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강해(03)] 민수기의 전체내용과 민수기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들(02)(민1:1~4)
본 설교는 민수기의 전체적인 역사적 배경과 구조를 바탕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가져야 할 영적 정체성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광야에서 불평과 원망으로 쓰러진 출애굽 1세대와 달리, 끝까지 믿음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한 출애굽 2세대의 차이를 강조하며 신앙인의 올바른 자세를 촉구합니다. 또한, 만나와 매출하기, 붉은 암송아지의 제사, 그리고 반석의 생수 같은 민수기 속 다양한 사건들은 결국 우리를 구원하고 정결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임을 명확히 설명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가 일상의 고난 속에서도 원망을 버리고 회개를 통해 내면의 악한 영을 물리치며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하나님의 군사로 살아가야 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
1민수기는 출애굽 1세대와 2세대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묻는가?본문 →2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왜 '여호와의 군대'라고 부르셨는가?본문 →3우리 속의 악한 영은 어떻게 들어왔으며, 누가 그것을 내보내야 하는가?본문 →4광야에서 엎드러진 1세대는 모두 멸망했으며, 죄값의 기간은 무슨 의미인가?본문 →5만나와 메추라기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예표하는가?본문 →6붉은 암송아지의 재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예표하는가?본문 →7반석에서 나온 생수 사건은 그리스도와 지도자의 길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가?본문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백성을 광야에서 죽이려고 데려오신 것이 아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시려고 데려오셨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합당하지 않은 자들은 광야에서 엎드러졌다. 민수기는 백성을 세어 본 기록이다. 1장에서 한 번, 26장에서 한 번, 두 번 세었다. 1장은 출애굽 1세대의 숫자이고 26장은 출애굽 2세대의 숫자인데, 그 수가 거의 같았다. 그런데 출애굽 1세대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모두 광야에서 엎드러져 죽었다. 반면 그들이 광야에서 죽으리라고 말했던 처자식들은 오히려 살아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정복자가 되었다(민 14:31). 그렇다면 민수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묻고 있는가? '너는 출애굽 1세대처럼 살아갈 것인가, 출애굽 2세대처럼 살아갈 것인가?'를 묻고 있다.
지난 시간에는 민수기의 전체 내용을 살펴보았다. 역사의 모든 것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미리 알려 주는 일종의 샘플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우리 민족의 역사가 될 수도 있고, 나 개인의 신앙 여정이 될 수도 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지만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한다고 하셨다(요 5:39). 그러므로 민수기를 공부할 때 우리 인생의 전철만 볼 것이 아니라,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여 이길 수 있는 방법과 그분이 우리를 위해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보아야 한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출애굽 1세대를 어떻게 보셨는지를 먼저 확인하고, 민수기 곳곳에 스며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를 만나와 메추라기, 붉은 암송아지의 재, 반석에서 나온 생수를 통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2. 민수기는 출애굽 1세대와 2세대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묻는가?
그렇다면 민수기는 두 세대의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묻는가? 하나님께서는 이 기록을 통해 '너는 대체 어느 군대에 속하느냐?'고 물으신다. 이 질문에 우리는 망하는 길로 가는 세대가 아니라 영적 전쟁을 치르는 세대에 속한다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어떤 자리에 서서 갈 것인가를 민수기의 사건들을 통해 하나하나 점검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하나님께서 출애굽 1세대를 어떻게 보셨는가를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보신 그대로 합당하게 살아 낸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렇게 보셨는데도 거기에 합당하게 살아 내지 못한다면 복을 빼앗기고 만다. 출애굽 1세대는 하나님께서 주시려던 땅을 보고도 들어가지 못했고, 출애굽 2세대는 그 땅을 차지했다. 같은 숫자로 계수된 백성이었지만 그들의 결말은 완전히 달랐다. 고로 민수기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셨는지를 알고, 그에 합당하게 살아갈 것인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3.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왜 '여호와의 군대'라고 부르셨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여호와의 군대라고 부르셨을까? 그것은 세 가지 정도이다.
