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주의(09)] 세대주의자들이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라고 믿는 구약의 예언들과 그 실제(이사야 2:1~4)
본 설교는 세대주의적 종말론의 한계와 오류를 비판하고, 구약의 예언들이 문자적으로 미래의 지상 천년왕국에서 성취된다는 주장이 갖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구약의 예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교회 공동체를 통해 영적으로 이미 성취되었으며, 궁극적인 완성은 재림 이후의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이루어진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세대주의적 도식에 얽매여 지상 천년왕국이나 헛된 유토피아를 좇기보다, 철저한 회개와 영적 무장을 통해 참된 장소적 천국과 영원한 상급을 준비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
1세대주의는 어떻게 한국 교회에 들어와 무엇을 남겼는가?본문 →2세대주의는 왜 구약의 예언을 지상 천년왕국으로 미루는가?본문 →3예루살렘은 언제부터 하나님의 이름을 두신 성이 되었는가?본문 →4말일에 예루살렘이 세계의 중심이 된다는 예언은 어떻게 성취되는가?본문 →5메시아는 언제 다윗의 보좌에 앉아 왕 노릇 하시는가?본문 →6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사는 세상은 언제 이루어지는가?본문 →7구약 예언을 바르게 푸는 열쇠는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본문 →강의 자료
그림 3 · 슬라이드 241. 들어가며
하나님은 빛이시다. 그런데 어둠이 있어야 빛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어둠의 길을 택한 사탄 마귀의 길을 막지 않으신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어떠하심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어둠을 조장하지는 않으신다. 필자가 세대주의(世代主義, dispensationalism)를 이야기하는 것도 이와 같다. 필자는 세대주의자들에게 억한 심정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도 우리의 형제다. 세대주의를 좋아하는 교회라 할지라도 그런 교회를 보고 너무 정죄할 필요는 없다. 다만 우리가 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 알려면 반대의 이야기도 들어 보아야 한다. 그래서 반대편의 주장을 살피는 것은 그것을 매장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라도 제대로 알아서 이 짧은 인생을 헛된 곳에 시간과 돈을 쓰며 허송세월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필자의 견해가 100%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앞으로 주님이 오시지 않고 30년이 더 지나 필자가 아흔 살이 될 때쯤, 필자보다 더 바른 견해를 가진 사람이 나타난다면 기꺼이 그를 따라가야 한다. 오히려 필자는 필자를 뛰어넘는 사람이 우리 성도 가운데서, 우리 교회의 교육자들 가운데서 나오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눈을 부릅뜨고 공부해야 한다. 흐리멍텅한 동태 눈으로는 안 된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쓰시는 영역이 서로 다르고 계시에는 진전이 있으니 오직 이것만이 옳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필자는 현존하는 가르침들을 종합하여 말씀을 전하고 있으니 잘 듣고 따라오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우리는 1800년에 태어나 1882년까지 살았던 영국 성공회 사제 출신의 존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의 세대주의가 미국에 전파되고, 그 영향을 받은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오면서 우리가 부득이하게 그들의 신학사상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우리 대한민국은 종교개혁자들의 신앙 전통을 이어받아 장로교회가 장자교회로서의 위상을 가지고 오늘까지 왔지만 그들의 주장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었다. 그 후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하늘의 계시에 대한 조명하심은 더 진전되었고, 하늘의 상태가 어떠한지는 더 확실해졌으며,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쓰여진 성경의 원문은 더 밝혀졌다. 그런데 세대주의자들은 구약의 예언들이 문자 그대로 이루어질 것 같지 않으니, 예수님께서 재림하신 뒤의 지상 천년왕국(千年王國, millennium)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 예언들은 정말 그때 이루어질 것인가? 아니면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 안에서 이루어졌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거꾸로 되돌려 아직 안 이루어졌다고 고집부리는 것인가?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세대주의자들이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라고 믿는 구약의 대표적인 예언들, 곧 예루살렘이 세계의 중심이 된다는 예언, 메시아가 다윗의 보좌에 앉는다는 예언,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산다는 예언을 차례로 살펴보면서, 무엇이 초림의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통해 이미 성취되었고 무엇이 재림 후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성될 것인지를 구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2. 세대주의는 어떻게 한국 교회에 들어와 무엇을 남겼는가?
세대주의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먼저 알아야 한다. 사실 세대주의는 두 갈래로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하나는 미국의 세대주의를 배운 선교사들을 통해서였다. 다른 하나는 중국으로 건너가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을 거친 지방교회 계열을 통해서였다. 이 지방교회 계열의 가르침은 매우 강력하게 공부를 하게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공부를 많이 한다는 목사들은 그 책들을 공부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거기도 세대주의는 세대주의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이 두 흐름이 합쳐져 세대주의의 엄청난 영향을 받고 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성경 번역조차 세대주의에 맞추어 요한계시록 20장 10절을 잘못 번역해 놓았던 것이다.
필자는 목회자의 양심으로, 알고 있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감추어 놓을 수는 없다. 우리 모두는 사실 성령을 받은 깨어 있는 사람들이다. 정신을 차리면 우리도 얼마든지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많은 교회가 "그것은 신비다, 알 필요 없다, 하나님의 지혜를 네가 어떻게 다 아느냐"며 성도들에게 아예 가르치지 않는다. 요한계시록은 손도 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우리 성도들이 마지막 때 우리의 모습을 알고 싶어 스스로 공부하다가 이단에 빠져 버리는 것이다. 우리 자녀들이 어떤 이단 단체에 한 번 빠지면 돌아오지 못하지 않는가!
