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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론(231)] 아모스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0) 에돔의 남은 자를 통해 살펴보는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원대한 뜻의 비밀(05)(암9:11~12)

정보배 목사조회 19읽는 시간 약 29분

설교핵심

이 설교는 아모스서에 등장하는 에돔의 남은 자와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경륜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서 추구해야 할 영적 상속권과 왕노릇의 축복의 진정한 의미를 밝히고 있습니다. 핵심 주제는 구원받은 성도가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긴 에서와 같은 영적 방종을 경계하고, 형제를 미워하거나 고소해하는 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의 모든 율법과 계명의 완성은 결국 서로 사랑하고 낮아져서 섬기는 형제 사랑에 있으며, 이를 실천하는 자만이 천국에서 진정한 하나님의 상속자이자 통치자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

1에서는 왜 장자의 축복을 잃었고, 에돔 족속은 어떻게 역사에서 사라졌는가?2에돔의 남은 자가 멸망하지 않고 복을 받으려면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가?3사도 요한은 다락방에서 무엇을 보았기에 형제 사랑을 그토록 증언하였는가?4신약성경이 보여 주는 형제 사랑의 두 가지 본보기는 무엇인가?5시내산 이전의 어떤 사건들 속에 이미 십계명의 의미가 드러나 있었는가?6예수님의 새 계명은 왜 '서로 사랑하라'였으며, 그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7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어떤 복을 받으며, 어떻게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는가?

강의 자료

그림 3 · 슬라이드 22
[기독론(231)] 아모스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0) 에돔의 남은 자를 통해 살펴보는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원대한 뜻의 비밀(05)(암9:11~12)_2 – 이미지 1[기독론(231)] 아모스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0) 에돔의 남은 자를 통해 살펴보는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원대한 뜻의 비밀(05)(암9:11~12)_2 – 이미지 2[기독론(231)] 아모스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0) 에돔의 남은 자를 통해 살펴보는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원대한 뜻의 비밀(05)(암9:11~12)_2 – 이미지 3[기독론(231)] 아모스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0) 에돔의 남은 자를 통해 살펴보는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원대한 뜻의 비밀(05)(암9:11~12)_2 – 이미지 4
형제 사랑과 성전의 기둥설교 슬라이드 · 22장
설교 본문 (암 9:11-12) ·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아모스 선지자에게 주신 이스라엘 회복의 말씀, 곧 아모스 9장 11-12절에는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원대한 뜻이 들어 있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모든 이방 민족을 기업(基業, inheritance)으로 차지하게 하시겠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아담의 남은 자들, 곧 사람들 가운데 남은 자들과 모든 이방 민족이 주를 찾아 구원받게 하시겠다는 것이었다(행 15:16-17). 그런데 이러한 뜻은 히브리어 구약성경이 헬라어 구약성경인 70인역(七十人譯, Septuagint)으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암 9:11-12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12 그들이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에돔의 남은 자들로 대표되는 이방인들은 원래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영원한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 가운데 그들이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신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자녀'(엡 1:5)가 되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상속자'(相續者, heir)가 되고(엡 3:6), 최고로는 '왕 노릇 하는 자'(딤후 2:11-12)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렇다면 이 원대한 뜻이 우리에게서 없어지지 않고 끝까지 이루어지려면, 오늘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무엇을 가장 주의해야 하는가?

이 말씀은 최종적으로 어떻게 실현되었는가? 하나님의 원대한 뜻이 있는데도 그 뜻이 없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이 이루어지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영적인 장자였던 이스라엘 민족과 장자의 축복에서 밀려났던 에돔 족속에게 남겨진 이 시대의 마지막 비밀은 대체 무엇인가? 이번 시간은 에돔의 남은 자를 통해 이 뜻을 살펴보는 마지막 최종회 시간이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에서와 에돔 족속이 걸어간 길을 먼저 되짚어 보고, 신약성경이 증언하는 형제 사랑과 시내산 이전의 사건들 속에 드러난 십계명의 의미를 따라가면서, 형제를 사랑하는 자가 어떻게 천국에서 상속자가 되고 왕 노릇 하는 자가 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에서는 왜 장자의 축복을 잃었고, 에돔 족속은 어떻게 역사에서 사라졌는가?

