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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론(226)] 아모스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5) 다윗의 장막을 회복하고 이방민족에게 구원을 선포하시는 그리스도(04)(아모스 9:11~12)

아모스 9:11~12정보배 목사조회 2읽는 시간 약 26분

설교핵심

이 설교는 구약 성경 아모스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예표와 다윗 장막의 회복을 주제로, 하나님의 구원 경륜이 혈통적 유대인을 넘어 이방 민족과 오늘날의 교회로 확장되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아모스의 시골 목축업자 출신이라는 평범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언의 사명을 감당했듯, 우리 역시 연약함을 넘어 말씀에 순종하고 회개할 때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에 쓰임 받을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또한, 세대주의적 오류를 반박하며 과거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축복과 촛대가 순종하지 않음으로 인해 오늘날 주님을 간절히 찾고 말씀에 순종하는 이방인들과 더 넘어서는 한국 교회로 옮겨왔음을 역설합니다. 궁극적으로 이 메시지의 목적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거대한 구속 역사의 흐름을 깨닫고, 자신에게 주어진 회개와 충성의 기회를 놓치지 않음으로써 천국의 상속자이자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가도록 도전하는 것입니좋아다.

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

1하나님의 경륜을 모르면 아모스의 회복 예언을 어떻게 오해하게 되는가?2다윗의 장막이 무너졌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며 왜 무너졌는가?3무너진 다윗의 장막은 언제, 누구를 통해 다시 세워졌는가?4예수님은 왜 초막절 끝날에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고 외치셨는가?5야고보 장로는 왜 히브리어 본문 대신 70인역의 아모스 9:11-12을 인용했는가?6야고보가 덧붙인 말은 하나님 나라의 어떤 확장을 말하는가?7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이며 우리에게 어떤 사명을 주는가?
설교 본문 (암 9:11-12) ·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아모스는 남유다의 드고아에서 살던 목축업자였다(암 1:1). 개역개정이 "목자"로 옮긴 1장 1절의 단어는 '노케드'로서 가축을 기르고 치는 목축업자를 뜻한다. 동시에 그는 돌무화과나무를 재배하는 사람이었다(암 7:14).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고, 그래서 그는 선지자가 되었다. 아모스는 자기를 잡아 쫓아내려던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에게 이렇게 대답했다(암 7:14-15). 여기서 "목자"는 소를 치는 사람을 가리키는 '보케르'이고, "뽕나무"는 '샤캄' 곧 돌무화과나무다.

암 7:14-15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서 15 양 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

이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아모스는 자기 나라가 아니라 북이스라엘에 올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 그리고 그가 선지자로 쓰임받은 지 2년이 지났을 때, 북이스라엘의 하솔로 추정되는 곳에서 전무후무한 지진이 일어났다(암 1:1). 얼마나 지진이 컸던지 제10대 웃시야 왕 때의 그 지진을 200년도 더 지난 뒤에 스가랴 선지자가 다시 언급할 정도였다(슥 14:5). 마치 2001년 9·11 테러로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 일을 사람들이 지금도 기억하는 것과 같다.

슥 14:5 그 산 골짜기는 아셀까지 이를지라 너희가 그 산 골짜기로 도망하되 유다 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 같이 하리라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들이 주와 함께 하리라

그 지진은 심판을 경고하시는 하나님의 움직임이었다. 그래서 아모스는 북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찾아야 살 수 있다고 회개를 외쳤다(암 5:4, 6). 왜 그랬을까? 어려운 일이 닥쳤는데도 그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고 이방신들을 찾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찾으라"는 말은 '다라쉬'다.

암 5: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러나 북이스라엘은 이 경고를 받고도 회개하지 않았고, 그로부터 약 40년 뒤에 앗수르에게 멸망당했다. 그렇다고 아모스의 예언이 거기서 멈춘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 때가 이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돌아보시고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켜 세우실 것이며, 이스라엘로 하여금 에돔의 남은 자와 이방민족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고 예언했다(암 9:11-12).

그렇다면 이 예언은 언제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그 성취에 나타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는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감사해야 하는가?

더 나아가 A.D.49년에 열린 예루살렘 총회에서 야고보 장로는 왜 아모스 9장 11-12절을 인용하여 이 말씀이 성취되었다고 말했는가? 그는 왜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성경이 아니라 그것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七十人譯, Septuagint)을 인용했는가?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다윗의 장막이 왜 무너졌고 누구를 통하여 다시 세워졌는지, 야고보 장로가 70인역을 통하여 무엇을 선포했는지, 그리고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사명을 주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하나님의 경륜을 모르면 아모스의 회복 예언을 어떻게 오해하게 되는가?