첫째,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먼저 싸워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유월절 밤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을 두루 다니며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을 심판하리라(출 12:11-12). 애굽이 강력하다 하니 하나님께서 열 가지 재앙으로 그 신들을 치시고, 홍해에서 애굽 군대까지 없애셨다. 이스라엘은 전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가 애굽의 모든 군대와 애굽의 신을 다 칠 것이니 너희는 나를 믿고 따라와서 내가 원하는 대로 준비만 되면 된다'고 하신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그들을 군대로 부르셨기 때문이다.
출 12:40-4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사백삼십 년이라 41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이는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나오는 이스라엘을 처음부터 여호와의 군대라고 부르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오합지졸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여호와의 군대라고 명하셨다.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너는 나의 군대다'라고 이미 작정된 것이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렇게 된다고 믿고 계속 갔고, 나머지는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래, 안 된다고 하는 너는 되지 마라' 하신 것이다.
셋째, 그들을 싸움에 내보내시려고 계수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민수기 1장의 계수는 여호와의 군대를 계수한 것이다.
민 1:3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진영별로 계수하되
이는 하나님께서 세금을 거두시려고 계수하신 것도 아니고 일을 시키시려고 계수하신 것도 아니라, 싸움에 나갈 자를 계수하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믿으면 여호와의 군대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마지막 때 아마겟돈 전쟁에 참여할 하나님의 군사, 영적 전쟁에 참여할 군사를 만드는 곳이다. 교회에 70만 명이 모여도 영적 전쟁에 싸우러 나갈 자가 없으면 그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그들은 광야에 엎드러질 사람들이요 성 밖으로 갈 사람들이다. 광야 시절, 곧 교회 시절은 그 군사를 만드는 때다. 그런데 '나는 안 된다'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게 하신다. 반면 출애굽 2세대는 원망하기도 했지만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쳐부수었다(민 21:21-35).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살려 두셨다.
마지막 때에 주님께서는 변절하지 않을 사람을 찾고 계신다. 6·25 때에도 우리나라의 장수였던 사람이 북한으로 넘어간 일이 있었다. 별을 단 사람도 얼마든지 변절할 수 있다. 주님께서는 아마겟돈 전쟁에 왔다가 사탄 편에 설 자는 뽑지 않으시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회개를 시키고 계신다. 회개하여 내 속의 악한 영이 나가면 변절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지금 너무나 복된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축복을 적당히 넘겨 버린다면 나중에 성 밖에서 '내가 그 말씀을 들었는데 왜 힘들다고 빠져나갔던가, 왜 다른 길로 갔던가' 하며 평생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4. 우리 속의 악한 영은 어떻게 들어왔으며, 누가 그것을 내보내야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은혜를 받아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셨으니 감사합니다' 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끝나도 되는가? 그렇지 않다. 내 속의 귀신이 하나도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예수를 믿을 때 귀신을 다 내보내야 구원받는다고 했다면 아무도 구원받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믿겠다 하고 내가 죄인이라고 시인하면 칭의로 그냥 덮어 버리셨다. 의롭지 않은데도 '너는 의롭다' 하시고, 부패하고 더러운데도 덮어 버리시고, 생명의 영을 집어넣어 주셨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 속에는 여전히 악한 영이 한 놈도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면 달라질 줄 알았던 부패한 삶과 성품이 달라지지 않고, 내 삶의 저주가 떠나지 않으며, 질병도 낫지 않고, 자식의 미래도 계속 불투명한 것이다. 악한 영이 그 뒤에서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악한 영은 어떻게 들어왔는가? 사탄은 지혜가 충족하고 온전히 아름다운 존재로 지음받았다(겔 28:12).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무엇인가로 쓰실 줄 알았다. 그런데 하나님의 만세 전 계획은 이 지구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들이 생명나무 열매를 먹고 영생하는 존재가 되어 모든 동물을 다스리며 사는 나라를 이루시는 것이었던 것 같다. 이 지구는 천국과 똑같은 구조로 지어졌다. 천국에는 새 하늘과 새 땅 위에 새 예루살렘 성이 있고 그 성 밖이 있으며 그 밑에 불못이 있다. 지옥은 멀리 있지 않고 바로 그 밑에 있다. 지구도 똑같다. 땅 위에는 푸르고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져 있고, 새 예루살렘 성처럼 에덴동산이 있어 생명나무가 있고 네 강이 흘러나왔다. 하나님의 보좌에서 생명수가 흘러나오는 것과 똑같다. 그리고 지구의 땅속에는 마그마, 곧 불이 있다. 불못과 같다. 그런데 인간이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타락한 것이다.