지난 주일부터 한 주간 계속된 말씀을 요약하면 두 가지이다. 하나는 장자의 축복을 경홀히 여기지 말자는 것이다. 에서가 장자의 축복을 경홀히 여김으로 나중에 후회했지만 그것을 다시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경고하였다(히 12:16-17).

히 12:16-17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17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결국 우리가 에서가 아니라 야곱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야곱처럼 장자의 축복을 사모하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걸고 기도함으로 이스라엘, 곧 이기는 자가 되어야만 하늘 아버지의 기업을 물려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형제를 미워하지 말고 형제를 해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모스 선지자가 활동하던 때, 곧 남유다의 제10대 웃시야 왕과 북이스라엘의 제13대 여로보암 2세가 다스리던 B.C.760-750년경까지는 여전히 에돔의 남은 자들이 있었다(암 9:12). 그런데 B.C.586년이 되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오바댜 선지자를 통하여 에서 족속에 더 이상 남은 자가 없을 것이라고 경고하셨다(옵 1:17-18). 왜냐하면 에돔 족속이 형제를 미워했고 형제를 해쳤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에돔은 B.C.6세기 중엽에 바벨론 왕 나보니두스에게 정복당하였다(B.C.553-552년경). 말라기 선지자가 에서의 산들이 황폐하게 되었다고 말한 것이 그 뒤의 모습이다(말 1:3-4). 그렇지만 그 씨만큼은 보존되어 내려왔다. 에돔계 주민들은 사해 서쪽과 유다 남부 지역, 곧 헤브론 남부와 네게브 지역에서 계속 살았는데, 헬라인들은 그들을 '이두매' 사람이라고 불렀다(막 3:8). 그리고 에돔의 옛 땅인 세일 산지는 나중에 나바테아인들이 차지하여 페트라를 그 중심지로 삼았다.

그러다가 B.C.2세기 말, 곧 B.C.125년경에 이두매는 유대 하스몬 왕조의 요한 힐카누스 1세에게 정복당하였다. 이때 이두매 사람들은 할례를 받고 유대 사회에 편입되었다(요세푸스 『유대 고대사』 13.9.1). 그런데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유대를 통치하던 헤롯 대왕(B.C.37-4 통치)은 바로 이 이두매 사람이었다(마 2:1). 그의 아버지 안티파테르가 이두매의 유력한 가문 출신이었고, 할아버지 안티파스는 하스몬 왕조 때 이두매의 총독이었다(요세푸스 『유대 고대사』 14.1.3). 그러나 그의 증손자 헤롯 아그립바 2세(행 25:13; 26:28)마저 죽음으로써 에돔 족속은 인류의 역사에서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A.D.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한 뒤로 이두매 사람은 더 이상 한 민족으로 역사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에서는 장자의 축복을 잃어버렸는가? 왜 에서는 이기는 자가 되지 못하였는가? 그리고 왜 에서의 후손들인 에돔 족속은 인류의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는가? 에서는 자기가 받을 복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고, 그의 후손들은 형제를 미워하고 해쳤기 때문이다. 고로 장자의 축복을 가볍게 여기는 자와 형제를 미워하는 자의 끝은 에돔과 같다.

3. 에돔의 남은 자가 멸망하지 않고 복을 받으려면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에돔의 남은 자로서 멸망받지 않고 진정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딱 두 가지를 주의해야 한다.

첫째, 이스라엘, 곧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주실 축복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야곱처럼 장자의 축복을 사모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소한 에서처럼 살아서는 아니 된다. 에돔은 원래 에서의 별칭으로서(창 25:30; 36:1), 에서는 자기 아버지의 기업을 물려받을 자였다. 그러나 그는 그 복을 받지 못하였다(히 12:17). 나라의 본 자손들이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난다는 말씀처럼(마 8:11-12), 원래 받을 자리에 있던 자가 그 복을 놓친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자기가 받을 복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실 하늘의 복을 기대하고 사모해야 한다.

