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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10. 14. (수)2026년 교회표어 「시대적인 사명완성을 위해 성전을 짓는 해」 (역대상 28장 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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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론(198)] 호세아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3) 어떻게 예수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우두머리이자 왕이 되셨는가?(호1:10~11)

정보배 목사2026-09-23조회 224읽는 시간 약 24분

설교핵심

본 설교는 구약의 호세아를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비추는 결정적인 예표로 정의하며, 그 이름과 삶의 궤적이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어떻게 상징하는지 심도 있게 고찰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호세아와 여호수아, 그리고 예수라는 이름이 모두 ‘구원’이라는 동일한 어원을 공유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호세아가 음란한 고멜을 대가를 치르고 다시 사온 사건을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신 예수님의 대속물 사역과 연결해 설명합니다. 특히 본문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라진 민족이 마지막 날에 다윗으로 예표된 한 우두머리 아래 하나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 혈통적 이스라엘을 넘어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영적 안식을 주는 것으로 성취되었다고 강조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언어적 유희와 역사적 성취를 통해, 진정한 회개를 거쳐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는 자만이 하늘의 상속자가 될 수 있다는 회개와 천국 복음의 핵심 가치를 전파하고 있습니다.

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

1호세아서는 왜 소선지서의 첫머리에 놓였는가?2고멜을 값을 주고 사 온 사건은 무엇을 예표하는가?3호세아·여호수아·예수의 이름은 어떻게 연결되는가?4여호수아는 왜 이스라엘에게 완전한 안식을 주지 못했는가?5호세아서의 ‘다윗’과 ‘한 우두머리’는 누구를 가리키는가?6북이스라엘의 회복 약속은 어떻게 성취되는가?7예수님과 바울과 베드로는 ‘내 백성 아닌 자’를 누구로 해석했는가?

강의 자료

그림 2 · 슬라이드 24
[기독론(198)] 호세아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3) 어떻게 예수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우두머리이자 왕이 되셨는가?(호1:10~11)_2026-09-2 – 이미지 1[기독론(198)] 호세아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3) 어떻게 예수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우두머리이자 왕이 되셨는가?(호1:10~11)_2026-09-2 – 이미지 2[기독론(198)] 호세아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3) 어떻게 예수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우두머리이자 왕이 되셨는가?(호1:10~11)_2026-09-2 – 이미지 3[기독론(198)] 호세아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3) 어떻게 예수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우두머리이자 왕이 되셨는가?(호1:10~11)_2026-09-2 – 이미지 4
Blueprint of Redemption설교 슬라이드 · 24장
설교 본문 기독론(198) 호세아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3)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이번 시간은 호세아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예표(豫表, typology) 가운데, 참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호세아서는 소선지서의 첫 번째 책이다. 그러나 호세아서가 소선지서 가운데 가장 먼저 기록되지는 않았다. 북이스라엘을 향해 정의와 공의를 외쳤던 아모스서가 호세아서보다 먼저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호세아서가 앞에 놓인 것은 이 책의 이름부터가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신약성경에서도 마가복음이 먼저 기록되었지만 마태복음이 복음서의 첫머리에 놓였다. 왜냐하면 마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약속의 성취자임을 먼저 보여 주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호세아서도 소선지서의 첫머리에서 예수님을 가리킨다. 호세아라는 이름 자체가 구원 혹은 구원자를 뜻하고,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를 통해 생명씀이 흘러가게 했기 때문이다.

호세아서에는 그리스도의 예표가 다섯 가지 정도 나타난다. 음란한 신부를 다시 값 주고 사 오시는 남편, 참된 왕 다윗의 자손, 다시 살려 회복시키시는 분, 애굽에서 불러내신 하나님의 아들,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구속자(救贖者, redeemer)이시다. 이번 시간은 그 가운데 두 번째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한 우두머리 아래 모이고 그들이 다윗의 자손을 왕으로 섬기게 된다는 약속의 말씀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호세아서의 이름과 역사적 배경을 통하여 예수님이 어떻게 참된 우두머리와 왕이 되셨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호세아서는 왜 소선지서의 첫머리에 놓였는가?