그 단체가 쓰는 방법 중의 하나가 알레고리 해석(寓意的 解釋, allegorical interpretation)이다. 이것은 예전에 오리겐이 즐겨 쓰던 성경 해석 방법인데, 깨달음이 모든 것을 준다는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의 가르침과 닮아 있다. 그래서 위험한 것이다. 그것을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필자가 보기에 그 단체는 영지주의적 가르침이 이 지구상에서 가장 꽃을 피운 집단인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영지주의적 흐름이 지방교회 계열에도 들어 있다. 그래서 우리가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천국이 실제로 있는 곳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일 뿐이라는 상태적 천국의 가짜 교리에 넘어가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들어갈 천국은 장소적으로 이동하여 들어가는 실제의 천국이다. 새 하늘과 새 땅에 있는 새 예루살렘 성은 신부 자체가 아니다. 새 예루살렘은 그리스도의 신부들이 살 도시다(계 21:2).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고(마 18:3),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으며(마 5:20),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셨다(마 7:21). 모두 '들어간다'고 하셨다. 이는 그곳이 장소적 천국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 성을 신부라고 하며 상태적 천국을 가르치는 것은 위험하다. 영적 세계를 실제가 아닌 것처럼 가르치니, 그것을 따르는 사람은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지 못할 확률이 높아진다.
또한 그 계열에서는 천국에 들어가면 모든 사람이 똑같이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면 우리가 열심히 수고하고 노력한 것은 언제 상(賞給, reward)으로 받는가? 그들은 그것을 천년왕국에서 받는다고 말한다. 새 예루살렘 성에서 영원히 누릴 복을 천년왕국이 끝내 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가! 잘못 가르치는 사람은 자기만 성 밖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남들까지 성 밖으로 데려갈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 교회는 춘추전국시대와 같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는 말씀과 같다(삿 21:25). 진리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니 성도들은 이쪽으로 갔다가 저쪽으로 갔다가 정신이 없다. 언제까지 그럴 것인가? 누군가는 이것을 잡아 주어야 한다. 각 분야에 훌륭한 사람은 있지만 전체를 아울러 설명해 주어야 우리가 어느 위치에 와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시대에 필요하셔서 제대로 된 말씀을 전할 자로서 부족한 사람을 선택하시고 우리의 신앙체계를 바로 잡는 일을 행하고 계신다.
3. 세대주의는 왜 구약의 예언을 지상 천년왕국으로 미루는가?
세대주의가 지상 천년왕국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내세울 수 있는 본문은 이사야 2장 1-4절이다. 세대주의자들은 이 말씀을 이렇게 설명한다. 말세에 주님이 재림하시면 예루살렘이 세계의 중심지가 되고, 천년왕국의 수도는 지상의 예루살렘이 된다. 살아서 천년왕국에 들어간 이방 민족은 유대인들이 가르치는 율법을 배우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천 년 동안은 악이 없으므로 전쟁을 하지 않고,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며 살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이사야는 B.C.740년부터 B.C.680년경까지 약 60년 동안 예언한 선지자다. 그런데 그 뒤의 역사를 보라. B.C.586년에 남유다는 바벨론에게 멸망했고, 백성은 포로로 끌려갔다. B.C.538년에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은 B.C.516년에 스룹바벨 성전을 완공했다(스 6:15). 그러나 그 뒤로 예루살렘이 전쟁 없이 평화롭게 산 적은 한 번도 없다. 고고학자 에릭 클라인의 조사에 따르면 예루살렘은 두 번 완전히 파괴되었고, 23번 포위되었으며, 52번 공격을 받았고, 44번 함락과 탈환을 겪었다. 어떤 사람은 3천번의 파괴가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방인들이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 말씀을 배운 일이 있었는가? 오히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 취급하며 자기들만 잘 먹고 잘 살려고 했다. 이 말씀이 그대로 적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세대주의자들은 이것을 이 세상의 일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재림하신 뒤의 천년왕국의 일이라고 해석했다. 지금은 율법을 배우러 예루살렘에 갈 사람이 없으니, 천년왕국 때에 유대인들이 드디어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이사야 61장 6절을 붙인다.
사 61:6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니라
이방 나라 사람들이 재물을 가지고 와서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는 시기가 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은 과연 율법을 가르칠 만한 영적 수준이 되어 있는가? 예수님께서 오신 지 2천 년이 지났는데도 그들은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A.D.1세기 말에 회당의 18기도문(쉐모네 에스레)에 이단자를 저주하는 기도문이 더해졌고, 그 기도문은 지금도 회당 예배에 남아 있다. 2천 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것이다. 왜 그런가? 제사의 죄로 들어온 영들과 조상의 영들이 그들의 귀에 가득하여 고집과 불신앙과 의심이 그들을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이 하루아침에 변하여 율법을 가르치겠는가? 율법을 제대로 알았다면 진작 예수님을 인정했어야 한다.
그런데도 세대주의자들은 구약에는 유대인에 대한 예언과 이방인에 대한 예언이 따로 있으므로,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을 교회가 성취했다고 말하지 말라고 한다. 지금은 그렇게 될 것 같지 않지만 주님이 재림하시면 그들이 민족적으로 회개하여 제사장 나라로 세워질 것이니, 예루살렘에 빨리 제3성전을 짓고 그 나라가 회복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헌금을 보내자고 한다. 물론 필리핀에도 나이지리아에도 헌금을 보낼 수 있듯이 예루살렘에도 보낼 수 있다. 유대인들도 구원받아야 하니 유대인 전도를 위해 헌금을 쓰는 교회는 잘하는 것이다. 그 교회에 하나님께서 그런 사명을 주셨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이 다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이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세대주의자들이 말하면 그것이 맞다고 따라가 버리는 것이 문제다.
