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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8. 25. (화)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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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VsnBzpUMMXQ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74)] 배역한 이스라엘 민족을 보고 하나님께서 내놓은 처방전, 새 언약의 비밀(렘31:31~3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VsnBzpUMMXQ

 

기독론(174)

배역한 이스라엘 민족을 보고 하나님께서 내놓은 처방전, 새 언약의 비밀

(렘 31:31-34)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는 창조된 인류가 죄악으로 가득 차자 노아 홍수로 심판하셨다. 그러나 홍수 뒤의 인류도 하나님만 섬기지 않았다. 노아의 후손 가운데 니므롯이 일어났고, 셈의 후손인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도 우상숭배의 흐름에 합류했다. 나는 성경이 인용하는 야살의 책의 전승도 참고하면서 이 역사를 살핀다. 하나님께서는 혈통이나 한 지도자만 믿고 인류를 이끄는 방식이 아니라, 자유의지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따라오는 한 사람을 통해 새로운 구원(救援, salvation)의 경륜을 시작하셨다.

  그 사람이 아브라함이다. 하나님께서 본토와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시자,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도 순종하여 나아갔다(창 12:1-4; 히 11:8). 그에게 실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자기 생명을 보전하려고 아내를 누이라고 했고, 사라의 말을 따라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13년 동안 나타나지 않으신 시간을 지나 99세에 다시 찾아오셨을 때, 그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는 말씀을 받고 할례에 순종했다(창 16:16; 17:1-27). 이후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시험에서도 사흘 길을 걸어 모리아산까지 가며 순종했다(창 22:1-12).

  할례는 남자가 사흘 동안 제대로 힘을 쓰기 어려울 만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순종이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포함하여 집안의 모든 남자에게 그날 할례를 행했다. 그 뒤 백 세에 아들을 얻었고 사라는 구십 세에 이삭을 낳았다(창 17:23-27; 21:1-5). 이삭을 바칠 때의 나이에 관하여 요세푸스는 약 25세로, 야살의 책은 약 37세로 전한다고 알려져 있다. 어느 기록을 따르든 이삭은 아버지에게 붙들려 간 어린아이가 아니라 함께 순종한 아들이었다. 아브라함은 오랜 훈련을 통하여 자기 계산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사람으로 빚어졌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자손이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지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창 13:14-17; 22:17). 그러나 아브라함이 살아 있을 때 눈에 보이는 약속의 자손은 이삭 한 명뿐이었고, 소유한 땅도 사라를 장사할 막벨라 굴과 밭뿐이었다. 가나안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창 15:13-16; 23:16-20). 약속은 이삭과 야곱과 열두 아들에게 이어졌고, 야곱의 가족은 기근을 피해 애굽에 들어갔다가 약 400년 뒤에 출애굽하여 비로소 가나안으로 향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하러 갈 때 주변의 아모리 족속들이 동맹으로 함께했다(창 14:13-24).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어도, 아직 죄악이 관영하지 않은 사람들을 때가 되기 전에 쫓아내지는 않으셨다.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의 욕심대로 성급하게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심판의 분량이 차고 하나님의 때가 이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 긴 기다림은 훗날 이스라엘이 그 땅을 받는 일도 은혜와 공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보여 준다.

