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자론(18)] 진정한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천국에서 받을 5대 면류관은 무엇인가(02)(딤후4:7~8)
이 설교는 성도가 이 땅에서 행한 신앙의 수고가 천국에서 어떤 실질적인 보상으로 결실을 맺는지 구체적인 비유를 들어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헌신이 천국 집의 재료가 되어 집의 크기와 화려함을 결정하며, 특히 전도와 충성은 영광스러운 면류관이라는 특별상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합니다. 사도 바울의 삶을 최고의 모범으로 제시하며, 세상 유혹을 뒤로하고 끝까지 사명을 완수하는 자만이 주님이 인정하시는 의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음을 역설합니다. 결국 이 설교는 성도들에게 막연한 믿음을 넘어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신뢰하며, 미래의 영원한 영광을 위해 현세의 삶을 성실하게 준비할 것을 강력히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
1천국의 통치와 성도의 상은 이 땅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가?본문 →2천국 집의 터와 규모는 어떻게 정해지며 부모의 기도는 어떤 영향을 주는가?본문 →3예배·기도·전도·섬김은 천국 집에 어떤 재료와 열매로 쌓이는가?본문 →4천국 집을 짓는 일과 면류관을 받는 일은 무엇이 다른가?본문 →5바울은 왜 여러 면류관 가운데 의의 면류관을 자신의 상으로 말했는가?본문 →6바울이 큰 집과 면류관을 받은 삶의 네 가지 특징은 무엇인가?본문 →7오늘의 사역자는 끝까지 충성하며 어떤 상을 준비해야 하는가?본문 →강의 자료
그림 2 · 슬라이드 261. 들어가며
이번 시간은 진정한 하나님의 사역자가 천국에서 받을 면류관을 살피는 두 번째 시간이다. 주님이 우리를 불러 믿게 하시고 예배하게 하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찬송과 기도는 허공에 사라지지 않는다. 필자가 천국(天國, kingdom of heaven)을 살피며 보아 온 바에 따르면, 이 땅에서 주님을 위해 행한 일 하나하나가 천국 집의 재료가 되어 올라간다. 그러므로 지금 사는 하루, 예배하는 한 시간, 영혼에게 건네는 한마디를 가볍게 볼 수 없다.
필자가 훈련을 받고 있을 때, 어느날 스승 목사님으로부터 주일예배를 빠져 벽에 구멍이 난 천국 집이 있다는 것을 들었다. 그 구멍 옆에는 ‘몇 년 몇 월 며칠 주일 빠졌음’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고 했다. 그럼 그것을 어떻게 메울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에 그것은 전도로 메울 수 있다고 하셨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난 후 필자는 예배 시간을 더 귀히 여기게 되었다. 천국 집의 빈자리가 자기 집의 문제라면 주일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말씀을 사모하고 예배를 지키며 복음을 전하는 일이 우리의 영원한 삶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려면 천국 집만 잘 준비하면 되는가? 아니다. 천국에는 면류관(冕旒冠, crown)이라는 또 하나의 상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천국 집의 재료는 수고했던 한 번 한 번의 삶에서 재료가 올라가지만, 면류관은 주님을 위해 맡은 일을 끝까지 감당한 충성(忠誠, faithfulness)한 자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상을 가리킨다. 바울은 죽음을 앞두고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므로 자기는 의의 면류관(義의 冕旒冠, crown of righteousness)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딤후 4:7-8). 왜 그는 여러 가지 상들 가운데 바로 그 의의 면류관을 붙잡았는가? 그래서 이 시간에는 천국의 삶과 상을 이 땅에서 어떻게 준비하는지, 천국 집의 재료와 면류관이 어떻게 다른지, 바울의 삶을 따라 의의 면류관을 받을 길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천국의 통치와 성도의 상은 이 땅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천국은 근심과 슬픔과 아픔과 고통이 없는 나라다. 거기에는 사탄과 귀신도 없고 죄의 유혹도 없다. 그러나 그곳이 무엇이 없다는 것만으로 천국을 설명할 수는 없다. 천국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다스리시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선하고 인자하신 주님의 통치 아래 사는 것이 그 나라의 특징이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자기처럼 영광의 보좌에 앉을 권한을 이기는 자에게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계 3:21). 필자는 천국의 스물네 장로와 십사만 사천의 보좌를 보면서, 주님이 귀히 여기시는 이들에게 통치권을 나누어 주시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다.