그다음에는 자신의 잘못에 대한 철저한 회개(悔改, repentance)와, 장자의 축복을 잃어버리지 않고 자식들 모두가 그 축복을 받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도가 동반되어야 한다. 야곱처럼 얍복 강의 기도가 있어야 한다(창 32:24-28). 자신의 죄를 철저히 고백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요일 1:9). 그리고 자기가 당한 고통을 후손에게는 물려주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가 있어야 한다.

둘째, 형제를 미워하지 않으며 형제를 해하지 않는 것이다. 에돔 족속은 이스라엘 민족을 미워했고, 이스라엘의 멸망을 기뻐하면서 그들에게 여덟 가지 포악을 행하였다(옵 1:12-14).

옵 1:12-14 네가 형제의 날 곧 그 재앙의 날에 방관할 것이 아니며 유다 자손이 패망하는 날에 기뻐할 것이 아니며 그 고난의 날에 네가 입을 크게 벌릴 것이 아니며 13 내 백성이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성문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고난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재물에 손을 대지 않을 것이며 14 네거리에 서서 그 도망하는 자를 막지 않을 것이며 고난의 날에 그 남은 자를 원수에게 넘기지 않을 것이니라

방관하고, 기뻐하고, 입을 크게 벌리고, 성문에 들어가고, 고난을 방관하고, 재물에 손을 대고, 도망하는 자를 막고, 남은 자를 원수에게 넘긴 것이다. 형제가 망하는 날에 에돔은 그렇게 행하였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상속자가 되고 왕 노릇 하는 자가 되려면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 이기는 자가 되는 것과 형제를 사랑하는 것, 이 두 가지가 에돔의 남은 자인 우리 이방인들이 끝까지 붙잡아야 할 길이다.

4. 사도 요한은 다락방에서 무엇을 보았기에 형제 사랑을 그토록 증언하였는가?

그렇다면 형제 사랑(兄弟愛, brotherly love)에 대하여 신약성경은 무엇을 증언하는가? 신약성경은 형제 사랑에 대하여 매우 중요한 증언을 해 주고 있는데, 그것은 요한일서에 집중적으로 나온다. 왜 그런가? 사도 요한의 뇌리에는 흔히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부르는 그 다락방(막 14:15; 눅 22:12)에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이 아예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그곳에서 제자들이 서로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 주셨고, 그 뒤에 정말 제자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으셨다.

먼저 예수께서는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겨 주셨다(요 13:4-5). 그 자리에는 당신을 팔아넘길 제자 가룟 유다도 있었다(요 13:2, 11). 그리고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요 13:12-15).

요 13:12-15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14절에서 '옳으니라'로 번역된 헬라어 오페일레테(ὀφείλετε)는 '빚지다'라는 뜻이다. 주님께서 먼저 발을 씻어 주셨으니, 우리는 서로의 발을 씻어 주어야 할 빚을 진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다음에 예수께서는 성찬을 행하시면서 당신이 제자들을 위해 몸이 찢기시고 피 흘리실 것을 예고해 주셨다(눅 22:19-20).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유언처럼 부탁하신 말씀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新誡命, new commandment)이었다.

요 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이렇게 증언하였다.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지만, 반대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 가운데 있어서 장차 갈 곳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요일 2:9-11).

요일 2:9-11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10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11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또한 요한은 형제를 사랑함으로 그가 비로소 사망의 영역에서 생명의 영역으로 들어간 줄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요일 3:14).

