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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r8PUNW4iJUs
날짜 2025-12-24
본문말씀 마태복음 25:1~46
설교자 정보배 목사

2025-12-24(수) 수요기도회

제목: [마태복음강해(56)] 열 처녀와 달란트 비유,양과 염소의 비유에 나타난 성도들의 최후의 거처들(03)(마25;1~4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r8PUNW4iJUs

 

 1. 들어가며

  마태복음 25장에는 3가지 비유가 나온다. 그런데 이 비유는 오늘 우리에게 사람이 죽은 후에 어디로 가게 될 것인지, 최후 거처에 대해 매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리고 이러한 비유들은 나와 상관없는 단순히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 밤이라도 주님이 내 영혼을 부르시면 내가 당장 부딪혀야 할 내 영혼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주님은 이 세 가지 비유를 통해 우리가 종말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단계적으로 가르쳐 주시고 있다.

  첫째, '열 처녀 비유'. 이 비유의 핵심은 10절과 13절에 있다. 바로 그것은 "준비하고 있으라""깨어 있으라"는 것이다. 미련한 처녀들은 등이 있었지만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다. 신랑이 더디 오자 다 졸며 잤는데, 이것은 우리가 육신의 죽음을 맞이하는 '개인적 종말'을 의미한다.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러므로 평소에 기름(성령과 회개)을 준비해 놓지 않으면, 막상 주님이 부르실 때 당황하여 문밖으로 쫓겨나게 된다. , 이 비유는 개인의 종말을 앞두고 영적으로 깨어 준비되어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둘째, '달란트 비유'. 이 비유의 핵심은 21절의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착하다'는 것은 단순히 마음씨가 곱다는 뜻이 아니다. 마태복음 2445절과 연결해 보면 "지혜 있는 종"이 되는 것을 말한다. 지혜란 무엇인가? "주인이 왜 나에게 이것을 맡기셨을까?"를 생각하는 것이다. 주인의 선한 의도를 파악하고, 맡겨진 재능과 기회를 활용하여 주님을 위해 이익을 남기는 것, 그것이 바로 '충성'이고 '지혜'. 반대로 악하고 게으른 종은 주인을 오해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 비유는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맡겨진 사명에 대해 얼마나 지혜롭게 충성하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셋째, 오늘 중점적으로 다룰 '양과 염소의 비유'. 이것은 '우주적 종말'을 다룬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31)라는 말씀처럼, 주님이 재림하셔서 온 인류를 한자리에 모으고 최종 심판을 하시는 장면이다. 앞선 두 비유가 내면의 준비와 사명에 대한 태도를 다뤘다면, 이 마지막 비유는 그 믿음이 실제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열매 맺었는지를 심판하는 최종 결산이다.

 

 2. 달란트 비유에서 '착한 종''악한 종'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달란트 비유에서 주인이 종들을 평가하는 기준은 그들이 '얼마나 많이 남겼느냐'보다, 주인의 마음을 얼마나 잘 헤아렸느냐 하는 '지혜'에 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은 주인을 선한 분으로 믿었다. "주인이 내게 왜 이 귀한 달란트를 맡기셨을까? 나를 믿고 기회를 주신 것이구나. 이것을 잘 활용해서 주인을 기쁘게 해드려야지."라고 생각했다. 주인을 좋게 보니 일이 즐겁고, 능동적으로 움직여 이익을 남겼다. 이것이 바로 지혜다.

  반면 '악하고 게으른 종'은 주인을 악하게 오해했다. 그는 "주인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는 착취자다. 나를 부려 먹고 이익만 챙겨가려고 이걸 맡겼구나."라고 생각했다. 주인을 나쁜 놈으로 보니 일하기가 싫어졌고, 결국 받은 것을 땅에 묻어두는 게으름을 피웠다. 하나님을 나의 헌금이나 뺏어가고 노동력을 착취하는 분으로 오해하는 자들이 바로 악한 종이다.

