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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7. 26. (일)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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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52)] 이사야의 예언(12) 재림주요 심판자로 오실 메시야의 8가지 특징(04) 상 주시려 오심(02)(이사야40:9~11)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efEoBgwv5k4

 

기독론 152

이사야의 예언(12)

재림주요 심판자로 오실 메시야의 8가지 특징(04)

- 상 주시려 오심(02) -

(이사야 40:9-11)

정보배 목사

원문 영상: https://youtu.be/efEoBgwv5k4

1. 들어가며

  이사야는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주 여호와를 바라보라고 외쳤다. 그분은 친히 팔로 다스리시며 상급을 가지고 오시고, 행한 대로 갚으시는 보응을 앞세워 오신다(사 40:9-10). 이 예언은 재림하시는 메시아가 악인을 심판하실 뿐만 아니라 충성한 백성에게 상을 주실 분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재림은 세상의 역사를 끝내는 무서운 사건인 동시에, 주님을 사랑하며 수고한 성도에게는 기다리던 보상의 날이다.

사 40:9-10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구약에서 심판자는 여호와 하나님이셨다. 그러나 신약에 들어오면 하나님께서 심판을 아들에게 맡기셨으며, 인자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다고 말씀한다(요 5:22, 27). 이것은 서로 다른 두 하나님이 차례로 심판한다는 뜻이 아니다. 구약의 여호와께서 아들로 오셨고,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의 형편을 친히 겪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심판자가 되신다는 뜻이다.

  그런데 성도가 받을 하늘의 상을 한 종류로만 이해하면 성경이 말하는 보상의 여러 방면을 구별하기 어렵다. 사실은 3종류가 있기 때문이다. 먼저 첫째로,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행한 하나하나의 일이 '천국 집'의 재료로 올라가는 보상이 있다(고전 3:12-15). 그리고 둘째로, 일생의 경주를 마치고 믿음을 지킨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상'과 '면류관'도 있다(고전 9:24-25). 또한 셋째로, 하나님께서 각 시대에 파송하실 종들을 위하여 미리 마련하신 '보좌의 자리'도 있다(마 20:23). 이 셋은 모두 하늘에서 받는 것이지만 주어지는 기준과 성격과 수여자가 같지 않다.

  이러한 구별은 성도를 경쟁심이나 공로주의로 이끌기 위한 것이 아니다. 구원의 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 터 위에서 행한 삶이 심판받고 보상받는다는 사실을 깨우치기 위한 것이다(고전 3:11-15). 하나님께서 나를 어떤 그릇으로 지으셨으며 내게 어떤 분량과 사명을 맡기셨는지를 알고, 남의 자리를 탐하지 않으면서 자기 위치에서 끝까지 충성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심판자가 되시는지, 천국의 집과 면류관과 보좌는 어떻게 다르며 누가 받는지, 하나님의 종과 이기는 자가 누구이고 성도가 자신의 사명을 어떻게 완주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왜 예수 그리스도만 완전한 최후 심판자가 되시는가?

  마지막 심판을 맡으실 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요 5:22, 27, 계 20:11-15)).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다고 하셨다(요 5:22).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심판을 맡기신 까닭 가운데 하나는 그분이 인자가 되셨기 때문이다(요 5:27).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실제 사람의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으며, 배고픔과 목마름과 피곤함과 배신과 고난을 친히 겪었고 또한 견디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인간의 연약함을 관념으로만 아시는 분이 아니라 몸소 체휼하신 분으로서 우리를 판단하신다(히 4:15).

요 5: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요 5:27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만일 하나님께서 사람의 형편을 전혀 겪지 않은 채 심판하신다면 인간은 자신의 제한된 육체와 고통을 변명으로 내세우려 할지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조건 안으로 들어오셨고, 죄는 없으시지만 모든 시험을 받으셨다(히 4:15). 주님은 아버지께 순종하여 죽기까지 낮아지셨고 십자가의 길을 완주하셨다(빌 2:6-8). 그분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조건을 요구하시는 재판장이 아니라, 먼저 순종의 길을 걸어가신 이기신 재판장이시다.

  예수님은 이기신 뒤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으셨다. 주님은 자신이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처럼 이기는 자도 자신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계 3:21). 그러므로 예수님의 심판은 멀리서 명령만 내리는 통치자의 심판이 아니다. 먼저 종의 형체를 입고 섬기셨고, 유혹과 핍박을 이겼으며, 목숨을 내어놓으신 분의 심판이다. 그분 앞에서는 누구도 “당신은 인간이 되어 보지 않았다”라고 항변할 수 없다.

  A.D.95년경 밧모섬에 유배되어있던 사도 요한이 하늘로 올라갔을 때 그는 마지막 날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가 심판하시는 장면을 보게 된다. 그때 죽은 자들은 큰 자나 작은 자나 모두 그 보좌 앞에 섰고, 생명책과 행위가 기록된 책들에 따라 심판받고 있었다(계 20:11-12). 구약에서 여호와께 속했던 심판의 권세가 신약에서 인자이신 예수께 집행되고 있었다. 이는 여호와와 예수께서 경쟁하거나 서로 다른 심판 기준을 가지신다는 뜻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셔서 인간의 구원과 심판을 완성하신다는 뜻이다.

계 20:11-12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이 사실은 성도에게 두 가지 태도를 요구한다. 하나는 의로우신 재판장을 경외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우리의 사정을 아시는 대제사장을 신뢰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눈물과 억울함과 제한을 모르고 기계적으로 판결하지 않으신다. 동시에 육체의 연약함을 핑계로 삼아 고의로 죄를 붙들고 산 사람을 무조건 두둔하지도 않으신다. 불꽃 같은 눈으로 동기와 행위를 살피되, 사람으로서 모든 길을 걸어 보신 완전한 심판자이시기 때문이다(계 2:18, 23).

