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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10. 05. (월)2026년 교회표어 「시대적인 사명완성을 위해 성전을 짓는 해」 (역대상 28장 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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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론(204)] 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1) 모든 만민에게 아무런 조건없이 부어주시는 성령 시대를 예고하다(요엘2:28~32)

요엘 2:28~32정보배 목사2026-10-04(일)조회 5읽는 시간 약 25분

설교핵심

이 설교는 구약의 소선지서인 요엘서를 중심으로 하나님이 모든 인류에게 차별 없이 성령을 부어주시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포하는 설교입니다. 과거 구약 시대에는 일부 지도자들에게만 성령이 제한적으로 임하였으나, 요엘의 예언대로 오순절 성건강림 사건을 통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고 보편적인 성령과 은사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영적 혼란과 환난의 시대 속에서 성도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형식적인 회개가 아닌 마음을 찢는 진정한 회개가 필수적임을 강조합니다. 결국 이 설교는 성도들이 조건 없는 성령의 은혜를 힘입어 가정과 나라를 살리는 영적 군사로 굳건히 서야 한다는 영적 각성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

1요엘서는 왜 요아스 왕 초기의 위기 속에서 선포된 말씀으로 보는가?2네 종류의 황충 재앙은 남유다에 무엇을 경고하며 어떤 회개를 요구하는가?3회개하는 백성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네 가지 회복은 무엇인가?4하나님은 왜 소수 지도자에게만 임하던 성령을 모든 육체에 부으시는가?5요엘의 성령 약속은 오순절부터 사마리아와 이방인에게 어떻게 성취되었는가?6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받는다는 약속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7말세의 성도는 회개하고 은사를 받아 가정과 나라를 어떻게 살려야 하는가?
설교 본문 기독론(204) 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1) 모든 만민에게 아무런 조건없이 부어주시는 성령 시대를 예고하다 (욜 2:28-32) ·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요엘서는 세 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소선지서다. 그러나 짧다고 해서 그 말씀이 가벼운 것은 아니다. 구약의 열일곱 예언서 가운데 열두 소선지서의 두 번째에 놓인 요엘서는 오늘의 교회가 자주 부르는 찬송과 자주 인용하는 말씀이 나온다. “마지막 날에 내가 나의 영으로”라고 노래하며 자녀의 예언, 젊은이의 환상, 늙은이의 꿈을 말할 때 우리는 요엘을 부르고 있다. 또한 예수님 찬양의 4절에 나오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로다”라는 가사도 요엘의 약속을 노래하는 곡이다. 그 구절이 어디에 있었는지 주소를 잘 몰라도 우리는 이미 요엘의 말씀을 가까이해 온 것이다.

앞선 호세아의 이름에는 '구원'이라는 뜻이 있고, 여호수아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을 가진. 이어지는 요엘의 이름은 “여호와가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을 가졌다. 그의 아버지 이름은 단지 브두엘이라고 나올 뿐이다(욜 1:1). 하나님께서는 이 짧은 3장의 책에 '재앙의 경고'(욜 1:1-2:17)와 아물러 '회복의 약속'(욜 2:18-3:21)을 함께 담으셨다. 메뚜기 떼가 모든 소출을 먹어 치우는 시대에 백성에게는 무엇이 필요했는가? 옷만 찢는 외형이 아니라 마음을 찢는 회개(悔改, repentance)가 필요했고, 소수의 지도자만이 아니라 만민에게 부어 주실 하나님의 영이 필요했다.

요엘 선지자는 특별히 모든 육체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전한다. 나아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救援, salvation)을 얻으리라고 선포한다(욜 2:28-32). 그리하여 구약의 특정 지도자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임하던 성령의 시대가 종료되고, 구원의 문이 민족과 신분의 경계를 넘어 열릴 것을 내다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이후에 성령이 오심으로 실제 역사가 되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요엘이 본 남유다의 위기와 회개의 요청, 모든 만민에게 성령을 부으시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시대가 어떻게 열렸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요엘서는 왜 요아스 왕 초기의 위기 속에서 선포된 말씀으로 보는가?