호세아서는 무엇보다도 그 이름부터 예수님을 가장 강력하게 소개하기 때문에 소선지서의 첫머리에 놓인 것 같다. 호세아 1장 1절은 이 책의 저자를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라고 소개한다. '브에리'는 솟구쳐 나오는 샘과 관련된 이름이다. 생명수가 샘에서 솟아나듯 호세아를 통하여 구원의 말씀이 흘러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호세아'는 구원 또는 구원자라는 뜻이며, 히브리어 ‘야샤’에서 나온 이름이다.

그런데 호세아의 이름은 여호수아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어진다. 민수기 13장 8절에서 에브라임 지파의 정탐꾼으로 파송된 자로 눈의 아들 호세아를 소개하고 있다. 모세는 그의 이름을 여호수아라고 고쳐 불렀다(민 13:16). 여호수아는 ‘여호와’와 ‘야샤’가 결합된 이름으로서,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이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민족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이끌었지만, 그의 이름은 장차 오실 참된 구원자를 가리키는 표지가 되었다.

그렇다면 온 인류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에 대한 히브리어 이름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슈아'(예수아)이다. 그런데 '예슈아'는 '여호수아'의 축약형이고, 이것이 헬라어로 옮겨지면서 그 이름이 '예수스'가 되었으며 이것이 남성 명사이니, 뒤에 나오는 '스'가 떨어지면 그분의 이름은 '예수'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천사가 꿈 속에서 요셉에게 나타난 전한 말은 “[네가]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말했다(마 1:21). 그렇다. '예수'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호세아'와 '여호수아'와 '예수'라는 이름은 서로 동떨어져 있지 않다. '호세아'는 구원을 가리키고, '여호수아'는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을 더 분명하게 보여 주며, '예수님'은 실제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호세아서가 소선지서의 첫머리에 놓인 것은 그 이름으로부터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 고멜을 값을 주고 사 온 사건은 무엇을 예표하는가?

호세아서의 예수님 예표는 이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호세아가 고멜을 다시 사 온 사건은 예수님께서 자기 목숨을 대속물(代贖物, ransom)로 주시려는 일을 미리 보여 준다(마 20:28).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뒤 고멜은 호세아와 결혼하여 세 자녀를 낳았지만, 다른 남자의 사랑을 따라 집을 떠났다. 나중에는 노예 시장에 팔릴 만큼 비참한 상태가 되었다. 그때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그 여자를 다시 사랑하고 값을 주고 사 오라고 하셨다.

그래서 호세아는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고멜을 사온다(호 3:2).

호 3:2 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그를 사고

그렇다면 호세가 지불한 그 값은 얼마 정도 되는가? 그 값은 당시에 은 삼십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노예의 몸값 정도 되는 액수다(출 21:32).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넘긴 사건도 이 장면과 상당히 겹쳐 보인다(마 26:15). 한편 이 여자의 이름이 '고멜'이라고 하는데(호 1:3), '기업 무를 자'를 뜻하는 고엘과 연결지어 보면(룻 2:20), 이 둘은 언어적으로 매우 유사하다. 이는 고엘로서 호세아가 고멜의 기업 무를 자가 되어 다시 사 오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도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다(마 20:28). 대속물은 속전(贖錢, ransom price)이며, 값을 치르고 사 오는 값이다. 우리는 죄와 사망 아래 팔려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를 값으로 지불하고 우리를 사셨다. 호세아가 고멜을 찾아간 것은 고멜이 먼저 돌아왔기 때문이 아니다. 남편이 먼저 찾아가 값을 지불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멜은 과연 어떤 여자였을까? 어떤 이는 그녀가 신전 창기였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성경은 그녀를 가리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이라고 소개한다(호 1:3). 그렇다. 그녀의 아버지의 이름이 그녀의 이름 앞에 붙었다. 그렇다면 그의 아버지는 당시 그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인물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비록 그 여자 속에 음란하게 만드는 영, 밖으로 떠돌아다니게 하는 영, 꾸미고 사치하려는 영이 강하게 역사했지만 그녀를 음녀로 보기에는 과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여자의 상태가 아무리 무너져 있었어도 호세아로 하여금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식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바람난 신부를 찾아 값을 주고 사 오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교회를 사랑하셔서 자신을 내어 주셨다(엡 5:25). 죄인을 그냥 눈감아 주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피값을 지불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속전('코페르')으로 산 신부이다.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다시 죄를 따라가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 이제는 다른 사랑을 버리고 주님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4. 호세아·여호수아·예수의 이름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그렇다면 호세아라는 이름은 대체 어떤 단어에서 비롯된 것인가? 그것의 뿌리는 사실 '야샤'이다. '야샤'라는 말은 구원하다 또는 구원자라는 뜻이다. 그런데 눈의 아들은 원래 호세아였다. 그런데 모세가 그 이름을 '여호수아'로 고쳐 불렀다(민 13:8). 그렇다면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어떤 이름인가? 그것은 '여호와'라는 단어와 '야샤'라는 단어가 합쳐진 이름으로서, 그 뜻은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이다. 그리고 바벨론 포로기 이후 등장하는 이름으로서 '예슈아'(예수아)는 여호수아의 축약형으로 나온 단어이다. 그러므로 호세아는 여호수아이며, 예슈아인 것이다. 그러다가 히브리어로 '예슈아'였던 자가 헬라어로 옮겨 부를 때에 예수스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호세아와 여호수아와 예수는 모두 '구원'이라는 의미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연결은 단순한 발음의 유사성만 가진 것이 아니다. '호세아'는 북이스라엘이 바알과 아세라를 따라가며 멀어지는 가운데 구원을 외쳤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 땅을 기업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죄와 사망과 마귀에게서 건져 하늘의 기업으로 이끄셨다. 고로 성경에 등장하는 이름은 이처럼 대부분 자신의 사명과도 함께 연결되어 있다.