비유하자면 이것은 이미 분양받은 집에 들어가 살고 있으면서, 이 집이 아니라 모델하우스에 다시 들어가야 한다고 하는 것과 같다. 불타 없어질 모델하우스를 다시 세우자는 것이다. 아모스 9장 11절에서 하나님께서 일으켜 세우신다고 하신 다윗의 무너진 장막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신 예수님이시다(요 1:14). 그리고 그 장막은 교회로 확장되었다(고전 3:16). 그러므로 지금 교회는 유대인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세 전에 인류를 향해 디자인하신 계획이 성취되도록 힘써야 한다. 육체적 유대인들의 회복을 꿈꾸지 말고, 교회와 성령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시려는 영적 전쟁, 곧 거룩한 아마겟돈 전쟁에 나갈 영적 전사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영적인 군사로 준비되어 나팔절에 소집되고 아마겟돈 전쟁에 참여할 자가 될 때 주님께서 칭찬하시고 상을 더해 주실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을 추진하는 사람 속에 악한 영이 많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는 지도자가 된 뒤에 돈을 밝히거나 여자를 밝혀 반드시 타락하게 된다. 형식만 남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처럼 외식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철저히 회개를 하라고 한다. 예수님께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하셨다(마 4:17). 회개하지 않고 지도자가 되면 반드시 외식하는 자가 되기 때문이다.
4. 예루살렘은 언제부터 하나님의 이름을 두신 성이 되었는가?
그러면 이사야 2장의 말씀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이사야는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활동했다(사 1:1). 그의 아버지 아모스는 선지자 아모스와 다른 사람이다. 우리말로는 같은 이름이지만 히브리어로는 '아모츠'와 '아모스'로 다른 이름이다. 아모스 선지자는 웃시야 왕 때 사역하다가 끝났지만, 이사야는 그보다 훨씬 뒤까지 사역했다. 이사야서는 66장에 이르며, 이사야만큼 많이 예언한 선지자는 없다. 그가 받은 말씀 중의 하나는 이렇다(사 2:2-4).
사 2:2-4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3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4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여호와의 전의 산은 시온산이다. 그런데 시온산이 세상 모든 산 가운데 가장 높은가? 시온산은 해발 약 765m이고 에베레스트산은 8,848m다.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믿는다면 지금 빨리 시온산을 히말라야보다 높게 쌓아 올려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예루살렘은 얼음산이 되어 추워서 살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이것은 물리적인 높이가 아니라 예루살렘이 세계 모든 신앙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는 은유(隱喩, metaphor)적 표현이다. 성경에는 시적으로 표현한 말씀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히말라야에서 내려오는 사람이 시온산에 갈 때 오르자고 하겠는가, 내려가자고 하겠는가? 우리나라에서도 전라도 사람도, 부산 사람도, 그리고 서울보다 높은 곳에 사는 남양주 사람도 모두 서울에 '올라간다'고 한다. 서울이 수도이고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른다'는 말은 그곳이 신앙의 중심지라는 뜻이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든다는 것도 진짜로 칼을 녹여 농기구를 만든다는 것보다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면 싸우지 않아도 되는 평화로운 세상이 온다는 은유적 표현이다.
또 율법이 시온에서 나온다는 것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다. 신명기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장차 있을 것이라고만 말하고, 그곳이 예루살렘이라고 말하지 않았다(신 12:5). 그래서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두실 곳이 스스로 '벧엘'(하나님의 집)이라고 하며 그곳에 금송아지를 두었고(왕상 12:29), 세겜의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을 하나님께서 이름을 두실 곳이라고 믿기도 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은 언제부터 하나님의 이름을 두신 곳이 되었는가? 다윗이 여부스 족속에게서 시온 산성을 빼앗은 뒤부터다. 처음에 그곳은 다윗 성이라 불렸다(삼하 5:7, 9). 그런데 다윗이 이곳을 하나님의 도성이라고 하면서부터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이름을 두는 장소가 되었다. 다윗은 왕이 된 후에 법궤만 예루살렘으로 가져왔고, 여호와의 성막과 번제단은 여전히 기브온 산당에 있었다(대상 16:39). 성막과 법궤가 따로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라고 하며(삼하 7:2), 성전을 지어 번제단과 법궤를 한곳에 모시려 했다. 그러나 다윗은 전쟁을 많이 하여 피를 많이 흘렸으므로 성전을 짓지 못했고(대상 22:8), 평화의 왕 솔로몬이 성전을 지어 법궤를 안치한 뒤에 "주께서 영원히 계실 처소로소이다"라고 고백했다(왕상 8:13). 고로 예루살렘과 시온산이 하나님의 전이 있는 곳이 된 것은 나중 일이다.
