 영원한 왕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다. 그러므로 솔로몬의 영광을 볼 때, 성도는 솔로몬 자체에 머물지 않고 솔로몬보다 더 크신 이, 곧 예수님을 보아야 한다.

 

 

5. 한 분 하나님은 어떻게 아들로 오셔서 심판하시는가?

 

  솔로몬을 통해 예수님의 심판권을 보려면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성경적 이해가 분명해야 한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구약의 여호와께서는 홀로 하나님이시며, 그 외에 다른 신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그 한 분 하나님께서 때가 차매 아들로 오셨다(갈 4:4). 아들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사람의 자리로 들어오신 경륜의 표현이다.

  요한복음 5장은 이 점을 분명히 한다. 아버지께서는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다. 예수님은 사람으로 오셨기 때문에 사람을 심판하신다. 사람이 죄를 지었고, 사람이 회개해야 하며, 사람이 믿음과 행위의 열매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은 이 한 분 하나님의 보좌를 더 선명하게 보여 준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었을 때, “그들이” 왕 노릇한다고 하지 않고 “그가” 왕 노릇한다고 말한다(계11:15).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가 구별되어 언급되지만, 통치의 주체는 한 분 하나님 안에서 단수로 드러나는 것이다.

계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서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또한 요한계시록 22장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를 말한다. 보좌들이 아니라 보좌다(계 22:1, 3).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성 안에 있고,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긴다(계22:3). 이것은 하나님께서 어린양 안에서 자신을 나타내시고, 어린양으로 구속을 이루시며, 보좌에서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계22: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여기서 솔로몬의 예표가 중요해진다. 다윗은 아버지 왕이고, 솔로몬은 아들 왕이다. 아버지 다윗이 왕 노릇했고, 아들 솔로몬도 왕 노릇했다. 이것은 장차 아버지께서 아들로 오셔서 왕 노릇하실 구속사의 그림자다. 다윗과 솔로몬은 두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왕권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안에서 어떻게 계승되고 완성되는지를 보여 준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아들'이시라는 말은 결코 그분의 신성이 약하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한 분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의 아들로 오셨다는 뜻이다. 그분은 다윗의 아들이시지만 다윗의 주이시다. 그분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셨지만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계신 분이시다. 그분은 어린양으로 죽임당하셨지만 보좌에 앉아 세세토록 왕 노릇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성도는 이 심판자를 바로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단지 위로자만이 아니시다. 그분은 심판자이시다. 그분의 눈은 불꽃 같고, 그분의 발은 빛난 주석 같다(계 2:18). 그분은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시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으신다(계 2:23).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피로 죄 사함을 받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분의 심판대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도록 회개와 순종의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여기서 “보좌”라는 말도 중요하다. 보좌는 앉는 의자가 아니라 통치의 자리이며 심판의 자리다(계 9:4, 7).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하나라는 것은 구속을 이루신 어린양 안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통치하신다는 뜻이다. 성도는 하늘에 세 보좌가 있다고 상상할 것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한 보좌를 보아야 한다. 그 보좌에 앉으신 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신 어린양으로 나타나신 주님이시다.

  이 한 분 하나님 신앙은 성경 전체를 뚫는 열쇠다. 구약의 여호와와 신약의 예수님을 갈라놓으면 메시아의 비밀이 흐려진다. 여호와께서 구원하러 오신 이름이 예수이며, 아버지께서 아들로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다. 그러므로 심판자 예수님 앞에 선다는 것은 곧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아야 성도는 예수님의 말씀을 가장 무겁게 붙든다.

 

 

6. 솔로몬은 어떻게 평강의 왕이신 예수님을 보여 주는가?

 

  솔로몬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쉘로모”이며, 평강을 뜻하는 “샬롬”과 깊이 연결된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이름 자체로 '평강의 왕'을 예표한다. 그러나 솔로몬의 평강은 아무 근거 없이 찾아온 평화가 아니었다. 다윗이 사방의 원수를 정복한 뒤에 온 평강이었다. 전쟁에 능한 아버지가 원수를 제압했기 때문에, 아들은 평강의 왕으로 통치할 수 있었다.

  열왕기상은 솔로몬 시대를 이렇게 묘사한다. 솔로몬은 그 강 건너편에서부터 가사까지 다스렸고, 사방의 모든 민족과 평화를 누렸다. 유다와 이스라엘은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각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다(왕상4:24~25).

왕상4:24~25 솔로몬이 그 강 건너편을 딥사에서부터 가사까지 모두 다스리므로 그가 사방에 둘린 민족과 평화를 누렸으니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더라

  이 장면은 예수 그리스도의 평강을 예표한다. 예수님은 단지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분이 아니다. 예수님은 죄와 사망과 마귀의 일을 멸하심으로 참 평강을 가져오시는 분이다. 십자가는 패배가 아니라 전쟁이었다. 부활은 단지 다시 살아남이 아니라 원수에 대한 승리의 선언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평강은 타협의 평화가 아니라 승리 뒤에 오는 평화다.

  이사야는 장차 오실 아들을 “평강의 왕”이라고 예언했다. 그에게 정사가 있고, 그의 통치와 평강은 무궁하며, 다윗의 왕좌와 왕국 위에 굳게 세워진다(사9:6~7). 이 예언은 솔로몬에게서 그림자로 나타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체로 성취된다.

사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하늘의 천군 천사들도 평화를 노래했다. 이것은 솔로몬의 이름 안에 있던 샬롬의 실체가 예수님 안에서 이 땅에 들어왔다는 선언이다(눅2:14).

눅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그러나 이 평화는 사람의 구호나 제도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통치가 없으면 참 평화가 없다. 악한 영이 사람 속에 그대로 있고, 죄의 세력이 가정과 교회와 사회를 붙잡고 있다면 평화라는 말은 껍데기가 된다. 먼저 다윗의 전쟁이 있어야 솔로몬의 평강이 있다. 먼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승리가 있어야 새 예루살렘의 영원한 평강이 있다.

  성도에게도 이 순서가 중요하다. 회개 없이 평강만 구하면 거짓 평안에 속는다. 귀신을 내보내지 않고 안심만 구하면 다시 죄의 공격을 받는다. 말씀과 회개와 영적 전쟁을 통해 악한 영의 합법적 근거를 제거해야 한다. 그때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과 가정과 교회 가운데 임한다. 솔로몬의 평강은 바로 이 영적 원리를 보여 주는 예표다.