요일 3:14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께서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이 세상에 존재할 일곱 가지 유형의 교회를 말씀하셨는데(계 2-3장), 그중에서 오직 칭찬만 받은 교회가 둘 있다. 하나는 핍박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킨 서머나 교회이고(계 2:8-11), 또 하나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형제 사랑을 실천했던 빌라델비아 교회이다(계 3:7-13). '빌라델비아'라는 도시 이름은 헬라어로 '형제 사랑'(필라델피아)이라는 뜻이다. 버가모 왕 앗탈로스 2세의 별칭 '필라델포스', 곧 '형제를 사랑하는 자'에서 나온 이름인데, 같은 낱말이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라는 말씀에 쓰였다(히 13:1; 벧후 1:7). 주님께서는 그 교회를 이렇게 칭찬하셨다(계 3:8).

계 3: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고로 다락방에서 발을 씻기신 주님을 본 요한이 형제 사랑을 그토록 증언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과 생명 가운데 있고,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과 사망에 머물러 있다.

5. 신약성경이 보여 주는 형제 사랑의 두 가지 본보기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신약성경이 증언하는 형제 사랑의 두 가지 예표는 무엇인가? 소극적으로는 가인같이 하지 말라는 것이요, 적극적으로는 주 예수님처럼 살라는 것이다.

먼저 소극적으로는 가인같이 하지 말아야 한다. 가인이 악한 자에게 속하여 아우를 죽였기 때문이다(요일 3:12). 가인이 죽인 형제는 아벨이었다. 가인은 아담의 첫째 아들이었으나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였다. 결국 마귀의 속성인 어둠에 속하여 '시기와 질투', '혈기와 분노'의 영을 받아들였고, 마침내 동생을 살인하고 말았다(창 4:5-8).

요일 3:12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그러므로 형제를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회개를 하여 자기 속에 있는 악한 영들을 내쫓아야 한다. 시기와 질투, 혈기와 분노의 영이 내 안에 남아 있는 한, 나도 가인처럼 형제를 미워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적극적으로는 주 예수님처럼 살아야 한다. 주 예수님은 자신의 친구가 구원받고 상속자가 되도록 하기 위하여 형제 사랑을 실천하신 분이기 때문이다(요 15:12-14). 그래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으셨다.

요 15:12-14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여기서 '친구'는 헬라어로 필로스(φίλος)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몸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그들을 '내 친구'라고 부르셨다(눅 12:4; 요 15:15).

눅 12:4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의 친구이자 훗날 자신의 형제가 될 자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셨다. 실제로 부활하신 뒤에 주님은 제자들을 처음으로 "내 형제들"이라고 부르셨다(마 28:10; 요 20:17). 그를 거룩하게 하시는 이가 그들을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신 것이다(히 2:11).

이러한 형제 사랑의 정신은 이미 구약 시대에도 왕 노릇 할 자들의 삶 속에 나타났다. 야곱의 넷째 아들 유다는 그의 형제인 베냐민을 진정으로 사랑하여 자기가 대신 종이 되겠다고 하였다(창 44:33).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 요셉도 자기를 판 형들을 포함한 열한 형제를 무진장 사랑해 주었다(창 45:4-5; 50:21). 그리고 이새의 여덟 번째 아들 다윗 왕도 요나단에게 끝없는 사랑을 펼쳐 주었다(삼상 16:10-11; 삼하 9:1). 고로 가인의 길은 형제를 죽이는 길이요, 예수님의 길은 형제를 위해 죽는 길이다. 앞의 길은 어둠에 이르고, 뒤의 길은 왕 노릇 하는 자리에 이른다.

6. 시내산 이전의 어떤 사건들 속에 이미 십계명의 의미가 드러나 있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거기에서 지켜야 할 법도를 어떻게 마련하신 것일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창조하신 인간이 범죄함으로 마귀에게 속한 자가 되어 가는 것을 하나하나 보셨다. 그리고 그것을 한꺼번에 말씀하신 것이 십계명(十誡命, Ten Commandments)이라고 필자는 본다. 그 사건은 여섯 가지 정도이다.

