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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론(230)] 아모스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9) 에돔의 남은 자를 통해 살펴보는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원대한 뜻의 비밀(04)(아모스9:11~12)

정보배 목사조회 5읽는 시간 약 34분

설교핵심

이 설교는 아모스서와 요한계시록의 예언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상속자가 되어 왕노릇할 자격을 얻는 방법을 구속사적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하는 자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며, 구약의 야곱처럼 기도로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들이 참된 이스라엘로서 천국의 영광을 누리게 됨을 밝힙니다.둘째로, 에서의 후예인 에돔처럼 형제의 고통을 방관하거나 미워하는 자는 결국 멸망당하게 되지만, 유다와 요셉, 그리고 다윗처럼 형제 사랑을 실천하고 용서와 섬김의 삶을 사는 자는 하나님께 귀히 쓰여 천국의 영원한 기업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

1다윗의 무너진 장막은 누구를 통해 세워지고 어디까지 확장되는가?2아모스 9장 12절의 "그들"은 누구이며, 왜 이스라엘이 곧 이기는 자인가?3구약은 왜 혈통과 할례를 따졌고, 지금은 왜 누구든지 될 수 있는가?4왜 하필 에돔의 남은 자이며, 에서가 비켜 간 땅에는 어떤 뜻이 담겼는가?5형제를 미워한 에돔은 무엇을 했고, 어떤 결말을 맞았는가?6유다와 요셉은 형제 사랑으로 어떻게 왕 노릇하는 자가 되었는가?7형제를 해치는 자와 섬기는 자는 천국에서 어떻게 갈리는가?
설교 본문 (암 9:11-12) ·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빼거나 더할 수 없다(마 5:18). 그런데 아모스 9장 11-12절은 A.D.49년 예루살렘 총회에서 주의 형제 야고보 장로가 인용할 때 히브리어 본문이 아니라 헬라어로 번역된 70인역(七十人譯, Septuagint)으로 인용되었고, 그 본문은 히브리어 본문과 달랐다(행 15:16-18). 일점일획도 바꿀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이 왜 번역되는 과정에서 달라질 수밖에 없었을까? 우리는 그 이유를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하고 지나갈 뻔하였다. 그러나 아모스 9장 11-12절을 통하여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야고보 장로가 그 말씀을 인용하여 들려주었으므로 그 계획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만일 이 두 절을 몰랐더라면 우리가 아모스서를 통해 들어 온 이 모든 내용을 알 수 있었을까? 이번 시간은 아모스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로는 아홉 번째 시간이고, 에돔의 남은 자를 통해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원대한 뜻을 살펴보는 네 번째 시간이다. 지난 시간까지 우리는 이방인도 하늘의 상속자(相續者, heir)가 될 수 있다는 소망을 확인하였다. 그렇다면 남은 질문은 이것이다. 누가 천국에서 상속자가 되고, 기업(基業, inheritance)을 차지하며, 성 밖에 나가 민족들 위에 왕 노릇 하는 자가 되는가?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다윗의 무너진 장막이 누구를 통해 다시 세워지는지와 아모스 9장 12절의 "그들"이 누구인지를 먼저 밝히고, 수많은 민족 가운데 하필 에돔의 남은 자가 기록된 이유와 유다·요셉·요나단의 이야기를 통하여, 천국에서 왕 노릇 할 자가 되는 두 가지 열쇠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다윗의 무너진 장막은 누구를 통해 세워지고 어디까지 확장되는가?

아모스 9장 11절은 "그 날에" 하나님께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실 것이라고 말씀한다. 야고보 장로는 그 말씀을 이렇게 인용하였다.

행 15:16-17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그렇다면 다시 세워질 장막(帳幕, tabernacle)은 무엇인가? 요한복음 1장 14절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말씀한다.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장막을 치신 것이다. 예수님은 걸어 다니는 인간 성막이셨다.

성막은 왜 만들었는가? 하나님께서 그 속에 들어와 계시려고 성막을 치게 하셨고, 그곳에서 속죄 제사를 드리게 하려고 성막을 만들게 하셨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의 몸으로 제사를 드리셨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히 6:20) 자기 몸을 속죄 제물로 바치셨을 뿐만 아니라, 그 속에 하나님께서 계셨다. 제사장과 제물과 성막이 모두 한 분 안에 있었던 것이다.

