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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강해(04)] 민수기의 전체내용과 민수기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들(03)(민1:1~4)

민수기 1:1~4정보배 목사조회 2읽는 시간 약 32분

설교핵심

이 설교는 민수기의 전체적인 구조와 구약 속에 담긴 그리스도의 예표를 다루며, 신자들이 영적 전사로 거듭나기 위한 회개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출애굽 1세대의 실패와 2세대의 회개를 대조하며, 죄로 인한 징계에서 벗어나 참된 의미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철저한 회개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합니다. 또한 민수기에 등장하는 만나, 붉은 암송아지의 재, 반석의 생수, 장대에 달린 놋뱀, 그리고 42번의 진을 치는 여정 등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예표임을 구체적으로 풀어냅니다. 궁극적으로 이 설교의 목적은 성도들이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고, 궁극적인 안식처이자 좋은 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도록 영적으로 무장시키는 데 있습니다.

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

1민수기는 왜 백성의 수가 아니라 영적 전사의 수를 센 책인가?2출애굽 1세대의 38년 광야 생활은 왜 의미 없는 삶이 되었는가?3만나·붉은 암송아지의 재·반석의 생수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예표하는가?4불뱀은 무엇이었으며, 백성은 왜 '우리가 범죄하였다'고 고백했는가?5장대 위의 놋뱀은 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예표인가?6죄의 독을 이기는 생명은 무엇이며, 요 11:25-26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7출애굽의 42번 진 친 여정은 왜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하는가?
설교 본문 (민 1:1-4) ·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군대로 부르신다. 민수기는 백성의 수를 세고 기록했다는 뜻의 책인데, 그 수를 두 번 센다. 1장에서는 출애굽 1세대를, 26장에서는 출애굽 2세대를 센다. 그런데 하나님이 세신 것은 단순한 인구가 아니었다. 싸움에 나갈 만한 자의 수였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군대가 될 사람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며, 결국 하나님의 군대가 되지 못하고 광야에서 쓰러져 없어져 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힘과 지혜와 능력으로는 절대 하나님의 전사가 될 수 없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한다. 그 은혜를 우리에게 끼쳐 주시는 분이 장차 오실 메시아이시며, 민수기에는 그분에 관한 예표(豫表, type)가 원래 아홉 가지 나온다. 필자는 그중 도피성과 도피성의 대제사장을 나누어 열 가지로 정리했다. 지난 시간까지 광야의 만나, 붉은 암송아지의 재, 반석의 생수, 이 세 가지를 살펴보았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민수기가 영적 전사를 뽑는 책이라는 사실과 출애굽 1세대의 38년이 남긴 교훈을 먼저 정리하고, 지난 세 가지 예표를 간단히 복습한 뒤, 민수기 21장의 장대 위에 달린 놋뱀과 민수기 33장의 42번 진을 친 여정을 히브리어 원문과 신약의 말씀으로 풀어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예표되어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민수기는 왜 백성의 수가 아니라 영적 전사의 수를 센 책인가?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엇을 세라고 하셨는가?

민 1:2-3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 명수대로 계수할지니 3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진영별로 계수하되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지파별로 계수해 보니 총계가 60만 3,550명이었다(민 1:46). 나중에 26장에서 출애굽 2세대를 다시 세어 보니 60만 1,730명이었다(민 26:51). 거의 비슷한 숫자다.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백성을 센 것이 아니라 싸움에 나갈 영적 전사의 숫자를 세셨다는 것이다. 왜 여자가 아니라 남자를 뽑았는가? 싸움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왜 어린아이가 아니라 이십 세 이상 청년을 뽑았는가? 역시 싸움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오늘날에 적용하면 이렇다. 주님은 아마겟돈 전쟁에서 악의 무리를 쓸어버리시려고 지금 영적 전사를 뽑고 계신다. 그 전사를 뽑는 나팔이 나팔절이다. 이스라엘은 대적을 치러 나갈 때 나팔을 크게 불었다(민 10:9). 지금이 바로 그 전쟁에 나갈 만한 자를 뽑고 있는 시대다. 필자는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 아마겟돈 전쟁에 참여할 것이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다. 다만 구약에서는 육체적 싸움이었지만 신약에서는 영적 싸움이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하는 것이다(엡 6:12).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영적 싸움을 싸워야만 이기는 자에 들어간다.