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이 모두가 똑같은 신분과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성도들은 보통은 자신이 천국에만 들어가기만 하면 모든 것이 잘 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필자가 살펴본 천국에서는 어떤 사람에게 집도 있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면류관도 있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영광스럽게 다스리는 지위까지 주어진 채 있었다. 그러나 천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집이 없이 천국의 변두리인 꽃밭에서 산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는 모두 왕 같은 제사장이니 천국에서도 똑같이 왕 노릇할 것’이라고 쉽게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이 땅에서부터 우리는 그 위치에 들어갈 합당한 삶을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천국에서의 나의 집과 나의 상과 나의 지위는 모두 다 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살 때 어떻게 믿고 섬겼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러한 준비는 내가 죽은 다음에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람이 죽어서 그 영혼이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 천국에서 건축 천사들이 짓던 천국 집도 마무리된다. 천국에 간 뒤에 뒤늦게 벽돌을 더 올리거나 집을 보수할 수는 없다. 면류관도 이 땅에서 살아낸 충성도에 따라 결정된다. 바울이나 베드로는 과연 나와 다른 존재였는가? 아니다.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들도 사람이었고 나도 사람이다. 그들은 순교했지만 우리는 그들보다 이 땅에서 더 오래 살 수도 있다. 그만큼 준비할 시간이 내게 주어졌는데 그 시간을 우리는 허투루 쓸 수가 없다.
그렇다. 내가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만으로 하늘에서 상이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다. 예배 한 번을 드려도 천국집을 짓는 재료가 올라가고, 찬송하고 기도해도 역시 올라간다. 그리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고 복음을 전하는 수고가 있다면 더더욱 천국 집이 아름답게 조성된다. 그러므로 자신의 신앙을 적당히 유지한 채 천국의 영광이 주어지기를 바라서는 아니 된다. 세상의 소식만 듣고 영혼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평소 때에 배우지 못한 성도는 무엇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이 세상을 살 수 있다. 사실 필자의 부모는 두 분 다 초등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자식들만큼은 배우게 하려고 학교에 보내 주셨다. 그러므로 영혼을 맡은 주의 종들은 자녀가 천국을 잘 준비하도록 가르쳐야 하고, 가르치지 못한다면 과외라도 받게 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필자는 '회개(悔改, repentance)와 천국복음'을 가르치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말하고 싶다. 못 배운 부모가 자녀의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면 더 배울 수 있도록 인도해주듯이, 주의 종들도 성도도 하여금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코로나 시기에 필자는 자신의 영혼을 깨우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그때부터 필자는 온 힘을 다하여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하고 있다.
3. 천국 집의 터와 규모는 어떻게 정해지며 부모의 기도는 어떤 영향을 주는가?
천국 집은 어디에 지어지는가?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천국은 스물네 마을로 나뉘어져 있고 각 사람은 그중에 한 마을에 마련된 집에서 산다.
먼저 우리가 천국에 가면, 열두 진주문들 중에 하나의 문을 통과하여 들어간다. 그러면 꽃밭이 펼쳐지고, 중심에 있는 시온산 쪽으로 갈수록 높이 올라간다. 그 한가운데 꼭대기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으며 높은 집일수록 산 위쪽에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천국 집의 위치와 크기에는 이 땅에서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가 반영된다. 따라서 넓고 아름다운 천국집을 갖게 되는 것은 지금 살아가는 나의 삶에서 비롯된다.
천국 집을 지으려면 첫째로, 집 터가 마련되어야 한다. 필자는 처음으로 예수를 믿고 오히려 부모님을 전도한 사람이다. 그런데 열심히 회개한 뒤 필자의 천국 집이 어떠한가를 보려고 했으나 처음에는 집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필자에게 귀신이 많아서 보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집을 지을 땅을 살펴보니 터는 있었지만 백 평이 채 되지 않았다. 필자는 주님을 위해 젊은 시절부터 목숨을 걸어 왔다고 여겼기에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아내는 필자보다 여섯 달 뒤 회개에 참여하여 천국 집을 보게 되었는데, 아내의 집터는 삼백 평이 넘었다. 필자의 아내는 3대째 믿는 신앙이다.