원래 이스라엘 백성은 장막을 치고 그곳에서 하나님과 함께하였다. 그러나 에스겔서를 보면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 버린다(겔 10:18-19, 11:23). 영광이 떠나자 예루살렘은 멸망하였고 백성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 그런데 에스겔은 다시 지어질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오는 장면도 보았다(겔 43:2-5). 그렇다면 그 영광이 들어갈 곳은 어디인가? 다시 지어질 성전은 일차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었다. 그다음에 이것이 교회로 확장되었고, 최종적으로는 새 예루살렘 성 안이 하나님의 영원한 장막이 된다. 고로 우리는 그 장막 안에까지 반드시 들어가야만 영원히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3. 아모스 9장 12절의 "그들"은 누구이며, 왜 이스라엘이 곧 이기는 자인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는 다윗의 왕권을 지닌 분이다. 그래서 12절은 "그들이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고 말씀한다. 기업으로 얻는다는 것은 왕 노릇 한다는 것이고, 다스린다는 것이다. 에돔의 남은 자와 모든 이방 민족을 다스리게 된다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누구인가? 본문의 흐름을 따라가 보면 그들은 이스라엘이다. 아모스는 북이스라엘에 관한 예언이지만 본문에는 '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고 그냥 이스라엘이라고 한다. 그런데 북이스라엘은 B.C.722년에 멸망하여 거의 흩어져 버렸고, 남유다만 남았다. 원래 이스라엘은 야곱에게서 출발하였다. 얍복 강에서 기도한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았기 때문이다(창 32:28).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왕들이 그의 허리에서 나올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창 35:11).

그렇다면 그 왕은 언제 나왔는가? 야곱의 후손에서 다윗 왕이 나왔고, 다윗 왕의 계보는 여호야긴 왕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여호야긴은 B.C.597년에 바벨론으로 끌려갔고(마 1:11-12), 포로에서 돌아온 뒤에는 다윗의 자손 가운데서 왕이 된 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그 뒤에 처음으로 왕이 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여기에도 엄청난 암시가 있었는데 우리는 몰랐던 것이다. 고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워지고, 그분은 왕으로 오셨으며, 다스리러 오신 분이다. 그리고 그 완전한 다스림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요한계시록 11장을 보자.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면 세상 나라가 끝나고, 예수님께서 영원히 다스리시는 때가 온다. 아모스 9장 11-12절이 완성될 때가 우리에게 오는 것이다.

계 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여기의 '나라'는 헬라어로 바실레이아(βασιλεία), 곧 왕국(王國, kingdom)이다. 세상 왕국이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왕국이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신다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왕 노릇은 누가 하는가? 예수님께서 하신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왕 노릇을 누구에게 주시는가? 이기는 자에게 주신다. 왕 노릇이란 통치하는 것이고, 철장 권세를 가지고 다스리는 것이다.

계 2:26-28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만국'이라는 말이 구약에도 나오고 신약에도 계속 나온다. 아모스 9장 12절은 이스라엘이 만국을 기업으로 얻는다고 하였고, 요한계시록은 이기는 자가 만국을 다스린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곧 이기는 자라는 의미를 모른다면 끝까지 성경을 풀 수 없다. 창세기 32장에서 얍복 나루의 야곱이 기도로 이스라엘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모르면, 이기는 자가 에돔의 남은 자와 모든 민족을 기업으로 차지하고 왕 노릇 한다는 아모스 9장 12절을 어떻게 풀겠는가?

이기는 자는 철장 권세를 받아 통치할 뿐 아니라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는다.

계 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천국에 가 보면 진짜 이기는 자는 14만 4천 명인데, 그들이 보좌에 앉아 있다. 하나님께서 보좌를 주시는 것이다. 필자는 천국에서 필자의 이름이 기록된 의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성경은 사실이었다. 우리가 영적 세계를 몰랐기 때문에 추상적인 이야기만 계속 들어 왔던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신앙이 얼마나 확고해지는가! 목표가 분명해진다. 늘 이것저것 섞어서 오리무중으로 아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 것 같기도 한 상태로 언제까지 지낼 것인가? 진리를 찾은 자는 그 목표가 점점 더 분명해진다. 이것이 진리를 찾은 자의 복이다.