  그러므로 재림의 주님을 바르게 알려면 여호와의 공의예수님의 체휼을 함께 보아야 한다. 그분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지만 회개한 자의 상한 마음도 놓치지 않으신다.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한 작은 충성과 은밀한 수고까지 정확히 기억하신다. 우리가 그분의 판결 앞에 엎드려 “주님의 말씀이 옳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심판하시는 이가 전능하신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어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3. 천국의 세 상급인 집·면류관·보좌는 어떻게 다른가?

  천국에서 성도가 받는 보상은 크게 세 방면으로 구별할 수 있다. 첫째는 날마다 행한 일에 따라 쌓이는 '천국 집'과 '그것의 재료'다. 둘째는 일생의 경주를 마치고 특정 방면에서 승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과 '면류관'이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를 위하여 특별한 사명을 맡긴 종들에게 예비하신 '보좌의 자리'다. 이 셋을 모두 막연히 ‘상급’이라고만 부르면 무엇이 매일 쌓이고, 무엇이 완주 뒤에 주어지며, 무엇이 하나님의 예정과 사명에 연결되는지를 놓치기가 쉽다.

  먼저, '천국 집의 재료'는 구원받은 뒤 주님을 위하여 행한 구체적인 일과 연결된다. 예배드리고 기도하며 찬송하고, 복음을 전하고 구제하며, 교회와 성도를 섬긴 일이 하나하나 기록된다. 주님은 속히 오실 때 자신이 줄 상을 가지고 와서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겠다고 말씀하셨다(계 22:12). 여기서 행한 대로 주어지는 보상이 바로 헬라어로 ‘미스도스’(μισθός, misthos)라고 하는 상이다. 이는 일한 것에 대한 품삯이나 보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계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그리고 '면류관'은 한 번의 행위에 대한 즉각적인 품삯과 다르다.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달리고, 맡겨진 분야에서 절제하고 싸워 이긴 사람에게 수여되는 명예로운 보상이다. 이것은 마치 경기장에서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상과 같은 것으로서 그것은 ‘브라베이온’(βραβεῖον, brabeion)이라고 부른다. 특별히 이렇게 경주에서 승리한 승리자의 머리에 씌워주는 관을 ‘스테파노스’(στέφανος, stephanos)라고 한다(고전 9:24-25). 상장이 있고 그에 따른 상품이 있듯이, 우리 성도들에게도 역시 승리했다는 판정과 그 승리에 따라 주어지는 면류관이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보좌의 자리'는 구체적인 봉사 하나에 대한 품삯도 아니고, 모든 성도가 같은 조건에서 얻는 일반적인 면류관과도 다르다. 보좌는 천국에서의 지위와 신분, 그리고 왕 노릇하며 심판에 참여하는 사명과 연결된다(계 3:21, 20:4). 하나님께서 시대마다 특별한 일을 맡길 종을 정하여 보내시고 그들이 감당할 자리를 예비하시는데 그것이 바로 예정된 보좌의 자리이다. 다만 그 자리가 예정되었다고 해서 인간의 자유의지와 충성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지 않으면 그 자리를 잃을 수 있고, 뒤에 있던 충성된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서 그것을 차지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러한 세 가지 종류의 상급은 서로 경쟁하지 않고 한 사람의 신앙생활을 여러 각도에서 보여 준다. 어떤 이는 작은 봉사를 많이 하여 '천국 집의 재료'를 풍성히 쌓을 수 있다. 어떤 이는 오랜 핍박 속에서도 사랑과 인내와 충성을 지켜 '면류관'을 받을 수 있다. 어떤 이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시대적 사명을 목숨 걸고 감당하여 '보좌'에 앉아 왕 노릇하는 자가 될 수 있다. 한 사람이 세 방면의 보상을 함께 받을 수도 있지만, 각각의 판단 기준은 같지 않다.

  이러한 차이를 상장과 상품의 관계로 이해하면 브라베이온과 스테파노스의 차이도 더 분명해진다. 세상에서도 어떤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사람에게 상장을 주고, 그 영예를 나타내는 트로피나 메달을 함께 수여한다. '브라베이온'이란 이렇듯 경주에서 이겼다는 판정임과 동시에 상에 해당하는 것이고, '스테파노스'는 그 승리를 눈에 보이게 드러내는 승리관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천국 집에 1층의 벽에 붙어있는 상장이 '충성상' 혹은 '사랑상', '인내상'이라고 쓰여 있다면, 그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 때에 충성과 사랑과 인내의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증언해준다. 특히 금빛으로 빛나는 탁상 위에 놓인 여러 개의 면류관은 이러한 승리에 대한 영광스러운 상품이다. 

  그렇다면 천국 집의 1층 벽에 붙어있는 상장들과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면류관은 누구든지 볼 수가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누군가가 영 안에서 천국에 올라가서 어떤 개인의 집 안으로 들어간다고 할지라도 상장과 상품으로서 면류관이 꼭 보이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왜나하면 천국은 나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다 보여 주는 세계는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아직 회개와 준비가 덜된 사람에게 미리 상급을 보여 주면 그것을 이미 자기 것으로 착각하고 게으르게 지내거나 혹은 교만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영적인 상태와 감당할 분량에 따라 조금씩 보여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상급을 궁금해하기 전에 먼저 오늘 순종해야 할 말씀을 지키는 것이 더 안전하다.

  이 구별을 알면 성도는 눈에 보이는 사역의 크기만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게 된다. 알려지지 않은 성도의 은밀한 봉사도 '미스도스'로 기록되며, 작은 교회를 끝까지 지킨 목회자의 충성도 '면류관'으로 인정될 수 있다. 반대로 큰 사역을 맡았더라도 사명을 버리고 자기 영광만 구했다면 '보좌'의 지위를 보장받지 못한다. 하나님은 행위의 양과 일생의 충성과 맡겨진 사명을 각각 정확한 저울로 달아 보신다.