요엘서는 기록 연대를 쉽게 알려 주지 않는다. 첫 절은 브두엘의 아들 요엘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다고 할 뿐이다(욜 1:1). 이사야서나 다른 예언서처럼 어느 왕 때의 말씀인지 밝히지 않는다. 책을 끝까지 읽어도 왕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반면 제사장과 장로, 농부, 신랑과 신부, 어린아이와 노인은 등장한다. 이 침묵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어느 때에 왕의 존재가 이토록 희미했는가?

필자는 요엘이 남유다 제8대 왕 요아스가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 초기, 대략 주전 835년에서 830년 사이에 활동했을 것으로 본다. 이는 요엘서에 연도가 적혀 있어서 내리는 단정이 아니라, 왕이 드러나지 않고 제사장의 역할이 두드러지는 상황을 남유다의 역사와 대조한 추정이다. 요아스는 일곱 살에 왕이 되었고 사십 년을 다스렸다. 그가 처음 왕위에 올랐을 때 나라를 실제로 붙들고 이끈 이는 대제사장(大祭司長, high priest) 여호야다였다(왕하 11:21; 대하 24:1-2).

어떻게 어린 요아스가 이토록 위태로운 왕좌에 앉게 되었는가? 그 배후에는 여러 대에 걸친 잘못된 결합이 있었다. 증조부 여호사밧은 북이스라엘의 아합과 가까워졌고, 그 아들 여호람은 아합과 이세벨의 딸 아달랴와 혼인했다. 그 뒤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으나 북이스라엘 왕 요람과 가까이 지내다가 예후가 아합의 집을 치던 때에 함께 죽었다.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가 바알을 섬기는 왕가와 손잡자, 그 영향은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고 자손의 왕궁에까지 들어왔다(대하 18:1; 22:1-9).

아하시야가 죽자 그의 어머니 아달랴는 남유다의 왕위를 차지하려고 왕의 자손들을 죽였다. 살아남은 아이가 바로 요아스였다. 그의 고모 여호세바가 아이를 숨겼고, 여호야다는 그를 지키며 때를 기다렸다. 아달랴가 약 칠 년 동안 나라를 다스린 뒤 여호야다는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고 아달랴를 제거했다(왕하 11:1-16). 일곱 살 왕에게 국정을 맡길 수 없었으니, 여호야다가 백성을 여호와께 돌아오게 하고 성전을 바로 세우는 일을 이끌었다. 요아스의 통치 초기에 잠시 회복이 일어난 까닭도 이 신실한 제사장의 지도력에 있었다.

그러나 여호야다가 죽은 뒤 요아스는 다시 우상숭배의 길로 기울었다.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왕과 백성의 죄를 꾸짖었지만, 왕은 그를 성전 뜰에서 돌로 쳐 죽이게 했다(대하 24:17-22). 예수님께서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죽임당한 스가랴의 피를 말씀하신 장면도 떠올리게 된다(마 23:35). 자기 생명을 지켜 준 집안의 아들에게까지 돌을 던지는 나라가 되었으니, 그 영적 형편이 어떠했겠는가?

요엘서에 왕보다 제사장들이 앞에 나오고, 백성이 굵은 베를 입고 밤을 새우며 울라는 명령을 듣는 것은 이처럼 흔들리는 나라의 모습과 맞닿아 있다(욜 1:13-14). 책에 아수르나 바벨론이라는 나라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두로와 시돈, 애굽과 에돔 같은 주변 나라가 등장한다(욜 3:4, 19). 이 여러 단서를 따라 읽으면 요아스 왕 초기라는 추정은 설득력을 얻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연대를 확정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이 사라질 때 왕과 백성이 함께 길을 잃는다는 경고를 듣는 일이다.

3. 네 종류의 황충 재앙은 남유다에 무엇을 경고하며 어떤 회개를 요구하는가?