  문제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다신론(多神論, polytheism)과 형상숭배에 물들었다는 데 있었다. 시내산 아래에서도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한 신이라고 불렀다(출 32:1-6). 가나안에 들어간 뒤에는 남겨 둔 일곱 족속의 풍속을 좇아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며 영적 간음과 육적 음행에 빠졌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죄짓지 않고 영원한 기업을 누리도록 율법과 제사 제도를 주셨지만, 백성은 마침내 언약을 깨뜨리고 바벨론의 심판을 맞게 되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배역한 백성을 포기하셨는가? 아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아홉 해 전인 주전 595년경,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새 언약(新約, new covenant)을 약속하셨다. 돌판 밖에 기록된 법을 마음 안에 두고, 짐승의 피가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 영원한 속죄(贖罪, atonement)를 이루며, 성령께서 사람 안에 거하시게 하는 처방이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왜 새 언약을 내놓으셨으며, 그 언약의 대상과 내용은 무엇이고, 예수님의 피와 성령의 내주(內住, indwelling of the Holy Spirit)가 어떻게 역사하며, 새 언약 안에 있는 성도가 왜 여전히 죄를 짓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배역한 이스라엘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내놓으신 까닭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내놓으신 까닭은 자기 백성이 옛 언약(舊約, old covenant)을 깨뜨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갔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남편이 되셨으나, 그들은 우상들을 다른 남편처럼 섬겼다. 예레미야 시대에는 유다의 성읍 수만큼 우상이 많고 예루살렘 거리 수만큼 바알에게 분향하는 제단이 많다고 책망받았다(렘 2:13; 11:13). 하나님께서 많은 기적과 말씀을 주셨는데도 육체의 욕망과 주변 민족의 미혹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류 역사의 실패를 보시며 죄를 막을 계명을 하나씩 분명히 하셨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사건은 살인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보여 주었고, 노아의 수치를 드러낸 함의 집안에 임한 일은 부모를 공경해야 할 이유를 보여 주었다(창 4:8-12; 9:20-27). 이처럼 십계명은 인간이 되풀이한 죄를 막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살도록 주신 생명의 울타리였다(출 20:1-17).

  시내산 언약의 목적은 이스라엘을 억압하는 데 있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삼고, 말씀에 순종하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누리게 하려 하셨다(출 19:3-6; 신 28:1-14). 율법을 어겼을 때에는 회개(悔改, repentance)하고 용서받는 길로 제사를 주셨다. 율법과 제사는 하나님과 함께 살도록 마련하신 은혜의 질서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가나안 족속을 다 쫓아내지 못했고, 그들과 섞이면서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다. 영적 간음은 결국 생활의 음행과 불의로 이어졌다.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들까지 타락했고, 백성은 성전이 있다는 사실만 믿은 채 죄에서 돌이키지 않았다. 죄가 계속 쌓이자 하나님께서는 자기 성전이 무너지게 하시고 다윗 왕조가 끊어지게 하셨으며, 많은 사람을 칼과 기근으로 죽게 하고 약 5만 명을 포로로 끌려가게 허락하셨다(렘 7:1-15; 25:8-11).

  바알과 아세라 숭배는 단지 나무와 돌 앞에 절하는 행위가 아니었다. 남신과 여신의 성적 결합이 비와 풍요를 가져온다고 믿어 음행을 종교 의식으로 끌어들였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와 소산을 기다리지 않고 눈에 보이는 쾌락과 풍요의 신을 좇았다. 그래서 우상숭배는 영적 간음이며 동시에 육적 음행으로 번졌다. 오늘도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돈과 쾌락과 다른 영을 함께 의지하면 이름만 달라졌을 뿐 같은 다신론의 길을 걷는 것이다.

  그때 하나님께서 판단하신 것은 율법 자체가 악하다는 것이 아니었다. 거룩한 법이 사람 밖에만 있고 사람 안의 욕망이 바뀌지 않으면, 백성은 법을 알면서도 거역한다는 사실이었다. 또한 반복되는 짐승의 제사만으로는 죄의 문제를 영원히 끝낼 수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법을 마음에 기록하고 영원한 피로 죄를 처리하며 성령을 안에 보내시는 새 길을 예고하셨다. 새 언약은 실패한 백성을 버리신 표가 아니라, 끝까지 자기 백성을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온 처방전이다.

3. 예레미야의 회복 예언에서 새 언약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

  예레미야서에서 새 언약은 심판 뒤의 회복을 약속하는 ‘위로의 책’의 중심에 있다. 예레미야서는 제1장의 소명으로 시작한다. 제2장부터 제25장까지는 유다를 향한 열두 예언 묶음이고, 제26장부터 제45장까지는 바벨론 침공 전후에 주어진 사건과 예언이며, 제46장부터 제51장까지는 주변 열 나라를 향한 예언이다. 제52장은 예루살렘 멸망과 여호야긴의 회복을 기록한 부록이다. 그 가운데 제30장부터 제33장까지가 이스라엘과 유다의 회복을 집중적으로 선포하는 핵심이다.