4. 구약은 왜 혈통과 할례를 따졌고, 지금은 왜 누구든지 될 수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라가면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고전 3:16).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고, 교회가 장막이 되는 것이다. 장막이 교회를 통해서 확장되기 때문에, 오늘날 이기는 자가 유대인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이제는 누구든지 될 수 있다. 요엘서는 하나님께서 모든 육체에게 성령을 부어 주실 것이라고 하였고(욜 2:28),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셨으며,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었다(요 7:37-39). 그리고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욜 2:32).

고로 지금은 하나님의 일이 유대인을 통해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자기 마음에 품고,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원하셨던 일을 풀어 가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하여 역사하신다. 그 사람이 어디 출신이든, 남자든 여자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필자는 이것이 너무나 감사하다. 필자가 전도사가 되어 사역할 곳을 찾을 때의 일이다. 개척은 최후의 선택이었고, 좋은 교회에 부목사로 가서 훈련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원서를 냈는데 받아 주지 않았다. 첫째로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시느냐고 물었다. 농사를 지으신다고 했더니 교회는 다니시느냐고 물었고, 아직 다니지 않으신다고 하자 서류가 그대로 돌아왔다. 너는 여기에 올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다. 둘째로 출신이 어디냐고 물었다. 대답을 하자 그 지역과 우리 교회는 지역 정서가 달라서 올 수 없다고 하였다. 한 번이라도 불러서 설교를 해 보게 하고 지켜본 뒤에 떨어뜨렸다면 그 원인이 필자에게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접수 자체가 되지 않았다. 이것이 무엇인가?

그래서 필자는 우리 교회에서 사역할 사람은 교파를 초월하여 누구든지 다 오라고 한다. 그러나 이곳에서 쓰임받을 사람은 그 자격을 스스로 갖추어야 한다. 아버지 어머니가 장로·권사·목사라고 해서 세워지는 것도 아니고, 좋은 학벌을 가졌다고 세워지는 것도 아니다.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가능하다고 하셨다. 농사짓는 집안이어도 관계없다. 주님을 찾고 주님을 의지하여 주의 나라를 만들어 가려는 사람이라면 어떤 일을 하든지, 어떤 직업을 가졌든지, 남녀의 차별이 없다. 필자는 그렇게 본다. 그래서 필자는 조건을 보지 않으시는 주님이 너무나 감사하다.

그렇다면 구약에서는 왜 조건을 따졌는가? 아브라함의 혈통이어야 했고 할례를 받은 자여야 했다. 왜 그랬을까?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창 3:15). 만일 아무 여자나 쓰셨는데 그 속에 악한 영이 가득 들어 있다면, 예수님을 잉태하고 낳을 때 예수님 속에 악한 영이 들어갈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구별하고 또 구별하실 수밖에 없었고, 예수님의 탄생 때까지는 유대인들을 쓰실 수밖에 없었다.

유대인들이 그렇게 많은 죄를 지었는데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죽이지 않으신 이유는 무엇인가? 남은 자(remnant)를 만드신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야 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며 우상을 숭배하였으니 진작 없애 버리셨어야 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계속 남은 자로 살려 두셨다. 그렇게 예수님 때까지 왔는데, 하나님의 왕께서 자기 땅에 오셨으나 자기 백성은 영접하지 아니하였다(요 1:11). 그런 상황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같이 유대인들을 품으려 하셨지만(마 23:37), 그들은 결국 거절하고 예수님을 죽였다.