다윗이 피를 많이 흘렸다는 말을 들으니 생각나는 것이 있다. 우리도 전사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을 죽이는 전사가 아니라 귀신을 때려잡는 전사가 되어야 한다. 사람에게는 부드럽게 대하고 귀신에게는 단호하게 대해야 한다. 우리가 싸울 상대를 정확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북이스라엘이 망한 뒤 남유다가 역사를 주관하게 되자, 그들은 모든 것을 자기중심으로 풀어 갔다. 그래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그리심 산에 성전을 세우고 약 200년 동안 제사를 드리자, B.C.2세기 말에 하스몬 왕조의 대제사장 요한 힐카누스가 군대를 이끌고 가서 그 성전을 파괴해 버렸다. 예루살렘이 본부이고 너희는 지점인데 어디서 감히 허락도 없이 성전을 세웠느냐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집이다. 우리도 그래서는 안 된다. 우리만 잘났다고 말하는 것은 곤란하다. 필자도 틀릴 수 있다. 더 좋은 말씀이 있다면 그리로 가도 필자는 전혀 반대하지 않는다.
5. 말일에 예루살렘이 세계의 중심이 된다는 예언은 어떻게 성취되는가?
그렇다면 예루살렘이 세계의 중심지가 된다는 말씀은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먼저 이 말씀은 초림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서 인류를 구속(救贖, redemption)하시는 사건이 펼쳐질 것이라는 강한 암시를 준다. 예수님께서 인류를 위해 돌아가실 곳이 어디인가? 동탄은 아니다. 그런 예언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모리아 산이 있는 예루살렘(대하 3:1), 그 성 밖의 골고다에서 돌아가셔야 했다(요 19:17). 그것이 주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계 구원의 역사가 그곳에서 펼쳐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특별히 예루살렘을 정하신 데는 다윗이 있다. 천국에서 성도가 누릴 최고의 신분은 왕 노릇 하는 것인데, 이 땅의 왕들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여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왕적 통치를 이룬 사람이 다윗이다. 원래 시온 산성은 다윗 성이었다. 그런데 다윗이 이곳을 하나님의 성이라고 부르자, 하나님께서 다윗의 그 마음을 아시고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도성으로 인정해 주셨다. 그래서 우리가 장차 들어갈 천국의 도성 이름도 새 예루살렘 성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가져가신 것이다. 얼마나 다윗이 마음에 드셨으면 주님께서는 자신을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라고 하시고(계 22:16),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라고 하시며(계 3:7), 오죽 하셨으면 다윗의 동네에서 나셨겠는가(눅 2:11)!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마음에 든다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수 있다(마 20:16). 안 될 이유가 무엇인가? 주님만 사랑하고 목숨을 드리면 되고, 받은 은사와 달란트에 충성하면 된다. 남의 것을 부러워하다가 가랑이가 찢어지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 선지자를 영접하면 선지자의 상을 받고, 작은 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주어도 상을 잃지 않는다고 하셨다(마 10:41-42).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 생명나무의 생명을 주어 지구와 온 우주를 다스리게 하실 계획이 있었다. 그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 속죄가 필요하게 되었지만, 이미 속죄를 받은 우리가 원래의 계획을 따라간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는가!
고로 예루살렘의 궁극적인 성취는 사람들이 몰려가는 지상의 도시가 아니라 진짜 예루살렘이다. 곧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 성이다. 사도 요한은 그것을 이렇게 보았다(계 21:2-3).
계 21:2-3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여기에 초막절의 장막, 곧 아모스 9장 11절의 장막이 나온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는 예수님 안에 하나님이 계셔서 예수님만이 다윗의 장막이셨다. 그런데 천국에서는 하나님의 장막이 새 예루살렘 성이 되어 사람들이 그 안에 들어가 산다. 지금 우리도 그 다윗의 장막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 도성의 이름이 왜 새 예루살렘인가? 그건 다윗 때문이다. 그렇다면 훗날 여러분이 들어간 마을의 이름이 여러분의 이름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선배들이 이미 다다른 곳을 이렇게 말했다(히 12:22).
히 12: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도 시온산이 있다. 필자가 확인한 바로는 천국의 새 예루살렘 성 안에 산이 하나 있는데, 땅에서 약 800km까지는 성도들이 집을 짓고 사는 영역이고, 그 위로 약 1,600km는 원통형으로 올라가 그 꼭대기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다. 생명수가 그 산 꼭대기에서 타원형으로 아래로 돌아가면서 흐르며, 산은 꼭대기에서부터 아래까지 24개로 나뉘어 각 마을에 성도들이 살고 있다. 이 산을 시온산이라 부르는 것은 다윗의 산성이 시온 산성이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여기서 큰 도전을 받았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면 이 땅에서 쓰던 이름이 천국의 영원한 이름이 되는 것을 보고 말이다. 예를 들어 큰 마을인 사라 마을 안에는 룻 마을도 있고 보아스 마을도 있다. 24장로의 큰 마을 안에 작은 마을들이 있는 것이다. 룻과 보아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이름으로 불리는 작은 마을도 생길 수 있다. 내 마음에 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에 들면 그렇게 될 수 있다. 그러나 교만하지 말고 먼저 회개하고 충성해야 한다. 회개하지 않고 그 일을 하려다가는 천국에 지어 놓은 이름마저 찢겨 나갈 수 있다.
그러면 천년왕국의 수도가 예루살렘이라는 말은 성경 어디에 나오는가? 나오지 않는다. 천년이 찬 뒤에 사탄이 옥에서 놓여 곡과 마곡을 미혹하여 일으키는 전쟁, 곧 아마겟돈 전쟁에서 악한 영들이 둘러싸는 곳을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했다(계 20:9).