그때 하나님께서 뱀에게 '너는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고 하셨다(창 3:14). 여기서 흙(아파르)은 사람의 육체다. 그래서 우리의 육체 속에 수억, 수조 마리의 뱀과 영들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것들이 하와의 자궁 속에 들어가 있었고, 하와가 가인을 임신했을 때 이미 태중의 가인에게 들어갔다. 하와는 가인을 낳고 메시아를 낳은 줄 알았지만, 가인은 시기와 질투와 혈기와 분노로 결국 살인까지 저질렀다. 부모가 동생을 죽이라고 가르쳤는가? 시기 질투를 가르쳤는가? 하나님을 원망하라고 가르쳤는가? 가르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렇게 된 것은 영이 들어가서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죄를 짓는 데에는 우리의 자발적인 선택도 있지만 강력한 악한 영의 작용이 있다.
그렇다면 이 악한 영들은 누가 내보내야 하는가? 구약 시대는 아직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들어오지 않은 시대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큰 영들은 쫓아 주시고, 그 영들에게 물든 사람들은 이스라엘에게 멸하라고 하셨다. 민수기 33장은 출애굽 40년의 여정을 장소별로 한 장에 요약해 놓았는데, 그 출발을 이렇게 기록한다.
민 33:3-4 그들이 첫째 달 열닷새 날에 라암셋을 떠났으니 곧 유월절 다음 날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모든 사람의 목전에서 큰 권능으로 나왔으니 4 애굽인은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 치신 그 모든 장자를 장사하는 때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신들에게도 벌을 주셨더라
이는 이스라엘이 B.C.1446년 첫째 달 열나흗날 유월절을 지키고 열닷새 날에 출발할 때, 하나님께서 애굽의 신들에게도 벌을 주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가나안 땅도 마찬가지였다. 정탐하고 돌아온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렇게 말했다.
민 14: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이는 가나안 땅을 지키던 신, 곧 그들의 보호자가 이미 떠났으니 이제 이스라엘은 그 민족만 치면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에 큰 영들을 쫓아 주신 것은 하나님이시고, 육체에 물든 그 사람들을 멸하는 일은 이스라엘이 해야 했다. 만약 이스라엘이 그것을 하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주실 수 없었다. 그것이 출애굽 1세대였다. '그 땅은 아주 좋지만 거민의 신장이 장대하여 우리는 메뚜기 같으니 다 죽는다'고 했다(민 13:32-33). 그러자 하나님께서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고 하셨다(민 14:28).