요엘이 바라본 현장은 황충의 재앙이었다. 한 종류가 지나가면 끝나는 재앙이 아니었다. 팟종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늣이 먹고, 늣이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다. 마지막 남은 것까지 사라졌다(욜 1:4).

욜 1:4 팟종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늣이 먹고 늣이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나무와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가 상하고 밭의 소출이 끊어지자 백성의 먹을 것만 없어지는 게 아니었다. 하나님의 전에 드릴 소제와 전제도 끊어졌다(욜 1:7-10, 13). 농부는 곡식이 없어서 울고, 제사장은 제단에서 드릴 것이 없어서 운다. 신랑과 신부가 있어도 기쁨을 누리기 어려우며, 노인부터 아이까지 먹을 것이 끊긴다. 자연 재앙이 신앙생활과 일상의 바닥을 함께 흔든 것이다.

요엘은 이 재앙을 보고 장차 닥칠 더 큰 일을 내다본다. 한 무리가 휩쓸고 간 다음 다른 무리가 또 들어오는 모습은 남유다를 삼키러 올 강한 민족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욜 2:2-3). 필자는 그 뒤에 일어날 아수르와 바벨론 같은 세력이 이 나라를 압박하고 무너뜨릴 일까지 이 경고에 겹쳐 본다. 요엘은 단순히 곤충 이름 네 개를 기록한 것이 아니다. 나라에 하나님의 사람이 사라지고 우상이 자리를 차지하면, 지킬 사람이 없는 땅을 외부 세력이 차례로 먹어 치울 수 있음을 깨우친다. 자연의 황충과 나라를 치는 군대가 겹쳐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백성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시는가?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며,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께 돌아오라고 하신다(욜 2:12). 겉옷을 찢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마음을 찢어야 한다. 재앙을 무서워하는 순간의 몸짓만으로는 우상숭배와 하나님을 떠난 삶을 바꿀 수 없다. 돌아가야 할 대상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다(욜 2:13).

욜 2: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찌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이 말씀에는 경고와 소망이 함께 있다. 하나님은 죄를 눈감아 주시는 분이 아니지만, 돌이키는 자를 맞아 주시는 은혜롭고 자비로우신 분이다. 백성의 지도자 한 사람만 회개하면 된다는 뜻도 아니다. 제사장들이 제단 앞에서 울고 백성이 함께 모여야 한다. 요엘은 노인과 어린아이, 신랑과 신부까지 모으라고 한다(욜 2:15-17). 온 나라가 흔들리는 때에는 온 나라가 하나님께 돌아와야 한다. 지금의 어려움을 겪고서도 마음을 돌이키지 않으면 다음에는 더 큰 황충이 찾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4. 회개하는 백성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네 가지 회복은 무엇인가?

요엘의 말씀은 심판의 예고에서 멈추지 않는다. 마음을 찢고 돌아오는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을 회복해 주실지를 선포한다. 그 약속은 네 갈래로 펼쳐진다. 하나는 빼앗긴 소출을 돌려주시는 것이고, 둘은 모든 육체에게 하나님의 신을 부어 주시는 것이며, 셋은 백성을 친 이방 민족을 심판하시는 것이고, 넷은 하나님께서 시온에 영원히 거하시는 것이다. 심판의 이유가 죄라면 회복의 길은 하나님께 돌아오는 회개다.

첫째, 먹을 것과 제사의 재료가 회복된다. 곡식이 다시 나고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친다(욜 2:19, 24). 하나님은 메뚜기와 늣과 황충과 팟종이가 먹어 버린 햇수대로 갚아 주겠다고 하신다. 황충의 재앙은 하루아침에 지나간 불편이 아니었다. 여러 해의 삶을 갉아먹은 손실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로 그 햇수를 언급하신다(욜 2:25).

욜 2:25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늣과 황충과 팟종이의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주리니

둘째, 하나님의 신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신다. 소출만 회복되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다시 사라진다면, 같은 위기가 반복될 수 있다. 그러므로 주님은 백성의 안쪽을 바꾸신다. 한 명의 지도자가 쓰러질 때 나라 전체가 함께 쓰러지지 않도록, 아들과 딸과 늙은이와 젊은이, 남종과 여종에게까지 성령을 부으시겠다고 하신다(욜 2:28-29). 이 약속이 요엘서의 중심이다.