4. 보상(미스도스)은 어떻게 천국 집의 재료가 되는가?

  천국에서 보상(미스도스)는 일을 한 사람에게 지급되는 임금이나 품삯을 뜻한다. 예수님은 선지자를 선지자의 이름으로 영접하는 자가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고, 작은 자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가 결코 상을 잃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마 10:41-42). 행동이 작아 보여도 주님과 복음을 위한 것이라면 하나님 앞에서 그 보상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 드린 한 번의 예배, 누군가를 위하여 드리는 중보기도 한 번, “예수 믿으세요”라고 전한 한마디도 믿음과 사랑으로 행했다면 그것은 하늘에 기록되면서 천국 집의 재료가 된다.

  그러나 천국에 지어지는 성도 집의 유일한 터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누구도 이미 닦아 둔 터 외에 다른 터를 놓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분으로 인하여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되고 천국 집을 지을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 각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의 재료로 혹은 나무나 풀이나 짚의 재료러 자기의 집을 짓는다(고전 3:11-12).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라면, 그때 이후로 주와 복음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들은 다 천국 집의 재료가 된다. 그러나 인간의 선행이 구원의 터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구원받은 사람이 행위로서 어떤 삶을 살았는가 하는 것이 그 터 위에 세워지는 건축물이 되는 것이다. 

고전 3:11-13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의 외형만 보지 않고 그 동기와 진실함도 함께 계산하신다. 같은 헌금을 드려도 하나님을 사랑하여 은밀히 드린 것과 사람의 칭찬을 받으려고 드러낸 것은 같지 않다. 예수님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마 6:1). 이미 사람의 박수와 명예를 보상으로 받아 버린 행위는 하늘의 재료로 온전히 올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몰라주어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행한 것은 불을 견디는 금과 은과 보석 같은 재료가 된다.

  이 땅에 내가 태어날 때부터 붙여준 수호 천사는 날마다 해가 질 때에 성도의 행위 하나하나를 하나님 앞에 보고한다. 그러면 천국의 기록 천사가 그 사람의 행위 하나하나를 책에 기록한다(계 20:12). 실제로 성도가 자신의 몸이 피곤한데도 주님을 사모하여 예배에 참여하고, 형편이 어려운데도 복음을 위하여 헌금을 드리며, 원망하지 않은 채 맡은 일을 수고한다면 그것은 다 하늘에 건축재료로 쌓이게 된다. 다만 몸만 예배의 자리에 있고 마음과 믿음이 전혀 따라가지 않았다면 그 차이도 정확히 계산되어 하늘에 올라간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의 눈에 보이는 시간만 세는 분이 아니라 마음과 뜻을 살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렘 17:10).

  그런데 이때 성도의 행위가 하늘에 보고된다고 해서 모든 것이 같은 양과 품질의 건축 재료로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한 시간 예배를 드렸더라도 온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회개한 사람과 억지로 자리만 지킨 사람의 결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음식을 만들고 같은 액수의 헌금을 드려도 감사와 사랑으로 행했는지, 생색과 경쟁심으로 행했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겉으로 드러난 횟수에 속지 않으시고 각 행위 안에 담긴 믿음과 사랑과 희생을 정확히 달아 보신다(고전 4:5).

  또한 천국의 건축 재료는 죽은 뒤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삶에서만 준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매일 자신의 말과 생각과 행동으로 집을 짓는 건축자와 같이 살고 있는 것이다. 원망과 불평으로 섬기면 많은 일을 했어도 남는 재료가 적을 수 있고, 작은 일을 하더라도 주님께 감사하며 정성을 다하면 귀한 보석으로 올라갈 수 있다. 그러므로 상급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한 시간과 한마디를 어떻게 드릴 것인가에 관한 실제적인 교훈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각 사람의 건축재료는 날마다 불로 시험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때 불을 견딘 공적(행위)은 남겨져서 상을 받게 되겠지만, 불타 버린 행위(공적)은 손해를 입게 된다. 또한 그 사람 자신은 구원을 받더라도 불 가운데서 겨우 받은 것과 같은 상태가 된다(고전 3:14-15). 이것은 구원과 상급이 똑같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선 사람도 세상과 사람을 의식하여 헛된 재료만 쌓았다면 천국에서 풍성한 집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고전 3:14-15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그러므로 '미스도스'를 준비하는 길은 거창한 일을 하는 데 있지 않다. 오늘 맡겨진 작은 일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충성스럽게 행하면 된다. 음식 한 끼를 만들고 안내하고 청소하며, 아픈 이를 방문하고 믿지 않는 가족을 위하여 회개하고 중보하는 일도 하늘의 재료가 되는 것이다. 일의 크기보다 누구를 위하여 어떤 마음으로 했는지가 중요하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듯 은밀히 섬기고, 사람의 칭찬보다 불꽃 같은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해야 한다(마 6:3-4).

  이 보상은 하나님께 무엇을 사거나 자신의 의를 자랑하는 공로가 아니다.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생명과 시간과 물질도 먼저 하나님께 받은 것이다. 다만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이 그 은혜에 어떻게 응답했는지가 집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그러므로 미스도스의 교훈은 성도를 탐욕스럽게 만들지 않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수고까지 기억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매일의 작은 순종을 소중히 여기게 한다.

5. 상(브라베이온)과 면류관(스테파노스)은 누구에게 주어지는가?