  회복 예언의 배치는 선지서마다 다르다. 이사야서는 제40장부터 제66장까지가 회복을 집중적으로 말하고, 에스겔서는 제33장부터 제48장까지가 회복을 다루되 제40장부터 제48장까지의 새 성전과 땅이 특히 중심이다. 그러나 예레미야서는 마지막이 열방 심판 예언으로 끝나고, 회복의 노른자위가 책 가운데인 제30장부터 제33장까지에 놓여 있다. 바로 그 한가운데에서 새 언약이 선포된다.

  회복의 첫 내용은 포로가 조상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와 다시 그 땅을 차지하는 것이다(렘 30:1-3). 땅을 기업으로 받는 약속은 아브라함 때부터 이어진다. 예수님도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5:5). 가나안 땅의 회복은 단지 고향으로 돌아오는 정치적 사건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이 마침내 영원한 기업을 얻는 구원의 그림을 보여 준다.

  또한 예레미야는 야곱의 환난 뒤에 하나님께서 멍에를 꺾으시고 백성이 여호와와 하나님께서 세우실 왕 다윗을 섬길 것이라고 예언했다(렘 30:7-9). 여기의 다윗은 이미 죽은 옛 왕이 다시 통치한다는 뜻이 아니라, 다윗의 뿌리이자 자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역사적으로 바벨론 포로 귀환이 먼저 이루어졌지만, 완전한 회복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메시아의 통치 안에서 이루어진다.

  제31장에서는 흩으신 하나님께서 목자가 양 떼를 모으듯 이스라엘을 모으신다고 말씀하신다(렘 31:10). 그러나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도 온전히 순종하지 못했다. 이후 예루살렘은 주후 70년에 다시 무너졌고, 유대인은 약 2천 년 동안 나라 없이 흩어져 살았다.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14일 독립했지만 영적으로는 예수님을 믿는 이가 1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 육적인 회복만으로는 새 언약의 완전한 목적에 이를 수 없다.

  이 회복 예언의 절정이 예레미야 31장 31절부터 34절까지의 새 언약이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백성을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이 다시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도록 사람의 내면을 새롭게 하겠다고 하셨다. 법을 속에 두고 마음에 기록하며,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를 회복하고, 작은 자부터 큰 자까지 하나님을 알게 하며, 죄악을 사하고 다시 기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땅의 회복보다 더 깊은 회복은 죄와 하나님을 떠나는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이 받은 은혜도 회개와 말씀의 회복 속에서 보아야 한다. 가난하던 시절에는 명절이나 제삿날에야 쌀밥과 새 양말을 기대할 만큼 어려웠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은 세계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그 영적 전환의 중요한 출발점 가운데 하나가 1907년 평양 대부흥의 회개 운동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그 회개가 훗날 어떤 열매를 맺을지 다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백성을 통해 나라를 일으키셨다. 그러므로 받은 복을 우리만 누리지 말고, 마지막 시대에 회개와 천국 복음을 세계에 전해야 한다.

  새 언약은 바벨론에서 돌아온 스룹바벨 시대에 체결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친히 아들의 신분으로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우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의 위로는 단순한 귀환 예언이 아니다. 심판을 통과한 백성에게 메시아와 새 언약을 주어 하나님과 영원히 살게 하시려는 구원 경륜의 핵심 약속이다.

4. 시내산의 옛 언약은 어떻게 세워졌으며 그 약점은 무엇인가?

  옛 언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손을 잡고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뒤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세우신 언약이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두 돌판에 새겨 주셨고, 모세는 언약서를 백성에게 읽어 주었다. 백성이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준행하겠다고 대답하자, 모세는 제물의 피를 백성에게 뿌리며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라고 선포했다(출 24:3-8). 말씀과 피로 언약이 체결된 것이다.

  이 언약에는 복과 책임이 함께 있었다. 말씀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 약속의 땅에서 복을 누린다. 죄를 지었을 때에는 소와 양과 염소 같은 제물을 드려 속죄를 받았다. 제사 제도는 죄의 삯이 사망임을 보여 주고, 죄인 대신 피 흘릴 희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가르쳤다(레 17:11).