출애굽 1세대는 르비딤에서 아말렉 족속과 한 번 딱 싸웠다(출 17:8-13). 그런데 그들은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계속 불평했다. 그 땅은 좋고, 농산물과 과일도 좋고, 성읍도 견고한데, 그 땅의 거민은 우리를 잡아 죽일 존재이니 절대 못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민 14: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그들의 말대로 되어 버렸다. 주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될 줄 믿어야 한다.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지, 현재 내가 가진 상황을 가지고 싸우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시는지를 그대로 믿고 밀고 나가면, 싸울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힘을 주신다. 그런데 우리가 안 된다고 하니까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행하겠다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고 날마다 영적 포부를 더 강력하게 갖추어 영적 전사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영적 전사는 누가 되는가? 출애굽 2세대다. 그들은 민수기 21장에서 비로소 회개하고,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쳐부순다(민 21:21-35). 바산 왕 옥은 철 침상을 가진 르바임 족속의 남은 자였다. 그 침상은 길이가 아홉 규빗, 너비가 네 규빗이었다(신 3:11). 정탐꾼들이 두려워했던 거인 족속처럼 어마어마한 세력이었다. 그런데 그 전쟁에서 이겼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요단 동편 땅까지 두 지파 반에게 주셨다(민 32장). 너희가 차지했으니 너희 것이라는 것이다. 고로 민수기는 영적 전사를 뽑는 이야기이며, 우리가 교회에 다니면서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만한 이십 세 이상의 남자, 곧 영적 전사가 되게 하려고 우리는 민수기를 공부하는 것이다.

3. 출애굽 1세대의 38년 광야 생활은 왜 의미 없는 삶이 되었는가?

그렇다면 민수기는 1세대와 2세대를 어떻게 기록했는가? 1장부터 19장까지는 출애굽 1세대의 이야기이고, 20장부터 36장까지는 출애굽 2세대의 이야기다. 1세대의 이야기는 거의 대부분 출애굽 후 2년째에 있었던 일이다. 그리고 19장과 20장 사이에 38년의 공백이 있다. 38년의 역사가 거의 기록되지 않은 것이다. 왜 그런가? 광야에서 엎드러져 죽어 가는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백성이 죽어 가는 일을 기록하는 것이 즐거웠겠는가? 그래서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주님의 징계 아래에서 일평생을 보내면 의미 없는 삶이 된다. 회개해야 그때부터 의미 있는 삶이 시작된다. 죄를 지어서 징계를 받는 삶은 의미가 없을 수 있다. 물론 그것을 깨닫고 그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돌이키는 반작용으로 도움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하늘의 상급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정말 의미 있는 삶을 살려면 회개를 시작해야 한다.