셋째, 하나님께서 남유다를 침탈하는 이방 민족을 가만두지 않으신다. 요엘 3장은 여러 민족을 모아 여호사밧 골짜기에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보여 준다(욜 3:2, 12-14). 회개하는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회복은 그 백성을 치고 흩어 버린 나라들에 대한 공의로운 판결과 이어진다. 황충처럼 백성의 삶을 뜯어 먹는 자들이 끝없이 마음대로 행동할 수는 없다.

넷째, 하나님께서 시온에 돌아와 영원히 거하신다. 회복의 절정은 곡식의 양이나 적군의 패배만이 아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시온에 거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예루살렘은 거룩하게 된다(욜 3:17, 21). 농사의 회복, 사람들의 영적 회복, 원수에 대한 심판, 하나님의 영원한 임재는 각각 다른 약속이면서 한 방향을 가리킨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백성으로 다시 세우시는 것이다.

5. 하나님은 왜 소수 지도자에게만 임하던 성령을 모든 육체에 부으시는가?

구약 시대에도 하나님의 성령은 역사하셨다. 그러나 요엘의 약속처럼 모든 믿는 자에게 한꺼번에 부어 주시던 시대는 아니었다. 모세와 함께한 칠십 장로가 예언했고, 브살렐과 오홀리압은 하나님의 신으로 지혜를 받아 성막의 공교한 일을 맡았다(민 11:25; 출 31:2-6). 사사 시대에는 옷니엘, 기드온, 삼손 같은 사람에게 성령이 임해 백성을 이끌었다(삿 3:10; 6:34; 14:6). 사울에게도 영이 임하여 예언하게 하셨고, 다윗에게도 임하셨다(삼상 10:10; 16:13). 선지자와 제사장들 가운데도 말씀을 맡아 전한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사라지면 어찌 되는가? 요아스 왕을 붙들던 여호야다가 죽자 왕은 다시 우상숭배로 돌아갔다. 스가랴의 바른 책망마저 돌로 막아 버렸다. 지도자 하나에게만 영적 분별이 있고 백성은 그를 바라보기만 한다면, 그가 떠난 뒤 나라를 지킬 사람이 없다. 왕이 흐려지면 백성이 함께 흐려진다. 재앙이 와도 그 까닭을 깨닫고 회개를 외칠 사람이 없어진다. 요엘의 시대를 떠올릴 때 가장 두려운 사실은 이것이다.

이제 하나님께서 다른 약속을 주신다. “그 후에” 자신의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시겠다고 하신다. 성령 강림(聖靈降臨, descent of the Holy Spirit)이 몇 사람의 직책에 묶이지 않는 시대가 온다. 자녀는 장래 일을 말하고 늙은이는 꿈을 꾸며 젊은이는 이상을 본다. 이어 남종과 여종에게도 부어 주신다(욜 2:28-29).

욜 2:28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여기서 “장래 일을 말한다”는 개역한글의 표현을 미래를 맞히는 일로만 좁혀서는 안 된다. 예언(豫言, prophecy)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가 이 약속을 인용할 때에는 자녀들이 “예언할 것이요”라고 선포한다(행 2:17). 꿈과 환상과 예언은 하나님께서 필요에 따라 백성에게 주시는 은사(恩賜, spiritual gifts)다. 모두가 똑같은 은사를 가져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안에 다양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말한다.

누가 이 약속에서 제외되는가? 아들과 딸 사이에 구별이 없고, 젊은이와 늙은이 사이에 구별이 없으며, 자유로운 사람과 종 사이에도 구별이 없다. 할례를 받았는가, 어느 혈통에서 태어났는가, 나이가 몇인가 하는 조건으로 성령의 약속을 막지 않으신다. 그렇다고 구약에 이방인의 구원이 전혀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욥과 기생 라합과 모압 여인 룻처럼 언약 백성 바깥에 있었어도 하나님께 속한 이들이 있었다. 다만 구약의 기록은 주로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성령을 받은 이들도 소수였다. 요엘의 예언은 그 한계를 넘어설 시대를 예고한다.

