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론(134)] 다윗의 아들 솔로몬(12) 예수 그리스도의 8가지 신분(06) 신부를 사랑한 신랑(아2:3~5)

이 설교는 아가서를 단순한 남녀의 연가로 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영적 연합을 풀어낸 심오한 신학적 강론입니다. 정보배 목사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관계를 통해 그리스도의 성육신적 찾아오심과 죄인인 교회를 신부로 삼아가는 구속사적 경륜을 모형론적 관점에서 상세히 설명합니다. 특히 신부가 정결한 백합화에서 시작하여 원수를 이기는 전사로, 더 나아가 다른 영혼을 돌보는 신랑의 동역자로 성숙해가는 단계를 강조하며 성도의 사명을 일깨웁니다. 결과적으로 이 설교는 아가서를 성도가 천국 왕의 짝으로서 합당한 인격과 실력을 갖추기 위한 천국 왕의 신부 수업 교과서라고 정의하며 신앙의 성숙을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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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 슬라이드 241. 들어가며
아가서는 성경 가운데서도 매우 특이한 책이다. 이 책에는 “하나님”, “여호와”, “기도”, “회개”, “찬양” 같은 직접적인 신앙 용어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겉으로만 읽으면 청춘 남녀의 사랑 노래처럼 보인다. 실제로 아가서는 신랑과 신부가 서로를 향하여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사랑을 고백하며, 향품과 포도원과 동산과 사과나무와 백합화와 몰약과 포도주를 말한다. 그러므로 믿음의 눈이 열리지 않은 채 이 책을 읽으면, 이것은 단지 세속적인 사랑의 노래요 연애시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겉만 보아서는 안 된다. 구약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책이다. 주님께서는 친히 성경이 자신에 대하여 증언한다고 말씀하셨고, 부활하신 후에는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기록된 자신에 관한 것을 제자들에게 풀어 주셨다(요 5:39, 눅 24:44).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눅 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 원리를 붙들고 아가서를 읽으면 놀라운 세계가 열린다. 솔로몬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다. 그는 다윗의 아들로서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술람미 여인은 단순한 시골 처녀가 아니다. 그녀는 신랑 되신 그리스도께서 찾으시는 잃어버린 신부, 곧 교회를 예표한다. 아가서의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죄인을 구출하기 위해 내려오신 왕의 사랑이며, 자기 피를 포도주처럼 쏟아 신부를 살리려는 사랑이며, 마침내 그 신부를 왕궁으로 데려가 왕의 동역자로 세우려는 사랑이다.
사도 바울은 남편과 아내의 연합을 말하면서, 그것이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큰 비밀이라고 해석하였다(엡 5:31-32). 그러므로 아가서의 신랑과 신부도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 안에서 읽을 때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다.
엡 5:31-32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이번 본문은 아가서 2장 3절에서 5절이다. 여기서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을 “나무들의 숲 가운데 사과나무”와 같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가 자신을 포도주의 집으로 인도하였고, 그의 사랑이 자기 위에 깃발이라고 말한다. 이 짧은 고백 속에는 신랑이신 그리스도께서 누구시며, 신부를 위해 무엇을 하시며, 그 신부를 장차 어떤 존재로 세우려 하시는지가 압축되어 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신랑이신 그리스도께서 왜 잃어버린 신부를 찾아오셨으며, 그 신부를 어떤 존재로 세워 가시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아가서는 왜 천국 왕의 신부수업 교과서인가?
아가서는 신앙 용어가 거의 나오지 않는데도 정경 안에 들어왔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직접적인 교리 문장으로만 자신의 뜻을 드러내지 않으신다. 때로는 인물과 사건과 제도와 성막과 제사와 왕권과 결혼의 그림자를 통하여 장차 오실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을 보여 주신다. 아가서가 바로 그러한 책이다.
모형론적 성경해석은 구약의 인물과 사건과 사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해석하는 방식이다. 유월절 어린양은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광야의 반석도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성막도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마찬가지로 솔로몬은 다윗의 아들로서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특히 솔로몬은 평화의 왕이요 지혜의 왕이요 성전 건축자였다. 이 세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깊이 연결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로 원수를 이기시고 평화를 이루셨으며, 하나님의 지혜로 사탄을 멸하셨고, 성령을 보내어 교회를 성전으로 세우셨다.
