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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론(221)] 요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8) 여호와의 날은 내게 심판과 멸망의 날이 될 것인가 구원과 보상의 날이 될 것인가?(욜3:14~16)

요엘 3:14~16정보배 목사조회 14읽는 시간 약 32분

설교핵심

이 설교는 여호와의 날이 누군가에게는 심판과 멸망의 날이 되지만, 준비된 자에게는 구원과 보상의 날이 된다는 성경적 진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구약 시대의 요엘서가 경고하는 회개의 중요성과 더불어, 신약 시대 성도들이 가져야 할 깨어 있음과 충성의 자세를 강조하며 성도들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이 설교는 죄를 회개하고 주님 안에서 성실히 사명을 감당함으로써, 다가올 심판을 피하고 천국에서 더 큰 은혜와 상급을 누릴 것을 권면하는 목적을 담고 있습니다.

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

1요엘서 2장 32절의 '구원을 얻으리라'는 본래 무슨 뜻인가?2요엘서의 주제인 여호와의 날은 왜 두 얼굴을 가졌는가?3여호와의 날에 심판의 골짜기로 나아갈 자는 누구인가?4요엘서는 여호와의 날을 심판과 회복의 날로 어떻게 그리는가?5구약은 그날을 구원의 날로 맞으려면 무엇을 하라고 하는가?6신약은 회개에 더하여 무엇을 하라고 하는가?7깨어 있는 자는 마태복음 25장의 세 비유대로 어떻게 준비하는가?
설교 본문 (욜 3:14-16) ·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있다. 하나님의 영적 진리도 흩어져 있으면 우리에게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와서 단편적인 지식을 얻어 간다. 그러나 그것을 꿸 수 있는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에 오늘도 의문을 품고,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하나님에 대해 의구심을 가진 채 살아간다. 그러나 부족했던 것은 우리의 지혜였지 하나님이 아니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은 단편적으로 알던 지식을 하나님의 경륜과 뜻의 입장에서 찾아내어 영적 원리로 법칙화하고, 그 원리로 우리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에게는 막중한 책임이 있다. 그 말씀을 그 상황에만 적용되는 말씀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변함없이 적용될 원리로 찾아내어 주어야 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은 언제나 정답이었고 반대편의 말이 없었다. 목회자도 반대편의 말이 있는 것을 진리라고 전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떳떳하게 입을 벌려 그렇게 말하는 주의 종들을 많이 보게 된다. 시대와 장소와 남녀와 혈통에 상관없이 언제 들어도 복음이 되는 말씀이어야 한다. 또한 계시는 점진적이다. 구약에 계시된 것은 적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약에서 계시하셨으며, 사도 바울과 베드로를 통하여 더 확실해졌다. 그런데 주님께서 천국과 지옥 사이에 성 밖도 있고 더 바깥 어두운 데도 있다고 말씀하셨는데도 지금 교회는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2,000년 동안 성경책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구원의 드라마 전체를 꿰어 말하지 않고 부분만 말했기 때문에 천국에 못 가면 다 지옥에 가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리의 말씀을 정확히 찾아낼 수 있는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 속에 있는 악한 영, 특히 의심을 주고 불신앙을 주는 의심의 영이 나가야 한다. 이 영이 있는 한 우리는 귀가 얇아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방황하게 된다. 주님께서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하셨다(계 2-3장; 마 13:9).

그렇다면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 여호와의 날은 나에게 어떤 날이 될 것인가? 내가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예수를 믿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날 나는 안전한가? 가만히 있어도 그날이 구원의 날이 되는가? 어떻게 해야 그날을 두려움이 아니라 평안함과 감사함과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가?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요엘서 3장 14-16절을 중심으로 여호와의 날이 어떤 날이며, 그날을 심판과 멸망의 날이 아닌 구원과 보상의 날로 맞이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구약과 신약의 말씀을 통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2. 요엘서 2장 32절의 '구원을 얻으리라'는 본래 무슨 뜻인가?

우리는 지금 요엘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예표를 살펴보고 있다. 앞에서 만민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는 그리스도와, 누구든지 그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여호와의 날에 주로 오실 그리스도, 열방을 심판하실 그리스도, 잃어버린 것들을 회복시키실 그리스도,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샘이신 그리스도를 함께 살펴본다. 그 핵심은 여호와의 날에 그분이 나에게 심판주로 오실 것인가, 구원주로 오실 것인가이다.