  그러나 옛 언약에는 인간의 죄를 온전히 해결하지 못하는 두 가지 약점이 있었다. 첫째, 법이 돌판과 율법책이라는 외부에 기록되어 있었다. 백성이 말씀을 가까이 두고 배우면 생명의 길을 알 수 있었지만, 보지 않거나 배우지 않으면 모른다고 외면할 수 있었다. 왕은 율법서를 등사하여 평생 읽어야 했고 제사장들은 백성을 가르쳐야 했으나, 왕과 제사장부터 말씀을 버렸다(신 17:18-20; 말 2:7-9).

  둘째, 죄를 처리하는 피가 짐승의 피였다. 그 피는 장차 오실 예수님의 희생을 미리 보여 주는 모형이었고, 특정한 죄를 위하여 반복해서 드려야 했다. 해마다 대속죄일 제사가 되풀이된 사실 자체가 죄의 문제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드러낸다.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영원히 없애지는 못한다(히 10:1-4).

  법을 읽고 가르치는 일의 중요성은 교회사에서도 드러났다. 종교개혁의 중요한 열매 가운데 하나는 라틴어 성경을 성직자만 붙들고 있던 시대를 넘어, 루터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백성이 직접 읽게 한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종교개혁의 정신을 말하면서도 성경보다 후대의 교리만 앞세운다면 개혁의 핵심을 잃어버린다. 돌판과 책에 기록된 말씀이 사람의 마음까지 들어오려면, 누구나 성경을 읽고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옛 언약의 약점은 하나님의 법이 잘못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문제는 법이 밖에 있고 죄의 욕망이 안에 있는 인간이었다. 죄를 지적하는 계명은 있었지만 그 계명을 기쁨으로 지킬 새 마음이 필요했다. 죄를 덮는 짐승의 피는 있었지만 시간과 공간을 넘어 영원히 효력을 나타낼 하나님의 피가 필요했다. 하나님께서는 돌판을 마음판으로 바꾸고, 짐승의 피를 예수님의 피로 바꾸며, 사람 안에 성령을 보내시는 새 언약을 준비하셨다.

5. 예레미야 31장에 약속된 새 언약의 대상과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

  새 언약의 대상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이다. 하나님께서는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라고 하셨다. 그것은 출애굽 때 세운 언약과 같지 않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남편이 되셨는데도 조상들이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이다(렘 31:31-32).

렘 31: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기에서 유다 집은 혈통적으로 언약 안에서 태어난 유대 백성을 가리키고, 이스라엘 집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는 이름처럼 믿음으로 이기는 영적 후손까지 품는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는 혈통적으로 유다와 베냐민에 속한 유대인들이었지만, 그들을 통해 복음은 모든 민족에게 전해졌다. 베드로가 처음에는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에게 가는 일을 어려워하자 하나님께서는 고넬료의 집으로 인도하셨고, 사도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셨다(행 10:9-48; 9:15; 갈 2:7-8). 새 언약은 유대인에게서 시작되어 이기는 모든 민족에게 열렸다.

  새 언약의 핵심 내용은 네 가지다. 첫째, 하나님께서 법을 사람의 속에 두고 마음에 기록하신다. 둘째,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셋째, 작은 자부터 큰 자까지 하나님을 알게 된다. 넷째, 하나님께서 악행을 사하고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않으신다(렘 31:33-34). 법의 내면화, 언약 관계, 하나님을 아는 지식, 완전한 죄 사함이 하나로 묶여 있다.

  하나님의 법이 마음에 기록되는 것은 성령의 내주로 이루어진다.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 되고, 성령께서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며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깨닫게 하신다(고전 6:17; 요 14:26; 16:8). 밖에서 명령만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안에 계신 성령께서 무엇이 죄이고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가르치시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사람의 자유의지를 없애고 기계처럼 순종하게 하시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며 사람이 문을 열기를 기다리신다(계 3:20).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고, 그 안에 거하시며 하나님과 떨어지지 않을 생명의 관계를 맺으신다(요 1:12-13). 그러므로 새 언약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안에 계신 성령의 음성을 듣고 따라야 한다.

