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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4MxIBkjJnOk 
날짜 2025-11-26
본문말씀 마태복음 24:15~51
설교자 정보배목사

2025-11-26(수) 수요기도회

제목: [마태복음강해(53)] 대환난의 모습과 주의 재림의 징조들과 그 시기에 관한 말씀(마24:15~51)_2025-11-26(수) 

https://youtu.be/4MxIBkjJnOk 

 

 

1. 들어가며

  역사는 계속 반복된다. 과거의 역사를 잘 살펴보면 오늘날 우리 시대에 일어날 일을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다. 그래서 역사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과서요 선생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성경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통해 장차 일어날 미래의 일들을 우리에게 미리 보여주시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과 성전 파괴를 예언하셨다(마 23:37~39, 24:1~2). 이는 당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종들과 아들을 거역하고 죽인 죄에 대한 심판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예언은 단순히 A.D. 70년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마지막 때(종말)에 일어날 대환난과 재림의 징조를 보여주는 모형이 되는 것이다. 

  이번에 함께 나누는 마태복음 23장 후반부와 24장의 말씀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시고, 제자들의 질문에 답하시며 종말의 때에 있을 징조들과 대환난의 모습, 그리고 그 시기에 대해 가르쳐 주신 내용이다. 이를 흔히 '감람산 강화' 또는 '소(小)계시록'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가 가져야 할 바른 종말론적 신앙관을 정립해야 한다. 특히 '환난 전 휴거'와 같은 잘못된 가르침에 미혹되지 않고, 성경이 말씀하는 정확한 종말의 타임라인과 징조들을 깨달아, 깨어 충성하며 그날을 예비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예루살렘 멸망의 원인과 과정, 종말의 징조들(재난의 시작), 대환난의 모습, 그리고 재림의 시기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8가지 질문을 통해 깊이 있게 살펴보고자 한다.

 

2. 예루살렘 성과 성전은 왜 파괴되었으며, 이는 마지막 때에 무엇을 예표하는가? (마 23:37-39; 24:1-2)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해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마 23:38)고 선언하셨다. 그리고 성전 건물을 보며 감탄하는 제자들에게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마 24:2)고 예언하셨다. 그럼 예루살렘 성과 예루살렘 성전은 어떻게 멸망당하고 파괴되었는가?

  첫째, 파괴의 원인을 살펴보자. 예루살렘 멸망에는 결정적인 원인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죽이고, 마침내 하나님의 아들(메시아)까지 거부하고 죽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 그들을 품으려 수많은 선지자를 보내셨으나, 그들은 끝내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마 23:37).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죄의 대가를 반드시 물으신다.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배역은 결국 처참한 심판을 불러왔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둘째, 역사적으로 이것은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이 예언의 말씀은 A.D. 70년 로마의 티투스(디도) 장군에 의해 철저히 성취되었다. 예루살렘은 포위되어 극심한 기근에 시달렸고, 약 110만 명이 굶어 죽거나 칼에 죽었다. 성전은 불탔고, 금을 찾으려는 로마 군인들에 의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파헤쳐졌다. 남은 자들 9만 7천명은 포로로 잡혀가 흩어지고 말았다. 이스라엘이 역사의 현장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셋째, 이것은 마지막 때의 또 다른 예표가 된다. 이 사건은 단순히 과거의 역사로 끝나지 않는다. 이는 마지막 때에 있을 대환난과 심판의 모형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때에도 세상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참된 종들을 핍박하고 죽일 것이며, 진리를 거부할 것이다. 그리고 적그리스도를 따를 것이다. 그 결과 전무후무한 대환난과 심판이 임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역사의 거울을 통해 오늘날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종들을 알아보고 그들의 메시지(회개와 천국 복음)를 듣는 것이 사는 길이다. 만약 오늘날에도 참된 종들을 이단시하고 핍박한다면, 우리 나라도 역시 예루살렘과 같은 멸망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3. 세상 끝(종말)이 오기 전에 일어날 '재난의 시작' 징조 8가지는 무엇인가? (마 24:4-14)

  제자들의 질문("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에 대해 예수께서는 먼저 '재난의 시작'에 해당하는 8가지 징조를 말씀하셨다. 이는 예수님의 승천 이후 재림 직전까지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현상들을 가리킨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째, 미혹(거짓 그리스도)이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5절). 역사상 수많은 자칭 재림 예수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육체를 입고 오는 자들은 모두 가짜다. 예수님은 영광 중에 구름 타고 오신다.

  둘째, 전쟁과 난리가 있을 것이다. 민족과 나라 간의 전쟁이 끊이지 않고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6-7절).