필자가 나중에 천국 상황을 살펴서 알게 된 사실은 부모의 신앙과 기도가 자녀의 집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었다. 아내는 삼 대째 믿는 가정에서 자랐고 필자는 부모가 믿지 않던 집에서 자랐다. 믿는 부모가 자녀를 위해 기도하고 헌신하면 그 자녀의 집을 지을 터가 일찍 마련되고 넓어질 수 있었다. 한나가 사무엘을 위해 기도했을 때 사무엘의 집터를 준비하는 천사들이 돌을 치우고 땅을 고르는 모습이 있었다. 자녀가 태어나기 전부터 기도의 손길이 그의 장래를 준비해주 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렇다. 그러므로 부모라면 자녀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런데 처음 본 필자의 집터가 백 평이 되지 않았지만, 회개하고 충성하자 그 이후 더 훨씬 넓어졌다.
둘째, 터가 마련되면 그 위에 집이 지어진다. 하나님은 예배와 기도와 수고로 올려 보낸 재료를 받아 천사들을 통해 집을 짓는다. 일생의 삶이 집의 모습으로 남는다. 이때 겉으로 큰 사역을 했는지보다 무엇을 위하여, 얼마나 성실하게 살았는지가 중요하다. 교회당을 지어 하나님께 바친 사람, 복음을 위해 자기 집을 내놓은 사람, 자녀를 훌륭한 주의 종으로 길러 낸 부모, 선교지에 가서 일생을 바친 사역자의 집이 높게 지어진 것을 보았다. 그 가운데 일곱 층이 넘는 집도 있었다.
반면 사람 눈에 작아 보이는 사역이 하늘에서도 작다고 단정할 수 없다. 필자는 시골에서 적은 수의 할머니 성도들을 돌보며 일평생 목회한 사역자를 보았다. 헌금이 넉넉하지 않은 작은 교회를 지키는 일은 쉽지 않다. 그가 일흔 살 가까이 되어 준비된 천국 집을 살펴보니 일곱 층이었다. 화려한 무대나 큰 숫자 없이도 하나님은 오랜 충성을 보신다. 부모의 기도가 집터를 준비하고, 본인의 믿음과 섬김이 그 집을 올린다. 지금 가진 환경을 핑계 삼지 말고 각자에게 맡겨진 자리에서 집을 지어야 한다.
4. 예배·기도·전도·섬김은 천국 집에 어떤 재료와 열매로 쌓이는가?
그런데 천국 집을 마련할 재료는 특별한 행사를 할 때만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도, 그리고 찬송과 기도 등을 포함한 교회에서 행했던 모든 섬김들이 천국집의 재료가 되어 올라가기 때문이다. 물론 주간에 모여 합심으로 나라와 민족과 교회를 중보할 때에도 천사가 그 수고의 재료를 가지고 올라간다. 복음을 위하여 물질을 드리는 일도, 길에서 한 사람에게 ‘예수 믿고 천국 갑시다’라고 말하는 일도 하늘에 기록되며 상이 된다. 무슨 큰일을 해야 비로소 기록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루를 어떻게 쓰느냐가 바로 천국 집의 벽과 정원에 그대로 쌓여 아름다운 천국 집과 정원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주일에 예배드리러 오는 성도들을 위하여 음식을 준비할 때에는 천국의 내 집 연못에 물고기 한 마리가 생긴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 예수님을 전하면 정원에 꽃 한 송이가 생겨난다. 그러므로 꼭 내가 전도한 사람이 교회에 출석해야 상을 받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전도를 받은 이가 실제로 교회에 출석하고 생명책에 기록되어 천국에 들어갈 사람이 많아지면, 그 열매에 면류관의 상도 뒤따른다. 내가 건넨 말 한마디도 결코 없어지지 않고 기록되어 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서두에서 천국 집에 구멍이 난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 보자. 주일예배를 비운 사람들은 자신의 천국집의 벽에 구멍이 난다. 그러나 전도로 그것을 메울 수도 있다. 필자는 이 이야기를 통하여 예배를 빠지는 일을 가볍게 여기지 않기를 강력하게 권고한다. 천국 집의 빈 공간은 우리가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복음을 전하며 살 때에 채워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시간을 귀히 여기고, 아직 살아 있을 때 삶의 방향을 돌려 천국 집을 잘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천국 집을 짓는 재료를 내가 천국에 올려 보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천국 집을 짓는 재료로 쓰이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랑과 자기 영광을 위해 행한 수고는 그 행위가 불을 지나며 타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집을 높이 올리는 것이 왜 어려운지 조사하다가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많은 일을 했다는 숫자만으로는 천국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솔로몬의 수고를 생각해 보라. 그러나 그가 자신의 영광을 위해 행한 일은 남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 내가 행한 행위가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한 것인지, 남에게 보이려는 마음으로 한 것인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눈에 보이는 큰 헌신도 그 동기가 잘못되었으며 천국 집의 재료로 남지 못한다.