  천국에서 성도들이 받는 상들 중에서 '브라베이온'은 경기에서 목표를 향해 달려 승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을 가리킨다. 바울은 운동장에서 달리는 자들이 모두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으로 정해져 있듯이 성도도 이와같이 상을 받도록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고전 9:24).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경주에 잠시 참가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끝까지 달려 승리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때 뜨겁게 봉사했거나 잠시 많은 일을 했다는 기억만으로는 이 상을 받을 수 없다.

고전 9:24-25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경주에서 이기려는 사람은 모든 일에 절제한다. 달리고 싶을 때만 달리고 힘들면 곧 포기하는 사람은 결승선에 이를 수 없다. 성도도 죄와 육신과 세상의 유혹을 끊고,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믿음의 지조를 지켜야 한다. 브라베이온은 일생을 다 달아 보신 뒤 “너는 이 분야에서 끝까지 이겼다”라고 인정하시는 영예로운 판정이다. 고로 '미스도스'가 개별 행위마다 쌓이는 보상이라면, '브라베이온'은 삶의 한 경주를 완주한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이때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스테파노스'는 승리자의 머리에 씌워지는 면류관이다. 고대 경기에서 우승자에게 관을 씌워 그 승리를 공개적으로 드러냈듯, 하늘의 면류관은 그 사람이 어떤 싸움을 싸우고 어떻게 믿음을 지켰는지를 증언한다. 바울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며 믿음을 지킨 뒤 의의 면류관이 자신을 위하여 예비되었다고 고백했다(딤후 4:7-8). 면류관은 시작할 때 받은 것이 아니라 달려갈 길을 마친 뒤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주 예수께서 주시는 것이다.

딤후 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성경은 여러 방면의 면류관을 말한다. 시험을 참는 자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이 약속되어 있고(약 1:12), 죽도록 충성하는 자에게도 역시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진다(계 2:10). 양 떼의 본이 되어 맡은 일을 감당한 목자는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다(벧전 5:2-4). 바울은 자신이 복음으로 낳은 성도들을 '소망과 기쁨과 자랑의 면류관'이라고 불렀다(살전 2:19). 이 모든 말씀은 면류관이 막연한 장식이 아니라 구체적인 싸움과 충성과 열매에 대한 주님의 인정임을 보여 준다.

  특히 '충성의 면류관'은 맡겨진 일을 변함없이 감당한 사람에게, '사랑의 면류관'은 미워할 만한 환경에서도 끝까지 사랑한 사람에게, '인내의 면류관'은 오랜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버리지 않은 사람에게 주어진다. 일생의 삼분의 이를 잘 달렸더라도 마지막에 사명을 포기하면 완주자로 인정받기 어렵다. 면류관은 한때의 열심보다 끝까지 이어진 지조를 말한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많은 일을 했다고 자랑하지 않고 달려갈 길을 마쳤으며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했다(딤후 4:7).

  특히 천국에서 성도들이 받게 되는 면류관의 모양과 빛과 보석도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것은 왕관과 같고 어떤 것은 월계관이나 티아라와 같다. 또한 그 위에 박힌 보석도 그 숫자와 모양과 크기와 색깔이 다르다. 그러나 이러한 면류관의 모습은 단지 호기심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면류관의 아름다움은 외형에 있지 않고 주님을 위하여 감당한 고난과 사랑의 깊이에 있기 때문이다. 면류관을 보고 그 사람을 존경하게 되는 까닭은 그 면류관이 그의 지상에서의 삶을 대변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천국에서 면류관을 받는 데에는 그 사람이 가진 직분의 유명세나 교회의 규모가 결코 좌지우지하지 않는다. 시골의 작은 교회에서 몇 사람을 돌보더라도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말씀을 전하며 아픈 성도를 찾아간 목회자는 충성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많은 사람을 맡고도 자신의 책임을 다른 이에게 미루고 명예만 누렸다면 주님의 인정을 받기 어렵다. 평신도도 가정과 일터와 교회에서 사랑과 인내와 전도와 봉사를 끝까지 감당하면 여러 방면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면류관은 누가 씌워주는가? 그것은 우리 예수님께서 친히 씌워 주시는 것이다(딤후 4:8).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우리와 같은 길을 걸으셨기에, 주님은 승리한 인간에게 “나도 그 길을 걸었는데 너도 끝까지 왔구나”라고 인정하시며 씌워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면류관에 담긴 영광은 보석이나 모양의 화려함 자체에 있지 않다. 그 사람의 눈물과 희생과 충성과 사랑이 그 면류관을 통하여 드러난다는 데에 있다. 천국에서 면류관을 쓴 사람을 존경하는 까닭은 장식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가 주님께 인정받은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도는 이랬다저랬다 하면서 믿음의 경주를 하다가 중단하다가를 반복해서는 아니 된다.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사람은 오늘도 결승선을 바라보고 달리는 자다. 세상이 너무 좋아 주님께 늦게 오시라고 말하는 마음이 아니라, 주님이 오실 때 부끄럽지 않도록 믿음을 지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지금의 성과가 작고 사람의 인정을 받지 못하더라도 사명을 버리지 않아야 한다. 의로우신 재판장은 마지막까지 지조를 지킨 사람을 잊지 않으신다.

6. 보좌의 자리는 누가 예비하며 예정과 충성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마지막으로 성도가 천국에서 받을 상으로 '보좌의 자리'가 있다. 이 때 보좌는 천국 집이나 면류관과 달리 하나님 나라의 통치에 참여하는 자의 지위와 신분을 나타낸다. 예수님은 이기는 자에게 자신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계 3:21). 보좌에 앉는다는 것은 단지 좋은 의자를 받았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하고 심판에 참여할 권한을 받는다는 뜻이다(계 20:4). 그러므로 보좌의 자리는 사명과 통치와 책임을 함께 포함하는 상에 해당한다.