  셋째, 기근과 굶주림이 있을 것이다. 곳곳에 식량 부족과 굶주림이 창궐할 것이다(7절).

  넷째, 지진과 쓰나미가 있을 것이다. 계속되는 지진의 빈도와 강도가 점점 더 증가할 것이다(7절).

  다섯째, 전염병이 휩쓸 것이다. (누가복음 21:11 참조)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이 창궐할 것이다.

  여섯째, 핍박과 미움이 성행할 것이다. 성도들이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환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며 미움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9절).

  일곱째, 배교와 불법이 가득할 것이다. 많은 사람이 실족하고 서로 잡아 주며, 불법이 성하여 사랑이 식어가기 때문이다(10, 12절).

  여덟째, 천국 복음이 전파될 것이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14절)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런데 위와 같은 징조들은 요한계시록 6장에 나오는 일곱 인(Seal)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흰 말(복음 전파/혹은 미혹), 붉은 말(전쟁), 검은 말(기근), 청황색 말(사망/전염병)이 달리는 시대가 처음 네 가지 인의 모습이요 바로 지금의 모습이다. 그러나 곧 대환난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그러면 순교자가 나올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다섯째 인의 모습이다. 그리고 여섯째 인이 떼어지면 해와 달과 별들이 망가진다. 그리고 일곱째 인이 떼어질 때 주님이 오신다.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이 눈 앞에 이른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이 징조들을 마주하면서 마지막 때가 가까웠음을 깨닫고 깨어 있어야 한다. 특히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끝이 온다는 말씀을 기억하며, 회개와 천국 복음을 전하는 사명에 더욱 더 힘써야 한다.

 

4. 마지막 때에 있을 ‘대환난’은 어떤 모습이며, '멸망의 가증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마 24:15-28)

  예수께서는 다니엘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시며,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그때에 큰 환난(대환난)이 있겠음이라"(15, 21절)고 경고하셨다.

  그렇다면 첫째로, '멸망의 가증한 것'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일차적으로는 A.D. 70년 로마 군대(이방인)가 예루살렘 성전(거룩한 곳)을 포위하고 파괴할 때 로마의 깃발을 흩날렸던 사건을 의미한다. 그런데 당시 예수님의 경고를 기억했던 성도들은 포위가 잠시 풀린 틈을 타 산(펠라 지역)으로 도망하여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짐승)가 하나님의 성전(나오스=교회)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 칭하며 우상(666)을 세우는 일(살후 2:4; 계 13장)을 의미한다. 이것이 대환난의 결정적인 신호탄이 될 것이다.

  둘째로, 대환난의 특징은 어떠한가? 그것은 첫째, 전무후무한 환난이 될 것이다.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없었고 후에도 없을 극심한 환난이기 때문이다(21절). 둘째, 거짓 기적과 미혹이 있을 것이다.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행하며(예: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함, 계 13:13)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려 한다(24절). 고로 능력이 나타난다고 무조건 믿어서는 안 된다. 셋째, 환난의 날들을 감해주실 것이다. 그 때가 되면 환난이 너무 극심하여 견딜 육체가 없기에,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들을 위해 그 날들을 감해 주실 것이다(22절). 이는 환난의 기간을 단축시켜주는 것으로서, 환난의 끝자락(일곱째 나팔)에 성도들을 휴거시켜 보호해 주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에 보면, 많은 성도들이 '환난 전 휴거'를 기대하고 있지만, 성경은 "그날 환난 후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리라"(29-30절)고 명확히 말씀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성도는 환난을 통과하며 믿음을 검증받고 알곡으로 익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7째 나팔이 불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 곧 일곱 대접 심판이 내리기 어느 시점에 성도들의 공중휴거가 있을 것이다(계 14:14~16). 우리는 도피주의가 아닌, 환난을 이길 수 있는 재림 신앙과 순교적 각오로 무장해야 한다.

 

5. 주님의 재림 시기는 알 수 있는가? 우리는 과연 어느 시점에 와 있는가? (마 24:32-36)

  예수께서는 재림의 시기에 대해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하셨다.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른 줄 알라"(32-33절)고 하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한다(렘 24장; 호 9:10). 사실 예수님의 무화과 나무 저주사건처럼, 이스라엘은 A.D. 70년에 멸망하여 말라버린 나무와 같았으나, 1948년 5월 14일 기적적으로 독립하여 다시 잎사귀를 내기 시작했다. 예수님은 이 일이 일어나면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일이 다 일어날 것이라고 하셨다(34절). 1948년 독립 이후 77여 년이 지났다. 우리는 지금 주님이 문 앞에 와 계신, 말세지말(末世之末)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날(day)과 그 때(hour)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36절)고 하셨다. 정확한 날짜와 시간(Day and Hour)은 철저히 하나님 아버지의 주권에 속한 비밀이기 때문이다(행 1:7). 시한부 종말론자들처럼 날짜를 계산하거나 예단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깨어 있기를 원하시기에 그 날을 감추어 두셨다. 우리는 시기를 알려고 하기보다, 언제 주님이 오셔도 맞이할 수 있도록 항상 준비된 상태로 살아가야 한다.