그러므로 솔로몬이 쓴 아가서는 단순한 궁중 연애시가 아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왕이라면, 아가서는 물질적 성전 너머에 있는 영적 성전, 곧 교회가 어떻게 산출되고 어떻게 신부로 준비되는지를 보여 주는 책이다. 예루살렘 성전은 돌과 금과 나무로 지어졌지만, 신약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와 생명과 성령으로 세워진다. 이 교회가 장차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들어갈 신부다.
아가서의 신랑은 왕이다. 그는 부족함이 없는 자다. 왕비도 있고 후궁도 있고 시녀들도 있다. 그런데도 그는 바알하몬 포도원까지 내려가 한 여인을 찾는다. 이것이 아가서의 비밀이다. 신랑에게 부족함이 있어서가 아니라, 신랑에게는 반드시 찾아야 할 “단 하나의 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랑은 그 짝을 찾아내어 사랑하고, 위험한 포도원에서 구출하고, 왕궁으로 데려오고, 자기 동산에서 함께 일할 동역자로 세운다.
이런 의미에서 아가서는 천국 왕의 신부수업 교과서다. 신부수업이란 단지 사랑받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신부수업은 왕의 마음을 알고, 왕의 고난을 이해하고, 왕의 피의 사랑을 받아들이며, 왕의 전쟁에 동참하고, 왕의 동산에서 또 다른 신부를 산출하는 일까지 배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가서를 읽는 성도는 “나는 예수 믿었으니 천국에만 들어가면 된다”는 낮은 생각에 머물면 안 된다. 왕이 신부를 부른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아가서 8장 6절의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스올같이 잔인한 질투로 표현된다. 여기서 “여호와의 불”로 번역된 표현은 원문상 최상급의 의미를 가진 강렬한 불꽃으로 볼 수 있다. 그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죽음도 이기는 사랑이다.
아 8:6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가장 맹렬한 불꽃과 같으니라
신랑의 사랑은 신부를 향한 소유욕이 아니라 구원과 성숙과 동역을 향한 거룩한 사랑이다. 그 사랑을 알 때 아가서는 육체적 사랑의 노래에서 천국 왕의 신부수업 교과서로 열린다.
3. 왜 솔로몬은 바알하몬 포도원까지 내려갔는가?
솔로몬은 왕궁에 있었다. 왕에게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는 평화의 왕이었고 지혜의 왕이었다. 왕비가 60명, 후궁이 80명, 시녀들이 무수하였다. 그런데도 그는 바알하몬 포도원까지 내려갔다. 이 장면은 단순한 농장 시찰로 보아서는 안 된다. 왕이 내려간 깊은 이유는 자신의 잃어버린 짝을 찾기 위함이었다.
아가서 6장 9절은 이 비밀을 직접적으로 보여 준다.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을 향하여 “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라고 고백한다. 여기서 “하나”는 히브리어로 에하드의 의미를 가진다. 에하드는 고립된 하나가 아니라 연합된 하나다.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루는 그 하나다. 그러므로 술람미 여인은 많은 여자 중 한 명이 아니라, 신랑이 찾던 단 하나의 짝이다.
아 6:9 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로구나 그는 그의 어머니의 외딸이요 그를 낳은 자가 귀중하게 여기는 자로구나 여자들이 그를 보고 복된 자라 하고 왕비들과 후궁들도 그를 칭찬하는구나
솔로몬이 바알하몬 포도원으로 내려간 것은 왕궁 안에 사랑의 대상이 없어서가 아니다. 왕궁 안에는 많은 여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왕의 동역자가 될 여인은 없었다. 왕과 함께 포도원을 알고, 양떼를 알고, 광야의 두려움을 알고, 사자굴과 표범산의 위험을 알고, 여우가 포도원을 허는 현실을 아는 여인이 필요했다. 신부는 왕궁의 장식물이 아니라 왕의 마음과 사역을 함께 감당할 짝이어야 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떠올리게 한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늘에 부족함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분은 영광 가운데 계셨고, 천사들의 찬양을 받으셨으며, 만물의 주인이셨다. 그런데도 그분은 죄와 귀신과 사망과 저주가 가득한 이 세상으로 내려오셨다. 왜 내려오셨는가? 잃어버린 신부를 찾기 위해서다. 자기 생명을 나누어 받을 짝을 얻기 위해서다. 사탄과 귀신들에게 억압당하던 사람들을 건져 새 예루살렘의 신부로 세우기 위해서다.