6. 예수께서는 언제 누구와 무엇으로 새 언약을 체결하셨는가?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예루살렘의 마가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새 언약을 체결하셨다. 떡을 떼어 자기 몸이라고 하시고, 잔을 주시며 자기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고 선포하셨다. 시내산에서는 모세가 짐승의 피를 뿌렸지만, 새 언약에서는 예수님이 자신의 몸과 피를 내어 주셨다.

눅 22:19-20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옛 언약은 여호와께서 세우셨고 새 언약은 예수께서 세우셨다. 이것은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이 서로 다른 분이라는 뜻이 아니다. 구약의 여호와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한 분 하나님께서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하여 아들의 신분으로 새 언약을 체결하신 것이다.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고,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교회를 사셨다고 증언했다(요 20:28; 행 20:28).

  나 역시 한 분 하나님을 분명히 배우기 전에는 예수님께 기도하면 아버지께서 섭섭해하지 않으실까, 성령님을 초청하면 또 다른 분을 높이는 것은 아닐까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구약과 신약을 관통하여 주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성경이 하나로 풀리기 시작했다. 예수님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요 14:14). 예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것은 그분이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분 하나님을 셋으로 나누는 다신론으로 가서도 안 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나타나심과 사역을 뒤섞는 양태론으로 가서도 안 된다. 구약에도 주 하나님이 계시고 신약에도 주 하나님이 계신다. 이사야는 우리에게 나신 아기가 전능하신 하나님이며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예언했다(사 9:6).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한 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오셨다(계 1:8, 17-18).

  예수님과 마가 다락방에 있던 제자들은 혈통적인 유대인이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하셨다(마 28:18-20). 베드로가 할례받은 이들에게 주로 복음을 전했고, 바울이 이방인 복음 전파를 기쁨으로 감당하면서 새 언약은 땅끝까지 확장되었다.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에 복음의 은혜를 주신 목적도 우리만 복을 누리게 하려는 데 있지 않다. 이 회개와 천국 복음을 모든 민족에게 전해야 한다.

  예수님은 더 좋은 약속으로 세워진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仲保者, mediator)이시다(히 8:6). 그분은 제삼자의 피를 들고 하나님께 나아간 분이 아니라 자기 피를 흘려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잇고 언약을 보증하셨다. 그러므로 새 언약의 확실함은 인간의 결심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친히 흘리신 피와 지금도 살아 계신 중보자에게 있다.

7. 예수님의 피와 성령의 내주는 새 언약 안에서 어떻게 역사하는가?

  새 언약의 두 핵심은 영원한 속죄와 영원한 성령이다. 예수님의 피는 짐승의 피처럼 반복해서 드릴 모형이 아니라 죄를 실제로 처리하는 참된 피다. 예수님은 자기 피로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고, 성령께서는 믿는 이의 마음에 들어오셔서 하나님의 법을 알게 하고 지키도록 이끄신다(히 9:11-14; 10:10-14).

  예수님의 피에는 두 가지 효능이 있다. 첫째는 죄를 사하여 의롭다고 칭해 주는 칭의(稱義, justification)의 효능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사람이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사실을 힘 있게 증언했다(롬 3:23-26; 갈 2:16). 예수님의 피가 죄를 덮으므로 죄인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

  둘째는 죄와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는 정결(淨潔)의 효능이다. 사도 바울 이후 약 30년을 더 살며 계시를 받은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며, 죄를 자백하면 죄 사함과 함께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전했다. 마지막 시대에는 속죄만이 아니라 이 정결의 방면을 반드시 회복해야 한다.