  샬롬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샬롬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서고, 죄의 막힘이 제거되며, 영혼과 육체와 삶이 하나님의 질서 안으로 들어가는 충만한 평강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주시는 평강은 세상이 주는 평강과 다르다. 세상은 문제를 덮어 두고 평안하다고 말하지만, 주님은 죄를 드러내고 회개하게 하시며 악한 영을 내보내어 참 평강을 주신다.

  솔로몬 시대의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의 평안은 새 예루살렘의 예고편이다. 새 예루살렘 안에는 다시 저주가 없고, 밤이 없고, 눈물과 사망과 애통이 없다. 왜 그런가? 악한 자가 성 안에 들어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평강을 말할 때 반드시 거룩을 함께 말해야 한다. 거룩 없는 평강은 오래가지 못하고, 회개 없는 평안은 악한 영이 다시 들어올 틈을 남긴다.

 

 

7. 솔로몬의 성전 건축은 어떻게 교회를 예표하는가?

 

  솔로몬의 세 번째 중요한 예표는 '성전 건축'이다. 다윗은 성전을 짓고 싶어 했지만, 전쟁에서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그 일을 직접 감당하지 못했다(대상 28:3). 대신 그는 재료를 준비했다. 금과 은과 놋과 철과 돌과 나무와 수많은 보석을 준비했고, 그 모든 것을 아들 솔로몬에게 넘겼다. 그리고 솔로몬은 평강의 시대에 여호와의 전을 건축했다.

  성전은 사람의 이름을 높이는 건물이 아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고 임재를 나타내시는 처소다. 그러므로 솔로몬의 성전 건축은 단순한 건축 사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시는 방식을 보여 준 예표다. 구약에서는 돌로 지은 성전이 있었지만,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몸과 성령을 받은 교회가 성전의 실체로 드러난다.

  예수님께서는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말씀하셨다. 유대인들은 건물 성전을 생각했지만, 요한은 예수님께서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해석했다(요2:19~21).

요2:19~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이 말씀은 성전의 중심이 건물에서 그리스도에게로 옮겨졌음을 보여 준다. 예수님 자신이 참 성전이시다. 그분 안에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가 있다.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생명이 흘러나왔고, 그 생명을 받은 자들이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다. 바울도 성도와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그 안에 거하신다고 말했다(고전3:16).

고전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솔로몬 성전은 '교회'를 예표한다. 다윗이 전쟁으로 재료를 준비하고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듯이,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로 원수를 이기시고 성령을 보내어 교회를 세우셨다. 교회는 단순한 모임이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인격적 처소이며, 천국 백성을 준비시키는 훈련장이고, 이기는 자를 세우는 영적 성전이다.

  여기서 동탄명성교회의 회개와 천국복음의 강조점이 중요하다. 성전은 깨끗해야 한다.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 안에 귀신과 죄와 우상숭배의 찌꺼기가 그대로 남아 있으면 안 된다. 예수의 피로 죄를 자백하고, 회개를 통해 악한 영의 근거를 제거하며, 말씀과 기도와 영적 전쟁으로 성전을 정결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교회가 교회답게 서는 길이다.

  솔로몬은 성전을 지은 왕이었다. 예수님은 참 성전을 세우신 왕이시다. 그리고 오늘날 성도는 그 성전 안에서 지체로 세워져야 한다(엡 2:22). 성도 한 사람의 몸도 성전이며, 성도들이 함께 이루는 교회도 성전이다. 그러므로 성전 건축의 예표는 오늘날 건물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을 정결하게 하고, 교회를 거룩하게 하며, 천국에 들어갈 백성을 세우는 문제다.

  성전을 가리키는 말도 생각해야 한다. 구약의 성전은 하나님의 이름이 머무는 거룩한 처소였고, 신약에서 성전은 그리스도의 몸과 성령이 거하시는 교회로 확장된다. 헬라어로 성전을 가리키는 말 가운데 “나오스”는 건물 전체보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거룩한 처소를 강조한다. 바울이 성도를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할 때, 그것은 성도 안에 실제로 성령께서 거하신다는 영적 팩트를 말한다.

  그러므로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건물만 세운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을 세우는 것이다. 귀신에게 눌린 사람을 회개와 예수의 피로 자유롭게 하고, 말씀을 모르는 사람에게 진리를 가르치며, 천국에 들어갈 백성을 준비시키는 것이 교회를 세우는 일이다. 솔로몬이 성전의 돌과 금과 기구를 준비했다면, 오늘날 사역자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정결한 산 돌로 준비시켜야 한다. 이것이 성전 건축의 신약적 성취다.

 

 

8. 천국에서 왕 노릇할 자는 왜 이기는 자이어야 하는가?

 

  다윗에게는 여러 아들이 있었지만 왕위를 이은 자는 그의 열째 아들인 '솔로몬'이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영적 사실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을 부르시지만, 왕위를 잇는 자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세워진다. 다윗의 아들이라는 혈통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암논도 다윗의 아들이었고, 압살롬도 다윗의 아들이었고, 아도니야도 다윗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상속자는 솔로몬이었다.

  이 원리는 천국 왕직에도 적용된다. 하나님은 모든 성도가 왕 노릇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실제로 그 보좌에 앉는 자는 이기는 자다. 요한계시록은 반복해서 “이기는 자”에게 약속을 준다. 특히 예수님은 이기는 자에게 자신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계3:21).

계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여기서 '보좌'는 왕권과 심판권의 자리다. 그러므로 보좌에 앉는다는 것은 단지 영광스럽게 보이는 자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고 판단하는 자리다. 아무나 그 자리에 앉을 수 없다. 이기는 자가 앉는다. 무엇을 이겨야 하는가? 죄를 이겨야 한다. 귀신을 이겨야 한다. 세상을 이겨야 한다. 자기 속의 정욕과 교만과 불신앙을 이겨야 한다. 끝까지 회개하고 믿음을 지킨 자가 이기는 자다.

  요한계시록 20장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한다고 말한다(계20:6). 여기에는 제사장직과 왕직이 함께 있다. 제사장은 하나님을 섬기고, 왕은 다스린다. 다윗은 찬양과 전쟁을 함께 보여 주었고, 솔로몬은 심판과 평강과 성전을 함께 보여 주었다. 이것이 장차 성도가 받을 왕 같은 제사장의 신분이다.