  요한계시록에는 하나님의 보좌 둘레에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위에 흰옷을 입고 금관을 쓴 이십사 장로가 앉아 있는 모습이 등장한다(계 4:4). 구약에서는 한 분 하나님의 보좌가 중심이었지만 신약이 보여주는 놀라운 계시는 이기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하는 자리가 더 있다는 것을 더 분명히 보여 준다. 그중에 가장 뛰어난 보좌 자리가 바로 이십사 장로들이 앉는 24보좌 자리다. 그리고  더불어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낸 특별한 종들로 구성된 14만 4천 명의 보좌 자리도 있다. 그러므로 천국에서의 보좌는 모두 같은 의미 없는 좌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과 충성의 정도에 따른 질서를 정확히 보여준다.

  필자가 천국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14만 4천 명의 보좌는 약 칠십 개의 줄로 배열되어 있고, 앞줄은 인원이 적으며 뒤로 갈수록 부채꼴처럼 수가 많은 구조를 갖고 있다. 이것은 성경 본문에 기록되지는 않았으나 영적 체험을 통하여 알게 된 천국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숫자와 배열만을 교리의 전부로 고정하기보다, 하나님 나라에도 사명과 책임에 따른 지위의 차이가 있으며 그 자리가 충성과 연결된다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계 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그렇다면, 보좌의 자리는 과연 누가 주는가? 마태복음 20장에 따르며,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가 어느날 주님의 나라에서 자신의 두 아들을 주님의 좌우편에 앉게 해 달라고 요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 자신이 주님이 마실 잔을 마실 수 있으며, 주님이 받는 세례를 받을 있는지를 물으신 뒤, 자신의 좌우편에 앉는 것은 자신이 주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20:20-23). 이는 보좌의 자리는 아버지께서 예비하여 주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 준다. 그렇다. 아들은 면류관을 수여하시는 분이지만, 보좌의 자리는 아버지께서 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보좌의 자리는 이미 만세 전에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 안배되어짐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마 20:23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그러나 이러한 보좌 자리의 예정은 결코 기계적인 고정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특정한 시대와 나라와 가정에 보내어 그에게 사명을 맡기셨다고 할지라도, 그도 역시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기에,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도 있고 거역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사울왕은 왕으로 세움받았지만 불순종하여 버림받은 자이다(삼상 15:22-23, 26). 그리고 신약의 12제자들 중에 하나였던 가룟 유다는 자신이 비록 사도로 부름받았지만 온전히 회개를 하지 않은 채 자기 길을 선택하여 중도에 탈락하고 만나(행 1:16-20, 25). 그렇게 사도 바울에게 헌신적으로 섬기던 데마도 바울에게 사랑받는 동역자로 쓰임 받았지만 이 세상을 사랑하여 그만 자신의 길로 가고 말았다(딤후 4:10). 준비된 자리가 있다고 해서 모두가 다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충성하지 않은 자에게까지 자동으로 그 자리를 안겨주지는 않는다.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며, 보좌의 자리는 예정이지만 약 95퍼센트가 예정대로 그 자리를 차지할 뿐, 약 5퍼센트는 그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이것은 성경에 제시된 교리는 아니다.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천국의 질서와 인간의 자유의지에 한 설명의 하나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핵심은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삶은 예정은 있으나 고정은 아니라는 데에 있다. 앞자리를 예정받은 사람이 라도 사명대고 살아가지 않는다면 그 자리에서 탈락할 수 있고, 뒤에 있던 사람일지라도 목숨을 걸고 충성하면 앞으로 전진해 나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처음의 배정만 보지 않고 실제로 그 길을 완주했는지까지를 보고 판단하신다.

  사실 뒤쪽 자리에서 몇 줄 앞으로 가는 것보다, 앞쪽 자리에서 더 앞으로 가는 일이 훨씬 어렵다. 이는 각자의 책임의 무게가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가까운 보좌일수록 맡겨진 시대적 사명과 희생이 크고, 작은 불순종도 더 엄중하게 다루신다. 그리고 높은 자리를 탐하기 전에 그 자리에 따르는 잔과 세례를 감당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하나님 나라의 앞자리만 명예를 누리는 자리가 아니라 많은 영혼을 책임지고 목숨까지 내놓아야 하는 자리에 앉는 자가 명예를 누리게 된다.

  특히 보좌를 얻기 원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늘 주님의 잔을 마시고 주님의 세례를 받을 수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잔은 '고난의 잔'이며, 그 세례는 자기 목숨까지 내어놓는 '죽음의 세례'이기 때문다(막 10:38-40). 높은 지위를 탐하는 마음만으로는 결코 그 자리에 앉을 수 없다. 주님의 나라에서 더 높은 자리는 더 많이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라 더 무거운 책임을 지고 더 깊이 희생한 자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모세도 큰 사명을 맡았기에 한 번의 불순종을 엄중하게 판단받았다(민 20:10-12). 많이 받은 자에게 많이 요구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원칙이다(눅 12:48).

  하나님은 '토기장이'시고 우리는 '진흙'이다. 그릇이 토기장이에게 자신을 왕의 그릇으로 만들어 달라고 명령할 수 없듯, 사람도 자기 욕망으로 보좌의 사명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사 64:8).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다섯 달란트의 그릇으로, 어떤 사람은 두 달란트나 한 달란트의 그릇으로 지으신 이유가 바로 여기게 있다(마 25:14-15). 중요한 것은 남의 분량을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맡겨진 분량에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를 살펴는 것이다. 다섯 달란트를 받았다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긴 충성스럽게 종에게 주어진 보상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주인의 즐거움 곧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것이다(마 25:20-23).

