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하나님의 경륜(18)] 어떻게 할 때 영혼육 중에서 육체까지도 구원할 수 있는가?(롬7:18~25)_2024-01-24(수)
https://youtu.be/S-vJ_2d8xQc [또는 https://tv.naver.com/v/46736956]
1. 들어가며
성경은 구원을 삼중적으로 말씀한다. 먼저는 영이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고전5:5), 이어서 혼이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며(벧전1:9) 그리고 마지막으로 육(육체)이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고후4:10~11). 그런데 이러한 삼중 구원은 모두가 단회적인 것이 아니다. 영의 구원은 거듭나는 순간에 단번에 이루어지지만, 혼의 구원은 날마다 이뤄가야 하며, 육의 구원도 역시 일평생의 과정을 통해서 이뤄가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단번에 이미 받은 영의 구원이라 할지라도, 영의 구원은 우리가 죽는 날에 또다시 한 번 확인이 되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날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짐으로 구원이 취소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최종적인 구원으로서 육체의 구원은 대체 어떻게 이뤄지는가? 이러한 육체(헬, '사릌스')의 구원은 몸(헬, '소마')의 구원과는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 것인가?
2. 사람이 구원받는 순서는 어떠한가?
사람의 창조의 순서는 먼저 흙으로부터 육체가 빚어진 뒤에 그 코에 생기(영)가 들어오고 그때에 혼(헬, 프쉬케)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니까 창조의 순서는 육과 영과 혼의 순서로 창조된 것이다. 그런데 구원의 순서는 창조의 순서와는 약간 다르다. 가장 먼저 영(헬, 프뉴마)이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생명주는 영이신 그리스도께서 실제의 영인 성령을 통해 믿는 자들 속에 들어오심으로 사람의 영에 생명의 분배가 먼저 이뤄지기 때문이다(고전6:17, 요3:5, 고전15:45). 그러고 나서 혼의 구원이 날마다 이뤄지되 죽을 때까지 계속되어진다. 왜냐하면 혼은 육과 영이 만날 때에 생겨난 자기 자신(자아)으로서, 이것이 없으면 그는 더 이상 사람이라고 부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창조된 혼이 그만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육체 속에 들어온 죄된 본성 곧 귀신들과 하나가 되어버렸다. 그러므로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치고 중립적인 위치에 서서 선과 악을 스스로 취할 수 있는 혼은 한 사람도 없다. 전부다 죄를 짓는데 발 빠른 혼만 가진 인간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혼이 구원을 받으려면 혼은 부인(거절)되어져야 하는 것이다(마16:24). 혼이 자기를 계속해서 주장하도록 놓아두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혼을 부인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의 혼을 십자가에 매일 못박아 그것을 죽음에 넘기는 것이다(갈2:20). 그리고 생각을 영에 둠으로서 혼이 더 이상 육체의 소욕을 따라가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래도 매일 혼은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러므로 혼의 구원은 일평생 그리고 날마다 이뤄가야 하는 구원이다. 그러므로 혼의 구원은 일종의 과정이라고 말해야지 순간이라고 말해서는 아니 된다. 그러고 나서 이제 끝으로 육을 처리해야 한다. 육을 처리함으로 육에게도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고후4:10~11).
고후4:10~11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3. 우리가 받아야 할 세 번째의 구원은 육의 구원인가 몸의 구원인가?
그렇다면 사람의 구원의 최종 단계는 육의 구원인가 아니면 몸의 구원인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둘 다의 구원이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둘이 같은 차원의 구원을 말하고 있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와 그리고 그 목표가 서로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같은 종류의 구원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둘을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사람의 물질적인 부분을 몸이라고 하고 또한 육체라고도 구분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사람을 영혼몸이라고 구분했지만(살전5:23), 히브리서 기자는 사람을 영혼육이라고 구분했기 때문이다(히4:12). 그런데 훗날 사도 바울은 몸속에 죄가 들어 있는 몸을 가리켜 '육체'라고 불렀다. 자기의 속 곧 자신의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고 죄가 거하고 있기 때문이었다(롬7:18~20). 그러니까 죄를 짓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거하는 죄라고 말한 것이다. 사실 아담이 죄짓기 전에 사람 몸속에는 죄가 있지 않았다. 그런데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죄가 선악과의 형태로 몸속에 들어옴에 따라 사람은 죄된 본성이 지배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이 거듭나서 성령의 통제를 받지 아니한다면, 그는 자기 안에 들어 있는 죄된 본성을 따라 죄를 짓게 마련이다. 그래서 죄의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다.
4. 육 혹은 영의 구원의 방법과 목표는 대체 무엇인가?
그렇다면 몸의 구원의 방법과 목표는 무엇인가? 먼저 몸의 구원의 방법은 자신의 몸을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롬12:2). 왜냐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사람의 몸을 핏값을 주고 모두 다 사셨기 때문이다(고전6:20). 그러므로 사람의 몸은 더 이상 귀신들의 소유가 될 수 없다. 예수님의 소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이는 곧 사람의 몸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고 하겠다(롬6:12~13). 즉 구원받은 사람이 자신의 몸을 사용하여서, 그것으로 전도도 하고 봉사도 하여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것이 자신의 몸을 구원하는 것이다. 그럼, 몸의 구원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것은 몸이 성령의 전 곧 성령의 집이 되게 하는 것이다(고전6:19). 성령께서 영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몸도 다스리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몸의 구원의 목표다.
그렇다면 육의 구원의 방법과 목표는 무엇인가? 육의 구원의 방법은 몸의 구원의 방법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육은 이미 마귀의 포로가 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귀신들이 들어와 자신의 집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귀신들은 사람에게 식욕과 성욕과 소유욕을 발동시켜 죄를 짓게 만든다. 그러므로 육의 구원은 몸의 구원과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의 육체를 집으로 삼고 들어와 거주하고 있는 귀신들을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육의 구원의 방법은 혼의 구원의 방법과 동일하다. 그것은 2가지다. 첫째는 날마다 육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음에 넘기는 것이다(갈5:24). 그렇지 않으면 옛 사람의 육이 계속 살아나서 죄를 짓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생각을 영에 두어 육의 소욕이 사람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갈5:16~17). 그러면, 육의 구원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것은 육체 속에 들어 있는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다(마12:28). 회개를 통해서 우리 몸속에 들어 있는 귀신을 제거하는 일이 그 목표인 것이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육을 몸이 되게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의의 병기가 되게 하는 것이다.
2024년 01월 24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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