민수기 20장과 21장이 그것을 보여 준다. 죄를 지어서 죽는 것이 20장이고, 죄를 지었어도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의미 있는 삶을 주시는 것이 21장이다. 20장에서는 미리암이 죽고(민 20:1) 아론이 죽는다. 민수기 12장에서 미리암과 아론은 모세에게 대들었다. 너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느냐,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도 말씀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영도자, 아론은 제사장, 미리암은 선지자로서 맡은 분야가 달랐다. 자기의 분량도 되지 않으면서 남의 것을 부러워하고 그것을 갖지 못해 안달이 난 것이다. 어리석은 일이다. 그래서 미리암은 나병에 걸렸다가 나았다. 필자가 보기에 아론도 그 일 때문에 먼저 갔다. 하나님은 아론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를 너희가 므리바 물에서 내 말을 거역한 까닭이라고 밝히셨다(민 20:24). 아론은 호르 산에서 자기 옷을 벗어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히고 그대로 죽었다(민 20:26). 그때 나이가 123세였다(민 33:39). 그러나 필자는 그가 아직 죽을 때가 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넌 끝났다 하신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 살 때 범죄 때문에 받는 고통을 두고 의인인 척해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죄로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도 나는 십자가의 고난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고난이 아니라 징계다. 죗값을 받고 있는 것이니 하나도 상급이 되지 않는다. 물론 그 징계를 통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발판이 된다면 그나마 괜찮다. 그러나 그것을 십자가를 지는 삶이라고 포장하여 스스로를 세뇌하고 다른 사람들을 괴롭혀서는 안 된다. 병상에 누워 심방을 오지 않는다고 서운해하기보다,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하던 백부장의 믿음(마 8:8)을 가져야 한다. 고로 회개 없이 징계 속에 보낸 38년은 기록할 것이 없는 삶이었고, 회개하는 자에게만 하나님은 다시 의미 있는 삶을 주신다.

4. 만나·붉은 암송아지의 재·반석의 생수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예표하는가?

그렇다면 민수기에는 그리스도가 어떻게 예표되어 있는가? 필자가 정리한 열 가지는 이렇다. 광야의 만나, 붉은 암송아지의 재, 반석의 생수, 장대에 달린 놋뱀, 좋은 땅, 구름기둥과 불기둥, 아론의 싹 난 지팡이, 야곱의 별과 규, 도피성, 도피성의 대제사장이다. 그중 지난 시간에 살펴본 세 가지를 간단히 복습해 보자.

첫째, 광야의 만나다. 만나는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았으며, 백성이 그것을 거두어 맷돌에 갈고 절구에 찧고 가마에 삶아 과자를 만들었는데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 맛 같았다(민 11:7-9). 예수님은 나는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다(요 6:35).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전사로 준비되려면 만나를 먹어야 했다. 그것이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로 무장하지 않고는 절대 전사가 될 수 없다. 은사만 터득해 가지고는 몇 번 쓰임받다가 끝나 버린다. 내 속이, 내 내면이 말씀으로 채워져야 한다. 많은 제자들이 떠나갈 때 베드로는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 우리는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라고 고백했다(요 6:66-69). 먼저 믿으면 알게 된다. 사도 바울은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다고 말했다(고전 15:45). 육체의 양식은 우리가 먹는 밥이고, 혼의 양식은 세상 공부이며, 영의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마 4: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러므로 힘들 때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암송하고, 적용하고, 그 말씀을 붙잡고 기도해야 한다.

둘째, 붉은 암송아지의 재다. 붉은 암송아지를 태운 재를 진영 밖 정한 곳에 두었다가 물에 타서 부정을 씻는 물로 뿌렸다(민 19:9). 그러면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히 9:13-14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회개 기도하는 것을 구원받기 위해서 하는 것처럼 착각한다. 물론 그런 면도 어느 정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정결(淨潔)을 위하여 회개하는 것이다. 내 속에 있는 악한 영을 내보내기 위한 회개가 99%다. 속죄(贖罪, atonement)는 하나님이 해 주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우리 죄를 덮을 수 있으니 하나님이 100% 하시고 100% 공짜로 주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적용하여 회개하고 자백함으로 내 속의 악한 영을 내보내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다. 하나님이 대신 해 주시지 않는다.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요일 1:9). 자백하지 않으면 일반 병이든 정신병이든 귀신이 꽉 차서 일평생 병원에 다니며 살게 된다. 용이 올라와 다섯 달 동안 괴롭힐 때(계 9:5) 귀신이 많으면 엄청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러므로 빨리 빼야 한다. 그런데 회개만 하면 너무 힘드니, 말씀도 듣고 영적 전투 기도와 방언 기도로 영의 에너지를 올리고, 사역자를 통해 사역도 받아야 한다. 그래야 눌리지 않고 말씀과 기도로 조화롭게 세워진다. 그렇게 정결한 그릇이 되어야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금 그릇, 은 그릇으로 쓰임받는다(딤후 2:20-21).