그러므로 작은 일이라도 주님을 사랑함으로 행한 것이라면 그것은 소중한 것이다. 토요일에 미리 와서 교회 구석구석을 한 번 청소하는 일, 교회 식구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일, 지나가는 이에게 복음을 한마디 전하는 일도 귀중한 천국 재료가 된다. 그런데 한 번 행한 일과 일생 계속 행하는 일에는 천국 집과 면류관의 차이를 만든다. 그러나 집을 짓는 일을 시작조차 하지 않은 사람인데 그가 어느 날 천국에서 좋은 집을 받는 일은 결코 없다. 지금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기도와 물질과 시간으로 천국 집이 지어지고 있으니, 이 땅에서의 하루를 정말 귀중하게 써야 한다.
5. 천국 집을 짓는 일과 면류관을 받는 일은 무엇이 다른가?
천국에서 주시는 상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천국 집'이요 또 하나는 '면류관'이다. 천국 집은 우리가 행한 선한 수고가 재료가 되어 천국 집이 이루어진다. 면류관은 그 수고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특별히 기뻐하시는 오래된 충성과 풍성한 열매를 따라 주어지는 상이다. 그러므로 천국 집이 있다는 사실과 면류관을 쓴다는 것은 같은 말은 아니다. 내가 교회에 나와서 청소를 했다면 그 일이 집의 재료가 되어 올라갔다. 그러나 청소를 한 번 했다는 사실만으로 충성의 면류관을 받지는 못한다.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동안 맡은 청소를 끝까지 감당할 때에 충성의 면류관이 주어진다. 이 차이를 알아야 작은 수고도 귀히 여기면서 거기에서 멈추지 않을 수 있다.
필자가 본 천국 집의 경우, 모든 집의 1층에는 황금 탁자가 놓여 있고 그 위에 면류관이 놓여 있다. 1층의 벽에는 전도상, 봉사상, 구제상, 희생상, 사랑상, 인내상, 예배상, 기도상처럼 그 사람이 받은 상이 걸러져 있다. 그 상에 따르는 영광스러운 상품이 바로 황금 탁자 위에 올려놓인 면류관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스무 개가 넘는 면류관이 놓여 있기도 하였다. 그렇다. 천국집의 1층을 보면, 한 사람의 생애에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분명히 드러난다. 주님을 위하여 끝까지 산 날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이 거기에 전시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천국에서 성도들은 주님이 정하신 시간이 되면 예배의 자리인 영광의 광장으로 나아간다. 천국에서는 지상에서의 절기와 주일처럼,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려고 예복으로 갈아입고 영광의 광장 위쪽으로 올라간다. 그때 면류관을 쓰고 나오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왜냐하면 집의 재료가 되는 수고를 많이 한 사람이라도, 주님 앞에서 면류관의 상을 받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껄껄껄'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천국의 성도들이 하는 말이 ‘조금만 더 예배를 잘 드릴걸, 중보기도에 조금만 더 힘쓸걸’ 하는 아쉬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영원히 누릴 영광을 위해서 우리는 이 땅에서 준비를 소홀히 할 수 없다.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바울은 무엇이라 말했는가? 그들이야말로 '자기의 기쁨이요 자알이자 면류관'이라고 했다(빌 4:1). 또 그들이 자신의 쓸 것을 거듭 보내어 준 일에 대해,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했다(빌 4:15-18). 빌립보 교회는 한 번 돕고 끝내 버린 것이 아니라 복음의 시초부터 함께 끝까지 수고한 충성이 그들의 삶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주님의 일에 꾸준히 동참한 사람에게만 면류관이 주어지는 것이다. 천국에서는 이 땅에서 행한 전도의 열매와 기도와 섬김들이 빛이 난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일할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 사람을 기뻐하실 만큼 변함없이 주님을 섬기는 마음과 삶이 중요하다.