계 20:9 그들이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고
여기에는 성도들의 진이 첫째로, 사랑하시는 성이 둘째로 나온다. 그런데 사랑하시는 성이라고 했지 예루살렘이라고 하지 않았다. 예루살렘일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러나 천년왕국의 수도가 예루살렘이라는 말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세대주의는 그것을 어디서 가져오는가? 이사야 2장 1-4절을 가져와 짜깁기한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천년왕국의 수도는 하늘의 새 예루살렘이다. 그곳은 악이 모두 없으므로 영원히 전쟁하지 않는다. 지상 천년왕국은 천 년이 끝나면 또 전쟁하지 않는가? 미가 4장 1-3절에도 같은 말씀이 나오는데, 이것도 말세에 지상의 예루살렘이 세계의 중심이 된다는 뜻이 아니다. 고로 예루살렘은 초림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속을 이루신 곳으로서 한때 세계의 중심이 되었으며, 그 궁극적 완성은 하늘의 새 예루살렘 성이다.
6. 메시아는 언제 다윗의 보좌에 앉아 왕 노릇 하시는가?
세대주의가 두 번째로 내세우는 것은 메시아가 다윗의 보좌에 앉는다는 이사야의 예언이다(사 9:6-7).
사 9:6-7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세대주의자들은 이 본문을 천년왕국에서 예수님께서 왕 노릇 하신다는 근거로 끌어온다. 그러나 6절은 한 아기가 태어난다고 말한다. 초림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오신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세대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남유다가 멸망한 뒤로 다윗의 왕좌에 앉은 왕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는가? 없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왕이셨는가?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셨지만 실제로 통치하지는 않으셨다. 그래서 진짜로 왕 노릇 하실 때는 천년왕국 때라는 것이다.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 세대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미혹받지 않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다윗의 왕좌는 언제 세워졌는가? 필자가 보기에 누가복음은 이러한 구약 성경을 해설해 주는 책이다.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했다(눅 1:32).
눅 1: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다윗처럼 왕 노릇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정치적인 왕 노릇을 하러 오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고 하셨다(요 18:36). 주님은 영적 세계에서 사탄 마귀의 보좌와 통치를 끝장내시려고 오셨다. 그래서 귀신을 쫓아내신 뒤에 성령을 보내 주셔서 이 땅에서는 성령으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셨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진짜로 왕 노릇 하신 것은 부활하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을 때부터다. 다윗은 B.C.1040년에 태어나 B.C.970년에 죽었으니, 다음 시편은 B.C.1000년경에 쓴 것이다(시 110:1-3).
시 110:1-3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2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 3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이 시편에서 "내 주"는 '아도나이'이신 예수님을 가리킨다. 예수님께서도 이 말씀을 직접 인용하셨다. 하나님께서 원수들, 곧 사탄 마귀와 귀신들을 예수님의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예수님은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다. 그리고 마가는 주 예수께서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고 기록하여, 시편 110편이 성취되었음을 밝혔다(막 16:19). 또 새벽 이슬같이 맑고 깨끗한 주의 청년들이 거룩한 옷을 입고 왕 노릇 하시러 오시는 예수님을 따라 아마겟돈 전쟁에 참여할 것이다. 나이가 팔십이 되었어도 속이 깨끗해지면 청년이다. 깨끗해지면 눈이 초롱초롱하게 맑아진다. 그러나 나이가 이십 대라도 귀신이 많으면 동태 눈처럼 멍하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왕 노릇 하시게 된 것은 그냥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어 이 땅에 보내셨다 할지라도 엄청난 시련과 시험을 통과하게 하신 뒤에 맡기신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히 5:7-9).
히 5:7-9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예수님께서도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도록 기도하셨다(눅 22:44). 나는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식이 아니었다. 그 힘든 여정을 다 통과하셔서 결국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신 것이다. 그런데 시편 110편만 보고 예수님께서 하나님 보좌 오른편에 따로 놓인 보좌에 앉으셨다고 착각한다. 그것은 권능의 우편이다(마 26:64). 오른편에 보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필자도 예전에는 잘못된 삼위일체를 철저히 믿었기에, 천국에 가면 가운데에 아버지의 보좌, 오른쪽에 예수님의 보좌, 왼쪽에 비둘기 같은 성령의 보좌가 있는 줄 착각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보좌가 하나뿐이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그 보좌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계 3:21).
계 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예수님께서 이기셔서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으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나오신 하나님이시니 그 보좌에 앉으실 수 있지만, 그 통치와 심판의 보좌에는 원래 여호와만 홀로 앉아 계셨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셔서 그 많은 고통과 시련을 겪으시고, 마귀와 싸워 다 이기신 뒤에 그 보좌에 앉으셨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람들도 이런 고난을 겪고 여기에 온다면 나의 통치권을 그에게도 주겠다고 하셨다. 이것이 바로 왕 노릇 하게 하시는 것이다. 구약 시대에는 어느 누구도 자기가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나를 믿고 따르는 자들이 목숨을 바쳐 나의 나라를 위해 힘쓴다면 나의 통치권을 그에게 주겠다고 하신 것이다. 그래서 천국에 올라간 자 가운데 왕 노릇 할 자에게 보좌를 주시는데(계 20:4), 그 보좌가 14만 4천에게 마련되어 있고(계 14:1) 그 앞쪽에 앉은 자들이 장차 왕 노릇 할 것이다.