  필자를 보라. 나는 전남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효자촌)에서 태어났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효자비를 받을 만큼 '()'DNA가 흐르는 집안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힘들게 산에서 땔감을 구해오시면, 어두운 산길 입구까지 마중을 나갔던 기억이 있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내 안에 가득했다. 이 효심의 DNA를 물려받은 나는 이것을 육신의 부모를 전도하는 데 썼다. 고집 센 아버지를 1년 만에 전도하고, 글을 모르시는 어머니를 5년 동안 설득하여 결국 두 분 다 천국으로 보내드렸다. 더 나아가 나는 이 ''의 마음을 영의 아버지인 하나님을 섬기고, 영적 가족인 성도들을 섬기는 데 쓰고 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기질과 재능, 즉 달란트가 무엇인지 깨닫고, 그것을 주님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는 것. 이것이 바로 착하고 충성된 종의 모습이다.

 

 3.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왜 하필 '어린 염소'로 비유하셨는가?

  예수님은 심판 때에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처럼 하리라고 하셨다. 그런데 헬라어 원문을 보면 아주 충격적인 사실이 발견된다. 양은 '프로바톤(probaton)'이라고 하여 '다 자란 양'을 뜻하는 단어를 썼는데, 염소는 '에리포스(eriphos)'라고 하여 '새끼 염소'를 뜻하는 단어를 썼다.

  왜 하필 '새끼 염소'일까? 다 자란 염소나 흑염소는 뿔이 있고 색이 검어서 양과 확연히 구분된다. 하지만 어린 염소, 특히 흰 털을 가진 새끼 염소는 겉보기에 양과 매우 비슷하다. 멀리서 보면 누가 양이고 누가 염소인지 구분이 안 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교회 안에 '양 같은 염소'가 섞여 있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똑같이 예배드리고, 봉사하고, 헌금하니까 다 같은 성도()처럼 보인다. 그래서 평소에는 같은 우리 안에 섞여서 산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즉 목자가 아침에 양들을 불러낼 때나 마지막 심판의 날이 되면 그 정체가 드러난다.

  염소의 특징이 무엇인가? 들이받는 것이다. 목자가 인도하려 해도 뿔로 받고 말을 안 듣는다. 풀을 먹어도 양은 윗부분만 뜯어 먹고 남겨두는데, 염소는 뿌리까지 다 파헤쳐서 땅을 망가뜨린다. 교회 안에도 겉모습은 성도지만, 목자의 말에 순종하지 않고 들이받으며 공동체를 해치는 염소 같은 존재들이 있다. 주님은 마지막 날에 이들을 정확하게 골라내어 영벌에 처하신다.

 

 4. 오른편에 있는 ''들은 왜 자신들의 선행을 기억하지 못하는가?

  심판 때 오른편에 선 의인()들은 주님께 칭찬을 듣자 깜짝 놀라며 묻는다. "주여, 우리가 언제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시게 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37). 이들은 자신들이 한 착한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칭찬받기 위해서나, 자신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서 계산적으로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도움이 필요한 형제들을 보고 불쌍히 여겨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들은 '무의식적 선행'을 했다.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았다. 내가 이걸 하면 복을 받겠지, 내가 이걸 하면 사람들이 알아주겠지 하는 마음이 없었다. 그저 목자 되신 주님을 따라가다 보니, 주님의 마음이 머무는 곳에 내 손길도 머물렀을 뿐이다. 이들은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라는 칭호를 듣는다. 이미 창세로부터 예비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자들이다. 생색내지 않고,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순수한 사랑, 이것이 진짜 양들의 특징이다.

 

 5. 왼편에 있는 '염소'들은 왜 심판을 받는가?

  반면 왼편에 선 자들(염소)은 주님의 책망을 듣고 억울해하며 항변한다. "주여, 우리가 언제 안 했습니까? 우리가 주님을 공양하지 않은 적이 있습니까?"(44). 이들의 문제는 무엇인가? 이들은 악한 범죄를 저질러서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죄는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지 않은 죄'이자, 철저히 '계산적인 신앙'이다.

  그들은 자기 유익을 위해서만 움직였다. 목사를 돕거나 교회를 섬길 때도, 나에게 이득이 되거나 내 이름이 드러나는 일에는 열심을 냈다. 헌금을 해도 내 이름이 주보에 나오는지, 목사님이 강단에서 내 이름을 불러 축복해 주는지에 관심이 있었다. 이름이 빠지면 시험에 들어 교회를 떠나기도 한다. 내가 예전에 그런 교인을 보았다. 감사헌금 명단에 이름 한 번 빠졌다고 교회를 떠나버리더라. 나중에 알고 보니 헌금을 안 했는데 했다고 우긴 것이었다. 염소들은 티가 나지 않는 일, 보상이 없는 일, 나에게 득이 되지 않는 지극히 작은 자를 돕는 일에는 무관심했다. 그들은 주님을 섬긴다고 했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을 섬긴 것이다. 이것이 바로 '외식'이다. 주님은 이런 자들을 향해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해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고 엄중히 선고하신다.