셋째, 반석의 생수다. 모세가 손을 들어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와 회중과 짐승이 마셨다(민 20:11). 출애굽기 17장의 르비딤 반석 사건은 1세대의 이야기이고(출 17:6), 민수기 20장은 2세대의 이야기다. 여기서 모세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는 말씀(민 20:8)과 달리 반석을 쳐서 물을 냈고, 그 때문에 가나안 땅을 밟지 못한 채 느보 산 꼭대기에서 죽었다(신 34:1-5). 그 반석의 생수는 생명수이신 예수 그리스도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셨다(요 4:14). 그리고 그 물은 성령이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셨는데,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다(요 7:37-39). 반석은 예수님의 몸이고, 쪼개진 그 몸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성령이다.

이렇게 대입하는 방법을 모형론적(예표론적) 성경 해석이라고 한다. 예수님이 먼저 알려 주셨고, 이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람이 사도 바울이다. 고린도전서 10장에 그 원형이 나와 있다.

고전 10:1-4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구름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이고, 바다는 홍해이며, 신령한 음식은 만나이고, 신령한 음료는 반석에서 나온 물이다. 그리고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다(요 12:24). 필자가 해바라기 씨 하나를 심어 보았더니 500개가 열렸다. 예수님 혼자 생명을 가지고 계시면 그 생명은 한 알 그대로 있다. 예수님은 그 생명을 해방하여 나누어 주시려고 죽으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의 속죄를 위한 죽음일 뿐 아니라, 생명을 해방하여 분배해 주시기 위한 방법이었다. 보통 교회에서는 이 두 번째 이야기를 해 주지 않고 속죄만 들려준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뒤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 하셨다(요 20:22). 예수님이 육체로만 계시면 그분이 직접 오셔야만 문제가 해결된다. 그래서 바다 위를 걸어서라도 제자들에게 가셔야 했다. 그러나 살려 주는 영이 되시니 보혜사 성령으로 오셔서 지금 우리와 함께하신다.

5. 불뱀은 무엇이었으며, 백성은 왜 '우리가 범죄하였다'고 고백했는가?

그렇다면 이번 시간의 핵심인 네 번째 예표로 들어가 보자. 민수기 21장 7절에는 출애굽 1세대와 2세대를 통틀어 참된 회개로 살아난 첫 고백이 나온다. 1세대도 정탐 사건 뒤에 우리가 범죄하였다고 말했지만, 곧 명령을 어기고 올라갔다가 패했다(민 14:40-45). 그러나 21장 7절의 고백은 달랐다.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자를 살려 주시기 위하여 장대 위에 놋뱀을 달아 살리는 일을 시작하신 것이다.

민 21:5-9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6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7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백성은 아론이 죽은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다가 마음이 상했다(민 21:4). 그런데 이들은 출애굽 2세대다. 먹을 것이 없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일도 하지 않고 날마다 하늘에서 공짜로 만나를 먹었다. 돈 주고 사 먹었는가? 물이 없다고 하는데, 따르는 반석에서 계속 물이 나왔다. 불평하려고 시작하면 끝이 없다. 광야에서 열흘만 굶어 보라. 땅을 파도 먹을 것이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은혜를 그렇게 쉽게 잊어버린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불뱀들을 보내셨다. 불뱀은 어떤 뱀인가? 독이 많은 뱀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계산해 보자.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은 약 200만 명이다. 200만 명을 물어 죽일 만큼 심각하려면 불뱀이 얼마나 많아야 하겠는가? 그 많은 뱀이 어디서 왔는가? 땅속에서 올라왔는가, 하늘에서 떨어졌는가? 우리는 불뱀을 독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6절의 불뱀들은 네하쉼 세라핌(הַנְּחָשִׁים הַשְּׂרָפִים), 곧 스랍 뱀들이다. 나하쉬(נָחָשׁ)는 뱀이고, 사라프(שָׂרָף)는 스랍이다. 8절에서 만들라고 하신 불뱀도 사라프다. 스랍이 누구인가?