 

6. 그 날과 그 때를 모른다는 말은 무엇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인가?

  예수께서는 인자의 임함(파루시아)를 어떻게 설명하셨는가? 예수님께서는 그날과 그때는 알 수 없지만, 그날이 올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두 남자와 두 여자’의 비유를 통해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하셨다. 

  먼저, 첫째로, 그날은 지구 반대편에서 사는 사람들과 동시에 경험할 사건이라고 말씀하셨다(낮과 밤의 공존처럼 말이다). 마태복음 24장 40-41절을 보면, 두 남자가 낮에 ‘밭’에서 일하고 있고, 두 여자도 역시 낮에 방안에서 ‘맷돌질’을 하고 있다. 이는 주님이 오시는 시점이 ‘낮’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런데 평행 본문인 누가복음 17장 34절을 보면, “그 에 둘이 자리(침상)에 누워 있으매”라고 말씀한다. 즉, 한쪽에서는 잠을 자는 ‘밤’이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밭을 갈고 맷돌질을 하는 ‘낮’이라는 것이다. 이는 2천 년 전에는 상상하기 힘든 과학적 사실, 즉 지구가 둥글다는 것과 주님의 재림(휴거) 사건이 전 지구적으로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임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한국이 낮일 때 지구 반대편의 아르헨티나는 밤인 것처럼, 주님이 오시는 순간 지구촌 어느 곳은 낮이고 어느 곳은 밤이지만, 택하신 자들을 모으시는 역사는 동시에 일어난다.

  그렇지만 그날이 되면 둘로 완전히 갈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마24:40-41)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둘째로, 그러면 이러한 상황은 주님의 재림의 상황인가 아니면 성도의 공중휴거의 상황인가? 그것은 이 본문을 헬라어 원문에서 직역하면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마 24:40-41 그때에 둘(두 남자)이 밭 안에 [장차] 있을 것이다. 하나(한 남자)는 옆에 취하여지고 있고, 그러나 하나(한 남자)는 내버려지고 있다41 (두 여자)이 맷돌 안에서 갈고 [있다]. 하나(한 여자)는 옆에 취하여지고 있고, 그러나 하나(한 여자)는 내버려지고 있다.

  그렇다. 이 상황은 그날 낮에 밭에서 일하고 있던 남자들 중에 한 남자는 천사들에 의해 붙들려 휴거되어 공중으로 올라갈 것이겠지만, 한 남자는 내버려지고 말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낮에 한 방 안에서 멧돌질하고 있는 여자들 중에 한 여자는 천사들에 의해 붙들려 휴거되어 공중으로 올라갈 것이지만 한 여자는 내버려지고 말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성도들 중에 일어날 분리의 상황을 말씀하신 것이다. 즉 이 날은 알곡 성도들의 휴거의 날로서, 어떤 이는 익은 곡식이므로 휴거되어 공중으로 올라가겠지만 쭉정이와 같은 성도나 음녀와 같이 놀아난 성도들은 그날에 남겨지게 될 것임을 말해준다. 그러면 남겨진 이들은 마지막 대환난을 끝까지 다 통과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때 남겨진 자들은 구원받기가 거의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순교하는 것이 아니고서는 구원을 받기도 구원을 지키기도 어려울 상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그 날에 있을 일에 대해 좀 더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눅17:34-35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35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얼핏 보면 마태복음의 표현과 똑같이 보일지 모르나, 그것은 누가복음의 번역자가 번역을 잘못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누가복음의 말씀은 마태복음의 것과 다른 것이었는데, 마치 마태복음처럼 번역해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헬라어 원문은 어떻게 되어 있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다. 

눅17:34-35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이 밤에 두 명(남자)이 한 침상 위에 있을 것이다. 한 남자는 옆에 취해질 것이다. 그러나 딴 이는 내버려질 것이다. 35 두 명이 그것에 대하여 맷돌질하고 있는 여자들로 있을 것이다. 한 여자는 옆에 취해질 것이다. 그런데 딴 여자는 내버려질 것이다. 