욜 2: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그런데 여기서 '구원을 얻으리니'는 본래의 뜻이 아니라 2차적인 의미, 곧 의역이다. 히브리어 원문은 말라트(מָלַט)라는 단어를 쓴다. 본래 뜻은 피하다, 벗어나다, 도망하다이고, 거기서 파생된 2차적 의미가 구출하다, 구조하다, 구원하다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이 진행될 텐데 그 심판에서 피할 자가 되는 것이 곧 구원을 얻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바로 앞 31절은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핏빛 같이 된다고 말한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은 심판의 날이다. 그 심판이 얼마나 엄중하면 해도 어두워지고 달도 핏빛이 되겠는가? 하늘의 천체들이 무서워서 벌벌 떤다는 것이다. 그 크고 두려운 날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자가 되라는 것이 1차적 의미이고, 더 나아가 그 심판의 날에 구원을 얻을 자가 되라는 것이다. 그러려면 누구든지 주님을 불러서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을 찾고 그분의 도움을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만세 전에 어떤 개인은 영생으로, 어떤 개인은 멸망과 저주로 예정해 놓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모두가 심판을 받을 것인데 너희는 그 심판에서 피해야 하지 않겠느냐? 나는 공의롭기 때문에 죄를 없다고 눈감을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어떻게 사탄과 마귀를 심판하겠느냐? 공의로 해야만 나에게 반역한 자를 불에 던지지 않겠느냐?" 그래서 모두가 심판의 날 앞에 설 것이다. 그 진노의 날, 멸망의 날, 파괴의 날, 재앙의 날에 살아남을 자가 되라고 주님께서 요구하신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알아서 살려 주시겠다고 하지 않으시고, 누구든지 나에게 찾아와서 부르짖으라, 나를 의지하라, 내가 너희를 구원하는 방법을 붙들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스스로가 그것을 선택해서 취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예정은 무엇인가? 누구든지 죄를 범해서 심판을 받을 것이지만 그 죗값을 받지 말고 나의 이름을 불러 구원을 받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구원으로 예정된다. 어떤 개인이 구원받기로, 어떤 개인이 멸망받기로 예정된 것이 아니라 구원받을 총수가 정해져 있고, 너도 이 복음을 듣고 회개하면 그 구원받을 총수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예정이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누구를 저주하기로 예정하셨다는 사상은 하나님을 잔인한 하나님, 폭군 같은 하나님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그것은 절대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잘 듣고 선택을 잘해야 한다. 왔다 갔다 해서는 안 된다. 지금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지를 듣고 자신의 자리를 정확히 정해야 한다.

3. 요엘서의 주제인 여호와의 날은 왜 두 얼굴을 가졌는가?

그렇다면 피해야 할 그 여호와의 날은 어떤 날인가? 요엘서의 주제는 이것이다. "여호와의 날의 도래를 준비하라." 여호와의 날은 어떤 사람에게는 심판과 멸망의 날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구원과 보상의 날이 된다. 여호와의 날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날을 지금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어떤 사람은 그날을 심판과 멸망의 날로, 어떤 사람은 구원과 회복의 날로 맞이한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날은 좋은 날일 수도 있고 나쁜 날일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결정해 놓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그날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신약에서 다시 오실 주님께서도 주의 날이 이를 것이니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신다. 구약의 여호와이셨던 한 분 하나님께서 신약의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오셔서, 그날을 심판과 멸망의 날로 맞이할 염소의 자리에 있을 것인지 구원과 회복의 날로 맞이할 양의 자리에 있을 것인지는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요엘서 1장 15절은 여호와의 날이 멸망 같이 전능자에게로부터 이른다고 규정하고, 2장 1-2절은 그날이 어둡고 캄캄하며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2장 18절부터 완전히 바뀐다. 심판과 멸망의 날을 예언했던 요엘 선지자가 회복과 구원의 날을 말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3장에 가면 죄 없는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힌 이방 민족들을 여호사밧 골짜기로 불러 심판하시겠다고 하신다. 아마겟돈 전쟁을 예표하는 표현이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 장면이다.