필자도 귀신들과 처음 싸우게 된 것이 6년 전이다. 그전에는 이렇게 싸우지 않았다. 필자도 몰랐다. 그런데 싸우려고 하니 귀신들이 떼거리로 달려들어 필자를 죽이려 했다. 2년 동안 지켜보더니 강력하게 역사하여 필자를 완전히 폐인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필자는 그렇게 되어도 절대 원망하지 않았다. '이때도 지나가리라. 하나님께서 나를 예수 믿게 하시고 목사가 되기까지 인도하셨는데, 나를 폐인으로 만들려고 이 공격을 허락하신 것은 아니다. 다 뜻이 있다.' 그리고 깨달았다. '강력한 리더십과 강력한 권세와 강력한 불과 강력한 무기를 가진 존재가 있어야 하는구나.' 그래서 필자는 그런 분을 찾아냈고, 그분에게 지도를 받으니 그분이 가지고 있는 것이 그대로 필자에게 넘어왔다. 흔히 임파테이션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지만, 그것을 받으려고 간 것이 아니다. 죽기 살기로 회개하여 엄청난 영을 뽑아냈다. 그 고통은 어마어마했다. 그래도 참아 냈다. 죽으면 천국이고, 살아나면 하나님께서 나를 쓰시려고 바꾸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출애굽 1세대처럼 나약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필자는 지금도 지금의 삶에 만족하지 않는다. 다음 사람들이 더 강력한 영들을 쫓아낼 수 있도록 만들려면 필자가 더 강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누군가는 앞장서는 일꾼이 있어야 한다. 스스로 하기는 절대 쉽지 않다. 끌어 주는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지금도 쉬지 않고 기도하고, 예전에 쓰지 않던 방법을 계속 쓴다. 하나님께서는 필자에게 무엇이 부족하면 사람을 붙여 주셔서 알게 하신다. 있다가도 떠나는 사람이 있고, 붙여 주셔서 다 이야기하게 하시고 떠나게도 하신다. 그렇게 계속 알려 주셨다. 지금도 떠날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 사람의 복이다. 어쨌든 주님께서는 이 시대에 출애굽 2세대와 같은 영적 전사를 만드시려고 우리를 불러 모으고 계신다. 그 전사에 동참하면 엄청난 하늘의 복이 있다. 이 길이 쉬운 길은 아니다. 회개를 시켜 보니 쉽지 않다. 그러나 가능하다. 이것을 믿고 가야 한다.
5. 광야에서 엎드러진 1세대는 모두 멸망했으며, 죄값의 기간은 무슨 의미인가?
그렇다면 광야에서 38년 동안 엎드러진 출애굽 1세대는 모두 지옥에 갔는가? 그렇지 않았다. 출애굽 1세대도 잘한 것이 있었다. 자신의 모든 은금 패물을 바쳐 성막을 지었다(출 35:20-29). 그러므로 그들이 다 지옥에 간 것은 아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퍼뜨린 열 명의 정탐꾼 지도자들과 그들을 따르던 자들이 문제였다.
그 대표적인 이야기가 민수기 16장의 고라 무리의 반역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와 권위를 부정한 것이다. 레위인 가운데 고핫 자손인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이 되었는데, 같은 레위인인 고라가 '나도 제사장을 하겠다'고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파괴한 것이다. 그래서 땅이 입을 벌려 그들을 산 채로 삼켰다. 그런데 고라의 자손들은 죽지 아니했다(민 26:11). 악의 무리였던 고라의 자손인데도 그 반역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이 나중에 하나님 앞에 나와 찬송을 부르게 되었고 그 찬송이 시편에 고라 자손의 시로 남아 있다(시 42편 등). 그러므로 우리가 하기 나름이다. 설령 우리 민족이 엄청난 악을 저지르고 우상을 숭배했다 할지라도, 우리가 지금 결단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간다면 하나님께서 멸하시는 그 사람들 가운데서도 얼마든지 살아 나올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출애굽 1세대의 이야기를 우리의 본보기라고 했다. 그들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았다는 금송아지 우상 숭배(출 32:6),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은 모압 여인들과의 음행(민 25장),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한 불뱀 사건(민 21장),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한 열 정탐꾼의 원망(민 14장)을 들고 이렇게 말했다(고전 10:6-10).
고전 10:11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이는 그들의 이야기로 끝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길을 갈 것인지를 미리 말해 놓았으니, 지금 나의 자리가 어디인지 잘 보라는 것이다. 너도 38년 동안 엎드러져 죽을 자인가, 그 죄값을 다 받고 죽을 자인가, 아니면 살아날 자인가?