 

 6.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주님께 한 것이라는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주님은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하셨다. 여기서 '지극히 작은 자'는 단순히 세상의 불우이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은 훌륭한 일이지만, 그것만으로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니다. 참고로 그렇게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의 후손은 물질적으로 복을 받고 산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말씀은 가난한 사람을 도우면 천국간다는 그러한 말씀이 아니다. 헬라어 원문을 보면 "예수님의 형제들 중에 지극히 작은 자"를 가리킨. 이는 일차적으로 예수님을 믿는 형제 자매들을 의미하며, 더 깊이는 복음을 위해 헌신하다가 스스로 가난해지고, 병들고, 옥에 갇힌 '주의 종들과 선교사들'을 의미한다. 그들은 주님을 위해 세상의 부귀영화를 버리고 스스로 작아진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선교지에서 이름 없이 빛 없이 사역하다가 병들었으나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선교사님들, 오직 복음 하나 전하겠다고 핍박받는 주의 종들.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아무런 대가 없이 주님 대하듯 섬기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다. 내 스승 목사님이 부친의 임종을 지킬 때, 영안이 열려 시커먼 어둠의 영(사망의 영)이 발끝에서부터 덮쳐오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약하고 작아진다. 이렇게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도움이 절실한, 가장 약한 상태에 있는 주의 자녀들을 돌보는 것이야말로 천국 상급을 결정하는 기준이다.

 

 7. 나오며: 염소의 탈을 벗고 양이 되어라

  충격적인 사실은, 염소들은 끝까지 자기가 염소인 줄 모른다는 것이다. 그들은 "주여 주여" 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고, 나름대로 봉사도 했기에 당연히 천국에 갈 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면에는 이기심과 외식이 가득했다. 그러므로 염소는 자기가 염소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기에 결코 회개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회개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그럼 우리는 어떠한 사람인가? 날 때부터 양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다 죄악 가운데 태어나며,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지 않은 채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하고 구원을 얻고, 충성하여 양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회개할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귀하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람이 회개하고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내 안에 계산적인 마음, 생색내고 싶은 마음, 자기 유익을 구하는 염소의 본성이 있다면 철저히 '회개'하라. "주님, 제가 그동안 사람에게 보이려고 신앙생활 했습니다. 내 유익만 구했습니다. 용서해 주옵소서."라고 말이다.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이키면, 들이받던 염소의 기질이 온순한 양의 성품으로 바뀔 것이다. 왜냐하면 내 속에 들어있는 악한 영들이 떠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거창한 업적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이름 없이 빛 없이, 지극히 작은 자를 섬기는 그 진실한 사랑을 보시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간 이 말씀을 거울삼아 나를 비춰보고, 참된 양이 되어 영원한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넉넉히 들어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란다.

 

20251224(

정보배 목사

 

[설교요약]

이 설교는 마태복음 25장의 세 가지 비유를 통해 성도들이 마주할 개인적 종말과 우주적 종말의 실재성을 경고하며 철저한 영적 준비를 촉구합니다. 열 처녀 비유는 깨어 있는 준비를, 달란트 비유는 각자에게 맡겨진 직분과 재능에 대한 지혜롭고 충성된 헌신을 강조하며, 마지막 양과 염소의 비유는 주님의 형제이자 소외된 자들에게 베푼 조건 없는 사랑의 실천이 심판의 기준이 됨을 보여줍니다. 특히 저자는 겉모습은 비슷하나 본질이 다른 양과 어린 염소를 대조하며, 자기 유익을 구하는 가식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이름 없는 헌신과 진실한 회개를 통해 새 예루살렘 성 안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텍스트는 죽음 이후 즉각적으로 임하는 심판을 인식하고,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서 천국 시민권을 소유한 자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력한 복음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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