빌립보에서 자주 장사를 하던 루디아를 생각해 보라. 그는 장사해서 얻은 것을 바울의 사역과 복음을 위하여 기쁨으로 드렸다. 그리고 한 번의 호의로 끝내지 않고 바울 사역자를 계속해서 도우며 섬겼다. 필자는 루디아의 섬김에서 바울이 말한 향기로운 제물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본다(빌 4:18). 시작의 열심이 끝까지 이어질 때 그 사람의 일생이 면류관이 되는 것이다.
한편 면류관의 모습도 한 가지로만 고정되어 있지 않다. 면류관들이 많으면 예배드리러 가면서 그것을 겹쳐 쓴다. 그래도 하나도 무겁지 않다. 그러면 보석에서 빛나는 빛이 더 강력해진다. 면류관은 솜털같이 가벼웠다.
천국 집은 이 땅에서 행한 삶의 흔적들을 그대로 보여 주고, 면류관은 끝까지 충성한 삶에 대한 주님의 특별한 인정의 결과다. 고로 지금도 예배와 기도와 전도와 봉사를 행하고 있는 사람은 귀한 천국집의 재료를 지금도 올려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 길을 날마다 지속하여 선한 싸움을 마치고 믿음을 지킨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의로우신 재판장 앞에서 받을 상이 있는 것이다. 고로 일반적으로 천국 집을 준비하는 것보다 면류관을 쓰는 일이 더 어렵다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 작은 순종을 시작하고, 내일도 같은 길을 걷고, 주님이 부르실 때까지 그 길을 놓지 않아야 한다.

6. 바울은 왜 여러 면류관 가운데 의의 면류관을 자신의 상으로 말했는가?
이번에 전하는 말씀의 핵심은 바울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디모데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 있다. 이 편지는 주후 67년 무렵 두 번째 로마 감옥에 갇힌 상태로 쓴 바울의 편지로서 유언과 같은 말이다. 이때 편지를 받을 대상자인 디모데는 바울이 세운 에베소 교회에 파송한 일종의 목회자였다. 이때 바울은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날 시각이 가까웠다고 밝히면서 자기의 삶을 세 마디로 정리했다. 그것은 선한 싸움을 싸웠고, 달려갈 길을 마쳤고, 믿음을 지켰다는 것이다(딤후 4:6-7). 자신이 했던 일의 크기보다 먼저 삶의 끝까지 놓지 않고 달려온 믿음을 고백한 것이다.
딤후 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바울은 이어 의의 면류관이 자신을 위하여 예비되어 있으며,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 약속은 바울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열려 있다고 했다(딤후 4:8). 그렇다. 의의 면류관은 한두 번 뜨거웠다가 그친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이 아니다. 바울은 끝까지 싸우고 마치고 지킨 일생을 돌아보며 그 상을 말했다. 그러므로 나도 주님이 판단하실 그날을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야 한다.
딤후 4:8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그렇다면 왜 바울은 자기가 받을 많은 면류관으로서 의의 면류관을 언급했을까? 그는 주님의 일을 하느라 자신의 몸을 움직인 횟수를 말하지 않았다. 의로우신 재판장이 자신의 삶을 보시고 옳다고 인정하실지 아닐지를 바라보았다. 그는 언제나 자기에게 맡겨진 길을 끝까지 걷고 믿음을 버리지 않은 자로 서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면류관은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며 오늘도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모든 성도에게도 소망이 된다. 바울처럼 큰 선교의 업적을 남길 수 없다 할지라도 약속의 말씀 앞에서 우리 또한 물러설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으면 천국의 상을 준비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천국에만 들어가면 됐지 무슨 상이 필요하냐’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은 기도와 섬김과 전도와 희생에 마음을 쏟지 못하고, 맡은 일을 쉽게 내려놓고 만다. 그러나 주님은 행한 대로 갚으신다. 상의 약속을 알면 손해처럼 보이는 수고도 하늘을 바라보며 감당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자기 고백을 남기면서 선한 싸움과 믿음의 완주가 헛되지 않다고 들려주었다. 장차 의의 면류관을 주실 분이 의로우신 재판장이시기 때문이다.