이번 본문은 B.C.760-750년경 남유다 드고아 출신의 아모스가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경고하고 회개를 외친 뒤에, 언젠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실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그날이 되면 하나님께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켜 세우시고 그 틈을 막으시며,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에돔의 남은 자들과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방민족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암 9:11-12).

암 9:11-12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12 그들이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말씀을 히브리어 원문대로 필자가 직역하면 이렇다. "저 날에 내가 무너져 있는 다윗의 장막을 일으켜 세울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것들의 틈들을 막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허물어진 곳들을 내가 일으켜 세울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옛날의 날들과 같이 세울 것이다. 이는 그들이 에돔의 남은 것과 모든 민족들을 차지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런 그들 위에 나의 이름이 불려 있다. 이것을 행하고 있는 여호와의 선언이다." 마지막 "그것"은 여성 단수로서 장막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내 백성"이라 일컬어지던 이스라엘을 장차 회복시켜 주실 때가 올 것이며, 그렇게 되면 그들이 에돔의 남은 자들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이방민족들을 기업으로 상속받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그런데 믿음이 있어도 하나님의 뜻과 경륜(經綸, divine economy)을 잘 모르면, 이 말씀을 다윗의 장막으로 오신 예수님과 교회에 적용하지 않고 혈통적인 육적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주장하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지 않았는데도 이방민족을 기업으로 차지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게 되고, 가만히 있어도 이스라엘이 저절로 이방민족들 위에 왕 노릇 할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방인들을 기업으로 주실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만 알고 다른 하나를 모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은 순종하는 자에게 성취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믿음이 있어도 하나님의 뜻과 경륜을 잘 모르면, 하나님의 계획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타락으로 인하여 이미 예수님과 교회로 넘어갔는데도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계획이라 할지라도 유대인들이 순종하지 않으면 그 촛대가 다른 사람에게 옮겨간다는 것을 모른다(계 2:5). 무너진 다윗의 장막이 다시 일으켜 세워졌는데도 그때까지 회개하지 않고 엉뚱한 일만 행하면, 하나님의 뜻이 유대인들에게서 이방민족에게로 옮겨진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 21:43)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개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하나님의 경륜을 모르면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착각에 빠져서, 자신이 계속해서 범죄하고 있으면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 민족에게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한국교회로 옮겨온 민족적인 사명을 우리 한국교회가 감당하지 못하면 그 사명이 다른 나라로 옮겨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고로 예언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운명이 아니라, 회개하고 순종하는 자를 통하여 성취되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3. 다윗의 장막이 무너졌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며 왜 무너졌는가?

그렇다면 '다윗의 장막이 무너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모스에게 이 말씀이 주어질 당시 그 뜻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견고할 것이라고 약속하셨던 다윗 왕조가 남북으로 분열되면서 쇠잔해진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약속은 이러했다(삼하 7:12-13).

삼하 7:12-13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13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이어서 하나님께서는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 7:16)고 하셨다. 이 약속은 일차적으로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통하여 성취되었다. 그러나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에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왜 그랬을까? 통일왕국이 분열되어 열 지파가 북쪽으로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왕상 11:31). 그때부터 유다 지파 외에는 다윗의 집을 따르는 자가 없었다(왕상 12:20). 아모스가 본 다윗의 장막은 바로 이렇게 절반이 떨어져 나가 쇠잔해진 왕가였다.

그렇다면 다윗의 무너진 장막은 언제 다시 세워졌는가? 그것은 아모스의 예언으로부터 약 760년이 지난 뒤에야 성취되었다. 왜 그렇게 오래 걸렸는가? 이 예언을 받고도 회개하지 않고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던 북이스라엘은 그로부터 약 40년 뒤인 B.C.722년에 앗수르 제국에게 멸망당했다.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올라와 사마리아를 에워쌌고, 마침내 사마리아가 점령되어 이스라엘 사람들이 앗수르로 사로잡혀 갔다(왕하 17:3-6). 이어서 그로부터 136년이 지난 B.C.586년에는 남유다도 바벨론에게 멸망당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은 아니었다. 남유다는 포로로 잡혀갔지만,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돌아오게 하겠다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따라(렘 29:10, 단 9:2), 그리고 잡혀 간 나라들에서 모아 고국 땅으로 돌아가게 하겠다는 에스겔의 예언을 따라(겔 37:21) 70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귀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뒤 유대 나라에서는 단 한 번도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왕이 세워지지 못했다. 땅은 돌아왔으나 다윗의 왕위는 비어 있었던 것이다. 고로 다윗의 장막이 무너진 것은 다윗의 후손들이 하나님을 떠나 범죄하고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 장막은 사람의 힘으로는 다시 세워질 수 없었다.