왜 모든 육체에게 부으시는가? 한 사람이 무너져도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기도할 수 있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버지가 깨어나면 가정이 살아나고, 자녀가 깨어나면 부모를 위해 기도할 수 있으며, 나라의 지도자가 흐려도 성령 받은 백성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부르짖을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람 한 명이 없어서 나라가 황충에게 먹히는 일이 더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시는 것이다. 우리도 그 성령을 받아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6. 요엘의 성령 약속은 오순절부터 사마리아와 이방인에게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요엘의 약속은 말로만 남아 있지 않았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復活, resurrection)하신 뒤 높임을 받으셨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예루살렘에 머물며 기도했다(행 1:4-5, 12-14).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사람이 약 백이십 명이었고, 그들은 열흘가량 성령을 기다렸다. 바울이 전한 부활의 목격자는 오백여 형제였는데(고전 15:6), 그 많은 사람 가운데 약 백이십 명이 함께 기도하며 기다린 것이다. 필자는 그 자리에 가족의 권유를 받아 마지못해 앉았던 사람도 있었을지 모른다고 상상해 본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공동체 위에 성령을 부으셨다는 사실이다.

오순절에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위에 임했고, 모인 사람들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다(행 2:1-4). 그들은 대부분 갈릴리에서 예수님을 따랐던 유대인들이었다. 예루살렘에 절기를 지키러 온 여러 지역 사람들은 각자의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듣고 놀랐다. 어떤 이는 술에 취했다고 비웃었다. 베드로는 지금이 오전 아홉 시 무렵이니 술 취한 것이 아니며,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행 2:15-18).

행 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베드로는 요엘의 “그 후에”를 인용하며 “말세에”라고 선포한다(행 2:17). 자녀와 젊은이와 늙은이가 예언하고 환상을 보고 꿈을 꾸는 성령의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그 시작은 예수님과 분리된 사건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살리시고 높이신 예수께서 아버지께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 제자들에게 부어 주셨다(행 2:32-33). 요엘이 내다본 하나님의 약속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현실이 되었다.

그렇다고 오순절에 모든 일이 끝난 것은 아니다. 주님은 성령을 받으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다(행 1:8). 그런데 처음에는 예루살렘 교회에 많은 사람이 모여 함께 지내는 데 머물렀다. 박해가 일어나 사람들이 흩어지자 일곱 집사 중 빌립이 사마리아로 가서 복음을 전했다. 귀신이 떠나고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다(행 8:4-8).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내려와 안수했을 때 사마리아 사람들도 성령을 받았다(행 8:14-17). 유대인들이 멀리하던 혼혈의 백성도 약속 밖에 있지 않았다.

그다음 문이 이방인에게 열렸다. 이탈리아 군대의 백부장 고넬료에게 천사가 찾아갔고, 베드로는 보자기에 담긴 여러 짐승을 보는 환상을 통해 이방인에게도 가야 함을 깨달았다(행 10:1-16, 28).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는 바로 그때, 말씀을 듣던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내렸다. 안수식이 끝나기를 기다린 것도 아니었다. 이방인들이 방언을 말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소리를 듣고 함께 온 유대인 신자들이 놀랐다(행 10:44-46).

행 10:44 베드로가 이 말 할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사마리아를 지나 고넬료의 집까지 간 복음은 바울을 통하여 더 넓게 퍼졌다. 에베소에서 바울이 제자들에게 안수하자 그들에게 성령이 임했고 방언과 예언이 나타났다(행 19:1-7). 예루살렘의 유대인에게서 시작된 일이 사마리아 사람과 이방인에게로 이어진 것이다. 이후 복음이 로마와 유럽으로 전해지고, 서바나와 포르투갈과 영국을 거쳐 미국에도 전파되었다. 1774년 무렵 독립을 향해 가던 미국을 지나 1885년에는 우리나라에까지 복음이 이르렀다. 먼 남유다에서 요엘을 통하여 선포된 약속의 은혜를 이제 우리도 누리고 있다.