사 6:1-3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스랍은 하나님 보좌 곁에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찬송하는 천사다. 여기의 온 땅은 천국의 땅이다. 그런데 뱀이 나왔다고 200만 명이 밟혀 죽겠는가? 보통 독사에게 물리는 것은 몰라서 물리는 것이다. 알면 물리겠는가? 독사가 있으면 사람은 무서워서 도망간다. 물어 달라고 가지 않는다. 남자들은 가만두지 않고 막대기로 때려죽일 것이다. 필자도 어린 시절 시골에서 꼴을 베다가 뱀만 나오면 낫으로 대가리를 찍어 버렸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물려 죽어 갔다는 것이다.

이것을 실제 뱀이었다고 해도 틀렸다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주님이 보내셨다고 하셨으니 그대로 믿으면 된다. 그러나 히브리어 원문을 조금 더 따져 보면 이것은 스랍 뱀이었다. 이사야 6장과 에스겔 1장을 읽어 보면 구약 시대의 하나님 보좌에는 불이 이글이글 타고 있다. 그런데 신약에 들어와서 그 불이 사라지고 생명수가 흐르는 것으로 바뀌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고 하늘에 오르신 뒤, 태워 없애는 심판의 불이 사라지고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생명수의 강이 흘러나오게 되었다(계 22:1). 이것이 신구약의 하나님 보좌에 일어난 현격한 변화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생명수로 경험하지만, 과거에는 심판으로 경험했다. 그 이글이글 타는 보좌 곁에서 스랍 천사도 불로 이글이글 타고 있었다. 하늘에서 천사를 파송하신 것이다. 유월절 때 장자들을 치러 온 멸하는 자(출 12:23)도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였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왜 스랍 천사가 아니라 스랍 뱀이라고 했는가? 타락한 천사가 뱀이기 때문이다. 그 뱀들이 우리 몸속에 들어온다. 그때 하나님을 찬양하던 스랍이었다가 타락하여 이 땅에 쫓겨난 천사, 곧 귀신 뱀들이 엄청나게 들어와 백성을 물었던 것으로 보인다. 창세기 3장의 뱀도 나하쉬다.

창세기 3장 1절의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했다. 영어 성경은 이 뱀을 일반적인 뱀을 뜻하는 스네이크(snake)가 아니라 서펀트(serpent)라고 번역했다. 특별한 뱀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은 이 뱀이 물질적인 뱀이 아니라 영적인 뱀이라고 말한다.

계 12: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여기의 옛 뱀은 헬라어로 오피스(ὄφις)이고, 히브리어로 나하쉬다. 그러므로 창세기 3장의 나하쉬는 일반적인 뱀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말을 했던 것이다. 육체를 가진 뱀이었다면 그 속에 영이 들어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백성이 우리가 범죄하였다고 고백했는가? 얼마나 많은 식구와 자녀와 사람들이 죽어 갔으면 이런 고백이 나왔겠는가. 어마어마한 뱀이 와서 많은 사람이 죽어 갔기 때문에 여호와여 우리가 범죄하였나이다 하는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고로 불뱀은 하나님께서 심판을 위해 보내신 스랍 뱀, 곧 영적인 뱀으로 보이며, 그 엄청난 죽음 앞에서 2세대는 처음으로 참된 회개의 고백을 했다.

6. 장대 위의 놋뱀은 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예표인가?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하필 놋으로 뱀을 만들게 하셨는가? 놋은 심판을 상징한다. 성막에서 번제단은 조각목에 놋을 입혀 만들었고, 그 뿔도 놋이다(출 27:1-2). 물두멍도 놋이다(출 30:18). 성막 안으로 들어가면 금이 있고 은이 있으며, 지성소는 완전히 금으로 덮여 있다. 그러나 바깥뜰의 번제단, 곧 심판의 자리는 놋이다. 그러니 놋뱀을 만들라는 것은 심판을 대신 받을 뱀을 만들라는 것이다. 그 놋뱀에게 죄를 넘겨 심판을 놋뱀이 받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필자는 민수기와 출애굽기를 읽다가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다는 말씀(고전 5:7)을 통하여, 구약의 율법 말씀 속에 예수님이 다 들어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그 각도에서 성경을 읽으니 예수님이 장대에 달린 놋뱀을 직접 말씀하셨다는 것이 보였다. 왜 우리는 구약은 구약의 이야기, 신약은 신약의 이야기로 그냥 넘어갔던가?