그러므로 절대 공짜가 없다. 여러분의 헌신 하나하나가 다 천국에서 상이 된다. 예배에 한 번 나온 것도 공짜가 없다. 천사들은 불꽃 같은 눈으로 지켜보며 오늘 예배에서 정신을 차렸는지 졸았는지까지 보고한다. 그것이 모여서 천국에서의 우리의 집이 되고 지위와 신분이 된다. 천국에서 누릴 지위와 신분은 여러분이 지금 만들어 가는 것이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예정되어 있다 할지라도 그렇게 살지 않으면 허사가 된다. 오늘 쓰임받다가도 내일 타락하면 헛것이 된다. 그래서 날마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한다(빌 2:12). 오늘 잘했다고 내일도 잘한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섰다고 생각할 때 넘어질까 조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죽을 때까지 긴장을 풀지 말고 주의 나라를 위해 힘써야 한다.
고로 메시아의 보좌가 천년왕국 때 세워진다는 것은 세대주의자들의 자기 해석이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고 승천하셔서 그 보좌를 받으셨고, 지금 천국에서 왕 노릇하고 계시며, 영원토록 그 보좌에 앉아 다스리실 것이다. 해석은 자유이니 많이 하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러분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하나를 들어도 제대로 들어야 한다.
7.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사는 세상은 언제 이루어지는가?
세대주의자들이 "이 말씀은 진짜다, 여기를 보라, 이런 상태가 천년왕국이지 않겠느냐, 천년왕국이 진짜 있지 않겠느냐" 하고 가장 자신 있게 내세우는 본문이 있으니, 그것은 이사야 11장 6-9절의 말씀이다. 그렇다면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사는 세상은 언제 이루어지는가? 이사야는 이 세상을 세 번에 걸쳐 말하고 있다. 그 세 본문을 합치면 답이 나온다.
첫째, 이사야 11장은 동물들이 서로 해치지 않는 세상을 말한다(사 11:6-9).
사 11:6-9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지금 시대에는 노아의 홍수이후 육식을 허락한 때부터,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있으면 이리가 어린 양을 잡아먹는다. 표범과 어린 염소, 곰과 암소도 그렇다. 독사는 어린아이를 물어 버린다. 동물들의 폭력성과 잔인성이 지금 이곳에 여전히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이 하나도 없는 세상이 온다고 하니, 세대주의자들은 그것이 이 세상에서는 안 될 것 같으므로 귀신이 다 빠져나가 없는 지상 천년왕국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렇다면 천년왕국이 되면 동물 속의 포악성과 잔인성이 갑자기 빠져나가 사자가 어린 양과 친구가 되겠는가? 하나님께서 하시면 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악은 계속 더 증가할 뿐이지 줄어들지 않는다.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상함도 없다는 곳이 있다면 그곳은 새 예루살렘 성, 곧 천국의 시온산일 것이다.
둘째, 이사야 35장은 사람이 고침을 받는 세상을 말한다(사 35:5-6).
사 35:5-6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사막이 바뀌고 승냥이가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나는 세상이다(사 35:7). 그런데 여기서는 사람까지 바뀐다. 맹인이 눈을 뜨고, 귀먹은 자가 듣고, 저는 자가 뛰고, 말 못 하는 자가 노래한다. 이 일은 언제 이루어질 것인가? 천년왕국 때인가, 아니면 이미 예수님의 초림 때부터였는가? 세례 요한이 옥에서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그이가 당신이냐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마 11:4-5).
마 11:4-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5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귀신에 의해 해를 받아 고통받던 시간이 예수님께서 오시자 해결된 것이다. 이사야 35장의 말씀이 예수님의 초림으로 이미 성취되고 있었던 것이다.
셋째, 이사야 65장은 이 세상이 언제인지를 밝힌다. 65장 25절은 11장의 말씀을 다시 요약한다.
사 65:25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그런데 이 단락은 17절에서 시작하여 25절로 마친다. 17절은 이렇게 시작한다(사 65:17).
사 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이것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온다는 요한계시록 21장 1절의 말씀과 같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신다고 하셨다(사 65:18). 고로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는 세상은 천년왕국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증언한다.
이렇게 세 본문을 합치면 답이 분명해진다. 동물들의 악한 본성이 사라진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사람 속에 있는 죄의 독을 해독하여 평화의 세상을 이루신다는 것을 동물에 빗대어 말씀하신 것이다. 죄의 독이 빠지면 사람은 서로 미워하지 않고, 서로 죽이지 않으며, 해 됨도 상함도 없는 사람으로 바뀐다. 예수님께서는 초림 때 직접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고치셔서 사람에게 그 세상을 맛보게 하셨다. 그러나 동물들의 악성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않으셨다. 그것은 재림 후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성될 것이다. 초림의 예수님을 통해 맛보기로 이루어지고, 재림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천국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지상에서 동물들이 싸우지 않는 세상이 문자 그대로 와야 하며 그것이 천년왕국이라고 고집을 피운다면 어쩔 수 없다.
생각해 보라. 일곱 나팔로 해와 달과 별들이 떨어지고 세상이 다 파괴되어 가는데, 주님께서 무엇 하러 이 땅을 다시 만들어 그 위에서 왕 노릇 하게 하시겠는가? 천국이 얼마나 좋은데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동물들이 바뀌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해독하신 죄의 독이 우리의 것이 되도록 회개를 전파해야 한다. 유대인을 살리자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자는 것이다. 예수의 피가 들어와 우리의 죄를 없애고 독이 빠지면, 형제가 형제를 해치지 않고 오히려 도와주고 세워 주는 사람이 된다. 그것이 더 중요하다.