술람미 여인은 바알하몬 포도원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일은 자유로운 사명이 아니라 억압된 노동에 가까웠다. 그녀는 자신의 포도원을 지키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이는 인간이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자기 힘으로 감당하지 못한 상태를 보여 준다. 악한 영들이 인간을 종처럼 부리고, 인간은 자기 포도원을 지킬 힘이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아 1:6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그러므로 솔로몬의 내려옴은 그리스도의 찾아오심을 예표한다. 신랑은 높은 왕궁에 머물며 신부가 스스로 올라오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신부가 있는 곳까지 내려갔다. 그것이 은혜다. 그것이 사랑이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경륜이다.
4. 술람미는 왜 신랑을 사과나무로 보았는가?
아가서 2장 3절에서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을 보며 이렇게 고백한다.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여기서 “나의 사랑하는 자”는 히브리어 도드다. 도드는 여자가 남자를 향하여 부르는 사랑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신부가 신랑을 향하여 한 고백이다.
아 2:3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열매는 내 입에 달았도다
왜 그녀는 신랑을 사과나무로 보았는가? 아가서에는 많은 나무들이 나온다. 포도나무도 있고 석류나무도 있으며 무화과나무도 있고 고벨화나무와 유향나무와 계수나무와 몰약나무도 있다. 그런데 그녀는 신랑을 사과나무로 본다. 여기에는 깊은 영적 의미가 있다.
사과나무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타푸아흐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말은 숨쉬다, 향기를 내다, 생명의 기운을 연상시키는 의미와 연결하여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아가서의 사과나무는 단순한 과일나무가 아니라 생명나무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창세기에서 생명나무는 에덴동산 중앙에 있었다. 사람은 그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하나님의 생명 안에 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사람은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에서 쫓겨났다.
창 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그런데 술람미는 신랑을 사과나무로 본다. 이것은 그녀가 신랑 안에서 잃어버린 생명의 근원을 본 것이다. 신랑은 숲의 많은 나무들 가운데 특별한 나무다. 그 나무는 그늘을 준다. 그 나무는 열매를 준다. 그 열매는 입에 달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명과 안식과 말씀의 달콤함을 보여 준다.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고, 참포도나무라고 하셨으며, 길과 진리와 생명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신랑이 사과나무 같다는 고백은 그리스도께서 신부에게 생명을 공급하시는 분이라는 고백이다.
요 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 15: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또한 아가서 8장 5절은 사과나무 아래에서 일어난 과거의 일을 암시한다. “사과나무 아래에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는 말은 신랑과 신부의 관계가 우연한 만남이 아니라 생명나무의 근원과 연결된 관계임을 보여 준다.
아 8:5 그의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가 너로 말미암아 네 어머니가 고생한 곳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 곳 사과나무 아래에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
신부는 신랑의 그늘 아래 앉아 기뻐한다. 이것은 피곤한 인생이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을 얻는 것이다. 신부는 그의 열매가 입에 달다고 고백한다. 이것은 말씀이 꿀보다 달고, 생명이 영혼을 살리며, 그리스도의 공급이 세상 어떤 즐거움보다 더 깊은 기쁨을 준다는 뜻이다.
5. 포도주의 집과 사랑의 깃발은 무엇을 뜻하는가?
솔로몬은 술람미를 “잔칫집”으로 데려갔다. 그러나 원문의 의미를 살피면 이것은 단순한 잔칫집이라기보다 야인 바이트, 곧 포도주의 집으로 이해할 수 있다. 포도주의 집은 포도가 눌리고 짜여 포도주가 되는 장소다. 그러므로 이곳은 신랑이 신부에게 자기 사랑의 본질을 보여 주는 자리다.
아 2:4 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칫집에 들어갔으니 그 사랑은 내 위에 깃발이로구나
포도주는 피를 상징한다. 포도가 으깨어지고 짓눌려 포도주가 되듯이,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몸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고 피를 흘리셨다. 신랑은 신부를 포도주의 집으로 데려가 자신이 그녀를 위해 어떤 사랑을 할 것인지를 보여 준다. 그것은 말뿐인 사랑이 아니라 피 흘림의 사랑이다. 신부를 얻기 위해 목숨을 내어놓는 사랑이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에서 잔을 주시며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다(마 26:27-28). 포도주의 집은 이 피의 언약을 예표한다.
마 26:27-28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런데 신랑은 포도주의 집에서 사랑의 깃발도 보여 준다. 깃발은 소속과 승리와 전쟁을 의미한다. 사랑은 단순히 감정이 아니라 깃발이다. 신랑의 사랑은 신부 위에 꽂힌다. 이것은 “너는 내 것이다”라는 소속의 표시이며, 동시에 “너는 원수의 영토에서도 승리할 자다”라는 승리의 표시다.