필자는 요한복음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요한복음 5장에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나온다(요 5:5). 왜 38년인가? 성령께서 깨우쳐 주셨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죄값을 받은 기간이 38년이었다(신 2:14). '이스라엘 민족이 죄값을 다 받았으니 내가 왔다. 이제 병든 그들을 살려 내려고 내가 왔다.' 성령께서 필자에게 그렇게 감동을 주셨다.
그러므로 죄값을 감당해야 할 때가 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 목사님은 특사 조치로 저렇게 해 주시는데 왜 저는 특사 조치를 해 주지 않으십니까? 저는 2천 번, 3천 번 회개했는데 왜 차도가 없습니까?" 그러나 죄값을 받아야 할 사람도 있고 끝까지 받아야 할 사람도 있다. 모든 것을 천편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남 유다가 포로로 잡혀가 70년을 지낼 때 다니엘은 빨리 회복시켜 주실 수 없느냐고 기도했다(단 9:2-3). 그러나 안 된다고 하셨다. 70년을 다 채워야 했다. 그런데 다니엘이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며 기도하니, 하나님께서는 칠십 이레를 통해 메시아가 기름 부음을 받을 때까지 이스라엘 민족이 어떻게 쓰임받을지를 더 많이 가르쳐 주셨다(단 9:24-27). 70년은 받아야 했지만 그것을 고스란히 받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통한 또 다른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귀신에게 시달리고 있는 기간은 무미건조하고 의미 없는 기간이 아니다. 그 기간은 나를 하나님께서 진짜 쓰실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아주 귀중한 시간이다. 설령 귀신의 공격으로 죽을 것만 같이 숨이 차오른다 할지라도 '주님, 나는 절대 주님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고 이 길을 끝까지 갈 것입니다' 해야 한다. 내가 죄값을 받아 죽고 끝난다 할지라도, 주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죽었다고 아브라함을 끝내지 않으시고 이삭과 야곱을 통해 결국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셨다. 그 믿음을 보시고 아브라함을 이긴 자라 하셨듯이, 비록 내가 회복되지 못하고 귀신에게 시달리다 죽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이긴 자로 보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회개하며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시간은 의미 있는 시간이다. 악한 영들이 얼마나 많았으면 내가 그렇게 고통을 당하겠는가? 그 고통이 필자를 아주 강하고 단단하게 만들었다. 시련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필자가 이렇게 강하게 나가는 것이다. 필자가 무엇을 보고 산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 한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으면 그대로 된다. 너희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준다고 하셨으면 그대로 된다. 고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가야 한다.
6. 만나와 메추라기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예표하는가?
그렇다면 민수기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는 무엇인가? 민수기 11장은 예수님을 만나와 메추라기로 표현한다.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다'라고 하시며 자신이 만나의 실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만나는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 민족의 육의 양식이었다. 예수님께서 영의 양식이시듯이, 하늘에서 내려 준 양식이었다.
민 11:4-9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5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6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 하니 7 만나는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은 것이라 8 백성이 두루 다니며 그것을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며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었으니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 맛 같았더라 9 밤에 이슬이 진영에 내릴 때에 만나도 함께 내렸더라
광야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곳인데, 밤에 이슬이 내릴 때 만나가 함께 내렸다가 해가 뜨거워지면 스러져 없어졌다. 그리고 고기가 없다고 울자 하나님께서는 메추라기도 내려 주셨다. 냄새도 싫어하기까지 한 달 동안 내내 먹게 하리라고 하셨다(민 11:18-20). 바람이 바다에서 메추라기를 몰아 진영 사방 하룻길 되는 지역의 지면 위 두 규빗쯤에 내리게 하셨다(민 11:31). 한 규빗이 약 45cm이니 약 90cm, 1m 가까이 쌓인 것이다. 백성은 그날 종일 종야와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았는데 적게 모은 자도 열 호멜이었고, 냉장고가 없으니 진영 사면에 펴 두고 말려서 먹었다(민 11:32).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이렇게 설명하셨다.