특히 호세아 선지자와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의 이름이 같다는 것도 매우 의미심장하다. 호세아 선지자의 이름은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만, 마지막 왕 호세아는 이러한 여로보암 1세의 구원의 외침을 듣지 않았다. 그는 앗수르에 조공을 바치다가 애굽을 의지하게 되었고, 하나님보다 다른 힘을 붙들고 말았다. 그러자 결국 북이스라엘은 앗수르 왕 살만에셀에게 B.C.722년경에 멸망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사람을 구원받으려면, 구원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이름을 믿고 여호와께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호세아'라는 이름은 오늘도 우리에게 묻는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실제로는 재물과 사람과 세상의 힘을 의지하고 있지는 않은가?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었다면 평생 그분만 붙들어야 한다. 다른 신과 다른 힘을 함께 붙들 수는 없다.

5. 여호수아는 왜 이스라엘에게 완전한 안식을 주지 못했는가?

구약 시대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어떤 인물이었는가? 그는 모세의 뒤를 이어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이스라엘 9지파 반에게 가나안 땅을 나누어 준 장본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에게 완전한 안식을 준 것은 아니었다. 히브리서 4장 8절은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가나안 땅을 정복한 것은 참된 안식에 대한 모형이었고, 완전한 안식은 그때도 남아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 민족도 가나안의 일곱 족속을 모두 다 쫓아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의 일곱 족속들과 섞여 살면서 나중에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게 된다. 그 땅을 차지한 것은 맞지만 그들이 영혼의 안식을 얻은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가서 차지한 땅은 하나님께서 주셨던 최종 안식이 아니었다. 정말로 주어진 참된 안식은 죄와 마귀에게 눌린 사람이 자유를 얻고,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쉬는 것으로서 그것은 오직 예수님이 주시는 것이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는가? 어느 날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십팔 년 동안 귀신에게 매여 꼬부라진 여자를 고쳐 주신 일이 있었다. 그때 주님은 그 여자가 아브라함의 딸인데 사탄에게 매인 바 되었으니 안식일에 그 매임에서 풀어 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하셨다(눅 13:16).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시며, 희년의 성취자로 오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진정한 안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악한 영의 매임에서 놓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필자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말씀을 많이 묵상하고 전했지만, 실제적인 안식을 충분히 누리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회개의 기도문을 붙들고 회개를 계속하였다. 약 천 번 정도 회개했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내 몸에 있는 악한 영들의 집이 파괴되면서 진정한 안식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보여 준 안식은 실제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의 원수들을 쫓아내었던 사실은 우리 안에 있는 악한 영의 세력을 몰아내는 것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주시는 안식은 땅을 차지하는 정도의 안식이 아니라 죄와 마귀에게서 해방되어 하나님과 함께 사는 안식인 것이다.