아가서의 신랑은 신부에게 두 가지를 동시에 보여 준다. 하나는 피 흘리는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원수의 영토 위에 꽂힐 승리의 깃발이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12장 11절의 원리와도 연결된다. 성도들은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 이긴다. 피는 속죄를 이루고, 증언은 깃발을 세운다.
계 12: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포도주의 집은 신부에게 십자가의 비밀을 가르치는 장소다. 신부는 거기서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임을 알 뿐 아니라, 그 사랑이 원수를 이기는 전쟁의 깃발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신부를 위로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사랑은 신부를 전사로 세운다.
6. 왜 신부는 포도원에서 왕궁으로 옮겨져야 했는가?
솔로몬은 술람미를 포도원에 그대로 두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왕궁으로 데려오려 했다. 그 이유는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그녀는 오빠들에게 노동을 착취당하고 있었다. 아가서 1장 6절에서 그녀는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다”고 말한다. 여기서 오빠들은 단순한 혈육으로만 볼 수 없다. 모형론적으로 보면, 이는 인간을 억압하고 자기 일에 종처럼 부리는 타락한 영들을 예표한다. 그녀는 포도원지기였지만 자기 포도원조차 지키지 못했다.
아 1:6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둘째, 그녀는 바위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숨어 있었다. 이것은 그녀가 위험 가운데 있었음을 보여 준다. 비둘기는 순결한 새이지만, 포식자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바위틈에 숨어야 한다. 신부는 순결을 지키고 있었지만 두려움과 위협 속에 있었다.
아 2:14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내가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셋째, 그녀가 있던 곳은 사자굴과 표범산이었다. 아가서 4장 8절은 신랑이 신부에게 레바논에서,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들의 굴과 표범들의 산에서 내려오라고 말한다. 사자와 표범은 포악하고 빠르며 사람을 해치는 짐승이다. 성경의 상징 세계에서 이것은 악한 권세와 적그리스도적 세력을 떠올리게 한다.
아 4:8 내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들의 굴들과 표범들의 산들에서 내려오너라
넷째, 그녀 혼자서는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들을 잡을 수 없었다. 포도원에 꽃이 피었는데 여우들이 들어와 포도원을 허문다. 이것은 열매가 맺히기 직전에 들어와 사명을 망가뜨리는 작은 악한 영들의 역사를 보여 준다. 신부는 포도원을 맡았지만, 여우를 잡을 힘이 없었다.
아 2:15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들을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그러므로 왕은 그녀를 데려와야 했다. 왕궁으로 데려온다는 것은 단지 편안하게 살게 한다는 뜻이 아니다. 왕의 보호 안으로 옮기는 것이며, 왕의 훈련 안으로 들이는 것이며, 왕의 사역을 함께 감당할 자로 세우기 위한 과정이다. 구원은 위험한 포도원에서 건져지는 것으로 시작되지만, 구원의 목적은 왕궁에서 놀고먹는 것이 아니다. 왕과 함께 다스리고 왕과 함께 싸우고 왕과 함께 또 다른 신부를 산출하는 데 있다.
7. 왕은 신부를 어떤 전사로 세우려 했는가?
솔로몬은 술람미를 데려오기 위해 자기 가마를 보냈다. 그 가마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다. 왕이 신부를 맞이하기 위해 보내는 영광의 수단이다. 그 가마 주변에는 이스라엘 용사 60명이 둘러섰다. 그들은 칼을 잡고 전쟁에 능숙한 자들이었다. 밤의 두려움 때문에 각기 허리에 칼을 찼다.
아 3:7-8 볼지어다 솔로몬의 가마라 이스라엘 용사 중 육십 명이 그녀를 둘러쌌는데 그들은 다 칼을 잡고 전쟁에 능숙한 사람들이라 밤의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각기 그의 허리에 칼을 찼느니라
이것은 신부가 왕에게로 가는 길이 단순한 꽃길만은 아님을 말해 준다. 밤의 두려움이 있다. 영적 원수들이 있다. 그러나 왕은 신부를 홀로 두지 않는다. 왕은 자기 용사들을 보내고, 가마를 보내며, 신부를 안전하게 인도한다. 이 장면은 성도가 천국으로 들어가는 길에서도 주님의 보호와 천사의 호위가 있음을 보여 준다.