왜 죽였는가? 자기들의 이권 때문이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물으러 와야 하는데 예수님께로 가니 기분이 나빴다. 자기들이 최종적인 율법 해석자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사두개인과 대제사장들은 성전에서 짐승을 팔고 환전하여 돈을 남겨야 했는데, 예수님께서 채찍을 휘두르시며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으니(요 2:15-16; 마 21:13) 자기들의 돈벌이를 망가뜨리는 존재로 여겼다. 그래서 그들은 정치 세력과 야합하였다. 원수끼리 손을 잡고 예수님을 죽이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필자가 참 안타까운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3년 반이라는 그 혜택을 받았는데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차라리 나를 죽이시오. 이분은 죄가 없습니다"라고 말한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저분은 이단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입니다"라고 말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혜택을 받고도 자기 목숨이 위험해질 것 같으니 다 꽁무늬를 빼고 입을 다물었다. 그것이 유대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계속 유대인만 쓰시겠는가?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다(마 28:19). 아모스 9장 12절의 에돔의 남은 자와 만국이 여기서 모든 민족으로 나온다. 할렐루야! 유대인의 특권은 없어졌다. 유대인도 이제는 복음을 전해야 할 하나의 대상이요, 하나의 민족일 뿐이다. 제한이 철폐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상숭배에 찌들었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무 상관이 없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회개하여 악한 영을 내보내고 주님 앞에 충성한다면, 그 사람도 천국에 가서 상속자가 되고 왕 노릇 하는 자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지런히 살아야 한다. 육체를 가졌으니 열심히 일하는 것은 기본이다. 땀 흘린 자가 소득을 먹는다. 그러나 그 일의 바탕과 목표가 단지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사는 수준이어서는 안 된다.

5. 왜 하필 에돔의 남은 자이며, 에서가 비켜 간 땅에는 어떤 뜻이 담겼는가?

하나님께서는 블레셋의 남은 자, 모압의 남은 자, 암몬의 남은 자, 두로의 남은 자, 아람의 남은 자, 앗수르의 남은 자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왜 하필 에돔의 남은 자였는가? 원래는 에서가 이기는 자가 되었어야 했기 때문이다. 에서는 쌍둥이 형으로서 아버지의 기업을 물려받을 자로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그 복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런데 그 복을 가볍게 여겨 장자권(長子權, birthright)을 팔아 버렸다(창 25:33-34). 그래서 에돔이 주는 교훈이 있다. 에돔처럼 되면 다스리는 자가 아니라 다스림을 받는 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났을 때 받은 하늘의 복을 귀중하고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그것을 천하게 여기거나 개떡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예수를 믿는 것도 이 땅에서 다만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라면 언제까지 그렇게 살 것인가? 우리 영혼의 미래가 진짜 소중한 것이다. 야곱은 그 영적인 축복을 얼마나 받기 원했던지, 장자로 태어나고 싶어서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오려 하였다(창 25:26). 결국 형이 먼저 나왔지만, 야곱은 팥죽으로 형의 장자권을 샀고 어머니와 짜고 장자의 축복까지 받았다(창 27장). 형이 그를 죽이려 하자 외삼촌 집으로 피하여 20년을 지냈고(창 31:41), 다시 돌아올 때에도 형이 그를 죽이려 하여 둘은 원수지간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얍복 강에서 야곱의 기도를 들으시고 에서의 마음을 누그러뜨리셨다. 에서는 달려와서 야곱을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입을 맞추고 서로 울었다(창 33:4). 화해한 것이다. 에서는 야곱이 돌아오는 길을 호위해 주겠다고까지 하였다(창 33:12-15). 그 뒤 에서는 두 사람의 소유가 너무 많아 함께 거주할 수 없게 되자, 야곱을 떠나 세일 산으로 옮겨 갔다(창 36:6-8).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스스로 비켜 준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그 자리를 비켜 간 에서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하셨는가? 필자는 신명기를 읽으면서 왜 어떤 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고, 어떤 자는 몇 대 후에 들어올 수 있다고 하셨는지가 궁금하였다. 신명기 23장은 고환이 상한 자나 음경이 잘린 자, 사생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말씀한 뒤(신 23:1-2) 이렇게 말씀한다.

신 23:3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그런데 에돔에 대해서는 다르게 말씀하신다.

신 23:7-8 너는 에돔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그는 네 형제임이니라 애굽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네가 그의 땅에서 객이 되었음이니라 8 그들의 삼 대 후 자손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있느니라

이제 필자는 그 의미를 안다. 에서는 나중에 스스로 깨닫고 세일 산에 가서 살겠다며 순순히 비켜 주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에돔을 미워하지 말라, 그는 너의 형제다라고 하셨다. 그리고 야곱의 후손 이스라엘이 아무리 힘센 민족이 된다 할지라도 그 땅을 차지하지 못하게 하셨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에돔 족속이 사는 세일 지역을 지나갈 때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다.