사 64:8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그러므로 보좌에 관한 제반의 말씀은 모든 성도가 자신은 특별한 왕이라고 착각하게 만들어주는 교훈의 말씀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와 분량을 겸손히 인정하게 하는 것이다. 특별한 사명을 받은 사람은 더 두렵고 떨림으로 충성해야 하며, 평신도는 자신의 자리가 작다고 낙심하지 않고 맡겨진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나님은 자리를 탐한 사람보다 자신의 잔을 마시고 끝까지 책임을 감당한 사람에게 보좌를 허락하신다.

7. 하나님의 종 14만 4천과 이기는 자는 누구인가?

  요한계시록 7장은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바람이 잠시 붙들린 가운데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는 장면을 보여 준다. 인침받은 자의 수는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에서 나온 14만 4천 명이라고 나온다(계 7:1-4). 본문은 이들을 ‘우리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말한다. 종은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하여 사는 사람이 아니라 주인의 뜻을 알고 그 뜻을 수행하도록 보냄받은 사람 곧 주님의 종들이자 사명자들이다.

계 7:3-4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그렇다면 144,000명의 인침받은 자는 누굴까? 그기것은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들"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그렇다면 진짜 육적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이 땅에 보내어진 사명자들"이 그들인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누군지를 설명해주는 부분으로 넘어갈 때에 우리는 이들이 육적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사명자들이라고 해석할 수 없음을 본다. 왜냐하면 여기서 '이스라엘'은 육적인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는 곧 야곱처럼 살아가는 자이다. 야곱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는 축복을 이어받을 수 없는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렇지만 야곱은 훗날  얍복강에서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뒤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았다(창 32:24-28). 그러므로 인침을 받은 자로서 이스라엘이란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긴 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이들은 열두 지파에서 각각 1만 2천 명이 똑같이 나온다고 기술되어 있는 것도 이들이 단순한 문자적인 숫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충만한 수로 이해하게 이끌어 준다.

창 32: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참고로, 여기서 '열둘'은 하늘의 수 3과 땅의 수 4가 결합한 수이며, 1,000은 충만하고 많은 수를 나타낸다. 고로 열둘에 일천을 곱한 값이 1만 2천이며, 이들이 열두 지파에 충만하게 배정되어 14만 4천을 이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숫자는 하나님께서 각 족속과 시대 가운데 이기는 종들을 보내신다는 질서를 가르쳐 준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따르면, 144,000명의 지파들 중에 단 지파가 빠져 있다. 그리고 다른 지파가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도 요한계시록의 진술은 단지 육적인 이스라엘의 지파 명단만으로는 이 모든 의미를 설명하기 어렵게 만든다(계 7:5-8).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자기 길로 그릇 행하고 있기 때문에, 시대를 깨울 종을 당신이 직접 선택하고 예정하여 보내신다(사 53:6). 구약에서는 노아와 아브라함, 모세와 여호수아, 다윗과 선지자들을 보내셨고, 신약에서는 베드로와 바울 같은 사도들을 보내셨다. 베드로는 할례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주어 보내셨고, 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주어 보내어졌다(갈 2:7-8).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선택하듯 자신의 사명을 골라서 잡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붙들려 그 시대에 필요한 일을 감당했던 자들이다.

  고로 사명자는 태어날 때부터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는 채 태어난 사람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악한 영들은 그가 하나님께 어떻게 쓰임받을 것인지 그 가능성과 분량을 보고 그의 앞길을 가로막으려고 더 강력하게 저항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 안에 악한 영이 많이 들어 있는 까닭은 그가 지은 죄가 많아서 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장차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을 것을 막으려는 악한 영들의 공격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영적인 공격이 많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의 죄가 남보다 많다고 단정해서도 아니 되고, 반대로 사명자라고 자랑해서도 안 된다. 더욱 철저히 회개하여 방해하는 영을 제거하고 하나님이 감추어 두신 보화를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필자는 어린 시절 시주를 받으러 온 승려들이 왜 나 자신을 유심히 바라보았는지를 처음에는 몰랐다. 그러나 훗날 영적인 세계를 알게 된 뒤부터, 악한 영들이 나 자신을 불교의 대 설법가로 사용하려고 많은 영들을 집어넣어 준비시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전하는 종으로 쓰실 예정이었기에, 악한 영들도 이것을 알아보고는 필자가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찌감치 다른 길로 필자를 끌고 가려 했던 것이다. 이 체험은 모든 영적 방해를 사명자의 표지로 단정하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죄 때문에 들어온 영과 사명을 방해하려고 들어온 영들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사명자는 자신 안에 있는 많고 큰 악한 영들을 핑계로 자신이 사명의 길을 걸어갈 수 없었다고 핑계대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회개를 통하여 그 영들을 제거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회개하여 악한 영들을 내보낼수록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의 은사와 영적 권세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 자신은 땅속의 유물을 조심스럽게 발굴해내듯 하나씩 하나씩 자신의 죄를 끄집어내어 회개하고 방해물을 걷어 내야 한다. 그러면 처음엔 잘 보이지 않던 하나님의 계획과 예정이 방언 통역과 환상과 말씀과 주의 종의 인도를 통하여 점차 확인되어질 것이다. 그리고 발견된 사명이 클수록 더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그 사명에 합당한 훈련을 받아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한꺼번에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다 알려 주시지 아니하시고 감당할 분량에 따라 조금씩 알려주신다는 것이다. 고대 유적을 발굴할 때 흙을 조심스럽게 걷어 내며 그 유물의 가치를 확인하듯, 성도도 회개와 순종을 통하여 자신의 사명을 점차 발견해야 한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보좌와 면류관을 먼저 보여 주면 아니 된다. 왜냐하면 렇게 하면 그가 교만해지거나, 이미 얻은 것처럼 착각하여 충성을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알고도 행하지 않는 종은 더 많이 맞는다는 경고가 있지 아니한가? 그러므로 하나님은 때로 우리더러 알게 하지 않게 하심으로써 우리들 자신을 보호해 주신다(눅 12:47-48).