하지만 왕은 신부를 영원히 보호받는 연약한 자로만 두지 않는다. 신부는 왕궁에 들어온 뒤에도 성장해야 한다. 아가서 5장에서 그녀는 신랑을 잃어버리는 경험을 한다. 신랑은 밤이슬을 맞고 돌아와 문을 두드리며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녀는 처음에 문을 열지 않는다. 이미 옷을 벗었고 발을 씻었으니 다시 더럽힐 수 없다고 핑계를 댄다. 신부는 왕궁의 안락함에 젖어 신랑의 마음을 놓치고 있었다.
아 5:2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어 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 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그런데 신랑의 손에서 몰약이 떨어진다. 몰약은 죽음과 희생의 향품이다. 신부는 신랑이 밖에서 무엇을 하고 왔는지를 뒤늦게 깨닫는다. 그래서 밤길로 나가 신랑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순찰자들에게 맞고 상처를 입으며 겉옷을 빼앗긴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두려움 때문에 숨지 않는다. 신랑을 찾기 위해 밤을 통과한다.
이 과정을 지난 뒤 신랑은 그녀를 향해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당당함은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다. 그것은 원수에게 두려움을 주는 위엄이다. 신부는 이제 바위틈에 숨어 있던 비둘기에서,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은 전사로 성장한다.
아 6:4 내 사랑아 너는 디르사 같이 어여쁘고 예루살렘 같이 곱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하구나
아 6:10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이 여자가 누구인가
이것이 신부의 두 번째 단계다. 첫째 단계는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은 신부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되고 순결을 지키는 단계다. 둘째 단계는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꽂는 전사가 되는 것이다. 신부는 사랑받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왕의 권세를 받아 싸우는 자가 되어야 한다. 믿음은 단지 구원받았다는 안도감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왕의 사랑을 힘입어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꽂는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8. 신부는 왜 또 다른 신부를 양육해야 하는가?
솔로몬이 술람미를 왕궁으로 데려온 이유는 그녀를 구중궁궐에 가두어 두기 위함이 아니었다. 처음에 그녀는 왕궁에서 신랑의 사랑만 받기를 기대했을 수 있다. 그러나 신랑의 마음은 더 넓었다. 그는 신혼의 밤에도 밖에 있었다. 그의 머리에는 이슬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했다. 신랑은 어디에 있었는가?
아가서 6장 2절에서 그 답이 나온다. 신랑은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향나무의 화단에 이르러 동산 가운데에서 양떼를 치고 백합화를 줍고 있었다. 여기서 백합화는 단순한 꽃이 아니다. 아가서의 흐름에서 백합화는 가시나무 가운데 피어난 신부, 곧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된 성도를 상징한다. 꺾어진 백합화는 피 흘린 순교자와 고난받는 성도를 떠올리게 한다. 신랑은 지금도 자기 동산에서 양떼를 먹이고, 피 흘린 백합화들을 거두고, 또 다른 신부들을 돌보고 계신다.
아 6:2-3 내 사랑하는 자가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향나무의 화단에 이르러서 동산 가운데에서 양 떼를 치고 백합화를 줍는구나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으며 그가 백합화들 가운데에서 그 양 떼를 치는구나
이것을 깨닫는 순간 신부의 시야가 바뀐다. 신랑은 나만 사랑하기 위해 존재하는 분이 아니다. 신랑은 지금도 양떼를 먹이시고, 또 다른 신부들을 찾고, 고난받는 자들을 위로하고, 순교자들을 맞이하신다. 그러므로 신부가 성숙하면 신랑의 마음에 동참해야 한다. 신부는 신랑의 사랑을 받는 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신랑이 하는 일을 함께해야 한다.
아가서 7장 10절에서 13절은 성숙한 신부의 고백을 보여 준다. 그녀는 이제 신랑에게 함께 들로 가자고 말한다.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퍼졌는지, 석류꽃이 피었는지 보자고 말한다. 이것은 그녀가 왕의 동산과 포도원 사역에 동참하려 한다는 뜻이다.