신 2:5-6 그들과 다투지 말라 그들의 땅은 한 발자국도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세일 산을 에서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6 너희는 돈으로 그들에게서 양식을 사서 먹고 돈으로 그들에게서 물을 사서 마시라

물 한 모금도 반드시 사서 마셔야 하고, 양식도 반드시 사서 먹어야 하며, 그 땅의 어떤 것에도 손대지 말라는 것이었다. 왜 그런가? 그곳은 에서의 기업인데, 에서가 가나안 땅을 너희에게 양보하고 그곳으로 갔으니 그것을 함부로 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고로 에돔의 땅은 형제가 비켜 준 자리였고, 하나님께서는 그 양보를 기억하셨다.

6. 형제를 미워한 에돔은 무엇을 했고, 어떤 결말을 맞았는가?

그러나 에돔은 어떠하였는가? 앙금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 모세가 가데스에서 에돔 왕에게 사신을 보내어 왕의 큰길로만 지나가게 해 달라고 하였으나(민 20:14-17), 에돔 왕은 지나가지 못하리라, 칼을 들고 나아가 대적하겠다고 대답하였다(민 20:18). 그리고 많은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 강한 손으로 막았다(민 20:20).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왕의 큰길로 통과하지 못하고 에돔 땅을 돌아가야 했다. 호르 산에서 아론이 죽은 뒤, 길로 말미암아 마음이 상한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자 불뱀이 내려 많은 사람이 죽었다(민 21:4-6). 이스라엘은 그렇게 에돔 땅을 피하여 엘랏과 에시온게벨 곁의 아라바 길을 지나고(신 2:8), 세렛 시내를 건너(신 2:13) 모압 땅으로 올라가 여리고로 들어갈 준비를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에돔을 꼭 '형제'라고 부르신다.

옵 1:10 네가 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으로 말미암아 부끄러움을 당하고 영원히 멸절되리라

두 형제는 협력하였어야 했다. 차지할 기업이 서로 달랐으니, 에서가 차지할 기업과 야곱이 차지할 기업을 두고 서로 도왔어야 했다. 그런데 분명히 다른 장소에 살고 있었음에도 에돔 족속은 야곱에게 포학하게 행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에돔에 관하여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지켰으나, 에돔은 지키지 않았다.

그리고 B.C.586년에 남유다가 멸망하자 에돔은 어떻게 하였는가? 오바댜 1장 12-14절을 보면, 에돔은 형제의 날, 곧 그 재앙의 날에 방관하였다. 유다 자손이 패망하는 날에 기뻐하였다. 고소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고난의 날에 입을 크게 벌려 "잘됐다, 저것들이 망한다" 하며 떠들었다. 환난을 당하는 나라의 성문에 좋다고 들어갔고, 그 재물에 손을 대어 빼앗았다. 네거리에 서서 에돔 땅으로 도망하는 자들을 막아 버렸고, 그 남은 자를 원수인 바벨론에게 넘겨 버렸다.

시편 137편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유다 백성이 바벨론의 여러 강변에 앉아 시온을 기억하며 울던 그 상황을 회상하는 노래이다(시 137:1). 언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며 부르던 그 노래 속에 에돔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했는지가 기록되어 있다.

시 137:7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그들의 말이 헐어 버리라 헐어 버리라 그 기초까지 헐어 버리라 하였나이다

예루살렘을 싹 다 헐어 버려서 저들이 다 저주받게 하라는 것이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는 마음을 그렇게 드러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에서 결론을 이렇게 맺으신다. 말라기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는 계속 형제 이야기를 하신다.

말 1:2-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3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 4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역이라 할 것이요 여호와의 영원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

왜 하나님께서는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셨는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에돔은 계속 형제를 미워하였고, 야곱은 계속 품으려 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에돔이 다시 쌓아도 헐겠다고 하셨는가? 에돔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헐어 버리라, 헐어 버리라" 하였기 때문이다. 에서가 그렇게 계속 자기 형제를 미워하였으니 하나님께서 미워하지 않으실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바댜는 이렇게 끝맺는다.

옵 1:18 야곱 족속은 불이 될 것이며 요셉 족속은 불꽃이 될 것이요 에서 족속은 지푸라기가 될 것이라 그들이 그들 위에 붙어서 그들을 불사를 것인즉 에서 족속에 남은 자가 없으리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라

고로 형제를 미워한 에돔 족속은 결국 사라져 버렸다. 에돔의 남은 자를 기업으로 얻게 하겠다는 아모스의 말씀과, 에서 족속에 남은 자가 없으리라는 오바댜의 말씀은 형제를 미워하는 자의 끝이 어떠한지를 함께 보여 준다.