요 6:32-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34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이는 만나를 준 것은 모세가 아니라 아버지시며,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참 떡이시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만나와 예수님의 차이는 무엇인가? 만나는 예표이고 예수님은 실체다. 그래서 광야에서 만나를 먹은 조상들은 죽었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신 예수님을 먹는 자는 영생한다(요 6:49-51).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고 하셨다(요 6:63).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먹을 때 그것이 우리의 양식이 되고, 그 말씀으로 영원히 살게 된다.
그렇다면 왜 만나와 메추라기 둘 다 예수님의 예표인가? 만나는 식물 생명을 상징하고, 메추라기는 동물 생명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식물도 생명체이고 동물도 생명체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떡'이라고 하셔서 식물 생명으로 자신을 표현하셨고,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 6:53-5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이는 예수님께서 살과 피, 곧 동물 생명으로도 자신을 우리의 양식으로 표현하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식물 생명의 예표는 만나이고, 동물 생명의 예표는 메추라기다. 그리고 그것을 먹는 것이 곧 주님을 믿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38년 동안 그래도 살 수 있었던 것은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광야 같은 교회 생활을 할 때 예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떠나갈 때 베드로는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라고 고백했다(요 6:68). 고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잘 먹어야 한다.
7. 붉은 암송아지의 재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예표하는가?
두 번째 예수님의 예표는 민수기 19장의 붉은 암송아지의 재다. 하나님께서는 붉은 암송아지를 잡아 태운 재를 물에 타서 뿌리면 깨끗해진다고 말씀하셨다.
민 19:2 여호와께서 명령하시는 법의 율례를 이제 이르노니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서 온전하여 흠이 없고 아직 멍에 메지 아니한 붉은 암송아지를 네게로 끌어오게 하고
그리고 정결한 자가 그 암송아지의 재를 거두어 진영 밖 정한 곳에 두었다가,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을 위해 부정을 씻는 물을 만드는 데 쓰게 하셨다. 그것은 속죄제였다(민 19:9). 그렇다면 붉은 암송아지의 재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예표하는가? 그것은 두 가지 정도이다.
첫째, 붉은 암송아지는 우리를 위해 피 흘려 죽으실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구약은 항상 모형이고 예수님은 실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해석한다.
히 9:12-14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이는 암송아지의 재가 육체를 정결하게 했다면, 흠 없이 자기를 드리신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구약에서는 피를 계속 보관할 수 없으니 암송아지를 다 태워 그 재를 썼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영원토록 살아 있다.
둘째, 그 피는 속죄뿐만 아니라 정결에도 쓰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축사를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대해 엄청난 전환을 경험했다. 그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 죄를 속한다는 속죄만 생각했다. 그런데 속죄는 그 일부분이었다. 속죄는 천국에 있는 내 행위책의 죄목을 덮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 땅에 물과 피를 남겨 두고 가셨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분은 땀을 흘리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가시관에 찔리시고, 손발에 못 박히시고, 옆구리를 창에 찔리셔서 물과 피를 다 쏟으셨다. 그리고 살과 뼈는 그대로 가지고 부활하셨다. 그래서 천국에 가면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입으셨던 육체를 그대로 가지고 계신다. 필자가 보니 못 자국이 손목이 아니라 손바닥 중앙에 뻥 뚫려 있었다. 엄청 크다.
그렇게 주님께서 이 땅에 두고 가신 것이 물과 피다. 물은 깨끗하게 하는 데에도 쓰이지만 생명을 뜻한다.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고 하셨다(요 7:38). 그리고 피는 우리를 깨끗하게 한다.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예수의 피가 우리 속에 들어와 악한 영을 씻어 내보내는 역할을 한다. 회개하면 악한 영이 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필자는 요한일서 1장 9절에서 찾아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한다.