아 7:10-13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내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 우리가 일찍이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퍼졌는지 석류꽃이 피었는지 보자 거기에서 내가 내 사랑을 네게 주리라
이것이 신부의 세 번째 단계다. 첫째는 백합화 같은 신부다. 둘째는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꽂는 전사다. 셋째는 또 다른 신부를 산출하고 양육하는 신부다. 왕의 신부가 되었다면 왕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왕의 마음은 아직도 바알하몬 포도원에서 고생하는 다른 술람미들을 향해 있다. 왕의 마음은 아직도 여우들에게 포도원을 빼앗긴 자들을 향해 있다. 왕의 마음은 아직도 양떼를 먹이고 백합화를 거두는 일에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를 더 붙들어야 한다. 신부의 성장은 한 번의 감정적 감동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술람미가 처음부터 깃발을 세운 군대 같았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처음에는 햇볕에 그을린 포도원지기였고, 자기 포도원을 지키지 못한 자였으며, 바위틈에 숨어 있던 비둘기였다. 그러나 신랑의 사랑을 받고, 포도주의 집에서 사랑의 깃발을 보고, 왕의 가마에 실려 왕궁으로 옮겨지고, 밤에 신랑을 찾아 나서는 과정을 통과하면서 점차 강한 신부로 빚어졌다. 그러므로 성도의 신앙도 한순간의 고백으로 끝나지 않고, 회개와 말씀과 영적 전쟁과 양육의 과정을 통과하면서 신부다운 신부로 성숙해야 한다.
또한 신부가 다른 신부를 양육한다는 것은 단순히 사람을 많이 모으는 일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신랑이 어떤 분인지, 왜 피 흘리셨는지, 왜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꽂아야 하는지, 왜 천국 왕의 동산에 들어가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일이다. 그러므로 양육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신랑의 마음을 전수하는 일이다. 신부가 신랑의 마음을 모르면 다른 신부를 낳을 수 없다. 신부가 포도주의 집의 비밀을 모르면 피의 사랑을 전할 수 없고, 신부가 여우를 이긴 경험이 없으면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꽂는 법을 가르칠 수 없다.
그러므로 오늘 성도는 자신만 천국에 들어가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나를 구원하신 신랑의 목적을 알아야 한다. 주님이 나를 신부로 부르신 것은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이지만, 동시에 나를 통해 또 다른 신부를 얻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신부는 신랑의 동역자가 되어야 한다. 양떼를 먹이고, 여우를 잡고,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꽂고, 또 다른 신부를 세우는 일에 참여해야 한다.
9. 나오며
이번 시간에는 아가서 2장 3절에서 5절을 중심으로 신부를 사랑한 신랑의 목적을 살펴보았다. 아가서는 신앙 용어가 거의 나오지 않지만,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을 가장 진하게 보여 주는 천국 왕의 신부수업 교과서다. 솔로몬으로 예표된 그리스도는 왕궁에 부족함이 있어서가 아니라 잃어버린 단 하나의 짝을 찾기 위해 바알하몬 포도원까지 내려오셨다.
신랑은 신부를 보자마자 자기 짝임을 알아보았다. 신부도 신랑을 보며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다고 고백하였다. 그 사과나무는 생명나무의 그림자요, 그 그늘은 그리스도 안의 안식이며, 그 열매는 말씀과 생명의 달콤함이다. 신랑은 그녀를 포도주의 집으로 인도하여 자기 사랑이 피 흘림의 사랑이며 원수의 영토에 꽂히는 깃발임을 보여 주셨다.
그러나 신랑의 사랑은 신부를 편하게 쉬게 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그녀를 위험한 포도원에서 구출하셨고, 왕의 가마와 60용사를 보내 왕궁으로 데려오셨다. 그리고 그녀를 바위틈에 숨어 있던 비둘기에서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은 전사로 세워 가셨다. 나아가 그녀가 신랑의 동산에서 양떼를 먹이고 백합화를 줍는 신랑의 일을 깨닫고, 또 다른 신부를 산출하고 양육하는 동역자로 성숙하기를 원하셨다.
그러므로 오늘의 성도는 자신이 왜 그리스도의 신부로 부름받았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구원받았다는 사실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되어 백합화 같은 신부가 되어야 하고, 예수 이름의 권세로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꽂는 전사가 되어야 하며, 다른 사람도 천국 왕의 신부로 준비되도록 돕는 양육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신랑이 신부를 사랑하여 왕궁으로 데려온 목적이다.
신부는 신랑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사랑을 받은 신부는 신랑의 마음도 알아야 한다. 신랑의 마음은 아직도 포도원에 있고, 양떼에게 있으며, 꺾어진 백합화들에게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왕궁의 편안함만 바라보지 말고, 신랑이 밤이슬을 맞으며 다녀오신 동산의 일을 함께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분이 하시는 일을 우리도 감당해야 한다.
그리하여 신랑의 피와 사랑으로 정결하게 되고,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꽂으며, 또 다른 신부를 양육하여 천국 왕의 동산에 함께 들어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6월 28일(일) · 정보배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