7.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받는다는 약속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요엘의 예언은 성령 부어 주심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되는 징조를 말한 뒤,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선포한다(욜 2:30-32). “누구든지”가 중요하다. 구원을 찾는 사람의 혈통과 성별과 사회적 지위가 문을 가로막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자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의 길이 열린다.

욜 2: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오순절 설교에서 베드로는 바로 이 말씀을 인용했다(행 2:21). 이어 그가 누구를 전했는가? 사람의 손에 못 박혀 죽었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시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예수님을 전했다(행 2:22-24, 36). 요엘이 말한 주의 이름을 부르라는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함께 선포된 것이다. 요엘서의 성령 약속을 성취하신 분도, 그 성령을 부어 주신 분도 높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다(행 2:33). 그래서 우리는 예수의 이름을 부르며 구원을 구한다.

바울은 이 약속을 로마에 사는 신자들에게도 전한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으며, 한 분 주께서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다고 말한다(롬 10:12). 그리고 요엘의 말씀을 다시 인용한다(롬 10:13). 유대인의 회당에만 머물 구원이 아니라 이방인이 있는 도시의 교회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약속이다.

롬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유대인과 헬라인, 종과 자유인, 남자와 여자가 모두 하나라고 했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다(갈 3:28-29). 그래서 구약의 언약 백성이 아닌 사람이라고 문밖에 세워 둘 수 없다. 하나님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민족에게 열렸다. 사마리아 사람도, 고넬료의 집에 모인 이방인도, 로마와 에베소의 사람도 그 약속을 받았다. 우리나라에 사는 우리도 그 은혜를 받고 있다.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말씀을 익숙한 찬양 가사로만 지나쳐서는 안 된다. 예수님께 돌아와 그분을 주로 믿고,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성령을 받아야 한다. 요엘은 입술의 소리만이 아니라 마음을 찢고 여호와께 돌아오는 백성을 불렀다(욜 2:12-13). 주의 이름을 부르는 구원과 하나님께 돌아오는 회개를 떼어 놓지 말아야 한다. 바로 이 은혜가 모든 만민에게 열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8. 말세의 성도는 회개하고 은사를 받아 가정과 나라를 어떻게 살려야 하는가?

지금은 성령을 사모해야 할 때다. 하나님께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왜 우리는 몇몇 사람만 하나님의 뜻을 알고 나머지는 바라보기만 하겠는가? 나라의 지도자가 흐릿하고 교회의 지도자가 약해도, 성령 받은 성도들이 가정과 교회와 민족을 위하여 깨어 기도하면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요아스 시대에 한 제사장이 떠나자 왕과 백성이 길을 잃었던 일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먼저 자기 집을 위해 기도하고, 이어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부르짖어야 한다.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께서는 공동체에 필요한 은사도 나누어 주신다. 바울은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 예언, 영들 분별, 각종 방언과 방언 통역을 말한다(고전 12:8-10). 성령이 각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나누어 주시는 것이다(고전 12:11). 은사를 자랑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예언이 필요한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분별이 필요한 때에는 영을 분별하며, 치유가 필요한 때에는 병든 사람을 돕도록 교회를 세우시는 것이다. 받기만 하고 자기에게 묻어 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은사를 사모하는 사람에게는 회개가 먼저다. 마음을 찢지 않고 능력만 얻으려 하면 그 은사가 성령께로부터 온 것인지 악한 영에게서 온 것인지 분별하지 못할 수 있다. 악한 영이 준 것을 성령의 선물이라고 주장하면 공동체까지 어지럽힌다. 깨끗해지고 분별하면서 은사를 받아야 한다. 요엘의 순서를 보라. 먼저 돌아오라고 외치고, 이어 하나님께서 신을 부어 주실 날을 선포한다(욜 2:12-13, 28). 그러므로 더 깊이 회개하여 우리 안의 악한 영을 내보내고, 성령의 은사를 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필자의 집안에는 종손 가문의 제사 전통이 있었고, 어머니 쪽으로는 삼 대에 걸친 무속의 영향이 있었다. 필자는 사 대 조상의 제사와 고조선 마지막 민족의 후손이라는 집안의 내력을 말하며, 어려서부터 얼마나 많은 미신과 잡신의 영향을 받았는지 돌아본다. 어머니는 가난하여 병원에 가기 어려울 때마다 필자를 방에 눕히고 반대자리에 녹두를 담아 묶은 뒤 그것으로 몸을 치며 영을 쫓는 말을 반복하셨다. 필자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까지 이런 일을 겪었다. 이는 성경 속 사건이 아니라 필자가 실제로 자라며 겪은 집안의 이야기다.