계20: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요한계시록 22장도 그의 종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할 것이라고 말한다(계22:5). 여기서 왕 노릇하는 자들은 단지 명목상 성도가 아니다. 그들은 어린양의 보좌 앞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종들이며, 이마에 그의 이름이 있는 자들이다. 이름은 소속을 말하고, 이마는 생각과 정체성을 말한다. 그러므로 왕 노릇할 자는 자기 생각을 세상의 영에게 내어 준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인침 받은 자다.

계22: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솔로몬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 왕위를 이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다윗의 아들이라는 이름만 가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상속자의 자리에 들어갔다. 성도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자동으로 최고의 왕직을 받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예수님의 피와 생명으로 시작되지만, 왕직은 이 땅에서의 회개와 충성과 이김과 준비를 통해 결정된다.

  그러므로 솔로몬의 예표는 경고이기도 하고 소망이기도 하다. 경고는 왕의 아들이 많아도 상속자는 아무나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소망은 하나님께서 지금도 이기는 자를 세우신다는 사실이다. 회개하고, 말씀을 붙들고, 영적 전쟁을 수행하고, 교회를 세우며, 평강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통치 안에 들어가는 자는 천국에서 왕 노릇할 상속자로 준비될 수 있다.

  요한계시록의 144,000도 이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그것은 혈통적 이스라엘의 숫자를 산술적으로 세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 인침 받고 어린양을 따르는 이기는 자들의 표지로 보아야 한다.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은 것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사건과 연결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성도에게 영적 이김의 방향을 가르쳐 준다. 하나님은 혈통의 자랑이 아니라 믿음과 회개와 순종으로 이기는 자들을 찾으신다.

  이기는 자는 자기 힘으로 자랑하는 자가 아니다. 이기는 자는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 이기며,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는 자다. 그러므로 이김은 교만의 훈장이 아니라 헌신의 열매다. 다윗은 전쟁에서 이겼으나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고, 솔로몬은 성전을 지어야 할 왕으로 부름받았다. 성도도 이 땅에서 받은 은사와 물질과 시간과 생명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드릴 때, 천국의 왕직을 향한 실제 준비가 이루어진다.

 

 

9. 나오며

 

  솔로몬이 어떻게 메시아를 예표하는지를 살펴보았다. 다윗을 살핀 뒤 솔로몬을 살펴야 하는 이유는,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다윗의 아들”로 증언하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역사적으로 다윗의 아들이며, 예수님은 구속사적으로 다윗의 아들이시다. 그러므로 솔로몬의 지혜와 평강과 성전 건축은 모두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을 향해 열려 있다.

  그리고 솔로몬은 첫째로, 지혜로운 심판자의 예표다. 그는 백성을 판단하는 지혜를 받았고, 예수님은 아버지께로부터 심판권을 받으신 인자로 오셨다. 성도는 예수님을 단지 위로자와 구원자로만 아는 데 머물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은 마음과 행위를 살피시는 심판자이심을 알아야 하며, 그 심판대 앞에 설 날을 생각하며 회개와 순종의 열매를 준비해야 한다.

  둘째로, 솔로몬은 평강의 왕의 예표다. 그의 평강은 다윗이 원수를 정복한 뒤에 왔다. 이와 같이 참 평강은 죄와 사망과 마귀의 권세를 제압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 안에서 온다. 성도는 거짓 평안에 머물지 말아야 하며, 회개를 통해 악한 영의 근거를 제거하고 그리스도의 통치 안에서 참 평강을 누려야 한다.

  셋째로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한 왕의 예표다. 예수님은 성전된 자기 육체를 죽음과 부활로 다시 세우셨고, 성령을 통해 교회를 하나님의 성전으로 세우셨다. 성도는 자기 몸이 성전임을 기억해야 하며, 교회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와 교회는 예수의 피와 회개와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정결하게 세워져야 한다.

  또한 넷째로, 솔로몬은 왕노릇할 상속자의 예표다. 다윗에게 여러 아들이 있었지만 왕위를 이은 자는 솔로몬이었다. 이 사실은 천국의 왕직이 아무에게나 자동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신분임을 보여 준다. 성도는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에 안주하지 말아야 하며, 이기는 자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믿음으로 시작한 삶은 회개와 순종과 영적 전쟁과 교회 세움의 열매로 이어져야 한다.

  결국 솔로몬을 공부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을 더 깊이 배우는 일이다. 그분은 지혜로운 심판자이시며, 평강의 왕이시고, 참 성전을 세우시는 주님이시다. 그리고 그분은 이기는 자에게 보좌를 약속하신다. 성도는 이 약속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하며, 오늘의 삶 속에서 죄를 이기고 악한 영을 대적하며 말씀 안에서 분별력을 길러야 한다. 그리하여 다윗의 아들 솔로몬 안에서 메시아 예수님의 왕권과 평강과 성전의 비밀을 깨닫고, 이기는 자로 준비되어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6월 15일(월)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구약의 솔로몬을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예시하는 핵심적인 메시아적 예표로 규정하며 그 영적 의미를 다각도로 고찰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솔로몬이 다윗의 수많은 아들 중 유일하게 왕위를 계승한 상속자라는 점에 주목하여, 그가 수행한 지혜로운 재판과 성전 건축이 장차 인류를 심판하고 교회를 세우실 그리스도의 사역을 상징한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문을 대조하며 다윗의 아들이라는 호칭 속에 담긴 신학적 권위를 강조하고, 솔로몬 시대의 태평성대가 장차 마귀가 없는 천국의 평화를 미리 보여준다는 점을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들이 솔로몬처럼 하나님의 뜻을 실행함으로써 하늘 나라의 진정한 상속자이자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영적 교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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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요약입니다.

기독론(123) 다윗의 아들 솔로몬(01): 그는 메시아에 대한 어떤 예표자인가?(01)

본문: 삼하 7:8-17

 

1. 들어가며

  기독론 강해를 시작한 이래, 우리는 구약 성경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흐르고 있음을 거듭 확인해 왔다. 아담으로부터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거쳐 모세와 여호수아, 그리고 사사들에 이르기까지, 구약의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장차 오실 메시아를 예표하는 증인이었다. 그 긴 행렬의 중심부에 다윗이 있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 회개를 알려 준 왕, 전쟁에 능한 왕, 그리고 메시아에 대한 가장 높은 예언을 남긴 왕—다윗은 실로 구약 기독론의 핵심 인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다윗의 생애를 기록한 사무엘상하와 역대상을 통해 다윗을 살폈고, 다윗이 직접 남긴 시편을 통해서도 메시아 예언의 깊이를 들여다보았다.