8. 구약 예언을 바르게 푸는 열쇠는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가 구약의 예언을 풀 때 그 열쇠는 무엇인가?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 5:39). 그러므로 구약의 모든 예언에서 예수님을 찾아야 한다. 다윗의 무너진 장막이 예수님을 통해 실현되고 교회로 확장되었듯이, 구약의 예언은 세 단계로 성취된다.
첫째, 초림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 해 성취된다. 예루살렘은 예수님께서 구속을 이루신 곳으로서 세계의 중심이 되었고, 다윗의 왕위는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받으셨으며, 맹인이 보고 못 걷는 사람이 걷는 세상은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고치심으로 맛보기로 이루어졌다.
둘째, 교회 생활을 통해 더 실행된다. 이것은 다음 시간에 예수님과 사도들이 이 예언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했는지를 살펴보며 자세히 다룰 것이다.
셋째, 재림 후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전히 완성된다. 하늘의 새 예루살렘 성과 시온산,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는 세상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얼마든지 풀어 갈 수 있는 것을 굳이 지상 천년왕국을 끌어와 풀 필요가 있겠는가? 이단들은 하나같이 지상 천년왕국을 말한다. 굳이 그것을 따라갈 필요가 없다. 천년왕국은 없는 것이 아니다. 필자가 계속 가르쳐 온 대로, 천년왕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고 승천하신 뒤부터 지금 천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예수님은 첫 열매이시고, 우리는 그 뒤를 따라 천국에 올라가며, 왕 노릇 할 자는 지금도 거기에서 왕 노릇 하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똑같이 왕 노릇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땅의 나라에 왕과 대신이 있고, 제사장 체계에 대제사장과 제사장과 레위인과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가 있듯이(수 9:21), 천국에서도 성도의 지위가 그렇게 나뉘어 지금 천년왕국이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주님께서 옥에 가두었던 용을 꺼내 주시는 것이 대환란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에서 누릴 지위와 신분을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달려가야 한다. 그런데 우리 속에 귀신이 많으면 무거워서 휴거(携擧, rapture) 때에 올라가지 못할 수 있다. 왜냐하면 휴거는 아마겟돈 전쟁에 참여할 전사를 뽑는 것이기 때문이다. 간첩이 많이 들어 있는 사람을 누가 군사로 쓰겠는가? 쓰지 않는다. 그러므로 일찍이 속에 있는 것들을 회개하여 내보내야 한다. 그래서 주님 오실 때 알곡으로 참여하고, 아마겟돈 전쟁에 참여하여, 천국에서 영원토록 왕 노릇 하는 단계까지 이르러야 한다.
9. 나오며
세대주의자들은 이사야 2장, 9장, 11장의 예언이 지금은 문자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재림 후 지상 천년왕국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루살렘이 세계의 중심이 된다는 말씀은 초림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서 구속을 이루심으로 성취되었고, 하늘의 새 예루살렘 성에서 완성된다. 메시아가 다윗의 보좌에 앉는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고난을 이기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으심으로 성취되었다.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사는 세상은 초림의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으시고 병을 고치심으로 맛보기로 이루어졌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성된다. 이미 성취된 것을 삭제하고 모든 것을 지상 천년왕국으로 미루는 것은 분양받은 집을 두고 모델하우스를 다시 세우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들을 미리 알고 대비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것은 천국에서 누릴 지위와 신분과 상급을 준비하기 위함이다. 우리의 삶이 주님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그리고 주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를 통해 성취하시려는 일들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지도록 우리 자신을 내드려야 한다. 회개하여 속을 깨끗하게 하고 받은 은사와 달란트에 충성하는 자는 천국에서 상과 지위를 얻고, 하나님 마음에 들면 그 이름이 천국에서 불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가르침을 따라 헛된 곳에 시간과 물질과 은사를 쏟은 자는 죽은 뒤에 이를 갈며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필자는 필자를 말씀 사역자로 알고 따라오는 분들이 죽어서 결코 이를 갈거나 후회하지 않도록 이 말씀을 증언한다. 우리 모두가 바른 길을 따라 끝까지 달려가, 천국에서 영원토록 왕 노릇 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6년 11월 01일(일) · 정보배 목사
![이번 주 말씀 [세대주의(09)] 세대주의자들이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라고 믿는 구약의 예언들과 그 실제(이사야 2:1~4)](https://i.ytimg.com/vi/GJJlSJp4910/mqdefault.jpg)



![[세대주의(09)] 세대주의자들이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라고 믿는 구약의 예언들과 그 실제(이사야 2:1~4)_2026-11-01(일) – 이미지 1](/files/attach/images/218/963/331/dd43648797fb4c933098bb6632285aad.webp)
![[세대주의(09)] 세대주의자들이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라고 믿는 구약의 예언들과 그 실제(이사야 2:1~4)_2026-11-01(일) – 이미지 2](/files/attach/images/218/963/331/1ecb55d9b537500135bd251bae7188c7.webp)
![[세대주의(09)] 세대주의자들이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라고 믿는 구약의 예언들과 그 실제(이사야 2:1~4)_2026-11-01(일) – 이미지 3](/files/attach/images/218/963/331/48fe173b537f8c415ebb46b480b5d05c.webp)
![[세대주의(09)] 세대주의자들이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라고 믿는 구약의 예언들과 그 실제(이사야 2:1~4)_2026-11-01(일) – 이미지 4](/files/attach/images/218/963/331/33155b85723e005caaa9f8ff7df06141.webp)