첫째, 함이 아버지의 수치를 드러낸 사건이다. 노아의 둘째 아들 함은 아버지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채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형제들에게 알림으로 아버지의 수치를 드러내어 떠벌렸다(창 9:20-22).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5계명(출 20:12)이 인류에게 필요함을 아셨을 것이다. 이 일로 함의 아들 가나안은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리라는 저주를 받았다(창 9:25). 동등한 형제의 권리를 박탈당한 것이다.

둘째, 가인이 아벨을 죽인 사건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 그러자 가인은 분노하여 자기 동생 아벨을 죽였다(창 4:4-8).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보시고 '살인하지 말라'는 제6계명(출 20:13)을 염두에 두셨을 것이다. 가인이 자기의 벌이 너무 무겁다고 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이지 않게 표를 주셨다(창 4:13-15). 그러나 가인의 후손들이 만들어 낸 하나님 없는 문화와 강포가 너무 심하였기에(창 6:11-12),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홍수를 통하여 그들을 심판하셨고 가인의 후손은 땅에서 끊어졌다.

셋째, 르우벤이 서모 빌하와 동침한 사건이다. 르우벤은 아버지의 첩이었던 빌하와 동침하였다(창 35:22).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간음하지 말라'는 제7계명(출 20:14)을 마음에 두셨을 것이다. 그래서 르우벤은 장자가 받을 수 있는 네 가지 축복을 상실하고 말았다(창 49:3-4; 대상 5:1). 먼저 첫째로, 아버지의 기업을 두 배로 받을 장자의 복(신 21:17)은 열한 번째 아들 요셉에게 돌아갔다. 그래서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각각 한 지파가 되어 두 몫의 기업을 받았다(창 48:5; 대상 5:1-2). 둘째로, 언약을 계승하는 축복은 넷째 아들 유다에게 돌아갔다. 유다가 자기 형제 요셉과 자기 민족을 살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후손으로부터 메시아가 탄생하였다(창 49:10; 대상 5:2). 셋째로,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할 수 있는 제사장적인 권한의 축복은 셋째 아들 레위에게 돌아갔다(신 10:8; 민 6:23-27). 넷째로, 열국이 굴복하고 형제들의 주가 되는 왕의 축복(창 27:29)은 요셉과 유다에게 돌아갔다(창 49:10, 26). 이 축복은 천국에 들어갔을 때 거기서 섬기는 자가 아니라 왕으로 사는 축복을 받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이기는 자가 왕 노릇 한다고 말씀하는데(계 3:21; 22:5), 요셉과 유다 같은 자들이 바로 그런 이기는 자들이다.

넷째, 야곱이 형의 장자의 명분과 축복을 가로챈 사건이다. 에서의 쌍둥이 동생 야곱은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사고(창 25:33), 아버지를 속여 장자의 축복까지 가로챘다(창 27:35-36).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도둑질하지 말라'는 제8계명(출 20:15)을 마음에 두셨을 것이다. 야곱은 그 일로 인하여 형 에서와 원수가 되어 외삼촌 집으로 도망하여 20년을 살았고(창 31:38, 41), 돌아올 때에는 자기와 자기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창 32:22)이 모두 죽을 위협에 처하였다(창 32:11).

다섯째, 믿음의 조상들이 거짓말한 사건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거짓말하는 것을 보시고 '거짓 증거하지 말라'(출 20:16)고 하셨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자기 아내를 누이동생이라고 속였다. 먼저 아브라함은 흉년이 들어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자기 아내 사래를 누이동생이라고 거짓말을 하였다(창 12:12-13). 하나님께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려 막아 주지 않으셨더라면(창 12:17) 이삭은 태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흉년이 들어 그랄 땅으로 들어갔을 때 자기 아내 리브가를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누이동생이라고 거짓말하였다(창 26:7). 이 일은 아브라함이 죽은 뒤에 있었던 일이다(창 26:1). 아브라함은 175세에 죽었고(창 25:7), 그때 에서와 야곱은 열다섯 살이었다(창 21:5; 25:26). 그러므로 이삭은 적어도 쌍둥이가 열다섯 살이 넘었을 때 이런 짓을 저질렀던 것이다.