  그러는 가운데 우리는 이른바 "준 시편 강해"를 하게 되었을 만큼, 시편이 얼마나 풍성한 기독론적 보고(寶庫)인지를 새삼 깨달았다. 시편 150편 가운데 다윗의 시라고 표기된 것은 73편으로, 전체의 약 48퍼센트에 해당한다. 이것은 히브리어 원문 곧 마소라 사본을 기준으로 한 수치다. 그런데 헬라어 번역본인 70인역(LXX)을 살펴보면, 마소라 사본에는 없지만 70인역에는 다윗의 시로 표기된 편이 14편 더 있다. 이것까지 합산하면 총 87편, 전체의 약 58퍼센트가 다윗의 시로 분류된다. 그야말로 시편은 다윗의 시편이라 불릴 만하다. 이 다윗의 시편 안에 메시아의 예언이 빼곡하게 담겨 있다. 시편 22편, 시편 110편, 시편 2편—이 시편들 하나하나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예언의 노래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24장 44절에서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다윗의 시편이 메시아를 노래하고 있음을 예수님께서 친히 확인해 주신 것이다.

  한편, 다윗의 생애를 기록한 역사책과 시편을 함께 공부함으로써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재발견했다. 역사책을 통해서 아는 다윗과 시편을 통해서 아는 다윗이 얼마나 풍성하고 입체적인 인물인지를 말이다. 역사는 그의 행적을 기록하고, 시편은 그의 내면과 영성과 기도를 보여 준다. 그 두 가지를 함께 볼 때, 다윗이 왜 메시아 예언의 핵심 인물인지를 제대로 알 수 있다.

  이제 다윗 강해의 결론부에 이르러 우리 앞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다. 솔로몬은 일반적으로 '지혜의 왕', 혹은 '평화의 왕'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기독론의 관점에서 솔로몬을 바라볼 때, 그는 단순히 지혜롭고 평화로운 임금이 아니다. 그는 장차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생생한 예표자(豫表者)다. 다윗의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그 사실이 솔로몬을 통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형상화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 예표가 신약 성경에서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이 시간에는 그 서론적 기초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우리가 기독론 강해에서 솔로몬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기독론 강해에서 솔로몬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예수님의 직접적인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 요한복음 5장 39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선언하셨다.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성경이 내게 대하여 증언한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구약 성경을 기독론의 눈으로 읽어야 하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부활 후 엠마오 도상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도, 예수님은 같은 사실을 강조하셨다.

눅 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모세의 율법, 선지자의 글, 그리고 시편—구약 성경의 세 구분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한다고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구약 성경을 읽을 때 언제나 기독론의 눈으로 읽어야 한다. 이것이 성경을 제대로 읽는 유일한 길이다. 사도 바울이나 베드로의 말씀도 귀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 최고의 권위를 지닌다. 그분의 말씀 한 마디는 단 하나도 틀린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솔로몬을 공부해야 하는 직접적인 이유는 신약 성경의 첫 문장에 이미 명시되어 있다. 마태복음 1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마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원문 헬라어를 보면 '자손'이 아니라 '아들(휘오스, υἱός)'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어 있다. 그러므로 원문의 뜻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이다. 히브리어 '벤(בֵּן)'과 헬라어 '휘오스'는 문맥에 따라 아들, 자손, 후손을 모두 포괄하는 낱말이다. 히브리어는 동사가 없어 명사를 동사로 사용할 만큼 유동적이고 감성적인 언어다. 반면 헬라어는 논리적이고 정밀한 언어여서 의미를 분명히 구분한다. 70인역이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이유 중 하나도 바로 그 의미를 더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데 있었다. 이러한 언어적 특성을 이해하고 성경을 읽을 때, 마태복음 1장 1절의 핵심 주제가 더 분명하게 보인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의 씨이면서 동시에 다윗의 아들이시다.

  그리고 다윗의 아들이라고 할 때, 그 가장 직접적인 역사적 모형이 바로 솔로몬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백성들이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쳤던 것도 이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맹인 두 사람이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쳤고, 수로보니게 여인도 같은 말을 반복했으며,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때에도 무리는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환호했다. 그 외침 안에는 다윗의 씨, 다윗의 아들로 오시는 메시아에 대한 구약의 약속이 담겨 있었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맺으신 언약의 핵심은 두 가지다.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창 22:18)과 다윗과 맺은 언약(삼하 7:12-16)이다. 씨도 두 가지로 집약된다. 아브라함의 씨로 오신다, 다윗의 씨로 오신다—이 두 줄기가 구약 전체를 관통한다. 창세기 22장의 아브라함 언약과 사무엘하 7장의 다윗 언약이 마태복음 1장 1절에서 하나로 수렴되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다. 또한 마태복음 1장 6절을 보면 계보를 기술하는 가운데 유독 "다윗 왕"이라고 왕이라는 칭호를 붙인 것을 볼 수 있다. 아브라함에게도, 이삭에게도 왕이라는 칭호를 붙이지 않았다. 다윗에게서부터 왕의 계보가 시작된다는 표시다. 그리고 히브리어로 다윗의 이름을 수의 값으로 환산하면 14가 되는데, 마태가 계보를 14대씩 셋으로 나눈 것도 바로 이 다윗의 수에 맞춘 것이다. 구약 성경의 핵심 언약의 성취자, 다윗의 씨—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직접적인 예표자가 솔로몬이다. 그러므로 솔로몬을 공부하는 것은 곧 다윗의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이해하는 작업이다. 나아가 솔로몬을 공부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솔로몬에 대한 대명사들—지혜의 왕, 평화의 왕, 성전을 지은 왕—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재판, 완전한 평화, 하나님의 성전—이 세 주제는 신약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솔로몬을 공부하지 않고는 다윗의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 시편 72편은 솔로몬을 어떻게 메시아의 예표로 제시하는가?

  다윗의 시가 압도적으로 많은 시편 안에, 솔로몬의 시가 두 편 들어 있다. 시편 72편과 127편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 시편 72편은 솔로몬이 메시아의 예표임을 가장 정면으로 드러내는 본문이다.