![[세대주의(09)] 세대주의자들이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라고 믿는 구약의 예언들과 그 실제(이사야 2:1~4)_2026-11-01(일) – 이미지 9](/files/attach/images/218/963/331/b3ec12168ba3d21ddfa33eb8e78820c6.webp)
![[세대주의(09)] 세대주의자들이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라고 믿는 구약의 예언들과 그 실제(이사야 2:1~4)_2026-11-01(일) – 이미지 10](/files/attach/images/218/963/331/c9f33e46ac52c006dda51bc4f35c1fe4.webp)
![[세대주의(09)] 세대주의자들이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라고 믿는 구약의 예언들과 그 실제(이사야 2:1~4)_2026-11-01(일) – 이미지 11](/files/attach/images/218/963/331/df4cb1fc1379fe16214cd3506567d394.webp)
![[세대주의(09)] 세대주의자들이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라고 믿는 구약의 예언들과 그 실제(이사야 2:1~4)_2026-11-01(일) – 이미지 12](/files/attach/images/218/963/331/c646f50ddaefd5540d1f27c5d00bd528.webp)
![[세대주의(09)] 세대주의자들이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라고 믿는 구약의 예언들과 그 실제(이사야 2:1~4)_2026-11-01(일) – 이미지 13](/files/attach/images/218/963/331/3b06b5d9ff1ef7d34cea4b04f11c1b11.webp)
![[세대주의(09)] 세대주의자들이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라고 믿는 구약의 예언들과 그 실제(이사야 2:1~4)_2026-11-01(일) – 이미지 14](/files/attach/images/218/963/331/ab9092937229f960af0d365ad85b00e0.webp)
![[세대주의(09)] 세대주의자들이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라고 믿는 구약의 예언들과 그 실제(이사야 2:1~4)_2026-11-01(일) – 이미지 15](/files/attach/images/218/963/331/590df9c868c76b49cd2a6aaf0ce8fd90.webp)
![[세대주의(09)] 세대주의자들이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라고 믿는 구약의 예언들과 그 실제(이사야 2:1~4)_2026-11-01(일) – 이미지 16](/files/attach/images/218/963/331/38fac32749c8beb85862a11f1f03b594.webp)
![[세대주의(09)] 세대주의자들이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라고 믿는 구약의 예언들과 그 실제(이사야 2:1~4)_2026-11-01(일) – 이미지 17](/files/attach/images/218/963/331/c30675f67c8f50fabe9930e0b297ea9f.webp)
![[세대주의(09)] 세대주의자들이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라고 믿는 구약의 예언들과 그 실제(이사야 2:1~4)_2026-11-01(일) – 이미지 18](/files/attach/images/218/963/331/d04034cc1ad439cce1aeb4e4c837000f.webp)
![[세대주의(09)] 세대주의자들이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라고 믿는 구약의 예언들과 그 실제(이사야 2:1~4)_2026-11-01(일) – 이미지 19](/files/attach/images/218/963/331/adc75bd411c37a791784fa11a680f850.webp)
![[세대주의(09)] 세대주의자들이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라고 믿는 구약의 예언들과 그 실제(이사야 2:1~4)_2026-11-01(일) – 이미지 20](/files/attach/images/218/963/331/b4d53473028d0a286259138e7806c81e.webp)
![[세대주의(09)] 세대주의자들이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라고 믿는 구약의 예언들과 그 실제(이사야 2:1~4)_2026-11-01(일) – 이미지 21](/files/attach/images/218/963/331/e763d616249ff8c183d96b6dcbff65fe.webp)
![[세대주의(09)] 세대주의자들이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라고 믿는 구약의 예언들과 그 실제(이사야 2:1~4)_2026-11-01(일) – 이미지 22](/files/attach/images/218/963/331/55021de35ebd7f5d6a52e432a521bb59.webp)
![[세대주의(09)] 세대주의자들이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라고 믿는 구약의 예언들과 그 실제(이사야 2:1~4)_2026-11-01(일) – 이미지 23](/files/attach/images/218/963/331/051c0d8b517a06808ad4b26c5845bb50.webp)
![[세대주의(09)] 세대주의자들이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라고 믿는 구약의 예언들과 그 실제(이사야 2:1~4)_2026-11-01(일) – 이미지 24](/files/attach/images/218/963/331/5dc14500ea389a29609c9de0a64359ba.webp)
![[세대주의(09)] 세대주의자들이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라고 믿는 구약의 예언들과 그 실제(이사야 2:1~4)_2026-11-01(일) – 이미지 25](/files/attach/images/218/963/331/144d86586db87435beb63344a545a445.webp)
![[세대주의(09)] 세대주의자들이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라고 믿는 구약의 예언들과 그 실제(이사야 2:1~4)_2026-11-01(일) – 이미지 26](/files/attach/images/218/963/331/560e05db21fc643494755bed4b0b9feb.webp)
![[세대주의(09)] 세대주의자들이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라고 믿는 구약의 예언들과 그 실제(이사야 2:1~4)_2026-11-01(일) – 이미지 27](/files/attach/images/218/963/331/be5722510d3ea62ad19e3e856a590497.webp)
![[세대주의(09)] 세대주의자들이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라고 믿는 구약의 예언들과 그 실제(이사야 2:1~4)_2026-11-01(일) – 이미지 28](/files/attach/images/218/963/331/8d8db6cfe893c4a1bb7e23d634d9debe.web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