  그러므로 14만 4천과 이기는 자에 관한 말씀의 목적은 자신이 특별한 무리에 속했다고 자랑하게 하는 데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 각 나라와 족속 가운데 시대를 이끌 종을 보내시며, 그들이 영적 싸움에서 이기고 맡겨진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데 있다. 대한민국도 마지막 때 복음과 선교를 위하여 경제적·기술적 자원과 영적 사명을 받은 나라로 쓰임받을 나라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받은 복을 자기만 누린다거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공산주의 사상에 내어준다면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

  과거 대한민국은 한 톨의 쌀밥조차 마음껏 먹기 어려웠고 외국산 자전거와 전기밥솥을 부러워하던 가난한 나라였다. 그러나 짧은 기간에 산업과 기술이 대대적으로 발전하여 이제는 세계 여러 나라에 전자제품과 반도체를 공급하는 나라로 성장하였다. 이러한 경제적 부와 기술은 우연히 주어진 것일까? 아니다. 그것은 우리더러 자랑하고 그냥 소비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 마지막 시대에 선교와 복음 전파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특벽한 선물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한국 교회가 이러한 목적을 상실하게 되면, 하나님의 종들은 사명을 돕는 도구가 아니라 영혼을 잠들게 하는 우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은 큰 은사와 권세를 자랑하기 전에 그에 따르는 책임을 두려워해야 한다. 악한 영의 공격과 종교적인 반대와 세상의 압력을 견디며 끝까지 바른 길을 가야 한다. 동시에 성도는 하나님이 보내신 종의 음성을 무조건 맹종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통하여 그를 분별하고, 참으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귀한 사역자라면 귀를 기울여 협력함으로 함께 사명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행 17:11). 이기는 종과 협력하는 성도가 충성을 할 때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아름다운 열매를 남기게 될 것이다.

8. 성도는 자신의 위치와 사명을 어떻게 발견하고 완주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오늘날 성도들은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그것은 먼저 자신의 현재 위치를 잘 알아야 한다. 지하철 노선도에서 현 위치를 알아야 목적지로 향하여 잘 찾아갈 수 있듯이, 성도도 자신의 믿음과 은사와 분량을 똑바로 직시해야 한다. 아무런 준비 없이 큰 직분과 보좌만 꿈꾸는 것은 결코 믿음이 아니다. 말씀을 배우고 기도하며 회개하고, 작은 일에서 충성하는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떤 그릇으로 지으셨는지를 차츰차츰 발견해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마다 서로 다른 달란트를 맡겨주셨다. 고로 어떤 사람에게는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은사를 주셨으며, 어떤 사람에게는 찬양과 섬김과 구제에 뛰어난 은사를 주시기도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들 중에는 여러 가지 은사들을 함께 받은 사람도 있고 눈에 띄는 재능이 그리 크지 않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중보기도는 어떤 은사와 달란트가 없는 사람이라도 누구나 할 수 있으며, 작은 친절과 중보와 전도 역시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해 나설 때에 가능해진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내가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라면 다섯 달란트의 책임을 감당하면 되는 것이고,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라면 한 달란트의 책임을 감당하면 되는 것이다(마 25:15-23).

  주의 종의 길을 걷는 일도 사실 자신의 나이가 많아졌다고 해서 저절로 되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말씀을 연구하지 않고, 영적인 전쟁도 배우지 않으며, 평신도로서 기본적인 충성도 감당하지 못한 사람이 어찌 자신의 욕심만으로 시대적 사명자가 될 수가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종이라면 이미 오래전부터 환경과 훈련과 고난을 통하여 그는 준비되고 있었을 것이다. 부르심을 느낀 사람은 그러한 직함부터 구할 것이 아니라, 성경과 원어를 배우고, 회개와 기도와 섬김으로 자신이 정말 그 길을 감당할 그릇인지를 준비하고 검증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지위와 신분을 발견하는 가장 안전한 길은 무엇일까? 그것은 날마다 회개하며 주어진 환경에서 충성해보는 것이다. 회개하면 내면을 덮고 있던 악한 영의 방해가 회개로 제거되고, 충성되어 일함으로 하나님이 내게 심어 두신 은사와 사명이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보좌의 순서나 면류관의 종류를 알려 달라고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 지금 알아야 할 만큼만 알려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오늘 맡겨진 일을 성실히 행해야 한다. 작은 일에 충성한 자에게 더 큰 일을 맡기시는 것이 주님의 원칙이기 때문이다(눅 16:10).

  그러므로 사명자는 고난이 닥칠 때 자신의 부르심을 쉽게 버리지 않는 자이다. 하늘의 진리를 전하면 종교 지도자들 세상의 반대를 받을 수 있다. 또한 오해와 비난과 외로움도 겪을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도 종교 지도자들의 시기와 고발을 받으셨고, 사도들도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받았기 때문이다(요 15:18-20). 그렇다고 모든 비판을 핍박이라고 합리화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말과 행동을 성경 앞에 점검하며 잘못은 회개하되,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다면 사람의 위협 때문에 사명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고로 일반 성도는 하나님이 보내신 종과 아름답게 연합하되 자신의 책임을 목회자에게만 떠넘기지 않아야 한다. 목회자는 말씀을 전하고 방향을 제시하지만, 각 사람의 회개와 순종과 영적 싸움을 대신해 줄 수 없다. 성도마다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맡은 자리가 있다. 말씀을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천하여야 하며, 서로의 은사를 존중하고 부족함을 보완해야 한다. 형제가 연합할 때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으시고 복을 명하신다(시 133:1-3).