  그렇다. 이 말씀에 의하면, 그날이 되면 성도와 불신자도 역시 완전히 갈라지게 될 것을 말해준다. 왜나하면 두 번째의 한 남자나 두 번째의 한 여자는 '딴 이'와 '딴 여자'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딴'이라는 말은 같은 종류의 다른('알로스')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다른('헤테로스')이라는 단어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휴거시키는 은밀한 그날이 갑자기 도래하면, 불신자와 성도들도 역시 두 부류로 완전히 분리될 것이다. 그러나 마태복음의 말씀처럼, 그 날에는 동시에 성도들 중에서도 알곡 성도와 쭉정이 성도로 각각 따로 구분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겉모습만 그럴듯한 기독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밤에 잠을 자든, 낮에 밭을 갈든, 우리는 깨어 있어 준비된 ‘알곡’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주님이 오시는 그 순간 천사들의 손에 이끌려 영광스러운 혼인 잔치로 올라갈 것이다. 그렇다. 휴거는 환난이 거의 끝나갈 즈음에, 그러나 진노의 대접 재앙이 쏟아지기 직전에, 전 지구적으로 그리고 순식간에 일어날 것이다.

  

7.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의 올바른 자세는 무엇인가? (깨어 있음과 충성)

  고로 예수께서 공중으로 성도를 휴거시키는 그 날과 그 시간은 결코 알 수 없으므로, 성도가 취해야 할 자세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깨어 있는 것'이요, 또 하나는 맡겨진 일에 '충성'하는 것이다.

  첫째, 깨어 있어야 한다(42-44절).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고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셨다. 이는 마치 노아의 때에 사람들이 홍수가 나서 멸망하기까지 깨닫지 못하고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육체적인 삶)에만 몰두했듯이(38-39절), 마지막 때에도 사람들은 세상 일에 취해 영적으로 잠들어 있을 것이다. 여기서 노아의 때와 같다고 말씀하심은 그날이 올 때에도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것'을 계속하고 있을 것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은 식욕과 성욕만을 위해 사는 것으로서 사람의 육신의 일만을 도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날이 롯의 때와 같다(눅 17:28~29 )고도 말씀하셨는데, 이는 그날이 올 때에 사람들이 여전히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지을 것'이라고 하셨다. 이것도 역시 말세가 되더라도 사람들이 여전히 음식을 추구하고 돈을 추구하며 삶의 안정감만을 추구할 것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이것도 역시 육신의 안녕을 도모하는 것 뿐이다. 그러므로 말세가 될수록 사람들은 두 부류가 나눠질 것이다. 육신적인 일만을 추구하는 자와 영적인 일을 추구하는 자로 말이다. 고로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세상 풍조에 휩쓸리지 않고, 영적인 눈을 뜨고 시대를 분별하며,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기름(성령과 회개)을 준비하는 것이다(마 25장).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살지 말고, 영혼의 때를 위하여 기도하며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둘째,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야 한다(45-47절).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제때에) 양식(음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고 하셨다. 고로 주님이 오실 때 칭찬받게 될 종은 맡겨진 사명에 충성하는 자이다. 특히 주의 종(목회자)들은 성도들에게 '때를 따라 돕는 양식'을 먹일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마지막 때이므로, 윤리 도덕적인 설교나 기복적인 설교가 아니라, 회개와 천국 복음, 재림과 심판에 관한 말씀을 전하여 성도들을 알곡으로 준비시켜야 한다. 이것이 이 시대에 필요한 양식이다. 평신도들 역시 각자에게 맡겨진 사명(가족 구원, 전도, 봉사 등)에 충성하며, 자신의 달란트를 남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충성된 종에게는 주님께서 "모든 소유를 맡기시는"(47절), 즉 천국에서 왕 노릇 하는 권세와 상급을 주실 것이다.

 

8. 나오며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시며, 동시에 마지막 대환난과 재림의 징조들을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셨다. 역사는 반복된다. 예루살렘이 경고를 무시하고 멸망했듯이, 오늘날 깨어있지 않은 자들은 갑자기 닥칠 환난과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무화과나무의 잎이 무성한 시기, 즉 주님이 문 앞에 와 계신 시대를 살고 있다. 전쟁, 기근, 전염병, 미혹 등 종말의 징조들이 이미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두려워하거나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대신 우리는 날마다 깨어 있어야 한다. 세상의 쾌락과 안일에 빠지지 말고, 날마다 회개하며 거룩함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맡겨진 일에 충성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의 자리에서,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며 영혼을 살리는 일에 전심전력해야 하는것이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46절)고 하셨다. 환난을 통과하고 끝까지 믿음을 지킨 자들, 곧 깨어 충성하며 주님을 기다린 자들은 주님께서 예비하신 영광스러운 천국 잔치에 참여시켜 줄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날에 이르러 주님으로부터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 진행되는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꼭 참여해야 한다. 