욜 3:14-16 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 15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그 빛을 거두도다 16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내시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하리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모든 사람을 모아 놓고 심판하시는 날이 매우 엄중하여 해와 달과 별들이 그 빛을 거두지만, 그의 백성들에게는 그날 오히려 여호와께서 피난처가 되시고 산성이 되신다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에게 지금 가장 절실한 관심사는 주님의 재림이다. 그런데 그날에 주님에게서 떠나 멸망으로 들어갈 자도 있고, 창세로부터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을 자도 있다(마 25:34, 41).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어디에 들어갈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이 죽으면 네 군데로 간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장차 천국과 지옥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다. 새 땅 위쪽은 일종의 천국이고 땅 아래는 지옥이다. 땅 위쪽의 가장 핵심은 새 예루살렘 성이며, 우리는 이 성 안에 들어가야 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온 자가 그리로 들어간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은 모두 이 땅 위에 산다. 어떤 사람은 성 안에 살고, 어떤 사람은 성 밖에 산다. 성 바로 밖은 성의 빛이 비쳐 물도 있고 지구와 비슷한 살 만한 곳이다. 그러나 더 바깥쪽으로 가면 빛과 물이 적어지는 황량한 외곽을 지나 바깥 어두운 데로 간다(마 25:30). 그리고 더 악한 사람들은 땅속의 불못에 들어간다(계 21:8). 그러므로 성경은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갈 자, 성 밖에 있을 자(계 22:15), 바깥 어두운 데로 들어갈 자, 지옥에 들어갈 자의 네 부류를 말씀한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에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성 안이라면 꽃밭이라도 괜찮은가, 아니면 성문 바로 바깥의 아름다운 지역에서라도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필자가 이렇게 말해도 "천국과 지옥밖에 없지 무슨 성 밖이 있느냐, 미친 사람이다" 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성경책을 찢어 내야 할 것이다. 주님을 믿는 것인지, 자기 생각을 믿는 것인지, 교리를 믿는 것인지, 성경을 믿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주님 오실 때가 다 되었는데 언제까지 희석되고 불순물이 섞인 말을 듣다가, 평생 수고했으나 헛된 삶을 살아 죽어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자가 되겠는가?

주님께서는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고 말씀하셨다(마 20:16). 지금 회개하고 깨달으면 더 앞서 갈 수 있다. 필자는 이 사실을 늦게 깨달았지만,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주님 앞에서 샘플로 보여 드리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산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주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어, "그래, 너라면 이 자리를 차지해도 된다.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라"(마 25:21) 하시는 말씀을 듣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고 있다. 꽃밭이라도 좋으니 우리는 반드시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서 살아야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 중에도 지옥에 들어갈 자가 있다. 지난 금요일에 살펴본 것처럼, 가라지 비유에서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덫을 놓는 자와 귀신의 힘을 빌려 성령의 사역이라 한 불법을 행하는 자가,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는 복음을 위해 헐벗고 굶주리고 옥에 갇힌 자를 외면한 채 생색내며 자기가 올라갈 자리만 찾은 외식하는 자가, 그물 비유에서는 의인이 되고도 죄를 지어도 괜찮고 회개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썩은 생각으로 살아간 자가 풀무 불에 던져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정확히 분별하고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기 위해 힘써야 한다.

4. 여호와의 날에 심판의 골짜기로 나아갈 자는 누구인가?

그렇다면 오늘 본문은 언제 주신 말씀인가? 남유다의 선지자 요엘이 활동한 때는 주전 835-830년경으로 추정된다. 그때 남유다 백성은 네 가지 황충 재앙(욜 1:4)으로 전멸당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더 큰 전멸의 위기가 찾아온다는 것을 요엘 선지자를 통해 경고하셨다. 장차 여호와의 날이 이르면 많은 사람이 심판의 골짜기, 곧 여호사밧 골짜기에 모여 심판을 받게 된다. 그 심판이 얼마나 엄중하면 해와 달이 캄캄해지고 별들도 그 빛을 거두겠는가? 하나님께서 시온에서 부르짖으시면 하늘과 땅이 진동한다. 그때 어떤 사람은 심판으로 나아가고,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피난처와 산성이 되어 주신다.