그 뒤 필자는 회개하는 과정에서 새벽 네 시 무렵 방이 밝아지고 천사가 나타나는 체험을 했다. 천사가 눈을 손가락으로 뚫는 듯한 일을 약 삼십 분 동안 했고,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아팠다. 끝내 그가 떠나는 모습을 보며 자기 안에 처리해야 할 영이 얼마나 많은지 절감했다. 필자는 회개를 이어 가며 기도 중에 환상을 보게 되었고, 어떤 사람의 과거와 미래에 관한 장면을 본 적도 있다. 이 경험을 말하는 까닭은 자기 능력을 내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상숭배의 흔적이 깊은 집안에서 자란 사람도 회개하고 주께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사용하신다는 것을 전하기 위해서다.

필자는 영적 세계를 살피며 마지막 때 하늘의 은사 창고에 여러 은사가 준비되어 있다고 말해 왔다. 그 가운데 귀신 축사(逐邪)의 은사가 유난히 많이 남아 있는 것을 보았다는 것은 필자의 영적 체험이다. 마지막 시대에 악한 영을 분별하고 내보낼 일꾼이 필요하다는 권면이 여기서 나온다. 그렇다고 아무 준비 없이 귀신을 상대하라는 말이 아니다. 먼저 회개하여 깨끗해지고, 성령을 받으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를 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가정을 살리고 교회를 세우며 나라를 위해 싸울 그리스도의 군사로 준비되어야 한다.

시간이 많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끝날 무렵의 장터에서는 아직 남은 물건을 값싸게 내놓듯,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때에 일꾼을 찾으시며 은사를 베푸신다. 성령을 받았다는 말로 만족하지 말고 실제로 주께 돌아가야 한다. 진실하게 회개하고 죄를 버리며, 받은 은사를 자기 자랑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살리는 데 써야 한다. 주님이 원하시는 때에 가정과 민족을 위해 쓰임받고, 마지막 아마겟돈 전쟁에 나아갈 그리스도의 군사로 준비되는 길이다.

9. 나오며

요엘서가 남유다의 황충 재앙과 위기 가운데 선포한 회개의 요청, 네 가지 회복의 약속,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시는 성령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얻는 구원을 살펴보았다. 나라의 왕이 어린아이이고 신실한 제사장 한 사람에게 기대어 있을 때, 그 사람이 떠난 뒤 얼마나 빨리 우상숭배가 다시 일어났는가? 요엘은 그 위기를 보며 백성 전체가 깨어날 하나님의 때를 내다보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여 높임을 받으신 뒤, 오순절의 백이십 명에게 성령이 임했다. 그 역사는 사마리아와 고넬료의 집과 에베소로 퍼져 이방인에게도 이르렀다. 요엘이 말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우리에게까지 열렸다. 그러므로 성령의 시대에 사는 우리는 지도자 한 사람의 믿음만을 바라보지 말고 각자 마음을 찢고 하나님께 돌아와야 한다. 회개로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주께서 주시는 은사를 분별하며,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리하여 성령의 은혜를 받고 맡기신 사람을 살리며 주님께 끝까지 충성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10월 05일(월) ·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