요일 5:6-8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7 증언하는 이는 셋이니 8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이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물과 피와 성령으로 세상을 이긴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요일 5:5). 물과 피는 흩어진다. 필자가 보기에는 주님께서 땅에 쏟으신 물과 피가 흩어져 하늘로 올라가고, 대기를 순환하여 대한민국과 전 세계에 다시 내려서, 생명의 역사와 속죄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는 것 같다. 예전에는 피를 칭의의 속죄로만 계속 우려먹었다. 그러나 레위기를 보니 피가 정결 예식에도 쓰였다. 그렇다면 어디를 깨끗하게 하는가? 내 속에 들어 있는 더러운 영을 내보내는 데에도 쓰인다. 고로 우리는 민수기를 통하여 회개하면 예수의 피가 들어와 우리를 정결하게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8. 반석에서 나온 생수 사건은 그리스도와 지도자의 길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가?
세 번째 예수님의 예표는 민수기 20장의 반석에서 나온 생수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그리스도와 지도자의 길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가? 출애굽기 17장에서는 반석을 쳐서 물을 내어 출애굽 1세대를 먹였다(출 17:6). 그런데 민수기 20장은 출애굽 2세대의 이야기다. 똑같은 사건이 두 번 벌어진 것이 아니라 대상이 달랐던 것이다.
민수기 20장 1절의 '첫째 달'은 출애굽 40년째 해의 첫째 달이다. 그때 미리암이 죽었다. 그리고 같은 장 22절 이하에서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는다.
민 33:38-39 제사장 아론이 여호와의 명령으로 호르 산에 올라가 거기서 죽었으니 때는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십 년째 오월 초하루이었더라 39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던 때의 나이는 백이십삼 세였더라
40년째 첫째 달에 미리암이 죽고, 5월 1일에 아론이 죽은 것이다. 그들은 출애굽 2세대와 함께 갈 수 없었다. 민수기 12장에서 미리암과 아론은 모세를 거역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어긴 큰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어야 했다. 그렇다면 모세만 살았는가?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도 있었는데 민수기 20장 사건 때문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렇다면 모세는 언제 죽었는가?
신 1:3 마흔째 해 열한째 달 그 달 첫째 날에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자기에게 주신 명령을 다 알렸으니
신명기는 모세가 가나안 땅을 앞두고 모압 평지에서 출애굽 2세대에게 유언처럼 자기 인생을 회고하며 하나님의 율법을 다시 설명한 것이다. 신명기라는 이름도 십계명의 명령을 되풀이하여 거듭 기록했다는 뜻이다. 그때가 40년째 해 11월 1일이었다. 그러니 모세는 40년째 해 11월이나 12월 어느 때에 죽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뒤 30일 동안 애곡하고(신 34:8), 이듬해 첫째 달 열흘날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넜다(수 4:19). 미리암도 아론도 모세도 40년째 해에 다 죽은 것이다. 하나님은 무서우시다. 지도자는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지도자에게는 죄값을 더 크게 물으신다.
그렇다면 민수기 20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출애굽 2세대가 물이 없다고 모세와 아론에게 다투며 원망했다.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도다. 이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민 20:3-5). 광야에서 태어난 그들이 무화과와 포도와 석류가 맛있는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소문으로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불쌍히 여기시는 것이 있다. 한 번 원망했다고 그냥 죽이지 않으신다. 출애굽 1세대는 열 번이나 하나님을 시험하고 원망했다(민 14:22). 그러나 출애굽 2세대는 처음 원망하는 것이었다. 처음 원망했는데 '그래, 죽여 주마' 하시겠는가?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지팡이를 가지고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아 그들의 목전에서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다(민 20:8).
그런데 모세가 화를 내 버렸다. 그는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함이 더한 사람이었다(민 12:3). 그런데 마지막에 그것을 참지 못했다. '너희 부모가 어떻게 죽었는지 못 보았느냐? 한 달이면, 아니 일주일이면 갈 수 있는 그 거리를 못 가고 38년 동안 빙빙 돌다가 다 죽는 것을 너희 눈으로 똑똑히 보았는데 또 원망하느냐?' 그렇게 화가 나서 반석에게 명령하지 않고 반석을 두 번 쳐 버렸다.