요엘서 3장은 이 심판의 골짜기를 여호사밧 골짜기라고 부른다(욜 3:2, 12). 많은 민족들을 모아 여호사밧 골짜기에서 심판하시겠다는 것이며, 이것은 아마겟돈 전쟁을 예표한다. 그렇다면 많은 골짜기 가운데 왜 여호사밧 골짜기인가? 여호사밧은 '여호와께서 심판하신다'는 뜻이다. 곧 여호와께서 심판하시는 자리라는 뜻이다. 그날의 심판은 크게 두 가지로 갈린다. 하나는 심판과 멸망이요, 하나는 구원과 회복과 축복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기는 축복을 받을 것처럼 생각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브라함처럼 할례만 받으면 자동으로 구원받고 그날에 상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듯이, 지금도 "나는 예수를 믿었다"는 것 하나로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할례를 받았다"는 구약 이스라엘 백성과 "나는 예수를 믿었다"는 오늘의 성도가 무슨 차이가 있는가? 사도 바울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라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라고 말했다(롬 2:28-29). 그러므로 단순히 교회에 나온다고, 단순히 예수를 믿었다고 그날을 안전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그러면 심판의 골짜기로 나아갈 사람은 누구인가? 그것은 두 부류다.

첫째,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한 자들, 곧 사탄의 무리에 속한 자들이다. 짐승과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와 거기에 속한 자들은 그날 주님의 철장 권세로 완전히 부서진다.

둘째, 그들과 동시에 같이 처벌을 받을 하나님의 백성이었던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지금 어떤 존재인지를 계속해서 묻고, 그날에 합당한 준비를 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궁극적 예정을 잘 몰라서, 하나님께서 어떤 개인은 구원으로, 어떤 개인은 멸망으로 예정하셨다고 잘못 생각할 수 있다. 믿음이 없으면 심판의 날이 이르기 전에 그날을 준비하는 자에게는 그날이 구원과 보상의 복된 날이 된다는 사실을 모른 채 준비하지 않는다. 믿음이 없으면 그날을 준비하지 못하고 계속 죄를 짓는 자에게 그날은 구원의 날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심판하는 날이 된다는 사실을 모른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다시 오셔서 이 세상의 모든 악을 심판하고 끝내실 것이기에 악한 자가 발흥하는 가운데서도 인내해야 한다는 것을 모른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그날을 준비하도록 성경 말씀과 시대마다 세우신 선지자를 통해 인도하시는데도 그 말씀을 허투루 여기며 지나쳐 버린다. 믿음이 없으면 잘못된 예정론에 기대어 "준비하지 않아도 그날 구원받는다, 그날 왕 같은 제사장이 된다"는 말에 속아 일평생 아무 수고도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해 성 밖에 남겨지거나, 맡겨진 사명에 충성하지 못해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거나, 하나님의 뜻을 어겨 주님을 부인하고 남을 죄짓게 만드는 일에 쓰이다가 지옥에 떨어지는 자도 생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의 날이 임하기 전에 미리 준비해야 한다. 그날이 되면 너무 늦다.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이다(고후 6:2). 그날에는 미련한 처녀들처럼 잠시 갔다 와서 기름을 사 올 수가 없다(마 25:10). 지금이 기름을 살 수 있는 날이요, 지금이 충성할 수 있는 날이며, 지금이 나를 돌이킬 수 있는 날이다. 이 얼마나 귀중한 날인가? 그런데 이 귀중한 날을 오늘도 세상 밥 먹는 데 쓰며 맛집을 찾아다닌다. 언제까지 맛집을 쫓아다니고, 날마다 골프를 치러 다니고, 날마다 모여 등산을 다닐 것인가? 등산을 가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자연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 한 번씩 가서 "참 아름다워라" 하고 감탄할 필요도 있다. 날마다 그렇게만 사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5. 요엘서는 여호와의 날을 심판과 회복의 날로 어떻게 그리는가?

그렇다면 성경은 여호와의 날을 어떻게 말하는가? 여호와의 날이라는 개념은 선지서에 나온다. 요엘서는 가장 먼저 기록된 선지서 가운데 하나로 추정할 수 있으므로, 여호와의 날을 처음 말한 책이 요엘서라고 할 수도 있다. 이사야는 남유다 왕국의 중기, 에스겔은 말기에 활동했으니 요엘은 그보다 앞선다. 이사야는 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여 그들이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사 2:12).

사 13:6 너희는 애곡할지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니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

에스겔도 그날이 가깝고 여호와의 날이 가까우니 구름의 날이요 여러 나라들의 때라고 말했다(겔 30:3). 그런데 여호와의 날에 대해 가장 강력하고 가장 확실하게, 가장 많이 기록한 책은 요엘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엘서의 말씀을 주목해야 한다.