시 72:1-2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그가 주의 백성을 공의로 재판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정의로 재판하리니

  이 두 절이 솔로몬의 시가 시편 안에 수록된 핵심 이유다. 시편 72편은 표면적으로는 솔로몬 왕의 즉위를 축원하는 노래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이 시는 하나님의 판단력과 공의로 재판하시는 왕, 곧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다. "왕에게 주시고"와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라는 표현은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과 아들 되시는 메시아의 관계를 동시에 함축한다. 하나님의 판단력과 공의가 아들에게 위임되는 것—이것이 바로 시편 72편의 핵심 주제다.

  시편 72편을 더 읽어 내려가면, 이 시가 역사 속의 솔로몬에 대한 묘사로 시작하지만 그 내용이 점점 솔로몬을 넘어서는 차원으로 확장됨을 알 수 있다. 그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강에서 땅 끝까지 다스리는 왕으로 묘사되고(시 72:8), 그의 이름이 해와 달이 있는 동안 영구하며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는다고 노래한다(시 72:17). 이것은 솔로몬이 통치한 역사적 영역보다 훨씬 넓은 우주적 왕권을 가리킨다. 솔로몬은 일차적인 예표였고, 그 예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성된다. 시편 72편은 솔로몬의 왕권을 노래하면서 그것을 통하여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메시아 왕의 통치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이 주제는 신약에서 선명하게 성취된다. 요한복음 5장 22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 5: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아버지께서 심판을 아들에게 맡기셨다—이것이 시편 72편 1절이 가리키는 예언의 성취다. 시편 72편을 쓴 솔로몬은 자신이 그 예언의 일차적인 예표임을 알았다. 지혜롭게 재판하는 왕 솔로몬의 모습은 장차 완전한 공의로 심판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였던 것이다. 이처럼 시편 72편은 솔로몬을 통하여 메시아가 어떤 왕으로 오실 것인지를 미리 보여 주는 예언의 노래다. 우리가 솔로몬을 공부할 때 시편 72편을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솔로몬의 시가 메시아를 가리키는 예언이 되어 시편 안에 수록된 것은, 하나님의 의도적인 섭리였다. 더 나아가 시편 72편의 마지막 절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온 땅에 그의 영광이 충만할지어다 아멘 아멘"(시 72:18-19)이라는 영광송으로 끝난다. 솔로몬의 시가 온 땅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기를 구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가 온 땅에 미칠 것이라는 예언이다. 시편 72편 전체가 하나님의 아들 솔로몬을 예표로 삼아 온 세상을 다스리실 메시아 왕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4. 심판권이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 주어진 근거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보좌에서 심판권이 아들에게 주어진 사실은 신약 성경 여러 곳에서 분명하게 증언된다. 가장 핵심적인 본문은 요한복음 5장 26-27절이다.

요 5:26-27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이 본문에서 주목해야 할 핵심 표현은 "인자됨으로 말미암아"다. 심판권이 아들에게 주어진 근거가 무엇인가? 예수님이 사람의 아들로, 곧 인자(人子)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것—성육신—이 심판권 위임의 근거다. 아들이 인자로 오셨기에 아버지께서 그에게 심판하는 권한을 주신 것이다.

  구약 시대에는 여호와 하나님 홀로 보좌에 앉아 통치하셨다. 이사야 선지자가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으리라"(사 45:5)고 선포한 것처럼, 구약 시대는 한 분 하나님이 홀로 왕 노릇 하시는 시대였다. 예수님은 그 시대에 아버지의 품속에 계셨고, 직접 역사 속에 나타나시지 않으셨다. 대신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 그러다가 때가 차매 아들이 이 땅에 성육신하여 나타나셨고, 그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권을 위임받으셨다. 이것이 요한복음 5장 26-27절의 선언이다.

  이것은 구약에서 다윗과 솔로몬의 관계를 통해 예표되어 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으로서 전쟁을 수행하며 왕권을 행사했다.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사방에서 정복하고 나라의 기반을 닦았다. 그러나 다윗은 전쟁을 너무 많이 하여 피를 많이 흘렸기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성전 건축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대신 다윗의 아들 솔로몬에게 평화의 나라와 성전 건축을, 그리고 지혜로운 재판의 영광을 허락하셨다. 아버지 다윗이 싸워 이긴 것을 아들 솔로몬이 받아 누린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권을 가지고 계신 심판권을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위임하신 것이다.

  이 심판권의 위임은 종말론적 성취로 이어진다. 요한계시록 11장 15절은 일곱째 나팔 소리와 함께 이렇게 선포한다.

계 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이 두 표현은 두 분이 각각 왕 노릇 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는 단수 표현으로 하나로 수렴된다. 한 분 하나님이시면서 아버지와 아들로 경륜적으로 구분되어 역사하시는 분이 세세토록 통치하신다는 선언이다. 또한 요한계시록 20장 6절은 이렇게 말한다.

계 20: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로다

  백보좌 심판을 비롯한 최후의 심판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은 요한계시록 전체의 일관된 증언이다.

  나아가 요한계시록 3장 21절에서 예수님은 이기는 자에게 이렇게 약속하셨다.

계 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 같이 하리라

  예수님이 이기셔서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으셨듯이, 이기는 자들도 그 보좌에 함께 앉게 된다. 보좌는 심판과 통치의 자리다. 이 보좌가 요한계시록 22장 1절과 3절에서는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 단수로 표현된다. 하나의 보좌가 곧 아버지의 보좌이면서 동시에 어린 양의 보좌다. 이것이 한 분 하나님의 경륜적 역사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재판하는 왕으로 예표한 것이 바로 이 보좌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권이다. 그리고 그 심판이 이루어질 때, 이기는 자들도 그 보좌에 함께 앉아 왕 노릇 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요한계시록 22장 3-5절은 그 최종적인 모습을 이렇게 그린다.

계 22:3-5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그의 종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이 종들이 곧 요한계시록 7장의 14만 4천이다. 이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라, "이긴 자"의 영적 의미를 담은 상징적인 표현이다. 이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라, "이긴 자"의 영적 의미를 담은 상징적인 표현이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 각 지파에서 만 이천이라는 것은 상징적 숫자로, 완전수 12와 충만수 1000의 곱이다. 이들은 이기는 자들로서 하나님의 인을 이마에 받은 자들이다. 솔로몬이 다윗의 아들로 왕의 보좌에 앉아 지혜롭게 재판한 것이, 이기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세세토록 왕 노릇 하는 영광의 예표였음을 우리는 이렇게 확인하게 된다.