이 편지 끝에서 바울은 이제 주께서 자신을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내시고 그분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실 것이라고 고백한다(딤후 4:18). 감옥과 죽음이 눈앞에 있어도 그의 시선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주의 나타나심과 천국을 바라보았다. 우리도 신앙생활의 마지막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세상에서 인정받고 편히 사는 일만 바라본다면 그날의 상을 생각하지 못한다. 필자는 사역자와 성도 모두가 바울의 고백을 자신의 장래로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7. 바울이 큰 집과 면류관을 받은 삶의 네 가지 특징은 무엇인가?
필자가 천국 집을 살펴볼 때에, 구약의 인물 가운데 가장 영광스러운 집과 많은 면류관을 받은 사람이 누군지를 알게 되었다. 그는 바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었다. 구약의 인물 가운데 모세가 이백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넌 일을 생각하면 모세가 상으로서는 첫째일 듯하지만,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아브라함이 첫째이고 모세가 그다음이었다. 신약에서는 한 번에 삼천 명, 또 오천 명에게 말씀을 전하고 병든 이를 일으킨 베드로가 첫째일 것 같지만,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며, 천국에서 가장 큰 집은 사도 바울의 집이었다. 베드로가 그다음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사람의 눈에 드러난 기적과 숫자만으로 하늘의 상을 측량하기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의 집은 멀리서도 알아볼 만큼 빛나는 큰 성과 같았다. 문 오른편에 그의 이름이 쓰여 있었고 수많은 천사들이 집 밖을 지키고 있었다. 필자가 살핀 바에 따르면, 집의 대지는 약 삼천 평 같아 보였고, 건평은 약 이천 평이었으며 천국집은 열여덟 층이나 되었다. 정원을 지나 집까지 한참 걸어가야 했고, 아이 같은 천사들과 거기에 찾아온 사람들로 인하여 활기가 있었다. 분수가 있는 연못이 스물네 개나 되었고 물고기와 나무와 숲도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았다. 연못으로 보면 모세의 집 안에는 연못이 열두 개 정도였다. 그리고 천국 성도들 가운데 십사만 사천에 든 성도들에게는 둘이나 셋, 많으면 다섯 개도 있었다. 이것은 성경 말씀이 아니다. 다만 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피며 본 바를 전하는 것이다.
특별히 사도 바울의 집에는 면류관도 많았고, 면류관에는 빛과 보석이 아주 특별했다. 바울이 얼마나 많은 전도의 열매와 상을 얻었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면류관들은 많으면 그것을 겹쳐서 하나로 합칠 때 그 빛에 일생의 수고가 드러나는 것이다. 필자가 사역을 위해 찾아온 목회자들을 살피며, 확인한 집터 가운데 백 평을 넘는 경우가 많지 않았기에, 삼천 평의 터는 더욱 놀라웠다. 그렇다면 바울에게 왜 그런 집과 면류관이 주어진 것일까? 필자는 그의 삶에서 네 가지를 붙잡았다. 그것은 재능이나 인기의 네 가지가 아니라 주님 앞에서 일생을 드린 네 가지 모습이다.
첫째, 바울은 자기가 좋아하고 추구하던 세상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그리스도를 얻는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는 원래 유대인 가운데 출세할 길을 바라며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다. 예수 믿는 사람을 붙잡아 가두려고 권한을 구하고 스데반이 죽는 자리에도 있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뒤에는 예전에 자기에게 유익하던 것을 해로 여기고 그리스도를 아는 일을 가장 귀히 여겼다(빌 3:7-8). 그렇다. 우리도 하늘의 것을 얻으려면 이 땅의 출세와 욕망을 첫자리에 두던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바울은 말로만 포기하지 않고 그 방향으로 끝까지 걸었다.