민 20:11-12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는 모세가 하나님을 대변하는 지도자로서 하나님을 화나고 짜증 내는 존재로 표현하여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거룩한 존재, 인간과 똑같지 아니하고 구별된 존재다. 나는 지켜보고 공의로 판단하는 존재다. 그런데 너는 나를 대변하면서 화만 내는 존재로 나를 표현했느냐? 나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다.' 그래서 모세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게 된 것이다. 모세처럼 쓰임받은 자가 이 세상에 누가 있는가? 그런데도 하나님의 성품을 잘못 나타냈기 때문에 '너는 여기까지다' 하신 것이다. 필자가 칼빈주의를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칼빈주의는 만세 전부터 어떤 사람은 저주하기로, 어떤 사람은 지옥에 가기로 예정하셨다고 하면서 입을 다물라고 했다. 하나님을 잔인한 하나님으로 만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는 자는 가만두지 않겠다'고 하셨다.
필자의 인생에서 가장 마음을 추스른 때는 2007년 개척하기 전인 2006년에 다녀온 성지순례였다. 가장 인상 깊은 장소 가운데 하나가 모세가 죽은 산, 곧 느보 산의 비스가 꼭대기였다(신 34:1). 한낮에 그 꼭대기에 올라가 내다보니 태양 빛에 사해가 반짝반짝 빛났다. 반나절, 네 시간 정도면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앞쪽으로 조금 가니 메마른 광야 가운데 숲이 우거진 곳이 보였다. 종려나무 성읍(신 34:3), 곧 물이 있어 사람이 사는 여리고였다. 그것이 반짝반짝 보였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여기까지다' 하셨던 곳이다. 그때 필자는 이렇게 고백했다. '주님, 제가 평생 모세처럼 쓰임받다가 어느 날 주님께서 여기까지다 하시면 저도 기꺼이 모세처럼 모든 것을 접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모세의 전철을 따라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지금도 언제라도 접을 마음이 있다. 주님께서 그만하라 하시면 딱 접을 것이다. 필자는 주님의 종으로 부름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필자의 몸에서 악한 영들을 다 내보내셨는가? 단 하나의 이유였다. '너는 모세처럼 되지 말고, 마지막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간 여호수아처럼 갈 사람이니, 내가 너를 장수로 세운 것을 기억하라.' 그래서 하늘에서 필자가 그 전쟁을 수행하는 장수로 쓰이는 것을 환상으로 다 보여 주셨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는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언제든 달라질 수 있고 타락할 수도 있다. 그래도 회개를 해 보니 하나님 앞에 온전히 쓰임받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겠구나 하고 이제는 짐작이 된다. 고로 지도자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바르게 나타내야 하며, 끝까지 원망하지 않고 자기 성품까지 다스려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지금도 부지런히 회개한다. 속에서 원망과 불평의 영이 다 사라질 때까지 회개하는 것이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야 한다(고전 10:12).
9. 나오며
그러므로 여러분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다 할지라도 절대 주님을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원망하는 자들을 광야에서 38년 동안 엎드러지게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함과 성품을 드러내야 할 지도자에게는 작은 것도 용서하지 않으셨다. 우리가 이 말씀을 경각심을 가지고 알아듣고 열심히 회개하여 우리 속의 영을 내보낸다면, 모세처럼 가다가 중단되지 아니하고 끝까지 살아서 휴거되어 주님의 오른편과 왼편에서 전사로 아마겟돈 전쟁을 치르고,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민수기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에 관해서는 아직 할 이야기가 많이 남았다. 다음 시간에 이어서 살펴보겠다. 우리의 삶에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우리의 성품을 다스리지 못해 하나님께서 '안 된다'고 말씀하시기 전에, 우리 속의 악한 영을 내보내어 성품까지 주님을 닮아 가야 한다. 그리고 인생 여정의 원망을 완전히 버리고, 나를 이 시대에 태어나게 하시고 깨우쳐 주시며 인도하시고 써 주시는 하나님께 날마다 감사하며 그 은혜에 보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6년 10월 21일(수) ·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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