요일 1:7-9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죄 사함과 깨끗함은 구별되지만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 예수를 믿을 때 피로 죄 사함을 받는 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하면, 믿은 뒤에 지은 죄를 방치하기 쉽다. 그러나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하면 하늘의 행위책에 기록된 죄가 지워지고, 죄를 통하여 들어온 악한 영이 떠날 근거가 생긴다. 예수님의 피는 죄책만 덮는 데서 멈추지 않고 사람의 안을 깨끗하게 하여 하나님의 법을 따를 수 있도록 한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물과 피로 임하셨으며 성령께서 증언하신다고 했다(요일 5:6-8). 예수님은 승천하셨지만 우리에게 피의 효능과 씻음의 은혜를 남겨 두셨고, 성령께서 그것을 실제로 적용하신다. 피로 죄를 사하고 깨끗하게 하며, 성령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하게 하는 것이 새 언약의 작동 원리다.

  성령께서는 사람의 영과 연합하여 안에서 말씀하신다. 무엇이 죄인지, 지금 따라가는 가르침이 생명의 말씀인지, 과거의 신앙 습관이 하나님의 뜻과 맞는지를 깨닫게 하신다. 그러므로 교단의 교리나 사람의 말이 성경과 성령의 가르침보다 앞설 수 없다. 종교개혁이 성경을 모든 사람의 손에 돌려준 것은 귀한 일이지만, 후대가 개혁자의 일부 강조만 붙들고 성경 전체를 놓친다면 다시 돌판 밖의 종교로 돌아가는 셈이다.

  새 언약을 받은 성도는 예수님의 피와 성령을 함께 붙들어야 한다. 피를 말하면서 죄를 자백하지 않으면 정결에 이르지 못하고, 성령을 말하면서 예수님의 피를 떠나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죄를 자백하여 깨끗함을 받고, 성령께서 생각나게 하시는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는 관계가 실제 삶에서 열매 맺는다.

8. 새 언약 안에 들어온 성도도 왜 여전히 죄를 짓는가?

  새 언약 안에 들어온 성도가 여전히 죄를 짓는 이유는 성령을 받았어도 자유의지가 사라지지 않았고 육체의 욕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법을 마음에 기록하고 성령을 보내셨지만, 사람이 성령의 인도를 거절하고 육체의 소욕을 따르면 다시 죄를 짓는다. 새 언약은 죄를 지을 수 없도록 사람을 강제로 묶는 제도가 아니라, 죄를 이길 생명과 능력을 안에 주고 그 인도를 선택하여 따르게 하는 언약이다.

갈 5:16-17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성령은 분명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가르치신다. 생명의 말씀을 들을 때 안에 계신 성령께서 “내가 지금까지 속고 살았구나. 내가 헛다리를 짚었구나” 하고 깨닫게 하신다. 그런데도 사람은 더 편하게 살고 싶어서 성령의 책망보다 익숙한 교리와 과거의 신앙 방식을 선택한다. 진리가 틀린 것이 아니라, 자유의지로 진리를 따르지 않는 것이 문제다.

  특히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은 더 두려운 책임을 져야 한다. 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교리만 반복하거나, 영적 간음과 육적 음행을 가볍게 여기면서 목회 직분을 붙들어서는 안 된다. 작은 자부터 큰 자까지 하나님을 알게 하신다는 새 언약의 약속은 교만하게 배우기를 멈추라는 허가가 아니다.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말씀 앞에 누구나 겸손히 서야 한다.

  평신도는 계속 배우려고 하지만, 목회자가 된 뒤에는 자신이 꼭대기에 올라간 것처럼 착각하여 배우기를 멈추기 쉽다. 그러나 성경을 알지 못하고 가르친 잘못은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고 많은 영혼을 그릇된 길로 이끈다. 하나님께서는 가르치는 자를 더 엄히 심판하신다(약 3:1). 목회자는 사람에게 배운 교리를 지키는 데 만족하지 말고, 성경을 다시 펴고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

  또한 예수님의 피가 영원한 효력을 지녔다고 해서 회개가 필요 없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영원한 피가 준비되었기에 언제든 죄를 자백하고 씻음받을 수 있다. 믿은 뒤의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하면 죄 사함을 받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되며, 죄의 충동을 일으키던 악한 영도 떠날 근거를 잃는다. 이렇게 깨끗해질수록 성령의 인도를 더 분명히 따를 수 있다.