요 3:14-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같이 인자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을 말한다. 그때 뱀에 물린 백성은 죽어 가고 있었다. 독 없는 뱀에 물리면 죽지 않는다. 독 있는 뱀에 물리면 몇 시간 안에 죽으니 빨리 병원에 가서 해독제를 맞아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놋뱀을 장대에 매달고 그것을 쳐다보면 산다고 하셨다.

여기에 두 종류의 반응이 있었을 것이다. 하나는 이렇다. 미친 짓이다, 해독제를 써야지, 무슨 풀을 말려 찧어서 먹이든지, 물린 자리를 칼로 째고 독을 빨아내든지 해야지, 저 놋뱀을 쳐다본다고 낫겠느냐, 이 바보야.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 나가서 예수 믿는다고 구원받느냐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엉금엉금 기어 나와서 장대에 높이 달린 놋뱀을 쳐다보는 것이다. 말도 안 된다고 한 사람은 죽었을 것이고, 쳐다본 자는 살았을 것이다. 그것이 믿음이다. 예수님은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시려고 이 예를 쓰셨다. 죄의 독이 퍼져 내가 죽어 가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내 죄를 용서한다고 믿으면 속죄를 받는다. 주먹을 믿어야지, 힘을 믿어야지 그걸 어떻게 믿느냐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오늘 나의 믿음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 법이고 그것이 생명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런데 놋뱀이 뱀이라면 예수님이 사탄이라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아까의 불뱀은 독이 있다. 그러나 놋뱀에는 독이 없다. 예수님은 심판받기 위하여 독 없는 뱀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정확히 알고 이렇게 해석했다.

롬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율법의 요구는 죄의 삯인 사망이다. 예수님 자체는 죄가 없으시다. 그러나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셔서 우리의 죄를 전가받으셨다.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면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셨고(요 1:29), 그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심으로 그 죄를 없애셨다. 이 방식을 놋뱀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죄를 없이 하시는 방법을 만드신 것이다. 민수기 21장에서 회개하는 사람을 살려 주시는 일을 광야에서 미리 연습시켜 주셨고,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은 믿음이 무엇인지를 그것으로 가르쳐 주셨다. 고로 장대 위의 놋뱀은 독 없이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셔서 우리 대신 심판을 받으신 그리스도이며, 그분을 쳐다보고 믿는 자는 살고, 비웃은 자는 죽는다.

7. 죄의 독을 이기는 생명은 무엇이며, 요 11:25-26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죄의 독은 어떻게 우리를 죽이는가? 과거에 내가 지은 죄를 꺼내려고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런데 그 죄가 하늘의 행위책에 기록되면서, 동시에 그 죗값으로 뱀들이 나를 공격해서 들어온다. 그렇게 계속 사망의 영이 쌓이다가 더 이상 살 수 없을 때 죽는 것이다. 필자의 사역 경험으로는 80세가 넘으면 영이 너무 많아서 안수를 받기가 거의 어렵다. 너무 많은 영이 들어와 가득 차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한 말씀(시 90:10)처럼, 죄의 독인 사망의 영들이 다 들어와서 결국 죽어 가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그 뱀들에게 직접 물려 보았다. 손과 발 양쪽을 다 물렸다. 금요기도회 때 사진으로도 보여 주었다. 그런데 필자는 아직까지 죽지 않고 있다. 분명히 죽어야 하는데 희한하다. 그래서 필자는 민수기 21장의 불뱀이 물질적인 뱀이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이것을 알게 되었다. 내 안에 뱀이 없고 예수님의 생명으로 가득 차면 사망이 생명을 이기지 못한다.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한다. 칠흑 같은 어둠이라도 빛을 비추면 어둠은 물러날 수밖에 없다.