둘째, 바울은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완수하는 데 자신의 일생을 드렸기 때문이다. 그는 결혼하지 않았고 개인의 안락을 위해 집 한 칸 마련하는 일에 삶을 걸지 않았다. 바울의 독신은 그에게 주어진 특별한 길이었다. 결혼한 모든 사역자가 가정을 떠나야 한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그는 손으로 일한 것도 있지만 그것은 사치와 축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복음을 전할 길과 필요한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여러 사람의 집을 오가며 선교했고, 자기 몸을 편히 쉬게 하는 일보다 복음이 아직 전해지지 않은 곳으로 가는 일을 앞세웠다. 필자는 그가 땅에서 자기 집을 위해 살지 않았기에 천국에서 아름답고 큰 집을 받았다고 본다. 그는 땅의 장막 같은 삶 너머에 하나님이 마련하실 영원한 집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셋째, 바울은 목숨까지도 주님과 복음을 위해 드릴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복음을 전하다가 여러 차례 죽음의 문턱을 넘고 돌에 맞아 죽은 듯 쓰러지기도 했지만 다시 일어나 전했다. 그에게 자기 생명을 오래 붙드는 것보다 복음의 사명을 마치는 것이 더 중요했다. 필자는 이런 사람에게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진다고 본다. 그는 순교(殉敎, martyrdom)의 자리까지 주님을 따를 각오로 살았고, 주님을 부인해야만 편해지는 순간에도 믿음의 지조를 지켰다. 고로 그 길을 오늘의 사역자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주기철 목사님의 삶도 그러한 길을 걸어갔다. 일제강점기에 교단 총회가 신사참배를 국민의례라고 하던 때에 그는 우상숭배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 일로 잡혀가 고문당하고 몸이 쇠약해졌지만 천황 앞에 절하라는 요구를 따르지 않았다. 못을 박은 판 위를 걷게 하는 고통을 겪고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았다. 산정현 교회에서 전한 마지막 설교 ‘5종목의 나의 기원’(https://dongtanms.kr/faith_resources/145508 )에 담긴 일사각오의 마음이 절절히 느껴진다. 단 하나의 목숨이지만 그것을 주님께 드리는 것을 소원으로 삼았던 것이다. 성도가 주님께 충성하는 길에 고난이 닥쳐도 무엇을 붙들어야 할지 그의 삶이 묻고 있다.
그 설교 뒤에 성도들과 함께 찬송한 노래가 ‘이 세상 험하고’였다. 몸은 고문으로 쇠약해졌으나 주님을 향한 고백은 약해지지 않았다. 그때 그는 말했다. "소나무가 푸를 때 찍히고 백합화가 시들기 전에 꺾여도 주님께 드려진다면 그 삶이 귀하지 않겠습니까?" 필자는 그의 말을 마음에 새기고 새기려고 한다. 바울이 마지막 편지에서 자신의 달려갈 길을 마쳤다고 말한 것과 함께 놓고 이것을 읽으면, 면류관을 바라보는 믿음이 단지 상을 계산하는 마음이 아니라 주님을 끝까지 사랑하는 마음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바울은 주님을 위해 받은 고난과 환난과 핍박을 불평으로만 대하지 않고 감사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이전에 교회를 박해하던 죄인이었음을 잊지 않았고, 그럼에도 자신을 불러 주신 주님의 긍휼을 크게 여겼다. 그래서 생명이 여러 개라도 주님께 드리고 싶을 만큼 그 은혜를 귀하게 여겼다. 고난이 왔다고 사랑을 거두거나 사명을 내던지지 않았다. 그는 떠날 시각이 가까웠을 때에도 주님이 자기 곁에 서서 힘을 주셨다고 고백했다(딤후 4:16-18). 주님이 살리신 삶을 끝까지 주님께 드리겠다는 마음이 그의 네 번째 모습이다.
이 네 모습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세상의 유익을 내려놓았기에 사명을 첫자리에 둘 수 있었고,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려 했기에 생명의 위험도 지나갔다. 자신을 불러 주신 은혜를 기억했기에 그 고난을 견디면서도 믿음을 지켰다. 필자는 바울의 집과 면류관을 이야기할 때 건물의 층수만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층과 빛에 드러난 한 사람의 삶을 보라는 것이다. 우리는 바울과 똑같은 선교 여행을 할 수 없어도 그가 붙들었던 주님과 복음과 충성의 방향은 따라갈 수 있다.
8. 오늘의 사역자는 끝까지 충성하며 어떤 상을 준비해야 하는가?