 

5. 솔로몬이 '지혜의 왕'으로 불린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어떤 사역을 가리키는가?

  솔로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명사가 '지혜의 왕'이다. 솔로몬의 지혜에 대한 이야기는 성경 곳곳에 기록되어 있다. 열왕기상에는 두 여인이 한 아이를 놓고 "내 아이다"라고 다투는 장면이 나온다. 두 여인이 함께 한 집에 살면서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았는데, 한 여인의 아이가 죽자 그 여인이 살아 있는 아이를 몰래 바꿔치기한 것이다. 재판 자리에서도 두 여인 모두 살아 있는 아이가 자기 아이라고 주장했다. 솔로몬은 칼을 가져와 살아 있는 아이를 반으로 나누어 두 여인에게 각각 나누어 주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한 여인은 "그렇게 하소서, 어느 쪽에도 주지 마소서"라고 했고, 다른 여인은 "아이를 죽이지 마시고 저 여인에게 주소서"라고 했다. 아이의 목숨을 구하려 한 여인이 진짜 어머니임을 솔로몬은 순식간에 간파했다. 생명에 대한 애절한 사랑이 있는 쪽이 진짜 어머니임을 꿰뚫어 본 것이다. 이 재판의 소문이 퍼지자, 이스라엘 온 백성이 솔로몬을 두려워했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하나님의 지혜가 그 속에 있어 재판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왕상 3:28).

  이 소문은 멀리까지 퍼져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찾아왔다. 그 여왕은 많은 수행원과 예물을 가지고 와서 솔로몬에게 어려운 질문들을 던졌고, 솔로몬이 그 모든 물음에 막힘 없이 답하는 것을 들었다. 그뿐 아니라 솔로몬의 궁전 건축과 음식 차림과 신하들의 행렬과 제사장들의 섬김을 보고 정신을 잃을 만큼 놀랐다고 성경은 기록한다(왕상 10:1-5). 여왕은 "내가 들은 말이 사실의 절반도 되지 못했도다"라고 고백했다. 그 지혜와 번영이 이토록 대단했기에, 솔로몬을 '지혜의 왕'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솔로몬의 지혜가 예표하는 것은 단순한 총명함이나 학식이 아니다. 시편 72편 1-2절이 보여 주듯, 솔로몬의 지혜는 무엇보다 재판과 심판에서 발휘된다. 하나님의 판단력으로 공의롭게 재판하는 것—그것이 솔로몬의 지혜가 궁극적으로 가리키는 바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솔로몬의 지혜를 완전히 성취하시는 분이다. 고린도전서 1장 24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고 부른다. 그분은 지혜 자체이시다. 마지막 날 그분이 보좌에 앉아 심판하실 때, 그 심판은 완전한 공의와 완전한 지혜로 이루어질 것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을 꿰뚫어 보시는 완전한 지혜의 심판이 이루어질 것이다.

  예수님 스스로도 솔로몬을 자신에 대한 예표로 언급하신 바 있다.

마 12:4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예수님은 솔로몬을 자신의 예표로 명시하셨다. 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해 땅 끝에서 왔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솔로몬보다 무한히 큰 지혜를 가지고 이 땅에 오셨다. 솔로몬의 지혜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말년에 이방 여인들로 인해 마음이 돌아서는 비극을 낳았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한 것은 지혜였고, 하나님은 그에게 지혜와 더불어 부와 영광도 더해 주셨다(왕상 3:12-13). 그러나 그 지혜가 솔로몬을 끝까지 지키지는 못했다. 인간 솔로몬의 한계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는 완전하고 영원하다. 솔로몬이 두 여인의 재판에서 생명의 진실을 꿰뚫었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환히 아시며 완전한 지혜로 최후의 심판을 행하실 것이다. 그분에게는 숨겨진 것이 없다. 모든 것이 그분의 눈 앞에 벌거벗은 채로 드러나 있다(히 4:13). 솔로몬이 이스라엘 안에서 재판했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민족과 모든 세대의 모든 사람을 심판하신다. 솔로몬의 재판이 40년에 그쳤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은 영원한 효력을 가진다. 솔로몬은 예표요, 예수 그리스도는 그 예표의 완전한 성취자이시다. 우리가 오늘 지혜를 구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야고보서 1장 5절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말씀한다. 솔로몬이 구한 것이 지혜였고, 하나님이 그에게 지혜를 주셨듯이, 우리도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한다. 그 지혜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하고, 인생의 중요한 선택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게 한다. 지혜의 왕 솔로몬이 예표한 분, 지혜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지혜를 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오늘 지혜를 구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야고보서 1장 5절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말씀한다. 솔로몬이 구한 것이 지혜였고, 하나님이 그에게 지혜를 주셨듯이, 우리도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한다. 그 지혜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하고, 인생의 중요한 선택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게 한다. 지혜의 왕 솔로몬이 예표한 분, 지혜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지혜를 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6. 솔로몬이 '평화의 왕'으로 불린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어떤 사역을 예표하는가?

  솔로몬의 두 번째 대명사는 '평화의 왕'이다. '솔로몬(שְׁלֹמֹה)'이라는 이름 자체가 히브리어 '샬롬(שָׁלוֹם)', 곧 평화에서 유래한다. 예루살렘(יְרוּשָׁלַיִם)이라는 도시 이름도 '샬롬의 성읍', '평화의 성읍'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종말에 임할 새 예루살렘이 평화의 성읍으로 불리는 것도 이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솔로몬이 평화의 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아버지 다윗이 사방의 원수들을 모두 정복했기 때문이다. 다윗은 블레셋을 정복하고, 모압을 정복하고, 에돔과 아람과 암몬을 정복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적장 골리앗을 소년의 몸으로 쓰러뜨린 것으로 시작하여, 이스라엘 주변의 모든 대적을 평정함으로써 다윗은 아들 솔로몬을 위한 평화의 기반을 마련했다. 그래서 솔로몬의 통치 기간은 처음부터 끝까지 평화로웠다. 다윗이 전쟁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성전 건축을 하지 못했고, 그 성전 건축의 영광이 평화의 아들 솔로몬에게 주어진 것도 이 이유에서다. 전쟁하는 아버지와 평화를 누리는 아들—이 대비는 하나님의 구속 경륜을 예표하는 생생한 그림이다.

  열왕기상 4장 24-25절은 솔로몬의 시대를 이렇게 묘사한다.