4. 무너진 다윗의 장막은 언제, 누구를 통해 다시 세워졌는가?

그런데 B.C.4년경, 헤롯 왕 때에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알렸다(마 2:1-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는 그들의 물음은 오랫동안 비어 있던 다윗의 왕위에 드디어 왕이 오셨다는 선포였다. 드디어 아모스 9장 11-12절의 말씀이 성취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켜 세우신 것이다.

그러자 사도 요한이 의미심장한 말로 이 사실을 알렸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다는 것이다(요 1:14). 개역개정이 "거하시매"라고 옮긴 헬라어 '스케노오'는 '장막을 치다'라는 뜻이다.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이 곧 무너진 장막이 다시 세워진 사건이라고 요한은 말한 것이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렇다. 무너진 다윗의 장막이 다시 세워졌다. 다윗의 28대 후손으로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를 이렇게 정리했다(마 1:17). 이 계수를 따르면 다윗이 열네 번째이고 그리스도께서 마흔두 번째이시니, 예수님은 다윗으로부터 28대째 후손이 되신다.

마 1: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왜 예수님이야말로 다시 세워진 다윗의 장막이신가?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메시야로서, 에스겔 선지자가 예언한 목자이자 왕이셨기 때문이다. 에스겔은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고 그들 모두의 한 목자가 되리라고 예언했다(겔 37:24-25).

겔 37:24-25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 모두에게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 그들이 내 규례를 준수하고 내 율례를 지켜 행하며 25 내가 내 종 야곱에게 준 땅 곧 그의 조상들이 거주하던 땅에 그들이 거주하되 그들과 그들의 자자 손손이 영원히 거기에 거주할 것이요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들의 왕이 되리라

고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은 예수께서 오심으로 다시 세워졌다. 그분이야말로 다시 세워진 다윗의 장막이시며, 영원히 그들의 왕이 되실 목자이시다.

5. 예수님은 왜 초막절 끝날에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고 외치셨는가?

그런데 요한복음은 더 놀라운 사실을 우리에게 전해 준다. 예수께서는 서른 살쯤에 공생애를 시작하셨다(눅 3:23). 그리고 공생애 약 3년째 되던 해 가을,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요 7:2). 초막절은 일곱째 달 열닷샛날부터 이레 동안 지키는 절기이고, 여덟째 날에는 성회로 모이는 거룩한 대회가 있었다(레 23:34, 36). 그러므로 "명절 끝날 곧 큰 날"은 7월 22일이다. 바로 그날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성령을 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때가 왔다고 선포하셨다(요 7:37-39).

요 7:37-39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왜 예수님은 그날 그렇게 외치셨는가?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 때가 이제 이르렀기 때문이다. 요엘은 하나님께서 그날에 모든 육체 위에 성령을 부어 주시고, 그때가 되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예언했다(욜 2:28-32). 개역개정의 "만민에게"는 원문으로 '모든 육체 위에'라는 뜻이다.

욜 2: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리고 요엘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욜 2:32)라고 덧붙였다. 여기서 "누구든지"가 중요하다. 혈통의 제한이 없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또한 에스겔 선지자는 성전 문지방 밑 동쪽에서 물이 흘러나와 아라바로 내려가 바다에 이르고, 그 바다의 물을 되살리며 모든 생물을 살릴 것이라고 예언했다(겔 47:1, 8-9).

겔 47:8-9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9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예수께서는 바로 이 두 예언처럼,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그 사람의 배에서 성령이신 생수가 흘러나올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죽은 바다를 살리듯, 다시 세워진 다윗의 장막이신 예수님께로부터 성령의 생수가 흘러나가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리지 않고 살리게 된다. 고로 초막절 끝날의 외침은 다시 세워진 장막의 문이 모든 사람에게 열렸다는 선포였다.

6. 야고보 장로는 왜 히브리어 본문 대신 70인역의 아모스 9:11-12을 인용했는가?