6. 호세아서의 ‘다윗’과 ‘한 우두머리’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호세아 3장 5절은 이스라엘 자손이 장차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또한 호세아 1장 11절은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울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장차 올 다윗은 죽은 다윗 왕이 다시 살아 온다는 뜻이 아니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아를 가리킨다. 그분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런데 과연 호세아 1장 10-11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로서 북이스라엘은 과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날이 올 것인가? 그리고 유다와 이스라엘이 함께 모여 하나의 머리인 다윗 왕을 세운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 말이 과연 실현될 수 있는가?

첫째 아들의 이름 이스르엘도 이 약속과 연결된다. 이스르엘은 하나님이 흩으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바알을 섬긴 이스라엘을 흩으셨지만, 흩으신 것에서 끝내지 않으시고 다시 모으신다.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바알의 선지자들이 무너지고 새로운 날이 시작된 것처럼,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날이 온다는 뜻이다.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1세 이후 마지막 왕 호세가가 죽기까지 약 210년 동안 남유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예배하지 못했다.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여로보암 1세가 벧엘과 단의 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여호와라고 부르게 했다. 그리고 그들 나름의 절기를 만들어 그것을 지키게 하였다. 그 결과 북이스라엘은 일종의 혼합주의(混合主義, syncretism)의 신앙에 빠지고 말았고, 결국에는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고 만다. 그러나 호세아 선지자는 이러한 북이스라엘이 언젠가는 마지막 날에 다윗 왕을 찾을 것이라고 하였다. 북이스라엘의 회복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을 왕으로 섬길 때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실제 역사는 어떻게 되었는가? 남유다는 비록 망했어도 포로로 끌려간 바벨론에서 살면서 결코 신앙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다윗의 후손이 꼭 와서 자신들을 자유와 해방으로 안내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비록 원수들의 땅에 살고 있었지만 그들의 왕통이 끊어지지 않게 하였다. 그래서 여호야긴 왕의 후손인 스룹바벨이 1차 포로 귀환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왔고, 그 왕손의 계보를 따라 어느 날 예수님이 오신 것이다(마 1장).

그러나 북이스라엘은 왕통과 혈통의 정통성을 잃어버린 채 여러 민족과 섞여 살면서 혼혈민족인 사마리아인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과연 어떻게 북이스라엘이 다윗을 왕으로 섬기는 날이 온다는 말인가? 그런데 그 답은 다윗의 혈통에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데에 있음을 신약성경을 통해 알 수 있다.

7. 북이스라엘의 회복 약속은 어떻게 성취되는가?

북이스라엘의 회복 약속을 문자적으로만 보면, 마지막 때 북이스라엘 열 지파가 다시 국가로 회복되어 다윗의 왕을 섬겨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세대주의(世代主義, dispensationalism)는 이 약속을 이스라엘 민족과 교회를 끝까지 나누는 방식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호세아서의 약속, 곧 호세아 1장 10-11절의 약속의 말씀이 신약에서 어떻게 해석되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해석은 예수님과 사도 바울과 베드로가 내린 해석을 따라가야 한다.

먼저 사도 바울은 호세아가 말했던 바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하리라”는 말씀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그것은 로마서 9장에 나온다.

롬 9:25-26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이때 '내 백성이 아닌 자'는 유대인 중에서뿐만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시는 자라고 말했다(롬 9:24-26). 바울은 이 약속을 북이스라엘 열 지파만의 회복으로 가두지 않았던 것이다. 유대인 가운데 부르심을 받은 자와 이방인 가운데 부르심을 받은 자가 다 함께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해석한 것이다.

그런데 베드로도 같은 방식으로 호세아의 말씀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즉 유대인들과 피 한 방울이 섞이지 아니한 이방인들도 얼마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고, 긍휼히 여김을 받는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벧전 2:9-10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베드로전서 1장 1절을 보자.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성도들에게 편지를 쓴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방 지역에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베드로는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고 말했다(벧전 2:9). 이어서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고 말한다(벧전 2:10). 이것은 호세아가 말했던 로암미와 로루하마가 이방인 그리스도인에게서 성취된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도 이와 같은 약속을 말씀하셨다는 사실이다(요 10:16).

요 10: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예수님도 역시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고 하셨다(요 10:16). 우리 안에 있던 양은 유대인을 가리키고, 우리 밖에 있던 다른 양은 이방인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한 무리로 모으실 것이고 한 목자에게 있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그리고 에스겔 34장 23-24절을 보라. 거기에 보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한 목자와 한 명의 다윗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했다. 장차 하나님께서 한 목자를 세워 당신의 양들을 먹이게 할 것인데,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종 된 다윗이며, 그가 그들 중에 왕이 될 것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바로 그 한 목자이자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왕이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그리고 우리에 들지 않았던 이방인까지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면 한 백성이 된다.