  이스라엘이 실패한 이유를 오늘의 교회가 반복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언약 백성이라는 이름과 성전과 제사를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보다 우상을 사랑했다. 오늘도 예수를 믿는다는 이름과 교회 직분을 가지고 있으면서 돈과 명예와 음행과 자기 교리를 더 사랑하면 같은 배역의 길을 간다. 새 언약의 표지는 입술의 고백만이 아니라 마음에 기록된 법을 따라 사는 순종이다.

  끝까지 이기지 못하고 죄를 고집하면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고 성령께서 떠나며 성 밖에 남을 수 있다. 예수님은 이기는 자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않겠다고 약속하셨고, 요한계시록은 두루마기를 빠는 자와 성 밖에 있는 자를 구별한다(계 3:5; 22:14-15). 새 언약을 한 번 받았다는 과거의 체험만으로 안심하지 말고, 날마다 피로 씻고 성령을 따라 끝까지 이겨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령을 따라 행하고, 죄를 깨달을 때 즉시 자백하며, 예수님의 피로 정결함을 받아야 한다. 속죄의 은혜를 죄의 면허로 바꾸지 말고, 성령의 내주를 감정적인 체험으로만 소비하지 말아야 한다. 말씀과 성령을 따라 육체의 소욕을 거절하고 끝까지 이기는 자가 될 때, 새 언약이 목표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준비될 수 있다.

9. 나오며

  배역한 이스라엘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내놓으신 새 언약의 비밀을 살펴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의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하셨으며, 출애굽한 이스라엘과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셨다. 그러나 백성은 애굽과 가나안의 우상숭배에 물들어 언약을 깨뜨렸고, 마침내 바벨론의 심판을 받았다.

  옛 언약의 법은 돌판 밖에 기록되었고, 제사에는 반복해서 드려야 하는 짐승의 피가 사용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두 약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법을 사람의 마음에 기록하고 예수님의 영원한 피로 죄를 처리하며 성령을 사람 안에 보내시는 새 언약을 약속하셨다. 예레미야 30장부터 33장까지의 위로와 회복은 이 약속에서 절정에 이른다.

  한 분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몸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로 오셔서 마가 다락방에서 자기 피로 새 언약을 체결하셨다. 예수님의 피는 죄를 사하여 의롭다 하실 뿐 아니라, 죄를 자백하는 사람을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 성령께서는 마음에 거하시며 하나님의 법을 생각나게 하고 죄와 의와 심판을 깨닫게 하신다.

  그러나 새 언약의 은혜를 받았어도 성령을 거스르고 육체의 소욕과 익숙한 교리를 따르면 다시 죄를 짓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은 뒤의 죄도 계속 자백하여 예수님의 피로 깨끗함을 받고, 안에 계신 성령의 인도를 따라야 한다. 새 언약을 죄를 덮어 주는 장치로만 여기지 말고 하나님만 사랑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게 하는 생명의 언약으로 받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배역한 백성에게 마지막으로 내놓으신 처방은 더 강한 외적 통제가 아니라 예수님의 피와 성령의 내주였다. 우리는 이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고 말씀을 배우며 성령을 따라 죄와 싸워야 한다. 그리하여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새기고 예수님의 피로 날마다 정결함을 받아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차지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8월 25일(화)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본 설교는 하나님께서 반복적으로 타락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회복시키기 위해 제시하신 새 언약의 비밀과 그 성취 과정을 기독론적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아브라함부터 시작된 구속사를 훑으며, 돌판에 새겨진 율법이라는 옛 언약이 인간의 육체적 정욕과 한계로 인해 실패할 수밖에 없었음을 지적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은 법을 인간의 마음속에 직접 기록하고 성령을 내주하게 함으로써, 단순히 죄를 덮는 수준을 넘어 본질적인 정결과 순종이 가능하도록 설계하셨습니다. 특히 사도 바울의 칭의론을 넘어 사도 요한이 강조한 예수 피의 두 가지 효능, 즉 속죄와 자백을 통한 정결함을 강조하며 마지막 시대 성도들이 가야 할 회개와 천국 복음의 길을 제시하는 것이 이 글의 핵심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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