그렇다면 아모스 선지자는 다윗의 장막이 다시 세워지면 어떻게 된다고 예언했는가? 이스라엘 백성들, 곧 이긴 자들이 에돔의 남은 자와 이방민족들을 기업으로 차지할 것이라고 했다. 이는 어느 날이 되면 이스라엘이 다윗 왕가의 왕권과 다윗 왕 때의 영광을 다시 보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다윗 시대처럼 주변의 모든 나라들을 정복하고 그들의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A.D.49년 예루살렘에서 최초의 교회 회의가 열렸다. 유대로부터 내려온 어떤 사람들이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행 15:1)고 가르치고,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도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행 15:5). 그 회의에는 할례자의 사도였던 베드로와 이방인의 사도였던 바울이 함께 참석했다(갈 2:8). 이때 주의 형제 야고보(갈 1:19), 곧 예루살렘 교회의 야고보 장로가 아모스 9장 11-12절을 인용하여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와 더 큰 장막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해석했다.

왜 그는 그렇게 해석할 수 있었는가? 그가 히브리어 구약성경의 아모스 9장 11-12절이 아니라 70인역의 아모스 9장 11-12절을 인용했기 때문이다. 70인역을 필자가 직역하면 이렇다. "저 날 안에서 내가 다윗의 이미 무너진 채 있는 장막을 장차 일으켜 세울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의 이미 무너진 채 있는 것들을 장차 다시 세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이미 허물어진 채 있는 것들을 내가 장차 일으켜 세울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장차 다시 세울 것이다. 시대의 날들과 같이 그렇게 할 것이다. 사람들 가운데 남아 있는 것들과 모든 민족들이 찾아내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런 그이들 위에 나의 이름이 그들 위에 이미 불린 채 있다. 이것들을 행하고 있는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야고보 장로는 성령의 감동으로, 어느 날 하나님께서 다시 돌아오시면 사람의 남은 자들과 모든 이방인들이 주를 찾게 될 것이라는 이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선포한 것이다.

그렇다면 70인역은 히브리어 본문과 무엇이 다른가? 그것은 두 가지다. 그가 인용한 70인역의 말씀은 그저 놀랍기만 하다.

첫째, 70인역은 '에돔'을 '아담' 곧 사람으로 번역했기 때문이다. 에돔(אֱדוֹם, 에돔)과 아담(אָדָם, 아담)은 자음 א·ד·ם이 같다. 에돔 쪽에 모음을 표시하는 글자 ו가 하나 더 붙을 뿐이다. 그러므로 에돔은 얼마든지 아담으로 읽힐 수 있다. 그렇게 되자 "에돔의 남은 자"는 "사람들 가운데 남은 자"가 되었다. 이스라엘의 원수였던 한 민족이 아니라 온 인류의 남은 자가 된 것이다.

둘째, 기업으로 차지한다는 말인 '야라쉬'를 '찾는다'는 말인 '다라쉬'로 번역했기 때문이다. 야라쉬(יִירְשׁוּ, 이르슈)와 다라쉬(יִדְרְשׁוּ, 이드르슈)는 요드(י)와 달렛(ד) 한 글자 차이다. 그렇게 되자 이스라엘이 이방민족을 '차지한다'는 말씀이, 이방민족이 주를 '찾는다'는 말씀이 되었다. 아모스가 북이스라엘에게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암 5:4)고 외칠 때의 그 '다라쉬'를, 이제는 이방인들이 하게 된 것이다. 고로 70인역의 아모스 9장 12절은 정복의 예언이 아니라 구원의 예언이 되었다.

7. 야고보가 덧붙인 말은 하나님 나라의 어떤 확장을 말하는가?

더욱이 야고보 장로는 헬라어 구약성경인 아모스 9장 11-12절을 인용할 때에 성령의 감동으로 몇 가지 말을 덧붙였다. 그가 실제로 선포한 말씀은 이렇다(행 15:16-18).

행 15:16-18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첫째, '되돌아오다'(아나스트레포)라는 말이다. 70인역은 "저 날 안에서"로 시작하지만, 야고보는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라고 선포했다. 하나님께서 친히 다시 돌아오셔서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시고,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곧추 세우신다는 것이다. 다윗의 장막을 다시 세우시는 분은 사람이 아니라 돌아오신 하나님이시다.

둘째, '주를'(톤 퀴리온)이라는 말이다. 70인역(표준본)은 남은 사람들과 모든 민족들이 '찾도록' 하기 위함이라고만 하지만, 야고보는 그들이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고 그 대상을 분명히 밝혔다. 이방인들이 찾게 될 분은 바로 주님이시라는 것이다.

이렇게 야고보 장로가 사람의 남은 자들과 이방나라가 주를 찾게 될 것이라는 70인역의 아모스 9장 11-12절을 언급한 것은, 주변의 모든 이방나라들도 다윗의 통치 아래로 들어오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주변의 모든 이방나라들도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며,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 견고해질 것이라는 말씀이다. 이는 결국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말하고 있다.