 

2025년 11월 26일(수)

정보배 목사

 

[설교요약]

 본 설교는 마태복음 24장을 해설하며, 역사는 반복의 순환이므로 과거 예루살렘 멸망의 역사를 통해 마지막 때의 대환난(大患難)을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목회자는 성경적 근거를 들어 환난 전에 성도가 들림 받는다는 주장을 강하게 반박하며, 참된 신앙인이라면 반드시 환난을 통과하여 알곡과 쭉정이가 분별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재림의 징조로는 이스라엘의 독립(무화과나무 비유)과 더불어, 사람들이 노아의 때처럼 세상일에만 몰두하는 현상을 들며 종말이 문 앞에 이르렀음을 지적합니다. 하지만 그 날과 그 시간은 오직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성도들은 항상 깨어 있으면서 때를 따라 영적 양식을 나누어주는 충성되고 현명한 종의 자세로 재림을 준비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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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태복음강해(53)] 대환난의 모습과 주의 재림의 징조들과 그 시기에 관한 말씀(마24:15~51)_2025-11-26(수)

  2. [마태복음강해(52)] 예루살렘 파괴와 종말의 때에 있을 징조들과 마지막 대환난의 모습(마23:37~24:28)_2025-11-19(수)

  3. [마태복음강해(51)] 위선적인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책망과 그들이 받게 될 7가지 화(마23:1~36)_2025-11-12(수)

  4. [마태복음 강해(50)] 부활과 가장 큰 계명과 그리스도와 다윗의 관계에 대한 주님의 말씀(마22:23~46)_2025-11-05(수)

  5. [마태복음 강해(49)] 혼인잔치의 비유와 세금 및 부활 논쟁에 나타난 예수님의 절대적인 권위(마22:1~33)_2025-10-22(수)

  6. [마태복음강해(48)] 예수님의 권위 질문을 두 아들 및 포도원 농부의 비유로 답하시다(마21:23~46)_2025-10-15(수)

  7. [요한복음강해(17)] 아버지와 아들이 하는 일과 그분의 증언 및 유대인들의 반응(요5:19~47)_2025-10-08(수)

  8. [마태복음강해(47)]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과 성전정화 및 무화과나무 저주가 들려주는 교훈(마21:1~22)_2025-10-01(수)

  9. [마태복음강해(46)] 포도원 품꾼의 비유와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의 요구에 대한 주님의 응답(마20:1~34)_2025-09-24(수)

  10. [마태복음강해(45)] 이혼 논쟁과 어린아이 축복과 영생얻기를 바라는 어느 부자 청년의 고백(마19:1~30)_2025-09-17(수)

  11. [마태복음강해(44)] 천국에서 큰 자 및 교회의 권징과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마태복음 18:1~35)_2025-09-10(수)

  12. [마태복음강해(43)] 성전세 논쟁과 천국에서 큰 자는 누구인가?(마17:24~18:14)_2025-08-27(수)

  13. [마태복음 강해(42)] 변형되신 예수님과 간질병 귀신들린 아들을 치유하심(마17:1~23)_2025-08-20(수)

  14. [마태복음강해(41)] 베드로의 신앙고백의 의미와 참된 제자의 길은 무엇인가?(02)(마16:13~28)_2025-08-13(수)

  15. [마태복음강해(40)] 베드로의 신앙고백의 의미와 참된 제자의 길은 무엇인가?(01)(마16:13~28)_2025-08-06(수)

  16. [마태복음강해(39)] 칠병이어의 기적 및 표적과 누룩의 교훈에 담긴 하나님의 뜻(마15:29~16:12)_2025-07-30(수)

  17. [마태복음강해(38)] 장로들의 전통과 가나안 여인의 믿음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마15:1~28)_2025-07-23(수)

  18. [마태복음강해(37)] 왜 예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과 물 위를 걷는 기적을 행하셨을까?(마14:13~36)_2025-07-16(수)

  19. [마태복음강해(36)] 나사렛 사람들의 배척과 세례 요한의 순교에 담긴 하나님의 뜻(마13:53~14:12)_2025-07-09(수)

  20. [마태복음강해(35)] 7가지 천국비유에 나타난 천국의 특성은 무엇인가?(02)(마태복음13:31~52)_2025-07-02(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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