요 1:4-5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여기의 깨닫지 못하더라는 난외주에 이기지 못하더라로도 되어 있다. 빛이 비치면 어둠은 절대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야 한다. 다르게 말하면 사망이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필자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으로서 그 뱀의 공격을 받았다면 죽었을 것이다. 내 안에 영적 생명이 없으니 말이다. 민수기 21장에서도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러나 내 속에 예수님이 가득하고 뱀이 없으니, 뱀이 공격해도 효과가 없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갈 6:17). 필자는 독뱀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필자의 스승께서 영으로 보시니 하늘에서 떨어진 지 3,000년 된 영, 곧 예수님 오시기 1,000년 전에 떨어진 놈이 와서 확 물었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회개를 많이 해야 한다. 내 속에 죄가 없고 사망의 영이 없고 뱀이 없으면 독뱀이 물어도 효과가 없다.

이 생명에 관하여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 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기독교를 아주 싫어하는 사람들의 사이트에 가 보면 이 구절이 성경이 거짓말이라는 가장 중요한 증거라고 한다. 믿는 자는 죽어도 산다니, 죽으면 죽는 것이지 죽었는데 사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데 믿어도 다 죽더라, 그러니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영과 육을 교차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육체가 죽어도 영혼은 살겠고, 무릇 육체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혼이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그 사람은 자기가 해석을 잘못해 놓고 성경이 틀렸다고 한 것이다.

첫째 사망은 육체가 죽는 것이고, 둘째 사망은 영이 영원히 죽는 것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한다(계 2:11).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에게는 둘째 사망이 다스릴 권세가 없다(계 20:6). 그 영원한 생명으로 영원히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 살 수 있다. 그런데 들어갈 사람이 불법을 저지르고 죄를 계속 지어서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없는 수준까지 되면,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져 성 밖으로 간다. 그리스도인 가운데 얼마나 많은 비율이 그렇게 되는지 모른다. 필자가 보니 성 안에 든 사람은 얼마 되지 않고, 예수를 믿었으나 수도 없는 사람들이 성 밖에서 살고 있다. 고로 죄의 독을 이기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며, 회개로 뱀을 내보내고 그 생명으로 채운 자는 사망을 이기고, 계속 죄를 지어 이름이 지워진 자는 성 밖에 남는다.

8. 출애굽의 42번 진 친 여정은 왜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하는가?

그렇다면 다섯 번째 예표인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는 어디에 나오는가? 민수기 33장은 출애굽의 여정을 요약한 장이다. 모세와 아론의 인도로 대오를 갖추어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자손들의 노정이 기록되어 있다(민 33:1).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떠오르면 이스라엘 백성도 떠났고, 멈추면 그 자리에 진을 쳤다(민 9:15-23). 그 진을 친 장소가 여기에 다 나온다.

민 33:3-4 그들이 첫째 달 열다섯째 날에 라암셋을 떠났으니 곧 유월절 다음 날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모든 사람의 목전에서 큰 권능으로 나왔으니 4 애굽인은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 치신 그 모든 장자를 장사하는 때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신들에게도 벌을 주셨더라

출발 장소는 라암셋이다. 라는 애굽의 태양신이고, 라암셋은 라가 그를 낳았다는 뜻이다. 라가 애굽의 왕을 낳았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바로 그 라 신의 이름을 가진 곳에서 출발했다. 애굽의 열 가지 재앙은 하나님께서 애굽의 신들에게 내리신 벌이었다(출 12:12). 나일강의 신, 메뚜기의 신, 송아지의 신에게 차례로 벌을 내리신 것이다.