오늘 우리가 바울에게서 배울 첫걸음은 지금 내게 맡겨진 일을 나도 소중히 하는 것이다. 천국 집의 재료를 올리는 일은 먼 나라에 선교사로 떠나야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예배에 참석하고, 말씀을 듣고, 교회를 청소하고, 음식 한 접시를 준비하고, 복음을 전하며, 그 일을 위해 물질과 시간을 드릴 수 있다. 그 한 번 한 번이 집의 재료가 된다. 그러나 그 수고를 잠깐 해 보고 그만두면 면류관에 이르는 충성을 배우지 못한다. 각자의 형편에서 시작한 선한 일을 주님이 부르실 때까지 끝까지 감당해야 한다.
사실 회개를 전하는 사역도 쉽지 않다. 사람을 돌아오게 하고, 죄를 자백하게 하며, 천국 성 안에 들어갈 길을 준비하도록 회개를 전하는 데에는 오해와 핍박이 따른다. 그러나 필자는 회개하지 않으면 성 밖에 머물 사람이었건만 회개하여 성 안에 들어가게 되는 일을 볼 때, 너무나 감격스러움을 느낀다. 이러한 자들은 천국 집이 지어지는 속도도 다르다. 그러므로 오늘날 주의 종들은 주님이 자신에게 맡겨 주신 일을 하다 어려움을 당해도 그 말씀을 바꾸지 말고 묵묵히 그 길을 걸어야 한다.
주기철 목사님에게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하여 고난의 길을 걸어가셨느냐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그때에 신사참배를 국민의례라고 한마디만 말하면 풀려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결코 믿음의 지조를 버리지 않았다. 바울에게도 세상에서 편안히 살 길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길을 내려놓고 주님을 택했기에 선한 싸움을 마쳤다고 말할 수 있다. 오늘 우리에게도 선택의 순간이 온다. 예배를 뒤로 미룰지, 성도를 위해 기도할지, 복음을 말할지, 침묵할지 결정해야 한다. 작은 선택이 모여 삶의 방향을 만들고, 그 방향을 끝까지 지킬 때 주님이 기뻐하시는 충성이 된다.
주님의 상은 사람의 박수로 대신할 수 없다. 어떤 집은 아직 주인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도 넓어지고 높아지는 것을 보았다. 충성이 더해지자 시온산 안쪽으로 집의 자리가 옮겨지는 모습도 보았다. 처음 필자에게 보였던 집터도 작은 것이 끝이 아니었던 것처럼, 우리 성도들의 남은 생애도 아직 열려 있다. 오늘 일찍이 시작한 일을 놓치지 말고, 작은 교회와 작은 구역과 한 영혼을 향한 섬김을 계속해야 한다. 주님은 그런 삶을 기억하시고 집과 면류관에 그 수고를 새기신다.
바울처럼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는 사람은 주님 앞에서 자기 삶이 의롭다고 인정받기를 구한다. 충성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전도의 상과 기쁨과 영광의 상을 말할 때에도 중심은 같다. 주님께서 ‘너는 내 기쁨’이라고 하실 만큼 끝까지 믿음을 지켰는가. 필자는 우리가 그 질문 앞에서 도망치지 않기를 바란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모르지만, 지금부터 천국 집을 세우고 주님이 기뻐하실 면류관을 준비할 수 있다. 자신의 생애를 주님께 드리는 일이 곧 영원한 미래를 준비하는 길이다.
9. 나오며
이번 시간에는 천국 집의 터와 재료, 끝까지 충성한 자에게 주어지는 면류관,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고 믿음의 길을 끝까지 걸어간 바울의 네 가지 삶을 살펴보았다. 예배와 기도, 전도와 섬김의 작은 수고는 오늘도 여전히 천국 집을 짓는 재료가 된다. 그리고 주님께 맡은 일을 죽을 때까지 신실하게 감당하는 충성은 면류관의 상으로 이어진다. 바울은 세상의 유익을 내려놓고 사명을 완수했으며, 생명까지 드릴 각오로 고난 중에도 주님의 은혜를 기억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곧 도래할 천국을 준비할 시간이다. 오늘도 주일예배를 귀히 여기고, 말씀을 사모하며, 복음을 전하고, 회개하며, 작은 섬김이지만 그것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리하여 나도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마치며 믿음을 지켜 의의 면류관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9월 23일(수) ·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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