요엘서는 먼저 여호와의 날이 악인들과 죄인들과 그날을 준비하지 못한 자들에게 두려운 심판의 날이 된다고 말한다. 그날은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며, 옛날에도 없었고 후로도 대대에 없을 날이다(욜 2:2).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되며(욜 2:31), 해와 달이 캄캄하고 별들이 그 빛을 거둔다(욜 3:15).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무서우면 벌벌 떨어 해가 비치지 않겠는가? 그날은 갑자기 임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괴롭힌 이방 민족들을 심판하는 날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날을 공의로 심판하신다.

그러나 회개하고 주님을 찾고 구하며 그날을 준비하고 있는 자에게 그날은 회복과 구원과 보상의 날이 된다. 요엘서 3장 1절은 그날에 포로 된 자들을 돌아오게 하신다고 말한다. 필자는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언하다가 붙잡혀 갇힌 자들을 되돌리시는 날로 본다. 또한 그날은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힌 민족을 처단하는 날이다(욜 2:25; 3:2, 19). 특히 3장 19-20절은 유다 자손에게 포악을 행하여 무죄한 피를 흘리게 한 애굽을 황무지가 되게 하고 에돔을 황무한 들이 되게 하시겠다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힌 사탄과 마귀를 주님께서 재림 때 완전히 부숴 버리신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때 아마겟돈 전쟁에서 짐승을 따랐던 땅의 왕들과 그 군대들은 새들의 밥이 되고(계 19:17-21), 그 피가 말 굴레에까지 닿을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다(계 14:20). 그러므로 절대 악의 편에 서서는 안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날에 완전히 회복시켜 주신다. 오늘 본문 뒤의 요엘서 3장 18절은 그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리고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리며, 말랐던 유다의 모든 시내에 물이 흐르고 여호와의 성전에서 샘이 흘러나와 싯딤 골짜기를 적신다고 말한다. 그날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완전히 회복시키시는 날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것을 온전히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이 땅에서는 실현되지 않을 것이고 천국에서 실현될 것이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런 회복이 그때에만 있다고 하지 않으시고 그 전에도 있다고 말씀하신다. 요엘서 2장 28절 이하에서 성령을 부어 주시겠다고 하셨다. 마지막 날에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전한 회복이 이루어지지만, 그 전에도 성령을 통해 우리를 회복시켜 주신다는 것이다. 또한 이른 비와 늦은 비의 비유로 성령의 은혜를 듬뿍 부어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욜 2:23-24). 필자는 이른 비는 초대교회에 부어 주신 성령의 역사이고, 늦은 비는 이 마지막 시대에 부어 주시는 성령의 역사라고 본다. 그래서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복은 마지막 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진행되고 있다. 지금부터 회개하고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악한 영으로부터, 재앙으로부터, 저주로부터 우리를 벗어나게 해 주시고,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통해 지금부터 하나님의 실제를 맛보게 해 주신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유다가 영원히 안전하게 살고 예루살렘, 곧 새 예루살렘이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한다는 약속(욜 3:20)이 성취된다.

6. 구약은 그날을 구원의 날로 맞으려면 무엇을 하라고 하는가?

그렇다면 그날을 심판의 날이 아니라 구원의 날로 맞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기에 구약과 신약의 차이가 있다. 구약의 요엘서는 딱 한 가지를 요구한다. 요엘서의 구조를 보면 알 수 있다. 1장 1절부터 2장 11절까지는 여호와의 날이 심판과 멸망의 날이라고 예언하고, 2장 18절부터 3장 21절까지는 그날이 회복과 구원의 날이라고 예언한다. 그 사이에 2장 12-17절이 있다. 이 부분이 그날을 회복과 구원의 날로 맞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단서이며, 그 요절이 12-13절이다.

욜 2:12-13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단 한 가지 요구다.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오늘날의 말로 하면 회개하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똑같이 말씀하셨다.

마 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있으라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죄를 지었어도 회개하여 죄를 씻어 버리면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안 들어가고 싶어도 회개하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들여보내 주신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 좋은 회개를 발견했다가 조금 힘들다고 고무신을 거꾸로 신고 떠나 버린다. 언제까지 방황하며 살 것인가? 다시 옛날로 돌아가면 뒤로 물러가 멸망하게 된다고 히브리서는 말한다(히 10:38-39). 한번 그리스도를 붙잡았으면 그분을 끝까지 붙잡아야 한다. 다른 것을 추구해 보았자 얻는 것이 없다. 회개는 힘들고 늦게 가는 길처럼 보이지만 가장 빠른 길이며, 이것만이 영원히 남는다.