이것을 배타적인 선민의식(選民意識, chosen-people consciousness)의 관점에서 보면, 이스라엘만이 하나님의 나라이고 이스라엘 백성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여기던 생각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날 이후에는 모든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가 될 수 있으며,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예언한 것이다. 고로 이제는 어느 인종과 어느 민족이든지 제한 없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예루살렘 총회는 이방인에게 할례의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할 수 있었다(행 15:19, 28).

8.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이며 우리에게 어떤 사명을 주는가?

이방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분열왕국이 쇠잔해지면서 호세아(호 1:10, 2:23)와 요엘(욜 2:28-32)과 아모스 선지자(암 9:11-12)를 통하여 더욱 구체화되었다. 호세아는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하던 그곳에서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고 예언했고(호 1:10), 이렇게 선포했다(호 2:23).

호 2:23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

그 계획이란 장차 이방인들도 주를 찾게 되고 구원을 받게 될 것이며, 그들도 하나님의 상속자(相續者, heir)가 되고 왕 노릇 하는 자가 되리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막힌 담을 허셨다고 말했다(엡 2:14-16).

엡 2:14-16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하나님께서는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엡 1:5). 그리고 바울은 이방인들이 유대인과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고 선언했다(엡 3:6). 그 상속자들은 장차 천국에서 세세토록 왕 노릇 하게 될 것이다(계 22:5).

엡 3:6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천년왕국 때에 다시 역사의 선두에 서서 이방민족을 이끌어 간다는 세대주의(世代主義, Dispensationalism)의 해석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다윗의 장막은 이미 예수님으로 다시 세워졌고, 그 장막 안으로 이방인들이 이미 들어왔기 때문이다. 고로 믿음이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유대인과 똑같이 하늘의 상속자가 되고 왕 노릇 하는 자가 될 수 있다는 복된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엄청난 약속을 하셨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유대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는 점차 실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래서 구약의 모든 예언의 약속은 한 사람에게로 초점이 맞추어졌다.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어떤 왕이었다. 그분이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태어나셨고, 그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 그리고 드디어 호세아서와 요엘서와 아모스서에 예언된 대로 이방인들도 다윗의 장막 안으로 들어오게 하셨다.

다시 일으켜진 다윗의 장막이신 예수께서는 부활 승천하시면서 혈통적인 제한을 끝내셨다. 이제는 누구든지 다윗의 장막 안으로 초대하신다. 누구든지 와서 구원을 받으라는 것이다. 누구든지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생명을 분배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라고 말씀하신다. 더욱이 착하고 충성된 자는(마 25:21) 천국에서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땅을 기업으로 물려받는 상속자가 될 것이며, 성 밖으로 나가서 왕 노릇 하는 자가 될 것이다.

이러한 일을 하라고 하나님께서 이 말세에 대한민국을 선택하셨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민족적인 사명이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게 하고, 천국에서 왕 노릇 하는 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서 촛대가 옮겨졌듯이, 우리가 이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그 사명도 다른 나라로 옮겨질 수 있다. 순종하는 민족은 그 사명을 이루고 기업을 얻으며, 순종하지 않는 민족은 받았던 사명마저 빼앗기게 된다.

9. 나오며

아모스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의 회복을 예언한 지 약 760년 만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28대 후손으로 예수님을 보내셔서 그 장막을 다시 세우셨다. 그리고 야고보 장로는 70인역을 통하여, 그 장막이 이스라엘의 정복이 아니라 사람의 남은 자들과 모든 이방인들이 주를 찾는 구원의 장막임을 선포했다. 에돔이 아담이 되고, 차지함이 찾음이 되었다. 오, 이렇게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이방인이었던 우리가 다윗의 장막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된 것은 우리의 혈통이나 공로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세우신 위대한 계획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계획은 저절로 우리에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북이스라엘이 회개의 기회를 놓쳐 멸망했고, 유대인들이 순종하지 않아 촛대를 빼앗겼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착각 속에서 계속 범죄하는 자는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오늘날 내게 주어진 회개의 기회와 순종의 기회를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날마다 회개하여 아모스가 외친 대로 하나님을 찾고, 대한민국에 맡기신 민족적 사명을 따라 모든 사람에게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하자. 그리하여 만세 전에 세우신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을 따라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상속자가 되고, 왕 노릇 하는 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2026년 11월 01일(일) ·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