  하나님께서 보내신 종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그 사람을 우상화하거나 모든 말을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다. 성경과 성령의 조명 안에서 말씀을 분별하되, 시대를 깨우기 위하여 주신 참된 말씀이라면 완고한 마음으로 밀어내지 않아야 한다. 종은 혼자 하나님의 일을 완성할 수 없고 성도도 혼자 모든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 말씀을 전하는 자와 기도하고 봉사하며 물질로 돕는 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연합할 때 한 사람의 능력을 넘어서는 기름부음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자신의 위치에 충성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은사를 시기하지 않는다. 손이 눈의 역할을 할 수 없고 눈이 발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듯, 그리스도의 몸에는 서로 다른 지체가 필요한 것이다(고전 12:14-21). 앞에서 말씀을 전하는 사람만 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중보하고 안내하며 음식을 만들고 차량을 운행하는 사람도 행한 대로 보상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각 지체가 자기 자리를 지킬 때 교회는 한 몸으로 세워지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시대적 사명을 완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의 나라에게 주신 사명도 결코 신앙과 분리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에 경제적 부와 기술과 선교의 문을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것을 복음과 세계 선교를 위하여 사용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자유롭게 예배하고 전도할 수 있는 나라가 결코 무너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하며, 입법·행정·사법이 서로 견제하는 자유민주적 질서가 지켜지기를 구해야 한다. 그러므로 정치적 분노만 쏟아낸다고 해서 그것이 나라를 살리는 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먼저 교회가 우상숭배와 음란과 탐욕을 회개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 드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충성해야 한다(대하 7:14).

대하 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사명을 완주하는 사람은 남의 보좌를 빼앗으려 하지 않고, 자기 길을 끝까지 가는 사람이다. 오늘의 작은 순종은 미스도스로 쌓이고, 일생의 충성은 브라베이온과 스테파노스로 인정되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시대적 사명을 완수한 자는 준비된 보좌에 앉게 된다. 결국 세 상급을 준비하는 길은 하나다. 예수 그리스도를 터로 삼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회개하며, 맡겨진 자리에서 죽도록 충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분량이 작다고 낙심할 필요도 없고 큰 은사를 받았다고 교만할 이유도 없다. 많은 것을 맡은 자는 더 큰 심판과 책임을 지며, 작은 것을 맡은 자도 충성하면 같은 주인의 기쁨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현재 위치를 아시고 앞으로 나아갈 길도 아신다. 성도는 알려지지 않은 미래의 자리보다 오늘 순종해야 할 말씀에 집중하고, 끝까지 믿음을 지켜 자신에게 예비된 길을 완주해야 한다.

9. 나오며

  이 시간에는 재림주이자 심판자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가 받을 천국의 세 상급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구약에서 심판하시는 여호와께서 신약에서 아들로 오셨고, 인자가 되어 인간의 모든 연약함과 고난을 체휼하신 예수께서 마지막 심판을 맡으셨다.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와 같은 조건에서 순종하여 이기신 분이므로 누구보다 의롭고 완전하게 판단하신다.

  천국의 보상에는 서로 다른 세 방면이 있다. 보상인 미스도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서 날마다 행한 기도와 예배와 전도와 구제와 섬김을 천국 집의 재료로 쌓이게 한다. 상인 브라베이온과 면류관인 스테파노스는 일생의 경주를 마치고 특정 방면에서 이긴 사람에게 주어지는 영예로운 인정이다. 보좌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나라와 시대적 사명을 위하여 예비하신 지위이며,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하고 심판에 참여하는 책임의 자리다.

  보좌의 자리는 예정되어 있지만 충성과 무관하게 고정된 것은 아니다. 사울과 가룟 유다와 데마처럼 부르심을 받고도 자기 길을 선택하여 탈락할 수 있으며, 뒤에 있던 사람도 목숨을 걸고 충성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로서 각 사람의 그릇과 분량을 정하시지만, 사람은 자유의지로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끝까지 완주해야 한다.

  하나님의 종 14만 4천은 각 시대와 족속 가운데 인침받고 이기는 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할 사명자들을 보여 준다. 특별한 사명은 자랑의 근거가 아니라 더 무거운 책임이다. 악한 영의 방해와 세상의 핍박을 이기고 회개와 순종으로 자신에게 감추어진 사명을 발견해야 한다. 성도도 하나님이 보내신 참된 종의 음성을 성경으로 분별하여 듣고, 자신의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맡은 몫을 충실히 감당해야 한다.

  우리는 남의 보좌를 탐하거나 자신의 분량을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 작은 순종 하나도 하늘에서 사라지지 않으며,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은 오랜 충성도 주 예수께서 기억하신다. 오늘의 행위를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게 쌓고, 선한 싸움을 싸워 믿음을 지키며, 아버지께서 맡기신 시대적 사명을 끝까지 감당해야 한다. 그리하여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두려운 심판주로만 만나지 않고 천국 집과 면류관과 보좌의 상을 가지고 오시는 주님으로 기쁘게 맞이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7월 23일(목)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재림과 심판의 주님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와 그분이 베푸시는 세 가지 차원의 하늘 보상을 심도 있게 다룹니다. 정보배 목사는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고난을 겪으셨기에 인류를 공정하게 심판할 완전한 자격을 갖추셨음을 강조하며, 성도가 천국에서 받는 상급을 행위에 따른 천국 집의 재료, 일평생의 승리를 기념하는 영광의 면류관, 그리고 예정된 사명자들에게 부여되는 보좌의 자리로 구분하여 설명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통치 행정 안에서 각 사람의 분량에 따른 직무와 신분이 존재하지만, 이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의지와 끝까지 완주하는 충성심에 따라 변화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결국 이 설교는 성도들이 각자에게 맡겨진 위치를 자각하고 마지막 시대의 영적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최고의 영예를 얻도록 독려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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