7. 유다와 요셉은 형제 사랑으로 어떻게 왕 노릇하는 자가 되었는가?

필자는 창세기 강의부터 지금까지 구약의 이기는 자들 가운데 왕 노릇 하는 자의 예표를 계속 다루어 왔다. 창세기에서 이기는 자는 야곱이었고, 그 야곱의 아들들 가운데 이기는 자의 꽃, 곧 왕 노릇 하는 자는 유다와 요셉이었다. 그렇다면 유다는 어떠하였는가?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형제들 가운데 시므온이 먼저 붙잡혔고(창 42:24), 요셉은 시므온을 살리려면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고 하였다. 그러자 아버지 야곱은 요셉도 없어졌는데 사랑하는 라헬의 아들 베냐민은 절대 내줄 수 없다고 하였다(창 42:36-38). 그때 유다가 나섰다.

창 43:9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베냐민은 자기가 책임지고 반드시 다시 데려오겠다는 것이다. 기근 속에서 온 가족이 살려면 애굽에 다녀와야 했고, 이미 붙들려 있는 형제 시므온도 살려서 데리고 와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셉의 은잔이 베냐민의 자루 속에서 발견되었고(창 44:12), 요셉은 베냐민을 종으로 붙잡아 두려 하였다. 베냐민을 데려오지 못하면 아버지께 영영히 죄짐을 지겠다고 한 유다에게는 큰일이 난 것이다. 그래서 유다는 자기가 아버지께 그 아이를 담보하였다고 말한 뒤(창 44:32) 이렇게 간청하였다.

창 44:33-34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34 그 아이가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어찌 내 아버지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버지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자기가 종이 될 테니 베냐민을 아버지께 돌려보내 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베냐민은 라헬의 아들이고 유다는 레아의 아들이다. 피를 나누기는 했지만 배다른 형제였다. 그런데도 유다는 라헬이 낳은 베냐민을 살리기 위해 자기를 영원히 종으로 내놓았다. 이렇게 형제 사랑을 실천하자 하나님께서 유다에게 복을 주셨다.

창 49:8-10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9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10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유다는 형제들의 찬송이 되어 영원히 찬송받을 자가 되었다. 그의 손이 잡을 원수의 목은 결국 사탄의 목일 것이다. 아버지의 아들들이 그 앞에 절한다는 것은 그가 왕 노릇 한다는 뜻이다. 유다는 지금은 사자 새끼이지만, 어린 사자는 장차 왕이 된다. 그리고 규가 실로, 곧 예수님께서 오시기까지 유다를 떠나지 않는다. 형제 사랑을 실천하였더니 왕 노릇 하는 자가 되었고, 이기는 자 가운데 꽃이 된 것이다.

두 번째 꽃은 요셉이다. 요셉은 실제로 왕 노릇을 하였다. 바로가 자기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창 41:42) 왕의 보좌 외에는 모든 일을 그에게 맡겼다. 그래서 요셉은 기근에 시달리는 온 세상 사람들을 살렸다. 그런데 요셉을 죽이려 했던 사람은 누구였는가? 그의 형제들이었다. 아버지가 요셉에게만 채색옷을 지어 입히고 편애하자 형들이 그를 미워하였다(창 37:3-4). 어느 날 야곱은 양을 치러 간 아들들의 안부를 알아 오라고 요셉을 보냈는데(창 37:14), 형들은 오늘이 저놈을 죽일 날이라며 그를 죽이려 하였다(창 37:20). 그때 맏아들 르우벤이 죽이지는 말자며 구덩이에 던져 두자고 하였다. 나중에 요셉을 살려 내려 한 것이니 참 잘한 일이었다(창 37:21-22). 그러나 구덩이에 그대로 두면 죽을 것을 알았던 유다는 미디안 상인들이 지나갈 때 요셉을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자고 하였다(창 37:25-28). 그것도 요셉을 살리려는 것이었다.