왕상 4:24-25 솔로몬이 그 강 건너편을 딥사에서부터 가사까지 모두 다스리므로 그 강 건너편의 왕을 모두 다스렸고 그가 사방에 둘린 민족과 평화를 누렸으니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더라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더라"—이보다 더 평화로운 장면이 어디 있겠는가.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는 이스라엘 전체를 지칭하는 관용적 표현이다. 북쪽 끝 단으로부터 남쪽 끝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나라 전체가 외적의 침략 없이 각자의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앉아 쉬는 풍경이다. 이것이 솔로몬 시대 40년 동안의 태평성대였다.

  이 솔로몬의 평화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실 완전한 평화를 예표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것을 이렇게 예언했다.

사 9:6-7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리라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아들로 오신다! 솔로몬이 다윗의 아들로 평화의 왕이 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아들로 오시는 평강의 왕이시다. 이사야 9장 6절의 이름들 가운데 "평강의 왕"은 히브리어로 '샤르 샬롬(שַׂר שָׁלוֹם)'이다. 솔로몬의 이름에 담긴 샬롬이 이사야의 예언에서 '평강의 왕'으로 다시 선포된 것이다. 솔로몬은 일시적인 40년의 평화를 가져왔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한" 영원한 평화를 가져오신다.

  누가복음 2장은 이 예언의 성취를 이렇게 기록한다.

눅 2:11-14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헬라어로 '에이레네(εἰρήνη)', 곧 평화다. 수많은 천군 천사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앞에 놓고 평화를 선포했다. 평강의 왕이 오셨다는 선포였다. 그러나 솔로몬의 평화는 40년에 그쳤고 그의 죽음과 함께 이스라엘 나라는 분열되고 말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는 다르다. 다윗이 골리앗과 주변의 나라들을 정복하여 솔로몬에게 평화를 넘겨주었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사탄과 죄와 사망의 권세를 완전히 정복하셨다. 그 정복의 결과로 오는 평화가 천국에서의 영원한 샬롬이다.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는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픔이 다시 있지 않을 것이다(계 21:4). 마귀가 없어지면 마귀가 가져온 모든 저주도 함께 사라진다. 그 완전한 샬롬의 세계가 평강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실 영원한 왕국이다. 솔로몬의 시대에 백성들이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듯이, 새 예루살렘에서 우리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며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될 것이다(계 22:2). 솔로몬의 평화가 40년의 아름다운 그림자였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는 영원토록 계속되는 실체다. 평강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이미 이 땅에서도 그 평화의 맛을 누린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서 예수님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평강의 왕이 주시는 샬롬이다.

 

7. 다윗의 아들이 많았음에도 솔로몬만 메시아의 예표로 지목된 까닭은 무엇인가?

  다윗에게는 아들이 많았다. 맏아들 암논, 셋째 아들 압살롬, 넷째 아들 아도니야, 그리고 열째 아들 솔로몬이었다. 그런데도 '다윗의 아들'이라 하면 왜 솔로몬인가? 왜 암논이나 압살롬이나 아도니야가 아닌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먼저 야곱과의 대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야곱은 자신의 열두 아들 모두를 상속자로 삼으려 했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삭 한 명만이 상속자였고, 이삭에게도 야곱 한 명만이 상속자였다. 그런데 야곱은 열두 아들 모두를 이스라엘의 지파로 세웠다. 그 강렬한 열망이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었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다. "이스라엘"이 뜻하는 "이긴 자"—그 이름 안에 야곱의 소원, 곧 모든 아들을 상속자로 만들겠다는 열망이 담겨 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 이기는 자들의 수를 세는 장면에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등장하는 것이다(계 7:3-4). 야곱은 하나님의 발원—모든 자녀가 상속자가 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가까이 담아낸 인물이었다.

  그런데 다윗은 달랐다. 다윗의 아들들 가운데 암논은 이복 누이 다말을 욕보인 일로 인해 결국 압살롬에게 죽임을 당했다.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에게 반란을 일으켜 예루살렘을 점령하기까지 했으나, 끝내 나무에 머리털이 걸려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했다. 넷째 아들 아도니야는 다윗이 노쇠하자 요압 장군과 아비아달 제사장과 손을 잡고 왕이 되려 했다. 아버지에게 먼저 여쭙거나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왕을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선지자 나단이 밧세바에게 알렸고, 밧세바가 다윗 왕에게 솔로몬이 왕이 될 것이라는 약속을 상기시켰다. 그러자 다윗은 늙고 쇠한 몸에도 일어나, 아직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어린 솔로몬을 기혼 샘으로 데려가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으로 하여금 기름을 붓게 했다(왕상 1:38-39). "내 상속자는 솔로몬이다"—이것이 다윗의 결정이었고, 그 결정 안에는 하나님의 선택이 있었다.

  사무엘하 7장의 다윗 언약에서 하나님은 이미 이렇게 약속하셨다.

삼하 7:12-14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내가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하나님이 친히 이 아들을 지목하셨다. 이 언약은 일차적으로 솔로몬에게 성취되지만,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전히 성취된다. 다윗의 많은 아들들 가운데 솔로몬만이 택함을 받았듯이, 장차 오실 메시아는 오직 한 분—예수 그리스도뿐이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정한 다윗의 아들이요, 그 언약의 최종 성취자이시다.

  이 사실은 이기는 자에 대한 진리와도 연결된다. 요한계시록이 거듭 강조하는 것은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이다. 보좌에 앉아 왕 노릇 할 자는 이기는 자이지, 신앙을 고백한 모든 이에게 자동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계 3:21). 하나님은 모든 자녀가 이기는 자가 되기를 원하시지만, 실제로 왕 노릇 하는 자리는 그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달려 있다. 암논과 압살롬과 아도니야는 그 자리에 합당하지 않았다. 오직 솔로몬만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다윗의 보좌에 앉았다. 이와 같이 영원한 보좌에 앉아 왕 노릇 할 자는 이기는 자, 곧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붙들고 살아간 자들이다. 야곱처럼 모든 아들이 상속자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발원이지만, 다윗처럼 한 아들만이 보좌에 앉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고, 그 뜻을 따라 이기는 자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암논처럼 정욕에 이끌려 하나님의 법을 어겨서도 안 되고, 압살롬처럼 교만하여 아버지의 권위를 무시해서도 안 되며, 아도니야처럼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앞서 나가서도 안 된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솔로몬처럼, 하나님 앞에 지혜를 구하고, 하나님이 주신 자리에서 충성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이기는 자의 길이다. 다윗이 그 마음으로 살았고, 그 마음을 이은 솔로몬이 왕의 보좌에 앉았다. 우리도 그러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8.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어떤 사역을 예표하는가?