그러므로 세대주의의 문자적 해석을 우리는 성경 전체의 최종 해석으로 삼을 수는 없다. 참고할 수 있는 역사적 가능성을 말할 수는 있지만, 예수님과 바울과 베드로가 보여 준 해석보다 앞설 수는 없다. 하나님은 특정 혈통만을 위해 이방인을 부르신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갈 3:29).

8. 예수님과 바울과 베드로는 ‘내 백성 아닌 자’를 누구로 해석했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호세아가 예언했던 바 “내 백성 아닌 자”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들은 누구인가? 북이스라엘인가 아니면 이방인들인가? 역사적으로 보면 북이스라엘도 하나님에게서 점차 멀어져 갔지만, 이방인은 원래부터 언약 밖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명령하신 것은 음란한 여자인 고멜과 결혼하여 자식을 낳으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둘째가 딸 로루하마였고, 셋째가 아들 로암미였다. 여기서 로암미는 내 백성이 아니라는 뜻이고, 로루하마는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호세아의 두 자녀의 이름은 곧 다가올 북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내 백성이 아닌 자'를 북이스라엘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신약에서는 그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방인에게까지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사도 바울은 로마서 9장에서 이 약속이 유대인 중에서뿐만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심을 입은 자라고 분명히 해석하였다(롬 9:24-26). 그리고 둘째, 사도 베드로 역시 이방의 여러 지역에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으나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언급하였다(벧전 2:10).

그러므로 '내 백성이 아닌 자'가 '내 백성'이 되게 하시겠다고 하는 약속은 북이스라엘 민족의 회복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게 되면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셋째, 예수님은 이 약속을 하나의 우리와 한 목자의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요 10:16). 이는 유대인만 구원받는다는 약속이 아니다. 그것은 북이스라엘의 남은 자도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에 들지 않았던 다른 양들인 이방인들 역시 주님의 음성을 듣고 한 무리의 양떼가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유다인이나 북이스라엘 백성이나 이방인들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방인들이 지금도 큰 은혜를 받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구약 시대에는 감추어져 있던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이다.

그러나 반대로 남유다가 그 땅을 잃어버리고 멸망당했던 것처럼, 그리고 북이스라엘이 멸망당해 그 민족이 거의 사라져 버린 것처럼, 교회도 주님이 맡기신 기회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다면 이방인들에게 주어진 놀라운 기회를 모두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렇다. 예수님 이후 하나님께서는 혈통이 아니라 그 나라의 열매를 맺는 백성을 통하여 일하고 계신다(마 21:43).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며 하늘의 기업을 얻기 위해 몸부림치는 자가 언약의 자손이며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끝까지 갈라놓는 것이 아니다. 유대인을 미워하거나 죽여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유대인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고, 이방인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예수님 안에서 둘이 하나가 되고, 한 왕과 한 목자 아래에서 한 백성이 된다.

9. 나오며

이번 시간은 우리는 호세아서가 소선지서의 첫머리에 놓인 이유와 더불어, 고멜을 값을 주고 사 온 사건이 예수님의 대속을 어떻게 보여 주는 것인지, 호세아·여호수아·예수의 이름이 어떻게 구원이라는 의미로 연결되는지를 살펴보았다. 또한 여호수아가 완전한 안식을 주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 참된 안식을 주셨다는 사실까지 확인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호세아 1장 10-11절과 3장 5절에서 말씀하셨던, 다윗과 한 우두머리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어느 날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한 왕 아래 모이고, 우리에 들지 않았던 다른 양들까지 한 무리가 되는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고 있다. 바울과 베드로도 호세아의 말씀을 유대인과 이방인을 함께 부르시는 하나님의 구원으로 해석한 바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는 누구든지 예수님만을 자신의 참된 왕과 목자로 붙들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던 자라도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특히 예수님을 자신의 왕으로 부르는 데에만 머물지 말고, 진짜 다른 신과 세상의 힘을 버리고 주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그러므로 이 시대는 회개와 천국 복음을 듣고 우리에게 주어진 교회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시대가 되었다. 그러므로 결국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하늘의 기업을 이어받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9월 23일(수) ·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