그렇게 요셉은 애굽으로 팔려 갔고, 훗날 야곱의 집 칠십 명이 모두 애굽에 들어가 고센 땅에서 살게 되었다(창 46:27). 그러다가 아버지가 죽었다. 그러자 형들은 간이 벌벌 떨렸다. 요셉이 살려 달라고 그렇게 애원했는데 우리가 죽이려 했으니,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우리 목이 달아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창세기 50장을 보면 참 불쌍하고 눈물 나는 이야기가 나온다. 형제들은 요셉이 혹시 자기들을 미워하여 그들이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였다(창 50:15).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형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고 명하셨다는 말을 전하며 용서를 빌었다(창 50:16-17).

요셉은 그 말을 들을 때 울었다. 형들이 그 일을 마음에 두고 잘못했다고 여기면서, 행여 악을 갚지 않을까 하여 그것을 잊지 못하고 이렇게 하는구나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형들이 친히 와서 요셉 앞에 엎드려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라고 하였다(창 50:18).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기에게 절하던 요셉의 꿈이(창 37:9) 또다시 이루어진 것이다.

요셉은 총리였으므로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나를 구덩이에 던져 죽이려 했으니 쓴맛을 보라며 감옥에 가두고 거꾸로 매달아 피가 거꾸로 솟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요셉은 이렇게 말하였다.

창 50:19-21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형제를 용서해야 한다. 형제가 내게 죄를 지었어도 용서해야 한다. 요셉은 형들을 미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과 그들의 자녀를 길러 주었다. 고로 유다와 요셉이 왕 노릇 하는 자가 된 것은 형제를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8. 형제를 해치는 자와 섬기는 자는 천국에서 어떻게 갈리는가?

형들은 요셉을 해하려 하였다. 그래서 형제를 해치는 사람은 천국에 갔을 때 절대로 귀한 직분과 아름다운 자리를 얻을 수 없다. 목사가 죄를 지었다고 해서 목사의 멱살을 잡고 끌어내리는 사람은 혹시 회개하여 천국에 들어간다 해도 결코 높은 자리에 올라가지 못한다. 옛날에는 영적 원리를 모르고 그저 목사를 대적하지 말라고만 가르쳤다. 그러나 이렇게 영적 원리를 설명해 주었어야 했다. 우리는 잘 모르고 얼핏 듣는 수준으로만 살았다. 그러다 보니 너도나도 왕 같은 제사장이라며(벧전 2:9) "너는 목사냐, 나는 장로다, 내가 대장이다" 하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이 땅에서 살아갈 각 사람의 지위와 신분을 정하신 것이 있다. 그것을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그것을 함부로 대한 사람들이 있다. 아론과 미리암이다. 아론은 모세보다 세 살 위의 형이고(출 7:7), 미리암은 모세의 누나이다(출 2:4, 7). 그러나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안배하신 것은 달랐다. 이 땅에 영이 오는 순서가 달랐을 뿐이다. 그것을 모르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파괴하자 미리암이 나병에 걸려 버렸다(민 12:10).

그들은 왜 모세를 비방하였는가?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기 때문이다(민 12:1). 성경은 십보라의 죽음을 기록하지 않지만, 필자는 모세가 아내 십보라가 죽은 뒤에 구스 여자를 취한 것으로 본다. 아브라함도 아내 사라가 죽은 뒤 그두라를 후처로 맞았다(창 25:1). 그런데 그두라에게서 미디안이 나왔고(창 25:2), 미디안은 훗날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원수가 되었다(민 25장; 삿 6장). 아브라함이 잘못한 것은 있으나 하나님께서 잘못하신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두라를 취한 일에 대하여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신다. 아내가 죽었으니 다른 아내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세도 아내가 죽었으니 구스 여자를 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일로 말미암아 엄청난 아픔과 서러움이 온다. 그래서 잘 선택해야 한다. 할 수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일을 빌미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까지 없는 것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왕 노릇 하려면 적극적으로는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다 왕 노릇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세워 주고 살리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소극적으로는 형제를 미워하거나 해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을 거꾸로 말하면, 형제를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하고 도와주라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에서 섬긴다는 사실 자체가 엄청난 복이다. 교회의 형제를 섬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와 피부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성씨가 다르고, 남녀가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기는 것, 이것이 바로 천국에서 왕 노릇 할 자의 아름다운 표상이다.