  솔로몬의 세 번째 대명사는 '성전을 지은 왕'이다. 솔로몬은 왕이 된 지 4년 만에 예루살렘에 성전 건축을 시작했다. 다윗이 그토록 원했지만 이루지 못한 성전 건축을, 아들 솔로몬이 마침내 완수한 것이다. 이 성전 건축은 솔로몬 왕의 치세 가운데 가장 중심적인 사역이었고, 역대하는 그 건축의 자리를 이렇게 기록한다.

대하 3:1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것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것이라

  이 구절에서 주목해야 할 지명이 "모리아 산"이다. 모리아 산은 창세기 22장에서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 했던 바로 그 산이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드린 자리, 그 자리에 다윗이 성전 터를 정하고, 그 위에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다. 아브라함의 언약과 다윗의 언약이 한 자리에서 교차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1장 1절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고 두 사람을 함께 언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아들을 드린 것과 다윗이 그 자리에 성전 터를 정한 것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언약의 성취자로 오실 것을 가리키는 표징이었다.

  솔로몬의 성전이 예표하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2장 21절에서 친히 이것을 밝히셨다.

요 2: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님이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고 하신 말씀은 자기 몸 곧 성전된 육체를 가리키신 것이었다.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임재가 거하는 성전이시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어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를 마련했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친히 성전된 몸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임재를 우리 가운데 나타내셨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하나님께서 솔로몬의 성전에 영광으로 임재하셨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에 하나님의 모든 충만이 거하셨다.

  그런데 이 예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예수님이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시고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 그 생명을 받은 자들이 함께 모인 공동체—교회—가 새로운 성전이 된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은 이렇게 선언한다.

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교회가 성전이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돌과 백향목으로 성전을 지었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들로 이루어진 살아 있는 성전—교회를 세우셨다. 예수님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고 약속하셨다. 솔로몬의 성전은 바벨론에 의해 무너졌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는 음부의 권세도 무너뜨릴 수 없다. 솔로몬의 성전이 이스라엘 신앙의 중심이었듯이,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중심이다. 교회는 단순한 종교 모임이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살아 있는 성전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거룩한 공동체다.

  그리고 마침내 새 예루살렘이 임할 때, 성전은 더 이상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과 어린 양 자신이 성전이 되신다.

계 21:22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솔로몬이 돌로 세운 성전에서 시작된 예표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교회로, 그리고 새 예루살렘의 하나님 자신 안에서 최종적으로 성취되는 것이다. 이 놀라운 경륜의 흐름을 볼 때, 우리는 솔로몬의 성전 건축이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속 경륜 전체를 꿰뚫는 예표의 사건이었다.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했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 찼듯이(왕상 8:10-11),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워진 교회 안에도 성령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차 있다. 교회를 소중히 여기는 것, 교회를 세우는 일에 헌신하는 것—이것이 솔로몬의 성전 건축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이다. 솔로몬이 성전을 짓는 데 7년을 쏟아부었듯이(왕상 6:38), 우리는 교회를 세우는 일에 시간과 정성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솔로몬의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찼을 때, 제사장들이 그 영광 앞에 서지 못했다(왕상 8:11). 그처럼 교회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할 때, 세상은 그 영광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다윗이 성전 건축을 위한 재료를 준비했고 솔로몬이 그것을 완성했듯이, 우리 세대가 다음 세대를 위해 교회의 기초를 더욱 견고하게 쌓아 가야 한다.

 

9. 나오며

  기독론(123)에서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어떤 점에서 메시아의 예표자인지를 살펴보았다. 솔로몬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시편 72편이 솔로몬을 통해 메시아를 어떻게 예표하는지, 심판권이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 위임된 근거, 지혜의 왕으로서 완전한 심판주를 예표하는 의미, 평화의 왕으로서 영원한 샬롬을 가져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의미, 다윗의 많은 아들들 가운데 오직 솔로몬만이 선택된 이유, 그리고 성전 건축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세우심을 예표하는 의미에 이르기까지—솔로몬의 삶과 치세 전체가 장차 오실 메시아를 향해 가리키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솔로몬에게는 세 가지 대명사가 있다. 지혜의 왕, 평화의 왕, 성전을 지은 왕이다. 이 세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각각 예표한다. 완전한 지혜로 심판하실 심판주, 사탄의 권세를 완전히 정복하고 영원한 샬롬을 가져오실 평강의 왕, 그리고 자기 백성으로 이루어진 살아 있는 성전 곧 교회를 세우실 분—예수 그리스도는 솔로몬이 보여 준 모든 예표를 완전하고 영원하게 성취하신다.

  이 강해를 통하여 우리는 솔로몬이 얼마나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지를 보았다. 지혜의 왕으로서 그는 심판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평화의 왕으로서 그는 평강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성전을 지은 왕으로서 그는 교회를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이 세 가지 예표가 한 인물 솔로몬 안에 모두 담겨 있다는 것이 놀랍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맺으신 두 언약—아브라함의 언약과 다윗의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성취되었다. 솔로몬은 다윗 언약의 일차적 성취자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자다. 다윗의 아들이 많았어도 왕의 보좌를 이은 자는 솔로몬 한 사람이었듯이, 하나님은 모든 자녀가 이기는 자가 되기를 원하시지만 실제로 보좌에 앉아 왕 노릇 하는 자리는 이기는 자에게만 주어진다. 솔로몬이 다윗의 마음을 이어받아 하나님 앞에 지혜를 구하고 공의로운 재판을 행하며 하나님의 집을 세웠듯이, 우리도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고, 그 뜻을 삶으로 실천하며, 교회를 세우는 일에 온 마음을 쏟음으로써, 장차 하늘에서도 왕 노릇 할 수 있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다음 시간부터는 솔로몬의 각 예표들—지혜의 왕, 평화의 왕, 성전을 지은 왕—을 하나씩 더 깊이 살펴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어떻게 그 예표들 안에서 완전히 성취되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게 될 것이다. 솔로몬의 이야기는 곧 예수님의 이야기다. 이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 솔로몬 강해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알아 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6월 15일(월)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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