주님께서 베푸신 속죄가 우리에게 상을 주는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길을 열어 놓으신 그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복이 오는 것이다. 그런데도 회개하기를 싫어한다. 회개의 축복은 어마어마하며, 구약 성경은 이것이 기본이자 필수라고 말한다.

회개에는 두 차원이 있다. 죄로부터 돌아서는 것과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나님께 돌아간다고 하면서 죄로부터 돌아서지 않으면 회개한 것이 아니다. 입술로는 날마다 회개하면서 죄는 날마다 짓고 있다면 그 회개 기도는 무엇 하러 하는가? 회개 기도는 죄로부터 돌아서려고 하는 것이다. 죄를 계속 지으면서 회개 기도문을 천 번 읽어 보라. 효과가 있겠는가? 끊을 것은 끊어야 한다. 죄로부터 돌이키고 성품이 달라져야 한다.

요엘서 2장 15-17절은 시온에서 경고의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라고 말한다. 백성과 장로들과 어린아이와 젖 먹는 자까지 모으고, 신랑은 그 방에서, 신부는 그 골방에서 나오게 하라고 한다. 그리고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은 울며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주의 기업을 욕되게 하지 말아 달라고 기도하라고 한다(욜 2:17).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있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주님이 오시면 그날 우리가 다 구원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죄를 짓고 있으면 그 사람에게도 그날은 똑같이 심판의 날이다. 회개하고 있어야 구원의 날이다. 그날 우리가 무죄한 자로 발견되어야 그날이 구원의 날이요 보상의 날이 된다. 그날 죄 있는 자로 책망을 들으면 성 밖이나 바깥 어두운 데로 간다. 요엘서 3장 19-20절에서 하나님께서 이방 민족, 곧 사탄의 세력을 멸망시키신 이유는 그들이 유다 자손에게 포악을 행하여 무죄한 피를 흘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다 자손은 무죄한 상태에 있어야 한다. 회개하여 죄가 없어야 한다. 내 속에 회개하지 않은 죄 때문에 귀신이 드글드글한데 그날이 구원의 날이 되겠는가? 휴거되지 못하고 남겨질 것이다.

7. 신약은 회개에 더하여 무엇을 하라고 하는가?

구약은 여호와의 날에 심판과 멸망으로 들어가지 않고 회복과 구원으로 들어가려면 회개하고 있으라고 말했다. 그런데 신약에는 그날을 맞이할 자세로 한 가지 요구가 더 있다. 구약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이런 명령을 하신 적이 거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약에만 있는 이 말씀을 주목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계시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이 마지막 때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복을 주시려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라고 하셨다(마 20:23). 그러나 그 자리에 이미 누가 있어도 더 충성된 사람이 생기면 그 자리를 빼앗기게 된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것이다.

우리는 구약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종교개혁 시대에 머물렀다면 칭의만 붙들다가 죽을 뻔했다. 지금도 종교개혁 시대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수많은 목회자들의 말이 인터넷에 남아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종교개혁의 가르침에만 머물 것인가? 그들이 칭의에서 멈춘 것은 잘못이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바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도 구약과 똑같다. 그날이 진노의 날이 될 것인가 보상의 날이 될 것인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요한계시록 6장 16-17절은 어린 양의 진노의 큰 날을 말하고, 22장 12절은 그날에 상을 받을 자를 말한다.

계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두 종류의 사람이 생긴다. 그러면 그날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구약과 신약에 동일한 것은 회개하고 있으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고 계실 때에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 하셨고, 부활 승천하여 천국에 계실 때에는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라고 하셨다(계 22:14). 회개하고 있으면 죽어서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간다. 그곳에는 더 이상 힘든 것이 없다. 밥을 먹지 않아도 살고, 병도 없고, 죽음도 없고, 아픔도 없고, 통곡도 없고, 어둠도 없고, 시련도 없고, 마귀와 귀신도 없다.

필자는 얼마 전 한 장로님이 위독하셔서 살리려고 며칠 동안 잠을 자지 못하고 그분에게 붙은 귀신들을 다 떼어 냈다. 생명이 위험할 만큼 나빴던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잠도 못 주무시고 힘드셨으니 조금 쉬시라고 했더니 잠이 드셨는데, 천국에 가셔서 주님을 만나시고는 돌아오지 않으셨다. 필자가 천국에 가면 야단을 칠 것이다. 그러나 회개하고 있으면 최소한 천국이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런데 신약에서는 한 가지가 더 있다. 그것은 깨어 있으라는 것이다.