그리고 5절부터 진을 친 곳이 나온다. 라암셋이 첫 번째, 그곳을 떠나 진을 친 숙곳이 두 번째, 광야 끝 에담이 세 번째, 비하히롯 앞이 네 번째다. 이렇게 번호를 붙여 가면 에시온게벨을 떠나 진을 친 신 광야 곧 가데스가 33번째(민 33:36), 에돔 땅 변경의 호르 산이 34번째다. 출애굽한 지 40년째 오월 초하루에 아론이 그 호르 산에서 죽었다(민 33:38). 그 뒤 살모나가 35번째, 부논이 36번째, 오봇이 37번째, 모압 변경 이예아바림이 38번째, 디본갓이 39번째, 알몬디블라다임이 40번째, 느보 앞 아바림 산이 41번째, 그리고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강 가 모압 평지가 42번째다(민 33:48). 그 모압 평지에서 모세는 출애굽 2세대에게 유언처럼 신명기를 선포하고 생을 마쳤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따라 42번 진을 친 것이다.

그러면 왜 42번인가? 마태복음 1장의 예수님의 족보가 그 답을 준다.

마 1: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14대, 14대, 14대를 합치면 42대다. 그런데 실제로는 42대보다 더 많다. 마태는 몇몇 왕을 뺐다. 요람과 웃시야 사이에서는 아하시야와 요아스와 아마샤, 세 왕이 빠졌고(마 1:8), 요시야와 여고냐 사이에서는 여호야김이 빠졌다(마 1:11). 왜 뺐는가? 42대를 맞추기 위해서다. 그러면 왜 42대를 맞추었는가? 마태가 민수기 33장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42번 진을 쳐서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땅 앞에 이르렀듯이,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시작된 족보도 42대 만에 좋은 땅이신 예수님께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분이 안식이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천국이시다. 그리고 필자가 본 바로는 빠진 왕들은 천국에 없고 지옥에 있다. 천국에 간 사람들만 예수님의 조상으로 셈하니 42대가 된 것이다. 이것은 증명할 수 없으니 믿지 않아도 된다. 다만 천국의 실상을 말해 주어야 여러분이 이해하기 쉬우니 참조만 하면 된다.

우리 인생의 여정도 예수님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그 예수님이 계신 곳이 아버지 집, 천국이다. 이스라엘이 라 신의 땅 라암셋에서 출발하여 숱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국 모압 평지에 이르렀듯이, 우리의 여정도 그 모든 어려움을 통과하여 결국 예수님께로 귀결되어야 한다. 고로 42번 진을 친 여정은 풍성한 모든 것이 가득하고 없는 것이 없으신 좋은 땅,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여정이며, 그 여정은 구름기둥과 불기둥, 곧 성령과 말씀의 인도를 따라갈 때 그리스도 안에서 종결된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다음에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9. 나오며

우리는 이번 시간에 역사와 원문의 많은 자료를 통하여 민수기에 예표된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았다. 민수기는 영적 전사를 뽑는 책이다. 불평하며 안 된다고 말한 1세대는 그 말대로 광야에서 엎드러졌고, 그 38년은 기록할 것이 없는 삶이 되었다. 그러나 불뱀에 물려 죽어 가던 2세대가 우리가 범죄하였다고 고백했을 때, 하나님은 장대 위에 놋뱀을 달아 쳐다보는 자를 다 살리셨다.

그러므로 징계를 십자가의 고난이라고 포장하지 말고 회개를 시작해야 한다. 속죄는 하나님이 100% 공짜로 주셨으니, 우리는 자백함으로 내 속에 들어온 뱀들을 내보내어 정결해져야 한다. 말씀을 영의 양식으로 먹고, 기도로 영의 에너지를 올리며, 영적 싸움에서 이기는 전사가 되어야 한다. 내 속이 예수님의 생명으로 가득하면 사망이 생명을 이기지 못한다.

장대 위에 높이 달린 놋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믿고 바라보자. 그리고 성령과 말씀의 인도를 따라 우리의 좋은 땅이시요 천국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부지런히 달려가, 마지막에 주님의 품에 안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6년 10월 28일(수) ·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