그리고 이삭의 아들 야곱도 아버지 앞에서 축복을 받으려고, 자기가 에서가 아닌데도 어머니와 짜고 자신을 에서라고 거짓말을 하였다. 먼저는 자기가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라고 하였고(창 27:19), 또한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순조롭게 사냥하게 도와주셨다고 거짓말을 하였다(창 27:20). 이렇게 해서 형제의 난이 일어났다. 둘은 나중에 얍복 강을 건넌 뒤 화해하였고(창 33:4), 서로 다른 땅을 차지하고 살았다. 그러나 결국 에서의 후손이 야곱의 후손에게 악을 행함으로 인하여 에서의 후손은 남은 자가 되지 못하고 인류의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사실 맨 처음 거짓말을 한 사람은 가인이었다. 하나님께서 그가 쳐 죽인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을 때, 그는 알지 못한다고 하면서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하고 대들었다(창 4:9).

여섯째, 하와가 선악과를 탐낸 사건이다. 최초의 여자이자 아담의 아내였던 하와는 뱀의 꾐을 받아,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기 전에 선악과를 보고 그것을 먹고 싶어 하였다. 그리고 탐심을 부려 선악과를 따 먹었으며, 그의 남편 아담에게도 주어 인류가 최초로 범죄하게 되었다(창 3:6). 하나님께서는 이를 보시고 '탐내지 말라'는 제10계명(출 20:17)을 마음에 두셨을 것이다. 이것은 최초로 기록된, 금지된 대상에 대한 욕망과 불순종의 사례가 되었다. 그리하여 하와와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인류에게 사망이 들어왔다(롬 5:12). 여자에게는 임신하는 고통과 해산하는 고통이 찾아왔고 남편의 다스림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아담은 땀을 흘려야 소산을 먹게 되었으며, 영원토록 살 수 있도록 창조된 육체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창 3:16-19).

그렇다면 이 여섯 사건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갑자기 만들어 내신 도덕적 원칙이 아니라, 그 이전의 인간 역사 속에서도 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명령이라는 것이다. 특히 출애굽기 20장 이전에도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살인을 심판하셨고(창 4:10-12), 아브라함 시대에는 다른 사람의 아내를 범하는 일이 죄로 인식되었으며(창 20:3-9),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와 동침하는 것을 하나님께 죄를 짓는 일이라고 고백하였다(창 39:9). 고로 시내산에서 계명이 선포되기 전에, 인간의 역사 속에는 이미 그 계명을 어기는 죄악이 나타나 있었다.

7. 예수님의 새 계명은 왜 '서로 사랑하라'였으며, 그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셨는데 그것이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었을까? 인류의 죄악이 맨 처음 터져 나온 곳이 가인과 아벨이라는 형제 사이였기 때문이다. 첫 살인도, 하나님 앞에서의 첫 거짓말도 형제 사이에서 시작되었다(창 4:8-9).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 죄의 첫 출발점을 되돌리는 계명을 주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친구'라고 부르신 제자들을 요한일서는 '형제'라고 부른다(요일 3:14-16).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형제끼리 서로 사랑하라고 새 계명을 주신 것이다(요 13:34-35). 그런데 여기에 사용된 사랑은 '아가페'(ἀγάπη) 사랑으로서(요 13:34의 동사는 아가파테, ἀγαπᾶτε), 자기를 희생하여 남을 살리는 사랑이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으니, 그 사랑의 기준은 십자가이다(요일 3:16).

그러므로 참된 믿음은 형제를 미워하지 않고 그를 사랑하며, 그를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내어놓는 것, 곧 형제 사랑을 실천하여 그를 끝까지 잘 섬기는 것으로 나타난다(갈 5:6). 그러나 그것을 생색내지 않는 것이다.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오른편의 의인들은 자기들이 언제 주님을 섬겼는지조차 알지 못하였다(마 25:37-39). 고로 형제 사랑은 내가 했다고 내세우는 사랑이 아니라, 자기를 내어 주고도 기억하지 않는 사랑이다.