다윗도 형제 사랑을 실천하였다. 그 당시 왕이었던 사울은 아들 요나단에게 왕위를 넘겨주려 하였다(삼상 20:31). 그러나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실 것을 알아 버렸다(삼상 23:17). 필자는 요나단이 기도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고 본다. 사울은 "패역무도한 계집의 소생아" 하며(삼상 20:30) 네가 왕이 되어야 하는데 왜 다윗을 왕으로 세우려 하느냐고 화를 냈다. 그러나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였다(삼상 18:1). 하나님께서 세우신 영적 권위를 알아본 것이다. 그래서 다윗을 죽이려는 아버지를 오히려 잘못했다고 여겼고, 다윗을 죽이라는데도 화살을 쏘아 신호를 보내며 아버지가 너를 죽이려는 것이 진짜이니 빨리 도망하라고 알려 주었다(삼상 20:35-42). 그렇게 다윗을 살려 주면서, 네가 왕이 되거든 내 자손에게 인자함을 베풀어 달라고 부탁하였다(삼상 20:14-15). 천국에 가 보니 요나단은 상당히 높은 지위에 있었다. 그 아버지는 그렇지 못했지만, 요나단은 엄청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다윗이 왕이 되었다. 왕이 되어 맨 처음 한 일이 무엇이었는가? 사울의 집에 남은 사람을 찾으라는 것이었다(삼하 9:1). 그렇게 해서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았는데, 그는 다리를 절었다. 사울과 요나단이 죽은 소식이 전해졌을 때 다섯 살이었던 그를 유모가 안고 급히 도망하다가 떨어뜨렸기 때문이다(삼하 4:4). 다윗은 므비보셋을 아들처럼 여겨 죽을 때까지 왕의 상에서 함께 먹게 하였다(삼하 9:7, 13). 므비보셋이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하자(삼하 9:8), 다윗의 마음은 이러하였다. 네 아버지가 나를 목숨처럼 사랑하였고, 나는 네 아버지의 목숨값으로 산 것인데 내가 어찌 그 사랑을 잊겠느냐. 내가 너를 돌봐 주리니 걱정하지 말라. 얼마나 멋진 이야기인가! 이것이 형제 사랑이다. 그러니 다윗은 천국에서도 왕 노릇 하는 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에돔은 어떠하였는가? 처음에는 둘의 사이가 좋지 않았으나 화해를 하였다. 땅도 나누었다. 아버지 이삭이 죽었을 때에는 에서와 야곱이 함께 와서 장사를 잘 치렀다(창 35:29). 그 뒤로는 각자 자기 땅에서 잘 살면 되었다. 그런데 에돔은 유다가 멸망하는 것을 그렇게 기뻐하며 포학을 행하였고, 그들이 고통당하는 것을 아주 즐거워하였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에서 족속에 남은 자가 없게 하리라는 말씀이다. 고로 형제를 사랑한 유다와 요셉과 요나단과 다윗은 왕 노릇 하는 자가 되었고, 형제를 미워한 에돔은 사라져 버렸다.

9. 나오며

그렇다면 천국에서 누가 상속자가 되고, 기업을 차지하며, 왕 노릇 하는 자가 되는가? 그 답은 두 가지이다. 첫째, 이스라엘이 되어야 한다. 곧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기는 자에게 주님께서 철장 권세를 주시고 보좌에 함께 앉게 하신다. 둘째, 형제를 미워하거나 해해서는 안 된다. 곧 형제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형제 사랑을 실천해야 하늘나라에 들어갔을 때 이기는 자의 자리에 머무를 수 있다. 이 형제 사랑을 신약에서 예수님과 사도들이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는 다음 시간에 살펴보고자 한다. 그 안에도 얼마나 가슴 절절한 사연이 있는지 모른다.

구약 시대에 나타난 이러한 형제 사랑이 오늘 우리 교회의 지체들을 섬기는 것으로 나타날 때, 우리는 천국에서 면류관을 쓰고 자기 집과 땅을 기업으로 물려받는 아름다운 존재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 있을 때 형제의 아픔과 고통을 돌아보아야 한다.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고, 그들을 격려해 주고, 그들을 세워 주어야 한다. 교회에 찾아오는 새로운 식구들과 예수를 믿으러 오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겨야 하며, 주의 종들을 섬겨야 한다. 형제 사랑을 가슴에 명심하여, 우리 모두가 천국에서 왕 노릇 하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6년 11월 06일(금) ·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