마 24: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깨어 있으라는 것은 잠을 자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그러면 불면증으로 죽는다. 한마디로 준비하고 있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주님께서는 그것을 마태복음 25장의 세 가지 비유로 말씀하셨다.

8. 깨어 있는 자는 마태복음 25장의 세 비유대로 어떻게 준비하는가?

그렇다면 깨어 있는 자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그것은 마태복음 25장의 세 비유가 말하는 세 가지다.

첫째, 열 처녀의 비유다(마 25:1-13).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주님께서 나를 신부로 맞이하시기에 합당한 것을 준비하고 있으라는 것이다.

둘째, 달란트의 비유다(마 25:14-30).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어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되고 맡겨진 일에 충성하고 있으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의 성도에게 적용되는 가장 강력한 말씀은 충성하고 있으라는 것이다. 깨어 있는 것은 충성하고 있는 것이다.

마 24:45-47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47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셋째, 양과 염소의 비유다(마 25:31-46). 하나님 나라를 삶으로 실천하고 있으라는 것이다. 창세로부터 예비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자로서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말로만 하고 생색낼 것만 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나 악한 종은 어떠한가?

마 24:48-51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49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0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악한 종은 동료들을 때린다. "회개할 필요가 무엇이 있느냐, 이미 다 구원받았고 저주는 끝났다" 하고 동료들을 세뇌시킨다. 자기가 저주에 걸려 있는데도 저주가 없다고 한다. 회개해야 저주가 떠나가는데, 회개하는 동료에게 "너 이단에 빠졌지" 하며 때린다. 그리고 이 세상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라며 맛집이나 찾아다니고 골프나 치러 다니고 등산이나 다니며, 오리 맛집에 가서 찰밥과 오리고기를 먹는 것이 인생의 낙이라고 여긴다. 그러면 그날에 엄히 맞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해져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자가 되어야 하는가? 구약 성경은 회개하고 있으라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그러나 신약의 성도에게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상과 면류관과 지위가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을 통해 다 알려 주셨다. 구약에서는 한 사람도 몰랐다.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했지만 알려 주지 않으셨다(벧전 1:12).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고 상속자가 되게 하셨으며(엡 1:3-6; 3:6), 우리가 참으면 주와 함께 왕 노릇 하게 하시려는 뜻이 있다(딤후 2:11-12).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그날을 준비한다.

충성하려면 무엇인가를 맡아야 한다. 맡으려면 자기를 깨끗하게 하여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그릇이 되어야 한다(딤후 2:21).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열심히 회개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것이 있으면 충성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늘에 아름다운 상이 준비된다. 구약에서는 전혀 가르쳐 주지 않은 "충성하고 있으라"는 말씀은 신약의 성도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다른 사람을 예수 믿게 하고 천국에 들어가게 할 수 있는 자기의 영역을 찾아 헌신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자에게 그날은 심판과 멸망의 날이 아니라 구원과 회복과 축복의 날이 된다.

9. 나오며

여호와의 날은 두 얼굴을 가진 날이다. 그날은 반드시 온다. 해와 달이 캄캄해지고 별들이 빛을 거두며 하늘과 땅이 진동하는 그날, 어떤 사람은 여호사밧 골짜기에서 심판을 받고, 어떤 사람에게는 여호와께서 피난처와 산성이 되신다. 그날이 나에게 어떤 날이 될 것인가는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정해 놓으신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그날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달려 있다. 예수를 믿었다는 사실 하나로, 교회에 출석한다는 사실 하나로 그날이 안전한 것이 아니다.

구약은 그날을 구원의 날로 맞이하려면 회개하라고 했고, 신약은 거기에 더하여 깨어 충성하고 있으라고 한다. 회개하고 있는 것은 천국에 들어가는 최소 조건, 곧 필요조건이요, 충성하고 있는 것은 충분조건이다. 회개는 입술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죄로부터 돌아서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며, 충성은 깨끗한 그릇이 되어 맡겨 주신 일을 감당하는 것이다.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이다. 그날이 되면 기름을 사러 갈 수 없다. 그러므로 오늘 마음을 찢고 회개하며,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고, 맡겨 주신 일에 충성하며, 복음을 위해 고난받는 지극히 작은 자를 섬기자. 그리하여 주님 오시는 그날을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과 감격으로 맞이하고,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 하시는 칭찬을 듣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6년 10월 25일(일) ·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