8.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어떤 복을 받으며, 어떻게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는가?

그렇다면 이 땅에서 믿음의 지체들인 우리 이웃을 형제처럼 사랑하는 자는 어떤 복을 받게 되는가? 그것은 세 가지 정도이다.

첫째, 주 예수님의 나라에 들어갈 때에 넉넉히 들어갈 수 있는 복이다. 베드로 사도는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더하는 가운데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고 한 뒤, 그리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넉넉히 주시리라고 하였다(벧후 1:5-11).

둘째,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차지할 상속자가 될 수 있는 복이다. 특히 형제들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보내신 주의 종들을 돕는다면, 그는 적어도 하늘에서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차지할 상속자가 될 수 있다. 그 비유가 바로 양과 염소의 비유이다(마 25:31-46). 임금은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창세로부터 그들을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고 하셨다(마 25:34).

셋째, 하늘에서 철장 권세를 받아 왕 노릇 하는 복이다. 결국 회개를 통해 악한 귀신들을 다 쫓아내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형제를 사랑함으로 이기는 자가 된다면, 그리하여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생명을 얻게 하고 상속자가 되게 한다면, 그는 철장 권세를 받아 하늘에서 왕 노릇 하는 자가 될 것이다(계 2:26-28).

계 2:26-28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그렇다면 지금 나는 무엇으로 물속에 빠진 것처럼 어려움 속에 있는 나의 형제를 섬기고,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가? 우리 주님께서는 형제 사랑을 실천한 빌라델비아 교회를 이기는 자의 표상으로 삼으시고, 천국에서 하나님 성전의 기둥 같은 존재가 되게 하겠다고 약속해 주셨다(계 3:7-13).

계 3: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그래서 우리 동탄명성교회 성도들과 회개와 천국복음을 접하게 된 모든 분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 성전의 기둥 같은 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땅의 교회에도 기둥 같은 존재가 있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주의 형제 야고보(갈 1:19)와 게바와 요한이 그러하였다(갈 2:8-9).

갈 2:8-9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9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그런데 바울은 그 기둥들과 친교의 악수를 나누었을 뿐 아니라, 자신도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 그래서 그는 생애 마지막에 의의 면류관이 자기를 위하여 예비되었다고 고백하였다(딤후 4:7-8). 필자는 바울도 그런 기둥 같은 자가 되었다고 본다.

딤후 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고로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넉넉히 들어가고, 상속자가 되며, 왕 노릇 하고,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된다. 그러나 형제를 미워한 에돔은 남은 자가 없이 사라졌다.

9. 나오며

에돔의 남은 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 품으신 원대한 뜻은 분명하다. 원래 멸망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방인들도 주를 찾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상속자가 되며, 왕 노릇 하는 자까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뜻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겨 축복을 잃었고, 그의 후손 에돔은 형제를 미워하여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러므로 에돔의 남은 자인 우리 이방인들이 이 시대에 붙잡아야 할 마지막 비밀은 두 가지이다. 이스라엘, 곧 이기는 자가 되는 것과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의 복을 사모해야 한다. 자신의 죄와 조상들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여 내 안에 있는 시기와 질투, 혈기와 분노의 영을 쫓아내야 한다. 그리고 내가 당한 고통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결의로 얍복 강의 야곱처럼 기도해야 한다. 또한 주님께서 우리의 발을 씻기셨으니, 우리도 형제의 발을 씻겨 주어야 할 빚진 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교회의 지체들과 새로 찾아오는 식구들과 주의 종들을 섬기되, 생색내지 말고 끝까지 섬겨야 한다.

바울은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더니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고백하였다. 우리도 그렇게 하자. 형제를 사랑함으로 이기는 자가 되어, 우리 모두가 천국에서 하나님 성전의 기둥 같은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6년 11월 08일(일) ·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